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안전한 나라’. 세월호가 던진 화두 하나에 대한민국이 통째로 앓고 있습니다. 끝도 없는 반성과 사과, 슬픔과 분노가 이어진 지 어느새 한 달이 다 돼갑니다. 그새 세월호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그 단단하던 레이저 눈빛의 대통령도 예외가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진도 팽목항에 또 내려가 이번엔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취임 후 몇 차례 사과를 했지만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을 직접 얘기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틀 뒤엔 부처님 오신 날 불사(佛事)에 참석해 “국민의 안전·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국가 정책·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국가 개조를 또 말한 겁니다. 하지만 의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요.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비용입니다. 지금은 가슴만큼 머리도 뜨거울 때라 ‘국가 예산을 안전에 올인하자’는 격한 주장에도 박수가 터집니다. 하지만 뜨거운 머리로 평생 살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머리는 차가워져야 합니다. 항공·선박·철도부터 놀이기구까지 모든 결함과 위험을 늘 샅샅이 관리·감독하려면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듭니다. 물론 부정·부패만 일소해도 그런 비용을 감당하고 남을 것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복지 재원을 줄여 안전에 쓰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게 정답일까요.
아예 발상을 확 바꾸는 건 어떨까요. 안전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접근하는 겁니다. 안전은 종종 대박상품이 되기도 했습니다. 일회용 반창고 밴드에이드는 존슨앤드존슨의 구매 담당 얼 딕슨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요리 때 자주 손을 다치는 부인의 안전을 위해 만든 게 히트했습니다. 150년 전 엘리샤 오티스는 줄이 끊어져도 안전한 장치로 엘리베이터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오티스는 대박이 나기 전 빚 3000달러를 남기고 죽었지만 그가 세운 오티스 엘리베이터는 지금도 세계 1등 기업입니다.
조지 웨스팅하우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1869년 압축 공기를 이용한 철도 제동장치를 만들어 냅니다. 당시로선 혁명 같았습니다. 그때까지 기차가 서려면 객차마다 브레이크맨이 달라붙어 기관차에 맞춰 제동을 해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관성에 의해 객차가 기관차를 들이받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시속 20~30㎞의 기차가 서는 데 1.5㎞, 지금 지하철 역 한 구간 정도 거리가 필요했습니다. 걸핏하면 충돌·탈선 사고가 났지만 당시 열차회사나 정부는 브레이크 개선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안전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죠.
웨스팅하우스는 달랐습니다. 그는 생명을 좌우하는 제품은 완벽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첫 작품이 성공했지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안전한 브레이크를 꿈꿨습니다. 그는 마침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두 개의 브레이크 시스템을 만들어 냅니다. 그는 이를 ‘페일 세이프(Fail safe:이중 안전장치)’ 시스템이라 불렀습니다. 미국 의회는 1893년 이 시스템의 장착을 의무화합니다.
고장은 나도 사고·재난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시스템, 페일 세이프는 이후 안전공학의 기본이 됐습니다. 이상이 생기면 무조건 빨간색이 깜빡이도록 설계된 신호등, 주차(P)에 두지 않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자동차, 유통기간이 지나면 아예 계산이 안 되는 삼각김밥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나라 구석구석을 이런 이중·다중 안전시스템으로 무장하는 겁니다. 이게 나라 경쟁력이 되도록 하는 겁니다.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플랜트나 원전은 공장·발전소뿐 아니라 안전 운용 노하우까지 수출합니다. 넓은 의미의 안전 시스템 수출입니다. 안전 먹거리, 안전 탈것, 안전 관광… 안전은 그 자체로 국가 주력 상품이요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되돌아봅니다. 세월호에 페일 세이프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어땠을까요. 청해진해운은 규정 중량을 지켰을 겁니다. 평형수를 빼낼 수도 없었을 겁니다. 만재흘수선을 속이는 일도 못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생때같은 목숨 300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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