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세상이 이렇게 변했나” 새삼 깨닫게 되는 때가 있는데, 내겐 중국인 관광객이 그랬다. 어느 틈에 이렇게 많아진 걸까. 굳이 중국을 가지 않아도 중국인이 한국인보다 많은 곳을 찾기 어렵지 않다. 중국 인파로 가득 찬 명동이며 중국어 안내문 천지가 된 백화점들은 이젠 얘깃거리도 안 된다.
휴일 아침 동네 산책길은 또 어떤가. 부암동에서 삼청동으로 향하는 청와대 정문 앞은 사진 찍는 중국인들로 막혀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다. “실례합니다” 대신 “두이부치(對不起)”로 인사말을 바꿔야 할 판이다. 어느새 내 삶에 들어온 중국인,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할 때란 생각이 든 것도 그래서였다. 문제는 그 중국인 관광객이 ‘어글리 & 리치’, 두 얼굴이란 점이다. 어글리는 떼어버리고 리치만 상대할 순 없을까. 하지만 어디 세상사가 입맛대로 다 되겠나.
‘어글리 중국인’과 살아가기는 결코 만만치 않다. 추한 중국인은 중국 정부에도 골칫거리다.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낙서를 하고, 뉴욕 월가 황소 동상에 올라타 사진을 찍고 돈 자랑하다 베트남에서 납치돼 나라 망신시킨 사례가 수도 없다. 급기야 중국 정부는 지난해 ‘문명여행지침서’를 만들었다. 외국 가면 줄 잘 서고, 돈 자랑 말고, 그 나라 문화와 질서에 잘 따르라는 내용이 주다. 그것도 모자라 외국의 문화재나 유적지에 낙서하면 최대 10일의 구류형을 받게 되는 새 여행법도 통과시켰다.
한국만 깔봐서 그런 건 아닌 듯하니 그나마 위안이다. 하지만 추한 중국인이 한국에서 벌이는 작태는 목불인견이다. 한국여행업협회로 날아드는 공문 몇 장만 봐도 실태를 알 만하다. 지난달 경복궁관리사무소가 여행협회에 보낸 공문의 요지는 이렇다. ‘중국 관광객들의 쓰레기 무단 투기와 흡연, 경내 노상 방뇨가 도를 넘었다. 우리 민족의 격조를 상징하는 제1의 법궁에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여행사가 주의시켜 달라.’
이화여대의 공문은 점입가경이다. 추한 중국인들이 수업시간에 불쑥 들어와 아무나 사진을 찍고, 교실에서 담배를 피워대기 일쑤니 주의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화가 ‘돈을 벌다(利發)’란 중국어 발음과 비슷한 데다 학교 정문에서 사진을 찍으면 부자가 되거나 딸이 시집을 잘 간다고 중국에서 소문나 관광명소가 된 지 몇 해. 이대 관계자는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추한 중국인 몸살에 앓아누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문을 닫아 걸고 외면할 수도 없다. 중국인을 겨냥한 관광산업은 미래의 먹거리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은 매년 25%씩 늘고 있다. 올해엔 500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덕분에 생겨난 일자리가 24만 개, 47개 국내 대기업이 지난해 새로 만들어낸 일자리의 4배다. 지난주 정부가 내놓은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이 실행되면 중국 관광객은 더 늘어날 것이다. 덩달아 추한 중국인도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중국인은 무슨 일이든 떼로 행동하는 데 익숙하다. 이때 상식이나 논리는 필요 없다. ‘소변이 건강에 좋다’면 금세 유행을 타는 식이다. 루쉰(魯迅)은 이를 중국인의 ‘벌떼 근성’이라고 불렀다. 이런 벌떼 근성이 추한 중국인과 결합하면 강도가 더 세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손가락질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는 어땠나. 먼저 반성해야 한다. 1994년 공보처는 ‘추한 한국인’ 사례집을 펴냈다. 조금 살게 된 한국이 특히 중국에서 갖은 추태를 부리던 시절이다. 문화재에 낙서하기, 줄 안 서기, 돈 자랑하기, 싹쓸이 쇼핑, 오만방자한 졸부행각, 중국에서의 추태를 낱낱이 고발했다. 20년 전 중국 땅에서 추한 한국인이 뿌린 씨가 시간과 공간을 돌아 지금 대한민국에서 악과(惡果)의 싹을 틔운 건 아닐까. ‘흉보면서 닮는다’는 말도 있잖은가.
