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7. 16:23

휴가철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20, 30대 직장인들과의 대화는 세상의 급변을 실감케 했다. 지난달 일찌감치 친구들과 싱가포르로 여름 휴가를 다녀온 A씨는 어느 때보다 만족감이 컸다고 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비싼 레스토랑이나 호텔 대신 로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밀쉐어링(mealsharing.com)’과 온라인 숙박 공유 사이트 ‘에어비엔비(airbnb.com)’를 이용한 덕분이란다. 밀쉐어링 서비스는 현지 가정에서 돈을 주고 ‘집 밥’을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시간과 날짜는 음식을 제공하는 가정에서 정하는데, 가고 싶은 집을 선택해 사이트에 올라있는 음식사진과 가격을 골라 예약하면 된다. 세계 각지에서 온 낯선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순도순 식사도 할 수 있는 점이 매력이란다. 숙박은 에어비앤비를 활용했는데, 집 주인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예쁜 2층 단독주택의 비밀번호를 받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었다. 비용도 기존 유스호스텔이나 민박보다 저렴했다. 사이트에 해당 주택을 먼저 다녀간 사람의 후기도 적혀 있어 믿고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동석한 B씨의 이야기는 더 놀라웠다. 경기 화성시 동탄에 사는 그녀는 회사가 있는 서울 강남까지 ‘이버스(eBUS)’로 출퇴근한다. 지난해 하반기에 국내에 등장한 이버스는 이용자들이 홈페이지에 접속해 정원을 채워 신규노선을 만들면 된다. 직장 위치가 비슷한 동네 사람들이 인터넷에 모여 자발적으로 버스노선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입했다고 한다. 현재 동탄-강남, 동탄-서울역 2개 노선이 출퇴근 시간대만 하루 3회씩 운영되는데, 강남 노선은 만석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현행법상 면허 없이는 여객주선업을 할 수 없어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자회사인 전세버스사업자로부터 위탁 받는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종의 편법인데, 위법은 아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SNS를 통해 촘촘히 연결되고 있는 사회에서 소비자의 차별화된 욕구에 부응해 다양한 서비스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공유경제’라 부른다. 2008년 미 하버드대 로렌스 레식 교수가 쓴 개념인데, 비어 있는 집이나 세워 둔 차량 등 물적 자산뿐 아니라 재능ㆍ경험 등 인적 자산까지도 필요한 사람과 공유(sharing)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살면서 소유해야 하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고가 출발점이다. 이를 공유경제로 칭하든, 신종 렌탈 비즈니스로 표현하든, 정보통신(IT)기술 덕분에 지구촌이 24시간 연결되면서 생긴, 시대적 현상임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이들 서비스가 기존 사업자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는 점이다. 대표적 사례가 최근 모바일 차량 공유 앱(App) 서비스인 ‘우버’(UBER)다. 20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이 서비스는 주변의 일반 차량을 콜택시처럼 불러 이용할 수 있다. 나라와 도시 별로 “기존 법규를 허무는 불법” 혹은 “혁신적 합법 서비스”로 판결이 엇갈리는 가운데, 전 세계 택시운전사들이 자신들의 밥줄이 끊긴다며 들고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뉴욕주 검찰이 “손님을 빼앗아 간다”는 호텔업계의 강력한 항의로 에어비앤비에 가입한 건물주들을 단속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중요한 건 규제당국의 자세다. 기존 규제를 엄격히 적용하느냐, 아니면 이를 완화ㆍ해체해 혁신의 물꼬를 터주고 북돋우느냐에 그 사회의 명암이 갈린다. 간과해선 안 될 건 외견상 기존사업자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기술발달로 인해 새롭게 열리는 시장이라는 점이다. 밀쉐어링이 등장했다고 기존의 레스토랑이 망한다는 건, 이버스가 나왔다고 대중교통 노선이 없어진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시장을 선점한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를 흔들어 놓는다. 때문에 혁신의 성공은 늘 혁신을 바라보는 규제당국의 긍정적이고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공유하라, 그리고 기존의 칸막이를 파괴하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네트워크사회의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뒷받침할 규제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경환 새 경제팀이 경제활성화를 고민한다면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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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