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11. 08:07

《 22일 한국연금학회 주최로 열릴 예정이던 ‘공무원연금 대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공무원 노조원들의 저지로 무산됐습니다. 토론회는 열리지도 못했습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올해에만 공무원연금 재정 적자를 메우는 데 2조 원을 넘어서는 세금을 투입해야 한다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비판합니다. 국민 대부분이 가입한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을 지적하기도 하지요. 반면 공무원 노조는 정부가 사적연금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공무원연금을 볼모로 삼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또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시스템 전체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좀처럼 타협이 되지 않을 듯한 분위기입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양쪽의 주장을 소개합니다. <오피니언팀>》        
        


▼ 공무원들 노후를 왜 세금으로 충당하나 ▼

고성규 한국납세자연맹 부회장

공무원연금의 누적 적자가 10조 원에 달해 국가 재정을 위협하고 있다. 

정치권은 그동안 몇 차례의 개혁을 추진했지만 매번 이해 당사자들의 ‘셀프 개혁’에 의존하는 바람에 무늬만 개혁이란 비판을 받아 왔다. 그사이 공무원연금은 전년도 적자분에 2조 원이 늘어 정부가 세금으로 내야 했으며 금년만 해도 2조5000억 원, 향후 2030년경에는 약 18조 원의 국민 혈세가 적자 보전을 위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군인연금을 합하면 언젠가 메워야 할 적자는 약 600조 원으로 늘어난다. 그야말로 한없이 불어나는 눈덩이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공무원연금공단과 국민연금공단의 자료를 보면 2013년 말 현재 가입별 월 수령 평균금액은 공무원연금이 1인당 219만 원으로 84만 원인 국민연금의 2.6배에 이르며 그 격차는 공무원의 직급과 근무연수가 높을수록 커진다. 또한 가입자가 낸 보험료 대비 수령액(75세 기준)의 경우 공무원연금이 11배인 반면 국민연금은 5배 수준이라는 언론 분석도 있다. 한마디로 1.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에 비해 본인이 낸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받는다는 얘기다.

이 같은 현행 방식의 공무원연금 제도가 운영되는 한 적자 보전을 위해서 누군가는 세금을 더 내야만 한다. 이를 국가 재정을 유지하기 위한 제로섬 게임으로 보면 결국 공무원의 안락한 노후를 위해 투입된 재정 적자분을 형편이 열악한 국민연금 납부자가 혈세로 대신 메워줘야 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2. 이는 대다수 납세자를 기만하는 몰염치한 행위로 조세 공평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3. 공무원연금이 도입된 1960년과 오늘날은 판이한 세상이다. 당시 평균수명은 60세 미만이었으나 50여 년이 흐른 지금은 80세로서 20년 이상 늘어났다. 저출산에 따른 젊은층의 감소와 노년층의 급증은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와 맞물려 경제 성장마저 저성장기에 들어선 지 오래다. 구조적인 한계로 특단의 개혁이 불가피해 보이는 대목이다.

오늘날 공무원은 다수가 선호하는 직업으로 경쟁률이 보통 수십 대 일이다. 정년 보장은 물론이고 임금 등 처우도 일반 민간기업 수준에 뒤지지 않으며 ‘갑’의 지위까지도 누릴 수 있다. 4. 이에 반해 삼성을 비롯한 국내 30대 민간 대기업의 평균 근속연수는 10년 내외로 종사자들은 항시 구조조정 등 고용불안에 시달린다.계약직, 임시직 위주의 중소기업은 생계 유지도 벅차 아예 말할 처지도 못 된다.

공무원들이 제기하는 퇴직금 문제 또한 우리나라는 자영업의 비율이 높아 의미가 없거나 많은 기업체가 영세하여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절반밖에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도 임금근로자 1800만여 명의 절반 이상이 월급여가 200만 원 미만이고 230만여 명은 월 100만 원 미만으로 드러나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런 상황임에도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는 이해당사자가 공무원이기에 녹록하지가 않다. 제 살 도려내는 아픔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미래를 위해 대승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5. 독일, 스웨덴 등 대부분의 선진국도 이미 10년 전에 상호 논쟁을 통해 지속 가능한 개혁을 단행했다. 일본 역시 2000년대 초부터 제도 개편을 추진해 내년 하반기부터 공무원연금인 ‘공제연금’을 없애고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후생연금’과 통합해 동일한 수준으로 운용할 예정이다.

늦어지는 만큼 부담은 배가된다. 정치권이 이미 1992년에 바닥을 드러낸 공무원연금을 방치하고 기금 고갈을 빌미로 2060년경 소진이 예상되는 국민연금을 기존보다 덜 받고 늦게 받는 조건으로 밀어붙여 대폭 개정한 것이 벌써 2007년의 일이다. 오늘날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할 정도로 재정이 취약하며 급기야 위험수위를 넘은 상태다.

정치권이 선거철의 구호만이 아니라 진정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하늘처럼 받들겠다면 서둘러 책임감 있는 자세로 납세자의 부담을 키우는 공무원연금의 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번에는 과거처럼 미봉책이 아닌 필히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제대로 된 개혁을 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경기 불황으로 고통받는 납세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다.

고성규 한국납세자연맹 부회장 


▼ 노후보장 아니라 박봉에 대한 보상이다 ▼

이충재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공무원노조는 정부와 정치권력이 먼저 국민연금을 개악하고, 공무원연금을 개악하는 수순으로 공적연금을 무력화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공적연금을 후퇴시키는 것은 공적연금을 붕괴시켜 재벌 보험사 등이 운용하는 사보험 확대를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공무원노조가 경고해 온 것이 정부의 지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 발표로 사실로 드러났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은 압도적으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국민연금을 ‘용돈’연금으로 바꾸고 기초연금은 있으나마나 한 연금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1. 국민의 노후가 붕괴됐다. 국민의 노후는 세계 각국이 그렇듯이 공적연금으로 지켜야 한다.

1988년 국민연금이 최초로 도입되었을 당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연금지급액이 개인의 생애 평균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0%였다. 재정안정화라는 미명하에 1998년 1차 개혁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60%로 인하하였으며, 이후 2007년 2차 개혁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2008년부터 50%로 인하한 후 2009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2014년 현재 40년 기준 소득대체율 47%에 불과하고 2028년에는 40%가 되도록 개악했다. 

반면 사적연금 시장은 2013년 기준 321조 원 규모로 5년 전에 비해 약 3배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어 저임금, 저소득층에 더 유리한 공적연금은 축소되고, 사적연금은 활성화되면서 소득계층별 양극화 현상은 심화되는 실정이다. 

공적연금 축소 및 사적연금 강화라는 정책기조가 변경되지 않는다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노후생활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기도 어렵다. 사적연금에 대한 세제 지원 역시 고소득층의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해 노후소득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공무원노조는 이 때문에 공무원연금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공적연금 시스템 전반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재벌 보험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연금학회는 공무원노조가 논의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 당사자를 배제한 것은 오히려 그들이다. 분명히 해둘 것은 공무원노조는 당사자를 포함해 사회 각 분야가 공정하게 참여하는 사회적 공론장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공무원연금만이 아니라 공적연금 전반을 논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밀실에 숨어 공적연금 개악이라는 흉계를 꾸미고 있는 것은 청와대이고, 새누리당이고, 재벌 보험사들이다. 

2. 공무원연금은 제도 도입 당시부터 단순 노후보장이 아니라 재직 중 낮은 임금에 대한 후불임금, 각종 불이익을 연금으로 보상받는 인사 정책적 수단을 포함해 설계됐다.


현재 일반직 공무원의 보수는 9급 초임연봉 1900만 원이 말해 주듯이 100인 이상 민간기업 대비 77.6%에 불과하며, 퇴직금(퇴직수당)은 가장 많아도 39%밖에 안 된다.
 또한 재직 중 영리행위와 겸직이 금지되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없으며,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도 제한된다. 징계와 형벌에 따라 연금도 절반으로 줄어든다. 공무원들은 재직 중 불이익을 퇴직 후 연금으로 보상해 주겠다는 역대 정부의 약속을 믿고 수해와 산불, 구제역 등에 목숨을 걸었다. 박근혜 정부가 100만 공무원과 36만 수급자, 500만 가족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겠다는 것이다.

재정악화의 책임도 제대로 짚어보자. 3. 공무원연금 재정이 악화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 정부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11만 명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퇴직수당 4조7169억 원, 철도청 공사 전환에 따른 퇴직수당 2227억 원, 사망조위금과 재해부조금으로 빼앗아 간 1조4425억 원, 군대 소급기여금 미납액 5863억 원, 정부가 공무원연금에서 빌리고는 이자를 한 푼도 안 낸 4700억 원, 책임준비금 미적립액 7조2000억 원 등 현재가치로 24조 원이 넘는 재정 손실을 끼쳤다. 당연히 정부가 갚아야 할 돈이다.

앞서 주지했듯이 공무원노조는 직역연금만 지키는 투쟁이 아닌, 국민연금 상향평준화를 통한 공적연금 강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 국민의 노후 보장은 국가가 해야 할 책무이다. 

공무원노조는 국민을 위해 연금 민영화를 저지하는 싸움을 앞서서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충재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19/3/70040100000119/20140926/66726176/1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6:28

저녁 모임에서 한 선배가 말했습니다. “목표와 꿈은 다른 거라고 생각해.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만약 네가 의대에 진학하려고 한다면 그건 너의 목표이지, 너의 꿈은 아니다.” 그러자 아이가 물었답니다. “목표와 꿈이 어떻게 달라?” 선배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가령 네가 ‘나는 의사가 될 거야’라고 한다면 그건 너의 목표라고 봐. 대신 ‘나는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될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건 너의 꿈이라고 봐.”

 흥미롭더군요. 목표와 꿈, 둘의 차이는 과연 뭘까요. 사람들은 다들 ‘목표’를 좇습니다. 특목고를 좇고, 일류대학의 인기학과를 좇고, 높은 연봉의 근사한 직장을 좇습니다. 그걸 위해 앞만 보고 달립니다. 부모도 그걸 원하고, 선생님도 그걸 원하고, 자신도 그걸 원합니다. 목표만 달성하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저절로 풀릴 것만 같습니다. 

 막상 그걸 성취한 사람들은 달리 말합니다. “허전하다”고 말합니다. 대기업의 CEO가 된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삶이 허전하다고, 이유를 모르겠다고. 대체 왜 그럴까요. 무엇이 빠졌기에 그런 걸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왜?”라고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자신을 향해 “왜 나는 공부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음을 던지지 않으면 꿈이 싹트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물음이 바로 ‘꿈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왜?”라고 묻지 않는 사람에게는 ‘목표’만 있을 뿐입니다. 목표를 달성한 뒤에는 허전함만 밀려옵니다. 그래서 또 다른 목표를 만들고, 또 만듭니다. 

 그럼 슈바이처는 어땠을까요. 그는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도,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대신 무엇을 했을까요. 먼저 자신을 향해 물음을 던졌을 겁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왜 의사가 되고 싶은가?” “의사가 된다면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 “왜 그런 의사가 되고 싶은가?” “그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걸 진지하게 묻고, 묻고, 또 물었을 겁니다. 그렇게 씨앗을 심으니 싹이 트는 겁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에게 저는 계속 묻습니다. “너는 왜 공부를 해?” 아이는 처음에 답을 못했습니다. 좀 더 지나자 나름의 답을 합니다. “모르겠어. 나는 커서 뭘 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어.” 저는 또 묻습니다. “그래? 그래도 괜찮아. 그건 나중에 싹이 틀 수도 있고, 바뀔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너는 왜 공부를 해? 공부가 왜 네게 필요하지? 네가 왜 학교에 가고, 왜 학원에 가는 거지? 힘들고 피곤할 텐데.” 저는 그저 물음만 던집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생각에 잠깁니다. 골똘하게 이유를 찾습니다. 자기 안으로 내려가 묻습니다. “정말, 나는 왜 공부를 하지?” 저는 그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길어 올리는 과정. 거기서 생각의 근육이 생기니까요. 답은 하루 이틀 사이에 툭 튀어나오진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대답합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저는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건 아이가 직접 찾은 ‘내가 공부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날부터 아이가 조금씩 달라지더군요.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자기가 알아서 책상에 앉습니다. 저게 남들이 말하는 자기 주도 학습인가 싶더군요. 

 “왜?”라는 물음은 자기 마음에 심는 씨앗입니다. 그 씨앗에서 싹이 틉니다. 그 싹이 자라서 꿈이 됩니다. 그래서 꿈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목표에는 뿌리가 없습니다. 목표 달성 후에 허전함이 밀려오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왜?”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주도 학습도, 자기 주도적 삶도 가능하니까요.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753809&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6:27

기업의 이윤과 주주 이익의 극대화에 몰두했던 주주자본주의가 도전 받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가 소득 양극화, 저성장과 고실업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다보스포럼에서도 승자 독식의 신자유주의 경제 운영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상대적 빈곤감, 복지 사각지대, 소외계층, 노사 갈등이 심화되고 세월호 침몰 이후 사회 구성원 간 불신과 반목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고 심지어 반기업 정서마저 감돌고 있다. 이제 국민과 사회로부터 받는 사랑은 기업 생존의 필수요건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 저성장과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 공유가치 창조(Creating Shared Value·CSV)가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와 미국의 상생연구재단 마크 크레이머 대표가 CSV를 개념화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학자들과 기업인들이 CSV 연구회를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CSV의 관점에서 보면 우선 글로벌 시대에 대·중소기업이 상호 보완적 협력을 네트워크화하면 상생의 길이 열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나아가 기업이 추구하는 이익활동을 사회가 추구하는 목표에 조준해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수익성 비즈니스 모델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들은 지금 CSV경영 이념을 도입하고 있다. 지금 절실히 필요한 우리 경제의 재도약과 사회적 통합을 위해 한국형 CSV 경영전략을 적극 실천할 때이다.

