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4. 08:39

얼마 전 <대한민국 부모>라는 책을 읽는데 엄마의 외도를 다룬 부분이 있었다. 일상의 대부분을 남편 내조와 자식 교육에 할애하는 중산층 엄마가 외도를 가족 붕괴의 원인이 아니라 반대로 가족 유지에 필요한 삶의 활력소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외도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통해서까지 유지하고자 하는 그 가족이라는 게 대체 뭔가? 도대체 가족이라는 게 왜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곰곰이 생각해보던 나는 가족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요즘의 한국 사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모순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쪽에서는, 가족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티브이 예능은 딸바보 아빠와 훈남 아들에게 장악되었다. 내가 만나본 많은 젊은이들이 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모와 친밀하게 지낸다. 거의 친구나 애인 사이 같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대학입시, 취업, 연애, 결혼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가족은 파탄 난 지 오래다. 살인에 이르는 가족 내 폭력이나 친족 내 성폭행 뉴스는 너무 잦아서 이제는 그 뉴스가 그 뉴스처럼 느껴질 정도다. 한국의 이혼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가운데서도 상위를 차지한다. 사회면에서는 요즘 사람들은 결혼에도 출산에도 회의적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런데 이 모순적인 풍경을 좀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시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국은 정말로 끔찍할 정도로 모든 것이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마치 나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가족, 혹은 다수의 가족으로 이루어진 연합체 같다. 가족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한국인을 지배한다. 그건 그저 특수한 관계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언어이자 사상이다. 실제로 우리는 친족 간의 호칭을 타인들 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그것이 권장된다. 아버지 같은, 딸 같은 식의 수사는 어떤 상황에서나 카드게임의 조커처럼 기능한다. 위기에 처한 자식을 구하기 위해 범죄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은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크게 환영받는다. 이상한 것은, 이렇게 가족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다루는 사회 속 현실의 가족은 살인과 폭력, 성폭행 등 각종 범죄의 온상인 경우가 드물지 않으며, 많은 사람이 가족으로 인한 크고 작은 상처에 괴로워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오로지 가족 외에 아무것도 지키고 발전시키지 않은 우리 사회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실재하며, 악화하는 현실의 가족의 문제에 대단히 무력하다. 그저 망가진 현실 가족 위에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무한히 덮어씌울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가족을 둘러싼 극단적 판타지와 숨막히는 현실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른다. 점진적인 부의 증가에 기반을 둔 한국의 중산층 가족 모델은 시효를 다했다. 더 이상 그런 식의 가족을 만들 희망이 없음을 깨달은 젊은이들은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기피한다. 이렇게 현실에서 가족이 멈추어 섰는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그것만을 바라본다. 우리가 가진, 상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가족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외도와 같은 극단적 처방을 통해서라도 망가진 가족을 끌어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은, 그 바깥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피가 부르는 고통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가족이 아닌 다른 관계와 세계에 대한 상상이 필요하다.


김사과 작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2445.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