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7. 11:04

태풍 하이옌이 강타한 필리핀의 피해 지역은 생존에 필수적인 식수마저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피해 주민들이 갈증을 참지 못해 오염된 물이라도 마시게 된다면 전염병은 더욱 창궐할 수 있다.

지난달 말 환경산업기술원은 필리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市)를 방문해 빗물을 활용해 깨끗한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받을 수 있는 설비를 제공했다. 민다나오섬은 필리핀에서 가장 빈곤한 20개 주(州) 중 14개 주가 위치한 대표적 빈민 지역이다. 우리가 방문한 다바오시 역시 식수가 부족하고 오염이 심각했다. 특히 수도요금이 t(톤)당 약 3200원대로 가난한 주민에게는 금값에 가까운 비용이었다. 이에 빈민 지역 주변의 아나윔 초등학교에 우리 기술원이 연구개발한 '저(低)전력 소규모 정수 처리 패키지 기술'을 적용한 설비를 제공했다. 다바오 지역은 다행히 강우량이 풍부해 빗물을 활용한 환경기술을 적용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을 통해 비싼 수도요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800여 지역민에게 매일 생활용수 10t, 식수 2t씩 공급할 수 있게 됐다.

개발도상국의 생존과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현지 정치, 문화, 환경을 고려해 개발하는 기술을 '적정환경기술(Appropriate Environmental Technology)'이라고 한다. 필리핀처럼 갑자기 태풍 피해를 본 나라는 적정환경기술이 더욱 절실하다.

'소외된 90%(other 90%)'라는 말이 있다. 전 세계에서 환경기술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적정환경기술이 이들 90%를 위해 쓰이기를 기대한다. 해외 원조를 받던 최빈국 대한민국이 이제는 환경기술을 개도국에 전파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90년대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환경기술 연구개발과 성과 확산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환경산업기술원의 설립 취지 중 하나도 한국의 환경기술을 통해 개도국의 삶의 질 향상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다. 새 정부 국정 과제인 '과학기술의 국제화'의 일환으로 개도국에 한국의 환경기술을 보급하는 시범 사업을 시작했고, 내년부터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9개국에 적정환경기술을 보급할 계획이다.

한류는 대중문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 분야에서도 신(新)한류 붐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윤승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0/20131220037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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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6. 14:11

독일은 전쟁 범죄를 계속 속죄하는데 일본은 왜 정반대의 길로 갈까. ‘속죄의 도시’ 베를린에서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이렇게 묻는 방문객들이 적지 않았다.

답답했다. 그래서 엉뚱한 공상도 해봤다. 만일 일본 도쿄 시내 국회의사당 앞이나 일왕의 거처 앞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소녀상’이 세워지고, 난징대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관이 설립된다면? 야스쿠니신사 같은 1급 전범이 묻혀 있는 시설에 참배하는 사람은 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된다면? 한반도와 중국, 동아시아 곳곳에서 학도병 노무자 위안부 등으로 끌려간 뒤 각종 학대와 인체실험 등으로 목숨을 잃었던 피해자들이 살았던 집 앞에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이 생긴다면?

일본이 그렇게 할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거의 제로다. 반면 독일은 주변국과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 프로그램을 행동으로 계속 보여주고 있다. 그 차이는 어디서 빚어지는 걸까.

독일은 정치 지도자부터 뼈아픈 반성으로 출발했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제2차 세계대전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선 57세 독일 정치인이 헌화 도중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는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양복바지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떨어지는 빗물에 젖어 들어갔다. 당시 나치의 범죄를 무릎 꿇고 사죄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나는 역사의 무게에 눌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세계 언론은 “그날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평가했다. 

2009년 9월 1일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독일 정상으로서는 두 번째로 무릎을 꿇었다. 이후로도 메르켈 총리는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다하우 강제수용소 등을 찾아 “나치 범죄의 책임은 영원하다”며 여러 차례 사과했다. 

독일은 끊임없는 사죄와 피해보상금 지급은 물론이고 영토 반환과 공통 역사교과서 편찬을 통해 주변국과 화해를 시도했다.

반면 일본은 홀로코스트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며 독일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전후처리 과정에서 주변국을 침략한 ‘가해자’ 의식보다는, 자신들이 태평양전쟁에서 원폭 피해를 본 ‘피해자’ 의식을 더욱 키워왔다. 독일 전범을 다룬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나치의 ‘반(反)인륜 범죄’가 단죄된 반면 일본의 도쿄 전범재판에서는 서방 연합국에 대한 전쟁 행위와 관련된 범죄만 재판에 넘겨졌을 뿐 식민지배 과거사, 세균전, 일본군 위안부 등 반인륜 범죄는 처벌 대상에서 빠졌다. 당시에는 연합국의 포고에 따른 조치라고 합리화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최근 진행되는 강제 노역자에 대한 보상 문제에서 독일과 일본은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독일은 전쟁 학살범죄 피해자들뿐 아니라 외국인 강제 노역자들에 대한 보상까지 하고 있다. 독일도 당초에는 국가가 주도한 홀로코스트 범죄에 대한 배상에는 적극적이었지만, 일반 기업과 관련된 외국인 강제노역에 대한 보상은 거부해왔다. 나치의 불법 행위란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이유나 세계관에서 비롯된 박해’에만 해당하며, 민간 기업에서의 강제노역은 ‘이미 국가 간 배상으로 마무리됐다’는 논리였다. 지금 일본이 내세우는 주장과 비슷했다. 

그랬던 독일 정부와 기업이 2000년부터 총 100억 마르크에 이르는 기금을 조성해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EVZ)을 설립해 외국인 강제노역 피해자 170만 명에게 보상을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6일 오후 베를린에 있는 EVZ 사무실을 찾아 마르틴 살름 이사장에게 재단 설립의 배경을 물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나치의 강제노동 피해자들이 임금을 받기 위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라 제기됐습니다. 소송 결과에 따라 천문학적인 배상액을 지불할 수도 있는 데다 수출에 주력하는 독일 기업들의 이미지가 크게 나빠질 수가 있었어요. 또한 피해자들이 고령이어서 독일 기업과 정부가 ‘자연 사망 해결 방법’에 기대는 것이 아니냐는 세계적 비난 여론에 휩싸였습니다.”

이런 압력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외국인 노동력을 활용했던 다임러크라이슬러-벤츠 지멘스 폴크스바겐 바이엘 등 대기업들이 모여 기금 마련을 논의했다. 결국 독일의 6000개 회사들이 50억 마르크, 독일 정부가 50억 마르크를 출연해 총 100억 마르크(약 8조3800억 원)의 기금을 마련해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2007년까지 폴란드 헝가리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동원했던 강제노동 피해자 166만 명에게 44억 유로(약 6조5843억 원)를 보상했다. 

전쟁 당시 독일군 아래에서 일한 외국인 강제노역자는 1200만∼1500만 명으로 추산됐다. 당시 독일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25%를 차지했다. 이들은 군수산업뿐 아니라 농업 숙박업 공공기관, 심지어 교회나 가정에서 일하기도 했다.

대기업들이 주로 출연했던 기금은 금방 바닥났다. 그러자 교회에서도 돈을 내고, 전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중소기업들도 독일 기업으로서 책임과 연대의식으로 뭉쳐 모금에 참여했다.

살름 이사장은 “유대인의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단체도 많고, 기관도 많기 때문에 많은 관심과 보상이 집중된 반면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등 한목소리를 내기 힘든 소외된 이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재단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일본 정부와 기업은 1965년 한일 수교협정을 근거로 모든 배상이 끝났다는 태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을 강제 징용했던 신일철주금(옛 일본제철)은 19일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4억 원을 배상하라는 서울고법의 판결에 대해 “어쩔 수 없다면 배상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본 정부와 우익 단체들은 ‘나쁜 선례’를 남길 것이라며 경계한다.

독일의 경우에도 국가 간 배상으로 개인 보상이 끝났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법을 좋아하는 나라도, 법률 규정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을 버렸다.

“유럽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독일이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라는 식의 독불장군처럼 더이상 살아갈 수는 없어요. 독일 입장에선 동유럽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싶은데 주변국의 압력을 무시할 수가 없는 거죠. 단기간에 금전적 손해를 보더라도 과거사 해결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인 해법을 찾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 됩니다.”(살름 이사장) 

일본이 1955∼1976년 아시아 각국에 지불한 배상 액수는 총 6200억 엔(약 7조1154억 원). 한일 양국은 1965년 체결된 수교협정에서 총 5억 달러(5592억 원·이 중 2억 달러는 유상지원)로 개인 및 국가 보상을 일괄 타결했다. 이를 근거로 일본 정부는 민간 차원의 개인보상권 소송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원칙만을 되풀이한다. 

반면 독일의 과거사 정리는 일본과 비교해 가히 경이롭다고 할 만하다. 전후 독일은 1953년부터 피해자보상법 몰수재산반환법 보상연금법 나치박해자보상법 등을 만들어 선제적인 대응책을 내놓았다. 독일이 만든 법에서 개인보상에 적용되는 피해자의 범주는 매우 다양했다. 인종학살의 희생자였던 유대인을 비롯해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제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안락사 프로그램’ 희생자, 강제불임 희생자, 생체실험 희생자, 전몰 군인, 상이용사, 군법재판소 희생자 등 국내외를 망라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독일이 나치 희생자에게 지불한 보상액은 약 1300억 마르크(약 80조 원)에 이른다. 보상금 지급방식은 일시불과 연금 형태로 나뉘었으며,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고 생활재건자금도 융자됐다.

독일은 패전 직후 영토를 반환했다. 독일 정부는 폴란드에 오데르나이세 동쪽 지역 영토 11만 km²를 떼어줬고, 1800년대부터 독일-프랑스 긴장의 진앙이었던 알자스로렌 지방은 완전히 프랑스의 손에 넘겼다. 독일은 나치에 동조한 전쟁 범죄자들을 단죄하는 데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있다. 현재 베를린 시 등 독일 전역에는 사이먼 비젠탈 센터의 나치전범 현상수배 캠페인 포스터가 2000장이나 붙어 있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3년간의 연구 끝에 공통 역사교과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독일과 일본이 이처럼 극명하게 다른 길을 걷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두 민족의 도덕성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사학자 모치다 유키오는 전후 두 나라가 겪은 점령체제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는다. 독일은 4개 연합국에 의해 분할 통치된 데 비해 일본은 미국의 단독 점령 아래 있었다. 연합국은 독일에 처음부터 경쟁적으로 전쟁 범죄를 철저히 추궁한 반면에 일본에서는 미국이 동서냉전 시기 일본을 우방으로 만들기 위해 일왕의 전쟁 책임과 식민지 지배 등에 대한 철저한 추궁을 피해갈 조건을 만들어주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테러의 지정학’ 전시관 총책임자 토머스 루츠 박사는 전후 경제성장 과정의 차이점을 지적했다. 그는 “독일은 전후 복구와 경제 부흥 과정에서 유럽 지역 내에서의 교역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끊임없는 사죄와 보상 노력이 필요했지만, 일본은 피해를 끼친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보다는 서방 강대국인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훨씬 중요시함으로써 주변국에 대한 배려가 소홀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국제사회와 전범 피해국의 압력의 차이도 주요한 요인이다. 유대인 연합회는 미국, 서방 연합국, 이스라엘 등을 내세워 과거청산에 대한 엄청난 압력을 행사해온 데 비해 한국 등 동아시아의 피해 국가들은 전후 한동안 냉전극복, 민주화, 경제성장 과제에 몰두하느라 제대로 된 과거청산 요구를 못했다. 

우베 노이베르거 나치 희생자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기자에게 “독일의 과거사 청산에서는 유대인 연합회를 비롯해 국제사회의 강력하고 끈질긴 압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며 “과거사 청산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주변국들의 압력과 지식인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정부, 일본 내 양심적인 지식인들에게 들려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베를린=전승훈 특파원


http://news.donga.com/3/all/20130824/571979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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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6. 14:09

"아직도 배고프다는 나라는 흔하지 않죠."

최근 만난 세계적 신용 평가 회사인 무디스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 경제의 강점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사모펀드 운영자 등 글로벌 전주(錢主)들을 만나며 그들의 속내를 듣는 사람이다.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한 해외의 칭찬이 잇따르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한층 강화된 위기관리 시스템' 같은 모범 답안은 2%쯤 부족한 듯했다.

그런데 그 답이 '아직도 배고픈 나라'였다. 우리가 아직 배고프다고? 이제 신흥국을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려는 나라인데? 이런 궁금증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랬다.

"국민소득 2만달러 넘는 나라 중에서 한국처럼 온 국민이 배고프다고 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물론 이런 점 때문에 부작용도 있겠지만, 이런 정신 때문에 한국은 발전할 여지가 크다고 외국인들은 본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남에게 신세 지는 것보다 스스로 뭔가 해보려는 정신이 살아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브릭스(BRICs) 나라 중에서 '배고프다'는 나라는 별로 없다. 동남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늘 배고파하라(stay hungry)'고 한 축사에 미국인들이 열광했다. 한국인들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은 늘 배고프고, 그게 당연하니까. 그런데 미국에서는 억만장자 입에서 나온 이 말이 엄청난 각성제였다."

그렇다. 가만히 보면 우리 사회엔 '아직도 배고프다'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기업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입에 달고 사는 것도 그렇고, 자식 교육에 목을 매는 일도 그렇다. 60세 넘어서도 일하고 싶다는 신(新)중년들이 그렇고, 제발 일자리만 만들어 달라는 청년들이 그렇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정치 지도자와 정책 당국자들은 아주 행복한 사람들이다. 일부 남미 국가나 남유럽 국가처럼 '배고프다'를 잊고 사는 나라에서는 어떤 정책도 '백약이 무효'이다.

얼마 전 사석에서 '한국적 평등 의식'이 우리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늘 일본을 우습게 보며 추격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왜 못할쏘냐' 하는 한국적 평등 의식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의식을 경제성장이란 목표에 접목했을 때 우리는 행복했고, 나라도 행복했다. 반면 이웃을 헐뜯고, 사회를 '빈부'로 갈라 세우는 데 접목하면 '평등 의식 망국론'이 나온다. '아직도 배고픈 우리'도 마찬가지다. 경쟁자를 잘 골라야 한다. 글로벌 경쟁자와 싸울지, 좁은 울타리 안에서 우리끼리 싸울지는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배고픈 원인을 따지고, 모든 문제를 배고픈 탓으로 돌리는 데 시간을 소비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우리의 성공 방정식은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유효한 것은 많다. 동시에 우리 사회는 배고프다는 사람을 '자산'으로 대접해야 할 것이다.



