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10. 16:18

얼마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인용해 한국의 기현상을 보도한 적이 있다. 한국 근로자 수면 시간(7시간49분)은 조사 대상 18개국 중 가장 짧은데, 근로 시간(2237시간)은 2위로 회원국 평균보다 393시간이나 많고, 노동생산성은 평균의 66% 수준이라는 것. 잠도 안 자고 일하는데 생산성은 왜 이렇게 낮냐는 거다. 실제로 오래 일하는 부지런한 근로자의 인당 노동생산성은 OECD 33개국 중 28위, 1등인 노르웨이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통계로만 보면 일당백(一當百)은커녕 일당 3분의 1밖에 안 되는 게 우리 근로자 경쟁력의 현주소다.

물론 근로 시간이 긴 건 자영업자가 많아 생긴 착시라는 등의 변명은 있다. 하지만 기업부문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은 기업 스스로도 인정한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이런 비효율 사례를 들어 한국 기업의 문제를 ‘부지런한 비효율’이라고 꼬집는 보고서를 냈다. 

지난주엔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으로 국내 최대 기업 생산현장의 낮은 생산능력도 목격했다. 차 한 대 생산에 걸리는 시간은 미국이 14.8시간인데 한국은 27.8시간이란다. 이에 현대차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오래 일하는지 강조한다. 특근과 잔업 등으로 보통 2800~3000시간씩 일한단다. 한데 물어보면 이유는 수당 때문이다. 기본급이 적어서 수당으로 채우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다고도 했다.

한 인사관리 전문가는 "모든 문제는 임금 체계로 통한다”고 했다. 현대차는 강성 노조 등 특수성이 있지만 그들의 생산성 문제도 결국 임금체계 실패의 한 사례라는 지적이다. 현대차의 임금 설계가 근로자들의 비효율과 생산성 저하를 합리화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생산성은 떨어뜨리고 더 오래 일하는 게 이익이 되는 임금 체계의 덫으로 근로자 삶의 질도 함께 떨어졌다.

실제로 우리 임금 체계는 시대가 변해도 연 공급에 따른 호봉제와 시간급제가 굳건해 이 틀을 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올 3월 고용노동부는 기본급을 중심으로 임금 구성을 단순화하고 성과급 비중을 높인다는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발표하기도 했다. 내용은 비교적 합리적이었는데 지금은 이 매뉴얼을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다.

이유가 뭘까? 지난주 전문가, 관련 분야 기자, 젊은 직장인들과 틈만 나면 이 얘기를 해봤다. 물론 그들은 임금체계 문제를 많이 지적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느낀 것은 어쩌면 우리의 낮은 효율과 생산성은 임금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직장인들은 자기 회사를 믿지 못했다. 몇 차례의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 명목으로 가차없이 사람한테 손을 대고, 능률보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계약직만 쓰고, 능력에 따른 연봉제를 도입했다지만 실제로는 혜택 적은 호봉제로 꼼수를 부리며, 능력을 평가하겠다면서도 각종 연줄이나 상사의 개인 취향 같은 비합리적인 평가가 횡행하는 등 신뢰할 구석이 없다는 거다.

많은 직장인들의 목표가 ‘어떻게든 한몫 잡아 회사를 탈출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기업들이 하나의 가치를 좇는 ‘공동체적 조직’이 아니라 구성원 각각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용병 조직’으로 변모되는 조짐마저 보인다. 용병은 원래 내부에선 용감한 척 과시하며 보여주기에 집착하지만 적을 만나면 비겁해지는 특징이 있다. 더구나 우리 조직은 여전히 근면·성실·형식주의라는 전근대적 미덕에 집착한다. 그러니 오랜 시간 회사에서 버티는 인내력만으로도 좋은 사원으로 인정받는데 굳이 생산성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21세기엔 근면·성실이 아니라 지식과 창의력, 소비할 시간의 여유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거다. 한데 기업들의 인력 관리는 거꾸로다. 통계가 보여주는 우리의 현실은 단순히 생산성 문제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못해 발목 잡혀 있는 모습일 수 있다. 걱정이다. 우리는 21세기에도 계속 발전해야 하는데….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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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6:16

한국은 왜 미국에서 더 주목받고, 더 중시되지 않는지 궁금해 하는 나의 한국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일련의 질문을 쏟아낸다. 왜 미국 관료들과 싱크탱크는 한·일 간의 역사·영토 갈등에서 서울의 편을 들지 않는가. 한국의 공공외교가 비효과적이기 때문인가. 한국 정부는 로비 활동을 강화해야 하나.

 워싱턴에서 한국이 더 눈에 잘 띄는 나라가 되려면 다음 몇 가지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역사적으로 미국은 아시아보다는 유럽, 한국보다는 일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경향에 빠른 변화가 일고 있다. 조지 워싱턴은 이임사에서 미국이 늙은 유럽의 동맹 외교에 휩쓸리지 말 것을 국민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20세기 미국의 전략은 항상 아시아보다 유럽을 중시했다.

 둘째, 최근 몇 년간 역전이 일어났다. 미 군사력의 중심은 유럽에서 아태지역으로 이동할 것이다. 역사상 처음이다. 또 여론조사를 해보면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아시아가 유럽보다 중요하다고 응답한다. 한데 일본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정책이 한국에 항상 불리한 것은 아니었다. 트루먼 행정부가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한 것은 일본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지미 카터의 주한 미군철수 백지화는 일본의 워싱턴 로비 결과물이다. 미국을 둘러싼 한·일 관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제로섬이 아니다.

 셋째,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대미 외교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백악관 관리들이 내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담은 그해 가장 중요한 정상회담이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의 발전과 안보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의 외교와 발전을 위해 한국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제안을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당시 중국에 대한 관여(engagement) 정책과 미·일 동맹을 통한 세력균형 유지를 공약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관리들은 한국이 주요 방산품 수출국이라는 것과 가장 신뢰할 만한 파트너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래서 백악관은 한국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핵안보정상회의·세계개발원조총회의 개최와 한국의 대북정책을 강력히 후원했다. 한덕수(2009~2012년 재임) 주미 한국대사는 미 의회를 지극히 효과적으로 설득해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체결에 기여했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의원들을 맨투맨으로 접촉해 KORUS가 의원들의 지역구에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을 설명했다. 미·호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해 주미 호주 대사가 한 대사의 외교술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한 대사의 후임들 또한 미 의회와 강력한 관계를 유지했다. 한국 정부만큼 워싱턴 정가에서 영향력 있는 정부는 극소수다.

 넷째, 일본을 겨냥하는 한국의 로비는 종종 한국이라는 외교 브랜드에 손상을 끼치고 있다. 워싱턴의 일본 전문가들은 모두 일본에 압력을 넣어 역사 문제에 대해 보다 전향적이 될 것을 요구했다. 한국의 로비 때문이 아니다. 한·일 갈등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국가이익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일본 전문가들은 일 정부의 이런저런 발언이나 행동이 한·일 관계를 해친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을 경청한다. 하지만 한국 관리들이 아베의 ‘위험한 민족주의’를 거론하며 미국이 일본에 전략적으로 등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면, 미국의 관리나 학자들은 한국이 중국 쪽으로 기운다는 느낌을 받고 당혹해 한다. 상황을 꿰뚫고 있는 아시아 전문가들은 한·미 동맹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인사들은 한국의 일본 비판을 지목하며 이러한 전제에 도전한다. 대부분의 워싱턴 전문가들은 영토 문제와 관련된 한국의 로비가 한국 국내용이라고 보기 때문에 미국의 정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미 정부는 독도나 동해 호칭 문제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워싱턴에서 두 문제와 관련된 세미나가 개최되거나 주 정부가 교과서와 관련된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미국 정부가 한국·일본 중 한쪽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일 양국 모두 미국에 핵심 동맹국이다. 또 한국의 재단들은 미국 학자들을 후원할 때 신중해야 한다. 한국 편을 들도록 유도하는 연구비 지원은 학문의 독립성이라는 가치와 상충된다.

 워싱턴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계속 증대했다. 한국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아시아는 더욱 중요한 지역이 됐다. 중국에 대한 신뢰나 일본 정치의 안정성에 의문이 생길 때마다 한국의 가치는 올라간다. 한국의 외교 브랜드가 가장 효과적일 때는 ‘글로벌 코리아’가 빈곤·핵확산·원조·무역 등의 분야에서 해결책을 내놓을 때다. 한국이 일본에 상대적인 이득을 취하려고 하면 한국은 덜 글로벌하고 덜 긍정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동일한 입장에서 미국에 뭔가를 요구할 때에 양국의 외교력이 증가한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동북아에서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이 한목소리로 나올 때 ‘아니오’라고 하기 힘들다. 효과적인 외교는 효과적인 정치와 마찬가지로 ‘네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묻는 게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보여주는 데서 시작한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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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5:59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과 주한 미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86)가 쓴 회고록을 읽었다. 지난 4월 뉴욕주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인터뷰를 한 게 인연이 돼 회고록이 나오자마자 한 권을 보내왔다. CIA 요원과 외교관, 또 백악관 정책담당자로 40년 넘게 공직을 수행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개인적 에피소드 및 소회(所懷)와 잘 버무렸다. 수시로 빛을 발하는 그의 유머감각 덕분에 330쪽 분량의 책을 마치 소설책 보듯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레그는 국가를 위해 봉직한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며 후세에 전하는 교훈을 회고록의 마지막 장에 담았다. ‘악마화의 위험(Dangers of Demonization)’이란 장이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내가 관찰하거나 직접 참여한 미 대외정책의 다양한 패턴들을 돌아볼 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우리가 싫어하거나 잘 모르는 외국 지도자나 단체를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고, 그때마다 미국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상대에 대한 무지(無知)의 간극을 편견으로 메우게 되면 선동이 분쟁을 촉발하고, 그 결과는 모두에게 손해라는 것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CIA 요원으로 현지에서 활동했던 그는 미국이 베트남의 독립영웅인 호찌민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베트남전쟁은 충분히 피할 수 있는 비극이었다고 주장한다. 호찌민은 미국에 대해 깊은 호감을 갖고 있었고, 특히 미 헌법을 제정한 토머스 제퍼슨의 열렬한 숭배자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호찌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에 여러 차례 손을 내밀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베트남의 독립만 인정해 주면 미국과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친서까지 보냈지만 미국은 이를 묵살했다. 1972년 친서가 비밀해제될 때까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숨겼다. 

