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4. 10:16

포로된 아들 석방 위해 5년 헌신
탈레반 마음 얻으려 외모도 바꿔
풀려난 아들 구금 탓 모국어 잊어

2009년 6월 30일 오후 7시. 로버트 버그달과 부인 자니 앞에 정복을 입은 군인 두 명과 군목이 나타났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군인 가족에겐 이는 단 한 가지 사실을 뜻한다. 부부는 두 달 전 입대한 아들 보의 죽음을 떠올렸다. 하지만 군인들은 이들 앞에 ‘DUSTWUN(Duty Status Whereabouts Unknown· 위치 불명의 임무 상태)’라는 일곱 글자를 내려놓았다. 아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한 버그달의 5년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 전쟁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끝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아프가니스탄 반군 탈레반에 포로로 잡혀 있던 보 버그달(28·사진) 병장의 무사 귀환을 알렸다. 오바마는 이날 백악관에서 “전장에 어떤 병사도 남겨두고 나오지 않겠다는 미국의 변치 않는 의무를 재확인한 것”이라 고 말했다. 보는 탈레반에 붙잡힌 유일한 미군 포로다.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 중이던 탈레반 지도자 5명과의 교환 조건으로 구해낸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이 미국민과 미군을 적극적으로 납치할 빌미를 제공한다”는 논란을 무릅쓰고 내려진 결정이었다.

지난달 3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 참석한 로버트 버그달(왼쪽)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 버그달은 아들 보의 석방을 위해 노력한 오바마 대통령과 협상을 중재한 카타르 정부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워싱턴 AP=뉴시스]
 오바마 옆엔 버그달 부부가 나란히 서있었다. 버그달은 감격에 겨워 아랍어를 섞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보의 석방 뒤에는 아버지의 숨은 헌신이 있었다. 그의 대응은 초기부터 남달랐다. 군 수색작전이나 협상이 틀어질 것을 우려해 소수의 가족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 2009년 7월 탈레반이 버그달 병장의 첫 생존 동영상을 공개하자 아버지는 아프간어인 파슈툰어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각종 군사 게시판과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지대의 역사와 문화, 아들의 석방에 변수가 될 만한 국제 정세를 파고들었다.

 감정적 대응은 자제했다. 미국 정부에 적극 협조하는 동시에 탈레반에겐 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버그달은 유튜브에 전쟁 중 사망한 탈레반에 대한 위로의 말을 올리기도 했다. 파슈툰어를 섞어 말하며 이슬람 문화에 대한 존중감을 표했다. “아이다호와 아프가니스탄은 공통점이 많다”고도 했다. 수염을 길러 연대감을 보여줬다. 그는 탈레반과 직접 접촉하기도 했다. 아이다호의 산골, 인구 6000여 명의 소도시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버그달은 2012년 5월 보의 26번째 생일을 앞두고 인터뷰를 자청했다. “미국 정부는 아들과 탈레반 죄수의 맞교환을 하루빨리 실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탈레반 내부에서 보와 탈레반 죄수 맞교환에 대한 반발이 일어난 것을 알게 돼 조급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대선을 앞두고 있어 정치적 압력에 따라 맞교환이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의 인터뷰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보 이야기는 순식간에 전국적 이슈로 떠올랐다.

 31일 아들이 석방돼 특수부대가 보호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야 버그달은 비로소 마음껏 감정을 드러냈다. “ 우리의 외아들과 포옹할 순간만을 고대하고 있다.” 독일로 이동해 치료 받는 보의 건강 상태는 양호하지만 오랜 구금으로 영어를 거의 잊었다. 그는 미군이 아프간 국경지대에서 헬기에 태우자 종이에 ‘SF(Special Force·특수부대)?’라는 글자를 썼다.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울음을 터뜨렸다고 군관계자는 전했다. 

전영선 기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847808&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9. 14. 10:06

예전에 비디오 영화 앞에 모 그룹의 기업광고가 있었다. 무당벌레가 풀잎을 오르고, 청개구리가 물속으로 뛰어들고, 거위가 홰를 치고, 민들레가 날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기업의 이미지로 차용한 광고다.


난 그 광고의 조감독이었다. 내 선임조감독은 어디서 청개구리와 무당벌레를 구해야 하냐며 걱정이 태산같았다. 나는 선임조감독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친 뒤 1990년 6월 어느 일요일 경기도 양평 근처에 있는 ‘국수역’에 갔다. 그곳에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들을 모아놓고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준 뒤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이 형이 다음주 일요일에 올 테니 그때까지 너희들은 청개구리와 무당벌레를 잡아놓아라. 그러면 청개구리는 한 마리당 200원, 무당벌레는 한 마리당 100원씩 주겠다”라고.


일주일이 지난 후 난 선임조감독과 함께 아이들을 만나러 국수역으로 갔다. 국수역에는 예닐곱명의 그 지역 초등학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뒤에는 서너명의 어머니들이 잔뜩 화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서 계셨다. 아이들 앞에 내가 나타나자 한 아주머니가 레이저급의 안광을 쏘아대면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아이들에게 청개구리하고, 무당벌레 잡으라고 시킨 사람입니까” 난 영문을 몰라서 “왜 그게 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하고 되물었다. 아주머니는 바닥에 펴놓은 우산을 치우셨다. 그 안에 과실주를 담그는 커다란 유리병이 무려 세 개나 놓여져 있었다. 알고 보니 내 제의를 받고 아이들은 지난 일주일간 들로 산으로 물가로 다니면서 무당벌레 한 병, 그리고 청개구리를 두 병 가득 잡아놓았다. 몇몇 아이들은 학교도 안가고 청개구리와 무당벌레를 잡으러 다녔으니 어머니들로서는 화가 단단히 날 만도 했다. 아이들은 무려 청개구리 300여 마리, 무당벌레 500여 마리를 잡아놓았다. 어머니들은 무섭게 나를 바라보시면서 어서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빨리 이곳을 떠나라는 무언의 압력을 보내고 계셨다.


난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금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려면 10만원이 넘게(90년에 10만원이면 꽤 큰돈이었다) 필요한데 지갑을 탈탈 털어도 돈은 5만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난 어머니들에게 미안하지만 지금 가진 돈이 5만원 밖에 없다고 솔직히 말했다. 어머니들은 당신들 때문에 애들이 학교도 안가고 고생했는데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냐며 화를 내셨다.


난 솔직히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잡아 놓을 줄 예상하지 못했다. 5만원은 드리지만 청개구리 50마리 무당벌레 50마리만 가져가겠다고 제안하는 순간 선임조감독이 어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아주머니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저희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잡아 놓을 줄 몰랐고 아이들과의 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청개구리 10여 마리 무당벌레 10여 마리면 충분하니 나머지는 아이들과 함께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오늘 모자란 돈은 다음주 일요일에 다시 찾아와 꼭 드리고 주민등록증을 되찾아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때서야 아주머니들은 화를 푸시곤 아이들과 함께 돌아가셨다.


난 선임조감독에게 따져 물었다. “형, 5만원도 엄청 큰돈인데 뭐하러 그런 약속을 해요? 우리가 뭐 대단히 잘못한 것도 아니지 않아요?”그때 선임조감독이 말했다 “야, 저 아이들은 어쩌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처음 약속한 것일수도 있어. 그런 아이들에게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거라는 인식을 심어줘서 되겠니?” 순간 난 그 형이 너무나 존경스럽고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얼마 전 우리는 우리지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희생적으로 봉사하고, 또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많은 분들의 약속을 들었다. 이제 앞으로 4년간 우리는 그분들이 우리에게 하셨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국수역 앞마당에서 내 선임조감독이 초등학생들에게 보여줬던 약속의 중요성을 그분들이 절대 모르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이사


http://www.hankookilbo.com/v/9acf8265b6a14029b8841404dd1a4e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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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4. 10:04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하는 선장과 선원의 모습을 보며 분노한다. 동시에 의문스러워한다. 그래서 ‘악마’라는 답을 떠올린다. 그들이 아예 다른 종류, 가령 악마라면 분노가 치밀긴 해도 이해가 어렵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우리의 심각한 상태를 예시할 뿐이라고 생각하면, 명치끝에 뭔가 걸린 듯이 답답해진다.

“가만히 있으라.” 짐작건대 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승객들 모두가 갑판으로 뛰쳐나오고 그러면 자신들이 구조될 확률이 낮아질 것을 우려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지독하게 이기적이었다. 하지만 해경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탈출할 때 그들은 아주 태연하다. 이들이 ‘악마’가 아니라면 이 태연함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해경이 도착했으니 그들이 승객들을 구하겠지”라고 믿었다고 보는 것이다. 선원들은 해경이 ‘자신들과 달리’ 선의를 가지고 직무에 충실할 것이라 믿었으며, 또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승객 수백명이 죽게 될 것을 예상했다면 구조 직후 전화나 걸며 한갓지게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통을 넘겨받은 해경 역시 선원과 같았다. 현장에 처음 도착한 123정 함장은 인터뷰에서 세월호 가까이 배를 대면 함께 침몰할 것을 우려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안전이 우선이었고, 장비도 훈련도 없었기에 사태에 대처할 방법도 몰랐던 것 같다. 이들은 다시, 자신과 가까운 언딘마린인더스트리는 ‘자신들과 달리’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은 것 같다. 구조작업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잘못도 잘 덮어주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언딘은 독점적 사업권에서 얻을 이익에는 관심이 있었겠지만, 제대로 된 구조 능력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이런 연쇄는 반대 방향으로도 이어진다. 회사는 불법 개조와 과적으로 사고 위험을 잔뜩 높여 놓고는, 선원들은 비상사태를 잘 처리할 것이고, 구조는 해경이 잘 해주리라 믿은 것 같다. 한국선급과 해운조합은 업무는 태만하게 처리하고 이권을 누리는 데 더 신경을 썼지만, 선사가 자기 이익을 생각해서도 배를 침몰시킬 수준의 어리석음을 저지르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런 추론이 맞는다면, 우리가 사는 생태계는 부패와 배임의 연쇄로 심각하게 얼룩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부패나 배임은 사회적 신뢰를 배반함으로써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익이 가능하려면 다른 사람은 신의와 협동의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섰을 때, 새치기하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만일 모든 사람이 새치기를 시도하고 있다면, 그는 새치기에 성공할 수 없다. 사기꾼을 생각해보라. 사기를 치기 위해서는 속는 사람 그러니까 순진하게 믿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사기꾼인 세계에서는 사기로 이익을 얻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부끄러움을 갖는 이유는, 신뢰를 배반하고 선의를 약탈하는 일이 계속된 결과 그런 배반을 통해 이익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타자의 선의와 유대감이 이제 심하게 고갈되었고, 우리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직관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신뢰 약탈자들의 이익 추구를 가능하게 할지언정 그들이 내던진 공익적 가치를 지키는 ‘순수기업인’, ‘순수관료’, ‘순수대변인,’, ‘순수대통령’이 사라진 세상을 보여준다. 이런 악덕의 연쇄가 마침내 어린아이들을 수장시킨 것이며, 이제 그들은 ‘자신과 다르리라 믿었던’ 집단에 대해, 말단 해경에서 청와대까지 책임을 전가하는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6760.html