 유엔은 회원국의 사회발전을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은 그동안 사회의 성원에 의해 성장하였으므로 이제는 사회에 이익의 일부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기업은 아직도 CSR활동을 기업의 비용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CSV는 CSR에서 진일보한 개념으로 기업의 핵심 역량으로 사회 문제도 해결하고 수익 창출의 기회를 찾는다는 것이다. 한국형 CSV는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우선 내부 구성원 간의 기업 목표에 대한 합의,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그리고 기업·사회와의 공생을 통한 3차원의 공유가치 창조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최우선 과제는 일자리를 늘리는 일이다. 우리 경제에서 일자리의 88%는 중소기업이 제공하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함께 CSV활동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관여한 몇 개의 CSV 사례를 보자. 대기업의 전문인력 지원을 받아 멀티미디어 연결소자를 만든 중소기업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해당 중소기업은 종래의 청동자재를 스테인리스로 바꾸고 제조공법 자체를 부품 결합형에서 단순 일체형으로 바꾼 결과, 연 매출이 재작년 28억원에서 작년에는 72억원으로 늘어났다. 연결소자의 개당 공급가격도 낮아져 대기업도 부품조달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철강의 생산과 가공공정에 필요한 냉각기를 대·중소기업이 공동 개발해 수입품을 대체한 결과 52억원의 새로운 매출이 발생했고 대기업은 원가 절감을 거둘 수 있었다. 최근 미국 LA에서 한 대기업이 한류 문화 행사에 해외 홈쇼핑과 연계해 중소기업의 상품전시회를 개최했다. 행사 기간 동안 중소기업들이 제작한 미니 가습기, 치약 부착 칫솔, 컵 등이 매진되었고 온라인으로 추가 주문까지 받고 있다. 저소득층 난청 노인을 위해 표준 모듈화로 저가 보청기를 개발한 중소기업은 어려운 노인의 복지 향상과 자체 수익을 증진시킬 수 있었다.

 공유가치 창조의 실천을 위해서는 선결 과제가 있다. 우선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공유가치 창조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실천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기업이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구성원 간 합의도 유도해야 한다. 기업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에 합의하면 우리의 만성적 노사 갈등의 해법도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민과 사회의 모든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협동의 가치를 공감하고, 소통하고, 나눌 때 기업의 CSV활동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추석이 다가온다. 경향 각지로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송편을 함께 빚는다. 우리는 오랜 역사를 통해 쌀 중심의 농경문화를 지니고 있다. 적기에 모내기를 하고 김매기를 부락민이 함께하는 품앗이의 DNA를 지니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기업의 공유가치 창조에 민간 촉매제 역할을 가속화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지녀온 상생의 DNA를 일깨워 공유가치 창조로 지속가능 성장과 사회적 통합을 함께 일궈낼 수 있다. 이제 주주자본주의는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해야 한다.


안충영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744222&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6:25


천문학자 이명현씨가 쓴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이란 책에는 이런 아름다운 대목이 있다. 



"살다보면 달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격렬한 어떤 사연을 공유한 사람.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사랑을 했던 그 사랑을 가슴속에 묻고 떠나갔던 여전히 그리운 사람. 끝없는 배려를 해주는 사람. 한쪽 면만 보여주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동조 과정의 결과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사람. 내 자신의 모습을 반사하듯 내게 보여주는 사람. 그러면서 늘 옆에 있는 사람. 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지켜만 보는 사람. 보름달처럼 나를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어둠 속에서 환한 그림자를 만들어서 나를 춤추게 하는 사람. 천 개의 달이 되어서 온 세상에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 살다보면 달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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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10. 10. 16:18

얼마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인용해 한국의 기현상을 보도한 적이 있다. 한국 근로자 수면 시간(7시간49분)은 조사 대상 18개국 중 가장 짧은데, 근로 시간(2237시간)은 2위로 회원국 평균보다 393시간이나 많고, 노동생산성은 평균의 66% 수준이라는 것. 잠도 안 자고 일하는데 생산성은 왜 이렇게 낮냐는 거다. 실제로 오래 일하는 부지런한 근로자의 인당 노동생산성은 OECD 33개국 중 28위, 1등인 노르웨이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통계로만 보면 일당백(一當百)은커녕 일당 3분의 1밖에 안 되는 게 우리 근로자 경쟁력의 현주소다.

물론 근로 시간이 긴 건 자영업자가 많아 생긴 착시라는 등의 변명은 있다. 하지만 기업부문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은 기업 스스로도 인정한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이런 비효율 사례를 들어 한국 기업의 문제를 ‘부지런한 비효율’이라고 꼬집는 보고서를 냈다. 

지난주엔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으로 국내 최대 기업 생산현장의 낮은 생산능력도 목격했다. 차 한 대 생산에 걸리는 시간은 미국이 14.8시간인데 한국은 27.8시간이란다. 이에 현대차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오래 일하는지 강조한다. 특근과 잔업 등으로 보통 2800~3000시간씩 일한단다. 한데 물어보면 이유는 수당 때문이다. 기본급이 적어서 수당으로 채우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다고도 했다.

한 인사관리 전문가는 "모든 문제는 임금 체계로 통한다”고 했다. 현대차는 강성 노조 등 특수성이 있지만 그들의 생산성 문제도 결국 임금체계 실패의 한 사례라는 지적이다. 현대차의 임금 설계가 근로자들의 비효율과 생산성 저하를 합리화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생산성은 떨어뜨리고 더 오래 일하는 게 이익이 되는 임금 체계의 덫으로 근로자 삶의 질도 함께 떨어졌다.

실제로 우리 임금 체계는 시대가 변해도 연 공급에 따른 호봉제와 시간급제가 굳건해 이 틀을 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올 3월 고용노동부는 기본급을 중심으로 임금 구성을 단순화하고 성과급 비중을 높인다는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발표하기도 했다. 내용은 비교적 합리적이었는데 지금은 이 매뉴얼을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다.

이유가 뭘까? 지난주 전문가, 관련 분야 기자, 젊은 직장인들과 틈만 나면 이 얘기를 해봤다. 물론 그들은 임금체계 문제를 많이 지적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느낀 것은 어쩌면 우리의 낮은 효율과 생산성은 임금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직장인들은 자기 회사를 믿지 못했다. 몇 차례의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 명목으로 가차없이 사람한테 손을 대고, 능률보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계약직만 쓰고, 능력에 따른 연봉제를 도입했다지만 실제로는 혜택 적은 호봉제로 꼼수를 부리며, 능력을 평가하겠다면서도 각종 연줄이나 상사의 개인 취향 같은 비합리적인 평가가 횡행하는 등 신뢰할 구석이 없다는 거다.

많은 직장인들의 목표가 ‘어떻게든 한몫 잡아 회사를 탈출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기업들이 하나의 가치를 좇는 ‘공동체적 조직’이 아니라 구성원 각각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용병 조직’으로 변모되는 조짐마저 보인다. 용병은 원래 내부에선 용감한 척 과시하며 보여주기에 집착하지만 적을 만나면 비겁해지는 특징이 있다. 더구나 우리 조직은 여전히 근면·성실·형식주의라는 전근대적 미덕에 집착한다. 그러니 오랜 시간 회사에서 버티는 인내력만으로도 좋은 사원으로 인정받는데 굳이 생산성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21세기엔 근면·성실이 아니라 지식과 창의력, 소비할 시간의 여유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거다. 한데 기업들의 인력 관리는 거꾸로다. 통계가 보여주는 우리의 현실은 단순히 생산성 문제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못해 발목 잡혀 있는 모습일 수 있다. 걱정이다. 우리는 21세기에도 계속 발전해야 하는데….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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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6:16

한국은 왜 미국에서 더 주목받고, 더 중시되지 않는지 궁금해 하는 나의 한국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일련의 질문을 쏟아낸다. 왜 미국 관료들과 싱크탱크는 한·일 간의 역사·영토 갈등에서 서울의 편을 들지 않는가. 한국의 공공외교가 비효과적이기 때문인가. 한국 정부는 로비 활동을 강화해야 하나.

 워싱턴에서 한국이 더 눈에 잘 띄는 나라가 되려면 다음 몇 가지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역사적으로 미국은 아시아보다는 유럽, 한국보다는 일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경향에 빠른 변화가 일고 있다. 조지 워싱턴은 이임사에서 미국이 늙은 유럽의 동맹 외교에 휩쓸리지 말 것을 국민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20세기 미국의 전략은 항상 아시아보다 유럽을 중시했다.

 둘째, 최근 몇 년간 역전이 일어났다. 미 군사력의 중심은 유럽에서 아태지역으로 이동할 것이다. 역사상 처음이다. 또 여론조사를 해보면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아시아가 유럽보다 중요하다고 응답한다. 한데 일본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정책이 한국에 항상 불리한 것은 아니었다. 트루먼 행정부가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한 것은 일본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지미 카터의 주한 미군철수 백지화는 일본의 워싱턴 로비 결과물이다. 미국을 둘러싼 한·일 관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제로섬이 아니다.

 셋째,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대미 외교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백악관 관리들이 내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담은 그해 가장 중요한 정상회담이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의 발전과 안보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의 외교와 발전을 위해 한국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제안을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당시 중국에 대한 관여(engagement) 정책과 미·일 동맹을 통한 세력균형 유지를 공약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관리들은 한국이 주요 방산품 수출국이라는 것과 가장 신뢰할 만한 파트너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래서 백악관은 한국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핵안보정상회의·세계개발원조총회의 개최와 한국의 대북정책을 강력히 후원했다. 한덕수(2009~2012년 재임) 주미 한국대사는 미 의회를 지극히 효과적으로 설득해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체결에 기여했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의원들을 맨투맨으로 접촉해 KORUS가 의원들의 지역구에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을 설명했다. 미·호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해 주미 호주 대사가 한 대사의 외교술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한 대사의 후임들 또한 미 의회와 강력한 관계를 유지했다. 한국 정부만큼 워싱턴 정가에서 영향력 있는 정부는 극소수다.

 넷째, 일본을 겨냥하는 한국의 로비는 종종 한국이라는 외교 브랜드에 손상을 끼치고 있다. 워싱턴의 일본 전문가들은 모두 일본에 압력을 넣어 역사 문제에 대해 보다 전향적이 될 것을 요구했다. 한국의 로비 때문이 아니다. 한·일 갈등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국가이익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일본 전문가들은 일 정부의 이런저런 발언이나 행동이 한·일 관계를 해친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을 경청한다. 하지만 한국 관리들이 아베의 ‘위험한 민족주의’를 거론하며 미국이 일본에 전략적으로 등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면, 미국의 관리나 학자들은 한국이 중국 쪽으로 기운다는 느낌을 받고 당혹해 한다. 상황을 꿰뚫고 있는 아시아 전문가들은 한·미 동맹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인사들은 한국의 일본 비판을 지목하며 이러한 전제에 도전한다. 대부분의 워싱턴 전문가들은 영토 문제와 관련된 한국의 로비가 한국 국내용이라고 보기 때문에 미국의 정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미 정부는 독도나 동해 호칭 문제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워싱턴에서 두 문제와 관련된 세미나가 개최되거나 주 정부가 교과서와 관련된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미국 정부가 한국·일본 중 한쪽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일 양국 모두 미국에 핵심 동맹국이다. 또 한국의 재단들은 미국 학자들을 후원할 때 신중해야 한다. 한국 편을 들도록 유도하는 연구비 지원은 학문의 독립성이라는 가치와 상충된다.

 워싱턴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계속 증대했다. 한국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아시아는 더욱 중요한 지역이 됐다. 중국에 대한 신뢰나 일본 정치의 안정성에 의문이 생길 때마다 한국의 가치는 올라간다. 한국의 외교 브랜드가 가장 효과적일 때는 ‘글로벌 코리아’가 빈곤·핵확산·원조·무역 등의 분야에서 해결책을 내놓을 때다. 한국이 일본에 상대적인 이득을 취하려고 하면 한국은 덜 글로벌하고 덜 긍정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동일한 입장에서 미국에 뭔가를 요구할 때에 양국의 외교력이 증가한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동북아에서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이 한목소리로 나올 때 ‘아니오’라고 하기 힘들다. 효과적인 외교는 효과적인 정치와 마찬가지로 ‘네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묻는 게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보여주는 데서 시작한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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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6:11

군인에게 어떤 정신적 자질이 필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포화 속에서도 용기와 충성심, 침착함을 잃지 않는 영웅을 다룬 영화도 많지 않은가. 키보드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사람은 뭐가 필요할까. 정보화 시대에도 정신적인 자질을 함양하고 구현하는 일이 가능할까.

당연히 가능하다. 사무실에 홀로 있을 때에도 우리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잘 생각하는 것’과 포탄 세례 속에서 ‘잘 싸우는 것’을 비교해 보면 각기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는 물론 다르다. 하지만 양쪽 모두 우리의 품성을 시험한다.

베일러대학 로버트 로버츠 교수와 휘튼대학 제이 우드 교수는 공저 『지적 미덕(Intellectual Virtues)』(2007)에서 몇 가지 지적인 자질을 열거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품성의 수준을 스스로 평가해 볼 수 있다. 어떤 특질들이 있을까. 첫째, 배움에 대한 열정이다.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남들보다 호기심이 강한 사람들이 있다.

