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삶'에 해당되는 글 1071건

  1. 2014.08.18 북한 주민의 마음 못 사는 ‘통일’은 또 다른 분단의 시작일 뿐
  2. 2014.08.18 지갑을 열게 하는 '프리미엄(Freemium)' 전략
  3. 2014.08.18 美人은 박명하고 大家는 까칠하다는 믿음
  4. 2014.08.18 [분수대] 규제만 규제하면 정말 대박이 날까
  5. 2014.08.18 [글로벌 아이] 너무도 다른 한·영의 통신장애 대처법
  6. 2014.08.18 [노재현 칼럼] 가죽벨트에 매달리는 사람들
  7. 2014.08.18 [서소문 포럼] '독도 마누라론'의 함정
  8. 2014.08.18 [분수대] 나에게 주어진 1분 세상에 무엇을 말할까
  9. 2014.08.18 [이철호의 시시각각] 박원순 시장의 정의란 무엇인가
  10. 2014.08.18 [노트북을 열며] 끼 있는 골목문화, 프랜차이즈에 울다
  11. 2014.08.18 [이정재의 시시각각] '천송이'에게 배우는 창조경제
  12. 2014.08.18 [삶의 향기] 외국인의 눈에 비친 '통일 대박'
  13. 2014.08.18 [이철호의 시시각각] "현대차의 최대 적수는 삼성전자"
  14. 2014.08.18 [칼럼 36.5°] 미국 도서관이 책을 비싸게 사는 이유
  15. 2014.08.18 [삶과 문화] 우리는 행복하려고 태어났다
  16. 2014.08.18 [칼럼 36.5°]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는 복지
  17. 2014.08.18 [편집국에서] 모르쇠 외교
  18. 2014.07.12 선장 한 명 탓인가, 그래서 세상은 좋아질까
  19. 2014.04.08 [사설] 이제 한반도 전체를 보고 움직여야 한다
  20. 2014.04.08 [이슈 기고] '매 맞는 구급대원' 없애려면
2014. 8. 18. 02:49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 이후 통일 논의가 활발하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남북을 다 같이 경험한 탈북 지식인으로서 볼 때 최근의 통일 논단에서 공감이 되는 글을 찾기 어렵다. 시장경제 체제라 그런지 한국의 통일 담론은 대개 경제 논리 위주로 접근해 “대박이다”를 외치며 핑크빛 그림만 그리고 있다. 

그래서 직접 쓰기로 결심했다. 통일이 가져올 무수한 문제 중 개인적으로 풀기 어렵다고 보는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해 보려 한다. 이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면 통일은 대박보다는 쪽박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첫째는 통일 이후 북한 지역의 공동화(空洞化)를 어떻게 막을지에 대한 해답이다. 통일이 됐다는 것은 김정은 체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북한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남쪽이나 외국으로 나가려 할 것이다. 치안 불안이나 처벌 우려 때문이 아니라 외국에서 1년만 벌면 북한에선 엄청날 거액을 벌 수 있다는 단순한 경제논리 때문이다. 한국에 온 탈북자 2만6000여 명 대다수의 탈북 동기도 경제적 이유다.

독일은 통일 10년 만에 동독 인구 5명당 1명이 서독으로 이주했다. 통일 10년 뒤 동서독 임금 비율이 4 대 3에 이르렀는데도 이에 만족을 못한 것이다. 2020년이 되면 동독 인구의 40%가 이주한다는 추정도 있다. 남북의 경제격차는 독일과 비교조차 안 된다. 통일 10년 뒤 북한 임금 수준이 남쪽과 3 대 1 정도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희박하다. 북한의 실업률 역시 동독과 비교조차 안 될 것이다. 그러니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의 몇 %가 해외로 나갈지 가늠조차 불가능하다.

한국에 오는 북한 주민들을 세계가 보는 앞에서 내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거대한 수용소를 만드는 것도 답이 아니다. 탈출에 필사적인 그들은 잡히면 운이 나빠 잡혔다고 생각하고 또 내려올 것이다. 그렇다고 탈출이 불가능한 수용소를 곳곳에 만든다면 그런 통일이 과연 ‘대박통일’일까. 만약 북한 주민들은 정 한국에 오기 어렵다면 북송돼도 처벌받을 공포가 없어졌으니 중국으로 갈 것이다.

북한의 공동화가 무서운 이유는 첫째로 북한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젊은 세대와 지식층부터 탈출할 것이라는 점이며 둘째는 해외에 나가 2년만 자리 잡으면 북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통일 후 2, 3년만 지나면 북한은 공동화될 확률이 크며 그 이후엔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젊은이들이 떠나간 한국 농촌에 천문학적 예산을 퍼붓는다고 경제가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북한 주민들의 탈출을 막으려면 떠나지 않은 사람에게 보조금을 주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으나 해외에 나가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 되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을 써야 할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돈 대신에 일자리를 주는 방법도 있으나 그 일자리를 2, 3년 안에 만들어주어야 하니 그게 진짜 문제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은 빠져나간다. 

공장은 빨리 건설할 수 있을지 몰라도, 북한엔 전력 철도 도로 항만 통신 등 공장 가동에 필요한 인프라가 형편없다. 통일 뒤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늦다. 그래서 토지와 인력이 거의 공짜인 지금 북한에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은 통일을 대비한 최소한의 보험이 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북한 체제를 연장시킨다며 이를 반대하는 여론이다. 일리가 있어 더 넘기 어려운 장벽이다. 하지만 둘 다 싫어도 한 길은 선택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둘째로, 차별에 따른 남북의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지도 숙제다. 이는 공동화보다 더 어려운 숙제다. 서독의 TV를 시청하던 동독과 분단 44년 만에 통일한 독일도 지금까지 옛 서독인들은 동독 출신들이 게으르다며 ‘오시(Ossi)’로 부르고 동독 출신은 서독인들이 오만하고 거만하다며 ‘베시(Wessi)’라 부르면서 서로 차별한다. 남북 주민의 사고방식 격차는 독일과 비교조차 어렵다. 

탈북자로 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상 한국의 배타성과 약자에 대한 무시는 심각하다. 남쪽으로 온 탈북자는 스스로 자신이 선택한 길이고, 사회적 소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한다. 그렇다 해도 이미 한국으로 온 탈북자의 10% 정도가 외국으로 다시 떠났다. 북한 주민들이 자의가 아닌 뜻밖의 통일을 맞아 결집된 힘으로 남쪽의 차별에 맞선다면 상상하기 싫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안겨주면 북한 주민들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먹고사는 걱정에서 벗어난 인간이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차별과 멸시다. 통일 뒤 고맙다는 말보단 당장 북한 땅에서 나가달라는 목소리가 크게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는가. 민족주의가 강한 북한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차별을 받아도 동족에게 차별 받는 것은 견디지 못한다.