 특히 베트남을 북한과 동일시한 것은 미국의 결정적 실수였다고 그레그는 회고한다. 두 나라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김일성에 대해서는 전폭적 지지를 보낸 반면 호찌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호찌민의 유일한 목적은 독립과 통일이었는데도 미국은 베트남을 중국의 졸(卒)로 보고,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동남아 전체가 공산화된다는 ‘도미노 이론’에 사로잡혀 안 해도 될 전쟁을 했다는 것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역사는 실패한 개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CIA의 비밀공작을 통해 쿠데타를 사주(使嗾)하고, 반(反)정부 세력을 지원하거나 심지어 무력개입까지 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독재정권이 등장해 역효과를 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양이 자리에 호랑이를 앉힌 꼴이다. 뉴욕타임스 중남미 특파원 출신으로 미국의 대외 개입 역사를 심층 추적한 스티븐 킨저는 『하와이에서 이라크까지 미국의 체제전복 세기』(2006)란 책에서 세계 도처에서 시도된 미국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공작은 미국의 안보를 강화하기보다 되레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새로운 두통거리로 등장한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도 따지고 보면 잘못된 무력개입의 부작용이다. 미국은 왜곡된 정보를 근거로 사담 후세인을 악마로 몰아 처단하고, 이라크 정권을 교체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IS의 발호를 부추긴 꼴이 됐다. 미국이 옹립한 시아파 총리 누리 알말리키의 전횡으로 코너에 몰린 알카에다의 한 분파가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지도 아래 IS로 발전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임자인 조지 W 부시의 잘못된 이라크 개입이 후임자인 오바마에게 두고두고 짐이 되고 있다. IS 격퇴 범위를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확대하면서 막이 오른 오바마판 중동전쟁은 다시 그의 후임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세습 왕조정권을 물려받아 문을 걸어잠근 채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인권을 탄압하고, 강제수용소를 운영하는 북한은 미국의 눈에 악마로 비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악마로 보이는 것과 실제로 악마인 것은 별개의 문제다. 상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악마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베트남과 이라크에서 저지른 뼈아픈 실수를 되풀이할 수 있다. 

 회고록에서 그레그는 “북한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정보 실패 사례”라고 고백한다. 정보기관 차원의 실패일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지적인 사고의 실패라고 실토한다. 상대를 잘 모른다면 일단 접촉하고 대화해야 한다. 악마인지 아닌지는 그 다음에 판단할 문제다. 싫다고 외면하고 무시하는 것은 미국이 자부하는 지성에 대한 모욕이고 배신이다. 북한에 억류돼 있는 3명의 미국인은 북·미가 만날 수 있는 좋은 구실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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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5:58

“아들 봐야지.”

할머니가 갓 결혼한 손자 부부에게 권유한다. 할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번에 어머니가 아들 부부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타이른다. 

“딸이 최고다.”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젊은 부부는 결심한 듯, 두 어르신에게 선포한다. 

“웬만하면, 안 낳으려고요.”

추석에 지인(知人)의 집안에서 벌어진 3대의 대화다. 아들 선호에서 딸 선호로, 다출산에서 저출산으로 확 바뀐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출생통계가 나왔다. 딸 100명당 아들 출생이 105명까지 떨어졌다. 1981년 이후 아들 성비가 가장 낮았다. 수명이 짧고 사고를 많이 당하는 수컷의 태생적 한계를 감안하면 105~107을 밑돌면 실질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적어진다.

‘남아 부족 사회’가 곧 닥칠 미래라면 ‘총각 과잉 사회’는 엄연한 현재다. 올해 예비신랑(결혼적령기 29~33세)은 예비신부(26~30세)보다 38만 명 정도 많다. 내년부터 신랑 초과가 20만 명대로 떨어진다고 하니, 이 땅의 총각들은 최악의 2014년을 견뎌내는 중이다. 아무튼 ‘남아 출산 역대 최저’와 ‘총각 과잉 역대 최고’가 동시에 벌어지는 기막힌 사회에 우리는 산다. 역설의 씨앗은 40년 전에 뿌려졌다.

1970년대 한국에는 아들 선호 사상이 강하게 깔려 있었다. 생각이 그렇다고 곧바로 성비 불균형이 오지는 않는다. ‘태아성감별’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생각과 합체하면서 성비의 조화는 급격히 무너진다. 그때 태아성감별 기법은 정교화·대중화한다. 이 기법은 사회의 위협요소가 아니라 경이로운 첨단이었다. 74년 한 일간지는 태아성감별 기술을 이렇게 칭송한다.

‘양막세포의 성염색체질을 분석하는 기법으로 무려 90%나 정확하게 태아의 성별을 감별하는 기술이 개발돼 화제를 모으고….’

아들 출생성비는 81년 107에서 90년 116까지 가파르게 올라간다. 상승곡선을 보면서도 정부와 의료계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 성비가 115 선을 육박하던 87년이 돼서야 정신을 차려 태아성감별을 처벌할 수 있게 의료법을 손질했다. 정신만 차렸을 뿐 실제 행동은 한참 뒤인 90년대 중반에 들어간다. 의협의 자체고발 선언(95년), 복지부의 의사면허 취소 발표(96년), 검찰의 첫 의사 구속(96년) 등 강력한 제재 기류가 일어난다.

 하지만 어찌하랴. 96년 성비는 이미 111을 기록, 급격히 떨어지는 추세였다. 아들 선호 사상이 퇴장하는 시점에서 ‘강력한’ 뒷북 정책이 출현한 것이다. ‘남아 출산 최저’와 ‘총각 과잉 최고’가 같은 시대에 출현한 까닭은 바로 인구·기술의 동향을 무시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은 탓이었다.

사회변화를 촉발하는 근원적인 요인을 미래 동인(動因)이라고 부른다. KAIST 미래전략대학원은 7가지 동인을 ‘STEPPER’라는 영문이니셜로 제시한다. 사회·기술·환경·인구·정치·경제·자원을 뜻한다. 7가지 중에서도 미래 변화를 설명하는 데 항상 빠지지 않는 동인은 인구·기술(PT) 두 가지다. 지난 40년간 우리의 미래전략은 번번이 실패했다. 아니, 미래전략 자체가 없었다. 인구와 기술의 변화를 제때 읽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가 가라앉는 상황에서야 극약처방을 쓰는 잘못을 저질렀다.

앞선 나라의 경제·사회 체제를 빨리 베껴 발전하던 시절에는 미래전략의 실패는 용납될 수 있었다. 지금은 베낄 데가 거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스스로 미래의 변화요인을 찾아내 관리하지 않으면 미래의 기습을 받게 된다. 누가 인구변화와 신(新) 기술의 영향력을 가늠하고 대책을 세울 건가. 국가든, 기업이든, 단체든 그런 사람이 미래의 리더이어야 한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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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5:57

어느 날 문득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세상이 이렇게 변했나” 새삼 깨닫게 되는 때가 있는데, 내겐 중국인 관광객이 그랬다. 어느 틈에 이렇게 많아진 걸까. 굳이 중국을 가지 않아도 중국인이 한국인보다 많은 곳을 찾기 어렵지 않다. 중국 인파로 가득 찬 명동이며 중국어 안내문 천지가 된 백화점들은 이젠 얘깃거리도 안 된다.

휴일 아침 동네 산책길은 또 어떤가. 부암동에서 삼청동으로 향하는 청와대 정문 앞은 사진 찍는 중국인들로 막혀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다. “실례합니다” 대신 “두이부치(對不起)”로 인사말을 바꿔야 할 판이다. 어느새 내 삶에 들어온 중국인,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할 때란 생각이 든 것도 그래서였다. 문제는 그 중국인 관광객이 ‘어글리 & 리치’, 두 얼굴이란 점이다. 어글리는 떼어버리고 리치만 상대할 순 없을까. 하지만 어디 세상사가 입맛대로 다 되겠나.

‘어글리 중국인’과 살아가기는 결코 만만치 않다. 추한 중국인은 중국 정부에도 골칫거리다.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낙서를 하고, 뉴욕 월가 황소 동상에 올라타 사진을 찍고 돈 자랑하다 베트남에서 납치돼 나라 망신시킨 사례가 수도 없다. 급기야 중국 정부는 지난해 ‘문명여행지침서’를 만들었다. 외국 가면 줄 잘 서고, 돈 자랑 말고, 그 나라 문화와 질서에 잘 따르라는 내용이 주다. 그것도 모자라 외국의 문화재나 유적지에 낙서하면 최대 10일의 구류형을 받게 되는 새 여행법도 통과시켰다.

한국만 깔봐서 그런 건 아닌 듯하니 그나마 위안이다. 하지만 추한 중국인이 한국에서 벌이는 작태는 목불인견이다. 한국여행업협회로 날아드는 공문 몇 장만 봐도 실태를 알 만하다. 지난달 경복궁관리사무소가 여행협회에 보낸 공문의 요지는 이렇다. ‘중국 관광객들의 쓰레기 무단 투기와 흡연, 경내 노상 방뇨가 도를 넘었다. 우리 민족의 격조를 상징하는 제1의 법궁에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여행사가 주의시켜 달라.’