Posted by 겟업
2014. 9. 14. 10:03

“디즈니랜드에서 커다란 미키마우스 인형을 들고 레스토랑에 들어갔어요. 남자친구하고 두 사람이라 당연히 두 명이 앉는 창가 자리로 안내받을 줄 알았죠. 그런데 웨이터는 4인용 테이블로 안내해 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미키 씨는 여기 앉으세요’ 하면서 의자를 끌어다 주더라니까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디즈니랜드에서는 직원을 ‘배우(cast)’라고 부릅니다. 레스토랑 웨이터도 마찬가지. 그는 웨이터라는 배역을 ‘오디션’을 통해 따낸 배우입니다. 웨이터 복장 역시 무대의상일 뿐. 이들은 레스토랑에 밥을 먹으러 온 손님을 상대할 때도 자기 연기를 지켜보러 온 관객이라 여깁니다. 그러니 미키마우스가 비록 인형이라고 해도 엄연한 손님인 셈입니다. 이 연기 결과는 고객 감동으로 이어진 게 당연한 일.

이런 ‘배우 효과’는 보통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분야에서 더 두드러졌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실제로 디즈니랜드에서는 청소부가 제일 잘 훈련받은 배우라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눈에 잘 띄어 관객들이 제일 질문을 많이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디즈니랜드에서 청소부에게 “지금 무얼 줍고 있나요”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떨어뜨린 꿈의 조각을 줍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하네요. 

이렇게 디즈니랜드 배우들이 관객을 감동시킨 내용을 한데 묶은 이야기가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몇 개 더 소개하면 이런 식입니다.

어느 중년 부부가 음식을 주문하면서 어린이용 세트를 추가로 시키더랍니다. 점원이 의아해하자 “10년 전에 우리 아이가 세상을 떠났는데 생전에 여기서 음식을 맛있게 먹었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잠시 후 점원은 요리와 함께 어린이용 의자도 가져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자녀분이 여기 있는 걸 모르고 어린이용 의자를 이제야 가져왔습니다.” 저 부부는 아마 이 배우 연기를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한 꼬마 아이가 디즈니랜드에 있는 모든 캐릭터에게 사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람선을 타다가 사인 받은 종이를 모두 물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유람선이 선착장에 도착하자 직원은 “사인을 찾아 전부 집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정말 며칠 뒤 사인이 도착했는데 전에 없던 한 장이 늘어났습니다. 사인과 함께 도착한 편지에는 “인어공주가 사인을 찾아줬단다. 마지막 한 장은 인어공주 사인이야”라고 써 있었습니다.

감동은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저는 화가 나면 제 팔에 칼로 상처를 내는 버릇이 있었어요. 그러다 디즈니랜드에 갔는데 피터팬이 보이더군요. 저는 피터팬을 보자마자 달려가 손을 흔들며 ‘당신이 내 영웅’이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피터가 ‘오, 아닙니다. 공주님께도 전쟁의 상처가 있잖아요. 냄새나는 해적들을 잔뜩 무찌르셨나 봐요. 공주님, 당신이 진정 저의 영웅입니다’ 하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러고는 저를 꼭 안아주며 ‘넌 정말 예쁜 아이란다. 이제 네 팔에 상처 내는 일은 그만 하렴’이라고 속삭여줬어요. 저는 그날 하루 종일 울었답니다. 그날 이후로 자해하는 일도 없었고요.”

자, 샐러리맨 여러분, 오늘은 어떤 ‘윗것’이 또 어떤 방식으로 여러분을 괴롭혔습니까? 그럴 때 스트레스로 자기 몸과 마음만 다치지 말고 디즈니랜드 배우처럼 연기를 해 보면 어떨까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무능한 상사일수록 아랫사람을 더 괴롭힌다고 합니다. 여러분, 회사생활이 힘든 건 여러분 잘못보다 상사 잘못일 확률이 높은 겁니다. 

그러니 나만 스트레스 받지 말고 KBS 연속극 ‘정도전’ 대사를 떠올리며 연기를 시작하는 겁니다. “전장에서 적을 만나면 칼을 빼들어야 하지만 조정(직장)에서 적(상사)을 만나면 웃으세요.” 이때 이 연속극에 나오는 대사처럼 “남을 속이려면 나부터 속여야 한다”는 것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진짜 연기에 심취한 배우만 감동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법이니까요.

황규인 스포츠부 기


http://news.donga.com/3/all/20140523/63695117/1


Posted by 겟업
2014. 9. 14. 09:46

아이들을 돌봐주실 시부모님을 따라 2년 전 이사해 들어간 아파트 단지 안에는 때마침 혁신학교로 지정된 초등학교가 있었다. 취학 한참 전인 두 아이를 데리고 영문도 모른 채 입주했다가 순식간에 전세금이 1억원 넘게 올라버려, 즐비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을 노상 뒷목 잡고 지나다녀야 했던 아파트다.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주변 아파트에서 위장 전입해오는 사람들도 많아 한동안 엘리베이터 안에는 ‘입주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위장 전입자를 색출해내겠다’는 살벌한 공고문이 수시로 나붙기도 했다. 도대체 혁신학교가 뭐길래!


6ㆍ4 지방선거에서 혁신학교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바야흐로 공교육의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리라는 장밋빛 전망들이 만개하고 있다. 전국 17개 시ㆍ도교육청 중 진보교육감을 배출한 13곳 외에 보수 교육감이 당선된 대전시까지 혁신학교 도입을 결정했다니, 진보진영의 이 히트상품이 명실상부 우리 교육의 거부할 수 없는 새 패러다임으로 부상한 듯하다. 전국 초ㆍ중ㆍ고교에 1,000개가 훌쩍 넘는 혁신학교가 들어서게 되면 일단 전세금이 좀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가 되긴 하지만, 나로선 어쩐지 혁신학교 성공 여부에 대해 크게 낙관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두 아이의 놀이터 사교생활을 통해 약소하게나마 구축된 ‘동네 엄마 네트워크’에 따르면, 혁신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아이는 너무나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고, 아이가 행복하다니 좋기는 한데, 뭔가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로 요약할 수 있는 그 감정은 거의 명언의 반열에 올라도 좋을 칼럼니스트 김규항의 진단과 일맥상통한다. ‘보수적인 부모는 자녀가 단지 일류대생이 되길 원하고, 진보적인 부모는 자녀가 의식 있는 일류대생이 되기를 바란다.’


“애가 학교에서 배추만 뽑고 있어요. 생태체험도 좋지만 공부를 너무 안 시켜요.” “단원평가 말고는 시험을 전혀 안 보니 학업에 긴장이 없어요.” 혁신학교는 바람직한 교육 모델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입시에 최적화된 교육 시스템은 아니다. ‘공교육 과정을 이수하는 대안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놓고, 장차 이 학교가 입시에서도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엄마들은 회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교육의 목표가 명확하다. 명문대 입학이다. 그것은 진보적인 엄마든, 보수적인 엄마든, 중도적인 엄마든, 매한가지다. ‘아무것도 안 시키고 자유롭게 키웠어요’라고 육아서적에 쓸 수 있으려면 인과관계가 어찌 됐든 아이가 명문대에 들어갔어야 한다. 내 아이가 공동체의 선에 복무하는 시민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도 일단은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하길 원한다. 이것은 탐욕이나 이기심 때문이 아니다. 명문대라고 나와봤자 대단할 것도 없음을 수도 없이 목도하지만, 그마저도 이뤄내지 못하면 생존 가능한 생태계에서 아예 축출되고 마는 세상 아닌가. 천지개벽이 없는 한 이 지독한 입시경쟁은 종식될 수가 없다.


배추의 생장과정을 요약, 설명해주고 암기시키는 데는 몇 분이면 족하다. ‘압축교육’이다. 하지만 직접 배추를 키워보며 자연의 구조를 익히는 데는 일 년이 걸린다. 그 안에 시험문제가 나와버리면 아마도 틀릴 테지만, 이렇게 익힌 지식은 영원히 존재에 각인된다. 문제는 서서히 그러나 깊이 배우고 있는 이 ‘숙지의 시간’을 엄마들이 견뎌낼 수 있느냐이다. 보수언론은 벌써 혁신학교의 학력저하를 주장하며 시비를 걸 태세다. 머잖아 10여년 전 평준화 논란이 되풀이될 테고, ‘명문대생 ○○명 배출’의 플래카드를 내걸지 못하면 혁신학교에 대한 지지도 순식간에 철회될 것이다. 또다시 공동체 교육에서 수월성 교육으로, 한국 교육의 진자운동은 계속될 것이다.