상상이 어렵다면 한국에 돈 벌러 간 사람이 없는 집을 찾기 힘든 옌볜을 보라. 중국에서 반한 감정이 가장 높다. 바로 한국의 동족들에게서 겪은 멸시 때문이다. 통일 이후 남쪽 사람들이 북한에서 지금 동남아에서 일부 한국인이 보이는 것과 같은 차별과 멸시를 연출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존심 강한 북한 남성들이 딸과 누이들이 돈에 농락당하는 모습을 본다면 왜 이런 통일을 했는지를 후회하며 분노할 것이다.


영호남 갈등도 치유 못하는 남쪽이, 정쟁으로 지새우는 한국 정치권이 이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풀어낼 수 있을까. 그러나 해답을 내놓지 못하면 남북은 다 같이 통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위의 두 가지 문제 외에도 통일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경제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통일은 헤어졌던 둘이 한집에서 함께 사는 것이다. 부자인 남쪽의 입장에서 경제적 이해관계만 따지면 억지로 합쳐져도 절대 화목해질 수 없다. 이왕 합쳐 행복하게 살기로 결심했다면 가난하고 자격지심이 많은 쪽을 먼저 의식하고 배려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통일 대박은 잘해봐야 남쪽만의 ‘반쪽 대박’일 뿐이며 또 다른 분단의 시작이다. 


주성하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40311/615958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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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2:46
지난달 3일 세계 명문 대학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는 코세라(coursera.org)에 등록해 미시간대 찰스 세버런스 교수의 '인터넷 역사, 기술, 보안'이라는 과목을 듣고 있다. 4월 7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월드와이드웹 콘퍼런스를 준비하면서 인터넷 역사를 제대로 공부할 방법을 탐문하다가 미국 명문대 교수의 공짜 강의에 끌린 것이다. 하지만 2주 정도 강의를 들으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수시로 솟았다. 매주 온라인 비디오 강의를 평균 5개 이상 듣고, 퀴즈를 반드시 풀어야 하는 등 수업 진행이 만만치 않았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4주 차에 접어들면서 온라인 강의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강의 교재가 최고급이었으며,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세버런스 교수에게 인간적 호감을 느꼈다.

강의에 한창 재미를 붙일 무렵 코세라에 접속할 때마다 광고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39달러를 내고 시험을 통과하면 수료증을 준다는 광고였다. 처음엔 내겐 필요 없는 광고라고 여기고 강의 코너로 곧장 달려갔다. 그러다가 세버런스 교수가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이 수업을 수료한 학생을 커피숍에서 만나 대화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광고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동영상 속 학생은 모두 수료증을 흔들면서 온라인 과정을 끝까지 통과한 것에 자부심을 표현했다.

결국 4주 차 강의를 듣고 나서 39달러를 결제했다. 그 순간 최고의 콘텐츠를 공짜로 제공하는 코세라가 무엇을 통해 먹고사는지, 앞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전개할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2014년 코세라 강의에 2만599명이 등록해 최종 2964명이 수강 중이다. 아마도 3주 이상 수업을 들은 학생은 대부분 39달러짜리 수료증 트랙을 신청했을 것이다. 공짜 콘텐츠라는 점에 끌려 강의를 신청했지만 자신이 투자한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서 수료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IT 저널리스트 크리스 앤더슨은 2009년 펴낸 '프리(Free)'라는 저서에서 코세라와 같은 전략을 '프리미엄(Freemium)'이라고 정의했다. 95%를 공짜(free)로 풀고, 5%의 프리미엄(premium)에 대해 돈을 내게 하는 것이다. 스탠퍼드대 앤드루 응 교수가 2012년에 창업한 코세라는 스탠퍼드·예일·미시간 등 100여 명문대 강의를 공짜로 제공하면서 세계 각지로부터 회원 600만명을 모았다. 이어 수료증 발급이라는 인센티브를 활용하여 수백만 명의 지갑을 여는 데 성공했고, 수료증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대학과 기업이 늘어나면서 코세라의 수익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코세라의 전략은 콘텐츠 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선 프리미엄 전략은 대체가 어려운 명품콘텐츠가 필요하다. 그런 콘텐츠는 길어 봐야 1주일 정도 가치를 지니는 생선형(型)이 아니라, 최소한 1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가전제품형이어야 한다. 또 여러 개를 묶어 낱개의 개별 가치와 다른 가치를 구현한 번들형이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소비자는 그런 콘텐츠에만 지갑을 열고 있다.
우병현 | 조선경제i 총괄이사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06/2014030604702.html



Posted by 겟업
2014. 8. 18. 02:42
좋은 점과 나쁜 점은 함께 있다며 공평한 세상에 대한 신념 유지
하지만 내면의 유리천장 역할해 성취와 성장 저해하는 부작용도…
행복한 부자, 따뜻한 大家야말로 사회가 추구할 兩立 가능한 가치



학창 시절에 가장 얄미웠던 친구는 공부도 잘할뿐더러 얼굴도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며 음악과 미술에도 
하고 리더십도 뛰어나고 겸손하며 심지어 집안까지 좋은 친구였다. 이런 친구들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반면 공부는 잘하지만 못생겼거나 성격이 나쁜 친구를 보고는 세상은
 공평하다는 위로와 안도감을 받는다. 부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부자가 정직하고 행복하고 겸손하
고 잘생기고 심지어 자식이 공부까지 잘하면 우리는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느끼지만, 그의 가정사에 문
제가 있거나 자식 농사에 실패하면 세상이 그렇게 공평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이렇듯 사람들은 세상이 공평하다고 믿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상보적(相補的) 신념을 생
해낸다. 상보적 신념이란 좋은 점을 가졌으면 반드시 안 좋은 점도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상
보적 신념이 우리 사회의 도처에 널려 있다. 미인은 박명(薄命)이라고 믿는 생각, 대가들은 성격이 까칠하
다고 믿는 생각, 부자들은 정직하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상보적 신념의 일종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보적 신념이야말로 우리의 성장을 저해하는 내면의 강력한 유리 천장으로 작
한다. 상보적 신념은 우리에게 심리적 자기 위로를 제공해주는 힘은 있지만 때론 성취 의지를 저해하는 
으로 작동하여 우리를 현 상태에 안주하게 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부자들이 정직하지 않으며 그들이 
반드시 행복하지도 않다는 믿음을 통해 공평한 세상에 대한 신념을 유지한다. 더 나아가 평범한 삶이 더 인
간적이고 그 속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분명 위로를 주는 믿음이지만, 그 믿음은 부자가 되고 싶
 동기를 은밀하게 약화시켜 버린다. 부자에게는 없는 인간적이고 훈훈한 행복이 자신에게는 있다고 믿
기 때문이다. 대가는 성격이 까칠하다는 상보적 신념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능력과 인격을 모
두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능력과 인격이 상보적 관계에 있다고 믿게 되면 까칠한 대가가 되느니 인간적
인 보통 사람이 되겠다는, 얼핏 보면 좋은 생각이지만 사실은 성취를 가로막는 치명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의 약자 집단과 강자 집단에는 늘 이런 상보적 신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남성은 강하지만 섬세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여성은 저돌적이지는 않지만 여성적 섬세함이 있다고 믿는 신념이 있다. 이런 생각은 남
성과 여성 모두의 장단점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여성 우호적인 생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여성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여성의 위치에 머물러 있게 하고 남성적 영역에 도전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내면의 유리 천장으
로 작동하게 된다.