둘째, 용기다. 두드러진 형태의 지적인 용기는, 인기는 없지만 올바른 견해를 수용하는 것이다. 보다 미묘한 형태의 용기는, 어떤 결론을 내릴 때 얼마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아는 데 있다. 사고가 신중하지 않은 사람은 정보 몇 가지로 현실과 동떨어진 음모론을 만들어낸다. 반면 완벽주의자들은 100% 확실하지 않으면 혹시 틀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떤 주장도 내세우지 않는다. “지성적 용기는 과감해야 할 때와 신중할 때를 아는 자기통제력”이라고 로버츠와 우드는 주장한다. 철학자 토머스 쿤은 과학자들이 기존 패러다임과 맞지 않는 새로운 사실을 종종 외면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지적 용기를 갖춘 사람은 믿기 힘든 사실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셋째, 줏대다. 여러분은 반대 낌새가 보이면 곧바로 꼬리를 내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거꾸로, 틀렸다는 증거가 명백한데도 어떤 믿음에 교조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 되기도 싫을 것이다. 줏대는 무기력함과 옹고집 사이에 위치한다. 줏대 있는 사람은 견고한 기반 위에서 안정성 있는 세계관을 구축하면서도 새로운 정보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사람은 객관적 증거력에 맞춰 자신의 신념 강도를 기품 있게 조정할 수 있다. 줏대는 정신적 명민함의 특징이다.

넷째, 겸손함이다. 겸손함은 다른 사람의 우러름을 받고 싶은 욕구가 정확성을 훼손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허영심·자만심과 맞서 싸운다. 똑똑하게 보이려고 글을 꾸미지도 않는다.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겸손한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 완벽히 다 안다고 자만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배움에 있어서 개방적이라 항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운다.

다섯째, 자율성이다. 여러분은 스승이나 저자의 견해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지적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전문가의 제대로 된 견해까지 모조리 거부하는 사람도 별로일 것이다. 자율성은 권위를 존중해야 할 때와 거부해야 할 때, 롤모델을 따라야 할 때와 따르지 말아야 할 때, 전통을 지켜야 할 때와 반대로 그렇지 않을 때를 적절히 아는 중용의 미(美)다.

마지막으로 너그러움이다. 너그러움은 기꺼이 지식을 나누려는 마음과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리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또한 너그러움은 타인의 의도대로 그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은, 남이 틀리면 의기양양하게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마다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듣는 것이다.

아마도 사람마다 넘치는 정신적·지적 자질도 있고 부족한 자질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정책결정에 관한 주요 서적들을 보면 우리 마음을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정확히 작동하는 유리된 기관처럼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 아주 놀랍다.

사실 마음은 인간 본성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제대로 사고한다는 것은 허영심, 게으름, 확신에 대한 갈구, 고통스러운 진실을 피하려는 마음 등 우리가 가진 인간 본성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훌륭한 사고력은 단순히 올바른 사고법을 적용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 잘 생각한다는 것은 도덕적인 시도이기에 훌륭한 인격, 즉 보다 숭고한 충동을 위해 저급한 충동에 저항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지식으로 박식해질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의 지혜로 현명해질 수는 없다.” 지혜는 정보의 집합체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아는 도덕적 자질이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은 그의 활동 분야인 투자에 대해 비슷한 논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투자는 지능지수(IQ) 160이 130을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보통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다면, 정말 필요한 건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트리는 심리적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다.”

현대인의 일상에서도 자신의 품성이 어떤 수준인지 보여줄 일은 어디에나 있다.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을 때에도 우리는 얼마든지 영웅이 될 수 있다. 영화로 만든다면 히트작이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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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5:59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과 주한 미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86)가 쓴 회고록을 읽었다. 지난 4월 뉴욕주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인터뷰를 한 게 인연이 돼 회고록이 나오자마자 한 권을 보내왔다. CIA 요원과 외교관, 또 백악관 정책담당자로 40년 넘게 공직을 수행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개인적 에피소드 및 소회(所懷)와 잘 버무렸다. 수시로 빛을 발하는 그의 유머감각 덕분에 330쪽 분량의 책을 마치 소설책 보듯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레그는 국가를 위해 봉직한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며 후세에 전하는 교훈을 회고록의 마지막 장에 담았다. ‘악마화의 위험(Dangers of Demonization)’이란 장이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내가 관찰하거나 직접 참여한 미 대외정책의 다양한 패턴들을 돌아볼 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우리가 싫어하거나 잘 모르는 외국 지도자나 단체를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고, 그때마다 미국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상대에 대한 무지(無知)의 간극을 편견으로 메우게 되면 선동이 분쟁을 촉발하고, 그 결과는 모두에게 손해라는 것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CIA 요원으로 현지에서 활동했던 그는 미국이 베트남의 독립영웅인 호찌민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베트남전쟁은 충분히 피할 수 있는 비극이었다고 주장한다. 호찌민은 미국에 대해 깊은 호감을 갖고 있었고, 특히 미 헌법을 제정한 토머스 제퍼슨의 열렬한 숭배자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호찌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에 여러 차례 손을 내밀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베트남의 독립만 인정해 주면 미국과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친서까지 보냈지만 미국은 이를 묵살했다. 1972년 친서가 비밀해제될 때까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숨겼다. 

 특히 베트남을 북한과 동일시한 것은 미국의 결정적 실수였다고 그레그는 회고한다. 두 나라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김일성에 대해서는 전폭적 지지를 보낸 반면 호찌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호찌민의 유일한 목적은 독립과 통일이었는데도 미국은 베트남을 중국의 졸(卒)로 보고,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동남아 전체가 공산화된다는 ‘도미노 이론’에 사로잡혀 안 해도 될 전쟁을 했다는 것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역사는 실패한 개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CIA의 비밀공작을 통해 쿠데타를 사주(使嗾)하고, 반(反)정부 세력을 지원하거나 심지어 무력개입까지 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독재정권이 등장해 역효과를 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양이 자리에 호랑이를 앉힌 꼴이다. 뉴욕타임스 중남미 특파원 출신으로 미국의 대외 개입 역사를 심층 추적한 스티븐 킨저는 『하와이에서 이라크까지 미국의 체제전복 세기』(2006)란 책에서 세계 도처에서 시도된 미국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공작은 미국의 안보를 강화하기보다 되레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새로운 두통거리로 등장한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도 따지고 보면 잘못된 무력개입의 부작용이다. 미국은 왜곡된 정보를 근거로 사담 후세인을 악마로 몰아 처단하고, 이라크 정권을 교체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IS의 발호를 부추긴 꼴이 됐다. 미국이 옹립한 시아파 총리 누리 알말리키의 전횡으로 코너에 몰린 알카에다의 한 분파가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지도 아래 IS로 발전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임자인 조지 W 부시의 잘못된 이라크 개입이 후임자인 오바마에게 두고두고 짐이 되고 있다. IS 격퇴 범위를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확대하면서 막이 오른 오바마판 중동전쟁은 다시 그의 후임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세습 왕조정권을 물려받아 문을 걸어잠근 채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인권을 탄압하고, 강제수용소를 운영하는 북한은 미국의 눈에 악마로 비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악마로 보이는 것과 실제로 악마인 것은 별개의 문제다. 상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악마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베트남과 이라크에서 저지른 뼈아픈 실수를 되풀이할 수 있다. 

 회고록에서 그레그는 “북한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정보 실패 사례”라고 고백한다. 정보기관 차원의 실패일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지적인 사고의 실패라고 실토한다. 상대를 잘 모른다면 일단 접촉하고 대화해야 한다. 악마인지 아닌지는 그 다음에 판단할 문제다. 싫다고 외면하고 무시하는 것은 미국이 자부하는 지성에 대한 모욕이고 배신이다. 북한에 억류돼 있는 3명의 미국인은 북·미가 만날 수 있는 좋은 구실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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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5:58

“아들 봐야지.”

할머니가 갓 결혼한 손자 부부에게 권유한다. 할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번에 어머니가 아들 부부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타이른다. 

“딸이 최고다.”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젊은 부부는 결심한 듯, 두 어르신에게 선포한다. 

“웬만하면, 안 낳으려고요.”

추석에 지인(知人)의 집안에서 벌어진 3대의 대화다. 아들 선호에서 딸 선호로, 다출산에서 저출산으로 확 바뀐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출생통계가 나왔다. 딸 100명당 아들 출생이 105명까지 떨어졌다. 1981년 이후 아들 성비가 가장 낮았다. 수명이 짧고 사고를 많이 당하는 수컷의 태생적 한계를 감안하면 105~107을 밑돌면 실질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적어진다.

‘남아 부족 사회’가 곧 닥칠 미래라면 ‘총각 과잉 사회’는 엄연한 현재다. 올해 예비신랑(결혼적령기 29~33세)은 예비신부(26~30세)보다 38만 명 정도 많다. 내년부터 신랑 초과가 20만 명대로 떨어진다고 하니, 이 땅의 총각들은 최악의 2014년을 견뎌내는 중이다. 아무튼 ‘남아 출산 역대 최저’와 ‘총각 과잉 역대 최고’가 동시에 벌어지는 기막힌 사회에 우리는 산다. 역설의 씨앗은 40년 전에 뿌려졌다.

1970년대 한국에는 아들 선호 사상이 강하게 깔려 있었다. 생각이 그렇다고 곧바로 성비 불균형이 오지는 않는다. ‘태아성감별’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생각과 합체하면서 성비의 조화는 급격히 무너진다. 그때 태아성감별 기법은 정교화·대중화한다. 이 기법은 사회의 위협요소가 아니라 경이로운 첨단이었다. 74년 한 일간지는 태아성감별 기술을 이렇게 칭송한다.

‘양막세포의 성염색체질을 분석하는 기법으로 무려 90%나 정확하게 태아의 성별을 감별하는 기술이 개발돼 화제를 모으고….’

아들 출생성비는 81년 107에서 90년 116까지 가파르게 올라간다. 상승곡선을 보면서도 정부와 의료계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 성비가 115 선을 육박하던 87년이 돼서야 정신을 차려 태아성감별을 처벌할 수 있게 의료법을 손질했다. 정신만 차렸을 뿐 실제 행동은 한참 뒤인 90년대 중반에 들어간다. 의협의 자체고발 선언(95년), 복지부의 의사면허 취소 발표(96년), 검찰의 첫 의사 구속(96년) 등 강력한 제재 기류가 일어난다.

 하지만 어찌하랴. 96년 성비는 이미 111을 기록, 급격히 떨어지는 추세였다. 아들 선호 사상이 퇴장하는 시점에서 ‘강력한’ 뒷북 정책이 출현한 것이다. ‘남아 출산 최저’와 ‘총각 과잉 최고’가 같은 시대에 출현한 까닭은 바로 인구·기술의 동향을 무시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은 탓이었다.

사회변화를 촉발하는 근원적인 요인을 미래 동인(動因)이라고 부른다. KAIST 미래전략대학원은 7가지 동인을 ‘STEPPER’라는 영문이니셜로 제시한다. 사회·기술·환경·인구·정치·경제·자원을 뜻한다. 7가지 중에서도 미래 변화를 설명하는 데 항상 빠지지 않는 동인은 인구·기술(PT) 두 가지다. 지난 40년간 우리의 미래전략은 번번이 실패했다. 아니, 미래전략 자체가 없었다. 인구와 기술의 변화를 제때 읽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가 가라앉는 상황에서야 극약처방을 쓰는 잘못을 저질렀다.

앞선 나라의 경제·사회 체제를 빨리 베껴 발전하던 시절에는 미래전략의 실패는 용납될 수 있었다. 지금은 베낄 데가 거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스스로 미래의 변화요인을 찾아내 관리하지 않으면 미래의 기습을 받게 된다. 누가 인구변화와 신(新) 기술의 영향력을 가늠하고 대책을 세울 건가. 국가든, 기업이든, 단체든 그런 사람이 미래의 리더이어야 한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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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5:57

어느 날 문득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세상이 이렇게 변했나” 새삼 깨닫게 되는 때가 있는데, 내겐 중국인 관광객이 그랬다. 어느 틈에 이렇게 많아진 걸까. 굳이 중국을 가지 않아도 중국인이 한국인보다 많은 곳을 찾기 어렵지 않다. 중국 인파로 가득 찬 명동이며 중국어 안내문 천지가 된 백화점들은 이젠 얘깃거리도 안 된다.

휴일 아침 동네 산책길은 또 어떤가. 부암동에서 삼청동으로 향하는 청와대 정문 앞은 사진 찍는 중국인들로 막혀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다. “실례합니다” 대신 “두이부치(對不起)”로 인사말을 바꿔야 할 판이다. 어느새 내 삶에 들어온 중국인,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할 때란 생각이 든 것도 그래서였다. 문제는 그 중국인 관광객이 ‘어글리 & 리치’, 두 얼굴이란 점이다. 어글리는 떼어버리고 리치만 상대할 순 없을까. 하지만 어디 세상사가 입맛대로 다 되겠나.

‘어글리 중국인’과 살아가기는 결코 만만치 않다. 추한 중국인은 중국 정부에도 골칫거리다.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낙서를 하고, 뉴욕 월가 황소 동상에 올라타 사진을 찍고 돈 자랑하다 베트남에서 납치돼 나라 망신시킨 사례가 수도 없다. 급기야 중국 정부는 지난해 ‘문명여행지침서’를 만들었다. 외국 가면 줄 잘 서고, 돈 자랑 말고, 그 나라 문화와 질서에 잘 따르라는 내용이 주다. 그것도 모자라 외국의 문화재나 유적지에 낙서하면 최대 10일의 구류형을 받게 되는 새 여행법도 통과시켰다.