이화여대의 공문은 점입가경이다. 추한 중국인들이 수업시간에 불쑥 들어와 아무나 사진을 찍고, 교실에서 담배를 피워대기 일쑤니 주의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화가 ‘돈을 벌다(利發)’란 중국어 발음과 비슷한 데다 학교 정문에서 사진을 찍으면 부자가 되거나 딸이 시집을 잘 간다고 중국에서 소문나 관광명소가 된 지 몇 해. 이대 관계자는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추한 중국인 몸살에 앓아누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문을 닫아 걸고 외면할 수도 없다. 중국인을 겨냥한 관광산업은 미래의 먹거리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은 매년 25%씩 늘고 있다. 올해엔 500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덕분에 생겨난 일자리가 24만 개, 47개 국내 대기업이 지난해 새로 만들어낸 일자리의 4배다. 지난주 정부가 내놓은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이 실행되면 중국 관광객은 더 늘어날 것이다. 덩달아 추한 중국인도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중국인은 무슨 일이든 떼로 행동하는 데 익숙하다. 이때 상식이나 논리는 필요 없다. ‘소변이 건강에 좋다’면 금세 유행을 타는 식이다. 루쉰(魯迅)은 이를 중국인의 ‘벌떼 근성’이라고 불렀다. 이런 벌떼 근성이 추한 중국인과 결합하면 강도가 더 세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손가락질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는 어땠나. 먼저 반성해야 한다. 1994년 공보처는 ‘추한 한국인’ 사례집을 펴냈다. 조금 살게 된 한국이 특히 중국에서 갖은 추태를 부리던 시절이다. 문화재에 낙서하기, 줄 안 서기, 돈 자랑하기, 싹쓸이 쇼핑, 오만방자한 졸부행각, 중국에서의 추태를 낱낱이 고발했다. 20년 전 중국 땅에서 추한 한국인이 뿌린 씨가 시간과 공간을 돌아 지금 대한민국에서 악과(惡果)의 싹을 틔운 건 아닐까. ‘흉보면서 닮는다’는 말도 있잖은가.

지금은 어떤가. 20년 전 길거리에 카~악하고 가래침 뱉던 아저씨·아줌마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도를 달리는 무법 오토바이에 새치기·욕설과 난폭운전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남 욕할 때가 아니란 얘기다. 그러니 추한 중국인과 살아가기, 밋밋하겠지만 ‘우리부터 바꾸고 가르치기’가 답이다. 




중국인이 바꿔 놓은 한국은 서울 명동과 제주의 거리 풍경뿐만이 아니다. 구구한 설명 대신 숫자 몇 개를 보자. 진실은 늘 숫자 뒤에 숨어 있다지 않은가.

첫 번째 숫자는 54.7%다. 중국 자본이 올 들어 7월 말까지 사들인 한국 주식은 1조8900억원어치다. 외국인들이 사들인 주식의 54.7%다. 50은 과반수다. 50을 넘게 가지면 주도권을 쥐게 된다. 한국 기업의 주가는 중국 자본에 의해 움직인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실제 아모레퍼시픽(화장품)이나 리홈쿠첸(전기밥솥) 같이 중국인이 즐겨 찾는 물건을 만드는 회사 주가는 1년 새 두세 배 뛰었다.

어디 그뿐이랴. 요즘 한국의 인수합병 시장은 중국 자본의 독무대다. 중국 자본의 한국 투자는 올 상반기에만 9600억원, 6년 새 80배가 늘었다. 아가방·키이스트(연예기획사) 등 100억원 이상 투자도 9건이다. K투자자문사 K사장은 “한국 기업과 중국 자본을 연결해주는 비즈니스가 가장 큰 돈이 된 지 오래”라며 “중국 자본과의 친분 여부가 국내 금융업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숫자 5807억원, 중국인이 제주도에 소유한 땅의 공시지가를 합한 금액이다. 5년 전보다 넓이는 296배, 금액은 1452배 늘었다. 5억원 이상 휴양시설에 투자한 외국인에게 5년 후 영주권을 주는 부동산투자이민제가 2010년 도입된 후 일어난 일이다. 제주엔 요즘 몰려드는 중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은 지난여름 모처럼 제주도를 찾았다가 신라호텔을 가득 메운 중국 관광객을 보고 “여기가 중국이야, 한국이야” 하며 놀랐다고 한다. 급기야 ‘중국인 장기매매 조직이 상륙했다’ ‘자본으로 위장한 중국 마피아가 날뛴다’는 악성 괴담이 퍼질 정도였다. 이런 괴담은 대개 이유도 근거도 없이 반중국인·중국 자본 정서를 부추긴다.

세 번째 숫자 3.2%. 한국의 대중 수출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이미 변화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권이다. 세계 명품의 28%를 소비한다. 이런 중국에 우리는 주로 부품·소재·자본재를 팔아왔다. 중국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팔 수 있는 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올 들어 8월까지 우리 수출은 지난해보다 2% 넘게 늘었지만 중국에 대한 수출은 되레 4% 넘게 줄었다. 더는 중국 옆에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 적당한 기술과 제품만으로 중국에 팔아먹을 수 없게 됐다는 의미다.

네 번째 숫자 330만원. 중국인 한 사람이 지난해 해외여행에서 쓴 평균 금액이다. 10년 전(987달러)보다 세 배 넘게 늘었다. 늘어난 요우커(遊客)의 씀씀이는 한국의 관광수지 통계도 바꿔놓았다. 지난 7월 한국의 관광 수입은 16억1590만 달러(약 1조6500억원)였다. 역대 최고다. 7월엔 한국인의 해외 관광도 사상 최대(18억237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관광수지 적자 규모는 13년 만에 최저로 되레 줄었다. 중국 관광객 덕분이다. 요우커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의 42%를 차지했다. 일본의 3배다.

숫자들이 보여주는 중국은 두 얼굴이다. 어떤 숫자는 우리 경제에 독이고 어떤 숫자는 약이다. 여기까지는 과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중국인·중국 자본의 규모다. 많아지면 달라진다. 사용자가 많아지면 새로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뜨는 식이다. 중국인이, 중국 자본이 이 땅에 많아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최고 기업 순위가 바뀌고, 더 이상 중국 수출로 먹고살 수 없는 시절이 올 것이며, (지금 북한의 어린아이들이 그렇듯이) 중국인이 던져주는 사탕을 과거 미국인의 초콜릿처럼 아이들이 받아먹는 세상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기업인은 몇 년 전 중국 경제의 약진이 두렵다며 이런 말을 했다. “한·중의 5000년 역사상 우리 세대가 중국인들에게 발마사지를 받고 산 최초이자 마지막 세대가 될지 모른다.” 그의 불길한 예언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숫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요리하느냐에 따라. 


이정재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593060&cloc=olink|article|default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773476&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53

가끔 만취하여 길가에 몸을 부려놓은 남자를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저 사람은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들 발길 채이는 곳에 몸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스릴을 즐긴다는 명목으로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 관계 사이를 오가며 정서적으로 고갈되고, 세상을 욕하고 타인을 비난하면서 생을 낭비하는 것, 남자들의 그런 행동을 볼 때도 생각한다.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

유년기에 엄마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아기는 안정된 정서를 가진 건강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대체로 엄마의 유난스러운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란다. 그렇기에 의문이 깊어진다. 왜 어떤 남자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좋은 것들을 외부에 있는 여자에게서 받아야 한다고 믿을까. 자기중심적 선택, 근거 없는 자신감을 자기 사랑과 구별하지 못하는 걸까. 그들이 받은 엄마의 사랑에 나쁜 것이 섞여 있었던 걸까.

사실 아들이 태어나면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엄마 본인이다. 우선 기본적인 임무를 수행했다는 홀가분함이 있다. 집안의 대를 이어주고, 남편의 불멸 욕망을 충족시켰으니 이제는 기를 펴도 된다고 느낀다. 또한 아들의 엄마로서 생존 근거를 얻었으며, 노년까지 유효한 보험이 생겼다고 믿는다. 의식 차원에서 아들은 엄마의 존재 증명이 되는 셈이다. 무의식 차원에서 아들은 여성들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페니스 엔비(envy)’를 보상받는 기회가 된다. 여성은 아들을 낳으면 “나도 드디어 페니스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어떤 엄마는 “아들 고추가 미학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치 금강초롱꽃 같더라”고 표현했다. 아들 탄생을 기뻐하는 엄마 마음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존에 유익한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다. 그러니 평생을 두고 아들이 받은 엄마 사랑에는 아들이 불편해하고 부담스러워 할 만한 요소가 충분히 들어 있었을 것이다.

고부간의 갈등은 아들을 놓고 엄마와 아내가 벌이는 사랑의 경쟁 행위이다. 아들을 존재 증명처럼 여기는 엄마는 성인이 된 아들을 떠나 보내지 못한다. 며느리는 기필코 남편의 사랑을 독점하고자 한다. 내가 읽은 모든 세계 문학, 외국 영화, 해외 사례들을 떠올려봐도 우리의 고부 갈등 같은 스토리를 본 기억이 없다. 정신분석적으로 그것은 오이디푸스적인 금기 영역의 이야기다. 이번 명절에도 어떤 남자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두 여자 사이에서 눈치 살피며,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할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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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5:47

국회는 마비되고 민심도 갈라졌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여론과 여야의 기존 합의안을 존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맞선다. 전대미문의 대참사에 온 국민이 함께 국상(國喪)을 치른 '순수의 시대'는 사라졌다.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의 공감대로 만난 유가족과 국민의 순정(純情)을 넘어 세월호 문제는 진흙탕 권력 투쟁으로 비화했다. 세월호특별법을 두고 보수·진보 진영은 다음 총·대선까지의 정치적 득실을 따지느라 바쁘다. '만사(萬事)의 정치화(政治化)'라는 우리의 고질병이 다시 도졌다.

그러나 서늘한 가을바람은 당쟁(黨爭)으로 타락한 '세월호 정치'를 준엄하게 꾸짖으며 모두 정신 차려서 '세월호 이후'를 준비하라고 경고한다. '세월호 이후'를 예비하는 자기 성찰의 최대 화두는 직업윤리 문제다. 세계 해운인의 수치로 지적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이를 특정 해운사의 횡포 앞에 무력했던 선박 노동자의 일탈로 좁히는 건 안이한 설명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던 정부와 공무원들의 행태도 직업윤리 부재라는 맥락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직업윤리의 척박함은 한국인의 행복도가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인 이유를 설명한다.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감정 인플레 현상이 휩쓰는 것도 한국인의 삶에서 마음의 중심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마음의 중심은 과거처럼 정신 수련이 아니라 성숙한 직업윤리에서 나온다. 현대인은 자기가 선택한 직업에서 열심히 일함으로써 돈도 벌고 공동체에 기여하며 자아실현을 꾀한다.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중심 잡힌 마음이 곧 직업윤리다.