이인열 경제부 차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22/20130922670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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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27. 10:10

개성공단에서는 북한 근로자들에게 밥을 주지 않고 국만 제공한다. 사정을 잘 모르면 우리 기업들이 인색하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남북 협약 때 식사 제공 대신에 인건비를 올려 달라는 북의 요구 때문에 그렇게 됐다. 근로자들은 도시락과 찬거리를 싸온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쇠고기 돼지고기 북엇국을 3일 간격으로 번갈아 낸다. 북한 근로자들은 밥을 국물에 말아먹기 전에 고깃덩어리를 건져내 가족에게 갖다 주려고 도시락에 담는다. 북한 근로자들은 개성공단에 출근하기 시작한 지 석 달만 지나면 얼굴에 부옇게 기름기가 돈다. 

개성공단에서 간식으로 주는 초코파이는 북한 장마당의 주요 상품이 된 지 오래다. 개성공단에서 하루 풀리는 초코파이는 40만 개. 뜨뜻한 물에 초코파이를 풀어서 먹으면 어느 정도 허기를 달랠 수 있다. 유통기한이 6개월인 초코파이가 여러 경로를 거쳐 함경북도 장마당에서도 팔리고 있을 정도다.

북한은 북한 근로자의 임금을 통해 연간 약 9000만 달러를 거둬들이고 있다. 이 돈을 무역을 통해 벌자면 수십억 달러를 수출해야 할 판이다. 북한의 무역 규모나 국내총생산(GDP)에 비춰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돈이다. 북한은 “괴뢰역적들이 외화 수입의 원천이기 때문에 손을 대지 못한다느니 하며 우리 존엄까지 모독하고 나서고 있다”고 발끈했다. 한국 언론이 이 이야기를 어제오늘 쓰는 것도 아닌데 공연한 트집을 잡고 있다. 

2009년에는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리졸브에 반발해 입출경(入出境)을 다 닫는 일을 3차례나 반복했지만 이번에는 남에서 북으로 가는 인원만 막았다. 북한도 개성공단에 잔류한 남측 인원이 인질로 비치는 상황을 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지금은 벼랑 끝 전술을 펴고 있지만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근거 가운데 하나는 개성공단이 김정일의 유훈(遺訓)사업이라는 점이다. 김정일은 “개성공단에 인력이 모자라면 한두 개 사단을 해체해서라도 인력을 공급하겠다”고 남측 관계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공단에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가 받는 임금은 평균 150달러. 북한은 2009년 6월 남북 당국 간 회담에서 토지임대료를 5억 달러, 평균임금을 300달러, 현재 5%인 임금인상률 상한선을 10∼20%로 올려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 협박은 이러한 현금수입 증대를 노린 것이라고 보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 상황이 안정돼야 임금인상 협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만 일방적으로 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 입주 중소기업 123개사는 2조 원대에 이르는 매출 손실을 입는다. 개성공단의 한국 기업들은 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를 모두 남쪽에서 가져다 쓴다. 입주기업과 연계된 협력사만도 3000여 개에 이른다. 중국에서 한국 기업이 현지인 한 명을 채용하자면 30만 원가량 들지만 개성공단에서는 15만 원이다. 북한 근로자들은 말이 통하고 교육 수준이 높아서 불량률도 적다. 

개성공단은 북한 주민에게 시장경제의 학습장이다. 관광객들이 입산료를 내고 북한 주민과 일절 접촉이 없는 상태에서 경치만 둘러보고 돌아오는 금강산 관광과는 다르다. 개성공단 사무실에서 쓰는 복사지도 한국 것이다. 북의 교과서는 질이 떨어지는 신문용지다. 북한 당국도 이러한 사정을 뻔히 들여다보고 있으면서도 개성공단 가동을 허용했다. 

현재 개성시와 개풍군 주민 중에 일할 능력을 갖춘 사람은 모두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성공단이 인력을 늘리려면 더 먼 곳에서 인력을 데려올 수밖에 없어 한국이 기숙사를 지어줘야 한다. 지금도 공단 근로자 출퇴근 버스 278대를 모두 한국이 지원하고 있다. 현재의 전쟁 위협 분위기가 사라지고 나면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실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개성공단이다. 

유엔 제재 결의는 군사무기나 민군(民軍) 이중 용도의 첨단 제품은 물론이고 사치품의 북한 반입도 막고 있다.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이 파워 엘리트들의 충성심을 확보하는 선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치품이 직접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사치스러운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달러가 아쉬울 것이라는 점에서 사치품 반입 금지는 현명한 제재가 아닌 듯하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에 들어가는 달러는 김정은의 통치자금으로 쓰이고 군과 당의 최고 엘리트들에게도 분배되겠지만 북한 경제의 남한 의존도를 심화할 것이다. 

개성공단의 명맥이 바람 앞의 등불 같다. 북이 개성공단 폐쇄라는 마지막 카드를 아직 남겨두고 있어 일말의 기대가 남아 있긴 하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면 우리 쪽에서 개성공단을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다. 이것을 눈치 채고 북이 더 협박의 강도를 높여가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눈을 떠요’ 진행


http://news.donga.com/3/all/20130411/543505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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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22. 12:40

첫 한국인 아이비리그 총장 탄생, UC 총장·예일大 학장도 배출. 실력과 성과 위주, 다른 분야보다 소수민족 차별 덜한 곳이 바로 학계



지난 3월 2일, 美(미) 학계를 뒤흔든 일대 ‘사건’이 있었다. 아이비리그(미 동부지역 8개 명문대학교로, 브라운·컬럼비아·코넬·프린스턴·하버드·예일·다트머스·펜실베이니아를 뜻함) 중 하나인 다트머스大(대) 신임 총장으로 한국인 金墉(김용·미국명 Jim Yong Kim) 하버드대 의대 국제보건·사회의학과장이 임명된 것. 한국인으로서는 물론 아시아인 최초로 아이비리그 총장이 된 것이다. 

워낙 이례적인 일이라 ‘사고’도 뒤따랐다. 학내 동아리의 일부 학생이 김 총장 선출 다음날 재학생과 졸업생 1000여 명에게 ‘김 내정자가 학교를 아시아化(화)할 것이며, 다트머스는 미국이지 중국 식당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것. 다트머스대 화학과를 졸업한 한국인 양윤희(35)씨는 “다트머스는 아이비리그 중에서도 특별하다고 할 정도로 학생과 교직원 대부분이 백인 상류층인 곳”이라고 귀띔했다. 

이 사건은 이메일을 보낸 학생들의 공식 사과로 마무리됐지만, 어쨌든 노벨상(평화상 제외) 수상자 한 번 내지 못할 정도로 학계에서는 ‘邊邦(변방)’에 가까운 한국이 전 세계의 상아탑과도 같은 아이비리그의 총장을 배출했다는 것은 일대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국내외의 일부 학자들은 “김 신임 총장의 업적과 성과가 탁월했던 이유도 있지만, 미국 학계에서 한국인의 위상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방증”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 4년제 대학에 한국인 총장이 임명된 일이 있었을까. 지난 2007년 3월 姜城模(강성모·64) UC(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산타크루즈 공대 학장이 같은 UC 계열인 UC머시드 총장이 된 것이 최초다. 한국인이 미 명문대 학장에 임명된 사례도 있다. 高洪株(고홍주·55) 예일대 법대 교수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임기 5년의 법대 학장職(직)을 맡고 있으며, 故(고) 林吉鎭(임길진) 前(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미시간주립대 국제학장(1991~1995)을 역임했다.

이밖에도 한국인으로서 노벨상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는 물리학자 金必立(김필립·42) 컬럼비아대 교수, 30대에 하버드대 종신교수(테뉴어)가 된 朴弘根(박홍근·42) 교수, 세계 각국의 기업이 주목하는 ‘블루 오션’ 이론을 주창한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김위찬(58) 교수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인 학자들이 적지 않다. 
月刊朝鮮은 세계 유수의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고 연구성과를 내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거나, 아이비리그와 아이비플러스·퍼블릭아이비·빅10(박스기사 참조)과 주립대 등 미국의 이른바 ‘명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한국인을 조사,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취재했다.

 

▲ 미국 아이비리그(동부 명문대학) 최초의 아시아인 총장에 뽑힌 김용(미국명 Jim Yong Kim) 다트머스대 신임 총장. 그는“세상을 바꾸는 젊은이들을 키워내는 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블룸버그뉴스 제공

醫學 분야에서 두각

세계적인 한국인 학자는 의학과 기초과학·공학·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찾을 수 있었다. 특히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비롯해 의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 학자가 많다. 노벨의학상 한국인 수상자가 몇 년 내에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그 선두주자가 하버드대 鄭在雄(정재웅·45) 교수다. 

정 교수는 하버드 의대 미생물·분자유전학과 교수이며 하버드 의대 산하 뉴잉글랜드 영장류센터 암바이러스과 학과장이다. 서울대 농대 졸업 후 유학길에 올라 UC데이비스에서 대장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 의대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1994년 하버드 조교수로 임용됐고 2004년 테뉴어(Tenure: 종신교수)를 획득했다. 
하버드 의대는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지 못하면 종신교수직을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 교수의 연구 분야는 피부암의 원인 바이러스인 ‘카포시육종’ 연구. 카포시육종이 피부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1998년 세계 최초로 입증해냈다. 이 분야 논문 100여 편을 발표한 바 있는 정 교수는 박사급 포함 연구원 20여 명을 두고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의대 내에서 가장 큰 연구실을 맡고 있는 것. 

정 교수는 “미국의 교수는 스스로 연구비와 실험실 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만큼 부담이 크지만 그만큼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80세가 넘어도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하버드 의대 부학장으로 자리잡은 高京珠(고경주·57) 보건대학원 부학장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인 학자다. 고홍주 예일대 법대 학장의 형인 고 교수는 예일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다섯개의 전문의 자격(종양학·혈액학·피부학·내과·보건학)을 가지고 있어 미국에서도 몇 안되는 복수전문의로 유명하다. 현재 임상은 맡지 않고 공중보건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으며, 탁월한 연구업적으로 1999년에는 미국 암학회가 1년에 3명씩에 수여하는 ‘훌륭한 의사상’을 수상했다.

그는 1997~2003년 매사추세츠州(주)정부에서 보건부 장관을 지냈고, 빌 클린턴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암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미국 내에서 금연정책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2003년부터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부학장 겸 교수로 재직중이다. 고 교수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한 사람보다 잘 세운 보건정책 하나가 수백만 명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다”며 “질병예방 분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버드 의대에는 이들 외에도 김광수·김영범·윤석현·유승식 교수 등을 비롯해 한국인 교수가 3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金城完(김성완·69) 유타대 생체공학과 석좌교수도 인공심장과 유전자 치료 등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학자다. 미 국립보건원 자문위원으로 일했으며 미 학술원 정회원 및 미 공학학술원 종신회원으로 활약중인 학자다. 지난 1982년 유타대에서 세계 최초로 실시된 인공심장 개발 및 수술에 참여, 결정적인 공헌을 한 바 있으며, 최근 유전자치료 연구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미국 최고특허상(1980년), 유타대 최우수연구상(1987년), 미국 약학협회 데일우스터상(1998년) 등을 수상했다. 

김 교수의 명성에 주목한 한양대는 지난 2004년 그를 석좌교수로 전격 스카우트해 연구를 전폭 지원하고 유타대와 공동으로 약물전달 시스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신동문 에모리대 의대 종신교수


癌연구에서 한국인 두각

申東文(신동문·58) 에모리대 의대 종신교수는 癌(암)연구의 권위자다. 에모리 의대 암센터의 종양내과·이비인후과 종신교수인 신 교수는 2003년과 2005년, 2007년 ‘미국 최고의 의사(The best doctors of America)’로 선정됐다. 2007년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의 우수연구 특별프로그램 총괄책임자로 선정된 데 이어 2008년 에모리 의대 암센터의 특임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渡美(도미)한 그는 텍사스의대 MD앤더슨 암센터에서 특별연구원 및 교수로 15년간 재직했다. 2001년에는 피츠버그대의 두부경부암센터 소장으로 스카우트됐고, 2003년 에모리대에 부임했다. 신 교수는 “레지던트 시절에는 밤을 새워서 일하는 날이 흔했고, 암센터 연구원 시절에도 매일 18시간 이상 연구하며 수 년을 보냈다”며 “암은 자기절제와 통제로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인 만큼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 분야에 대한 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암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병원으로 평가되는 MD앤더슨센터(텍사스주 휴스턴 소재)에는 50여 명의 한국인 의사가 있는데, 이 중 1980년부터 활약중인 한국인 학자가 있다. 29년째 환자치료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金義信(김의신·67) 방사선·내과 교수다. 

김 교수는 1994년 미 핵의학회장을 지낸 핵의학 전문가다.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의 大家(대가)인 그는 1991년과 1994년 미국 최고의 의사로 선정됐다. 김 교수는 “한국에 유능한 의사들이 많은데도 한국인 환자들이 미국을 계속 찾는 이유는 한국에서 고급 치료와 서비스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의사가 1만5000여 명에 달하는 만큼 이들을 조직화해 네트워크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학계에 있지는 않지만 의학 분야에서 ‘대가’로 인정받아 민간기업으로 스카우트된 한국인이 金聖培(김성배·47, 피터 김) MSD(머크 연구소) R&D 총괄사장과 데니스 최(55) MSD 고문이다. 김성배 사장은 MIT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1997년 에이즈 바이러스의 인체 침투 메커니즘을 최초로 규명, 에이즈 백신 연구에 크게 공헌한 과학자다.


세계적 기업에서 앞다퉈 스카우트

다국적 제약회사인 머크는 세계 초일류 과학자들을 영입해 연구개발을 맡기는 것으로 유명한데, 2000년 그를 연구개발 총책임자로 영입했고, 2002년 연구소장에 임명했다. 코넬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 사장은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미국 화학회상, 미국 과학아카데미 분자생물학상 등을 수상했다. 

