2014. 10. 10. 16:18

얼마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인용해 한국의 기현상을 보도한 적이 있다. 한국 근로자 수면 시간(7시간49분)은 조사 대상 18개국 중 가장 짧은데, 근로 시간(2237시간)은 2위로 회원국 평균보다 393시간이나 많고, 노동생산성은 평균의 66% 수준이라는 것. 잠도 안 자고 일하는데 생산성은 왜 이렇게 낮냐는 거다. 실제로 오래 일하는 부지런한 근로자의 인당 노동생산성은 OECD 33개국 중 28위, 1등인 노르웨이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통계로만 보면 일당백(一當百)은커녕 일당 3분의 1밖에 안 되는 게 우리 근로자 경쟁력의 현주소다.

물론 근로 시간이 긴 건 자영업자가 많아 생긴 착시라는 등의 변명은 있다. 하지만 기업부문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은 기업 스스로도 인정한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이런 비효율 사례를 들어 한국 기업의 문제를 ‘부지런한 비효율’이라고 꼬집는 보고서를 냈다. 

지난주엔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으로 국내 최대 기업 생산현장의 낮은 생산능력도 목격했다. 차 한 대 생산에 걸리는 시간은 미국이 14.8시간인데 한국은 27.8시간이란다. 이에 현대차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오래 일하는지 강조한다. 특근과 잔업 등으로 보통 2800~3000시간씩 일한단다. 한데 물어보면 이유는 수당 때문이다. 기본급이 적어서 수당으로 채우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다고도 했다.

한 인사관리 전문가는 "모든 문제는 임금 체계로 통한다”고 했다. 현대차는 강성 노조 등 특수성이 있지만 그들의 생산성 문제도 결국 임금체계 실패의 한 사례라는 지적이다. 현대차의 임금 설계가 근로자들의 비효율과 생산성 저하를 합리화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생산성은 떨어뜨리고 더 오래 일하는 게 이익이 되는 임금 체계의 덫으로 근로자 삶의 질도 함께 떨어졌다.

실제로 우리 임금 체계는 시대가 변해도 연 공급에 따른 호봉제와 시간급제가 굳건해 이 틀을 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올 3월 고용노동부는 기본급을 중심으로 임금 구성을 단순화하고 성과급 비중을 높인다는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발표하기도 했다. 내용은 비교적 합리적이었는데 지금은 이 매뉴얼을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다.

이유가 뭘까? 지난주 전문가, 관련 분야 기자, 젊은 직장인들과 틈만 나면 이 얘기를 해봤다. 물론 그들은 임금체계 문제를 많이 지적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느낀 것은 어쩌면 우리의 낮은 효율과 생산성은 임금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직장인들은 자기 회사를 믿지 못했다. 몇 차례의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 명목으로 가차없이 사람한테 손을 대고, 능률보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계약직만 쓰고, 능력에 따른 연봉제를 도입했다지만 실제로는 혜택 적은 호봉제로 꼼수를 부리며, 능력을 평가하겠다면서도 각종 연줄이나 상사의 개인 취향 같은 비합리적인 평가가 횡행하는 등 신뢰할 구석이 없다는 거다.

많은 직장인들의 목표가 ‘어떻게든 한몫 잡아 회사를 탈출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기업들이 하나의 가치를 좇는 ‘공동체적 조직’이 아니라 구성원 각각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용병 조직’으로 변모되는 조짐마저 보인다. 용병은 원래 내부에선 용감한 척 과시하며 보여주기에 집착하지만 적을 만나면 비겁해지는 특징이 있다. 더구나 우리 조직은 여전히 근면·성실·형식주의라는 전근대적 미덕에 집착한다. 그러니 오랜 시간 회사에서 버티는 인내력만으로도 좋은 사원으로 인정받는데 굳이 생산성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21세기엔 근면·성실이 아니라 지식과 창의력, 소비할 시간의 여유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거다. 한데 기업들의 인력 관리는 거꾸로다. 통계가 보여주는 우리의 현실은 단순히 생산성 문제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못해 발목 잡혀 있는 모습일 수 있다. 걱정이다. 우리는 21세기에도 계속 발전해야 하는데….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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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