우리 사회는 자연스럽게 직업윤리를 생성하는 '돈벌이-사회에 대한 기여-자기실현' 사이의 연결고리가 사회문화적 압력에 의해 단절되어 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서 남이 인정하는 직업에 연연한다. 인정받는 직업이란 돈을 많이 벌거나 권력이 있는 자리를 뜻한다. 물론 그것은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은 유별나다. 살인적인 입시 경쟁도 좋은 학벌이 좋은 직업으로 이어지고 좋은 직업이 성공한 인생으로 연결된다는 확신 때문이다.

겉은 민주 다원(多元) 사회지만 우리 사회의 내적 가치관은 매우 단원적(單元的)이며 봉건적이다. 무릇 인재라면 '출세'해야 하고, 출세의 종착점은 '벼슬'하는 데 있다고들 한다. 이런 인식이 일상화된 사회는 관(官)과 정치 영역의 이상 비대화가 불가피하다. 현대 정당정치로 포장한 한국 정치가 중세적 당쟁에 매몰되기 일쑤인 근본 배경이다. 극소수 직업이 사회적 인정을 독차지할 때 건강한 직업윤리 생성은 요원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는 아직 중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돈·권력·명예라는 희소 자원이 몇몇 직업으로 집중되는 한국적 메커니즘을 끊어내야 진정한 현대로의 진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깊은 실존적 통찰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답게 살 만한 수입이 어느 정도 확보되면 그다음 단계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일에 자족(自足)하는 것이다. 르상티망(강자와 승자에 대한 약자와 패자의 질투 서린 원망)이 유독 강한 한국 사회에서 안분지족(安分知足)보다 희귀한 것도 드물기 때문이다. '노동의 종말'이 현실로 닥쳐오는 사회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도 귀한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일에 대한 자족감이 현실에 대한 안주(安住)로 퇴행하지 않게끔 자계(自戒)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어떤 일에 자족하면서도 자계하게 되면 이윽고 그 일을 잘할 수 있게 된다. 자족하면서 자계함으로써 잘할 수 있게 된 일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행복감이다. 일 자체에 대한 몰입에서 오는 행복감은 자기 충족적이어서 세상의 인정과 돈의 보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족과 자계의 사이클이 만드는 뛰어남(arete·아레떼)은 모든 직업윤리의 핵심이다. 그 뛰어남에서 비롯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한국인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마음의 습관이다.

세월호특별법 논란으로 시끄러운 판국에 직업윤리는 한가한 얘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는 직업윤리야말로 오늘의 한국인에게 진정 중요한 덕목임을 웅변한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삶의 기쁨과 진실이 평범한 데 있다는 걸 함께 확인하게 되는 한가위가 다가온다. 이제는 우리도 '세월호 이후'를 준비해야만 한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04/2014090404639.html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44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주인공 햄릿의 독백(soliloquy)이다. 그런데 미국 코넬대와 콜로라도대 연구팀은 'To do or to have'라는 화두를 던졌다(bring up a conversation topic). 다양한 경험이냐, 물질적 소유(diverse experiences or material possessions)냐, 그것이 인생 행복에 문제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경제적 선택이 '웰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은다(join in the chorus). 경험적 구매(購買·experiential purchase)와 물질적 구매(material purchase) 중 돈을 주고 무언가를 '하는' 것이 물건을 사서 '갖는' 것보다 더 큰 행복감을 준다고 한다. 가령 같은 값이라면 고급 시계나 보석을 사느니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영화·음악회·스포츠 경기를 보러 다니는 것이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improve the quality of life) 얘기다.

[윤희영의 News English] To do or to have, that's the question


쌓이는 물질적 재화의 증가(the increase in our stocks of material goods)는 정신적·신체적 웰빙에 이렇다 할 도움이 거의 되지 않는다(produce virtually no measurable gains in our psychological or physical well-being). 더 큰 집, 더 멋진 차를 산다고 해서 행복도 그만큼 커지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도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consist in the abundance of possessions) 아니하니라'(누가복음 12장 15절)라고 했다.

물질주의적인 사람(materialistic person)은 주관적 행복감(subjective feeling of happiness)과 삶에 대한 만족도(level of satisfaction with life)가 낮은 경우가 많다. 우울증에 빠지기 쉽고(be prone to depression) 피해망상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be likely to be paranoid). 사회 비교에 취약한(be vulnerable to social comparisons) 탓이다. 남이 2억원을 받고 자신은 1억원을 받을 바에야 남은 2500만원 자신은 5000만원 받기를 원한다. 내가 얼마 버느냐가 아니라 남에 비해 얼마 더 받느냐에 집착, 행복할 틈이 없다.

이에 비해 인생 경험에 투자를 하는 사람은 그런 달갑지 않은 비교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경험이라는 독특한 속성 때문에(owing to the unique nature of experience) 견주어보거나 비교당할 대상이 없어 평온하다. 더 큰 집도 집, 더 멋진 차도 차, 그대로 낡아만 가지만, 경험은 시간이 갈수록, 쌓이면 쌓일수록 인생을 훨씬 풍요롭게 한다(make our life a lot richer).

경험은 물질적 소유물에 비해 사회적 가치가 더 높다(have more social value than material possessions). 사회적 관계가 다양해져 행복을 느낄 기회도 많아지고,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다 보면 사회적으로 더 환영받는(be more socially acceptable) 존재가 된다. 그런데 속에 든 건 없으면서 겉으로 가진 것들에 대해서만 떠들어대고 으스대는(bang on and boast about their possessions) 사람은…, 시쳇말로 '진상'이라는 소리 듣는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17/2014091704738.html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40

치권에서 세월호 사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유경근 대변인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세월호 유족을 이끄는 실질적 리더로 유씨를 꼽고 있다. 유씨는 세월호 침몰로 쌍둥이 자매 중 둘째를 잃었다.

유씨는 정의당 당원이라고 한다. 정의당은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유시민·심상정·노회찬 의원 등이 2012년에 만든 정당이다. 그는 유시민 전 의원을 지지하는 팬 클럽 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가 유족 대변인으로 나서면서 그가 2013년 11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논란이 됐다. 유씨는 '바뀐애는 물러나야 한다'고 썼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을 그렇게 바꿔 부르며 "부정한 방법으로 (당선)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기에 훔친 거 내놓고 나가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304명 피해자 가족 중 한 사람이다. 가족을 잃은 참기 힘든 슬픔을 함께하는 유족들이라 해도 정치적 신념과 성향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실제 유족들은 참사 초기에 각 정당과 정치인들이 혹시라도 세월호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할 가능성을 가장 경계했다. 여당이라고 박대하거나 야당이라고 반기는 일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이들의 판단 기준은 하나였다. 어느 정치인, 어느 정당이 진심으로 자신들을 대하고 세월호 진상 규명 의지를 보여주느냐를 따졌을 뿐이다. 이 관문을 가장 성공적으로 통과한 인물이 새누리당 4선(選) 의원 출신으로 세월호 참사 직전에 해양수산부 장관을 맡은 이주영 장관이다.

이 장관은 지난 추석 연휴 내내 세월호 침몰 현장인 진도에 머물렀다. 이 장관은 요즘도 외부 일정을 마치면 무조건 진도로 향한다. 그러곤 유족들을 만나고 진도군청 사무실에 마련된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한다. 벌써 다섯 달이 넘게 이런 생활을 해 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난 8월 하순 이란·일본 출장에 맞춰 넉 달간 길게 자랐던 수염을 자른 정도다. 처음엔 이 장관의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던 유족들이 이제는 이 장관이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이 장관은 해양 관련 안전 대책을 다시 세우고 10명 남은 실종자 수색 및 구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진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세월호 사태의 본무대는 참사 발생 한 달 뒤부터 서울로 옮아왔다. 각종 시위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단체들이 대거 참여한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가 만들어진 것도 이 무렵이다. 이때부터 유족들의 국회 방문과 항의 농성이 시작됐다. 그런데도 이 정권의 누구도 팽목항의 이주영 장관처럼 서울로 올라온 유족들을 만나 이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당에선 유족들을 노숙자에 비유하는 등 상처를 주는 발언이 줄을 이었다.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6번이나 사과하고 정부 전체가 사고 수습에 매달렸던 노력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정권과 유족 단체가 대립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첫 한 달과 그 이후의 유족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18세 흑인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후 이 도시는 열흘 넘게 대규모 흑인 소요(騷擾)를 겪었다. 한밤중에는 약탈까지 횡행했다. 이 사태는 흑인인 에릭 홀더 법무장관이 현지에 투입되면서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흑인들이 자신들의 분노와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나타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반면 박근혜 정부에는 인종이 다른 것도 아니고 무장 폭력 시위를 벌이는 것도 아닌 세월호 유족들과 얼굴을 맞대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줄 사람도 마땅히 없었다.

정부·여당과 달리 유족들을 에워싼 단체들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유족 곁을 지켰다. 여당 관계자는 "유족의 마음을 얻는 데서 전문가 수준인 이들을 당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 단체들은 군 기지 건설이나 송전탑 문제 등 사회적 갈등 요인이 있는 현장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판판이 이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이주영 장관의 성공 사례는 재현(再現) 불가능한 예외적인 경우인가.

사실 세계에서 민족·인종·종교 같은 대형 갈등 유발 요인이 우리만큼 적은 나라는 드물다. 그런데도 어느 나라보다 더 큰 사회적 갈등 비용을 치르느라 스스로 손발을 묶어 놓고 있는 게 지금 우리 실정이다. 선진적인 갈등 관리 모델을 찾는 것이야말로 세월호 후속 대책의 핵심 내용이 돼야 한다.

며칠 전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국회를 찾아가 "새누리당이 강조하는 민생 법안은 서민에게만 세금 많이 내라는 것이고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며 의료비를 폭등시킬 우려가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변인 유씨가 주도했다. 야당 대변인이나 다를 게 없다.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일관한 정부·여당의 무능·무책임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두식 논설위원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16/20140916043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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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5:38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일 미국의 공유경제(Sharing Economy) 전문가 2명을 만났다. 박 시장은 민선 2기 임기 동안 공유경제 정책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이들로부터 조언을 들었다.