데니스 최 고문 역시 젊은 시절부터 촉망받는 과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하버드대에서 의학과 약리학 두 개 분야의 박사 학위를 동시에 취득했고, 이후 스탠퍼드대 교수 등을 지내며 칼슘 이온으로 인한 세포 사멸의 원리를 규명, 뇌졸중 등 뇌손상 치료제 개발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예일대 의대의 李春根(이춘근·46) 교수는 지금까지 60여 편의 연구 논문을 저명한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 교수는 한양대 의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미국 연수를 계기로 미국에 자리잡은 케이스다. 호흡기질환에 대한 동물 질병 모델을 만들어 病因(병인)을 연구하고 있다. 

“12년 전 渡美(도미) 당시에는 미국의 연구 여건이 한국에 비해 월등했고, 도전적이고 자유스러운 토론 및 연구분위기가 매력이었다”고 회고한 이 교수는 “최근 한국이 의학과 과학 분야에서 눈에 띄는 발전을 하고 있으며, 더 앞서 나갈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한국의 청년들이 세계 무대에 더 많은 도전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슐린 저항성(성인병의 원인) 예방 및 치료의 권위자인 崔哲洙(최철수·47) 前(전) 예일대 교수는 한림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3년 예일대 의대에서 마우스대사질환연구센터 참여를 권유받고 2008년까지 근무, 100여 종의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가천의과학대에 재직중이다. 최 교수는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근무해본 결과 한국의 의학연구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임상의학자들이 진료에만 얽매이지 않고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경우와 같이 임상과 기초연구를 병행한 의학자를 많이 받아들여서 연구를 촉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확장돼야 합니다. 그래야 이 같은 의료계의 무한경쟁 시기에 병원과 의대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기초과학 분야의 석학들

화학과 물리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도 적지 않다. 원로급으로는 金聖浩(김성호·72) 前(전) UC버클리 화학과 교수가 손꼽힌다. 1970년 전달RNA(리보핵산)의 3차원 구조를 밝혔고, 1988년 세포성장의 비밀을 풀어준 RAS(종양유전자) 단백질 구조를 세계 최초로 밝혀내는 등 단백질 구조 결정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손꼽히는 학자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MIT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 1972년 듀크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6년 후 UC버클리로 옮겨 UC버클리의 화학연구소인 멜빈캘빈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미 국립학술원은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1994년 한국인 최초로 회원에 선출했다. 김 교수는 로렌스 버클리국립연구소 소장을 지냈고 2004년부터는 연세대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다.  

강성모 UC머시드 총장도 과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 물망에 올랐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석학이다. 강 총장은 일리노이대의 전자·컴퓨터 공학과 교수와 학과장을 지냈고, 카이스트, 스위스 연방기술연구소, 독일 뮌헨대와 칼스루헤대, 미국 럿거스대 등에서 강의했다. 2001년부터 UC산타크루즈대 공과대학장을 지냈다. 강 총장은 전자·컴퓨터분야에서 현재 등록된 특허만 14건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같은 원로·총장급 외에 최근 ‘한국인 석학’으로 가장 주목받는 학자가 김필립 컬럼비아대 물리학과 교수와 박홍근 하버드대 화학·물리학과 교수다. 아직 40대 초반인 이들은 한국인으로서 노벨상을 탈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학자들로 손꼽히고 있다.
   
김 교수는 1999년 하버드대에서 응용물리학 박사가 됐으며, 현재 차세대 탄소나노 소자 분야의 세계적 선도자가 됐다. 지난 2005년 ‘그래핀’(graphen·탄소가 평면구조로 펼쳐진 물질로, 두께가 원자 한 개에 불과할 정도로 얇은 물질)을 반도체로 이용할 수 있다는 ‘양자홀 효과’를 입증하면서 단숨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래핀은 반도체에 사용되는 단결정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전자를 이동시킬 뿐 아니라, 구리보다 100배 많은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있어 기존 반도체 패러다임을 바꿀 차세대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박홍근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 수석 입학과 서울대 전체수석 졸업(4.3 만점에 4.22) 후 스탠퍼드대에서 4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99년 32세의 나이에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4년 만인 2003년에 부교수로, 다시 1년 만에 종신교수가 되면서 하버드대학 내에서도 초고속 승진으로 유명세를 탔다. 

단원자 트랜지스터 연구로 명성을 얻은 후 분자전자과학이란 새로운 과학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이미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로 꼽히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 내 연구진은 미국에서 이미 추진했던 큰 프로젝트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며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성공 가능성을 미리 따져 연구에 나서기보다는 일단 한번 해 본다는 마음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학이라면 수 년 내에 상품화할 수 있는 연구보다는 10년 이상 내다보는 연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벨상에 근접한 
40대 초반의 한국인들

김필립 교수와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 동기인 河澤潗(하택집·42) 일리노이대 물리학과 교수도 세계 생물물리학(생체 내 단일 분자들의 기능과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의 권위자다. 하 교수는 단일 분자 분광학 및 조작 연구로 사이언스, 네이처, 셀 등 세계 3대 과학저널에만 5편의 논문을 실은 것을 비롯, 총 7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2005년에는 10년간 5000만 달러를 지원하는 하워드 휴즈 프로그램 수상자로 뽑히기도 했다. 하 교수는 “최근 생물과 물리를 결합해 생명체의 신비를 규명하고 난치병 치료에 도전하는 학문인 생물물리가 미국 학계에서 관심받는 분야 중 하나”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생물물리 같은 융합과학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과학자들간 협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도 이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연구자들도 개방적으로 힘을 모을 필요가 있어요.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도 필요하고요.”  

承現峻(승현준·43) MIT 물리학과 교수는 24세에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루슨트테크놀로지 연구원을 거쳐 MIT로 옮겼다. 승 교수의 연구분야는 이른바 ‘계산신경과학’. 뇌를 컴퓨터로 가정하고 연구하는 것으로, 뇌의 기능을 컴퓨터에서 재연하는 연구를 한다. 인공지능과 비슷할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 연구자는 컴퓨터로 뇌를 모방하려 하는 반면 계산신경과학자는 뇌를 먼저 연구하고 이해하려 한다는 게 다르다. 승 교수는 “뇌신경 연구를 통해 얻는 방대한 정보는 미래 뇌과학 연구의 기반이 될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연구를 통해 기억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고, 일반적인 사람들 개인 간의 차이와 그 이유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정신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법을 연구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咸敦熙(함돈희·36) 하버드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28세의 나이에 하버드 교수에 임용된, 주목받는 젊은 과학자다. 1992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뒤 자연대를 수석 졸업했고,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포스트닥(박사후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하버드대 교수로 곧바로 임용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박사 논문 ‘통합통신시스템의 잡음 프로세스’는 캘리포니아 공대 전자공학 분야 최우수 논문으로 뽑혔다. 한국인으로서는 역시 처음 있는 일이다.

金正彬(김정빈·62) UCLA 기계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NASA(미국 항공우주국) 연구원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 대학으로 스카우트된 케이스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渡美(도미), 브라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석사 취득 후 공학 분야에서 더 앞서 나가던 스탠퍼드대로 옮겨갔다. 스탠퍼드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NASA 연구원 연구팀장을 거쳐 1993년 UCLA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NASA에서 연구팀장으로 업적이 쌓이니까 여러 대학에서 초청을 하더라고요. NASA의 연구 분위기가 좋아서 계속 거절을 했는데, UCLA에서 석좌교수를 제안한 겁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46세)에 석좌교수로 임명돼서 나름 부담스럽긴 했지만, 마음껏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존스홉킨스대 재료공학과 劉承柱(유승주) 교수는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젊은 과학자상(Presidential Early Career Award for Scientists and Engineers)’을 수상했다. 이 상은 미국 과학의 미래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주어지는 상이다. 유 교수는 생물성 재료로 알려져 있는 콜라겐을 변형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해 현재 인체 내 질병과 관련된 콜라겐을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콜라겐을 이용해 인공 모세혈관을 만드는 연구도 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원을 거쳐 존스홉킨스대로 왔다. 

鄭相旭(정상욱·52) 럿거스대 물리학과 석좌교수는 연구실적으로 주목받는 학자다. 20여 년간 500편이 넘는 저명 학술지 논문을 발표해 SCI(Science Citation Index: 과학기술논문색인지수) 학술지의 피인용 지수가 1만8000회 이상으로 한국인 물리학자 중 가장 높으며, 2005년에는 이전 10년간 전 세계에서 13번째로 가장 많이 논문에 인용된 물리학자로 선정됐다. 

10만여 명의 연구원이 근무하는 AT&T벨 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던 정 교수는 최근 포스텍의 석학교수로 초빙됐다. 포스텍은 한국 출신들의 세계 석학들을 석학교수로 초빙해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

인문 사회분야에서도 활약


한국인 학자는 의학과 이공계 외에도 법학·정치학·경제학·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사회학자이자 한미관계 전문가는 申起旭(신기욱·47) 스탠퍼드대 교수가 먼저 손꼽힌다. 영어로 출간된 자신의 저서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를 최근 우리말로 번역함으로써 한국의 ‘종족 민족주의’에 비판적 화두를 던진 그는 1983년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평범한’ 사회학자였다. 

그런 그가 ‘특별한’ 사회학자로 거듭난 계기는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부터였다. 역사사회학적인 방법으로 한국 사회를 연구해 미국 사회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 

이후, 신 교수는 일제시대를 바라보는 방법으로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외에 ‘식민지 근대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세계적 학자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 한국학 전공자로는 처음으로 종신교수 자리를 얻은 신 교수는 현재 이 대학의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신 교수는 미국의 대표적인 북한문제 전문가이자 서울과 워싱턴의 정치인들과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다. 

韓鐘宇(한종우·47) 시러큐스대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 사회와 한국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연세대에서 학부를 마친 후 시러큐스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 교수는 2002년 시러큐스대와 북한 김책공대와의 역사적인 학술교류를 시작한 주역으로 정보통신 기술이 정치, 선거, 정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주로 해왔다. 뉴욕 유일의 한인 라디오방송인 라디오코리아에서 매주 미국 정계를 해부하는 고정 칼럼도 맡고 있다.

박지원의 저서를 탐독하는 ‘실용주의 사상가’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석좌교수는 전 세계의 CEO와 비즈니스맨들에겐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블루오션’(경쟁자가 없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시장) 이론을 만들어냈다. 

김 교수의 저서 <블루오션 전략>은 32개 언어로 182개국에서 번역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출판 사상 최다 판매기록을 갖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은 영토는 좁고 인구는 많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경쟁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며 “한국의 미래 번영을 위해서는 국가와 기업, 개인 모두가 경쟁의식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블루오션 전략은 내수시장에서 한계를 가진 한국에 꼭 필요한 전략입니다. 한국은 시장의 창조적 개발을 위해 블루오션 전략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죠.”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이후 동 대학 비즈니스스쿨 교수로 재직하다 1994년 프랑스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세계경제포럼 국제경영전략분야의 전문위원, 유럽연합(EU) 경제정책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향해 “외국인은 사회에 새로운 힘을 주는 동조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던 宋成實(송성실·63) 워싱턴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이 발언은 미국 내 유색인종, 이민자, 여성 등 사회 소외계층의 인권과 관련한 그녀의 활발한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비주류 소수민족에서 학계의 주류로

국내 한 은행에서 근무하다 도미, 펜실베이니아 州(주)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미국 사회에서 행동하는 학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국내에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1970년대에 이 학문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1970년대 미국에서는 정부의 사회복지 확장정책 덕에 사회복지가 주목받는 학문이었다”고 말했다. 

1989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으나 이 분야의 교수를 찾는 국내 대학은 없었다. 이때 워싱턴대의 교수직 제의를 받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에서 교수로 생활해 보니 저는 소수민족, 여성, 진보적 학풍 등 비주류의 조건을 두루 갖췄더라고요. 버텨내기 위해선 첩첩산중이었죠.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문화사회 연구기관을 적극적으로 구성하고 참여했습니다. 새로운 사회참여 이론과 평화운동에도 참여했고요.” 

송 교수는 수많은 노력과 경험을 통해 무력감과 소외감을 극복해낼 수 있었고, 다문화이론과 실천 연구 방면에서 미국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張洙淸(장수청·48) 퍼듀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12년간 금융계에 종사하다 도미, 조지워싱턴대에서 호텔경영학 석사학위와 퍼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캔자스 주립대를 거쳐 퍼듀대에서 강의를 시작한 이래 80여 편의 논문을 국제 저널에 발표했다. 최근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식의 세계화와 관련해 많은 강연에 초청을 받고 있으며 미국 내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장 교수는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우려도 많았다”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학업에 몰두한 결과 학생들의 강의평가도 좋았고 박사과정 중 발표한 논문 두 편이 국제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해 박사취득 후 바로 교수직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鄭宇燮(정우섭·41) 위스콘신 밀워키 대학 정보학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정보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현재 인간과 컴퓨터 사이 디지털 시청각미디어 인터페이스의 정보인식에 관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로는 黃慶汶(황경문)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가 손꼽힌다. 그는 1992년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지역연구로 석사학위, 1997년 아시아 언어와 문명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04년부터 이 학교의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USC 한국학 연구소의 소장이기도 한 그는 한국에서의 근대국가 기원과 개념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로 한국사를 세계에 쉽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우수논문상·신진학자상 등 섭렵

李在庚(이재경·42) 뉴욕주립대버펄로(SUNY Buffalo) 교육학과 교수는 2007년 미국 교육학회 신진학자장을 수상하고 지난해 스탠퍼드대 행동과학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선정된 교육학 전문가다. 공교육체제와 정책 설계 및 평가를 연구하고 있는 그는 연세대 교육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도미, 시카고대에서 교육학 박사를 취득한 후 바로 교수가 됐다. 