상보적 신념은 대가나 부자처럼 이미 일정 수준의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도 위험하다. 이들이 상보적 신념
을 받아들이게 되면 대가들은 자신은 까칠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용인하고, 부자들은 때론 부정직도 필요
하다고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 결과 이들은 까칠한 대가와 부정직한 부자로만 머무르게 되고, 이들을 
바라보는 보통 사람은 자신의 상보적 신념을 더욱 확신하게 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지게 된다.

생각은 거의 모든 것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삶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진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
보다 자신의 생각을 최우선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부(富)와 행복, 능력과 인격은 결코 상보적일 필요가 없
다. 개인 수준에서건 조직 수준에서건 심리적 위안을 주는 상보적 신념을 경계해야 한다. 행복한 부자, 따
뜻한 프로페셔널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모델이다.
최인철 |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행복연구센터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04/2014030404590.html


Posted by 겟업
2014. 8. 18. 02:27

마이크로네이션(Micronation)이란 게 있다. 관광학에서 ‘초소형 국가체’라 번역한다. 국가가 아니고 국가체인 건, 국가가 아닌 것이 국가 노릇을 하고 있어서다. 국가를 흉내 낸 공동체, 즉 국가체제를 빌린 테마파크가 마이크로네이션이다. 애들 장난 같지만 전 세계에는 현재 120개가 넘는 마이크로네이션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마이크로네이션이 있다. 남이섬이다. 남이섬은 2006년 3월 1일 나미나라공화국 독립을 선언했다. 나미나라공화국은 헌법·애국가·화폐·여권·문자는 물론이고 군대도 갖췄다(남이섬 여객선 직원이 ‘해군’이다).

 남이섬의 국가 흉내는 마케팅 전략에서 출발했다. 2004년 이후 일본인 입장객이 부쩍 늘었지만 남이섬은 ‘겨울연가’ 바람이 3년이면 잦아들 것으로 내다봤다. 궁리 끝에 찾아낸 활로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상상 나라’였다. 독립은 불가피했다. 

 하나 속사정은 복잡하다. 남이섬 국립호텔 ‘정관루’에 단서가 있다. 객실 44개가 전부인 호텔 정문에 별 6개가 그려져 있다. 6성호텔의 상징인 듯싶지만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호텔등급을 무궁화로 표시한다. 그러니까 정관루의 별은 장식인 셈이다. 강우현 대표의 설명이다.

 “호텔등급을 신청했더니 공무원들이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계속 시간을 끄는 거야. 2년을 기다리다 안 되겠다 싶어 별을 붙여버렸어. 우리는 6성급 서비스를 하고 손님은 6성급에 묵고. 진짜 등급? 여관이지.”

 지난주 청와대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대통령의 “죄악” 발언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저희도 정말 미치겠습니다” 발언을 모두 끌어낸 문제가 학교보건법에 막힌 관광호텔 설립 건이었다. 초등학교에서 170m 떨어진 장소에 관광호텔을 지으려다 1년째 애를 먹었다는 호텔업자의 사연에는 분명 딱한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고 규제만 탓하기도 그렇다. 학부모에게 호텔은 아직도 유해시설이어서다. 요즘엔 특급호텔도 밸런타인데이에 커플 패키지상품을 판다. 처음에는 부부 패키지였는데 언제부턴가 커플로 바뀌었다. 국내 호텔이 문화공간 대우를 못 받는 데는 호텔 잘못도 있다.

 남이섬에는 대만 국기가 펄럭인다. 중국하고만 국교를 맺은 한국의 공공기관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한국 땅에 휘날리는 제 국기 아래에서 대만인은 감격한다. 누가 대만 국기에 딴죽을 걸면 강우현 대표는 “여기는 한국이 아닙니다”라며 너스레를 떤다. 지난해 남이섬에는 대만인 10만 명이 입장했다.

 별 6개짜리 여관 정관루는 객실마다 다르게 생겼다. 예술가들이 각자 색깔을 입혀 방을 꾸민 결과다. 남이섬의 독립선언은, 규제에 맞서는 남이섬만의 대처방식이다. 규제만 규제하면 정말 대박이 날까. 지금의 관광 타령에서 문화가 안 보여 하는 소리다.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259469&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8. 18. 02:26

사람 사는 곳인데 이리 다를까 싶을 때가 있다.

20일도 그런 날이었다. 한국에서 오후 6시부터 20여 분간 SK텔레콤에 통신장애가 발생했고 완전 복구까지 5시간여 소요됐다니 SK텔레콤에 쏟아졌을 항의의 양과 정도는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SK텔레콤이 부랴부랴 “서비스 장애로 불편을 겪은 고객에 대한 보상 방안을 마련 중”이란 입장을 내놓은 이유일 게다.