한국만 깔봐서 그런 건 아닌 듯하니 그나마 위안이다. 하지만 추한 중국인이 한국에서 벌이는 작태는 목불인견이다. 한국여행업협회로 날아드는 공문 몇 장만 봐도 실태를 알 만하다. 지난달 경복궁관리사무소가 여행협회에 보낸 공문의 요지는 이렇다. ‘중국 관광객들의 쓰레기 무단 투기와 흡연, 경내 노상 방뇨가 도를 넘었다. 우리 민족의 격조를 상징하는 제1의 법궁에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여행사가 주의시켜 달라.’

이화여대의 공문은 점입가경이다. 추한 중국인들이 수업시간에 불쑥 들어와 아무나 사진을 찍고, 교실에서 담배를 피워대기 일쑤니 주의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화가 ‘돈을 벌다(利發)’란 중국어 발음과 비슷한 데다 학교 정문에서 사진을 찍으면 부자가 되거나 딸이 시집을 잘 간다고 중국에서 소문나 관광명소가 된 지 몇 해. 이대 관계자는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추한 중국인 몸살에 앓아누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문을 닫아 걸고 외면할 수도 없다. 중국인을 겨냥한 관광산업은 미래의 먹거리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은 매년 25%씩 늘고 있다. 올해엔 500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덕분에 생겨난 일자리가 24만 개, 47개 국내 대기업이 지난해 새로 만들어낸 일자리의 4배다. 지난주 정부가 내놓은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이 실행되면 중국 관광객은 더 늘어날 것이다. 덩달아 추한 중국인도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중국인은 무슨 일이든 떼로 행동하는 데 익숙하다. 이때 상식이나 논리는 필요 없다. ‘소변이 건강에 좋다’면 금세 유행을 타는 식이다. 루쉰(魯迅)은 이를 중국인의 ‘벌떼 근성’이라고 불렀다. 이런 벌떼 근성이 추한 중국인과 결합하면 강도가 더 세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손가락질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는 어땠나. 먼저 반성해야 한다. 1994년 공보처는 ‘추한 한국인’ 사례집을 펴냈다. 조금 살게 된 한국이 특히 중국에서 갖은 추태를 부리던 시절이다. 문화재에 낙서하기, 줄 안 서기, 돈 자랑하기, 싹쓸이 쇼핑, 오만방자한 졸부행각, 중국에서의 추태를 낱낱이 고발했다. 20년 전 중국 땅에서 추한 한국인이 뿌린 씨가 시간과 공간을 돌아 지금 대한민국에서 악과(惡果)의 싹을 틔운 건 아닐까. ‘흉보면서 닮는다’는 말도 있잖은가.

지금은 어떤가. 20년 전 길거리에 카~악하고 가래침 뱉던 아저씨·아줌마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도를 달리는 무법 오토바이에 새치기·욕설과 난폭운전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남 욕할 때가 아니란 얘기다. 그러니 추한 중국인과 살아가기, 밋밋하겠지만 ‘우리부터 바꾸고 가르치기’가 답이다. 




중국인이 바꿔 놓은 한국은 서울 명동과 제주의 거리 풍경뿐만이 아니다. 구구한 설명 대신 숫자 몇 개를 보자. 진실은 늘 숫자 뒤에 숨어 있다지 않은가.

첫 번째 숫자는 54.7%다. 중국 자본이 올 들어 7월 말까지 사들인 한국 주식은 1조8900억원어치다. 외국인들이 사들인 주식의 54.7%다. 50은 과반수다. 50을 넘게 가지면 주도권을 쥐게 된다. 한국 기업의 주가는 중국 자본에 의해 움직인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실제 아모레퍼시픽(화장품)이나 리홈쿠첸(전기밥솥) 같이 중국인이 즐겨 찾는 물건을 만드는 회사 주가는 1년 새 두세 배 뛰었다.

어디 그뿐이랴. 요즘 한국의 인수합병 시장은 중국 자본의 독무대다. 중국 자본의 한국 투자는 올 상반기에만 9600억원, 6년 새 80배가 늘었다. 아가방·키이스트(연예기획사) 등 100억원 이상 투자도 9건이다. K투자자문사 K사장은 “한국 기업과 중국 자본을 연결해주는 비즈니스가 가장 큰 돈이 된 지 오래”라며 “중국 자본과의 친분 여부가 국내 금융업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숫자 5807억원, 중국인이 제주도에 소유한 땅의 공시지가를 합한 금액이다. 5년 전보다 넓이는 296배, 금액은 1452배 늘었다. 5억원 이상 휴양시설에 투자한 외국인에게 5년 후 영주권을 주는 부동산투자이민제가 2010년 도입된 후 일어난 일이다. 제주엔 요즘 몰려드는 중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은 지난여름 모처럼 제주도를 찾았다가 신라호텔을 가득 메운 중국 관광객을 보고 “여기가 중국이야, 한국이야” 하며 놀랐다고 한다. 급기야 ‘중국인 장기매매 조직이 상륙했다’ ‘자본으로 위장한 중국 마피아가 날뛴다’는 악성 괴담이 퍼질 정도였다. 이런 괴담은 대개 이유도 근거도 없이 반중국인·중국 자본 정서를 부추긴다.

세 번째 숫자 3.2%. 한국의 대중 수출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이미 변화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권이다. 세계 명품의 28%를 소비한다. 이런 중국에 우리는 주로 부품·소재·자본재를 팔아왔다. 중국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팔 수 있는 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올 들어 8월까지 우리 수출은 지난해보다 2% 넘게 늘었지만 중국에 대한 수출은 되레 4% 넘게 줄었다. 더는 중국 옆에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 적당한 기술과 제품만으로 중국에 팔아먹을 수 없게 됐다는 의미다.

네 번째 숫자 330만원. 중국인 한 사람이 지난해 해외여행에서 쓴 평균 금액이다. 10년 전(987달러)보다 세 배 넘게 늘었다. 늘어난 요우커(遊客)의 씀씀이는 한국의 관광수지 통계도 바꿔놓았다. 지난 7월 한국의 관광 수입은 16억1590만 달러(약 1조6500억원)였다. 역대 최고다. 7월엔 한국인의 해외 관광도 사상 최대(18억237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관광수지 적자 규모는 13년 만에 최저로 되레 줄었다. 중국 관광객 덕분이다. 요우커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의 42%를 차지했다. 일본의 3배다.

숫자들이 보여주는 중국은 두 얼굴이다. 어떤 숫자는 우리 경제에 독이고 어떤 숫자는 약이다. 여기까지는 과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중국인·중국 자본의 규모다. 많아지면 달라진다. 사용자가 많아지면 새로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뜨는 식이다. 중국인이, 중국 자본이 이 땅에 많아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최고 기업 순위가 바뀌고, 더 이상 중국 수출로 먹고살 수 없는 시절이 올 것이며, (지금 북한의 어린아이들이 그렇듯이) 중국인이 던져주는 사탕을 과거 미국인의 초콜릿처럼 아이들이 받아먹는 세상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기업인은 몇 년 전 중국 경제의 약진이 두렵다며 이런 말을 했다. “한·중의 5000년 역사상 우리 세대가 중국인들에게 발마사지를 받고 산 최초이자 마지막 세대가 될지 모른다.” 그의 불길한 예언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숫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요리하느냐에 따라.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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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53

가끔 만취하여 길가에 몸을 부려놓은 남자를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저 사람은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들 발길 채이는 곳에 몸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스릴을 즐긴다는 명목으로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 관계 사이를 오가며 정서적으로 고갈되고, 세상을 욕하고 타인을 비난하면서 생을 낭비하는 것, 남자들의 그런 행동을 볼 때도 생각한다.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

유년기에 엄마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아기는 안정된 정서를 가진 건강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대체로 엄마의 유난스러운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란다. 그렇기에 의문이 깊어진다. 왜 어떤 남자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좋은 것들을 외부에 있는 여자에게서 받아야 한다고 믿을까. 자기중심적 선택, 근거 없는 자신감을 자기 사랑과 구별하지 못하는 걸까. 그들이 받은 엄마의 사랑에 나쁜 것이 섞여 있었던 걸까.

사실 아들이 태어나면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엄마 본인이다. 우선 기본적인 임무를 수행했다는 홀가분함이 있다. 집안의 대를 이어주고, 남편의 불멸 욕망을 충족시켰으니 이제는 기를 펴도 된다고 느낀다. 또한 아들의 엄마로서 생존 근거를 얻었으며, 노년까지 유효한 보험이 생겼다고 믿는다. 의식 차원에서 아들은 엄마의 존재 증명이 되는 셈이다. 무의식 차원에서 아들은 여성들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페니스 엔비(envy)’를 보상받는 기회가 된다. 여성은 아들을 낳으면 “나도 드디어 페니스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어떤 엄마는 “아들 고추가 미학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치 금강초롱꽃 같더라”고 표현했다. 아들 탄생을 기뻐하는 엄마 마음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존에 유익한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다. 그러니 평생을 두고 아들이 받은 엄마 사랑에는 아들이 불편해하고 부담스러워 할 만한 요소가 충분히 들어 있었을 것이다.

고부간의 갈등은 아들을 놓고 엄마와 아내가 벌이는 사랑의 경쟁 행위이다. 아들을 존재 증명처럼 여기는 엄마는 성인이 된 아들을 떠나 보내지 못한다. 며느리는 기필코 남편의 사랑을 독점하고자 한다. 내가 읽은 모든 세계 문학, 외국 영화, 해외 사례들을 떠올려봐도 우리의 고부 갈등 같은 스토리를 본 기억이 없다. 정신분석적으로 그것은 오이디푸스적인 금기 영역의 이야기다. 이번 명절에도 어떤 남자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두 여자 사이에서 눈치 살피며,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할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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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47

국회는 마비되고 민심도 갈라졌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여론과 여야의 기존 합의안을 존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맞선다. 전대미문의 대참사에 온 국민이 함께 국상(國喪)을 치른 '순수의 시대'는 사라졌다.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의 공감대로 만난 유가족과 국민의 순정(純情)을 넘어 세월호 문제는 진흙탕 권력 투쟁으로 비화했다. 세월호특별법을 두고 보수·진보 진영은 다음 총·대선까지의 정치적 득실을 따지느라 바쁘다. '만사(萬事)의 정치화(政治化)'라는 우리의 고질병이 다시 도졌다.

그러나 서늘한 가을바람은 당쟁(黨爭)으로 타락한 '세월호 정치'를 준엄하게 꾸짖으며 모두 정신 차려서 '세월호 이후'를 준비하라고 경고한다. '세월호 이후'를 예비하는 자기 성찰의 최대 화두는 직업윤리 문제다. 세계 해운인의 수치로 지적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이를 특정 해운사의 횡포 앞에 무력했던 선박 노동자의 일탈로 좁히는 건 안이한 설명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던 정부와 공무원들의 행태도 직업윤리 부재라는 맥락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직업윤리의 척박함은 한국인의 행복도가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인 이유를 설명한다.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감정 인플레 현상이 휩쓰는 것도 한국인의 삶에서 마음의 중심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마음의 중심은 과거처럼 정신 수련이 아니라 성숙한 직업윤리에서 나온다. 현대인은 자기가 선택한 직업에서 열심히 일함으로써 돈도 벌고 공동체에 기여하며 자아실현을 꾀한다.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중심 잡힌 마음이 곧 직업윤리다.

우리 사회는 자연스럽게 직업윤리를 생성하는 '돈벌이-사회에 대한 기여-자기실현' 사이의 연결고리가 사회문화적 압력에 의해 단절되어 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서 남이 인정하는 직업에 연연한다. 인정받는 직업이란 돈을 많이 벌거나 권력이 있는 자리를 뜻한다. 물론 그것은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은 유별나다. 살인적인 입시 경쟁도 좋은 학벌이 좋은 직업으로 이어지고 좋은 직업이 성공한 인생으로 연결된다는 확신 때문이다.

겉은 민주 다원(多元) 사회지만 우리 사회의 내적 가치관은 매우 단원적(單元的)이며 봉건적이다. 무릇 인재라면 '출세'해야 하고, 출세의 종착점은 '벼슬'하는 데 있다고들 한다. 이런 인식이 일상화된 사회는 관(官)과 정치 영역의 이상 비대화가 불가피하다. 현대 정당정치로 포장한 한국 정치가 중세적 당쟁에 매몰되기 일쑤인 근본 배경이다. 극소수 직업이 사회적 인정을 독차지할 때 건강한 직업윤리 생성은 요원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는 아직 중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돈·권력·명예라는 희소 자원이 몇몇 직업으로 집중되는 한국적 메커니즘을 끊어내야 진정한 현대로의 진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깊은 실존적 통찰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답게 살 만한 수입이 어느 정도 확보되면 그다음 단계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일에 자족(自足)하는 것이다. 르상티망(강자와 승자에 대한 약자와 패자의 질투 서린 원망)이 유독 강한 한국 사회에서 안분지족(安分知足)보다 희귀한 것도 드물기 때문이다. '노동의 종말'이 현실로 닥쳐오는 사회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도 귀한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일에 대한 자족감이 현실에 대한 안주(安住)로 퇴행하지 않게끔 자계(自戒)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어떤 일에 자족하면서도 자계하게 되면 이윽고 그 일을 잘할 수 있게 된다. 자족하면서 자계함으로써 잘할 수 있게 된 일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행복감이다. 일 자체에 대한 몰입에서 오는 행복감은 자기 충족적이어서 세상의 인정과 돈의 보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족과 자계의 사이클이 만드는 뛰어남(arete·아레떼)은 모든 직업윤리의 핵심이다. 그 뛰어남에서 비롯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한국인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마음의 습관이다.