“선생님은 내가 잘 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데, 엄마도 그럴 수 있어?” 입주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혁신학교에 다니는 5학년짜리 아이의 말이다. 일단 보장된 혁신학교의 수명은 4년. 우리는 이 4년이나마 기다릴 수 있을까. 명문대를 가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 세상에 1㎝라도 다가가기 위해 힘을 모으는, 혁신학교에 걸맞은 ‘혁신엄마’들이 될 수 있을까.


박선영 문화부기자


http://hankookilbo.com/v.aspx?id=655f57aad78341d0b4d113f6948cf8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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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4. 09:44

지난 한 달간 카페를 빌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이들을 위한 여행학교’를 열었다. 내가 여행학교를 꾸린 이유는 두 가지였다. 지속가능한 여행가로 살기 위해 정기적인 학교 운영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좋은 여행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적지 않은 참가비를 내고 누가 올까 걱정도 했지만 제법 많은 분들이 찾아왔다. 20대부터 50대까지, 여성이 압도적이었다. 첫 여행지가 몽골이나 요르단처럼 ‘센’ 여행자도 있었고, 고생하는 오지 여행 말고 편한 도시 여행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고백한 이도 있었다. 우리는 목요일 밤마다 모여 여행과 여행에서 만난 사람을, 여행을 빛내준 음악과 책을, 더 좋은 여행자가 되는 법을 이야기했다.


내가 처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해가 1993년이니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여행의 풍속은 많이 달라졌다. 첫 유럽 여행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허리색을 차고 있었다. 지금 유럽에는 트렁크를 끌고, 하이힐이나 구두를 신고, 명품 백을 든 여행자들이 넘친다. 그 시절 여행은 오랜 시간과 큰 돈을 들여 준비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이었다. 이제는 TV 홈쇼핑이나 인터넷에서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살 수 있는 상품이 됐다. 한 마디로 여행은 가장 잘 팔리는 소비재가 됐다. 1년에 1,500만명이 출국하니 어디를 가나 한국인 단체 여행자들과 마주친다.


여행을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생각의 성을 벗어나는 것’으로 본다면 몰려다니는 여행에서는 그 성을 벗어날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사고의 균열을 불러일으킬 만남 같은 것도 생기기 어렵다.


여행학교가 끝났을 때 함께 했던 이들은 가장 좋았던 시간으로 책임여행에 대해 이야기한 시간을 꼽았다. 책임여행은 아직 우리에게는 낯선 여행의 풍속도다. 여행자에게는 자신이 여행하는 지역의 자연과 경제, 문화적인 환경을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개념이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공정하지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으며, 생태적이거나 윤리적이지도 않았다는 반성에서 1990년대 유럽에서 시작된 여행의 새 흐름이다. 1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도 책임여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여행을 제법 다닌 이들이라면 자신이 괜찮은 여행자인지를 고민한다. 그들은 여행이 ‘어디로’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이며, ‘소비’가 아니라 ‘만남’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쓰는 돈이 현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자신이 먹는 음식이 로컬푸드인지를, 자신이 그곳의 문화를 존중하는지 짚어본다. 그들은 유명 관광지를 빠르게 훑으며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여행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교감하는 여행을 꿈꾼다. 그래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패키지 여행을 벗어나 혼자 떠난다.


책임여행자가 되는 길은 귀찮고, 번거롭고, 불편하다.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포터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여행사인지 꼼꼼히 따져야 하고, 호텔에서는 시트나 타월을 갈지 않아도 된다고 미리 알려줘야 한다. 인사말 같은 현지어도 익히고, 여행하는 지역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 미리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다.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같은 다국적 기업의 체인점은 포기해야 한다. 여행 나와서까지 이렇게 해야 해?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일들은 그렇게 귀찮고, 번거롭고, 불편하다. 핵 발전소나 공장형 축산에 반대하는 환경운동도, 장애인이나 성적 소수자를 위한 인권운동도, 더 나아가 민주주의 자체도 그렇다. 세상이 흘러가는 속도나 방향과는 상관 없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은 언제나 소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 덕분에 느리게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결국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모두가 편리하고 빠른 것만을 찾는 이 시대에 느리고 불편한 것을 자발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그래서 우리가 일상을 꾸려갈 이 공간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늘 떠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김남희 여행가


http://hankookilbo.com/v.aspx?id=2794b0840bff415992a397e77756bc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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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4. 09:42

국방부가 군복무를 대학 학점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대학생들에게는 귀가 솔깃할 만한 제안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보편적인 보상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공공기관 취업자에게만 혜택이 한정된 군가산점제와 마찬가지로 이 제도 역시 대학생만을 위한 것이며 15%에 달하는 고졸 군복무자와는 사실상 무관하다. 대학생에게도 실질적인 혜택인지 의문이다. 군복무로 학점을 인정받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21개월의 군복무에 대한 보상치고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일부러 학점을 더 듣고 졸업하는 학생들도 있는 마당에 사실상 9학점을 면제시켜 주는 것이 과연 ‘보상’일지 잘 모르겠다.


근본적으로는 군가산점제에서 학점인정제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에서 나타난 접근방법을 지적하고 싶다. 첫번째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군복무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보상은 군복무자에게 합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월 10만원 남짓한 현재의 군장병 월급은 언급하기조차 부끄러운 수준이다. 장기적으로는 최저임금 수준은 돼야겠지만 최소한 정치권에서 이미 논의된 대로 30만~50만원 수준까지는 지체없이 인상돼야 한다. 내무반 시설 등 기본적인 병영생활의 의식주 문제에서도 획기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모두 돈 드는 일이다. 의무복무니까 고충이 있어도 감수하라는 식이 아니라 의무복무니까 더욱 최대한의 보상과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 예산을 마련할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는 그 어떤 대안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를 군 내부에서 찾지 않고 군 외부에 떠넘기려고 하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군가산점제나 학점인정제는 공공기관이나 대학 등 군 외부에서 떠맡아야 하는 일이다. 이들 기관들의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시행될 수 없는 사안이다. 예컨대 대학의 총이수학점은 대학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 설정한 것이고, 수업 외의 활동을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것은 그 활동이 수업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다고 판단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군복무 경험이 과연 일정 학점 취득과 동등한 가치가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한 대학과 사회의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군복무경험이 대학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군복무 경력을 학점이나 점수로 인정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 군복무가 가치 있는 경험으로 사회의 인정을 받고, 자연스럽게 대학과 사회가 여기에 반응하는 것이 순서다.


군복무로 인한 경력단절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 군복무기간을 최소화하고 근무 외 휴식시간을 보장해 자기계발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생이라면 원격강좌를 통해 군복무기간 동안 10학점 정도는 학점 취득이 가능하다. 고졸자들도 다양한 자기계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원격강좌를 수강하는 군장병은 1% 남짓이다. IT강국에서 기술적인 문제가 있을 리 없다. 일과 후 충분한 자기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병영문화가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군이 병영문화를 개선해 이 좋은 제도를 잘 시행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까, 아니면 군복무 자체를 학점으로 인정해 달라고 군 외부에 요구해야 할까?


열악한 병영현실을 그대로 놔둔 채 외부기관에 군복무를 가산점이나 학점으로 인정받게 해달라는 건 효과도 미미하지만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여성 장애인 고졸자 등과의 차별과 형평성 문제 등 불필요한 갈등까지 야기하고 있으니 더욱 문제다. 안락한 병영시설에서 좋은 상관·동료들과 함께 지내면서 세상살이도 배우고, 건전하고 민주적인 조직문화도 익히고, 정당한 임금을 받아 저축도 하고, 일과 후에는 취미생활을 하고 공부도 하면서 18개월 이내로 군복무를 한다면 어떨까? 군복무 보상의 열쇠는 여전히 국가와 군대가 쥐고 있다. 충분한 비용을 들일 용의도 없고 병영문화 자체를 획기적으로 바꿀 의지도 없으면서 제시되는 모든 대책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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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4. 09:41

세월호 참사 후, 우리 사회는 ‘해답’ 찾기에 분주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후 멸종했다고 믿었던 대형참사라는 이름의 괴물이 다시 살아나 활개를 치는 모습에 지식인 사회는 바쁘게 그 원인을 찾아다녔다. 한국일보도 ‘세월호를 잊지 말자’라는 제하의 시리즈 기사를 준비하면서 과연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냉정하게 물었다. 이에 지난 5월 12일부터 8회에 걸쳐 인문학자와 작가들로부터 장문의 글을 받아 ‘전 근대사회의 망령’이라 부를만한, 참사의 근원을 따져봤다.


신문 등 매스컴들이 내놓은 진단들은 어쩌면 눈에 보이는 근인(近因)들을 언급하는 데 불과했을지 모른다. “안전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거나 “경직된 관료사회가 재난대응의 발목을 잡았다”와 같은 분석들로 일원화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고로 받아본 학자들의 대답은 이와 달랐다. 이들은 세월호의 침몰, 그리고 이후 드러난 우리 사회의 흉측하기 짝이 없는 상처들이 다름 아닌 ‘비뚤어진 근대화’의 칼날에 의해 생긴 것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잘못된 길을 걸어온 근대화 과정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참사가 빚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가운데 독일 카셀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덕영 교수는 “단순히 공무원의 복지부동, 선원들의 무책임성, 자본의 탐욕만으로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며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 전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통해 이해해야 하는 복합적인 현상이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분야에서, 그리고 오래도록 뜸을 들여가며 완성했어야 할 근대화가 우리 사회에선 경제 성장에 집착해 진행됐고 그래서 세계 경제규모 10대 강국이 21세기에도 전근대적인 참사를 겪게 됐다는 해석을 내놨다. 농로를 포장하고 수출 1억 달러(1974년)를 달성하는 것만이 근대화의 전부라며 복지, 정치, 노동 등 여러 분야의 근대화를 소홀히 한 탓에 현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머릿속에는 알게 모르게 ‘오직 성장’이라는 치우친 이데올로기가 자리했고 인간 자체에 대한 존귀함은 뒷전으로 물러났다는 것이다.