영국에서도 같은 날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 오후 7시부터 영국의 최대·최고 네트워크라는 EE도 통신장애를 일으켰다. EE는 곧 트위터에 “시스템에 그렘린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1984년의 영화 ‘그렘린’ 속 한 장면을 곁들인 채였다. 기계 고장을 일으키는 뭔가 있긴 한데 잘 모르겠다는 걸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거였다. 대충 14시간 뒤쯤인 다음날 낮 최종적으로 해결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어제 오후 8시30분 문제를 파악, 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사람마다 좀 차이가 있긴 한데 휴대전화에서 ‘서비스 안 됨’ 표시가 사라진 건 EE의 주장과 달리 다음날이었다. 기자의 전화도 그중 하나였다. 사고 발생 후 19시간 만에 EE에서 날아온 문자가 이랬다. “지난밤 네트워크에 문제가 있었는데 네 전화가 그중 하나였다면 정말 미안하다. 문제를 해결하긴 했는데 일부 전화기의 경우엔 아예 휴대전화의 전원을 아예 껐다 켜야만 정상 작동할 수 있다.”

그런데도 EE의 트윗에 달린 댓글은 대개 “내 것도 안 된다” “문제가 있다고 알려줘서 고맙다”는 유였다. 그나마 항의 수위가 높다는 게 “그렘린 그림으론 도움이 안 된다.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나 (공식으로) 항의할 거다”란 정도였다. 이러니 영국의 주요 언론에선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영국인이 불만을 덜 느끼는 것 같진 않았다. “항상 그렇지 뭐”(『영국인 발견』)란 체념이 강할 뿐이라고 했다. 잘못될 일이 잘못됐다는 데 대한 확인, 인생은 원래 이런 사소한 안달과 어려움으로 가득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마지못한 인내와 냉소적 억제 말이다. 한마디로 덜 내색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통신서비스가 별로 아니냐고? 망의 속도나 깔린 정도는 한국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러나 서비스 자체는 영국 쪽이 합리적이라고 여길 때가 있다.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통신요금은 오히려 저렴한 편일 수도 있다.

통신만 그런 게 아니다. 은행계좌를 개설하러 갔다가 며칠 걸리는 처리에 한국을 그리워하다가 막상 개설 후엔 은행이 수시로 “네가 거래한 게 맞느냐”며 확인하는 걸 보곤 영국의 시스템에 감탄했다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고 보면 인간사엔 매사 트레이드오프(하나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면 다른 목표의 달성이 늦어지거나 희생되는 양자 관계)가 있는 거다. 자원이 한정된 만큼 뭔가 낫다면 뭔가 빠지는, 뭔가 빠져보인다면 그 덕분에 뭔가 나은 게 있고 말이다. 다만 우리와 영국은 우선순위를 달리 선택해 달리 된 것뿐이고 말이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이어서 다른 거란 얘기겠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227428&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8. 18. 02:24

한국 현대사를 흔히 산업화와 민주화, 둘 다에 성공한 역사라고 평가한다. 나도 동의한다. 세대로 나누자면 산업화 세대가 민주화 세대보다 연배가 조금 위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 ‘산업’과 ‘민주’를 한 몸에 겪어내는 경우도 있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영세제조업을 하고 있는 김양희(52) 사장이 그런 경우다.

 그저께 김 사장을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사업이 날이 갈수록 힘들다고 했다. 내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책의 보던 페이지를 표시해 주는 조그만 액세서리 같은 게 필요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많이 구입하면 단가가 싸다 했지만 나 역시 업자(!)인 만큼 대답을 얼버무렸다. 대신 나라 경제가 안 좋고 출판시장이, 그리고 신변소품 시장이 정말 어렵다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헤어질 때 김 사장은 자기네 공장에서 만든 거라며 가죽 허리띠 한 개를 선물했다. 가죽벨트는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김양희 사장은 고향 후배다. 1990년에 휴대전화 액세서리, 지갑·벨트·팔찌를 만들어 파는 ‘가람상사’라는 업체를 세워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전에는 산업현장에 뛰어든 ‘학출(學出·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였다. 81년 이화여대에 입학해 3학년 때 구로공단 가발공장에 처음 위장취업을 했다. 이후 전자회사·봉제회사·가방공장을 전전했다. “남들(다른 위장취업 여대생)은 힘들어 죽겠다는데, 나는 체질인지 팔자인지 공장 일이 재미있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탄광 광부이던 부친은 이대생 딸이 공장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기함을 했다. 부친은 85년 광산기계를 수리하다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김양희씨는 88년 H통산이라는 회사에서 노조 창립을 주도하다 해고당했다. 재봉실 제조사, 벨트회사로 옮겨 일하다 아예 사업을 벌이기로 결심했다. 일이 만만하게 보였고 자신 있었다. 노동운동 전력으론 번듯한 직장을 잡기 힘든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민주’에서 ‘산업’으로 무게중심 이동이 이루어졌다.

 산업도 쉽지는 않았다. 처음엔 내수에 주력했다. 벨트·멜빵 따위를 국내 기업에 납품했다. 96년께부터 의류업체가 줄줄이 부도를 맞기 시작했다. 97년 말 외환위기가 덮쳐왔다. 매출이 10분의 1로 결딴났다. 두어 해 힘들게 보내다 2000년 일본 시장을 뚫었다. 이후 10년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휴대전화 액세서리, 팔찌 등이 도쿄 디즈니랜드 매장에도 깔렸다. 최대의 위기는 구멍 하나에서 시작됐다. 구형 휴대전화는 어떤 기종이든 귀퉁이에 구멍이 있어서 각종 장신구를 매달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다르다. 구멍이 없다. 고리형(形) 액세서리는 직격탄을 맞았다. 2011년 3월 일본열도가 도호쿠 지방 쓰나미로 경악하던 날, 일본 거래처에서 전화가 왔다. “앞으로 휴대전화 액세서리 납품을 못 받게 됐다”는 통보였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거래처였다. 스마트폰 거치대, 이어폰 줄 정리장치 등을 고안해 샘플을 보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99㎡(약 30평) 공장 규모는 그대로인데 사업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지금은 가죽벨트, 가방용 액세서리 등으로 작은 일본업체를 뚫어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지인들을 통해 국내 판촉물·사은품 시장에 발을 디뎌보려 노력하지만 만만하지 않다. 중국산 저가품, 엔화 가치 하락도 역풍이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김 사장은 생각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어렵기에 “워킹푸어(working poor)라는 말은 딱 내 얘기”라고 했다. 그러나 소규모 제조업, 영세 자영업계에서 자기가 밑바닥은 아니라고 말한다. “허리띠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걸려 있는 줄 아는가. 버클도 주물·도금 따로이고, 가죽은 털투성이 가죽이 매끈한 원단으로 변하기까지 수많은 소규모 업체가 간여한다. 서울 변두리마다 미싱 두어 대 놓고 온 가족이 달라붙어 지갑·허리띠 만들어내는 지하 공장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합성피혁 벨트 자재를 구하려면 10군데 업체·가게를 다녀야 한단다. 모두 작게는 가족, 크게는 수십 명을 먹여 살리는 대한민국 경제의 실핏줄이다. 하나가 잘 풀리면 다 잘 풀린다.