지금은 어떤가. 20년 전 길거리에 카~악하고 가래침 뱉던 아저씨·아줌마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도를 달리는 무법 오토바이에 새치기·욕설과 난폭운전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남 욕할 때가 아니란 얘기다. 그러니 추한 중국인과 살아가기, 밋밋하겠지만 ‘우리부터 바꾸고 가르치기’가 답이다.
중국인이 바꿔 놓은 한국은 서울 명동과 제주의 거리 풍경뿐만이 아니다. 구구한 설명 대신 숫자 몇 개를 보자. 진실은 늘 숫자 뒤에 숨어 있다지 않은가.
첫 번째 숫자는 54.7%다. 중국 자본이 올 들어 7월 말까지 사들인 한국 주식은 1조8900억원어치다. 외국인들이 사들인 주식의 54.7%다. 50은 과반수다. 50을 넘게 가지면 주도권을 쥐게 된다. 한국 기업의 주가는 중국 자본에 의해 움직인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실제 아모레퍼시픽(화장품)이나 리홈쿠첸(전기밥솥) 같이 중국인이 즐겨 찾는 물건을 만드는 회사 주가는 1년 새 두세 배 뛰었다.
어디 그뿐이랴. 요즘 한국의 인수합병 시장은 중국 자본의 독무대다. 중국 자본의 한국 투자는 올 상반기에만 9600억원, 6년 새 80배가 늘었다. 아가방·키이스트(연예기획사) 등 100억원 이상 투자도 9건이다. K투자자문사 K사장은 “한국 기업과 중국 자본을 연결해주는 비즈니스가 가장 큰 돈이 된 지 오래”라며 “중국 자본과의 친분 여부가 국내 금융업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숫자 5807억원, 중국인이 제주도에 소유한 땅의 공시지가를 합한 금액이다. 5년 전보다 넓이는 296배, 금액은 1452배 늘었다. 5억원 이상 휴양시설에 투자한 외국인에게 5년 후 영주권을 주는 부동산투자이민제가 2010년 도입된 후 일어난 일이다. 제주엔 요즘 몰려드는 중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은 지난여름 모처럼 제주도를 찾았다가 신라호텔을 가득 메운 중국 관광객을 보고 “여기가 중국이야, 한국이야” 하며 놀랐다고 한다. 급기야 ‘중국인 장기매매 조직이 상륙했다’ ‘자본으로 위장한 중국 마피아가 날뛴다’는 악성 괴담이 퍼질 정도였다. 이런 괴담은 대개 이유도 근거도 없이 반중국인·중국 자본 정서를 부추긴다.
세 번째 숫자 3.2%. 한국의 대중 수출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이미 변화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권이다. 세계 명품의 28%를 소비한다. 이런 중국에 우리는 주로 부품·소재·자본재를 팔아왔다. 중국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팔 수 있는 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올 들어 8월까지 우리 수출은 지난해보다 2% 넘게 늘었지만 중국에 대한 수출은 되레 4% 넘게 줄었다. 더는 중국 옆에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 적당한 기술과 제품만으로 중국에 팔아먹을 수 없게 됐다는 의미다.
네 번째 숫자 330만원. 중국인 한 사람이 지난해 해외여행에서 쓴 평균 금액이다. 10년 전(987달러)보다 세 배 넘게 늘었다. 늘어난 요우커(遊客)의 씀씀이는 한국의 관광수지 통계도 바꿔놓았다. 지난 7월 한국의 관광 수입은 16억1590만 달러(약 1조6500억원)였다. 역대 최고다. 7월엔 한국인의 해외 관광도 사상 최대(18억237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관광수지 적자 규모는 13년 만에 최저로 되레 줄었다. 중국 관광객 덕분이다. 요우커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의 42%를 차지했다. 일본의 3배다.
숫자들이 보여주는 중국은 두 얼굴이다. 어떤 숫자는 우리 경제에 독이고 어떤 숫자는 약이다. 여기까지는 과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중국인·중국 자본의 규모다. 많아지면 달라진다. 사용자가 많아지면 새로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뜨는 식이다. 중국인이, 중국 자본이 이 땅에 많아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최고 기업 순위가 바뀌고, 더 이상 중국 수출로 먹고살 수 없는 시절이 올 것이며, (지금 북한의 어린아이들이 그렇듯이) 중국인이 던져주는 사탕을 과거 미국인의 초콜릿처럼 아이들이 받아먹는 세상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기업인은 몇 년 전 중국 경제의 약진이 두렵다며 이런 말을 했다. “한·중의 5000년 역사상 우리 세대가 중국인들에게 발마사지를 받고 산 최초이자 마지막 세대가 될지 모른다.” 그의 불길한 예언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숫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요리하느냐에 따라.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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