세월호특별법 논란으로 시끄러운 판국에 직업윤리는 한가한 얘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는 직업윤리야말로 오늘의 한국인에게 진정 중요한 덕목임을 웅변한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삶의 기쁨과 진실이 평범한 데 있다는 걸 함께 확인하게 되는 한가위가 다가온다. 이제는 우리도 '세월호 이후'를 준비해야만 한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04/2014090404639.html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45

1980년대 후반 이건희 삼성 회장이 현명관 호텔신라 전무에게 "호텔업(業)의 특성이 뭐냐"고 물었다. 현 전무가 "서비스업이 아니냐"고 대답하자 이 회장은 지나가는 말투로 "제대로 한번 보세요"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호텔이나 백화점을 단순한 서비스업을 넘어서 장치 산업이자 부동산업이라고 진단했다. 호텔이나 백화점이 주변 개발로 연결되는 만큼 부지 선정에 각별히 유의하고 먼 미래를 보고 사업을 하라는 뜻이었다.

이처럼 삼성은 고(故) 이병철 창업 회장 때부터 부동산 개발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삼성 초창기 서울 태평로 일대에 본사를 두고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를 국내 최대의 자연농원으로 개발한 것, 2000년대 들어서 고급 아파트의 상징인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서초 사옥을 잇달아 건립한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이건희 회장 말대로 삼성은 단순히 빌딩이나 아파트를 짓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삼성은 한전 부지에 대해서도 오래전부터 관심을 기울여 왔다. 현재 서초 사옥의 지대가 낮아 침수가 잦은 데다 너무 번잡한 지역이라서 전자 계열사들의 서울 사무소를 한전 부지로 이전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2009년 포스코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삼성동 한전 부지 일대를 복합 상업시설로 개발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2011년에는 삼성생명이 한전 부지 인근의 한국감정원 부지를 2328억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삼성이 이번 입찰처럼 국내외에서 누군가와 맞대결을 해서 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충격이 컸겠지만 길게 보면 삼성이 잃은 것보다는 얻는 게 더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삼성 독식론(獨食論)'처럼 삼성으로의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만약 삼성이 서초 사옥에 이어 테헤란로 반대편에 있는 한전 부지까지 차지했다면 승자 독식을 우려하는 정서를 해소하기 위해 향후 엄청난 사회적·정치적 비용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삼성은 부동산 개발을 놓고 재계의 파트너인 현대차그룹과 경쟁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다. 애플과 중국 저가(低價) 스마트폰의 공세에 대응하는 것이나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 같은 것은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다. 삼성에는 뛰어난 전문경영인이 많이 있고, 이런 비즈니스적 대응은 삼성 스스로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 즉 이건희 회장의 장기 부재(不在)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3세 경영 체제를 무리 없이 안착(安着)시키는 것은 삼성만의 힘으로는 안 된다. 정부와 여론은 물론이고 재계에서도 삼성을 후원해줘야 한다. 당장 연말까지만 해도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증시 상장이라는 숙원(宿願) 사업이 걸려 있다. 또 갈수록 커지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고 기업과 시장경제에 대한 부당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삼성은 사회적 리스크를 나눠서 질 우군(友軍)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삼성은 이번 한전 부지 낙찰 탈락으로 작은 것을 잃었을 뿐이다.


조형래 산업1부 차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19/2014091904247.html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44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주인공 햄릿의 독백(soliloquy)이다. 그런데 미국 코넬대와 콜로라도대 연구팀은 'To do or to have'라는 화두를 던졌다(bring up a conversation topic). 다양한 경험이냐, 물질적 소유(diverse experiences or material possessions)냐, 그것이 인생 행복에 문제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경제적 선택이 '웰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은다(join in the chorus). 경험적 구매(購買·experiential purchase)와 물질적 구매(material purchase) 중 돈을 주고 무언가를 '하는' 것이 물건을 사서 '갖는' 것보다 더 큰 행복감을 준다고 한다. 가령 같은 값이라면 고급 시계나 보석을 사느니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영화·음악회·스포츠 경기를 보러 다니는 것이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improve the quality of life) 얘기다.

[윤희영의 News English] To do or to have, that's the question


쌓이는 물질적 재화의 증가(the increase in our stocks of material goods)는 정신적·신체적 웰빙에 이렇다 할 도움이 거의 되지 않는다(produce virtually no measurable gains in our psychological or physical well-being). 더 큰 집, 더 멋진 차를 산다고 해서 행복도 그만큼 커지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도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consist in the abundance of possessions) 아니하니라'(누가복음 12장 15절)라고 했다.

물질주의적인 사람(materialistic person)은 주관적 행복감(subjective feeling of happiness)과 삶에 대한 만족도(level of satisfaction with life)가 낮은 경우가 많다. 우울증에 빠지기 쉽고(be prone to depression) 피해망상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be likely to be paranoid). 사회 비교에 취약한(be vulnerable to social comparisons) 탓이다. 남이 2억원을 받고 자신은 1억원을 받을 바에야 남은 2500만원 자신은 5000만원 받기를 원한다. 내가 얼마 버느냐가 아니라 남에 비해 얼마 더 받느냐에 집착, 행복할 틈이 없다.

이에 비해 인생 경험에 투자를 하는 사람은 그런 달갑지 않은 비교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경험이라는 독특한 속성 때문에(owing to the unique nature of experience) 견주어보거나 비교당할 대상이 없어 평온하다. 더 큰 집도 집, 더 멋진 차도 차, 그대로 낡아만 가지만, 경험은 시간이 갈수록, 쌓이면 쌓일수록 인생을 훨씬 풍요롭게 한다(make our life a lot richer).

경험은 물질적 소유물에 비해 사회적 가치가 더 높다(have more social value than material possessions). 사회적 관계가 다양해져 행복을 느낄 기회도 많아지고,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다 보면 사회적으로 더 환영받는(be more socially acceptable) 존재가 된다. 그런데 속에 든 건 없으면서 겉으로 가진 것들에 대해서만 떠들어대고 으스대는(bang on and boast about their possessions) 사람은…, 시쳇말로 '진상'이라는 소리 듣는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17/2014091704738.html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41



"우리회사 면접 기출문제집, 내가 돈 주고 사봤다
부회장인 나도 그런 대답 못해… 진실성으로 승부하라"

-남자는 평생 3번 운다고?
입사하면 하루에 3번 울걸요, 業에 꿈이 없으면 정말 힘들어요
1년에 500명 면접, 척 보면 알죠… 답안 외워오면 금방 들통납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치열하게 취업 준비를 하고 계신지, 제가 좀 압니다. '독취사', '취뽀' 이런 데 저도 들어가 보거든요. 거기서 우리 회사 면접 족보(기출문제) 자료까지 돈 주고 사봤지요. 와, 그런데 족보 모범답안 쓴 사람은 회사 경영자인 저보다도 우리 회사에 대해 더 잘 알던데요?"

김남구(51)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의 말에 학생들이 순간 박장대소했다. 귀를 의심한 듯 옆 자리 친구에게 "어딜 들어가 봤다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독취사는 '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 취뽀는 '취업 뽀개기'라는 이름의 인터넷 취업정보 사이트 준말.

재벌가(동원그룹) 출신이지만 증권사 지점 말단 대리부터 시작해 과장, 차장, 이사를 거쳐 20년 만에 금융그룹 부회장이 된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재벌가(동원그룹) 출신이지만 증권사 지점 말단 대리부터 시작해 과장, 차장, 이사를 거쳐 20년 만에 금융그룹 부회장이 된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그는 16일 고려대에서 취업 준비생들에게“입사하면 너무 힘들어서 세 번 울 준비를 하라. 직장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독한 조언을 했다. /한국투자증권 제공

16일 서울 고려대학교 4.18 기념관 대강당에 취업설명회를 들으러 온 200여명의 취업준비생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사이트다. 그런데 나의 당락을 결정지을 회사 최고경영자가, 그것도 그룹 오너가 이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 본다니, 학생들은 마치 커닝을 하다 들킨 것처럼 머쓱해했다.

고려대 경영대 83학번인 김 부회장은 이날 까마득한 학교 후배들을 상대로 취업설명회에 나섰다. 올해로 12년째, 대졸 신입사원 정기채용 시즌이 오면 늘 직접 나선다. 최근 1년 새 증권업계에서 3000명이 감원되는 등 고용 한파가 절정에 달하고 있지만, 한국투자는 올해도 60여명을 새로 뽑을 계획이다.

먼저 김 부회장은 치열한 경쟁 속에 간절히 취업을 원하는 후배들을 위로했다. "제가 여러분 학교 선배잖습니까. 저희 땐 경제성장률이 높아서 취업이 만만했습니다. 학교 정문 밖에 대기업들이 버스를 줄줄이 대놓아서, 아무 데나 올라타면 됐어요. 저도 두산 버스 타고 OB맥주 공장 가서 맥주 실컷 먹고 차비까지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땐 원서 내면 거의 다 합격했어요. 꿈 같은 시절이고, 다시는 안 오겠지요. 여러분은 얼마나 힘드십니까."

하지만 이내 독한 조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김 부회장은 강연을 들으러 온 취업준비생 또래인 대학 졸업반 때 북태평양 명태잡이 원양어선을 탔다.

부친인 김재철(79) 동원그룹 회장에게 자청해서 벌인 일이었다. 원양어선에서 5개월간 하루 18시간씩 중노동을 하면서, 재벌 아들에서 사회의 쓴맛을 아는 사회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김남구 부회장이 조언하는 취업준비생 5계명.

"죽는 것 말고는 이제 육상에서 겁날 게 없다"는 배짱도 키웠다. 그러고 나서 91년 한신증권(동원증권 전신) 명동지점 대리로 입사하면서 금융인의 길을 걷게 됐다. 2003년 동원금융지주 사장에 오른 후 2005년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해 지금의 한국투자금융그룹을 키웠다. 부친이 시작한 자기자본 70억원짜리였던 회사(한신증권)는 이제 3조원대 금융그룹이 됐다.

"제가 1년에 면접하는 사람만 500명쯤 됩니다. 면접을 하다 보면, 꼬리물기식 질문을 하게 되는데요, 그러다 보면 거짓말인지 아닌지, 얼마나 진실성이 있는 얘긴지 금방 압니다. 자소서·면접 족보 모범답안 보고 외워오면 들통나기 마련이죠. 저희가 면접할 때 뽑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꿈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요즘 보통 대학을 5년에서 길게는 8~9년 다니는 분들도 있는데, 대학 때 여러분 인생의 목표를 어떻게 정했는지, 그걸 이루기 위해 뭘 준비했는지 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 그것만 한 답안은 없거든요."

'스펙(SPEC·specification·학점, 토익점수 등 취업을 위한 이력)'에 매몰된 딱한 세태도 꼬집었다. "취업 사이트를 보면 '제 스펙이 이러이러한데 어디쯤 지원하면 될까요', 또는 '이 정도 스펙은 자소서(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쓰면 될까요' 묻는 질문들이 많아요. 이렇게 직장을 골라도 되는 걸까요?"

그는 좋은 직장 들어가고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게 누구에게나 꿈이지만,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그건 지옥일 뿐이라고 말했다.

"우리 회사 출근시간이 공식적으론 8시인데요, 임원들은 저한테 새벽 5시 58분에도 이메일을 보냅니다. 퇴근시간요? 그런 건 없습니다. 다들 밖에서 영업하거나 사무실에서 일하다 알아서 퇴근하죠. 이 생활이 1년 365일 되풀이됩니다. 이 업(業)이 싫고, 이 업에 꿈이 없으면 정말로 정말로 힘들 겁니다." 속담에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데, 아마 입사하자마자 세 번은 울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학생들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투자금융이라는 증권업계 최대 회사를 어떻게 키워왔는지를 설명하면서, 용기도 불어넣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린 재벌 일원도 아니고, 은행의 지원을 받는 금융회사도 아니지만, 우리 힘으로만 여기까지 왔어요. 금융업, 증권업이 위기라고들 하는데, 제 생각엔 지금이 단군 이래 최고의 호(好)시절이에요. 실질금리가 2%도 안 될 때, 사람들에게 어떻게 돈을 불려줄지를 고민하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무한 도전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어려운 일 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그 어려움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은 사람, 그게 저희가 원하는 인재이고, 지금 사회가 원하는 인재입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17/20140917048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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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40

치권에서 세월호 사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유경근 대변인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세월호 유족을 이끄는 실질적 리더로 유씨를 꼽고 있다. 유씨는 세월호 침몰로 쌍둥이 자매 중 둘째를 잃었다.