미국의 공교육을 체험하지도 않은 유학생이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주립대의 교수가 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미국의 공교육을 체험하지 못했다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자료조사와 연구, 현장방문에 매달렸다”며 “언어실력과 경험 등이 부족해 힘든 점도 많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교육학 전문가로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묻자 “미국의 고등교육은 전반적으로 우수하지만 대학의 질과 전공은 천차만별”이라며 “유학을 선택하기 전 확고한 목표와 계획을 세워야 하며, 성공하기 전에는 귀국은 물론 고국 방문도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나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현재 해외 학계에서 활동하고 있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석학의 범주에 드는 학자로 徐南杓(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전 MIT 교수), 愼昊範(신호범) 워싱턴주 상원의원(前 메릴랜드대 교수)이 있다. 서 총장은 MIT 대학원을 졸업하고 카네기멜런대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70년부터 2001년까지 MIT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MIT 석좌교수직도 맡고 있다. 고분자·금속 제조공정기술과 마모이론의 권위자다. 

신 의원은 워싱턴주립대에서 동양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하와이대와 메릴랜드대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워싱턴주 하원의원과 워싱턴주지사 고문을 거쳐 상원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인 학자 더 많이 나와야” 

학자들은 대부분 도미 초기 언어소통과 치열한 경쟁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김정빈 UCLA 교수는 “국내에서 공부를 할 여건이 안돼 유학을 떠났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1970년에는 국내 최고의 대학에도 공대 대학원 과정이 정립돼 있지 않았어요.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유학을 떠나는 분위기였죠. 세계 최고의 두뇌들과 겨뤄 보겠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 유수의 대학은 성적보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젊은이들에게 조언했다. “오바마는 컬럼비아와 하버드에서 리더십을 길렀습니다. 한국 역시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려면 일류대학들이 성적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한국 실정에 맞는 리더십을 길러줘야 할 것입니다.” 

장수청 퍼듀대 교수는 “미국에 있는 학교들의 한국 유학생 수는 중국 유학생의 수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반면 대학교수의 숫자는 중국인에 비해 훨씬 적다”며 “한국 유학생들도 더 정신무장을 하고 악착같이 노력한다면 중국·인도계보다 더 많은 학자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학자들이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소수민족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없었을까. 인터뷰에 응한 학자들은 대부분 “비교적 다른 분야에 비해 능력이 중요하고 차별이 덜한 곳이 학계”라며 “누구나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다면 모두들 인정하고 따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상욱 럿거스대 교수는 “권위있는 민간연구소에서 대학으로 스카우트돼서 오다 보니 차별보다는 오히려 대우를 받은 편”이라며 “학계의 경우 자국인이 아니라고 해서 차별한다면 학문적 성과를 놓치는 일임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차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연구소 재직 당시 중국인과 일본인 연구원들은 고위직에 있는 고국 출신의 고위직에 ‘줄’을 서고 그들로부터 고급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었지만 한국인으로서는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되새기며 “최근 주목받는 한국인 학자들이 많은데, 이들이 더 열심히 노력해 고위직에 많이 올라가면 한국인의 위상도 한결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철수 前(전) 예일대 의대 교수는 “물론 외국인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조금씩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할 실적이나 실력을 보여준다면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오히려 공동연구를 하자고 줄을 서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국내 우수한 박사들이 외국 또는 명문대로 가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해 급한 마음으로 지원하고 외국에서 별 성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남들이 하지 못하는 실험기법이나 다른 연구자들보다 훨씬 뛰어난 기법을 익혀서 해외로 간다면 빨리 인정을 받고 좋은 연구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在美(재미) 학자들이 대부분 고국을 그리워하고 한국이 발전하길 바라면서도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큰 물에서’ 활동하기 위한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미국 유수의 대학들에서 교수직 초빙을 받았던 아이비리그 출신의 한 국내 명문대 교수가 “사실 소수민족에 대한 이런저런 차별을 겪어본 유학파들은 고국에서 ‘대접 받으며’ 연구나 교수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기 때문. 이에 대한 답을 정상욱 교수가 제시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학자가 한국에 초빙되면 행정직(총장이나 연구소장, 학장 등)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구자들은 연구에 집중하고 싶어하죠. 이 점을 재미 학자들은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담만 아니라면 한국으로 돌아가 고국에 기여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아요.” 
김성호 전 UC버클리대 교수도 비슷한 요지의 말을 남겼다. 

“수준높은 연구가 이뤄지려면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데, 한국 학계의 보상은 행정적인 기여도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연구성과 중심으로 보상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미국의 명문대

미국의 명문대라면 흔히 ‘아이비리그’를 떠올린다. 하버드와 예일 등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매년 대학순위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미국에는 아이비리그 외에도 서부의 스탠퍼드나 UC버클리, 동부의 존스홉킨스 등 명문대가 즐비하다. 이런 아이비리그 외의 미국 명문대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아이비 플러스’와 ‘퍼블릭 아이비’, ‘빅10’ 등이 존재한다.

‘아이비 플러스’는 아이비리그 8개대학에 스탠퍼드와 MIT를 추가한 10개 대학을 의미하는데, 경우에 따라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과 듀크대(노스 캐롤라이나 더햄), 존스홉킨스대(메릴랜드주 볼티모어), 라이스대(텍사스주 휴스턴), 워싱턴대(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노스웨스턴대(일리노이주 에번스턴), 시카고대(일리노이주 시카고), 노트르담대(인디애나주 노트르담), 밴더빌트대(테네시주 내슈빌)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퍼블릭 아이비’는 UC(캘리포니아 주립대)산타크루즈의 입학사정관이었던 리처드 몰이 저서 ‘퍼블릭 아이비’에서 사용한 말로, ‘주립대 수준의 비용으로 아이비 리그에 필적하는 수준의 경험을 하는 학교들’을 의미한다. 퍼블릭 아이비는 윌리엄앤메리대(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 마이애미대(오하이오주 옥스퍼드), 캘리포니아주립대(캘리포니아주 10개 도시), 미시간주립대(미시간주 이스트랜싱),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 텍사스오스틴대(텍사스주 오스틴), 버몬트주립대(버몬트주 벌링턴), 버지니아주립대(버지니아주 피터스버그), 빙엄턴대(뉴욕주 빙엄턴), 인디애나대(인디애나주 블루밍턴), 오하이오주립대(오하이오주 콜럼버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펜실베이니아주 유니버시티파크), 럿거스대(뉴저지주 3개도시), 애리조나대(애리조나주 투손), 콜로라도대(콜로라도주 볼더), 코네티컷대(코네티컷주 스토어즈), 델라웨어대(델라웨어주 뉴어크), 플로리다대(플로리다주 게인즈빌), 조지아대(조지아주 아텐스), 일리노이대(일리노이주 어바나캠페인), 아이오와대(아이오와주 아이오와시티), 메릴랜드대(메릴랜드주 칼리지파크), 미네소타대(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워싱턴대, 위스콘신대(위스콘신주 메디슨) 등이다. 

각 주의 주립대는 대부분 명문대로 인정받는데, 특히 캘리포니아 주립대 UC(Univ. of California)의 10개 캠퍼스는 한국인에게 인기 높은 명문대. UC는 버클리·데이비스·어바인·로스앤젤레스·머시드·리버사이드·샌디에이고·샌프란시스코·산타크루즈·샌타바버라 10개 도시에 캠퍼스가 있다. 

‘빅10’은 미국 중부의 명문대학. 동부에 아이비리그와 명문 사학이 있고 서부에 스탠퍼드와 UC가 있다면 중부에서는 ‘빅10’이 명문교로 통한다. ‘퍼블릭 아이비’에 포함된 대학이 대부분이다. 인디애나대, 노스웨스턴대, 미시간주립대, 오하이오주립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퍼듀대(인디애나주 웨스트라파예트), 일리노이대, 아이오와대, 미시간대(미시간주 앤아버), 미네소타대, 위스콘신대가 포함된다.

한편 영국의 더타임스와 미국의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등 유력지는 매년 미국 대학 순위를 발표하고 있는데, 가장 최근 발표된 자료인 지난해 8월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의 ‘2009년 미국 대학교 순위’ 베스트 25는 표와 같다.



‘2009년 미국 대학교 순위’ 베스트25

 순위 대학명
 1 하버드 
 2 프린스턴 
 3 예일 
 4 MIT/스탠퍼드 
 6 펜실베이니아/캘리포니아 공대 
 8 컬럼비아/듀크/시카고 
 11 다트머스 
 12 노스웨스턴/워싱턴 
 14 코넬 
 15 존스홉킨스 
 16 브라운 
 17 라이스 
 18 에모리/노트르담/밴더빌트 
 21 UC버클리 
 22 카네기멜런
 23 조지타운/버지니아 
 25 UCLA


Posted by 겟업
2013. 11. 21. 23:33



2013년 읽은 스토리 중 가장 좋았다. 


미국 진짜 존경함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55&aid=0000266117



Posted by 겟업
2013. 10. 13. 22:43

실용과 개방이 이끈 적도의 기적, 아시아의 금융·물류 허브, 투명하고 깨끗한 정부…. 싱가포르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흠잡을 데 없는 그들의 효율이 부럽다 못해 얄미울 정도다.

그 싱가포르에서 지난주 반관반민 형태의 한국·싱가포르 포럼이 개최됐다. 양국 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의 대화 채널인 셈이다. 포럼 참석차 방문한 싱가포르의 도심엔 대형 크레인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건설경기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또 13일부터 열릴 자동차 경주대회 F1 그랑프리를 위해 도로변에 안전망을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휘청휘청하는 인도네시아·인도와는 달리 경제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포럼 당일인 8월 29일 현지 신문들의 1면 톱은 개각이었다. 장관이 된 이들의 사진과 프로필이 큼지막하게 실렸다. 현지 언론이 분석한 개각의 포인트는 세 가지. 벤치에 앉아 있던 선수들에게 뛸 기회를 줬고, 여성 각료 비중을 높였으며, 30~40대를 과감히 등용했다는 것이다. 그날 포럼 만찬장에서 옆에 앉은 추아타이컹 전 주한 싱가포르 대사는 “10년 뒤의 리더를 키우기 위한 훈련”이라고 분석했다.

싱가포르에선 인재를 숙성시키는 데 드는 시간을 그처럼 길게 잡는다. 정권 바뀔 때마다 물갈이다, 보복이다 하며 인사 파동을 겪는 우리와 달리 일관성 있는 인재 육성 프로그램이 돌아간다는 얘기다. 정치는 짧고 경제는 길다지만, 싱가포르에선 둘 다 길다. 리더십의 혼란으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없다. 도처에서 터져나오던 ‘점령하라’ 시리즈도 싱가포르에선 맥을 못 췄다. 다소 관헌(官憲)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국정관리가 뿌리내렸다. 이거야말로 싱가포르 번영의 비결 아닌가.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1980~90년대를 기억하는가. 정치인·공무원·학자에다 언론까지 한 수 배우겠다며 싱가포르로 달려갔다. 모두 똑같은 질문을 하고, 똑같은 답변을 듣고 왔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나도록 배운 게 뭔가. 깨끗하고 효율적인 정부? 감탄은 할 수 있을지언정 우리 풍토에 기대하기 쉽지 않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경제? 좋다면서도 이해관계에 얽혀 못 하고 있다. 선하고 지혜로운 장기 집권체제? 어림도 없는 얘기다. 싱가포르의 성공 비결은 이해할 수는 있어도 따라 하기는 어렵다는 게 문제다.

물론 싱가포르라고 왜 고민이 없겠나. 야당 지지율이 슬슬 높아지고, 지난해엔 26년 만에 파업도 일어났다. 지난 2월엔 독립 후 최초로 4000명 규모의 군중집회도 있었다. 얌전하던 택시 기사들도 심심찮게 난폭운전을 한다. 국민의 불만과 스트레스가 슬슬 표출되고 있는 분위기다.

포럼 다음날 박병석 국회 부의장 등 한국 측 참석자들을 관저에서 맞이한 고촉통 명예 선임장관(전 총리)은 그에 대해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했다. 싱가포르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싱가포르 정부는 국민 불만을 의식해 정치 개혁과 소통 강화를 약속했다. 그 가시적 조치로 고위 공직자들의 거액 연봉을 왕창 깎았다. 총리는 28% 삭감, 대통령·국회의장은 아예 반 토막을 냈다. 그런 노력들이 외국에 더 좋은 인상을 준 모양이다.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싱가포르 예찬론을 썼다. 정치가 제대로만 하면 성장과 평등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데, 싱가포르가 모범사례라는 내용이었다.

포럼을 마치고 귀국 비행기에서 집어 든 신문은 왠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종북세력은 총을 들자 하고, 야당은 길거리에 진을 치고, 귀족노조는 배부른 파업을 하고…. 싱가포르라면 전혀 겪지 않을 갈등들 아닌가. 포럼에 참석한 한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10년쯤 전엔 만만해 보이던 싱가포르가 지금은 따라잡기 어렵겠다 싶을 만큼 앞서 있다.” 짧은 일정 중 들었던 가장 아픈 말이었다.


남윤호 논설위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503263&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0. 13. 22:40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버스 영상이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영상 속의 버스는 세계 최초의 텃밭 버스 '피노키네틱'으로 버스의 지붕에 텃밭을 가꿔 채소를 재배하는 그야말로 기막힌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킨 버스다. 스페인에서 운행을 시작한 이 버스는 채소 재배는 물론 도시의 공기도 정화하고 탄소배출량 감소에도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차내 온도를 3.5도 낮추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잉여공간을 활용해 부족해져 가는 도심 속 녹지를 대신해 도시민들에게 녹음을 선사하고 있으니 환경을 위해서나 에너지 절감 측면에서도 두루 환영받을 만하다. 그네를 타면 빛과 음악이 흘러나오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그네 타는 버스 정류장'은 기다림의 상징인 버스 정류장의 지루한 이미지를 깨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고정관념을 깨고 세상의 빛을 본 이들은 창의적 아이디어, 발상의 전환이 어떻게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우리 삶을 편리하고 즐겁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단적이 예들이다.