비뚤어진 근대화의 결과물을 비단 세월호 사고와 같은 거대한 참상을 통해서만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근대화의 태중에서 나온 자식들은 사실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주거 공간이라는 속성은 거의 무시된 채 오직 재테크 수단이란 정체성을 앞세워 하우스푸어를 양산하며 서식지를 넓혀간 아파트는 인간보다 성장을 중요시한 근대화가 낳은 또 다른 자식이 아닐까. 김덕영 교수는 책 환원근대에서 인구밀도가 높지만 아파트가 많지 않은 네덜란드의 예를 들며 ‘아파트 공화국’ 한국의 현실이 잘못된 근대화의 유산임을 지적했다.


경제적 가치로 모든 가치를 가리는, 비뚤어진 근대화의 하이라이트는 이른바 ‘공장사회’를 지탱하는 공교육이다. 고속 성장을 근대화의 전부로 인식한 기성 세대와 과거 정권 탓에 우리 아이들은 인성 교육에서 멀어져 특목고와 사교육의 현장에서 화석연료처럼 불타고 있는지 모른다. 김두식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아이들이 재능과 열정을 너무 일찍 소진해버리는 ‘번 아웃(burn out)’에 내몰리고 있다”며 “이로 인해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잘 팔리는 문화 상품을 만들기 위한 원자재로 청소년을 다루는 K팝 업계, 몸뚱이를 불리는 데 혈안인 일부 종교단체 등 ‘탈(脫) 빈곤’을 핑계로 한 비뚤어진 근대화는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행복하다”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돈보다 앞서는 가치들을 포기한 비뚤어진 근대화 때문에 불행한 이들에게 30여 년 전 미국의 경제학자 티보르 스키토프스키는 “항상 많은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배가 침몰해도 발 빠르게 사람을 구하지 않는 비정함, 지나친 사교육에 젊음이 소진되어 버린 아이들. 2014년 한국이 짊어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는 사실 물질적인 무언가가 부족해서 빚어진 것들이 아니다.



양홍주 경제부 차장대우


http://hankookilbo.com/v.aspx?id=e324ea3b63b3472cb8d0ab6c451ea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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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4. 09:39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기는 것이 내 일이다. 만나는 이들 대부분은 ‘싸우는’ 사람들. 마을에 들어서는 송전탑 때문에 싸우고,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버린 회사를 상대로 싸우고, 새파란 나이에 꼬꾸라진 자식의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싸우고, 십 년을 일해도 6개월짜리 취업계약을 해야 하는 소모품 인생 때문에 싸운다.

싸우다 말한다. “세상이 이럴 줄은 몰랐어요.” 그들은 자신들 사정 한 줄 전해주지 않는 주류언론에, 용역을 사 자신들을 내동댕이칠 수 있는 기업에, 그걸 멀뚱히 지켜보는 경찰들에 당황한다. 가슴을 친다. 반복되어 절망한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죽어야 해결이 되려나 봐요.”

피가 나게 두드려도 무너지지 않는 거대 벽을 앞에 둔 사람의 자조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놀라곤 한다. 죽으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다니. 절망 속에서도 온전히 버리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 슬프도록 놀랍다.

오랜 싸움을 한 이들, 그 과정에서 동료 한둘쯤은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개죽음”. 애꿎은 목숨만 사라졌다. 변한 것은 없다. ‘죽어봤자’ 해결되지 않음을 보아온 경험적 결론이다.

밀양의 이치우 어른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일흔넷 삶에 기름을 부었을 때 경찰은 볏단을 태우다 몸에 불이 옮겨붙었다고 발표했다. 유서가 없으면 가정불화, 생활고, 우울증, 비리 연루 같은 이유가 등장하여 죽음을 희석하기 마련이다.

또박또박 유서를 써 남겨봤자,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얼마 전 “나를 바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그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고인은 자신이 속한 노동조합의 싸움이 승리할 때까지 장례를 미뤄달라 했지만, 경찰은 시신을 외딴 병원으로 옮겨 장례를 치렀다. 이를 막아선 고인의 어머니가 최루액을 맞았다.

비슷한 시기, 그의 회장님이 응급실에 실려 갔다. 회장님의 위태로운 건강이 속보로 떴다. 언론은 회장님의 병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미 사망했지만 회장님의 일가가 승계 문제로 인해 죽음을 밝히지 않는다는 추측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회장님과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닮은 구석이 없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죽음만이 공평하다는 것은, 못난 삶을 향한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 300여명의 목숨이 끽소리도 못하고 바다에 잠겼을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우리의 죽음이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 느꼈다. 바다에 잠긴 목숨 사이에도 급이 있다. 정규직 노동자와 계약직·아르바이트 노동자, 생전의 지위에 따라 부여되는 관심과 보상이 달랐다.

어찌 죽음마저 이처럼 대우가 다른가 한탄한다면, 그래서 눈살이 찌푸려진다면 방법은 하나이다. 남은 사람들이 죽음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

죽음은 기억될 때 가치를 지닌다. 밀양 이치우 어른의 영정을 50여일간 지킨 마을주민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이름 세 글자도 몰랐을 것이다. 한진중공업 김진숙씨가 85호 크레인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김주익이라는 사람이 그곳에서 목을 맨 사실을 잊었을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자. 그것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더 이상은 ‘개죽음’을 만들지 않는 길이다. 그들의 마지막 부탁을, 그들의 삶을 잊지 말자. 그 전에 우리 누구도 죽게 하지 말자.


희정 기록노동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8872.html



Posted by 겟업
2014. 9. 14. 09:39

요즘 우리 사회 공통의 관심사는 안전이다. 국제사회에서도 안전은 주요 화두로도 떠올랐다. 세계 곳곳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의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터키의 탄광 참사 등 위험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제 위험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로 국가, 기업, 사회가 책임지고 관리해 나가야 한다.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안전을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경제계는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바로 다음날 국가안전 인프라 구축을 위해 국민 성금을 모으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경영자총협회 등 경제5단체가 안전 대한민국 구축을 위해 나서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모은 성금은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고 한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 지원, 안전경영 선포식, 노후설비 등 안전시설 점검, 재난대응 시스템 구축, 전문가 양성, 산업별 유형별 재난발생 대응 매뉴얼 제정 보급, 선진국 모범사례 발굴, 관련 기술 연구 촉진 등이다.

경제계의 이런 움직임은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데 기업 안전사고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더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지나친 성과지상주의, 효율 추구의 경제로는 제아무리 안전에 투자를 많이 한들 안전경영을 담보하기 어렵다. 저비용과 고효율로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기업들은 직원의 임금을 낮추고, 인원수를 줄이거나, 사내 하청을 늘리기도 한다.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도 이런 기업이었다.

이윤에 눈먼 청해진해운은 직원들을 쥐어짰다. 세월호에서 배를 움직이는 선박직 15명 가운데 9명이 비정규직이었다. 급여도 업계 평균에 턱없이 못 미쳤다. 당연히 선원들의 이직률도 높았다. 이처럼 기본적인 욕구조차 제대로 채워지지 못하는 조직의 직원들이 책임의식과 공동체의식 등을 갖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불안정한 고용은 직무에 대한 책임감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나쁜 일자리가 우리 사회의 안전에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프레임을 바꾸는 걸로 접근해야 한다. 기업의 안전경영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경제원리를 사람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인간회복의 경제학>의 진노 나오히코 도쿄대 교수는 2000년대 초부터 사람 중심의 경제를 강조해 왔다. 그는 대표적인 모델로 스웨덴의 사례를 꼽았다. 스웨덴은 공업 중심에서 지식 중심의 사회로 옮겨가면서 사람을 가장 중요한 경제 요소로 삼았다. 의료, 교육, 육아 등 사회서비스를 총동원해 사람을 키우고 돕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도록 했다. 투자의 의미에서의 복지로, 일터에서도 일과 복지를 연계한 워크페어(workfare)를 적극 추진했다. 스웨덴은 높은 복지지출 규모에도 양호한 성장세와 높은 국가경쟁력을 이어오고 있다.

12년간 핀란드 대통령을 지낸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도 이런 사람 중심의 경제가 기업과 사회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하고 실행될 수 있도록 힘을 쏟았다. 할로넨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만난 기업인들이 사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달라고 한 요청에 이렇게 답했다. “핀란드를 사업하기 가장 적합한 국가로 만들겠다고 하는데, 저는 사업가에게 가장 좋은 게 모두에게 좋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경제가 눈앞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멀리 내다보고 사람을 중심에 둘 때 비로소 우리는 안전사회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8871.html



Posted by 겟업
2014. 9. 14. 09:37

긴 것은 기고 아닌 것은 아니다 말하게 하소서. 눈치 보느라 눈이 한쪽으로 몰려 붙은 도다리로 살아온 시간을 뉘우치게 하소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다시는 입 밖에 꺼내지 않게 하소서. 절실하게 사랑해야 할 것들과 죽도록 미워해야 할 것들을 구별할 수 있게 하소서. 길이 없다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길이 되어 걸어가게 하시고, 내가 내 운명의 주인임을 아프게 새기며 살아가게 하소서.