 김양희 사장의 가장 큰 고충은 소규모 제조업체에 은행 문턱이 너무 높고 절차가 까다롭다는 점이다. 그 많은 공무원·정치인이 규제개혁과 중소기업 육성을 합창하듯 외치는데도? “아마 그 사람들은 이런 절절한 사정을 모를 거다. 사는 물 자체가 다르기 때문 아닐까”라고 그는 말했다. 사실 나는 아까부터 책상 위 가죽벨트를 똑바로 쳐다보기가 미안하다.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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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2:24

한국인들은 일본과의 분쟁·경쟁이라면 덮어놓고 격해진다. 독도·위안부에서 축구·피겨스케이팅에 이르기까지 죄다 그렇다. 무조건 제압해야 직성이 풀린다. 한 맺힌 역사라 이해할 만도 하다. 그러나 대응방식만은 사안별로 정교하게 달라야 옳지 않겠나.

 먼저 독도. 지난달 말 미국의 일본통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교수가 방한했다. 강단에선 그는 “아베로선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하진 못하겠지만 실효적 지배까진 막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니 “무대응이 최선”이라는 게 그의 충고였다.

 그러자 한 방청객이 손들고 따졌다. “아내를 실효적으로 잘 데리고 산다 치자. 그렇다고 누가 ‘저 여자는 내 마누라다’라고 우기면 그래도 가만있어야 하느냐”고. 강연장엔 가벼운 웃음이 번졌다. 강공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의 심리를 적확하게 대변해서일 게다. ‘독도 마누라론’이다.

 이런 자세는 통쾌할진 모르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한국인 시각으로만 사태를 보는 탓이다. 전 세계에 걸친 영토분쟁은 무려 200여 건. 대서양의 섬 포클랜드를 두고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1982년 전쟁까지 벌였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한반도만 한 카슈미르를 놓고 60년간 으르렁거렸다. 독도만 한 섬을 놓고 다투는 분쟁은 셀 수도 없다.

 그러니 바다 건너에서 독도 분쟁을 보면 어떻겠나. 손바닥만 한 땅을 놓고 옆 동네 주민끼리 옥신각신하는 꼴이다.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를 내고 고속도로 옆에 집채만 한 광고판을 세운들 큰 관심 가질 리 없다.

 심리학에서 ‘주의 끌기(attention seeking)’란 게 있다. 반응이 나빠도 유리하다 싶으면 큰소리로 관심을 끄는 전략이다. 일부러 크게 재채기를 하거나 코를 푸는 게 그 예다. 주변에서 찡그릴지언정 자신의 감기를 알려 이익을 볼 수 있단 심리가 발동한 거다. 아이의 이유 없는 짜증도 주의 끌기일 공산이 크다. 이게 바로 일본의 작전이다.

 이 악습을 고칠 묘책은 뭘까. 바로 ‘전술적 무시(tactic ignoring)’다. 아무리 떠들어도 못 들은 척하면 그뿐이다. 좀 지나면 저절로 조용해진다. 사석에서 만난 외교관들은 늘 독도에 대한 전술적 무시를 역설해왔다. 요즘 독도 분쟁 알리기에 혈안인 외교부 방침과는 딴판이다. 중심을 잡아줘야 할 외교 당국마저 정치권에 휘둘려 일본 작전에 말려드는 분위기다.

 늘 입 다물라는 게 아니다. 위안부 문제는 목청껏 외쳐야 한다. 위안부는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사안이다. 가녀린 소녀들이 참혹하게 짓밟힌 사연엔 누구나 피가 거꾸로 솟는다. 미국·캐나다·네덜란드 등 7개국에서 16개의 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된 것도 다 그래서다.

 그럼에도 일본 우익들은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한다. 스스로 몸을 판 거라는 억지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는 무수하다. 성노예로 내몰렸던 네덜란드 여성 7명은 이들에겐 특히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네덜란드인까지 자발적 매춘부라 우기긴 어려운 탓이다.

 이들 벽안의 위안부 중에는 얀 뤼프 오헤르너라는 91세 된 할머니가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네덜란드령 자바섬에서 살았던 그는 1994년 위안부의 참상을 고발하는 책을 내고 미 의회 청문회에도 섰다. 그런 그는 영국인과 결혼 후 호주로 이민 간다. 아시아를 넘어 네덜란드·호주까지 위안부 문제 당사국이 된 것이다.

 게다가 최근 전쟁터에서의 성폭력은 국제사회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보스니아·콩고·르완다 내전에서 벌어진 집단강간의 처참함이 낱낱이 공개된 덕이다. 유엔도 2008년 성폭력 퇴치를 위한 대대적 캠페인을 시작했다. 14일 아베 총리가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꺼림칙한 건 아베 정부가 표변해 왔다는 거다. 이번에도 “고노 담화의 검증은 계속하겠다”고 토를 달았다. 계승한다면서 검증은 또 뭔가. 일본 우익 언론에서도 “궤변에도 정도가 있다”는 질타가 나왔다.

 때마침 6월 런던에선 ‘분쟁지역 내 성폭력 정상회의’가 열린다. 아베 정부가 말을 뒤집으면 위안부 만행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정부를 규탄할 호기로 삼을 만하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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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2:23

3월의 교정은 신입생들의 재잘거림으로 수선스럽다. 갓 태어난 새들의 합창소리 같다. 불협화음이지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활기를 잃어버린 늙은 새(재학생)들은 흘낏 보면서 지나친다. “좋을 때다.” 졸업예정자의 ‘거친 생각’ 속에는 회한이 담겨 있다. 임재범의 노래 ‘너를 위해’가 배경음악으로 적당하다.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방송사에도 낯선 얼굴들이 밀어닥쳤다. 신기한 듯 기웃거리는 저들. 신입사원들이다. 복도에서 연예인들과 마주치며 ‘살아남은’ 자의 기쁨을 만끽한다. “아 여기가 꿈의 공장이구나.” 청춘의 태반을 ‘시청률의 노예’로 살아온 은퇴예정자들은 창가에서 허탈하게 웃는다. “살아봐라.” 