한국사회도 그 어느 때보다 창의성에 주목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 경제, 사회, 산업 등 모든 분야의 화두가 된 창조경제는 기본적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를 구체화할 수 있는 가장 명료한 방향성은 융합에 있다. 버스와 텃밭, 그네와 정류장처럼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분야를 새로운 아이디어가 매개가 되어 융합하면 이처럼 새로운 시장과 가치를 창출하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는 이종 산업간 융합이 창조경제의 핵심 수단이라는 것에 누구도 반기를 들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 발전에 있어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중요성은 경제학의 창시자인 아담 스미스도 이미 오래 전에 언급한 바 있다. 그가 국부론을 통해 "한 나라의 진정한 부의 원천은 그 나라 국민들의 창의적 상상력에 있다"라고 한 것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통한 융합 신 시장 창출이 절실한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에 가장 적절한 문구인 듯하다. 


이처럼 융합이라는 세계경제의 큰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는 산업융합촉진법을 제정하고 융합촉진전략을 펼치며 대응해왔다. 하지만 창의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산업간 융합이 활성화되고 새로운 시장과 가치가 창출되어 창조경제가 범국가적으로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보상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국가산업융합지원센터의 주관으로 최근 개최된 산업융합국제컨퍼런스의 기조연사로 참여했던 존 호킨스 박사는 개인의 상상력을 강조하면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위한 보상체계와 조직 구조 마련이 필요함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창조경제 시대에는 실물이나 금융자산보다 지식자산의 중요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기업과 개인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보상하기 위해 정부는 제도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 기업전반에 도입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난 달 창조경제 일자리창출 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입법과제 중 창의적 아이디어 보호와 실용화가 6개 분야 입법과제 중 하나로 포함된 것은 반길 만하다. 중소기업 아이디어 탈취방지제도, 지식재산 보호제도와 같은 법적 제도 마련과 함께 꾸준히 늘고 있는 지적재산권의 출원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도 요구된다. 

지적재산권이 보호되지 않은 상황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그로인해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인 산업융합이 만개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구현되는 열린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틀을 깨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보상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진정한 융합의 신세계를 맞이하고 궁극적으로 창조경제의 패러다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손웅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국가산업융합지원센터 본부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9/h2013091021010624060.htm



Posted by 겟업
2013. 9. 20. 01:26

얼마 전까지 북한 뉴스 하면 핵이나 미사일 같은 국방(國防)색이었다. 지난 주말 전해진 북한발(發) 뉴스 세 건은 때깔이 달랐다.

#1.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24일 선군절 기념행사에서 "인민은 전쟁보다 평화를 원한다"면서 "마식령 스키장, 문수 물놀이장 같은 주요 대상 건설을 최상의 수준으로 다그쳐 끝내야 한다"고 했다.

#2. 북한스키협회 대변인은 24일 스위스·이탈리아 정부가 스키장 리프트 설비의 대북(對北) 수출을 금지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유엔헌장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라고 비난했다.

#3. 조선 국제여행사는 24일 북한 주재 각국 대사관 관계자 및 중국·영국·독일 여행사 대표들을 평양 양각도호텔에 초청해 관광특구 설명회를 개최했다.

김정은에 이어 군 서열 2위인 최룡해가 김정일의 선군(先軍) 통치를 기리는 행사에서 스키장, 물놀이장 얘기를 했다. 합참의장이 국군의 날 행사에서 스키 리조트, 물놀이 테마파크 타령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머지 뉴스 두 건도 우리로 치면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업무에 해당한다.

요즘 북한에서 나오는 뉴스는 십중팔구가 놀이 시설과 관련된 것들이다. 원산 마식령에선 스키장 건설이 한창이고, 압록강변엔 대형 수영장이 들어서고 있다. 원산시 해변엔 우주비행선, 회전그네 등 현대식 놀이 시설이 도입됐고 평양 문수 물놀이장도 전면 개축 공사를 벌이고 있다.

김정은이 올 들어 현지지도를 하다 크게 역정을 낸 것도 놀이 시설에서였다. 미림 승마 구락부 건설 현장에서는 "다른 나라 승마학교 자료를 많이 보내줬는데 전혀 참조하지 않았다"고 질책했고, 만경대 유희장에서는 놀이 시설 페인트칠이 벗겨졌고, 도로가 파손됐으며, 분수대 청소 상태가 마음에 안 든다고 조목조목 관리 소홀을 나무랐다.

지난 몇 달 새 김정은은 전국을 돌며 놀이 시설의 신설·확충 공사를 독려하는 한편 기존 시설 관리 상태도 감독하고 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김정은의 놀이 시설 챙기기를 '인민 사랑 앞세우기'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

김정은은 삶 전체가 놀이 문화였다. 어려서부터 미 NBA 농구에 열광했고, 스위스 유학 시절엔 스키를 즐겼다. 생모 고영희와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에도 가봤다. 수퍼 마리오, 테트리스 같은 컴퓨터 게임도 잘했다고 한다. 10대 시절 김정은은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에게 "나는 매일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농구도 하고 여름이면 제트스키도 타는데 밖의 인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북한 인민들이 자신만큼 놀거리를 즐기고 있을지 궁금해 했다는 것이다. 그때 그 마음 씀씀이가 오늘날 놀이 시설을 통한 인민 사랑으로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 주민의 절대다수는 하루하루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허덕이는데, 김정은은 북한 주민이 제대로 놀고 즐기지 못할까 고민하고 있다. 그 엇나간 인민 사랑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김정은은 부가가치가 높은 오락 산업을 북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계산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선도 프로젝트로 삼고 있는 것이 마식령 스키장이다. 북한 당국은 마식령 스키장이 완공되면 하루 평균 이용객이 5000명쯤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키장을 250일 운영하면 연인원이 125만명에 이른다. 이들이 50달러씩 입장료를 내면 마식령 스키장 연간 수입이 6000만달러를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개성공단 9000만달러, 금강산 관광 4000만달러와 비교해 봐도 만만치 않은 수입이다.

이런 주판 셈처럼 황금알을 쑥쑥 낳아준다면 오죽 좋겠는가. 중국의 북한 여행 전문업체 '고려투어' 영문 홈페이지에는 북한 여행 때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사진을 함부로 찍으면 안 된다. 가이드 없이 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 위대한 지도자 기념 장소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규칙을 어기면 심각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으스스한 경고를 무릅쓰고 매년 125만명의 해외 관광객이 마식령 스키장을 방문해 줄 것인가. 북한 1인당 소득 한 달치와 맞먹는 50달러 입장료를 내고 스키장을 찾을 북한 주민은 또 몇 명이나 될까.

김정은은 북한 땅 곳곳을 파헤쳐 놀이 시설을 만들 태세다. 스키장, 승마장, 수영장, 테마 파크로 인민 사랑을 실천하면서 노다지도 캐겠다는 것이다. 젊은 영도자의 '꿩 먹고 알 먹고' 구상이 머잖아 신기루로 판명 날 텐데 그 후과(後果)는 또 누가 치르게 될 것인가.


김창균 정치 담당 에디터 겸 부국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27/20130827045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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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1:24

최근 영국 BBC방송에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제목은 '독일 사람 되어보기(Make me a German)'.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경제 담당 기자 저스틴 롤러트(Rowlatt)가 아내, 두 자녀와 함께 독일의 중부 도시 뉘른베르크로 이사해 독일 중산층처럼 살아보는 내용이다.

롤러트 기자는 문구류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임시로 취직했다. 독일인 평균 기상 시각인 오전 6시 23분에 일어나고, 주말엔 가족과 함께 축구장에 갔다. 작가 겸 PD였던 아내는 전업주부가 돼 하루 4시간씩 집안일을 했다.

롤러트가 근무한 공장의 노동자들은 평균 오전 7시 49분 출근부에 도장을 찍었다. 영국보다 일하는 시간이 적었지만, 월급은 더 많이 받았다. 그들은 근무시간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페이스북을 하지 않았다. 사장은 "독일은 연필 같은 단순 제조업에서도 세계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롤러트의 아내는 거의 분 단위로 계획을 짜서 생활하는 독일 주부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예전 같았으면 영국 시청자들은 재미없기로 세계 1등인 독일인들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는지 속으로 비웃으며 이 프로그램을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기획 의도는 달랐다. 독일의 성공 비결을 독일인의 삶 속에서 직접 찾아보겠다는 것이었다. 롤러트 가족은 "영국도 성공하기 위해선 직장에서 휴대전화부터 꺼야 할 것 같다"며 '효율성(efficiency)'이라는 그들 나름의 해답을 제시했다.

요즘 영국에선 새로운 국가 모델을 연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우리는 좀 더 독일답게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앙숙인 독일을 벤치마킹하자는 이야기가 영국 총리 입에서 나온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이전엔 볼 수 없었던 장면이 있었다. 올여름 프랑스 장관들은 2주일씩 휴가를 갔다. 우리가 볼 때는 여전히 긴 기간이지만, 보통 한 달 가까이 바캉스를 즐기던 이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짧았다. 휴가에서 돌아온 장관들은 곧바로 '2025년의 프랑스'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장관들은 휴가 중에도 이 세미나 준비에 매달려야 했다. 바캉스에 목숨 거는 프랑스인에게 비록 장관이라 하더라도 휴가지에서 서류를 뒤적여야 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세미나 내용이 장밋빛 일색이라는 비판이 있긴 했지만, 프랑스 정부로서는 10년 이후 장기 플랜을 논의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이처럼 경제 위기가 바닥을 쳤다는 신호가 나오면서 유럽 국가들은 '위기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 부양 같은 단기적 처방뿐 아니라 '위기의 승자(勝者)'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국가 모델을 고민 중이다. 영국은 국민의료보험(NHS), 프랑스는 연금 같은 사회 근간을 이루는 핵심 정책에 칼을 대고 있다.

유럽의 저력은 이처럼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방향의 옳고 그름에 대한 치열한 논쟁도 피하지 않는다. 명백한 오류가 아니고선,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정책을 자기 입으로 하루아침에 뒤집는 일은 없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지금 우리 정부는 과연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했다. 동시에, 그리고 있기는 한 건지 걱정도 뒤따랐다.



이성훈 파리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25/20130825022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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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1:19

4년 전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세운 연구소를 취재한 적이 있다. 미국 시애틀 교외 벨뷰에 자리 잡은 특허전문기업 인텔렉추얼 벤처스(IV)의 연구소다. 이곳 회의실에선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가 열린다고 했다. 

4평 남짓한 회의실엔 20명쯤 앉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 게이츠가 가운데 앉으면 공학 엔지니어와 물리학자, 화학자, 수학자 등이 둘러앉는다. 다른 한편은 특허 출원 전문 변리사들의 자리다. 

회의 테이블에 오르는 건 그야말로 ‘거대한’ 주제들이다. 지구 온난화를 막는 방법, 아프리카의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방법, 허리케인 피해를 줄이는 방법 등 유엔 총회에서나 다룰 만한 것들을 논의한다.

이들은 지상에서 우주로 긴 호스를 연결한 뒤 작은 입자를 뿌려 햇볕을 가리는 식으로 지구의 온도를 낮추자(StratoShield)고 제안하는가 하면, 말라리아 모기를 쏘아죽일 레이저 총이 달린 담장(Photonic Fence)도 개발했다. 카리브 해에 찬물을 부어 허리케인을 없애겠다는 아이디어도 여기서 나왔다. 

사람들은 ‘기발하다’거나 ‘엉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는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등의 이유로 ‘말도 안 되는 미친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어쨌든 게이츠의 해법은 인류의 생각을 조금 진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특허 보유 목록도 늘렸다.

최근엔 엘론 머스크가 발표한 진공튜브 열차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튜브를 진공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어 저항을 최소화한 뒤 태양열 배터리를 단 전기모터로 달린다는 멋진 아이디어였는데, 시속 1220km로 달린다는 것 외에 자세한 내용은 소개되지 않았다. 페이팔을 창업해 큰 부자가 된 뒤 폼 나는 전기자동차와 우주화물 회사를 차리는 데 돈을 쏟아 부은 이 남자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행동으로 ‘현실 속 아이언맨’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계곡물이 건강에 가장 좋다고 생각했던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설악산 계곡과 서울시를 연결하는 거대한 수도관을 고안했다. 부하 직원에게 헬리콥터를 내주며 전국 주요 도시와 전국 산의 계곡을 파이프로 연결할 방안을 찾아내라고 한 지시는 아직도 그룹 내에선 전설로 전해진다. 

때때로 기업가들은 몽상가 같다. 편집증 환자 같다. 쉽게 말해 미친 것 같아 보인다. 상식을 넘어 새로운 상식을 만들고, 최고를 넘어 또 다른 최고를 만드는 것이 기업가의 숙명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꾸고 인류의 문제를 푸는 기업가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기업가들은 조금 다른 고민을 하는 듯하다. 얼마 전 만난 한 기업인은 기자에게 “수십억 원을 기부하든 수백억 원을 기부하든 아무리 사회공헌을 해도 사람들은 전혀 감흥이 없다”며 반(反)기업 정서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많은 기업의 수뇌부는 상식을 깨는 사업 아이디어 대신 정부의 동향이나 세계 시장의 흐름만 회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고심한다. 

우리 기업가들이 이런 일만 되풀이하다가 진짜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방법을 영영 까먹을까 봐 내심 걱정이 된다.


김용석 산업부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30821/571349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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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1:18

잘 하셨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과 생떼를 물리치고 ‘신뢰프로세스’의 내공을 만방에 보였으니 보국(輔國)의 칭송을 받을 만합니다. 정권 출범 6개월, 미국과 전통적 우정을 쌓고,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니 이보다 더 든든한 외치(外治)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명박(MB) 정권 역시 외교와 국제 세일즈는 일품이었습니다. 내치(內治)가 없어서 문제였죠. MB정권은 3년차에 ‘공정사회론’을 내세워 내치에 돌입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초기 성과가 궁핍했습니다. 그때부터 집권세력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그 예정된 행로가 우려되어 변정고언(辨政苦言), 정국을 분별해 쓴소리를 올리려 합니다.