바람 부는 날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게 내버려두시고, 어두워지면 우주의 어둠이 몸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게 하소서. 평수 넓은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배기량 많은 승용차를 탄다고 해서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칠점무당벌레의 삶보다 우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소서. 나의 밥그릇이 소중한 만큼 남의 밥그릇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소서.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울음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울음소리로 우리가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남의 노래는 안 듣고 제가 부를 노래의 목록이나 뒤적거리는 노래방에서는 노래하지 않게 하소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게 하시고, 나뭇잎이 튕겨 올리는 햇빛 한 오라기도 감격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으로 하여 내 마음속 물관부에 늘 사시사철 서늘한 물이 흐르게 하소서. 당신과 나 사이의 아득하고 아득한 거리를 자로 재지 않게 하시고, 당신을 그리워하는 미음을 저울로 달지 않게 하소서.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6766.html

Posted by 겟업
2014. 9. 14. 09:36

최근에 주변 사람들이 아프거나 안 하던 일을 한다. 누구는 식욕을 잃어 힘들어하고, 누구는 회사 문제에 집안일도 겹쳐 우울증을 앓는다. 조울증 치료가 호전돼 가던 누군가는 며칠 전 다시 입원했고, 누군가는 길을 떠났다. 각자의 사정이 있지만, 세상일이 서로 무관하지만은 않을 거다.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는 한 친구는 회사에서 새로 인수한 건설회사로 파견 갔는데 거기 속사정을 보니 세월호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멀쩡하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떠올랐다. 그는 자기 나라 일본이 그렇게 싫었단다. 미야자키는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을 만들었고 지난해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그가 그랬다. 일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일본의 고전 <겐지 이야기>도 그렇게 싫었단다. 그는 1941년생이다. “중국과 한국, 동남아 각 나라들을 향한 죄의식에 전율하며 내 존재 자체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심정적으로 좌익이 됐지만, 헌신해야 할 인민을 발견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 외국에서 일장기를 보면 혐오감이 드는 일본인이었다.”(<미야자키 하야오 - 출발점>)

그러던 와중에, 조엽수림 문화를 알게 됐다고 했다. 조엽수림은 히말라야 산맥에서 중국 양쯔강 이남, 대만, 일본으로 이어지는 상록활엽수림인데, 일본 신석기 시대에 이 조엽수림에서 풍요롭고 전쟁이 없고, 종교라면 소박한 애니미즘 정도에 인간의 개성이 존중되는 조몬 문화가 퍼졌다는 연구 결과를 접하고서 이내 조엽수림 문화에 빠져들었다.

<이웃집 토토로>엔 조엽수림의 정령들이 나오는데, 그는 숲을 어떻게 그릴지 무척 고민했다고 했다. 유럽의 근대화된 느낌의 숲이 아니라 울창하면서도 전근대적이고 뭔가 나올 것처럼 무서운 숲, 그 무섭다는 생각이 그 안에 있을지 모르는 것에 대한 존경, 혹은 존중의 마음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면서 그렸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서 숲에 들어가 달리거나 도토리를 줍기를 바라면서 수종을 연구하고 숲을 디자인했단다.

“어린 시절이라는 것은 어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일 때만 맛볼 수 있는 것들을 맛보기 위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5분의 체험은 어른의 1년 체험을 이겨요. … 그 시기에 사회 전체가 어떻게 지혜를 짜서 아이들이 얼마나 무럭무럭 잘 자라 살아갈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영화기자를 8년 넘게 했으니 영화를 꽤 많이 본 편일 거다. 하지만 보면서 눈물 흘린 영화는 두세 편인데, 그중 하나가 <이웃집 토토로>였다. 시골 숲에 사는 가족의 엄마가 병에 걸려 읍내 먼 병원에 입원했다. 어린 자매가 엄마 걱정을 한다. 숲의 정령 토토로가 나타난다. 무심한 표정으로 고양이 버스를 부른다. 자매가 고양이 버스를 타고 엄마의 병원으로 달려간다. 별 장면도 아닌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나 싶었는데, 거기엔 자기 나라가 싫었던 사람이 다음 세대를 향해 쏟은 정성과 배려가 숨어 있었던 거였다.

두서없이 떠오른 영화 대사 하나를 적어본다.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주인공 가족의 아버지가 막내아들을 잃은 뒤 교회에서 하는 설교의 한 대목이다.

“우리는 살면서, 사랑하는 이가 도움을 청하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좀처럼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지 못하며, 우리가 준 게 불필요한 것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충분한 이해가 없더라도 충분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65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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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4. 09:24

1992년 보스니아 내전 때 무슬림을 학살한 세르비아계 정교도들은 대개 이웃 마을 사람들이었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사람이었고, 추수 때면 팔을 걷고 도와줬던 이웃”이었다. 그들의 종교·민족적 광기에 불을 붙인 건 정치꾼들이 퍼뜨린 유언비어였다. ‘무슬림들이 정교도들을 방화하고 살해하려 한다!’ 불안과 공포에서 출발한 것이 종국엔, ‘총구를 머리에 들이대고 아들과 아버지에게 엄마와 딸에게 패륜을 강요’하다가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게 학살된 무슬림과 가톨릭계는 25만여명.

광기에 불을 붙인 이런 유언비어는 나치의 유대인, 집시 학살을 정당화하고, 터키 정부의 아르메니아인 인종청소를 합리화했으며, 캄보디아를 킬링필드로 만들었고, 르완다의 종족 갈등과 인종청소를 야기했다. 권력욕에 눈먼 정치집단은 그렇게 공포와 적개심을 자극해 학살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정치권력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려 했다. 한국인? 그들은 피해자이기도 했고, 가해자이기도 했다.

1923년 9월 간토(관동)대지진이 도쿄 일원을 덮치자, 일본인들은 ‘조센진’들을 보이는 대로 학살했다. 이들을 자극한 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 약탈을 하며 일본인을 습격하려고 한다는 유언비어. 당시 일본인 자경단에 의해 검, 죽창 등으로 희생당한 조선인은 무려 6천여명. 유언비어는 일본 정치집단에서 비롯됐다. 내무성은 각 지역 경찰서에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고 지시했고, 언론이 이를 유포했다. 당시 일본 정치집단은 대지진으로 인한 사회 불안과 혼란을 수습하는 데 희생양이 필요했다.

6·25 전쟁기 한국인의 광기도 이에 못지않았다. 인민군이 남침하자, 남쪽의 군과 경찰은 전국적으로 빨갱이 청소에 나서 10만~20만명의 보도연맹 회원들을 학살했다. 인민군 점령기, 이에 대한 보복으로 군경 및 우익단체 회원과 그 가족들을 살해했다. 다시 국군이 진주하면서, 부역자로 지목된 이들이 처형당했다. 군경이 주도했다지만, 이웃끼리 피의 학살을 번갈아 자행했다.

2일 박근혜 대통령은 유언비어가 세월호 유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사회 혼란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참사 이후 많은 선동적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그러나 치명적인 것은 정권 집단에서 나왔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인 한기호씨는 4월20일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 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다. 국가 안보 조직은 근원부터 발본 색출해서 제거하고, 민간 안보 그룹은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토대지진 때 내무성 지침을 연상케 하는 말이었다. 그날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권은희씨는 실제 유족인 한 여인을 “유가족인 척하는 선동꾼 여자의 동영상”이라며 글과 동영상을 올렸다. 이를 전후해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첩보를 부단히 공개하며 불쏘시개를 제공했다. 지만원씨는 22일 “박 대통령을 쫓아내기 위한 빨갱이들의 ‘제2의 5·18 반란’에 대비해야 한다. … 시체장사 한두번 당해봤나. 세월호 참사는 이를 위한 불쏘시개”라고 떠벌렸다.

너무 저질이었던지, 한동안 관변 유언비어는 뜸했다. 그 물꼬를 튼 것은 기이하게도 박 대통령의 2일 발언이었다. 이튿날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였던 정미홍씨는 “자원봉사자라며 정부의 구조 노력을 폄하하고, 유가족들의 분노를 더욱 키우는 유언비어를 대량으로 확산시키고…” “판단력 없는 청소년들을 이용해 반정부, 반대한민국적 사고부터 가르치는 세력도 나타났다” “이들은 결국 수많은 종북 성향 지자체장들을 당선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튿날 그는 ‘박근혜 퇴진 시위에 청소년들 일당 6만원에 동원’이라는 막장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끔찍한 선동이었다. 분쟁 시기, 반인륜적 인종청소를 불러온 유언비어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치의 괴벨스 문법을 고스란히 따른 것이었다. “거짓말은 처음엔 부정되고, 다음엔 의심받지만, 거듭하면 결국 믿게 된다.” 그러나 ‘권력욕에 눈 먼’ 자들의 무책임한 유언비어가 거대한 반인륜 학살의 업으로 돌아온다. 권력이 그렇게 좋은가.

곽병찬 대기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59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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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4. 09:22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이신중'씨와 '김모험'씨라고 해두자.

이신중씨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완벽하게 자료를 준비하고, 업무 처리는 꼼꼼해서 실수를 찾아볼 수 없다. 일을 할 때 그의 우선순위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김모험씨는 사뭇 다르다. 그의 프레젠테이션 자료에는 종종 구체적 수치나 데이터가 부족하다. 하지만 회의 때마다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새로운 도전이나 기회를 보면 일단 뛰어들고 본다.

컬럼비아대 심리학 교수이자 동기과학센터 소장인 토리 히긴스(사진) 교수는 이신중씨와 김모험씨를 각각 '안정 지향적(prevention focus)' '성취 지향적(promotion focus)' 인간으로 분류했다. 그는 최근에 낸 책 '어떻게 의욕을 끌어낼 것인가(Focus: Use Different Ways of Seeing the World for Success and Influence)'에서 자신과 상대가 두 부류 중 어떤 형이냐에 따라 인생과 업무의 모든 전략을 어떻게 달리 짜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위클리비즈는 최근 뉴욕 컬럼비아대 연구실에서 히긴스 교수를 만났다.


①안정 지향적인 사람과 성취 지향적인 사람에게 광고를 한다면 어떻게 달리해야 하나?

"러닝머신을 판다고 하자. 성취 지향적인 사람에겐 이렇게 해야 한다. '운동 효과가 높은 유산소운동 기구! 왜 이 기구로 운동을 해야 하느냐고요? 심혈관계 운동을 통해 신체 건강을 높이고, 멋진 몸매를 가꿀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광고 문구는 안정 지향적인 사람을 설득하기엔 부족하다. 그런 사람에겐 이렇게 말해야 한다. '최적 기능을 갖춘 궁극의 유산소운동 기구! 왜 이 기구로 운동을 해야 하느냐고요? 충격을 완화한 스테퍼로 걸을 때 발바닥에 닿는 충격이 줄어들고, 특허를 받은 다중 경사면 설정이 걸음걸이를 정밀하게 보정해 줍니다."