공유경제는 자동차를 비롯해 집·주차장·옷·사무실·기술 등 유무형 재산을 인터넷을 통해 수요자와 공급자 간에 중개하는 신종 서비스 모델을 뜻한다. 숙박 공유에서는 에어비앤비(Airbnb)가 10조원 가치를, 교통 중개에서는 우버(Uber)가 18조원 가치를 인정받을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벤처 분야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공유경제는 미국 진보 진영에서 최고로 꼽는 혁신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들은 공유경제가 과잉생산, 불균형 배분 등 자본주의의 근본 약점을 '개인 대 개인 간 거래(peer to peer)' 시스템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박 시장은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공유경제의 철학과 가치를 일찌감치 꿰뚫고 구체적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지구촌 공유경제 진영으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다. 박 시장은 2012년 공유경제 촉진을 위한 조례를 만들어 공유경제 정책 기반을 체계적으로 조성했다. 아울러 공유경제의 일자리 창출 능력을 적극 활용하는 실용주의 리더십도 발휘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공유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서울시는 3년 만에 스타 도시로 부상했고, 박 시장도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 박 시장의 공유경제 드라이브가 암초를 만났다. 올 초부터 세계 주요 도시에서 '안티 공유경제' 움직임이 일면서 논란을 계속 낳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기존 호텔과 택시업계가 공유경제 벤처들의 불법성을 부각시키면서 규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집 공유 유행이 부동산 소유주의 배만 불리는 등 빈부 격차를 더 심화시키면서 풀뿌리 지지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공유경제의 또 다른 논란은 글로벌 공유기업이 각국 지역 공유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점이다. 에어비앤비의 경우 실리콘밸리의 막강한 자금을 바탕으로 전 세계 도시에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면서 지역 공유업체의 숨통을 죄고 있다. 일각에선 공유경제는 미국 실리콘밸리식 마케팅 수사에 불과하고 결국 극소수의 수퍼 리치만 탄생시키는 수단에 그칠 것이라고 비판한다.

박 시장은 4년 임기 동안 공유경제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내려면 당장 서울시내 택시업계와 우버의 충돌부터 새로운 프레임으로 해결해야 한다. 서울에서도 다른 도시에서처럼 택시업계가 우버 견제에 나섰고, 서울시의 교통 관련 직업 관료들은 우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자자, 비앤비히어로 등 서울에 뿌리를 둔 숙박 공유 벤처기업이 글로벌 공유기업의 공세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외국 업체의 배만 불리는 공유경제 정책으로 서울시민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중앙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공유경제 관련 난제들의 해결책을 함께 찾고 도움도 받아야 한다.

박원순 시장이 대립적 요소와 미래 지향적 요소가 얽혀 있는 공유경제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지 궁금하다.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11/20140911006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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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5:33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얼마 전 <한겨레>에 “사생활 보호와 알 권리, 무엇이 우선일까요”라는 기사가 실렸다. 권리 간 충돌 문제를 다룬 내용이었다. 집회의 권리와 통행의 권리가 부딪친다면, 학생인권과 교권이 맞선다면, 죄수의 권리와 간수의 권리가 대립한다면, 노동자의 권리와 기업의 경영권이 갈등한다면 등등, 권리들끼리 싸우는 사례는 많다. 필자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동전을 모았더라면 지금쯤 돼지저금통이 하나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이슈다. 권리 간 충돌 문제는 인권에서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민감하고 골치 아픈 난제다.

권리간 충돌은 21세기 들어 커다란 쟁점이 되었다. 9·11 이후 핵심쟁점이 국가안보냐 개인 자유권이냐 하는 질문이었다. 일률적 잣대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이 문제를 해소할 기본원칙은 있다. ‘대다수 권리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 ‘권리들 간에 서열을 매길 수 없다’ ‘어떤 권리를 모두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등.

권리 간 충돌은 21세기 들어 전세계적으로도 커다란 쟁점이 되었다. 9·11 사태 이후 대테러 전쟁에서 논란이 되었던 핵심쟁점이 국가안보냐 개인 자유권이냐 하는 질문이었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으로 비롯된 논란 역시 비슷한 구도였다. 부부가 자녀를 가질 수 있는 재생산권과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우선시하는 공리주의적 요구가 대결했던 것이다. 프랑스 무슬림들의 히잡 착용 권리와 모든 공공교육 시설에서 종교적 상징물을 금지하는 정부의 입장 대립, 이 역시 권리 간 충돌 사례였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권리 간 충돌 문제에 관해선 확실한 정답이 없다가 정답이다. 사례별로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인권은 무조건 우선시되어야 할 절대적 규범이라고 배웠는데 어째서 이렇게 어중간한 답이 나온단 말인가.

우선 권리의 충돌에도 여러 유형이 있음을 지적해야 하겠다. 다른 종류의 권리들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대중의 알 권리와 공인의 사생활 권리를 생각하면 된다. 동일한 권리의 행사방식과 한계설정을 놓고 갈등하는 경우도 있다. 표현의 자유가 소중하지만 일베들의 행태에 어떤 제한을 가해야 할지 고심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한 사람의 내면에서 서로 다른 권리들이 충돌하기도 한다. 내가 믿는 종교의 가르침과 시민으로서의 의식이 갈등하는 게 좋은 예다. 법적 권리와 사람들의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권리’라는 말에 여러 차원이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무 데나 ‘권’자를 붙인다고 해서 무조건 인권이 되는 건 아니다. 인권의 관점에서 보자면 제일 중요한 권리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인권규범에 부합하는 권리다. 국제 인권규범은 대개 국내법으로도 인정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인권은 아니지만 법적 효력을 지닌 권리도 있다. 그다음 단계로, 중요한 이익 또는 권익이 있을 수 있다. 이 역시 현실에서나 법정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 또한 법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어떤 집단에서 극히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의 문화적 영향력을 감안해 권리 비슷하게 인정해 주기도 한다.

특히 신앙이나 정체성,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권리는 정서적 인화성이 강해 민감한 충돌과 파열음을 일으키기 쉽다. 그렇다면 권리 간 갈등 문제를 해소할 방안이 있는가. 몇 가지 기본원칙이 있다. 첫째, 대다수 권리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 가장 오해가 많은 부분이다. 자연법 전통의 천부인권론이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끼치면서 인권은 신성불가침이고 절대적이라는 믿음이 정설처럼 자리잡았다. 권리 간 충돌의 근원을 따져 보면 이런 오해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하지만 남을 해치면서까지 내 권리를 주장할 순 없다. 표현의 자유가 아무리 중요해도 아동 음란물을 제작할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 아무리 확실한 권리라 하더라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일정한 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오늘날 인권이 대단히 매력적인 담론으로 떠오르면서 이런 초보적인 사실조차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스테판 에셀이 <분노하라>에서 명쾌하게 정의했던 유명한 구절을 기억해 보라. 세계인권선언에서 말하는 자유란 “닭장 속의 여우가 제멋대로 누리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다.”

둘째, 권리들 간에 서열을 매길 수 없다. 정책적으로 어떤 권리를 먼저 시행할 수는 있겠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인권의 가치가 중요하다. 권리들이 충돌할 때 어떤 권리를 배제할 것이 아니라 모든 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 최선이 어려우면 차선책이라도 모색해야 한다. 즉 인권에서도 균형과 타협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셋째, 어떤 것에 대한 청구권이 있다 하더라도 그 권리를 모두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했다 해서 다산콜센터의 상담사에게 모든 맛집 정보를 요구하거나 어떤 속옷을 입고 있느냐고 묻는 따위의 성희롱을 할 권리는 세상에 없다.

넷째, 권리들끼리 충돌할 때엔 각 권리의 범위를 정해야 하고 사안의 맥락을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구나 공개적으로 말할 자유가 있지만 어떤 맥락에서 그것이 표출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사람이 가득 찬 소방서에서 “극장이야”라고 소리치는 건 별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사람이 가득 찬 극장에서 “불이야”라고 소리칠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 전혀 다른 맥락의 행동이고,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회의 법적, 문화적 규범도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예컨대 ‘동방예의지국’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욕설을 퍼붓는 행위를 표현의 자유라는 식으로 옹호하기는 어렵다.

다섯째, 본질적 권리와 부차적 권리 사이의 무게를 달아 경중을 판단해야 한다. 이것을 핵심적 권리와 주변적 권리로 구분하기도 한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어떤 가치에다 ‘권’자를 붙여 절대적 권리로 내세울 때 제로섬 게임 같은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모든 ‘권리’의 무게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사안별로 권리들의 무게가 다르고, 같은 권리라 해도 경우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서구에서 간혹 인용되는 사례가 있다.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어떤 사람이 자기 정체성과 관련된 업무로 관공서를 찾았다. 공교롭게도 종교적 이유로 그런 정체성에 반대하는 공무원이 창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직원은 자신의 신앙 때문에 그 업무를 볼 수 없다고 하면서 다른 직원을 불러 주겠다고 했지만 차별적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 하지만 법원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업무 거부가 본질적 권리에 해당한다고 공무원의 손을 들어줬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었다. 특정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인쇄업자가 소수자 단체에서 요청한 책자 제작을 거부했다 제소당했다. 이번에는 법원이 인쇄업자의 행동을 차별이라고 판결했다. 종교적 신념 때문이라 해도 영업 거부는 주변적 권리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잊혀질 권리’ 논란과 같이 새로운 권리 충돌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정체되지 않고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권리 충돌이 발생할 때 되도록이면 약한 사람과 소수자의 눈높이에 인권의 눈금을 맞춘다는 원칙과 상식을 지켜야 한다. 이 점에서 법률가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이처럼 권리 간 충돌 문제는 일률적인 잣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원칙, 상식, 균형감각을 발휘해서 황금비를 찾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원칙인지, 어떤 상식인지를 면밀히 따질 필요는 있다. 인권의 원래 취지가 인간의 본질적 이익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적 다수결 원칙으로도 인권을 침해하진 못한다. 그렇다면 권리 충돌이 발생할 때 되도록이면 약한 사람과 소수자의 눈높이에 인권의 눈금을 맞춘다는 원칙과 상식을 지켜야 한다. 이 점에서 법률가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권리 간 충돌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문제다. 인권의 목록이 늘어나고, 신념과 이념에 근거하여 인권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의 불확실성 때문에 권리 간 충돌이 인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또한 권리들이 서로 충돌해 온 과정이 인권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인권이 발전한다는 말은 인간사회가 진보한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인간사회가 전진할 때 갈등과 긴장이 없을 수 없다. 권리 간 충돌은 인류 진보의 성장통인 셈이다. “권리들의 충돌은 사법부도, 입법부도 어떤 일관된 원칙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독특한 문제”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권리 충돌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정체되지 않고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잊혀질 권리’, ‘존엄하게 죽을 권리’ 혹은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과 같은 논란을 보라. 단시간에 인권 목록에 오르는 권리 요구도 있지만 오랜 논쟁을 거쳐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적지 않다. 권리 간 충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인권은 그 시대에 특유한 억압권력에 맞서는 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규정된다는 사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07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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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0. 15:30