실무면접에서 MBC 서창만 PD는 “아카데미 시상식 같은 프로를 연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시상식의 취약점들을 열거하며 안목과 정보량을 과시했다. 구체성, 준비성에 매료된 선배들은 사뿐히 문을 열어주었다. 십 몇 년이 흐른 후 ‘대한민국영화대상’ 자막에서 그 이름을 발견하고 20세기 말의 기억이 부활했다. 미소와 한숨이 교차하는 밤이었다.

짜임새는 좋았으나 아쉬움은 여전했다. 수상자들의 소감이 별로였다. 연출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감격에 겨운 건 알겠으나 과연 저 말밖에는 할 게 없을까. 하느님과 가족, 제작진에게 고마워하는 것으로 주어진 1분을 다 써버리다니. 한국영화사에서 장미희가 했던 수상소감 “아름다운 밤입니다”는 불멸의 어록으로 남았다. 이후 인상적인 소감은 2005년 청룡영화제 때 배우 황정민에 의해 탄생했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것뿐인 걸요.” 겸손의 비유가 남달랐다. 감사의 리스트를 나열하다가 생방 시간을 잡아먹는 수상자들과는 급이 달랐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는데 외국의 시상식을 볼 때마다 ‘졌다’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노예 12년’으로 흑인 최초의 작품상 트로피를 거머쥔 스티브 매퀸 감독은 주인공 솔로몬 노섭의 대사로 소감을 대신했다. “모든 사람은 그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사람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세상의 모든 노예들과, 그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얼마나 깔끔한가. 

 ‘노예 12년’을 제작한 브래드 피트는 프로듀서 자격으로 인터뷰 룸에 들어와 “역사를 바로 알아야 현재의 우리가 바로 설 수 있고, 나아가야 할 방향도 알게 되는 것”이라며 의미를 다졌다. 노예들은 1840년대 루이지애나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 염전에도 수많은 ‘노섭씨’가 있다. 그들을 구한 후에는 우리 자신도 구해야 한다. 새장에 갇힌 줄도 모르고 오늘도 모이를 주는 손에 입 맞추며 노래로 화답하는 늙은 새들이 그들의 수상소감에 짧게나마 화답할 시간이다.


주철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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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2:22


말을 하지 않아도 말해주는 한 장의 사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청소부와 주먹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다(사진 참조). 지난해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때 트위터에 무한 리트윗됐다. 대학 이사장 집에 출장 청소를 하고, 은행·도토리까지 주워와야 하는 우리의 근로환경과 대비된다. 그 구원의 하이라이트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립대 청소노동자를 포함해 6200여 명을 정규직화시켜 준 순간이다.


 인터넷에선 ‘서울이 부러운 이유’라는 글이 넘쳐났다. 취임 첫날에 학교 무상급식을 하고, 시립대 등록금은 반값으로 깎아주고, 4000여 명의 환경미화원은 정규직화시키고…. 그러고도 박 시장은 “직접 고용으로 중간 착취를 없애 예산이 오히려 53억원 절감됐다”고 자랑했다. 

 어제 시립대에 들렀다. 정문을 들어서면 맨 앞에 천막농성장이 19일째 떡하니 버티고 있다. 정면의 전농관 벽면은 ‘ 청소노동자 고용 보장하라’ ‘비정규직 대책=집단해고’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독차지한다. 정규직은 고맙지만, 정년을 아예 70세로 올려달라는 투쟁이다. 워낙 나이들이 많아 곧 63명 중 23명의 청소노동자가 65세 정년에 걸려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난처한 입장이다. 그 파장이 겁나기 때문이다. 이들의 정년을 연장하면 환경미화원들도 덩달아 기준을 맞춰져야 한다. 요즘은 더 이상 환경미화원이 약자가 아니다. 구로구에선 대학원 출신까지 지원했고, 전주시엔 해외유학파도 2명이나 몰렸다. 여기에다 1000명이 정년을 코앞에 둔 서울메트로도 가만있을 리 없다. “요즘은 정보기술(IT) 덕분에 나이를 먹어도 운전이나 정비가 끄떡없다”며 파업을 벌일 게 분명하다. 고임금직의 정년이 연장되면 그 추가 부담은 요금인상이나 시민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서울시장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시립대 대수술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빚에 허덕이던 서울시는 매년 300억~400억원씩 시립대에 지원했다. 그는 사립대 수준으로 등록금을 올려 자립시키든지, 아예 시립대를 없애는 카드까지 검토했다. 그의 논법은 선명했다. “시립대에 지방 출신 학생이 절반이 넘어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를 보세요. 그 주 출신에겐 1만 달러, 다른 지역 출신은 3만5000달러씩 칼같이 받아요. 서울시는 시민을 먼저 생각하는 지자체지, 자선기관이 아니에요….” 

 서울시립대는 박원순 시장에게 정치적 성지나 다름없다. 자주 시립대를 찾고, 갈 때마다 환호를 받는다. 그가 꿈꾸던 반값 등록금과 ‘비정규직 없는 서울’이 실현된 이상향이다. 그런 시립대의 청소노동자들이 다시 뿔이 났다. 반값 등록금을 대느라 서울시의 시립대 지원 예산도 303억원에서 486억원으로 60%나 뜀박질했다. 박 시장이 인심을 쓰면서 돌아온 부메랑이다.

 이명박의 길이냐 박원순의 길이냐, 어느 쪽이 옳은지는 결국 서울시민이 판단할 문제다. CEO 출신의 이명박은 효율을 중시한 반면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은 말 그대로 ‘사람이 우선이다’. 혈세와 원칙은 그다음이다. 이에 따른 숨겨진 부작용의 하나가 세대갈등이다. 공공부문 근로자들이 정규직화되면서 대개 정년을 채운다. 환경미화원도 정년퇴직으로 결원이 생겨야 4~5년 만에 한 번씩 뽑을 만큼 경직됐다. 진입이 더 어려워진 젊은 층이 피해자다.