②사람은 누구나 성취 지향과 안정 지향 속성을 함께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안정 지향적인 사람인데 성취 지향이 더 필요한 상황에 부닥칠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책의 핵심이 되는 질문이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누릴 때 또는 사회생활을 할 때 각각 다른 동기가 필요하다. 성취 지향적 목적을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가려면 위험을 줄이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인 안정 지향적인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나의 의무는 무엇인가?' '이걸 못 해낼 경우엔 어떤 위험이 따르는가?' 같은 생각은 잠시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뤄야 한다."


③상황에 따라 성취 지향성이 중요할 때와 안정 지향성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


"당신이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이기는 것인지 아니면 지지 않는 것, 즉 실패하지 않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만약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면 성취 지향성이 더 강하게 요구되고, 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경우엔 안정 지향성이 필요하다. 스포츠를 예로 든다면 농구처럼 높은 득점을 해야 하는 스포츠는 무조건 공을 골대에 던져 보는 성취 지향성이 중요하다. 반면 피겨 스케이팅이나 체조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 안정 지향성이 더 중요하다. 만약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더 정확함을 요구하고, 더 분석적으로 되고, 안전성을 생각해야 하는 일이라면 안정 지향 동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항공사 같으면 특히 비행기를 안전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안정 지향 동기가 강하게 작동한다. 굳이 이렇게 구분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자신이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목표로 삼는 것에 따라서 다른 동기를 부여하고, 다른 행동 양식을 선택한다. 즉 '내가 어떻게 하면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가 가장 큰 목표가 될 경우엔 성취 지향적 동기가, '나는 절대로 지금 실패해선 안 돼'라는 것이 우선순위일 경우엔 안정 지향적인 동기가 우리를 지배한다."

상황 별 적합한 성격

④인간관계와 협상 측면에선 어떤 사람이 유리한가

"성취 지향이 강한 사람들은 항상 사물의 좋은 점을 바라본다. 그것이 인간관계 형성에 좋은 쪽으로 작용하곤 한다. 안정 지향성이 강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맺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큰 비중을 둔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 지향성이 강한 사람들은 관계에 대한 헌신이 강하다. 협상을 할 경우에 안정 지향적인 사람들은 관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 항상 상대방과 내가 윈윈(win-win)할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다. 반면 성취 지향성이 강한 사람은 윈윈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이 가장 커다란 파이를 차지하는 것이다. 단기적인 관계에서 보자면 성취 지향성이 더 큰 결과물을 얻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점이 크다고 볼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계 유지가 필요한 협상에서는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다."


⑤만약 한 팀에 두 부류 사람이 섞여 있는 경우 갈등을 줄이고 팀워크를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만약 성취 지향이 강한 사람이 '우리가 우선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혁신적이고, 참신한 것, 전에 없던 것을 만드는 거야. 그 밖의 것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주장하고, 반면 안정 지향이 강한 사람이 '그렇지 않아. 우리가 우선 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이 믿고 쓸 수 있는 제품, 품질이 탁월하고 안전한 제품을 만드는 거'라고 주장하면서 서로가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경우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의견을 절충하고 한 목표를 향해 나간다면 서로가 훌륭한 보완책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대단히 우수하고 안전하면서도 창의력이 큰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각자가 잘하는 부분을 인정하면서 역할을 분담할 수 있다. 안정 지향이 강한 사람은 실수를 줄이고 질이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데 치중하고, 성취 지향이 강한 사람은 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부분에 집중하면서 말이다. 단, 공통 비전이 확실히 설정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업무 환경에서 그런 확실한 비전이 서 있을 경우엔 사람들은 그 비전을 위해서 때로는 안정 지향적인 전략을 쓰고, 때로는 성취 지향적인 전략을 번갈아 가며 사용할 수 있다."


⑥성취 지향과 안정 지향은 외향성·내향성과 비슷한 것 아닌가

"맞다. 서로 연관성이 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예를 들어 성취 동기를 이루기 위해선 굳이 외향성을 따르지 않더라도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을 취할 수가 있다. 내가 성취 동기가 강한 사람이고, 현재 가지고 있는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들과 어울리고, 인맥을 넓힐 필요는 없다. 현재 위치보다 더 나은 자리로 가기 위해 특정 시험을 준비한다거나, 무언가를 배운다거나 할 수도 있다. 외향성은 그저 성취 동기를 현실화하는 데 필요한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한마디로 외향성과 내향성은 우리를 지배하는 동기를 뒷받침해 주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고 전술이다."


⑦"한국과 일본은 세계적으로 안정 지향 동기가 강한 나라로 손꼽힌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나

"일본이 한 것은 그 전까지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독창적으로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이미 있던 것을 '더 잘'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대단히 혁신적이라거나 위험을 수반하는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일본은 더 신뢰할 만한 것, 더 예측 가능한 것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성취 동기가 아닌 안정 지향 동기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발전이라는 것이 항상 성취 지향적 동기와 함께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인텔이다. 인텔의 창업자인 앤드루 그로브의 책이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였는데 제목처럼 책 전체가 안정 지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을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순 없다. 그로브는 인텔의 운영자였고, 당시 인텔은 전체 컴퓨터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었다. 그는 굳이 그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써야 할 필요가 없었다. 한국은 안정 지향적 동기에 추진력(locomotion)이 결합된 사례다. 추진력이라는 것은 당신이 현재 있는 위치에 안주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습성이다. 안정 지향적 동기가 강한 사람이 강한 추진력을 가질 수도 있다. 그로브가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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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4. 09:22

1990년대 후반 경기도 일산 신도시에 살 때 서울 광화문행 버스 정류장은 출근 시간대에 늘 전쟁터였다. 자리에 앉느냐 못 앉느냐에, 50분가량 걸리는 출근 시간의 휴식 여부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또 광화문 버스정류장에서 일산행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우르르 달려가는 장면도 일상사였다. 비나 눈이 올 때는 더 처절하게 탑승 경쟁을 벌였다.

이제 그런 모습은 추억의 한 장면이다. 광화문 정류장에서 승객들은 긴 줄을 이루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탑승 차례를 기다린다. 서울 시내 버스정류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모습은 외국인들을 감탄케 한다. 무질서의 상징이었던 버스정류장이 '매력(魅力) 한국'의 상징으로 변신한 것은 서울시가 2006년부터 설치한 위성항법장치(GPS)와 무선통신 기술을 이용한 버스 도착 안내 단말기(BIT) 덕분이다. BIT 기능이 스마트폰의 앱으로 확장되면서 정류장 질서는 완벽하게 뿌리를 내렸다.

흔히 사회적 습관의 변화는 정치 지도자나 사회운동가의 솔선수범이나 캠페인이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사회적 습관의 극적 변화는 대부분 신기술과 그 기술을 잘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만들어냈다. 은행의 창구 대기표, 전철 승강장의 스크린도어, 승용차 블랙박스 등 그런 사례를 숱하게 찾을 수 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동시에 역사적인 도전 과제를 던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고, 각계각층의 리더들은 근본적 의식 개혁을 입을 모아 말한다. 국민 대다수도 자신이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을 토로하면서 '진짜 한국 사회가 변할 때'라고 반성한다. 하지만 재발(再發) 방지책은 대부분 의식 변화와 같이 추상적 가치이거나 새로운 규제론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대형 참사를 반복해서 일으키는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실천 가능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쁜 습관이 개인과 조직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찰스 두히그(Charles Duhigg)의 저서 '습관의 힘'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 두히그는 의료 사고, 항공기 사고 등 대형 참사 이면에는 반드시 사고를 부르는 '반복 행동(습관)'이 조직 안에 자리 잡고 있고, 그런 습관과 관련된 보상 시스템을 바꿔야만 문제를 근원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서울 버스정류장 혁신 사례는 두히그의 분석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를테면 이제 서울 시내에서 과속하거나 승객을 정원보다 많이 태우는 버스를 보기 어렵다. 무리하게 버스를 타려는 승객도 거의 볼 수 없다. BIT를 포함한 서울시 교통 시스템(TOPIS)이 예측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보상을 실현하자 승객과 운전기사가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선택한 것이다.

BIT 사례에서 봤듯이 입으로 주창하는 의식 개혁이나 제도 개선보다 첨단 디지털 기술의 합리적 사용이 새로운 사회적 습관을 만드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이기도 하다. 두히그는 "훌륭한 리더는 위기를 활용해 조직의 습관을 개조한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대상이나 방법론이 모호한 '국가 개조'가 아니라 첨단 기술을 이용한 '습관 개조'다.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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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4. 09:20

日, 공산 혁명가 인질 사건 겪고 列島 개조론 펼쳐 5년 후 G7 진입
美, 기술·안전 낙후 드러낸 참사… 타이태닉 후 허점 메워가며 성장
세월호는 '未來 한국' 가를 계기 修理·投資 않고 남 탓만 해서야



2차 세계대전 직후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는 일본을 경제 대국으로 일으킨 주역이다. 그들에게 몹시 큰 충격을 준 사건 가운데 하나가 아사마 산장(山莊) 인질극이다. 그건 전쟁터였다. 일본 공산주의 테러 집단(연합적군파) 소속 5명이 고급 휴양지 가루이자와 아사마 산장에서 관리인 등을 인질로 잡고 219시간 동안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1972년 2월이었다.

열흘간의 총격전은 막 보급된 컬러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시청률이 최고 98.2%를 찍었다. 1억 일본인 거의 전원이 화면 앞에 있었다는 말이다. 범인들은 체포됐지만 3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했다. 소니가 세계에서 최첨단 TV를 내놓고, 일본 1인당 GDP(구매력 기준)는 1만1434달러로 벌써 유럽 선진국 평균치를 앞지르던 시절이었다.