8·15 경축사에서 경제동력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셨지요. 백번 맞습니다. 그런데 왜 울림이 없을까요? 서민들에게 가장 확실한 경제활력의 지표는 바닥경기입니다. 건설노동자, 택시기사와 대리기사, 전국을 뛰는 운송기사가 약 400만 명에 이릅니다. 서민시장이 활기를 띠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쪼들리지 않을 때가 호황입니다. 국민행복은 이들의 웃음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만기친람(萬機親覽)하시면 국정어젠다가 흐릿해집니다. 정치는 살림살이를 넘어서는 것, 소소한 쟁점들은 각료들에게 위임하고 큰 정치에 집중해야 합니다. 성장, 분배, 남북문제가 그것이죠. 정책사령탑은 작동하나요, 각료들은 토론합니까? 국무회의가 좀 시끄럽기를 바랍니다. 노트북을 치우라고 하세요. 받아 적기만 하는 각료들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이 관료, 율사, 장군 공화국인가요? 이들은 변칙과 파격을 싫어합니다. 청와대 외곽에 경로당 차리셨나요? 노련함으론 경장(更張)이 어렵습니다. 장외투쟁 중인 민주당을 끌어들여야죠. 우아하고 단호한 카리스마에 유연성이 결합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지막 일년을 제하면, 이제 3년 반이 남았습니다. 네 가지만 제언하려 합니다.

성장정책이 없다. 삼성·현대·LG가 주도한 혁신이 한국을 살린 성장동력이었다. 성장패턴은 바뀌지 않고 중소기업이 부진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큰 기획과 구상이다. 언제나 그랬듯, 현 정부도 작고 소소한 프로그램들에 매달려 6개월을 소모했다. 경제팀은 뜻밖에 빈약하다. 6개월간 정부는 규제정책, 즉 ‘경제민주화’에 올인했는데 약간의 성과도 있겠지만 법안이 발효되면 경기는 일단 탄력을 잃을 것이다. 이 단계에서 경제민주화는 총수비리 척결, 불공정거래 시정, 중소기업 보호 정도로 충분하다. 내수진작과 성장정책은 아예 실종됐다.

‘창조경제’는 목하 논쟁 중이다. DJ키드가 요즘 인터넷산업의 총아이듯 근혜키드는 어디에서 나올까? 대안은 바이오·정보통신·미디어산업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70년대 초 그랬듯이 바이오밸리, ICT밸리, 미디어밸리를 미래 경제기지로 건설해야 한다. 그곳에 각 분야 전문가·과학자·자본가·CEO들이 매일 아침 모이는 아이디어 시장(市場)을 서게 해야 한다. 생태계 조성과 시장활성화는 정부 몫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풀 죽은 과학자·전문가·영재청년·괴짜들의 눈을 반짝이게 해야 한다. 디자인·영상·애니메이션·게임에 인생을 바치려는 준재들이 서로 경쟁하는 창조밸리를 건설하는 것이 답이다. 창조경제의 꽃이 여기서 피어난다. 문화융성? 영화에 미친 자는 미디어밸리에 모여 꿈을 펼치면 된다. ICT밸리는 스마토피아를 꿈꾸는 과학영재들의 집단서식처다. 그렇게 기획, 설계하고 만들면 된다. 인재들이 의사와 법관으로 몰리는 나라는 곧 불행해진다. 지금이 바로 그 꼴이다.

누구나 일자리를 외치지만 한국에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막는 최대 장애가 노조임을 지적하지 않는다. 괜히 벌집 쑤셨다가 정치생명이 끝날 위험이 있다. 노조는 이익집단이 됐다. 경제민주화 입법안에도 노조는 열외다. 환노위·정무위를 투 톱으로 하는 총공세에 노조는 흐뭇할 뿐이다. 박 대통령의 공약에 민주당의 주문이 얹혔다. 꼭 필요한 법안도 있지만, 핵심 쟁점은 빠졌다. 일자리 창출 잠재력은? 노조는 어떡할래?다. 청년백수·조기정년이 만연된 시대에 밤샘작업 노동자는 전체 15%(약 200만 명), 주 52시간 장시간 노동자는 30%(약 400만 명)에 달한다. 뭔가 모순적이나 노조의 비호하에 건재하다. 규제법안들과 막강노조가 결합된 주력산업에서 일자리 창출은 불가능하다.

정부는 노동시간을 각각 200시간 줄여 신규 일자리 238만 개를 창출한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오랜만에 괜찮은 정책이지만, 전제요건이 빠졌다. 노조다. 노조 승인이 없는 한 노동시간 단축은 어렵고, 승인해도 ‘임금삭감 불가’ 조건을 달 것이다. 게다가 고용연장이라니! 정치권은 정치적으로만 풀리는 이 과제를 관료들에게 전가해 왔고, 관료는 행정과 통계풀이로 본질을 비켜갔다. 고용 70% 로드맵 1번은 ‘노조 담판정치’여야 한다.

‘일자리 창출’은 기업, ‘일자리 나누기’는 노조, ‘일자리 지키기’는 정부의 몫이다. 기업엔 임금비용을 낮춰주고, 노동자에겐 공공복지를 늘려줘야 한다. 그래야 정규직이 ‘일자리 나누기’를 솔선할 인센티브와 명분이 생긴다. 이런 상생구조가 일자리 정치의 요체이거늘, 이런 제도 혁신 없이 2만 달러 경제까지 올라선 것은 기적이고 요행이다. ‘요행의 천운’이 이제 소진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어쩔 것인가, 이대로 내리막길을 갈까, 아니면 지혜를 모을까? 정치권은 이 난제를 버렸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430542&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9. 20. 01:15

# 서울의 8월은 푹푹 찌는 찜통 그 자체였는데 얄궂게도 8월의 에든버러는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기까지 했다.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이자 문화중심이고 지금도 잉글랜드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색깔의 문화와 전통을 가졌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곳이다. 에든버러성과 어우러진 고색창연한 외연만이 볼거리가 아니다. 매년 8월이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축제의 난장(亂場) 덕분에 여전히 상주인구는 40여만 명에 불과한 이곳이 전 세계의 자유분방한 문화예술인들의 성지로 탈바꿈해 축제기간을 포함해 연간 1200만여 명을 끌어들이는 문화의 블랙홀이 된다.

 # 에든버러에서 펼쳐지는 축제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그중에서도 양대산맥 같은 것이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프린지 페스티벌이다. 프린지는 1947년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처음 시작됐을 때 공식 초청을 받지 못해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게 된 8개 공연단체가 에든버러 주변부에서 소규모 공연을 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돼 프린지가 에든버러의 중심을 차지하고 인터내셔널은 되레 시들해져 버린 감이 없지 않다. 그렇다. 문화는 움직이는 것이고 문화의 힘은 항상 주변이 중심을 공략하는 데 있는 것 아닌가!

 # 에든버러를 걸으며 순간순간 떠오른 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조앤 롤링이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앰네스티에서 인턴으로 일한 후 포르투갈로 가서 영어교사로 일했다. 그때 포르투갈의 방송기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지만 채 1년도 안 돼 헤어지고 말았다. 결국 싱글맘의 처지로 영국으로 돌아온 조앤 롤링은 살 길이 막연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어린 딸을 두고 혼자 갈 수 없어 정말이지 죽지 못해 살았다. 아이에게 읽어줄 동화책 하나 사줄 수 없는 형편이었던 조앤 롤링은 자기 딸에게라도 읽어주리라 마음먹고 책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어느 출판사에서도 무명 싱글맘의 긁적거린 것 같은 글을 출판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책은 기적처럼 출간됐고 세상에 다시 없는 책의 전설이 됐다. 그 놀라운 책이 이 회색빛 에든버러의 어느 초라한 카페 한 귀퉁이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나를 흥분시킨다. 프린지 페스티벌의 소음을 뚫고 에든버러의 거리를 걸으며 나는 그녀를 만나고 있었다. 모든 창작은 고난을 거름 삼는다는 믿음을 새삼 되새기면서. 그런 그녀 역시 가장 변두리에서 스스로를 일으킨 장본인 아닌가!

 # 에든버러 어딜 가나 갤러리가 있고 뮤지엄이 있으며 도서관도 여럿 있다. 흥청거리는 에든버러의 진정한 문화적 힘은 거리 곳곳에 기본으로 깔려 있는 이런 갤러리, 뮤지엄, 도서관들의 존재다. 특히 에든버러 센트럴 라이브러리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강철왕 카네기가 전 세계에 세운 3000여 개의 공립 도서관 중 하나다. 이곳의 도서관은 단지 책 읽는 곳이 아니라 예술적 전시가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의 중심 그 자체다. 도서관 열람실도 들어가 봤다. 역시 개가식의 서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고색창연한 도서관에서 자유분방한 포즈로 책 읽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 아무리 축제의 도시라고 해도 가장 기본적인 문화적·예술적 바탕으로서의 도서관, 갤러리, 뮤지엄이 없다면 축제는 헛되고 헛된 부질없는 몸짓의 난장일 뿐이다. 하지만 갤러리, 뮤지엄, 도서관 등이 그물망처럼 깔려 있는 가운데 펼쳐지는 축제의 난장은 새로운 문화의 얼개를 만들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축제도 이것을 배워야 한다. 무조건 난장만 깐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바탕을 깔아야 한다. 그것이 갤러리고 뮤지엄이며 도서관이다. 튼실한 바탕과 뿌리 없이 굵직한 줄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축제의 도시 에든버러의 진짜 힘이 어디서 발원하는지 보고 느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422504



Posted by 겟업
2013. 9. 20. 01:15

올여름도 세계의 관광지는 중국 여행객 등쌀에 몸살을 앓았다. 큰 소리로 떠들고 새치기하고 함부로 담배 피우는 등의 무질서·민폐 사례가 곳곳에서 목격됐다. 프랑스에선 중국인들이 루브르 박물관 분수대 물에 발을 씻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랐다. 3000년 된 이집트 신전에 '왔다 간다'고 쓴 중국어 낙서가 발견돼 세계를 경악시키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북한에 간 중국인들 소식이었다. 중국 관광객이 북한 어린이들에게 사탕과 음식을 던져주는 등 오만함이 도를 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실태를 전한 홍콩 신문은 "오리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것 같았다"고 비유했다. 아무리 '어글리 차이니스(Ugly Chinese)'라도 잘사는 나라에선 조심하는 척을 한다. 하지만 자기네보다 못사는 북한에 가선 사람들을 거지 취급하며 모욕하고 있었다. 서글프면서도 소름 끼치게 무서운 얘기였다.

중국인의 해외여행 추태는 아마도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우리에게도 과거 '어글리 코리안(추한 한국인)'으로 악명 높던 시절이 있었으니 크게 할 말은 없다. 유커(遊客·중국 관광객) 유치에 목을 건 우리 입장에선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하다. 와서 돈을 써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이것저것 따질 입장이 아니다.

문제는 관광객의 눈살 찌푸리는 행동 같은 지엽적인 것이 아니다. 중국이 아무리 발전해도 어쩔 수 없는 국가 본능이 있다. '중화(中華) 제국주의'라는 DNA다. 중국 공산당의 국가 경영이 당(唐)·청(淸) 제국의 영광을 추구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의 힘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제국주의 본능은 거세질 것이다. 아마 주변국을 신하처럼 부렸던 '조공(朝貢)의 추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제국주의란 군사력·경제력 같은 하드파워로 남을 굴복시키려는 국가 의지다. 초강대국이 되기도 전에 중국은 이미 세계의 만만한 국가를 상대로 '힘의 외교'를 휘두르고 있다. 엊그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 1위 연어 수출국 노르웨이가 겪는 수난을 전했다. 노르웨이산 연어의 대(對)중국 수출이 3년 새 3분의 1로 급감했다는 것이다.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에게 노벨 평화상을 준 데 대한 중국의 보복이었다.

우리 역시 중국의 완력에 휘둘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년 전엔 중국산 마늘을 건드렸다가 무지막지한 무역 보복을 받고 백기 투항한 일이 있었다.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은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옌볜(延邊)의 윤동주 생가에 윤동주를 '중국 조선족 시인'으로 표기해 놓았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요즘 한·중 관계가 좋아지자 일부에선 중국 환상론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착각도 보통이 아니다. 수천년 한·중 관계사(史)에서 중국이 '선의(善意)'면서 '동반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중국이 그나마 우리를 함부로 못 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은 우리가 더 잘살고, 문화 수준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배울 것이 있고 얻을 게 있으니까 패권 본능을 자제하는 것뿐인데, 이런 상황이 반전되는 것도 시간문제 같아 보인다.

우리는 중국 하면 싸구려 이미지를 떠올리고, 영원히 우리보다 못살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수천년 역사 속에서 우리가 중국보다 선진국이었던 것은 지난 30~40년에 불과하다. 나머지 기간 대부분을 우리는 중화 패권주의에 시달리거나 순응하면서 살았다.

1970년대 이후 우리는 근대화의 기적을 이뤄내 처음으로 중국에 앞설 수 있었다. 우리가 노력한 결과지만 운도 따랐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대혁명(1966~76)은 중국에 큰 불행이었지만, 우리로선 예기치 않게 찾아온 행운이었다. 마오가 이념의 광풍을 일으킨 덕에 우리는 중국보다 10여년 먼저 경제개발의 스타트를 끊었다. 만약 중국이 일찍 정신 차렸다면 우리는 지금쯤 중국의 하도급 기지 신세가 됐을 것이다. 중국의 뒤늦은 출발 덕분에 우리는 중국에 큰소리도 치는 짧은 호시절을 맛볼 수 있었다.

이젠 '마오쩌둥의 축복'도 약발이 다해가고 있다. 중국이 한국 턱밑까지 따라왔다는 뉴스가 요 며칠 새에도 쏟아졌다. 3년 전 2.5년이었던 중국과의 산업기술 격차가 이젠 1.9년으로 좁혀졌다(미래창조과학부). 포브스가 선정한 100대 혁신 기업에 한국 기업은 한 곳도 들지 못했다는 발표도 있었다. 중국은 5곳이었다.