유씨는 정의당 당원이라고 한다. 정의당은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유시민·심상정·노회찬 의원 등이 2012년에 만든 정당이다. 그는 유시민 전 의원을 지지하는 팬 클럽 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가 유족 대변인으로 나서면서 그가 2013년 11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논란이 됐다. 유씨는 '바뀐애는 물러나야 한다'고 썼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을 그렇게 바꿔 부르며 "부정한 방법으로 (당선)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기에 훔친 거 내놓고 나가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304명 피해자 가족 중 한 사람이다. 가족을 잃은 참기 힘든 슬픔을 함께하는 유족들이라 해도 정치적 신념과 성향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실제 유족들은 참사 초기에 각 정당과 정치인들이 혹시라도 세월호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할 가능성을 가장 경계했다. 여당이라고 박대하거나 야당이라고 반기는 일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이들의 판단 기준은 하나였다. 어느 정치인, 어느 정당이 진심으로 자신들을 대하고 세월호 진상 규명 의지를 보여주느냐를 따졌을 뿐이다. 이 관문을 가장 성공적으로 통과한 인물이 새누리당 4선(選) 의원 출신으로 세월호 참사 직전에 해양수산부 장관을 맡은 이주영 장관이다.

이 장관은 지난 추석 연휴 내내 세월호 침몰 현장인 진도에 머물렀다. 이 장관은 요즘도 외부 일정을 마치면 무조건 진도로 향한다. 그러곤 유족들을 만나고 진도군청 사무실에 마련된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한다. 벌써 다섯 달이 넘게 이런 생활을 해 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난 8월 하순 이란·일본 출장에 맞춰 넉 달간 길게 자랐던 수염을 자른 정도다. 처음엔 이 장관의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던 유족들이 이제는 이 장관이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이 장관은 해양 관련 안전 대책을 다시 세우고 10명 남은 실종자 수색 및 구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진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세월호 사태의 본무대는 참사 발생 한 달 뒤부터 서울로 옮아왔다. 각종 시위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단체들이 대거 참여한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가 만들어진 것도 이 무렵이다. 이때부터 유족들의 국회 방문과 항의 농성이 시작됐다. 그런데도 이 정권의 누구도 팽목항의 이주영 장관처럼 서울로 올라온 유족들을 만나 이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당에선 유족들을 노숙자에 비유하는 등 상처를 주는 발언이 줄을 이었다.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6번이나 사과하고 정부 전체가 사고 수습에 매달렸던 노력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정권과 유족 단체가 대립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첫 한 달과 그 이후의 유족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18세 흑인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후 이 도시는 열흘 넘게 대규모 흑인 소요(騷擾)를 겪었다. 한밤중에는 약탈까지 횡행했다. 이 사태는 흑인인 에릭 홀더 법무장관이 현지에 투입되면서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흑인들이 자신들의 분노와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나타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반면 박근혜 정부에는 인종이 다른 것도 아니고 무장 폭력 시위를 벌이는 것도 아닌 세월호 유족들과 얼굴을 맞대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줄 사람도 마땅히 없었다.

정부·여당과 달리 유족들을 에워싼 단체들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유족 곁을 지켰다. 여당 관계자는 "유족의 마음을 얻는 데서 전문가 수준인 이들을 당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 단체들은 군 기지 건설이나 송전탑 문제 등 사회적 갈등 요인이 있는 현장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판판이 이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이주영 장관의 성공 사례는 재현(再現) 불가능한 예외적인 경우인가.

사실 세계에서 민족·인종·종교 같은 대형 갈등 유발 요인이 우리만큼 적은 나라는 드물다. 그런데도 어느 나라보다 더 큰 사회적 갈등 비용을 치르느라 스스로 손발을 묶어 놓고 있는 게 지금 우리 실정이다. 선진적인 갈등 관리 모델을 찾는 것이야말로 세월호 후속 대책의 핵심 내용이 돼야 한다.

며칠 전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국회를 찾아가 "새누리당이 강조하는 민생 법안은 서민에게만 세금 많이 내라는 것이고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며 의료비를 폭등시킬 우려가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변인 유씨가 주도했다. 야당 대변인이나 다를 게 없다.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일관한 정부·여당의 무능·무책임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두식 논설위원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16/2014091604338.html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38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일 미국의 공유경제(Sharing Economy) 전문가 2명을 만났다. 박 시장은 민선 2기 임기 동안 공유경제 정책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이들로부터 조언을 들었다.

공유경제는 자동차를 비롯해 집·주차장·옷·사무실·기술 등 유무형 재산을 인터넷을 통해 수요자와 공급자 간에 중개하는 신종 서비스 모델을 뜻한다. 숙박 공유에서는 에어비앤비(Airbnb)가 10조원 가치를, 교통 중개에서는 우버(Uber)가 18조원 가치를 인정받을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벤처 분야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공유경제는 미국 진보 진영에서 최고로 꼽는 혁신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들은 공유경제가 과잉생산, 불균형 배분 등 자본주의의 근본 약점을 '개인 대 개인 간 거래(peer to peer)' 시스템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박 시장은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공유경제의 철학과 가치를 일찌감치 꿰뚫고 구체적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지구촌 공유경제 진영으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다. 박 시장은 2012년 공유경제 촉진을 위한 조례를 만들어 공유경제 정책 기반을 체계적으로 조성했다. 아울러 공유경제의 일자리 창출 능력을 적극 활용하는 실용주의 리더십도 발휘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공유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서울시는 3년 만에 스타 도시로 부상했고, 박 시장도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 박 시장의 공유경제 드라이브가 암초를 만났다. 올 초부터 세계 주요 도시에서 '안티 공유경제' 움직임이 일면서 논란을 계속 낳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기존 호텔과 택시업계가 공유경제 벤처들의 불법성을 부각시키면서 규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집 공유 유행이 부동산 소유주의 배만 불리는 등 빈부 격차를 더 심화시키면서 풀뿌리 지지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공유경제의 또 다른 논란은 글로벌 공유기업이 각국 지역 공유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점이다. 에어비앤비의 경우 실리콘밸리의 막강한 자금을 바탕으로 전 세계 도시에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면서 지역 공유업체의 숨통을 죄고 있다. 일각에선 공유경제는 미국 실리콘밸리식 마케팅 수사에 불과하고 결국 극소수의 수퍼 리치만 탄생시키는 수단에 그칠 것이라고 비판한다.

박 시장은 4년 임기 동안 공유경제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내려면 당장 서울시내 택시업계와 우버의 충돌부터 새로운 프레임으로 해결해야 한다. 서울에서도 다른 도시에서처럼 택시업계가 우버 견제에 나섰고, 서울시의 교통 관련 직업 관료들은 우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자자, 비앤비히어로 등 서울에 뿌리를 둔 숙박 공유 벤처기업이 글로벌 공유기업의 공세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외국 업체의 배만 불리는 공유경제 정책으로 서울시민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중앙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공유경제 관련 난제들의 해결책을 함께 찾고 도움도 받아야 한다.

박원순 시장이 대립적 요소와 미래 지향적 요소가 얽혀 있는 공유경제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지 궁금하다.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11/2014091100651.html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33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얼마 전 <한겨레>에 “사생활 보호와 알 권리, 무엇이 우선일까요”라는 기사가 실렸다. 권리 간 충돌 문제를 다룬 내용이었다. 집회의 권리와 통행의 권리가 부딪친다면, 학생인권과 교권이 맞선다면, 죄수의 권리와 간수의 권리가 대립한다면, 노동자의 권리와 기업의 경영권이 갈등한다면 등등, 권리들끼리 싸우는 사례는 많다. 필자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동전을 모았더라면 지금쯤 돼지저금통이 하나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이슈다. 권리 간 충돌 문제는 인권에서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민감하고 골치 아픈 난제다.

권리간 충돌은 21세기 들어 커다란 쟁점이 되었다. 9·11 이후 핵심쟁점이 국가안보냐 개인 자유권이냐 하는 질문이었다. 일률적 잣대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이 문제를 해소할 기본원칙은 있다. ‘대다수 권리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 ‘권리들 간에 서열을 매길 수 없다’ ‘어떤 권리를 모두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등.

권리 간 충돌은 21세기 들어 전세계적으로도 커다란 쟁점이 되었다. 9·11 사태 이후 대테러 전쟁에서 논란이 되었던 핵심쟁점이 국가안보냐 개인 자유권이냐 하는 질문이었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으로 비롯된 논란 역시 비슷한 구도였다. 부부가 자녀를 가질 수 있는 재생산권과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우선시하는 공리주의적 요구가 대결했던 것이다. 프랑스 무슬림들의 히잡 착용 권리와 모든 공공교육 시설에서 종교적 상징물을 금지하는 정부의 입장 대립, 이 역시 권리 간 충돌 사례였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권리 간 충돌 문제에 관해선 확실한 정답이 없다가 정답이다. 사례별로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인권은 무조건 우선시되어야 할 절대적 규범이라고 배웠는데 어째서 이렇게 어중간한 답이 나온단 말인가.

우선 권리의 충돌에도 여러 유형이 있음을 지적해야 하겠다. 다른 종류의 권리들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대중의 알 권리와 공인의 사생활 권리를 생각하면 된다. 동일한 권리의 행사방식과 한계설정을 놓고 갈등하는 경우도 있다. 표현의 자유가 소중하지만 일베들의 행태에 어떤 제한을 가해야 할지 고심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한 사람의 내면에서 서로 다른 권리들이 충돌하기도 한다. 내가 믿는 종교의 가르침과 시민으로서의 의식이 갈등하는 게 좋은 예다. 법적 권리와 사람들의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권리’라는 말에 여러 차원이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무 데나 ‘권’자를 붙인다고 해서 무조건 인권이 되는 건 아니다. 인권의 관점에서 보자면 제일 중요한 권리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인권규범에 부합하는 권리다. 국제 인권규범은 대개 국내법으로도 인정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인권은 아니지만 법적 효력을 지닌 권리도 있다. 그다음 단계로, 중요한 이익 또는 권익이 있을 수 있다. 이 역시 현실에서나 법정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 또한 법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어떤 집단에서 극히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의 문화적 영향력을 감안해 권리 비슷하게 인정해 주기도 한다.

특히 신앙이나 정체성,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권리는 정서적 인화성이 강해 민감한 충돌과 파열음을 일으키기 쉽다. 그렇다면 권리 간 갈등 문제를 해소할 방안이 있는가. 몇 가지 기본원칙이 있다. 첫째, 대다수 권리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 가장 오해가 많은 부분이다. 자연법 전통의 천부인권론이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끼치면서 인권은 신성불가침이고 절대적이라는 믿음이 정설처럼 자리잡았다. 권리 간 충돌의 근원을 따져 보면 이런 오해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하지만 남을 해치면서까지 내 권리를 주장할 순 없다. 표현의 자유가 아무리 중요해도 아동 음란물을 제작할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 아무리 확실한 권리라 하더라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일정한 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오늘날 인권이 대단히 매력적인 담론으로 떠오르면서 이런 초보적인 사실조차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스테판 에셀이 <분노하라>에서 명쾌하게 정의했던 유명한 구절을 기억해 보라. 세계인권선언에서 말하는 자유란 “닭장 속의 여우가 제멋대로 누리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다.”

둘째, 권리들 간에 서열을 매길 수 없다. 정책적으로 어떤 권리를 먼저 시행할 수는 있겠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인권의 가치가 중요하다. 권리들이 충돌할 때 어떤 권리를 배제할 것이 아니라 모든 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 최선이 어려우면 차선책이라도 모색해야 한다. 즉 인권에서도 균형과 타협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셋째, 어떤 것에 대한 청구권이 있다 하더라도 그 권리를 모두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했다 해서 다산콜센터의 상담사에게 모든 맛집 정보를 요구하거나 어떤 속옷을 입고 있느냐고 묻는 따위의 성희롱을 할 권리는 세상에 없다.

넷째, 권리들끼리 충돌할 때엔 각 권리의 범위를 정해야 하고 사안의 맥락을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구나 공개적으로 말할 자유가 있지만 어떤 맥락에서 그것이 표출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사람이 가득 찬 소방서에서 “극장이야”라고 소리치는 건 별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사람이 가득 찬 극장에서 “불이야”라고 소리칠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 전혀 다른 맥락의 행동이고,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회의 법적, 문화적 규범도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예컨대 ‘동방예의지국’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욕설을 퍼붓는 행위를 표현의 자유라는 식으로 옹호하기는 어렵다.

