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때 중국 외교부가 한국 기자 7명을 자국으로 초청한 적이 있다. 베이징(北京)에서 국영 방송사인 중앙TV (CCTV) 녹화 현장과 외교부 브리핑 현장 등을 보여준 중국 측은 3일째 되는 날 한국 기자단을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고려사관유적지(高麗使館遺址)'였다. 고려사관은 12~13세기 남송(南宋)과 교류하던 고려 사신과 상인이 머물던 영빈관이었다. 고려인은 중국 측이 명주(明州·지금의 닝보)에 세워준 고려사관에서 외교 업무와 무역 거래를 했다. 긴 세월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고려사관은 2006년 닝보시에 의해 되살아났다.
중국 외교부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국 기자단을 베이징에서 1200㎞나 떨어진 남방 도시로 데려간 의도를 알 듯했다. 한·중 간 교류의 뿌리를 찾아 양국민 간 유대를 강화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이다. 양저우(揚州)의 최치원기념관이나 하얼빈의 안중근기념관도 같은 목적에서 세워졌다. 이런 기념관은 한국인 관광객을 중국 구석구석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이후 한·중 간 '인문 유대'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문 유대는 한 개인 혹은 한 국가가 살아온 궤적이나 삶의 철학, 살아가는 방식에 공감하고 신뢰할 때 비로소 형성된다. 즉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이 인문 유대를 강화하는 길이다. 중국이 자국 내 한·중 교류사의 발자취를 찾아 복원하는 것도 한국인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이다. 중국은 이를 통해 한국의 투자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쯤에서 한국은 과연 중국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닝보에 고려사관이 있었다면 호남 도서 지역에 송대의 '상관(商館)'이나 '객관(客館)' 같은 것이 있었을 법하다. 당시 중국의 상선이 봄과 여름 사이 계절풍을 타고 전남 흑산도나 가거도·진도 등지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역사책을 뒤지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포의 해양유물전시관을 제외하고 당시 한·중 간 교류의 흔적을 발굴해 복원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을 추천했지만 그중 중국인이 유대감을 느낄 만한 곳은 인천 차이나타운뿐이다. 상대의 마음을 얻는 전략에서 우리는 중국에 뒤진 것은 아닌가?
한국이 중국인의 마음을 얻는 데 노련하지 못하다는 점은 천편일률적인 관광 코스에서도 드러난다. 중국 인터넷에서 한국 여행 상품을 찾아보면 열 중 아홉은 서울·제주행 프로그램이다. 또 여행사는 달라도 여행 코스는 똑같다. 한 해 430만명의 중국인이 서울의 경복궁·청와대·청계천, 제주의 용두암·성산일출봉·섭지코지만 뱅뱅 돌다 돌아간다. 다른 지역의 관광 자원은 중국인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장금'에 이어 10년 만에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다. 이 열풍이 장기간 지속되도록 하려면 두 나라 국민을 잇는 역사와 철학의 교감을 넓혀야 한다. 호남·영남·경기·충청도는 중국인이 오지 않는다고 푸념만 할 게 아니라 지방 곳곳에 숨은 한·중 교류의 발자취를 발굴하고 복원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그것이 중국인의 마음을 얻고 관광 수입도 올리는 첫걸음이다.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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