 참고로, 2009년 찍은 오바마 사진도 미국과 한국에서 온도차가 있다. 그는 거만하게 구두닦이 앞에 앉은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와 차별화된 이미지로 재선 때 큰 재미를 봤다. 하지만 요즘 미 언론이 이 사진을 활용하는 용도는 전혀 다르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 청소부이자 오바마의 농구팀 동료인 로런스 립스콤이 저임금 공공근로자의 상징이라며 이렇게 꼬집었다. “월마트·맥도날드가 최악이라고? 아니다. 리먼 사태 이후 생겨난 저임금(연봉 2만4000달러 이하) 비정규직의 5분의 3은 공공부문이 고용하고 있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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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2:03

서울에서 요즘 가장 뜬다는 곳은 경리단길이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하얏트서울 호텔에 이르는 950m의 2차로 오르막길. 행정구역상 명칭은 이태원2동 회나무길이지만 부근에 육군중앙경리단이 있어 그리 불리게 됐다. 평범했던 이 골목길이 2~3년 새 조금씩 달라져 왔다. 개인이 운영하는 수제 맥줏집, 초소형 식당, 빈티지 그릇 가게 등이 문을 열면서 ‘볼거리, 먹거리, 재밋거리 많은 곳’이 됐다. 이제는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2030들의 약속 장소로 거리에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최근 빨간불이 켜졌다. 길 초입에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왔다. 이 정도가 무슨 대단한 일일까 싶지만 그간의 ‘학습 효과’로 보자면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경리단길이 인기를 끌기 전 서울엔 도시인의 아지트로 사랑 받던 골목들이 있었다. 가로수길, 삼청동, 이태원, 홍대 앞, 상수동이다. 생겨난 패턴도 비슷하다.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들어서면서 주변에 이색적인 카페와 식당이 문을 열었고, 감각적인 공간들을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래된 세탁소나 사진관조차 허투루 보이지 않는 곳이 그런 길이 됐다. 게다가 2차로의 좁은 도로라 걸어다니며 ‘골목 콘텐트’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다는 매력도 뜨는 골목들의 공통점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나타났다. 유동인구가 늘자 프랜차이즈 형태의 커피숍을 시작으로, 화장품·의류·액세서리 등 쇼핑족을 위한 브랜드 매장이 들어섰다. 가로수길의 경우 자라·H&M 같은 글로벌 의류 매장은 물론 해외 브랜드들의 대형 플래그십스토어로 이미 가득 차 있다. 가로수길에 작업실을 둔 한 패션 디자이너는 세 든 건물이 기업에 팔리면서 요즘 새로운 둥지를 찾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금세 뜨지 않을 동네를 찾아야 월세 오르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삼청동도 홍대 앞도 이와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을 터다. 

 또다시 골목 상권 문제를 운운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작은 가게들이 사라지면서 길만의 색깔과 문화가 사라지는 현상이 안타깝다. 무명의 디자이너와 셰프와 파티시에들-. 돈 벌자고 가게를 차렸지만 새로운 문화를 퍼뜨리는 ‘트렌드 생산자’가 돼 줬기에 지금의 길이 생겼다. 그들이 사라진 뒤에도 골목의 재미가 그대로일 수 있을까. 

 뉴욕시는 2012년 ‘어퍼웨스트사이드(UWS) 지역 소매점 거리를 위한 특별 상업 지구’ 계획을 추진했다. 예술가들이 몰려 있던 소호 지역이 지나치게 사업화되자 한 가게의 최대 폭은 12m를 넘어선 안 되고 15m의 폭 안에는 적어도 2개의 가게가 들어서야 한다는 정책을 내놨다. 작은 가게를, 아니 골목을 살리려는 묘안이었다. 

 길은 그대로일지라도 문화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오랜 시간 숙성시킨 공간들 역시 쉽게 변질된다. 명동이나 강남역과 다른, 안식과 휴식이 함께하는 상권이 존재할 수 없는 걸까. 문화 보존, 골목에도 필요하다.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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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2:01

드라마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몇 년에 한 번씩 푹 빠질 때가 있다. 이번엔 『별에서 온 그대』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수·목요일 저녁이면 약속이 길어질 때마다 시계를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니 요즘 떠들썩한 ‘천송이(전지현 분) 신드롬’이 너무 잘 와닿을밖에. “눈 오는 날엔 치맥인데…” 대사 한마디로 중국에 ‘치맥’을 유행시키고, 남산 N타워를 연인들의 명소로 만들었으며 걸치고 입고 타고 쓰고 먹고 마시는 것 모두 유행으로 만들어낸 힘. 신드롬의 실체다. 흔히 스타마케팅이라 불리는 힘이다. 전지현은 브랜드 가치만 3000억원이요, 경제 효과로는 몇 조원이라더니 급기야 ‘천송이노믹스’란 용어까지 등장시켰다.

 천송이노믹스는 내게 창조경제를 떠올리게 했다. 직업은 못 속인다더니 경제기자로 밥 먹은 세월이 꽤 돼서였을 것이다. 사실 성공비결을 분석하고 어딘가에 꿰맞추는 건 쉽다. 결과가 나온 뒤 훈수, 품평이야 누군들 못하랴. 그러니 영화·소설·게임·드라마, 뭐가 됐든 빅 히트작에는 성공 비결 배우기 열풍이 불게 마련인 거다. 군색하지만 천송이에 창조경제를 빗대는 이유다.

 첫째 비결은 ‘15년 발연기’다. “15년 발연기가 어디가냐”며 극중 절친이 ‘천송이’에게 비아냥댈 때, 바로 알았다. 그래, 저 능청맞고 천연덕스러운 표정 뒤에 15년 발연기가 있었구나. 전지현은 1999년 광고모델 데뷔 후 15년을 ‘발연기’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그 꼬리표를 떼려고 그는 영화 ‘도둑들’에서 대역 없이 5층에서 뛰어내리고, 와이어에 매달린 채 건물을 탔다. 그러곤 마침내 주사와 욕설, 무식과 내숭까지 신드롬으로 바꿔냈다.

 15년 발연기는 ‘1만 시간의 법칙’과 통한다. 말콤 글래드웰이 끄집어내 유명해진 성공비결, 뭔가 잘하고 성공하려면 1만 시간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법칙 말이다. 타고난 연기 천재는 없다. 어느 연기자인들 한 번에 되랴. 절정은 1만 시간 뒤, 15년 뒤에 온다. 거의 대사 없는 연기로 사실상 데뷔작에서 히트했던 ‘모래시계’의 이정재 빼고는 예외 없는 법칙이다. 창조경제의 성공도 그렇다. 대통령 임기 중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고 조급해 해선 안 된다. 길게 봐야 한다. 1만 시간, 15년 뒤 대한민국 경제 대박의 틀을 닦는 마음으로.

 둘째, 이젠 중국이다. 배용준의 한류는 일본판이었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이번엔 중국에서 먼저 분 치맥 바람이 한반도를 달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배용준 한류의 경제효과를 약 3조원으로 추산했는데, 전지현 효과는 그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중국과의 인연설도 나쁘지 않다. 본인은 줄곧 부인하지만 본명이 왕지현인 전지현은 끊임없이 화교설에 시달렸다. 중국 차이나닷컴은 아예 ‘전지현은 중국 혈통’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창조경제의 돌파구도 중국에 있다.