어느 일본인 교수는 이렇게 회고했다. "잘사는 나라가 됐는데 왜 공산혁명을 하겠다는 젊은이들이 무장 인질극을 일으켰는지, 그런 의문이 지금도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인질범들이 체포된 후 그들이 배신자 동료를 12명이나 살해한 것을 보며 일본인들은 또 한 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본인들 마음속에 감춰진 야만성을 탄식하는 글이 쏟아졌다. 자기 비하(卑下)가 지식인 사회의 유행이었다.

미국도 강한 나라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똑같은 대형 쇼크를 겪는다. 타이태닉호가 침몰하던 1912년 무렵 미국의 1인당 GDP는 5300달러 수준으로 영국보다 높았다. 그러나 미국 JP모건이 거느린 해운 회사는 영국의 경쟁 회사를 이기지 못했다. 대형 여객선을 건조할 기술도 없었다. 존 피어폰트 모건 회장은 영국의 경쟁 상대를 누르기 위해 타이태닉 건조를 영국에 발주하고 선박 운영도 영국인들에게 맡겼다.

우리에게 타이태닉은 영웅적인 선장(船長)과 애틋하게 꾸며진 러브스토리로 포장돼 있다. 그러나 그 뒤에 숨겨진 얘기는 세월호와 그다지 다를 게 없다. 구명보트 숫자는 적었다. 짙은 안개를 뚫고 나간 세월호처럼 타이태닉도 빙하 출현 경고를 무시하고 출항을 강행했다. 선장은 처녀 항해를 기념하려는 듯 경고를 무시하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망루에는 주변을 감시할 망원경 하나 없었다. 타이태닉의 복원력과 설계 구조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출항 전 보험 가입을 거부한 보험사도 있었다.

희생자는 1513명이었다. 모건 회장은 승객의 안전을 무시하면서도 자기 전용 객실에 무도회장을 따로 만들고 전용 담배 보관함까지 설치했다. 이런 호사(豪奢)에 대한 비난이 빗발칠 수밖에 없었다. 그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모건그룹 전체가 도마 위에 올랐다. 모건 회장은 국회 청문회에 끌려나가 짓궂은 봉변을 당해야 했다.

아사마 산장 사건을 전후해 일본은 '경제동물(Economic animal)'이라는 경멸이 국제사회에서 퍼지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가이드 깃발을 따라 루브르박물관을 단체 관광하는 풍경은 유럽 언론의 조롱거리가 되곤 했다.

그러나 아사마의 충격 이후 다섯 달 만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라는 정치인이 '일본 열도 개조론'을 들고나와 정권을 잡았다. 부동산 값은 뛰었지만 다나카의 솔직성, 불도저처럼 정책을 밀고 나가는 실행력에 온 국민이 열광했다. 소니는 워크맨을 개발했고, 도요타자동차는 GM과 합작 공장을 세웠다. 안에서 서로 다투기보다는 세계로 나간 것이다. 5년 후 일본은 강대국(强大國)들의 모임인 G7 회담에 동양의 대표 선수로 참석했다. 일본인들은 아사마 사건에서 맛본 모멸감을 딛고 일어선 것이다.

타이태닉의 충격에 빠졌던 시절 미국에는 중앙은행(FRB)도 없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매기는 상속·증여세도 없던 미완성(未完成) 국가였다. 그 당시 미국은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못하다며 미국인 스스로를 깔보는 인식이 수많은 문학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흥 부자들은 파티에서 서로 프랑스어 실력을 과시하느라 안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국가를 완성해가는 길에서 불쑥불쑥 떠오르는 허점을 메우고 경제력을 키우며 그런 장벽을 뛰어넘었다. 타이태닉의 상처도 인간 중시의 시민의식이 싹트면서 그렇게 아물어갔다.

세월호 참변이나 서울 지하철 사고는 국제 경쟁에 노출되지 못한 부문에서 발생했다. 두 회사 모두 국내 시장에서만 사업을 해온 우물 안 촌뜨기 회사들이고, 사고 관련자들도 대부분 나라 밖에서 외국 경쟁자와 싸워본 적이 없는 내수형(內需型) 인간들이다. 우리가 K팝, 갤럭시폰을 자랑하며 이만하면 국제화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나라 구석구석에는 이처럼 뒤처진 분야가 적지 않다.

잇단 사고를 겪으며 우리의 안전 불감증을 한탄할 수도 있고, 모든 비극은 네 탓이라고 남에게 손가락질하며 서로 다툴 수도 있다. 고장 난 곳을 고치고 뒤진 곳에 더 투자해보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충격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나라가 될지 말지는 우리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송희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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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4. 09:15

미국 사람들은 자전거 헬멧(안전모)을 정말 열심히 챙겨 쓴다. 한적한 주택가와 공원에서 자전거를 탈 때도 헬멧은 거의 필수다. 어린이들은 반드시 헬멧을 착용하도록 규정한 자치단체도 많다. 역시 선진국이라 시민들이 철저한 안전의식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대서양 건너 네덜란드에 오면 상황이 180도 다르다. 암스테르담 거리에선 헬멧 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린이도 거의 맨머리로 자전거를 탄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자전거 천국으로 불리는 이 나라의 자전거 이용자 0.1%만이 헬멧을 쓴다고 한다.

그럼 네덜란드의 교통 문화는 미국보다 후진적인가. 아니다. 네덜란드의 인구비례 교통사고 사망률은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단지 이 나라엔 자전거 헬멧 착용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견해가 많을 뿐이다.

실제로 자전거 헬멧은 머리의 움직임과 반사신경을 둔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또 ‘헬멧을 썼으니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운전자 본인뿐 아니라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자들도 주의를 덜 기울이게 된다. 이는 영국 배스대 실험으로 입증됐다. 무엇보다 헬멧 사용을 의무화하면 시민들이 자전거 이용을 불편해한다. 그래서 이용률이 감소한다. 자전거 수가 줄어들고 자동차 수가 늘어날수록 자전거 타기는 그만큼 더 위험해진다. 요컨대 자전거 헬멧은 사고 시 부상 위험을 줄여주지만 사고 자체가 일어날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헬멧 착용을 강제하는 법은 각 나라 사정에 따라 효과적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네덜란드가 자전거 천국이 된 이유는 헬멧 때문이 아니다. 자전거 위주의 인프라 구축과 교통문화 정착, 그리고 청소년에 대한 자전거 운전법 교육 덕분이다. 이처럼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는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문제의 원인에 집중하는 편이 더 확실하다.

필자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 셧다운제’ 논란을 보며 네덜란드의 자전거 정책이 생각났다. 지난달 헌법재판소는 밤 12시 이후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셧다운제에 합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셧다운제는 심야에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접속을 막아서 게임중독을 줄이자는 발상으로 2011년 말 시행됐다. 하지만 어른들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게임 하는 청소년이 늘어났기 때문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선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청소년들의 하루 평균 게임시간은 오히려 늘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12시 전까진 마음껏 게임을 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학생과 부모에게 심어준 것으로 추측된다.

암스테르담의 자전거 안전 해법은 헬멧 사용 강제가 아니라 좋은 인프라와 운전 교육이었다. 게임중독의 해법 역시 강제적 규제보다는 중독의 폐해를 청소년 스스로 깨치도록 도와주고 다양한 대체 여가문화를 조성해 주는 게 핵심이 되길 바란다.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



http://news.donga.com/3/all/20140513/63426357/1



Posted by 겟업
2014. 9. 14. 09:09

20년 전이었습니다. 저는 영국인의 운전매너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이 횡단보도 앞에만 서면 차들이 모두 멈췄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차량 안의 운전자를 쳐다봅니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빙긋이 웃습니다. 늘 운전자와 보행자 사이에는 그런 교감이 흘렀습니다. 낮이든 밤이든, 사람이 있든 없든 그들은 신호를 지켰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영국 신사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네.’ 영국인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말 부럽다. 어떻게 이렇게 교통법규를 잘 지키나. 영국인은 참 신사적이다.” 그랬더니 친구가 답했습니다. “영국의 횡단보도에 얼마나 많은 카메라가 숨어있는지 아느냐? 그런 신호를 어기다가 걸리면 범칙금이 얼마인지 아느냐?” 신사적인 운전 매너, 그 밑에 무서운 범칙금이 깔려 있더군요.

 며칠 전에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를 만났습니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다가 영국인의 운전매너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목사는 “그게 다가 아니다”고 말하더군요. 그는 스위스에 3년간 머문 적이 있습니다. “큰 도로에서 신호등이 빨간불인데 브레이크를 안 밟고 선을 넘어갔다. 신호가 완전히 바뀌기 전에 일찍 출발했다. 속도를 위반했다. 도처에 카메라가 깔려 있다. 그때마다 무시무시한 범칙금이 날아온다. 당시 제일 싼 범칙금이 20만원 정도였다. 제한 속도가 시속 40㎞인 주택가에서 시속 60㎞로 달리다 카메라에 찍힌 사람이 있었다. 그는 총 100만원을 내고 1개월 운전면허 정지를 당하더라.”

 그 말을 듣고서 제가 말했습니다. “스위스도 교통범칙금이 센 나라군요.” 이 목사는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그걸 살인 행위라고 본다. 주택가 골목에 아무도 없었다. 다른 차도 없고 보행자도 없었다. 그런데도 제한속도를 어기면 살인 행위라고 보더라.” 