다섯째, 본질적 권리와 부차적 권리 사이의 무게를 달아 경중을 판단해야 한다. 이것을 핵심적 권리와 주변적 권리로 구분하기도 한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어떤 가치에다 ‘권’자를 붙여 절대적 권리로 내세울 때 제로섬 게임 같은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모든 ‘권리’의 무게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사안별로 권리들의 무게가 다르고, 같은 권리라 해도 경우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서구에서 간혹 인용되는 사례가 있다.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어떤 사람이 자기 정체성과 관련된 업무로 관공서를 찾았다. 공교롭게도 종교적 이유로 그런 정체성에 반대하는 공무원이 창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직원은 자신의 신앙 때문에 그 업무를 볼 수 없다고 하면서 다른 직원을 불러 주겠다고 했지만 차별적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 하지만 법원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업무 거부가 본질적 권리에 해당한다고 공무원의 손을 들어줬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었다. 특정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인쇄업자가 소수자 단체에서 요청한 책자 제작을 거부했다 제소당했다. 이번에는 법원이 인쇄업자의 행동을 차별이라고 판결했다. 종교적 신념 때문이라 해도 영업 거부는 주변적 권리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잊혀질 권리’ 논란과 같이 새로운 권리 충돌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정체되지 않고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권리 충돌이 발생할 때 되도록이면 약한 사람과 소수자의 눈높이에 인권의 눈금을 맞춘다는 원칙과 상식을 지켜야 한다. 이 점에서 법률가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이처럼 권리 간 충돌 문제는 일률적인 잣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원칙, 상식, 균형감각을 발휘해서 황금비를 찾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원칙인지, 어떤 상식인지를 면밀히 따질 필요는 있다. 인권의 원래 취지가 인간의 본질적 이익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적 다수결 원칙으로도 인권을 침해하진 못한다. 그렇다면 권리 충돌이 발생할 때 되도록이면 약한 사람과 소수자의 눈높이에 인권의 눈금을 맞춘다는 원칙과 상식을 지켜야 한다. 이 점에서 법률가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권리 간 충돌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문제다. 인권의 목록이 늘어나고, 신념과 이념에 근거하여 인권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의 불확실성 때문에 권리 간 충돌이 인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또한 권리들이 서로 충돌해 온 과정이 인권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인권이 발전한다는 말은 인간사회가 진보한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인간사회가 전진할 때 갈등과 긴장이 없을 수 없다. 권리 간 충돌은 인류 진보의 성장통인 셈이다. “권리들의 충돌은 사법부도, 입법부도 어떤 일관된 원칙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독특한 문제”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권리 충돌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정체되지 않고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잊혀질 권리’, ‘존엄하게 죽을 권리’ 혹은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과 같은 논란을 보라. 단시간에 인권 목록에 오르는 권리 요구도 있지만 오랜 논쟁을 거쳐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적지 않다. 권리 간 충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인권은 그 시대에 특유한 억압권력에 맞서는 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규정된다는 사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0780.html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30

지난달 말부터 서울 도심 곳곳의 교통을 막고 진행한 영화 '어벤져스 2'의 한국 촬영이 지난주 마무리됐다. 이 영화의 한국 홍보 효과를 둘러싼 여러 논란을 반복할 생각은 없지만 꼭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우리는 외국인이 제작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한국을 촬영지로 선택할지 여부와 그 속에 담을 내용을 거의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에 맡기고 있다. '어벤져스 2'만 해도 수십 분 분량을 찍었다는데, 실제 영화에서 무슨 장면을 얼마나 어떻게 보여줄지는 '그들 마음'이다. 우리는 그저 영화 제작을 지원하면서 '한국 알리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희망과 달리 이 영화가 작년 여름 국내 개봉한 '월드워 Z'처럼 한국을 그리면 어쩌나 싶다. '월드워 Z'는 한국을 좀비(zombie) 바이러스의 최초 유포지로 설정하고, 암흑 속 평택 미군 기지에서 죽은 괴물들이 날뛰는 장면만 몇 분 보여줬다. 한국이 나와서 반갑기는커녕 황당하고 불쾌했다.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 '도전 수퍼모델' 진행자로 유명한 타이라 뱅크스는 이달 초 서울시청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세빛둥둥섬 등을 배경으로 프로를 촬영하며 세계 180여 나라, 400만 시청자에게 "서울은 패션 도시"라고 선전해줬다. 기분 좋은 일이다. 우리 문화의 힘이 탄탄해진 데 따른 효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멋진 이벤트 역시 우리가 기획했다기보다 "서울이 궁금하다"며 제 발로 찾아와 준 뱅크스가 선사한 행운이다.

한국 홍보를 이런 우연에 기대지 말고 문단(文壇) 사례를 벤치마킹하면 어떨까 싶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중국의 모옌과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는 각종 작품과 기고를 통해 한국을 홍보해 왔다. 모옌은 장편 '개구리'에서 "아기 용품도 모두 준비했습니다. 하나같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한국산 아기 침대, 프랑스산 우유병…"이라고 썼다. 파무크는 터키 유력 신문 사바흐에 "나는 서울에서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휘황찬란한 건물들, 호텔 로비들과 서점을 보았다"고 격찬했다.

이런 결실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다. 파무크의 소설을 번역·소개해 온 터키 문학 전공자 이난아 박사는 '변방에서 중심으로'라는 책에서 파무크를 서울에서 열린 문학 행사에 초청했고, 귀국하는 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글을 터키 신문에 기고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개구리'가 한국 제품을 광고한 배경에도 대산문화재단·파라다이스문화재단 등이 한·중 작가 교류 행사를 열어 모옌을 여러 번 초청한 노력이 깔려 있다.

지난해 베네치아 광장과 트레비 분수, 리골레토와 토스카를 화면 가득 펼쳐놓는 영화 '로마 위드 러브'를 보며 세계인에게 '서울 위드 러브' '광주 위드 러브'를 보게 할 수 없나 생각했다. 그 영화를 만든 우디 앨런 같은 명감독을 초청해 한국의 매력을 설명하는 전략적 접근은 왜 하지 않는가. 외국인의 우연한 선택에 국가 이미지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어벤져스 2' 서울 촬영을 이 문제를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태훈 문화부차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24/20140424032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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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5:17

불과 몇십 년 전까지 뭐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나라. 기술도, 자원도 없어 머리카락이나 주워 모아 가발을 만들어 수출하던 나라. 외화 벌이를 위해 간호사·광부·군인들을 해외로 파견하던 나라. 대한민국 이야기다.

그러던 나라가 어느덧 세계인 절반이 사용하는 휴대폰을 만들고 반도체를 생산한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어낸 드라마를 보려고 듣지도 못한 먼 나라 국민이 저녁마다 TV에 시선을 집중한다. 참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우리 기업들이 만든 최신 제품들. 얼마 전부터 세계시장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나쁘지 않다고. 많이 노력한 게 보인다고. 하지만 뭔가 부족하고 실망스럽다고.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실망스럽다는 걸까? 바로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대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답 또는 질문이다. 배가 고프기에 사냥을 해야 하고, 발이 아프기에 튼튼한 신발이 필요하다. 최첨단 스마트폰은 더 빨라야 하고, 고급 TV는 지금보다 더 좋은 화질을 가져야 한다. 모두 이미 주어진 질문에 찾아야 하는 정답들이다. 전쟁, 배고픔,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렇게 험한 세상이 우리에게 던져준 수많은 문제의 정답을 찾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갑이고, 우리는 항상 을이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사실 간단하다. 우리의 미래는 세계인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질문들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왜 IT 기계들을 '입고'다녀야 할까? 왜 기계들에 인공지능을 주어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게 진정한 행복일까?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젊은이들이 밤새워 공부하는 순간. 드디어 우리나라, 우리 기업들, 우리나라 국민이 이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던진 문제에 답을 찾던 것이 지금까지의 경제라면, 우리가 던진 문제를 세상이 풀도록 하는 게 창조경제일 수도 있다.

김대식 카이스트 뇌과학 교수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23/2014042303247.html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15

'우리 기업인들의 기개(氣槪)가 지금처럼 위축되고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적이 있을까?' 요즘 고위 임원·CEO들을 만나 얘기를 나눌 때 수시로 드는 생각이다. 이들이 말하는 사정은 여럿이다. 국내에선 중앙·지방정부와 입법부가 기업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경제는 저(低)성장이 정상(正常)으로 불릴 만큼 동력을 잃었다. 웅진·STX그룹은 해체됐고, SK· CJ·동양그룹 오너는 수감됐거나 재판 중이다. 재계에서 "현상을 유지하며 내 한 몸만 보전해도 대성공"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거스르는 기업도 있다. 1980년 서울 신촌 이화여대 앞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1998~99년 부도 위기를 겪었던 이랜드그룹이 주인공이다. 성장세부터 다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 중이다. 지난해엔 매출 10조원 고지(高地)를 넘었고 영업이익은 1년 새 25% 정도 늘었다. 최근 5년간 국내외에서 20여개 업체·사업 부문을 인수·합병(M&A)하는 공격 경영도 주목된다. M&A 목록에는 세계 30여개국에서 판매되는 글로벌 브랜드인 K-SWISS와 코치넬리·만다리나덕 같은 유명 상표, 퍼시픽아일랜즈클럽(PIC·사이판), 계림(桂林)호텔(중국) 등이 올라 있다.

흥미롭게도 이랜드가 명품·레저·호텔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데는 '중국'이란 확실한 키워드가 있다. 글로벌 고가(高價) 브랜드를 직접 사들여 중국 시장을 더 깊고 더 넓게 파고든다는 '중생중사(中生中死·중국에서 살고 중국에서 죽는다) 전략'이다.

얘기가 여기까지라면 다른 기업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이랜드에는 '필살기(必殺技)'가 있다. 1999년 도입한 '지식 경영'이다. 매장 판매사원부터 최고위 임원까지 참여하는 지식 경영은 현장에서 모은 시장 자료·정보와 신사업 아이디어를 데이터베이스(DB)화해 활용하는 것이다. 매년 4000건 이상을 엄선해 이 중 5%는 '기업 비밀'로 특별 관리한다. 임원급 최고지식경영책임자(CKO)가 직접 챙기고 매년 두 차례 '지식 페스티벌'을 열어 특진(特進)·포상·발탁 등을 한다. 최종양 사장은 중국법인장이던 2012년 3개월간 중국 22개 도시의 81개 백화점 내 720여개 매장에서 현장 관리자 4414명과 면담한 내용을 지식 경영 인트라넷에 올렸다. 2003년 440억원 매출(매장 130개)을 올리던 이랜드중국이 지난해 매출 2조2000억원(매장 6200개)짜리 패션 강자(强者)로 도약한 비결이다.

물론 그룹 전체 차입금(借入金·연결 기준)이 4조원을 넘고, 부채비율이 390%(작년 6월 기준)에 이르는 재무구조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이랜드 측은 "현금 보유액이 충분해 문제없다"고 말하지만 과도한 금융비용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는 시샘 섞인 관측도 많다.

하지만 최소한 이랜드의 과감한 '도전'이 지금까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더욱이 한국 기업가들에게 사라져가는 야성(野性)과 용기(勇氣) 치밀한 전략, 이 세 덕목을 이랜드만큼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한국 기업은 드물다. 이랜드의 처지를 걱정하거나 조롱하기에 앞서 더 지독하게 벤치마킹해 이 회사를 능가하는 기업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그래야 한국도 산다.

송의달 산업1부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17/20140417033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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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5:14

'꿈의 무대'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남부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을 밟아 본 사람은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하게 관리된 잔디에 봄철 꽃이 울긋불긋 피어있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한다. 오죽하면 최경주가 "여기가 '골프 천국(天國)'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을까. 그리고 매년 1주일간 열리는 마스터스의 경제 효과가 1억달러(약 1036억원)에 이르며 오거스타는 '13월의 보너스'를 받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인구 20만 명의 오거스타시(市)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조지아주 주도(州都)인 애틀랜타를 비롯한 대도시로 떠나고, 이렇다 할 산업 기반이 없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고 미국 비즈니스 위크지가 최근 보도했다. 오거스타 지역의 연(年)평균 가구 수입은 3만4864달러로 조지아주 전체의 4만9604달러보다 30%가량 적고, 미국 평균 가구 수입 5만3000달러에 크게 못 미친다. 빈곤층 비율도 27%로 미국 전체 15%보다 훨씬 높다.

19세기 면화 산업의 중심지였던 오거스타는 쇠락의 길을 걸은 뒤 오랜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구는 20만명 선에 머무르고, 낙후한 도심 풍경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최고급 이미지와는 동떨어진다. 조지아 주립대학 경제예측센터는 "오거스타 경제는 조지아주에서도 좋지 않은 편이며 일자리가 늘고 있지 않다"고 보고했다. 데크 코펜하버 오거스타 시장은 "사람들이 우리 도시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같다고 생각하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1주일 동안에 오거스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착시(錯視) 현상을 갖기 쉽다.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미국 5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전용기를 몰고 오거스타를 찾기 때문에 마스터스는 '부자들의 사교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진입로인 워싱턴 로드는 정체 현상이 빚어지고 인근 레스토랑은 예약하기 힘들 정도로 특수를 누린다.

마스터스 대회의 나흘짜리 티켓이 1만2000달러까지 치솟기도 한다. 20만 명의 도시에 30만 명 가까운 방문객이 1주일 동안 몰리기 때문에 하루 20~30달러 하는 변두리 모텔도 이 기간에는 200~300달러를 호가한다. 대부분 파트타임 일자리이긴 해도 매년 4월 실업률이 다른 달에 비해 2% 안팎 떨어지기도 한다.

오거스타는 굵직한 보트 레이스 대회와 트라이애슬론 대회도 매년 주최한다. 마스터스 같은 메이저 스포츠 이벤트를 한곳에서 78차례나 여는 곳은 미국에서 오거스타가 유일하다.

하지만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도시를 전 세계에 알리고 일시적 경제 수익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 기반 없이는 지역 발전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오거스타는 여실히 보여준다. 오거스타는 경기 시설을 추가로 짓는 비용이 거의 없는데도 그렇다. 각종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할 때마다 수천억~수조원의 경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선전하면서 속으로는 골병이 드는 우리 지방자치단체들에 오거스타의 두 얼굴은 꼭 참고해야 할 사례다.

민학수 스포츠부차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16/20140416041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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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5:13

"내 삶은 두 가지가 불완전해
수도승처럼 못 살았고, 세상의 온갖 재미도 못 누려
결국 이렇게 학자로 살아"

"학생들이 시위할 때 '우리 하나가 되자'고 하는데
'하나'에서 벗어나면 안 되나? 집단적 열정은 위험할 수도"


김우창(77) 선생은 아반떼 승용차를 직접 몰고 왔다. 서울 평창동의 한 호텔에 들어서 후진(後進) 주차를 위해 앞뒤로 몇 차례 오갔다. 내린 뒤에 차는 대각선으로 세워져 있었다. 다시 올라타 주차를 시도했으나 좀 삐뚤었다.