지난달 말부터 서울 도심 곳곳의 교통을 막고 진행한 영화 '어벤져스 2'의 한국 촬영이 지난주 마무리됐다. 이 영화의 한국 홍보 효과를 둘러싼 여러 논란을 반복할 생각은 없지만 꼭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우리는 외국인이 제작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한국을 촬영지로 선택할지 여부와 그 속에 담을 내용을 거의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에 맡기고 있다. '어벤져스 2'만 해도 수십 분 분량을 찍었다는데, 실제 영화에서 무슨 장면을 얼마나 어떻게 보여줄지는 '그들 마음'이다. 우리는 그저 영화 제작을 지원하면서 '한국 알리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희망과 달리 이 영화가 작년 여름 국내 개봉한 '월드워 Z'처럼 한국을 그리면 어쩌나 싶다. '월드워 Z'는 한국을 좀비(zombie) 바이러스의 최초 유포지로 설정하고, 암흑 속 평택 미군 기지에서 죽은 괴물들이 날뛰는 장면만 몇 분 보여줬다. 한국이 나와서 반갑기는커녕 황당하고 불쾌했다.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 '도전 수퍼모델' 진행자로 유명한 타이라 뱅크스는 이달 초 서울시청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세빛둥둥섬 등을 배경으로 프로를 촬영하며 세계 180여 나라, 400만 시청자에게 "서울은 패션 도시"라고 선전해줬다. 기분 좋은 일이다. 우리 문화의 힘이 탄탄해진 데 따른 효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멋진 이벤트 역시 우리가 기획했다기보다 "서울이 궁금하다"며 제 발로 찾아와 준 뱅크스가 선사한 행운이다.

한국 홍보를 이런 우연에 기대지 말고 문단(文壇) 사례를 벤치마킹하면 어떨까 싶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중국의 모옌과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는 각종 작품과 기고를 통해 한국을 홍보해 왔다. 모옌은 장편 '개구리'에서 "아기 용품도 모두 준비했습니다. 하나같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한국산 아기 침대, 프랑스산 우유병…"이라고 썼다. 파무크는 터키 유력 신문 사바흐에 "나는 서울에서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휘황찬란한 건물들, 호텔 로비들과 서점을 보았다"고 격찬했다.

이런 결실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다. 파무크의 소설을 번역·소개해 온 터키 문학 전공자 이난아 박사는 '변방에서 중심으로'라는 책에서 파무크를 서울에서 열린 문학 행사에 초청했고, 귀국하는 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글을 터키 신문에 기고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개구리'가 한국 제품을 광고한 배경에도 대산문화재단·파라다이스문화재단 등이 한·중 작가 교류 행사를 열어 모옌을 여러 번 초청한 노력이 깔려 있다.

지난해 베네치아 광장과 트레비 분수, 리골레토와 토스카를 화면 가득 펼쳐놓는 영화 '로마 위드 러브'를 보며 세계인에게 '서울 위드 러브' '광주 위드 러브'를 보게 할 수 없나 생각했다. 그 영화를 만든 우디 앨런 같은 명감독을 초청해 한국의 매력을 설명하는 전략적 접근은 왜 하지 않는가. 외국인의 우연한 선택에 국가 이미지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어벤져스 2' 서울 촬영을 이 문제를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태훈 문화부차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24/2014042403237.html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17

불과 몇십 년 전까지 뭐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나라. 기술도, 자원도 없어 머리카락이나 주워 모아 가발을 만들어 수출하던 나라. 외화 벌이를 위해 간호사·광부·군인들을 해외로 파견하던 나라. 대한민국 이야기다.

그러던 나라가 어느덧 세계인 절반이 사용하는 휴대폰을 만들고 반도체를 생산한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어낸 드라마를 보려고 듣지도 못한 먼 나라 국민이 저녁마다 TV에 시선을 집중한다. 참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우리 기업들이 만든 최신 제품들. 얼마 전부터 세계시장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나쁘지 않다고. 많이 노력한 게 보인다고. 하지만 뭔가 부족하고 실망스럽다고.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실망스럽다는 걸까? 바로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대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답 또는 질문이다. 배가 고프기에 사냥을 해야 하고, 발이 아프기에 튼튼한 신발이 필요하다. 최첨단 스마트폰은 더 빨라야 하고, 고급 TV는 지금보다 더 좋은 화질을 가져야 한다. 모두 이미 주어진 질문에 찾아야 하는 정답들이다. 전쟁, 배고픔,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렇게 험한 세상이 우리에게 던져준 수많은 문제의 정답을 찾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갑이고, 우리는 항상 을이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사실 간단하다. 우리의 미래는 세계인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질문들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왜 IT 기계들을 '입고'다녀야 할까? 왜 기계들에 인공지능을 주어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게 진정한 행복일까?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젊은이들이 밤새워 공부하는 순간. 드디어 우리나라, 우리 기업들, 우리나라 국민이 이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던진 문제에 답을 찾던 것이 지금까지의 경제라면, 우리가 던진 문제를 세상이 풀도록 하는 게 창조경제일 수도 있다.

김대식 카이스트 뇌과학 교수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23/2014042303247.html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15

'우리 기업인들의 기개(氣槪)가 지금처럼 위축되고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적이 있을까?' 요즘 고위 임원·CEO들을 만나 얘기를 나눌 때 수시로 드는 생각이다. 이들이 말하는 사정은 여럿이다. 국내에선 중앙·지방정부와 입법부가 기업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경제는 저(低)성장이 정상(正常)으로 불릴 만큼 동력을 잃었다. 웅진·STX그룹은 해체됐고, SK· CJ·동양그룹 오너는 수감됐거나 재판 중이다. 재계에서 "현상을 유지하며 내 한 몸만 보전해도 대성공"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거스르는 기업도 있다. 1980년 서울 신촌 이화여대 앞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1998~99년 부도 위기를 겪었던 이랜드그룹이 주인공이다. 성장세부터 다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 중이다. 지난해엔 매출 10조원 고지(高地)를 넘었고 영업이익은 1년 새 25% 정도 늘었다. 최근 5년간 국내외에서 20여개 업체·사업 부문을 인수·합병(M&A)하는 공격 경영도 주목된다. M&A 목록에는 세계 30여개국에서 판매되는 글로벌 브랜드인 K-SWISS와 코치넬리·만다리나덕 같은 유명 상표, 퍼시픽아일랜즈클럽(PIC·사이판), 계림(桂林)호텔(중국) 등이 올라 있다.

흥미롭게도 이랜드가 명품·레저·호텔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데는 '중국'이란 확실한 키워드가 있다. 글로벌 고가(高價) 브랜드를 직접 사들여 중국 시장을 더 깊고 더 넓게 파고든다는 '중생중사(中生中死·중국에서 살고 중국에서 죽는다) 전략'이다.

얘기가 여기까지라면 다른 기업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이랜드에는 '필살기(必殺技)'가 있다. 1999년 도입한 '지식 경영'이다. 매장 판매사원부터 최고위 임원까지 참여하는 지식 경영은 현장에서 모은 시장 자료·정보와 신사업 아이디어를 데이터베이스(DB)화해 활용하는 것이다. 매년 4000건 이상을 엄선해 이 중 5%는 '기업 비밀'로 특별 관리한다. 임원급 최고지식경영책임자(CKO)가 직접 챙기고 매년 두 차례 '지식 페스티벌'을 열어 특진(特進)·포상·발탁 등을 한다. 최종양 사장은 중국법인장이던 2012년 3개월간 중국 22개 도시의 81개 백화점 내 720여개 매장에서 현장 관리자 4414명과 면담한 내용을 지식 경영 인트라넷에 올렸다. 2003년 440억원 매출(매장 130개)을 올리던 이랜드중국이 지난해 매출 2조2000억원(매장 6200개)짜리 패션 강자(强者)로 도약한 비결이다.

물론 그룹 전체 차입금(借入金·연결 기준)이 4조원을 넘고, 부채비율이 390%(작년 6월 기준)에 이르는 재무구조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이랜드 측은 "현금 보유액이 충분해 문제없다"고 말하지만 과도한 금융비용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는 시샘 섞인 관측도 많다.

하지만 최소한 이랜드의 과감한 '도전'이 지금까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더욱이 한국 기업가들에게 사라져가는 야성(野性)과 용기(勇氣) 치밀한 전략, 이 세 덕목을 이랜드만큼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한국 기업은 드물다. 이랜드의 처지를 걱정하거나 조롱하기에 앞서 더 지독하게 벤치마킹해 이 회사를 능가하는 기업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그래야 한국도 산다.

송의달 산업1부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17/2014041703386.html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06

뉴욕과 워싱턴DC를 자동차로 오가다 보면 델라웨어를 거치게 된다. 델라웨어주의 최대 도시 윌밍턴에 들러보자. 노스오렌지 거리(North Orange Street) 1209번지. 미국 기업들에 가장 유명한 주소다. 구글·애플·코카콜라·포드 같은 쟁쟁한 회사들이 이곳에 본사를 등록해두고 있다. 본사 주소를 1209번지로 쓰고 있는 기업은 28만곳이다. 2층짜리 반(半)지하 빌딩이 그 많은 회사의 공동 본적지(本籍地)다.

구글이나 애플은 이곳에 호적만 올려놓고 실제 사업은 실리콘밸리에서 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이 주소만 사용할 뿐이다. 윌밍턴 공무원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기업 고객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응대하기 위해 평일에도 밤 12시까지 근무한다.