 고개가 갸우뚱해지더군요. 그건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와 율법의 사회’가 아닐까. 이어지는 이 목사의 설명에 저는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더라. 수백 명, 수천 명, 수만 명이 아니라 딱 한 사람 말이다. 그 하나의 생명을 전부처럼 여기더라.”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말입니다. 적지에 있는 일병 하나 구하려고 많은 군인이 투입되고, 그들 중 많은 이가 죽었습니다. 아무리 손가락을 꼽으며 더하기·빼기를 해봐도 답이 안 나왔습니다. ‘하나 구하려고 여럿이 죽었는데, 그게 뭐야? 결국 손해잖아.’ 그게 저의 셈법이었습니다. 아니, 우리 대한민국의 셈법일 겁니다.

 생각해 봅니다. 만약 30만원, 50만원, 100만원짜리 주차위반 스티커를 받으면 기분이 어떨까. 속이 뒤집어질 겁니다. 5만원짜리 스티커가 날아와도 마음이 그렇게 쓰린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인과 영국인, 또 다른 유럽 사람들은 그걸 받아들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거기에는 ‘하나의 생명’을 지키자는 공감대가 있는 겁니다. 그 ‘하나의 생명’이 뭐냐고요? 바로 나의 생명이자 너의 생명입니다. 내 자식의 생명, 가족의 생명, 이웃의 생명, 모두의 생명입니다. 그걸 지키기 위해, 그걸 존중하기 위해, 그걸 살리기 위해 30만원짜리, 50만원짜리 스티커를 받아들인 겁니다. 그들은 아무도 없는 주택가 골목에서 시속 60㎞로 달린 차를 ‘살인 행위’라고 봤으니까요.

 이 목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자문했습니다. ‘좁쌀 하나에 수미산이 들어간다. 하나의 생명을 지킬 때 모든 생명이 지켜진다. 국가는 그럴 때 개조된다.’ 나도 몰랐던 나의 살인 행위. 그걸 고치기 위해 우리는 얼마짜리 스티커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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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9. 14. 09:08

‘(아이들이) 안전한 나라’. 세월호가 던진 화두 하나에 대한민국이 통째로 앓고 있습니다. 끝도 없는 반성과 사과, 슬픔과 분노가 이어진 지 어느새 한 달이 다 돼갑니다. 그새 세월호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그 단단하던 레이저 눈빛의 대통령도 예외가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진도 팽목항에 또 내려가 이번엔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취임 후 몇 차례 사과를 했지만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을 직접 얘기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틀 뒤엔 부처님 오신 날 불사(佛事)에 참석해 “국민의 안전·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국가 정책·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국가 개조를 또 말한 겁니다. 하지만 의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요.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비용입니다. 지금은 가슴만큼 머리도 뜨거울 때라 ‘국가 예산을 안전에 올인하자’는 격한 주장에도 박수가 터집니다. 하지만 뜨거운 머리로 평생 살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머리는 차가워져야 합니다. 항공·선박·철도부터 놀이기구까지 모든 결함과 위험을 늘 샅샅이 관리·감독하려면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듭니다. 물론 부정·부패만 일소해도 그런 비용을 감당하고 남을 것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복지 재원을 줄여 안전에 쓰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게 정답일까요.

아예 발상을 확 바꾸는 건 어떨까요. 안전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접근하는 겁니다. 안전은 종종 대박상품이 되기도 했습니다. 일회용 반창고 밴드에이드는 존슨앤드존슨의 구매 담당 얼 딕슨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요리 때 자주 손을 다치는 부인의 안전을 위해 만든 게 히트했습니다. 150년 전 엘리샤 오티스는 줄이 끊어져도 안전한 장치로 엘리베이터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오티스는 대박이 나기 전 빚 3000달러를 남기고 죽었지만 그가 세운 오티스 엘리베이터는 지금도 세계 1등 기업입니다.

조지 웨스팅하우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1869년 압축 공기를 이용한 철도 제동장치를 만들어 냅니다. 당시로선 혁명 같았습니다. 그때까지 기차가 서려면 객차마다 브레이크맨이 달라붙어 기관차에 맞춰 제동을 해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관성에 의해 객차가 기관차를 들이받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시속 20~30㎞의 기차가 서는 데 1.5㎞, 지금 지하철 역 한 구간 정도 거리가 필요했습니다. 걸핏하면 충돌·탈선 사고가 났지만 당시 열차회사나 정부는 브레이크 개선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안전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죠.

웨스팅하우스는 달랐습니다. 그는 생명을 좌우하는 제품은 완벽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첫 작품이 성공했지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안전한 브레이크를 꿈꿨습니다. 그는 마침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두 개의 브레이크 시스템을 만들어 냅니다. 그는 이를 ‘페일 세이프(Fail safe:이중 안전장치)’ 시스템이라 불렀습니다. 미국 의회는 1893년 이 시스템의 장착을 의무화합니다.

고장은 나도 사고·재난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시스템, 페일 세이프는 이후 안전공학의 기본이 됐습니다. 이상이 생기면 무조건 빨간색이 깜빡이도록 설계된 신호등, 주차(P)에 두지 않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자동차, 유통기간이 지나면 아예 계산이 안 되는 삼각김밥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나라 구석구석을 이런 이중·다중 안전시스템으로 무장하는 겁니다. 이게 나라 경쟁력이 되도록 하는 겁니다.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플랜트나 원전은 공장·발전소뿐 아니라 안전 운용 노하우까지 수출합니다. 넓은 의미의 안전 시스템 수출입니다. 안전 먹거리, 안전 탈것, 안전 관광… 안전은 그 자체로 국가 주력 상품이요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되돌아봅니다. 세월호에 페일 세이프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어땠을까요. 청해진해운은 규정 중량을 지켰을 겁니다. 평형수를 빼낼 수도 없었을 겁니다. 만재흘수선을 속이는 일도 못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생때같은 목숨 300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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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9. 14. 08:43

수업 시간에도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애~애~앵!’ 초등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교실을 뛰쳐나갔습니다. 복도와 계단을 달려서 운동장 귀퉁이에 줄지어 쪼그려 앉았습니다. 양손으로 두 귀와 두 눈을 막고 입을 벌렸습니다. 적기의 폭격 때는 그렇게 해야 고막이 터지는 걸 막는다고 했습니다. 앞줄, 옆줄 반듯하게 앉아야 했습니다. 약간만 튀어나와도 스피커에서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3학년2반 앞에서 일곱째 줄 똑바로 앉아!” 

 철 좀 드니까 생각이 바뀌더군요. 그게 냉전체제, 군사정부,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냉소적입니다. ‘재난 대비’ ‘비상 훈련’이란 말을 들으면 콧방귀부터 나옵니다. 저도 모르게 거부감이 생겼습니다. ‘비상 훈련 매뉴얼=귀찮고, 형식적이고, 거추장스럽다’는 강한 선입관이 생겼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그랬습니다. 비행기 승무원이 앞에서 구명조끼에 바람 넣는 법을 설명합니다. 늘 한눈을 팔았습니다. 동작과 순서를 제대로 따라가 본 적이 없습니다. 어쩌다 비상구 앞에 앉을 때면 널찍한 자리만 좋아했습니다. 승무원이 설명하는 비상시 행동 요령은 한 귀로 흘렸습니다. 영화관에서도 그랬습니다. 화재 발생 시 비상구 통로가 스크린에 그려집니다. 저는 하품을 했습니다. “왜 이렇게 광고가 많지?” 투덜거렸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다들 말합니다. “어른들 말을 들은 학생은 죽고, 듣지 않은 학생은 살아남았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어른들 말을 듣는다고 다 죽는 건 아닐 텐데. 어른도 어른 나름이겠지. 그럼 대체 어떤 어른을 말하는 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그게 저 같은 어른이더군요. 형식적인 매뉴얼을 만드는 어른, 거기에 코웃음 치는 어른, 그래서 매뉴얼을 무시하는 어른. 그게 바로 저였습니다.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도 배가 뒤집어졌을 때 매뉴얼을 외면했습니다. 해경도 그랬습니다. 수색구조 매뉴얼을 무시했습니다. ‘사고 발생 시 선박을 잘 아는 사람을 현장에 급파하라’는 수칙을 거꾸로 뒤집었습니다. 누구보다 배를 잘 아는 선원들을 뭍으로 먼저 옮겼습니다. 신원 파악을 먼저 하라는 매뉴얼도 놓쳤습니다. 해경은 배가 가라앉은 다음에야 선원들을 다시 바다로 데려갔습니다. 

 어른들은 매뉴얼을 뭉갰습니다. 학생들은 달랐습니다. 배가 뒤집어진 상황에서도 “선실에 대기하라”는 방송을 침착하게 따랐습니다. 베이징 특파원이 그러더군요. ‘세월호 참사’ 이후 중국 교육계가 한국 교육을 연구하고 있답니다. 배가 침몰하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선내 방송대로 실내에 머물러 있었느냐는 겁니다. 중국 학생들이라면 유리창 깨고 다들 바다로 뛰어들었을 거랍니다. 

 짚어 봅니다. 중국 학생들은 왜 바다로 뛰어들까. 그 사회의 매뉴얼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쩌면 저희 세대도 그랬을 겁니다. 유리창을 깨고 바다로 뛰어들었을지 모릅니다. 저희는 매뉴얼을 믿지 않는 세대니까요. 그런데 우리의 아이들은 다르더군요. 그들은 매뉴얼을 믿었습니다. 어른들이 만들고도 어른들이 믿지 못하는 매뉴얼을 아이들은 믿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죄스럽습니다. 이토록 큰 참사를 당하고서야 깨닫습니다. 매뉴얼도 ‘그 시대의 초상(肖像)’이더군요. 권위주의 시대의 매뉴얼은 권위적이었습니다. 그게 싫었던 저는 ‘이 시대의 매뉴얼’까지 무시했습니다. 저는 뉘우칩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두 번 다시 매뉴얼을 무시하지 말자. 실질적인 매뉴얼, 그래서 존중받는 매뉴얼. “이걸 따라가야 우리가 살 수 있어!”라고 외칠 수 있는 매뉴얼. 그걸 꾸려서 나 같은 어른부터 지키자고 다짐합니다.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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