거대 중국 옆에서 자존심 구기지 않고 살아갈 방법은 끊임없이 중국보다 앞서 달리는 길뿐이다. 기술 수준, 혁신 능력, 문화 창조력 같은 총체적 국가 경쟁력에서 우위를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 어느 누구도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국가 전략을 말하지 않는다. 중국 관광객들이 북한 주민에게 음식을 던져준다는 얘기에 소름 돋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박정훈 부국장·기획에디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22/2013082204386.html



Posted by 겟업
2013. 9. 20. 01:06

도시 재생이 세간의 화제다. 지난 6월에는 도시재생특별법까지 공포되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얼마 전만 해도 달동네는 철거와 재개발의 대상지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도시 재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예전 달동네는 도시의 생채기로 여겨졌으며, 떠나고 싶은 곳이었다. 나는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서울의 변두리가 그렇듯이 그곳에도 달동네가 있었다. 관악산 줄기였던 호암산 산비탈을 따라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같은 반 친구에게 “너 어디에 사니”라고 물어보았을 때 주뼛거린다면 달동네에 살 가능성이 높았다. 또래 친구들과 호암산에서 놀다 보면 약수터 근처에서 물지게를 진 달동네 주민을 만났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팍팍한 삶의 무게만큼 판자촌에 산다는 사실이 그들을 늘 불안하고 창피하게 만들었다.

이런 기억 탓이었을까. 장성한 나는 달동네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부산에서는 산동네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산동네가 거대한 벨트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모임에서 부산시 서구 아미동 산동네에 일본 귀신이 출현한다는 도시 민담을 듣게 되었다. 기모노에 게다를 착용한 일본 귀신이 마을을 어슬렁거린다는 기담이었다. 등골이 오싹하기보다는 왜 하필 일본인 귀신인지가 궁금했다. 이국에서 떠돌고 있는 일본 귀신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아미동 산19번지로 갔다.

일본 귀신은 찾지 못했지만 기담의 배경은 알 수 있었다. 묘지의 비석과 석물이 축대, 담벼락, 건물 등에 박혀 있었다. 비석을 재생시켜 건축 재료로 사용했다니 다들 놀랄 지경이었다. 누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비석마을이네’라고 했다. 그랬다. 과거 아미동 산19번지는 일본인의 비석과 석물로 가득 찬 공동묘지였다. 개항 이후 부산에는 일본인 전관거류지가 형성되었으니 거기에서 살다가 죽는 일본인도 많았다. 1907년 일본인 공동묘지가 아미동으로 이전됨에 따라 그곳은 장례의 공간이 되었다.

죽음의 공간이 다시 삶의 공간으로 재생된 때는 1950년대였다. 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한꺼번에 몰려온 부산시내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그들은 살기 위해 도심 주변의 산을 일구고 판잣집을 짓기 시작했다. 목포에서 화물선을 타고 아미동에 왔다는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우리가 오니까 피란민 천막이 많았어. 집을 지으려고 땅을 파니까 단지가 수두룩하게 나오더라고.” 단지라는 것은 화장한 후에 인골을 담는 용구였다. 일본인 묘지 위에 그대로 판잣집을 지었다는 뜻이다. 당시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재생했다. 미군부대 주변에서 습득한 박스, 집을 허물 때 나온 판자와 목재, 산 위에 널려 있던 묘지 석물 등. 아미동에 들어온 실향민들은 죽음의 위기에서 삶의 희망을 세우기 위해 버려진 물품을 재생시켰던 것이다. 비록 가난과 결핍이 어쩔 수 없는 재생을 낳았지만 그래도 그 의미는 소중했다.

도시학에서의 도시 재생은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자는 뜻이다. ‘지속가능한 도시’는 낡고 쇠퇴한 지역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고쳐서 살리자는 취지다. 이 개념에는 도시를 보는 패러다임의 중요한 변화가 있다. 도시를 산업의 전초기지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생활과 문화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다. 경제개발 시기 도시 척도는 산업 발전에 맞춰졌고, 주민의 삶과 문화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철거와 추방이 반복되었을 뿐이며, 산동네 주민의 삶을 보존하는 도시 재생은 언감생심이었다.

이제라도 인간적 도시를 지향하는 도시 재생을 하겠다니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도시 재생을 말하기 전에 그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봐야 할 일이다. 산동네의 도시 재생을 관광지 개발로 여기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도시 재생은 바로 사람다운 삶의 재생이고, 인간적 도시의 구현이다. 묵묵히 험난한 세월을 견뎌온 아미동 비석은 말한다. 죽음의 공간에서조차 삶을 재생시킨 아미동 사람들의 고단했던 과거를. 오늘의 도시 재생에 대해서도 말한다. 도시 재생은 주민의 삶을 먼저 생각하면서 지속가능한 도시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라고.


유승훈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401816&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9. 20. 01:02

개성공단 파행 133일째였던 14일, “다시 공단이 문을 연다”는 소식에 유달리 감회가 새로운 사람이 있었다. 2005년 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만 8년 동안 개성공단에서 남북한 근로자들에게 무료 진료 봉사를 했던 재단법인 ‘그린닥터스’ 정근 이사장(53)이었다. 

그가 이끈 의료진은 개성에 들어가 하루 평균 200명에 달하는 북한 근로자들의 건강을 살폈다.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5만 명 대다수가 최소 한 번 이상 그린닥터스가 운영하는 진료소를 들른 셈이다. 이들이 가족들을 위해 받아간 의약품까지 감안하면 개성 사람 20만 명의 건강을 돌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번을 정해 봉사를 떠난 남한 의사만 1300명이 넘는다. 


○ 처음엔 남-북 진료소 따로따로

정 이사장도 한 달에 최소 세 번씩 개성공단 병원으로 올라갔다. KTX가 생기기 전에는 떠나기 전날 새벽에 서울역에 도착해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고 떠났으나 KTX가 생기면서 떠나는 날 당일 새벽 서울에 도착해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개성에 들어가는 강행군을 했다. 

기업인도, 정부 인사도 아닌 의료인 입장에서 그는 개성공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16일 부산 서면에 있는 그의 병원에서 만난 정 이사장은 “통일한국의 미래는 북한에 있다. 따라서 개성공단이 다시 문을 여는 만큼 과거보다 더 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저소득층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시작한 이후 외국인 근로자 진료까지 활동의 폭을 넓혀온 그는 2004년 4월 개성공단이 가동되고 이듬해 2005년 1월부터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 공단에서 진료소를 세우고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초창기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처음에는 북한 근로자를 치료하는 진료소는 현대아산이 운영하고 남측 근로자를 치료하는 진료소는 우리가 운영하는 식으로 따로 돌아갔다. 각각 66m²(약 20평) 정도의 작은 규모였고 거리도 500m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서로 간에 교류는 있을 수 없었다. 우리도 처음 진료를 시작했을 때 남측 진료소에서 남한 근로자들만 진료했다.” 

―언제부터 북한 근로자까지 치료하게 된 건가.

“공단을 운영하면서 처음에는 북측 진료소에 필요한 각종 비용과 약품을 현대아산이 지원해줬는데 2006년 정몽헌 회장이 타계하면서 현대아산 쪽이 더 이상 지원해주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면서 북측 진료소가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 북측은 궁리 끝에 우리 쪽에 ‘북한 근로자까지 맡아줄 수 없겠느냐’며 도움을 청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단체 이름을 영어(그린닥터스)를 쓰는 ‘부르주아’ 의사들에, 자신들이 싫어하는 기독교 신자들까지 많다며 배척하던 그들이 태도가 바뀐 건 연탄가스중독 환자들 때문이었다. 북한은 연료 사정이 좋지 않아 겨울에 나무장작을 때는데 2000년대 중반 우리 정부가 연탄을 많이 보내줘 사정이 나아졌다. 문제는 집 안 문을 닫고 연탄을 피우다가 연탄가스중독 환자가 늘어난 것이었다. 어느 날 밤중에 병원 문을 누가 다급하게 두들겨 나가 보니 당(黨)의 높은 사람이었다. 인근에 유일하게 우리 병원에 고압 산소치료기가 있었다. 그 환자를 치료한 이후 어떻게 입소문이 났는지 우리를 대하는 북측의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남북으로 갈라졌던 진료소는 마침내 2006년 12월 ‘개성종합병원’으로 합쳐지면서 430m²(약 130평) 규모의 새 건물도 세웠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치과, 한방진료까지 개설했으며 X선, 초음파, 수술실까지 마련했다. 


○ 남북환자 접촉 차단 시도 무용지물

―건물을 함께 쓰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 

“북측 간부들은 처음부터 주민들이 섞이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당 간부들은 ‘남한 환자와 북한 환자가 들어가는 입구를 다르게 만들라’ ‘건물 안에서 양쪽 사람들이 만나지 않도록 중간에 벽을 세우라’ 등 환자들이 섞이지 않게 하고, 의료진만 문을 잠깐씩 왕래하라고 했다. 이런 주문을 받아들여 건물을 만들다 보니 입구가 두 개인 기형적인 건물이 됐다. 왼쪽으로 북한 근로자들이 들어가고, 오른쪽으로 남한 근로자가 들어가는 식이었다. 한 건물에 내과도 2개, 외과도 2개…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분단의 장벽’은 쉽게 무너졌다. 

“입구를 아무리 분리해도 결국 안에서 뒤섞였다. 환자들이 X선 찍고 주사실로 이동하다 보니 자연스레 섞일 수밖에 없었다. 공장 안에서는 서로 눈도 안 마주치던 남북한 사람들이 병원 안에서는 인사도 하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복도 대기실에 환자들이 죽 앉아있는데 남한 사람인지 북한 사람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다. 보다 못한 당 간부들이 ‘복도 중앙을 가로막고 문을 새로 만들어 잠가 놓으라’고 하더라. 처음 3개월 동안은 그대로 했다가 나중엔 ‘이래서는 환자를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설득해 낮에만 문을 열어 놓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대화는 진료 과정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로 넘어갔다. 

“처음에 나도 그랬지만 남한 의사들은 실제 만난 북한 환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군인이라고 하는데도 키가 우리나라 중학생 정도로 작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영양 상태도 좋지 않았다. 공단 근로자들 중에는 유난히 결핵 환자가 많았다. 젊은 사람들만 특별히 뽑았다는데도 그랬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북한 측에 ‘공단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해 보면 안 되겠느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이 드러날까 ‘안 된다’면서 질겁하다 결국 수락하더라. 나중에는 우리가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약을 지속적으로 먹였다. 간염 접종도 시켰다.”


○ 부모님-자식 걱정까지 털어놔


―북한 의사들은 남한 의료진들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나. 

“진료소가 합쳐진 직후인 2007년 1월로 기억하는데 갑자기 북한 의사와 간호사 23명이 싹 사라졌다. 일주일 만에 나타났는데 얼음장처럼 굳어 있었다.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으니 ‘교육받고 왔다’고 했다. 병원이 합쳐진 갑작스러운 변화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위에서 지시를 내린 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갑던 마음들은 눈 녹듯 녹았다. 나중에는 북한 의사가 먼저 ‘약 좀 더 갖다 주세요’ ‘의사 가운, 간호사복 좀 갖다 주세요’라며 도움을 청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한 젊은 치과의사는 임플란트 기술을 배우고 싶다며 재료를 구해줄 수 있는지 상의하기도 했다.”

“개성공단이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는가”라고 묻자 차분하던 그의 부산 말씨 톤이 올라갔다.

“처음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천양지차로 변했다. 우선 서로가 친숙해졌다. 공단 내 구내식당 TV에서 한국 방송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북한 사람들이 화면을 힐끔거리지도 않고 오로지 밥만 먹었다. 그중에는 화면을 곁눈질로 쳐다보다 자아비판까지 하러 다니느라 고초를 겪은 사람들도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어떠냐고? 서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에서부터 어느 배우를 좋아하는지까지 이야기한다.”

그는 “나는 통일된 남북의 모습을 개성공단에서 보았다”면서 “개성공단이야말로 통일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북한의 20, 30대 근로자들이 남한에 대한 적대감이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바로 이것이야말로 통일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가족들에게 약이 가고, 남한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되면 마침내 통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처음에는 200명이 2000명에게, 마침내 2000만 명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개성공단이 생기면서 남북을 가르는 분단선이 공단 쪽 뒤까지 물러났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원치 않는 북한 주민, 통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북한 주민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야말로 통일의 출발점이다. 지금 남한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최소 월 150만 원을 주면서 쓰고 있다. 기업들은 인건비가 비싸다며 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중이다. 하지만 개성공단 인건비는 남한 내 10분의 1도 들지 않는다. 제품도 ‘메이드 인 코리아’이다. 북한의 생활수준(국내총생산·GDP)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다. (주민들을) 말려 죽여 통일시킨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 공단에서 만난 우리 누이들의 얼굴

정 이사장은 그동안 북한 근로자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면서 “1970년대 가발공장, 신발공장에서 동생과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여공 누이들을 떠올렸다”고도 한다. 

“처음 북한 환자들은 묻는 말에만 대답했다. 나중에는 부모님 이야기, 자식 걱정까지 털어놓았다. 근로자들이 와서 ‘밤샘근무를 하거나 연장근무를 하게 됐다. 이번 달은 수당을 좀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30, 40년 전 우리 부모 세대, 누이 세대의 열정을 보는 듯했다.”

그린닥터스의 무료 진료는 남측 진료소를 유료 진료로 운영하겠다는 통일부 방침에 따라 2012년 12월 말 끝났다. 정 이사장은 “이번에 공단이 다시 문을 여는 만큼 무료 진료를 다시 시작했으면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은 아끼지 않겠다고 한 만큼 좋은 소식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무료 진료를 통해 통일 체험을 한 그의 꿈은 크다. 한국결핵협회, 캐나다의사회, 그린닥터스가 손을 잡고 황해도 해주에 결핵병원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해주는 1927년 캐나다 선교사들의 지원하에 한반도 최초로 결핵병원이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그가 들려준 개성공단 이야기는 기자에게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세 시간 가까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멀리서 머릿속으로만 느껴지던 ‘통일’이나 ‘북한 사람들’이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졌다. 개성공단이 한반도의 미래와 평화를 향한 실핏줄이 되어 힘차게 박동하는 날이 오기를 그와 함께 빌어본다. -부산에서

:: 그린닥터스 ::

1997 년 ‘백양의료단’이 전신으로 2004년 국경, 지역, 인종을 초월한 의료봉사단체로 출범했다. 인도 필리핀 카자흐스탄 중국 등에 의료진을 파견해 10년간 3만 건 이상의 무료 진료를 실시했다. 2005년 1월∼2012년 12월 개성공단 남북협력병원을 운영했다.


