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주변 사람들이 아프거나 안 하던 일을 한다. 누구는 식욕을 잃어 힘들어하고, 누구는 회사 문제에 집안일도 겹쳐 우울증을 앓는다. 조울증 치료가 호전돼 가던 누군가는 며칠 전 다시 입원했고, 누군가는 길을 떠났다. 각자의 사정이 있지만, 세상일이 서로 무관하지만은 않을 거다.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는 한 친구는 회사에서 새로 인수한 건설회사로 파견 갔는데 거기 속사정을 보니 세월호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멀쩡하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떠올랐다. 그는 자기 나라 일본이 그렇게 싫었단다. 미야자키는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을 만들었고 지난해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그가 그랬다. 일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일본의 고전 <겐지 이야기>도 그렇게 싫었단다. 그는 1941년생이다. “중국과 한국, 동남아 각 나라들을 향한 죄의식에 전율하며 내 존재 자체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심정적으로 좌익이 됐지만, 헌신해야 할 인민을 발견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 외국에서 일장기를 보면 혐오감이 드는 일본인이었다.”(<미야자키 하야오 - 출발점>)
그러던 와중에, 조엽수림 문화를 알게 됐다고 했다. 조엽수림은 히말라야 산맥에서 중국 양쯔강 이남, 대만, 일본으로 이어지는 상록활엽수림인데, 일본 신석기 시대에 이 조엽수림에서 풍요롭고 전쟁이 없고, 종교라면 소박한 애니미즘 정도에 인간의 개성이 존중되는 조몬 문화가 퍼졌다는 연구 결과를 접하고서 이내 조엽수림 문화에 빠져들었다.
<이웃집 토토로>엔 조엽수림의 정령들이 나오는데, 그는 숲을 어떻게 그릴지 무척 고민했다고 했다. 유럽의 근대화된 느낌의 숲이 아니라 울창하면서도 전근대적이고 뭔가 나올 것처럼 무서운 숲, 그 무섭다는 생각이 그 안에 있을지 모르는 것에 대한 존경, 혹은 존중의 마음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면서 그렸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서 숲에 들어가 달리거나 도토리를 줍기를 바라면서 수종을 연구하고 숲을 디자인했단다.
“어린 시절이라는 것은 어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일 때만 맛볼 수 있는 것들을 맛보기 위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5분의 체험은 어른의 1년 체험을 이겨요. … 그 시기에 사회 전체가 어떻게 지혜를 짜서 아이들이 얼마나 무럭무럭 잘 자라 살아갈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영화기자를 8년 넘게 했으니 영화를 꽤 많이 본 편일 거다. 하지만 보면서 눈물 흘린 영화는 두세 편인데, 그중 하나가 <이웃집 토토로>였다. 시골 숲에 사는 가족의 엄마가 병에 걸려 읍내 먼 병원에 입원했다. 어린 자매가 엄마 걱정을 한다. 숲의 정령 토토로가 나타난다. 무심한 표정으로 고양이 버스를 부른다. 자매가 고양이 버스를 타고 엄마의 병원으로 달려간다. 별 장면도 아닌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나 싶었는데, 거기엔 자기 나라가 싫었던 사람이 다음 세대를 향해 쏟은 정성과 배려가 숨어 있었던 거였다.
두서없이 떠오른 영화 대사 하나를 적어본다.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주인공 가족의 아버지가 막내아들을 잃은 뒤 교회에서 하는 설교의 한 대목이다.
“우리는 살면서, 사랑하는 이가 도움을 청하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좀처럼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지 못하며, 우리가 준 게 불필요한 것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충분한 이해가 없더라도 충분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65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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