이 사소한 현실 앞에서 '한국 인문학의 거인(巨人)'이 무력해지다니…. 그와 만난 것은 최근 '깊은 마음의 생태학'이라는 책이 출간됐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독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이 헤엄치고 있는 물결의 색깔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날 내가 좋아서 고른 어떤 옷을 입고 나갔는데 이미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스타일과 비슷하지 않던가. 붉은 물속에는 붉고 푸른 물속에는 푸르게 물드는 것처럼. 내 생각이라는 게 자기가 속한 시대와 체제에 자기도 모르게 맞춰가고 있다."

―자기가 생각해낸 것 같지만 그게 자기 생각이 아니라 외부에서 왔다는 뜻인가?

"그렇다. 집단 속에서 자기 본래의 마음으로 어떻게 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맹자에 나오는 '구방심(求放心·학문은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라는 구절이 맞는 것 같다."

―선생은 집단보다 개인의 깊은 생각, 반성적 사유에 더 관심을 보여왔다.

"우리 사회는 집단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있다. 학생들이 시위할 때 '우리 하나가 되자'고 한다. '하나'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것처럼 됐다. 물론 어떨 때는 그게 필요할지 모르나,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

김우창 선생은“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김우창 선생은“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김지호 객원기자


―집단의 열정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고 우리는 믿어왔는데.


"집단적 열정은 한쪽으로 쏠린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저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다른 의견에 대한 증오에 기초한 신념과 확신들이 좋은 사회를 만들기는 어렵다. 이런 신념이나 확신은 오히려 새로운 갈등과 폭력의 원인이 될 뿐이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진영 논리'에 갇히게 된 것 같다. 어떤 사안에 대해 반응할 때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먼저 묻는다.

"외국에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이슈를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먼저 편을 나눠버린다. 가령 '4대강 사업'은 치수(治水)를 위해 필요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진보 진영에서는 무조건 반대했다. 이를 어떻게 하느냐로 따져야 하는데, 아예 그 자체를 반대한 것이다."

―'토건사업'이라고 반대한 걸로 안다.

"그렇다면 세종시 정부청사 이전은 왜 반대하지 않나. 똑같이 '토건사업'인데, 세종시는 찬성하고 4대강은 반대하니 스스로 모순에 빠진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냐'인데, 이에 대한 논의는 없다. 선거 때면 '무엇을 하겠다' 공약이 쏟아지고, 이를 못 지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생의 말씀대로, 같은 식재료를 갖고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요리가 나오는 것이다.

"현 정권의 규제 개혁 이슈도 그렇다. 사실 규제 개혁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규제를 푸는 것이 대기업이나 기득권자에게 이로울 수도 있고, 서민에게 혜택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규제를 왜 푸느냐를 따져야지. 우리는 집단에 휩쓸려 복잡한 문제들을 따져보지 않고 미리 재단하는 경우가 많다."

―규제 개혁이 나온 김에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에 대해 말들이 있는데.

"소통은 여러 사람과 많이 얘기하는 것만이 아니다. 가령 박 대통령이 시장 개방과 규제 개혁을 내세울 때, '이것이 일자리 창출과 복지제도 강화를 위해 필요하지만 이런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하면 이미 소통이 되는 것이다. 소통에는 이런 합리적 사고가 더 중요하다."

―나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그렇게 안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 풍토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합리성이 있으면 대놓고 반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합리성이 통한다면 어떻게 해서 북한 체제를 추종하는 세력이 생길 수가 있을까?

"막스 베버(독일의 사회학자)는 '정치는 악마와의 협약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느 정치 체제도 정도의 차이일 뿐 강제력, 법에 근거한 폭력이 들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소위 '종북 세력'은 어떤 체제를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를 제어하는 것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와 충돌한다. 하지만 이를 허용하면 우리 내부 질서와 평화에 위협이 된다는 정책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최보식 선임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우창 선생(오른쪽).
―그런 이론은 북한의 3대 세습 독재하에서 고통받는 주민들의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있다.

"어느 정치 체제에도 폭력성이 존재하고, 다만 북한은 그 정도가 몹시 심하다는 것이다. 결코 북한을 옹호하는 얘기가 아니다."

―선생이 생각하는 좋은 사회는?

"개인의 성찰이 있는, 집단에 휩쓸리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사회다."

―'성찰(省察)'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생각을 합리성을 기반으로 비판적 반성을 하는 능력이다. 민주주의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 작동되는 것이다."

그는 이런 학자적 입장에서 흔들린 적이 없었다. 6년 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진보 진영 학자들은 "거리에서 새로운 민주정치의 활력을 발견한다"고들 했지만, 그만은 "그것은 민주주의의 활력이 아니라 그것이 바르게 기능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 등 인터넷의 발달로 즉각적인 반응과 집단적인 쏠림이 심화했다. 어떤 면에서 대중은 더욱 조작하기 쉬운 대상이 된 게 아닐까?

"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하려면 그 속에는 '정신적 자산'이 요구된다. 구성원들은 이성적이며 도덕적 기준을 갖고 있고, 그런 문화적 전통이 있어야 한다. 특히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지식인들의 존재도 필요하다."

―우리 시대의 명사나 지식인들은 튀는 언행으로 매스컴에 자주 노출되면 만들어지는 것처럼 됐다. 이들에게서 깊은 관점과 지식의 위엄은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우리 정신적 전통이 단절된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옛날에는 '수기(修己)'가 공부의 목표였다. 퇴계(이황)를 봐도 '심학(心學)'을 중시했다. 하지만 그 뒤 실학이 들어오면서 공리적인 것이 유일한 가치처럼 평가되고, 이런 정신적인 부분은 잊혀졌다."

―가치에 대해 얘기하면, 과거에도 그렇지만 지금은 돈이 아예 모든 가치를 지배한 것 같다.

"돈의 소유도 어느 한도가 넘으면 더 이상 행복을 주지 못한다. 재벌이라고 하루에 대여섯 끼 먹는 것도 아니고, 매일 호의호식하면 그 맛이 그 맛일 것이다. 명품을 갖는 것이 정말 절실하다면 돈을 모아서라도 사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이면 그건 자기 생각이 아닌 것이다. 가치에 대해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301억원을 받는 대기업 회장의 연봉이 공개됐을 때, 개인적으로 "나는 300년 동안 살아남아 계속 일하면 되겠구나"라며 웃었다.

"스위스에서 CEO의 연봉을 제한하는 투표를 한 적이 있었다. '저놈들은 저렇게 받는데 나는 왜 적냐' '그래도 자유 시장 체제를 제약해서 안 된다' 등을 놓고 다툰 것이다. 결국 부결됐다. 이는 스위스 사람들의 성숙한 의식을 보여준 것이라고 본다."

―왜 그걸 성숙한 의식이라고 보나?

"공산주의 체제는 당(黨)의 지침에 따라 움직이지만, 자유로운 사회는 누구 지시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삶에 대한 생각에서 이뤄진다. 구성원들에게 '네 마음대로 살아라'고 맡겨놓아도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가 지난 대선의 이슈가 됐듯이, 빈부의 불균형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가 아닐까?

"평등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당신만 왜 잘 먹고 사느냐. 나도 잘 먹고 살아보자'는 시기심과 관계 있다. 둘째는 불만이 누적될 경우 체제를 위협하는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럴 경우 체제 유지를 위해 타협한다. 셋째는 내 삶만큼 저 사람들의 삶도 중요하다는 도덕적 인식에서 평등이 생겨난다. 좋은 공동체에는 타협과 법·제도만이 아닌 이런 정신적 자산이 필요한 것이다."

―선생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지만, 거의 모든 인문학 영역을 섭렵하고 저술활동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깊이 하지 못했다."

―어떤 계기로 폭넓은 공부를 하게 됐나?

"초등학교 시절의 일부는 일본강점기 때 보냈고, 중학교 3학년 때는 6·25가 터졌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휴전이 됐고, 그 뒤로도 우리 사회는 격변의 세월이었다. 이 때문에 내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됐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내가 아는 것이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

―후배 학자들은 선생에 대해 "사상의 넓이와 깊이" "인간과 세계를 보는 최고 수준" "우리에게 길잡이가 되어준 통찰의 등대"라고 찬사를 하는데도.

"우주는 137억년 동안 진화해왔다. 우주의 시간에서 보면 내가 사는 삶은 1초도 안 된다. 방대한 우주의 시공간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허무감이 있지만…,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지식을 추구하면서 책을 써온 삶은 완벽하지 않은가?

"두 가지 면에서 불완전했다. 하나는 수도승처럼 좀 더 정신적인 삶을 못 살았다. 그런 삶이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또 하나는 세상의 온갖 재미를 누려보지 못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양립이 가능한가?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온 것이다."

삐뚤게 주차됐던 승용차를 몰고 그가 먼저 출발했다.


☞김우창 선생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미국 코넬대 대학원을 거쳐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로 박사학위. 고려대 영문과 교수, 이화여대 석좌교수 역임.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성적 사회를 향하여’ ‘성찰’ 등 20여권의 저서가 있다.



최보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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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06

뉴욕과 워싱턴DC를 자동차로 오가다 보면 델라웨어를 거치게 된다. 델라웨어주의 최대 도시 윌밍턴에 들러보자. 노스오렌지 거리(North Orange Street) 1209번지. 미국 기업들에 가장 유명한 주소다. 구글·애플·코카콜라·포드 같은 쟁쟁한 회사들이 이곳에 본사를 등록해두고 있다. 본사 주소를 1209번지로 쓰고 있는 기업은 28만곳이다. 2층짜리 반(半)지하 빌딩이 그 많은 회사의 공동 본적지(本籍地)다.

구글이나 애플은 이곳에 호적만 올려놓고 실제 사업은 실리콘밸리에서 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이 주소만 사용할 뿐이다. 윌밍턴 공무원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기업 고객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응대하기 위해 평일에도 밤 12시까지 근무한다.

원래 친(親)기업으로 유명했던 곳은 버지니아였다. 그러나 버지니아가 기업을 괴롭히는 법을 계속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서 이웃 델라웨어는 거꾸로 갔다. 법인세를 낮췄고 상표권이나 저작권 수익에는 면세 혜택을 주었다. 기업 입장을 두둔하는 조례도 많이 제정했다. 델라웨어 법원도 기업 쪽에 관대한 쪽으로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다.

그렇게 델라웨어에 몰려든 기업이 100만개다. 델라웨어 인구 92만명보다 많다. 100만 기업이 내는 세금으로 92만 주민이 먹고산다. 지자체들끼리 벌인 경쟁에서 델라웨어가 이긴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 공약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또 새 도로와 긴 다리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복지 공약도 단골 메뉴다. 공단을 더 넓히고 기업을 유치해 금방이라도 지역 경제가 활활 타오르게 마술을 부릴 것처럼 말하는 후보가 적지 않다. 경제 낙원(樂園)이 탄생할 듯하지만 무엇을 하겠다는 공약만 풍년이고 어떻게 그것을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우리나라는 농어업 국가에서 공업 국가로 변신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교육·의료·소프트웨어 같은 두뇌를 쓰는 분야에서는 별다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두뇌 국가로 탈바꿈해야 할 시기를 맞았지만 모두가 근육을 쓰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단계이다. 지방선거 공약에 눈에 보이는 건축물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피츠버그는 철강 도시였다. 유에스스틸(US Steel)의 본거지다. 그러나 지금 도시 한복판에 우뚝 솟아있는 64층짜리 유에스스틸 타워의 꼭대기 층부터 가장 많은 층을 점거한 기업은 피츠버그대학 메디컬센터(UPMC)다. 폐·심장 이식 수술로 유명한 의료법인이다. 피츠버그대 의료센터는 병원을 22개나 경영하며 6만2000여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피츠버그시에서 최대 기업인 셈이다.

피츠버그는 미국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한때 '녹슨 도시'로 통했다. 그러나 지금은 의료 산업의 중심지로 변신했다. 거기에 로봇·바이오 산업을 보태고 있다. 피츠버그가 두뇌 도시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던 곳은 피츠버그대학과 카네기멜론대학이다. 역대 시장들이 두 대학에 연구비를 집중 지원해 도시의 검붉은 녹물을 씻어내고 그 자리에 병원과 로봇을 앉힌 것이다.

우리 지방자치도 20년을 넘었다. 12년씩 장기 재임한 지자체장들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과거의 도시가 사라진 곳에 새로운 도시가 탄생했다는 인상을 주는 사례는 거의 없다. 모두들 중앙 정부에서 보조금을 더 타내다가 외형만 그럴싸한 공사판을 벌였다. 새 도로가 뚫리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도시의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도시를 먹여 살리는 콘텐츠는 변하지 않고 있다.

사실 공업의 시대에 번성했던 도시들은 다음 세대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를 맞았다. 울산, 거제, 창원, 구미 같은 도시는 모두 산업화의 산물(産物)이다. 우리 자동차·조선·전자산업의 경쟁력이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이들도 녹슨 도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농업의 시대에 호황을 누렸던 도시들은 공업화 물결을 타지 못한 채 여전히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지방선거 20년 만에 모처럼 이념 갈등도 줄었고 큰 정치 이슈도 없다. 맹탕 선거라는 말도 들린다. 그렇다고 한국의 산업혁명 시절에 번영했거나 낙오했던 도시들이 변신해야 하는 숙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델라웨어처럼 큰 공장은 없어도 기업 본사를 유치할 수도 있고 피츠버그처럼 도시의 주력 업종을 교체해 주민을 먹여 살리는 방법도 있다. 지역 개조(改造)를 놓고 다투는 선거판이 달아올라야 한다.


송희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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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10. 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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