원래 친(親)기업으로 유명했던 곳은 버지니아였다. 그러나 버지니아가 기업을 괴롭히는 법을 계속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서 이웃 델라웨어는 거꾸로 갔다. 법인세를 낮췄고 상표권이나 저작권 수익에는 면세 혜택을 주었다. 기업 입장을 두둔하는 조례도 많이 제정했다. 델라웨어 법원도 기업 쪽에 관대한 쪽으로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다.

그렇게 델라웨어에 몰려든 기업이 100만개다. 델라웨어 인구 92만명보다 많다. 100만 기업이 내는 세금으로 92만 주민이 먹고산다. 지자체들끼리 벌인 경쟁에서 델라웨어가 이긴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 공약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또 새 도로와 긴 다리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복지 공약도 단골 메뉴다. 공단을 더 넓히고 기업을 유치해 금방이라도 지역 경제가 활활 타오르게 마술을 부릴 것처럼 말하는 후보가 적지 않다. 경제 낙원(樂園)이 탄생할 듯하지만 무엇을 하겠다는 공약만 풍년이고 어떻게 그것을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우리나라는 농어업 국가에서 공업 국가로 변신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교육·의료·소프트웨어 같은 두뇌를 쓰는 분야에서는 별다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두뇌 국가로 탈바꿈해야 할 시기를 맞았지만 모두가 근육을 쓰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단계이다. 지방선거 공약에 눈에 보이는 건축물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피츠버그는 철강 도시였다. 유에스스틸(US Steel)의 본거지다. 그러나 지금 도시 한복판에 우뚝 솟아있는 64층짜리 유에스스틸 타워의 꼭대기 층부터 가장 많은 층을 점거한 기업은 피츠버그대학 메디컬센터(UPMC)다. 폐·심장 이식 수술로 유명한 의료법인이다. 피츠버그대 의료센터는 병원을 22개나 경영하며 6만2000여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피츠버그시에서 최대 기업인 셈이다.

피츠버그는 미국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한때 '녹슨 도시'로 통했다. 그러나 지금은 의료 산업의 중심지로 변신했다. 거기에 로봇·바이오 산업을 보태고 있다. 피츠버그가 두뇌 도시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던 곳은 피츠버그대학과 카네기멜론대학이다. 역대 시장들이 두 대학에 연구비를 집중 지원해 도시의 검붉은 녹물을 씻어내고 그 자리에 병원과 로봇을 앉힌 것이다.

우리 지방자치도 20년을 넘었다. 12년씩 장기 재임한 지자체장들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과거의 도시가 사라진 곳에 새로운 도시가 탄생했다는 인상을 주는 사례는 거의 없다. 모두들 중앙 정부에서 보조금을 더 타내다가 외형만 그럴싸한 공사판을 벌였다. 새 도로가 뚫리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도시의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도시를 먹여 살리는 콘텐츠는 변하지 않고 있다.

사실 공업의 시대에 번성했던 도시들은 다음 세대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를 맞았다. 울산, 거제, 창원, 구미 같은 도시는 모두 산업화의 산물(産物)이다. 우리 자동차·조선·전자산업의 경쟁력이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이들도 녹슨 도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농업의 시대에 호황을 누렸던 도시들은 공업화 물결을 타지 못한 채 여전히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지방선거 20년 만에 모처럼 이념 갈등도 줄었고 큰 정치 이슈도 없다. 맹탕 선거라는 말도 들린다. 그렇다고 한국의 산업혁명 시절에 번영했거나 낙오했던 도시들이 변신해야 하는 숙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델라웨어처럼 큰 공장은 없어도 기업 본사를 유치할 수도 있고 피츠버그처럼 도시의 주력 업종을 교체해 주민을 먹여 살리는 방법도 있다. 지역 개조(改造)를 놓고 다투는 선거판이 달아올라야 한다.


송희영 주필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04/20140404043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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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7. 22:54

http://www.handemy.org/

http://www.poweranduk.com/


단양 한드미 마을

완주 안덕건강힐링체험마을



Posted by 겟업
2014. 9. 17. 16:28

얼마 전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에 들렀다가 ‘xx 整形外科’라는 병원 간판을 보고 원장에게 물었다. 整形外科(정형외과)는 뼈를 다친 사람들이 오는 곳인데 혹시 成形外科(성형외과)를 잘못 쓴 것 아니냐”고. 원장은 “중국에서는 성형외과를 整形外科라고 쓴다”면서 “중국인 고객이 많아 대부분 강남의 성형외과가 이렇게 표기한다”고 했다. 하긴 성형수술이 코뼈 광대뼈 턱뼈를 깎아내는 수준이니 정형이라고 해도 틀린 건 아니겠다. 병원 내부 안내 간판에도 手術中心(수술중심ㆍ수술센터) 등의 병원용어를 한글과 중국식 한자로 병기해 놓았다. 중국어 통역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고, 필요할 때마다 수시 호출할 수도 있다고 했다.


요즘 서울 명동거리나 롯데백화점 근처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을 흔히 본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중국인들이 내국인보다 훨씬 많은 듯하다. 중국인을 실은 관광버스가 줄지어 있고 경찰이 교통정리를 할 정도다. 대형 중국어 백화점 현수막들이 관광객의 눈길을 잡는다. 지하철을 타도 중국어 안내방송이 나온다. 중국어 도로표지판이나 대중교통 안내판도 확충될 모양이다. 한때 명동거리는 일본인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전후로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중국인 차지가 됐다.

한국에 중국 바람이 거세다. 각종 통계도 이를 보여준다.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2005년 71만명에서 지난해 433만명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600만명에 이를 전망이고 머지않아 1,000만명을 훌쩍 넘을 것이다. 중국관광연구원은 올해 중국인 해외관광객이 1억1,6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일본 전체 인구 정도가 해외로 관광을 다니는 셈이다. 이들이 해외에 뿌리는 돈만도 162조원이란다.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하면 지난해 중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은 곳이 한국이다.

롯데백화점 본점에는 내국인보다 중국인 매출 비중이 더 높은 매장까지 등장했다. 2014년 상반기 중국 은련카드 매출을 분석한 결과, 중국인 매출비중이 50%가 넘는 매장이 ‘MCM’, ‘라인프렌즈스토어’, ‘모조에스핀’, ‘지고트’ 등 4개였다. 또 올해 상반기 중국인 매출 비중은 15%로 2010년 1%에서 15배나 증가했다. 중국어 구사하는 직원이 300여명이고, 외국인 전용 ‘Global Lounge’도 개설했다.

사실 정부가 그제 발표한 6개 유망서비스산업 투자활성화 대책 중 그나마 실효성이 있을 법한 분야는 관광 쪽이다. 영종도와 제주도 4개 복합리조트사업의 성패도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달렸고, 외국 영리법인 설립을 통해 2017년까지 50만명의 해외 환자를 유치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싫든 좋든 중국은 우리에게 차세대 성장동력을 제공할 나라다. 제조업과 수출을 통한 경쟁력은 한계에 봉착했다. 대신 서비스업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성장을 유지하려면 중국을 지목할 수 밖에 없다. 우리 교역규모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을 앞질러 1위에 올라있다. 한국 방문 관광객 수에서 보듯, 중국은 우리의 생산기지를 뛰어넘어 이제 소비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웨이하이(威海)에서 닭이 울면 인천에서 들린다고, 중국과는 담벼락을 넘나드는 거리다. 인구 14억명의 중국의 도시 인구는 8억5,000만명으로 미국과 유럽 인구를 합한 숫자다. 인터넷가입자 6억명, 모바일가입자가 12억3,000만명이다. 6억명이 넘는 인구가 빈곤에서 벗어났고, 중산층의 수가 미국 인구보다 많다. 이보다 좋은 황금어장은 없다. 용(龍)이 될 수 없으면 용의 등에라도 올라타라고 했다. 그래야 승천(昇天)할 수 있다. 그나마 중국이 용트림을 하기 전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중국전문가 전병서 중국금융경제연구소장은 저서 한국의 신국부론에서 “중국의 상위 5%의 부자 6,500만명의 식탁과 옷장을 장악하면 한국의 4,500만명이 행복하게 살 수 있고, 2억명의 중국 노인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으면 4,500만명이 30년은 편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을 배우던 1980년대, 미국을 따라 하던 2000년대는 갔고 이제는 미국과 일본에서 배운 노하우를 중국에 팔 때가 왔다”며 “100만명 이상의 중국 전문가를 양성하자”고 제안한다.

조재우 논설위원


http://www.hankookilbo.com/v/296e4f471a524d9f994fe7a21076d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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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7. 16:26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서울대 강연에서 한중우호를 상징하는 인물로 처음 든 것은 서복(徐福)이다. 서복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자들도 잘 모르는 이름이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적당하지 않다고 봐서 그런 것인지 서복이 거론되지 않은 관련 기사도 많다. 진시황 때 불로초를 찾아 동방으로 갔다는 도사라고 설명하면 ‘아, 그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바다를 건너 제주도로 간 서복’이라고 소개한다. 

서복의 얘기야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것이니까 그렇다 치자. 그러나 ‘사기’에도 그가 제주도에 갔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제주도에 서복이 와서 문물을 전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서복의 얘기에 꿰맞춘 전설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역사학자도 그걸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

시 주석은 2006년 저장 성 서기로 있을 때 제주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이세기 한중친선협회장의 안내로 서복기념관을 방문했다. 서복기념관은 서귀포시가 2003년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당시 이 회장이 서복기념관에 가자고 했더니 시 주석은 “왜 그게 중국에 있지 않고 한국에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일이 시 주석에게 무슨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의 서복’이 아니라 ‘제주도의 서복’은 관광업 진흥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것을 역사 속의 인물인 것처럼 언급하는 것은 대학에서 할 소리는 아니다. 게다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 서복이 제주도에 간 것처럼 말하면 어딘가 제국주의적 냄새가 난다.

