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기는 것이 내 일이다. 만나는 이들 대부분은 ‘싸우는’ 사람들. 마을에 들어서는 송전탑 때문에 싸우고,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버린 회사를 상대로 싸우고, 새파란 나이에 꼬꾸라진 자식의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싸우고, 십 년을 일해도 6개월짜리 취업계약을 해야 하는 소모품 인생 때문에 싸운다.
싸우다 말한다. “세상이 이럴 줄은 몰랐어요.” 그들은 자신들 사정 한 줄 전해주지 않는 주류언론에, 용역을 사 자신들을 내동댕이칠 수 있는 기업에, 그걸 멀뚱히 지켜보는 경찰들에 당황한다. 가슴을 친다. 반복되어 절망한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죽어야 해결이 되려나 봐요.”
피가 나게 두드려도 무너지지 않는 거대 벽을 앞에 둔 사람의 자조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놀라곤 한다. 죽으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다니. 절망 속에서도 온전히 버리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 슬프도록 놀랍다.
오랜 싸움을 한 이들, 그 과정에서 동료 한둘쯤은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개죽음”. 애꿎은 목숨만 사라졌다. 변한 것은 없다. ‘죽어봤자’ 해결되지 않음을 보아온 경험적 결론이다.
밀양의 이치우 어른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일흔넷 삶에 기름을 부었을 때 경찰은 볏단을 태우다 몸에 불이 옮겨붙었다고 발표했다. 유서가 없으면 가정불화, 생활고, 우울증, 비리 연루 같은 이유가 등장하여 죽음을 희석하기 마련이다.
또박또박 유서를 써 남겨봤자,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얼마 전 “나를 바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그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고인은 자신이 속한 노동조합의 싸움이 승리할 때까지 장례를 미뤄달라 했지만, 경찰은 시신을 외딴 병원으로 옮겨 장례를 치렀다. 이를 막아선 고인의 어머니가 최루액을 맞았다.
비슷한 시기, 그의 회장님이 응급실에 실려 갔다. 회장님의 위태로운 건강이 속보로 떴다. 언론은 회장님의 병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미 사망했지만 회장님의 일가가 승계 문제로 인해 죽음을 밝히지 않는다는 추측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회장님과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닮은 구석이 없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죽음만이 공평하다는 것은, 못난 삶을 향한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 300여명의 목숨이 끽소리도 못하고 바다에 잠겼을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우리의 죽음이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 느꼈다. 바다에 잠긴 목숨 사이에도 급이 있다. 정규직 노동자와 계약직·아르바이트 노동자, 생전의 지위에 따라 부여되는 관심과 보상이 달랐다.
어찌 죽음마저 이처럼 대우가 다른가 한탄한다면, 그래서 눈살이 찌푸려진다면 방법은 하나이다. 남은 사람들이 죽음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
죽음은 기억될 때 가치를 지닌다. 밀양 이치우 어른의 영정을 50여일간 지킨 마을주민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이름 세 글자도 몰랐을 것이다. 한진중공업 김진숙씨가 85호 크레인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김주익이라는 사람이 그곳에서 목을 맨 사실을 잊었을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자. 그것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더 이상은 ‘개죽음’을 만들지 않는 길이다. 그들의 마지막 부탁을, 그들의 삶을 잊지 말자. 그 전에 우리 누구도 죽게 하지 말자.
희정 기록노동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88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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