인터뷰= 노지현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30819/57092315/1



Posted by 겟업
2013. 9. 20. 00:59

2009년 글로벌 경기 침체로 관광객이 줄어든 호주 동북부의 해밀턴 섬은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그런데 엉뚱하게 섬 관리자 모집 광고를 냈다. 이름하여 '세계 최고의 직업!' 6개월간 월 12시간 거북이와 물고기에 먹이를 주고, 바다 고래 관찰기를 블로그에 올리면 숙소와 왕복 항공권, 그리고 15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억9000만원)의 급여라는 환상적인 조건이었다. 이 광고는 인터넷을 타고 삽시간에 세계로 퍼져 30억명 이상에게 전파되었고, 200여개국 3만4000여명이 지원해 1500만달러(190억원)의 홍보 효과를 거두었다. 이후 섬을 찾는 관광객이 증가한 것은 당연한 일.

일본의 모든 산업이 장기 침체로 어려운 가운데, 전통 김 산업도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에 2011년 일본의 한 김 메이커는 수백년 먹어 온 김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레이저 커터를 사용해 김에 일본 전통문양을 새겨 넣음으로써, 현대 기술과 전통이 창조적으로 결합한 전혀 새로운 형태의 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로써 자사의 매출 증대뿐만 아니라, 침체 일로에 있던 김 산업이 되살아나는 계기가 됐다.

위 두 가지 사례는 기업과 지역사회가 처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한 '창의적 솔루션(creative solution)'의 모범 사례이다. 이러한 창의적 솔루션은 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은 물론, 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해 주는 실효성 있는 아이디어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독창성, 실질적인 문제 해결력, 그리고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효율성 등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러한 창의적 솔루션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운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가장 빠른 방법은 다름 아닌 창의적 솔루션 성공 사례를 많이 접하는 것이다. 부산국제광고제(Ad Stars)는 세계 각국에서 성공한 창의적 솔루션들을 체험하고 공유하는 좋은 플랫폼이다. 특히 59개국에서 1만2000편이 넘게 출품된 올해 대회에서는 창의적 솔루션에 대한 이해를 돕는 창조경제 스페셜 섹션을 마련했다. 아울러 중소기업을 위한 창의적 마케팅 솔루션 워크숍, 학생과 일반인의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배양을 위한 '창조 스쿨' 등의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올해로 6회째인 부산국제광고제는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벡스코에서 열린다.



최환진 부산국제광고제 집행위원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19/2013081903326.html



Posted by 겟업
2013. 9. 20. 00:58

우리 문화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중국인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을 보면 한류의 열풍이 이어짐을 확인하게 된다. 최근 한·중 합작의 우리 영화 '미스터 고'가 개봉 첫 주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애프터어스'를 제치고 중국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며 이틀 동안 수익을 우리 돈으로 약 141억원 거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뿐만 아니라 '나는 가수다' '슈퍼스타K' 등 인기 방송 프로그램의 포맷이 수출되고, 과거 드라마에 집중됐던 한류 열기가 뮤지컬, 콘서트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하며 13억 중국인을 매료시키고 있다.

올해로 한·중 수교 21년이 된 상황에서 양국은 그동안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외교 영역에 이르기까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특히 지난 6월 말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한반도의 정세 안정과 경제 발전에 대한 양국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두 나라는 역사상 가장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박 대통령을 "중국 국민과 나의 '라오펑유(老朋友)'"라고 불렀다고 한다. '라오펑유'는 긴 시간 속에 신뢰와 우정으로 다져진 친구 관계를 일컫는 말로서 이 한마디에는 외교적 수사를 넘어 두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세계의 성장 패러다임은 이미 제조업을 넘어 지식과 문화를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동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과 중국이 지닌 문화적 특징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문화 콘텐츠들은 다른 나라들이 갖지 못한 소중한 재산이며, 향후 국제사회에서 공동 번영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콘텐츠 산업 진흥 계획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특히 창조경제의 주무 부서인 미래부가 박 대통령의 방중 후속 조치 격으로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한·중 '펑유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영화나 드라마, 3D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콘텐츠 교류 지원에 적극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은 창조경제의 구체적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창조경제는 국가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기에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70년대 한국 경제를 주도한 중화학공업에서부터 2000년대의 IT 산업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주력 산업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중장기적 인재 양성과 범정부적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특히 문화와 콘텐츠를 산업으로 연결해 국가의 핵심 동력 산업으로 키우는 데는 더욱 많은 투자와 역량의 결집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다양한 펑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중국과 문화 콘텐츠 교류를 더욱 굳건히 하는 한·중 문화 벨트를 구축하여 창조경제의 동력으로 삼기를 제안한다. 그렇지만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처럼 물건만 팔면 된다는 전략보다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범아시아적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새로운 글로벌 생태계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만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문화 융성으로 창조경제의 토대'를 만들어 그 과실을 다음 정부에도 넘겨줄 수 있다. 13억 중국인이 한·중 공동으로 제작한 드라마를 하루 한 편 이상 보고, 한 달에 한 번은 공동으로 제작한 영화를 보는 그날을 상상해 본다.



 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12/20130812032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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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0:57

정부가 인천공항 입국장에 면세점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입국장에 면세점이 있으면 여행객들이 쇼핑하느라 입국이 늦어질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세금 담당 부서는 면세점 숫자가 늘면서 함께 줄어들 재정 수입을 따져봤을 것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논쟁에 과단성 있는 결정을 내린 듯 보인다.

기내 면세품 판매로 연간 수천억원씩 매출을 올리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그리고 백화점과 공항 출국장에서 수조원씩 면세품을 파는 롯데·신세계·신라호텔 같은 대기업들은 이번 결정에 만세를 불렀다. 입국장 면세점이 오픈하면 기내 판매나 출국장·백화점 면세점의 매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번 결정의 뒷마당에는 이 기업들이 공무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일화가 막 떨어진 낙엽처럼 생생하게 굴러다닌다.

면세점을 갖고 있는 회사들이 싱글벙글하는 것을 보면 면세점이 얼마나 실속 있는 노다지 사업인지 짐작할 것이다. 이번에도 인천공항공사가 입국장 면세점을 들고나온 것이 문제였다. 만약 정부가 재벌 기업에 입국장 면세점을 내주겠다고 했으면 너도나도 여행객 편의를 위해서는 입국장 면세점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논리로 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큰손들의 파워가 정면충돌하는 판에서는 '국민의 편의'를 누가 더 위하는 척 잘 포장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60여 국가가 면세점을 하고 있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 공항에서 인천공항처럼 번쩍번쩍한 면세점을 구경한 일이 있는가. 면세점은 후진국형 점포다. 세율이 높은 나라에서 성공하는 사업이지 세율이 낮고 세금 종류가 적은 나라에서는 번성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위스키에 관세 20%, 주세(酒稅) 72%, 교육세 30%, 부가세 10% 등 세금을 얹고 또 얹고 있다. 담배와 화장품, 핸드백 같은 이름이 알려진 수입품마다 온갖 세금이 줄줄이 붙어 다닌다.

공무원들이 정말 국민 편의를 위한다면 면세점을 늘릴 게 아니라 집에서 가까운 쇼핑센터에서 갖고 싶은 수입품을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중산층 가정주부가 명품 핸드백을 동네 백화점에서 면세점과 엇비슷한 값에 살 수만 있다면 누가 핸드백 하나 사겠다고 공항 면세점에서 1시간을 서성이겠는가.

국가 지도자가 국민 행복을 들먹이려면 국민의 상식적 편견을 뛰어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외국산 화장품에 대한 세금을 낮춰주면 매국(賣國)이라도 하는 것처럼 흥분하는 사고방식을 고쳐줘야 한다. 깨어 있는 지도자는 강남에 있는 수입 핸드백 매장이 큰돈을 벌었다고 배 아파하는 국민에게는 "그 매장에서 월급을 받고 사는 사람은 대부분 한국인"이라고 일깨워줄 것이다.

카지노 사업 허가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미국과 일본 회사가 영종도에 건설하겠다고 신청한 카지노를 허가해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회사의 자금 형편이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고, 국민 사행심을 조장할 것이라는 걱정도 내놓았다. 투자하겠다는 회사의 자금 사정을 왜 그 회사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더 걱정했을까. 자금이 부족하면 정부가 뒷돈을 대줘야 한다는 의무감이라도 가졌던 것일까.

알고 보면 카지노 불허(不許) 결정의 뒤에는 새로운 카지노 개업에 반대하는 거대한 이해 집단이 자리 잡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산하 공기업을 통해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다. 특급 호텔에서 '세븐럭'이라고 광고하는 회사다. 이 공기업은 2011년 630억원, 2012년 1440억원 순익을 냈다. 다른 대기업 한 군데도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덕분에 최고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 카지노 회사가 권력 실세들의 지역구인 부산이나 김포에 신청했더라면 허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말도 돌았다. 눈치 없이 인천 영종도를 들고 나와 좌절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카지노 좌절로 일자리 수만 개가 사라지는데도 외국 회사들에 '자격 미달' 판정을 내렸다. 국내 이해 집단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 없이 그저 외국 회사에 카지노를 허용하면 온 국민이 도박판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라도 할 듯이 설명한다.

싱가포르 지도자들은 바보여서 카지노 사업을 시작했을까. 그들은 카지노를 하면 호텔, 쇼핑, 컨벤션, 엔터테인먼트 같은 다른 부수(附隨) 사업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강한 지도자는 국민의 선입견을 압도하는 결정을 내리지만, 그렇지 않은 지도자는 공무원의 위선적 애국심을 존중한다. 공무원과 정치인들 뒤에 끈끈한 로비의 손길이 휘감고 도는 것을 보지 못한다.

열려 있는 지도자라면 "카지노를 허가하지 않는 것은 쇳가루 공해가 무서워 철강 공장을 짓지 않는 것과 같다"며 '카지노 알레르기'를 이겨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카지노의 부작용을 제어할 수 없는 나라라면 선진국이 될 자격도 없다. 우리 경제는 공항 면세점을 놓고 다투고 카지노를 망국(亡國)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그 선(線)에 딱 멈춰 서 있다.




송희영 논설주간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09/2013080903241.html



Posted by 겟업
2013. 9. 20. 00:56

하얀 날개를 찾아 나선 것은 월요일 오전이었다. 경남 통영어시장에서 5분 정도 걷자 아담한 달동네가 나타난다. 마을 어귀에 표지판이 붙어있다. ‘동피랑 벽화마을, 하얀 날개는 50m 왼쪽’. 화살표를 따라가자 잿빛 담벼락에 막 날아오르려는 자태의 날개가 보인다. 관광객들이 줄을 서 날개 그림에 등에 기대고 사진을 찍는다. 동쪽의 비탈이라는 뜻의 동피랑 마을에는 80채의 낡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골목 사이로 120개의 벽화가 자리 잡고 있다. 어린 왕자와 수줍은 주정꾼, 꿈꾸는 고래와 활짝 핀 해당화…. 이 중 하얀 날개는 희망의 비상으로도 불리는 대표작이다.

동피랑은 짧은 기간에 통영의 아이콘이 됐다. 일개 달동네를 보기 위해 하루 평균 3000명씩, 일 년에 100만 명이 찾는다. 이런 작은 기적이 알려지면서 전국에 100곳 넘는 벽화마을이 생겨났다. 성공은 로또처럼 이루어진 게 아니다. 돈으로 쌓아 올린 것도 아니다. 끊임없는 생각의 에너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지역NGO인 푸른통영21의 윤미숙(51) 사무국장 등이 창의적인 생각을 한 사람들이다. 윤씨에게서 벽화마을의 탄생사를 들어봤다.

스토리는 6년 전 시작된다. 통영시는 달동네인 동피랑을 재개발하려 한다. 마을 꼭대기에 이순신 장군이 만든 통제영의 망루 터가 있었다. 이를 복원하면서 일대에 공원을 조성하려 했다. 갈 곳이 없는 세입자들은 반발했다. 시와 주민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푸른통영21이 나선 것이다. 문화복원과 비탈마을 사이에서 고민하다 발상을 전환한다. 오래된 마을·골목도 문화재가 아닐까. 하지만 마을을 문화명소로 바꾸기 위해서는 단장이 필요했다. 지저분한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자는 제안은 그때 나온 아이디어였다.

물감 값과 인건비를 지원해줄 곳이 없었다. 마침 공고된 지역혁신 공모사업에 응모해 정부지원금을 타낸다. 고작 3000만원이었다. 동피랑의 현인들은 이번에도 새로운 생각을 해낸다. 인터넷을 통해 예술 기부 자원자를 모으기로 한 것이다. 약간의 경비만 보조해줬음에도 자원자들은 정성껏 그려줬다. 저마다 블로그를 통해 동피랑을 홍보했다. “효모를 넣은 빵처럼 빠르게 호감이 퍼져나갔다”고 윤씨는 회고했다. 그 호감의 힘으로 재개발 사업은 축소됐다. 몇 채만 허물어 망루를 만들었고 대부분의 주민은 그대로 머물 수 있게 됐다.

담벼락 벽화는 몇 년 지나면 색이 바래 흉물이 되기 십상이다. 지속 가능한 방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2년마다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격년 벽화전’을 생각해냈다. 지금의 그림은 지난해 봄 그려진 3차 벽화전의 산물이다. 다음 벽화전은 내년 4월에 열린다.

관광객이 많아지자 주민들이 피해를 본다. 문을 열어보거나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데 화가 난 일부 주민은 벽화 삭제를 요구한다. 하얀 날개에 붉은 스프레이를 뿌리기도 했다. 주민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할 묘안이 필요했다. 주민당 1만원을 거둬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 카페·점방·구판장 같은 수익사업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마을기업으로 선정됐다. 이에 따른 지원금으로 맨 먼저 매출관리시스템인 POS를 설치했다. 투명한 관리야말로 자치의 토대였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재개발은 성공, 달동네는 좌절의 상징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정반대로 재개발이 애물단지가 돼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피랑은 재개발과 달동네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준다. 남쪽 바다 끝에서 단돈 3000만원으로 100만 명이 찾는 관광지를 만들어냈다. 가난한 사람들과의 공존과 평화도 만들어냈다. 분명 동피랑 골목에는 희망의 날개가 있다.

이규연 논설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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