시 주석은 또 한중 양국이 환란에 서로 도운 사례로 임진왜란(정확히는 정유재란) 때 명나라 장군 등자룡(鄧子龍)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싸우다 전사한 사실을 들었다. 등자룡의 상급자인 명나라 제독 진린(陳璘)의 후손이 진씨 성을 갖고 한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승리에 중국이 큰 도움을 줬다는 듯이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듣기 거북하다. 진린은 전투에는 소극적이고 공적에 욕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자신의 전과를 몇 차례 양보한 후에야 이순신 장군과 화해할 수 있었다. 그가 중국에서 끌고 온 배는 작아서 전투에 쓸모가 없었고 조선 수군의 판옥선을 빌려 타야 하는 신세였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왜적과 싸우는 데 써야 할 병력의 일부를 왜적에 포위된 진린을 구하는 데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시 주석이 거론한 인물 중에서 또 한 명 거슬리는 것은 정율성(鄭律成)이다. 정율성이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이름을 날린 몇 안 되는 근현대사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를 한중우호의 상징적 인물로 거론하는 데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시 주석이 그를 한국인들 앞에서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으로 소개한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한중이 지금은 평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중국인민해방군은 6·25전쟁 때만 해도 우리 측에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적군이었다. 정율성이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했다고 소개하지 않아도 달리 소개할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사실 한국을 잘 모른다. 잘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나 중국을 알려고 야단이지 중국에서 한국은 국경을 인접한 많은 나라 중 하나일 뿐이다. 중국 정치인의 외교적 수사만 듣다가 역사 강의 같은 강연을 들으니 그것이 확실해졌다. 


중국 지도자의 한국 대중 강연은 처음이다. 친근해지려는 의지는 전달됐다. 다만 친근함이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남이 어떻게 느낄지 미리 알아서 배려해 말할 수 있어야 진짜 친근한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40708/65016830/1



Posted by 겟업
2014. 9. 17. 16:25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 못지않다. 김수현 전지현에 대한 역사관 검증도 혹독하다. ‘별에서 온 그대’로 중국에서 사랑받고 있는 두 배우는 헝다그룹의 생수 광고 모델 계약을 했다가 ‘물벼락’을 맞았다. 원산지가 백두산의 중국 명인 ‘창바이산(長白山)’으로 돼 있음을 확인한 사람들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놀아났다”며 들고일어난 것이다. 둘은 “취수원까지는 확인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히 “한류 스타가 아니라 한류 망신”이라며 혀를 찬다. 농심이 중국 백두산을 취수원으로 하는 생수를 생산하면서 제품명을 ‘백두산수’도 ‘장백산수’도 아닌 ‘백산수’로 정한 것이 얼마나 절묘한 선택인지 감탄하게 된다. 

김수현 전지현의 중국 생수 CF 논란을 보면 걸그룹 카라의 ‘독도 침묵’ 사건이 떠오른다. 일본에서 인기 있는 카라는 2012년 “일본에서 독도 관련 질문을 받는다면?”이라는 국내 매체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가 ‘친일’ 걸그룹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카라에서 탈퇴한 멤버 지영이 최근 일본에서 연기자로 데뷔한다는 소식에 국내 반응은 냉랭한데 “카라가 친일적이어서”라는 것이 일본 언론의 해석이다.

카라의 독도 사건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 관계가 냉랭할 때 일어났지만 이번 생수 논란은 한중 지도자 사이에 봄바람이 부는 가운데 터졌다. 양국 관계가 어떻든 역사나 영토 논쟁은 큰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뜨거운 불씨인 것이다.

하지만 한류 스타에게 “백두산은 누구 것?” “독도는?”이라고 묻는 게 현명한 일일까. 한중일이 서로에 중요한 교역국이듯, 한류도 국경을 넘나들며 유통되는 글로벌 상품이다. 중국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가 쏟아내는 한류 관련 소식은 130만 건으로 네이버(38만 건)의 3배가 넘는다. ‘별그대’의 엄청난 경제 효과는 ‘별그대노믹스’로 불린다. 요즘은 잘생긴 남자 배우가 의사로 나오는 ‘닥터 이방인’을 보고 의료 관광을 오는 중국인도 있다. 걸그룹 2NE1, 보이그룹 빅뱅을 비롯해 케이팝 스타들은 세계 2위 규모이며 케이팝 시장보다 20배 큰 제이팝 시장(일본)에서 오리콘 차트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이들에게 역사관을 묻는 것은 해외 활동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2012년 독도 횡단 수영대회에 참가했던 한류 스타 송일국은 일본 외무성 차관이 “앞으로 일본에 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해 국내에서는 ‘개념 배우’로 박수 받았지만 이 일로 일본 땅을 못 밟는 연예인이 돼버렸다.

한류는 외교적인 힘까지 발휘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인이 “한국 드라마 팬이에요”라고 했을 때 반일 감정이 잠시나마 누그러졌던 기억을 떠올려 보라. 권영세 주중 대사는 “한중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여러 지표를 통해 알 수 있다”면서 대표적인 사례로 드라마 ‘상속자들’과 ‘별그대’의 인기를 꼽았다. 2008년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국가주석 방한 때 이영애 장나라가 그러했듯, 3일 시진핑(習近平) 주석 내외가 오면 김수현 전지현이 국빈 만찬에 초대받을 가능성도 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화해의 여지를 남겨두려면 경기장에서 그러하듯 문화 영역에서도 정치적 표현은 삼가야 한다. 양국 간 정치적인 관계가 냉랭하든 열렬하든 문화 교류는 뜨거운 것이 좋다. 정랭문열(政冷文熱) 혹은 정열문열(政熱文熱)이다. 총리 시킬 것도 아니면서 전지현에게 역사관을 묻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http://news.donga.com/3/all/20140702/64877515/1


Posted by 겟업
2014. 9. 17. 16:24

며칠 전 재미있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꾸준히 노력하면 누구든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실은 틀린 이야기라는 것이다(본지 7월 17일자). 1만 시간 노력하려면 하루 3시간, 일주일 20시간씩 총 10년이 걸린다. 그러나 미국 연구팀이 노력과 선천적 재능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 많은 분야에서 타고난 재능이 노력보다 훨씬 중요한 요인으로 밝혀졌다고 기사는 전한다. 음악에서는 재능 79%, 노력 21%고 스포츠는 재능 82%, 노력 18%였다. 학술 분야는 더 심해서 96대 4 비율이었다. 공부하는 머리는 타고난다는 얘기가 맞는가 보다. 어제 정상급 피아니스트 손열음씨를 만난 김에 “음악에서 재능이 79%, 노력 21%라는 게 맞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 것 같다”며 “재능을 드러낼 기회가 훨씬 적었던 옛날에는 아마 90% 정도로 비중이 더 높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천재는 1%의 영감(靈感)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명언도 사실은 ‘99%의 노력도 단 1%의 영감 없이는 소용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타고난 재능이 그토록 결정적이라면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 입장에선 맥이 풀릴 수밖에 없다. 노력하면 뭐하나. 이미 날 때부터 유전자에 성공 여부가 새겨져 있다는데 말이다. 이달 초 도쿄 국제도서전에 갔다가 사 온 신간 한 권이 이런 인간불평등 기원론(?)을 부추겼다. 제목은 『노력불요론(努力不要論)』. 의학박사이자 뇌과학자인 나카노 노부코가 쓴 책으로, 제목 그대로 ‘쓸데없이 노력할 필요 없다’는 내용이다.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노력부터 하고 보는 ‘노력 중독자’는 남에게 이용만 당하거나 피해를 끼치기 십상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인은 특히 ‘노력신앙’을 가진 ‘노력교(敎)’ 신자가 많아 큰일이라고 걱정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어 패한 것도 대책 없이 노력과 정신력만 강조하던 지도자들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를 딛고 60년 넘게 줄달음쳐 온 우리나라도 노력 숭배주의라면 지구상 어느 나라 못지않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책상 머리에 ‘노력 끝에 성공’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를 붙여 놓았으며, 좀 커서 한자라도 배우면 ‘苦盡甘來(고진감래)’로 글귀를 바꿔 달았다. 노력신앙의 단짝은 결과지상주의였다. 겨울철 유엔군 묘지에 보리를 옮겨 심어 파란 잔디처럼 보이게 했다는 기업인의 임기응변이 자랑스러운 신화로 기록되었다. ‘하면 된다’의 시대였다. ‘안 되면 되게 하라’가 특전사 병영을 넘어 사회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졌다.

 이미 젊은이들은 속지 않는다. 노력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노력 이외의 요인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아는 듯해 걱정될 정도다. 사회가 그렇게 변했다. 고도성장은 끝났고 당대 성공신화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서울에서 내 집은 고사하고 전세금을 마련하는 데도 6년치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한다. 국민의 57.9%가 ‘일생 동안 노력해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고 있다(통계청, 2013년 사회조사). 사회 역동성, 계층 상승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드니 젊은이들이 소개팅에서 상대 부모의 직업과 사는 동네부터 묻는다는 슬픈 이야기가 나돈다. 이제 평강공주는 온달을 찾지 않고, 왕자는 신데렐라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기성세대가 ‘하면 된다’ 시대의 관점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할 시점인 것 같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만 이루면 된다는 결과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원칙과 상식을 앞세우는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비정상의 정상화’도 이런 사고의 틀 전환을 전제로 한 것이길 바란다. 빨리빨리와 대충대충을 버리고, 잔뜩 힘준 어깨를 눅이고 눈에 서린 핏발은 풀고, 무리하게 앞지르거나 끼어들지 않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말이다. 더뎌도 차근차근 나아가는, 무엇보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로의 대전환이다. 비록 짜릿한 성공담과 기막힌 반전은 적을지라도 한 차례 애를 쓰면 딱 그만큼 결과가 나오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었으면 좋겠다. 결과에만 목을 매 무리와 편법·탈법, 집단 간 유착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와는 이별해야 한다. 원래 안 되는 것은 누가 해도 안 되고, 억지로 되게 하려다간 도리어 된통 당해야 마땅하다.

 정당한 노력이라면 왜 쓸모가 없겠는가. 자기 파악 못 하고 남 배려 안 하고 잇속에 눈이 멀어 무리를 범하니 언젠가는 사달이 나는 것이다. 우리는 하면 된다는 낡은 신화에 안주하다가 밀렸던 청구서가 쏟아지는 시점에 처해 있다. 그 와중에 가엾은 아이들만 희생된 듯해서 마음이 아프다. 내일은 세월호 참사 100일째다.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332603&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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