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10. 15:41



"우리회사 면접 기출문제집, 내가 돈 주고 사봤다
부회장인 나도 그런 대답 못해… 진실성으로 승부하라"

-남자는 평생 3번 운다고?
입사하면 하루에 3번 울걸요, 業에 꿈이 없으면 정말 힘들어요
1년에 500명 면접, 척 보면 알죠… 답안 외워오면 금방 들통납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치열하게 취업 준비를 하고 계신지, 제가 좀 압니다. '독취사', '취뽀' 이런 데 저도 들어가 보거든요. 거기서 우리 회사 면접 족보(기출문제) 자료까지 돈 주고 사봤지요. 와, 그런데 족보 모범답안 쓴 사람은 회사 경영자인 저보다도 우리 회사에 대해 더 잘 알던데요?"

김남구(51)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의 말에 학생들이 순간 박장대소했다. 귀를 의심한 듯 옆 자리 친구에게 "어딜 들어가 봤다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독취사는 '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 취뽀는 '취업 뽀개기'라는 이름의 인터넷 취업정보 사이트 준말.

재벌가(동원그룹) 출신이지만 증권사 지점 말단 대리부터 시작해 과장, 차장, 이사를 거쳐 20년 만에 금융그룹 부회장이 된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재벌가(동원그룹) 출신이지만 증권사 지점 말단 대리부터 시작해 과장, 차장, 이사를 거쳐 20년 만에 금융그룹 부회장이 된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그는 16일 고려대에서 취업 준비생들에게“입사하면 너무 힘들어서 세 번 울 준비를 하라. 직장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독한 조언을 했다. /한국투자증권 제공

16일 서울 고려대학교 4.18 기념관 대강당에 취업설명회를 들으러 온 200여명의 취업준비생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사이트다. 그런데 나의 당락을 결정지을 회사 최고경영자가, 그것도 그룹 오너가 이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 본다니, 학생들은 마치 커닝을 하다 들킨 것처럼 머쓱해했다.

고려대 경영대 83학번인 김 부회장은 이날 까마득한 학교 후배들을 상대로 취업설명회에 나섰다. 올해로 12년째, 대졸 신입사원 정기채용 시즌이 오면 늘 직접 나선다. 최근 1년 새 증권업계에서 3000명이 감원되는 등 고용 한파가 절정에 달하고 있지만, 한국투자는 올해도 60여명을 새로 뽑을 계획이다.

먼저 김 부회장은 치열한 경쟁 속에 간절히 취업을 원하는 후배들을 위로했다. "제가 여러분 학교 선배잖습니까. 저희 땐 경제성장률이 높아서 취업이 만만했습니다. 학교 정문 밖에 대기업들이 버스를 줄줄이 대놓아서, 아무 데나 올라타면 됐어요. 저도 두산 버스 타고 OB맥주 공장 가서 맥주 실컷 먹고 차비까지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땐 원서 내면 거의 다 합격했어요. 꿈 같은 시절이고, 다시는 안 오겠지요. 여러분은 얼마나 힘드십니까."

하지만 이내 독한 조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김 부회장은 강연을 들으러 온 취업준비생 또래인 대학 졸업반 때 북태평양 명태잡이 원양어선을 탔다.

부친인 김재철(79) 동원그룹 회장에게 자청해서 벌인 일이었다. 원양어선에서 5개월간 하루 18시간씩 중노동을 하면서, 재벌 아들에서 사회의 쓴맛을 아는 사회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김남구 부회장이 조언하는 취업준비생 5계명.

"죽는 것 말고는 이제 육상에서 겁날 게 없다"는 배짱도 키웠다. 그러고 나서 91년 한신증권(동원증권 전신) 명동지점 대리로 입사하면서 금융인의 길을 걷게 됐다. 2003년 동원금융지주 사장에 오른 후 2005년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해 지금의 한국투자금융그룹을 키웠다. 부친이 시작한 자기자본 70억원짜리였던 회사(한신증권)는 이제 3조원대 금융그룹이 됐다.

"제가 1년에 면접하는 사람만 500명쯤 됩니다. 면접을 하다 보면, 꼬리물기식 질문을 하게 되는데요, 그러다 보면 거짓말인지 아닌지, 얼마나 진실성이 있는 얘긴지 금방 압니다. 자소서·면접 족보 모범답안 보고 외워오면 들통나기 마련이죠. 저희가 면접할 때 뽑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꿈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요즘 보통 대학을 5년에서 길게는 8~9년 다니는 분들도 있는데, 대학 때 여러분 인생의 목표를 어떻게 정했는지, 그걸 이루기 위해 뭘 준비했는지 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 그것만 한 답안은 없거든요."

'스펙(SPEC·specification·학점, 토익점수 등 취업을 위한 이력)'에 매몰된 딱한 세태도 꼬집었다. "취업 사이트를 보면 '제 스펙이 이러이러한데 어디쯤 지원하면 될까요', 또는 '이 정도 스펙은 자소서(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쓰면 될까요' 묻는 질문들이 많아요. 이렇게 직장을 골라도 되는 걸까요?"

그는 좋은 직장 들어가고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게 누구에게나 꿈이지만,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그건 지옥일 뿐이라고 말했다.

"우리 회사 출근시간이 공식적으론 8시인데요, 임원들은 저한테 새벽 5시 58분에도 이메일을 보냅니다. 퇴근시간요? 그런 건 없습니다. 다들 밖에서 영업하거나 사무실에서 일하다 알아서 퇴근하죠. 이 생활이 1년 365일 되풀이됩니다. 이 업(業)이 싫고, 이 업에 꿈이 없으면 정말로 정말로 힘들 겁니다." 속담에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데, 아마 입사하자마자 세 번은 울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학생들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투자금융이라는 증권업계 최대 회사를 어떻게 키워왔는지를 설명하면서, 용기도 불어넣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린 재벌 일원도 아니고, 은행의 지원을 받는 금융회사도 아니지만, 우리 힘으로만 여기까지 왔어요. 금융업, 증권업이 위기라고들 하는데, 제 생각엔 지금이 단군 이래 최고의 호(好)시절이에요. 실질금리가 2%도 안 될 때, 사람들에게 어떻게 돈을 불려줄지를 고민하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무한 도전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어려운 일 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그 어려움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은 사람, 그게 저희가 원하는 인재이고, 지금 사회가 원하는 인재입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17/20140917048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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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