 셋째, 자기 것으로 승부한다. 망가지는 여배우역, 전지현은 딱 맞는 배역을 맡았다. 연예기획사 IHQ 관계자는 “지금까지 전지현은 남의 옷을 입었다. 이제야 제 옷을 입고 제 실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는 이제껏 남의 것 따라하기로 커왔다. 이른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2등 전략이다. 이젠 내 것이 아니면 안 된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 먼저 움직이는 자가 돼야 한다. 내 옷, 내 것이야말로 세계에 통하는 힘이다.

 넷째, 혼성모방이 창조다. 혼성모방은 잘된 것을 추려 섞어 새 작품을 만드는 행위다. 무턱대고 베끼는 표절과는 다르다. ‘별그대’는 요즘 잘나가는 드라마코드를 다 담았다. 초능력·환상·판타지·꽃미남·병맛 연기…. 심지어 인디언 주술에 걸려 400년을 산 사나이를 그린 폭스TV 드라마의 표절 시비까지. 이탈리아의 명품 디자인이 어디서 나오겠나. 선조가 남긴 로마와 그리스의 걸작들을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힘 아니겠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의 녹색성장도 담고 DJ의 벤처 활성화도 담는 거다. 창조가 별건가. 성공하면 창조요, 못 하면 망조인 거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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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1:51

요즘 한국 사람들 사이엔 ‘통일 대박’이 대단한 화두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그런 큰 기회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물론 한반도의 통일은 전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는 의미에서, 국제사회와 청소년들의 관심과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성공적 통일을 이루려면 국내와 해외의 적극적인 참여와 열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남북 통일에 대한 시각부터 다시 정립했으면 한다. 남북 통일은 한반도라는 범주를 넘어 세계의 미래와 국제 지정학적으로도 엄청난 혁신이다. 물론 북한에 많이 매장돼 있는 석탄·희토류 등의 지하자원처럼 통일이 되면 손에 쥐는 분명한 이득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자원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경제에 반드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단언할 수 없다.

 고도로 훈련되고 값싼 북한의 노동력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다. 이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와의 경쟁을 생각하면 중요한 포인트다. 하지만 이 또한 잠정적인 추정일 뿐이다.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통일 한국의 노동 임금이 하향 평준화될 공산이 크다. 값싼 북한 노동력이 통일 한국에 긍정적으로 이바지할 것이란 예측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정치적 판단 오류가 될지 모른다. 무엇보다 위에서 열거한 장점들은 한반도 통일을 향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한반도 통일의 중요성은 지난 세기 우리가 한번도 목격해본 적이 없는 대규모 실험이라는 데 있다. 새롭게 국가를 건설하고 엄청난 혁신이 수반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독일 통일과 비교할 때 한반도 통일의 조건이 훨씬 열악하다고 보고 있다. 이는 거꾸로 한반도 통일이 야기할 변화의 깊이가 독일 통일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대할 것임을 의미한다.

 통일이 되면 남한 정부가 극도로 가난한 북한의 수백만 주민들의 생활을 떠안게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는 통일이라는 도전에 임하는 올바른 응전 태세가 아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인스티튜트 세미나에서 국제 관계 전문가인 존 페퍼(John Feffer)는 이렇게 강조했다. “한반도 통일은 부국(富國)과 저개발 국가를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는 역사적인 일이 될 것이다. 만약 통일 한국이 문화와 사회 영역에서의 개혁을 통해 성공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이것은 전 세계를 위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의 극단적인 임금 격차가 비극적인 역사적 환경에 의해 오로지 한반도에서만 일어난 현상이라고 보는 것은 오해다. 세계 도처에서 이러한 극단적인 빈부격차 현상을 목격할 수 있으며, 그 정도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가들 간의 괴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분리가 전 세계 미래의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람들은 스마트폰과 자동차 디자인에 천재성과 열정을 기울여 왔다. 이번에는 한국인들이 그런 노하우를 되살려 남북이라는 이질적인 두 사회의 통합에 적용할 수 없을까. 그래서 새로운 문명 창조라는 시각에서 전 세계에 영감을 주는 역동적인 통일 한국을 만들어 나갈 수는 없을까.

 ‘통일 대박’이 단지 경제 성장을 자극하는 북한에 대한 광범위한 투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통일 한국이 전 세계에 모범이 될 최고의 국가 경영·행정 기술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이 독일 통일과 한국 통일의 차이점을 주로 사상적·경제적 관점에서 서술해 왔다. 하지만 나는 정작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기술의 변화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어지러운 속도로 발전해 왔고, 정보 처리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낡은 통치 체제들이 삐걱대거나 허물어지고 있다.

 이쯤에서 통일 한국이 역사상 어떤 정부도 해 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통치 체계로 수많은 도전들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단기적인 통일 비용(주로 돈)에 과도하게 시선을 집중하기보다 새로운 국가 경영이라는 좀 더 본질적인 측면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1215년 입헌 정부를 만들어 낸 영국의 전설적인 마그나 카르타(大憲章)처럼 통일 한국 또한 고도로 혁신된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노령화 사회·민주주의 침해와 같은 광범위한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 개혁을 이뤄내고, 그 성과를 전 세계에 소개하는 것이다. 지나친 이상주의라 탓할지 몰라도, 나는 통일 한국이 긴 안목에서 성공하려면 이런 역사적인 관점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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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1:31

지난 1월 미국의 가전쇼(CES)에 다녀온 김도훈 산업연구원(KIET)장은 “엄청난 변화를 감지했다”며 흥분했다. 눈길을 사로잡은 건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휘는 디스플레이나 우리 뒤를 맹렬히 추격해 오는 중국이 아니었다. 그는 “삼성의 갤럭시 기어로 BMW i3를 제어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라 했다. 좋게 보면 자동차와 정보통신(IT)의 융합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초(超) 거대산업인 자동차와 IT의 정면승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요즘 세계 증시에서 가장 핫(hot)한 업체는 미국의 전기차인 테슬라다. 지난해 주가가 다섯 배가 뛰었고, 연초 두 달간 70%나 수직상승했다. 넉 달 전의 배터리 화재도 무서운 질주를 막지 못했다. 설립 후 10년간 단 한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는 업체. 판매량도 고작 2만3000여 대인 회사. 그런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310억 달러로, 연산 1000만 대인 GM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 비밀은 ‘혁신의 아이콘’이다. 기존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를 구색용 ‘미끼 상품’으로 여겼다. 자신들이 지배하는 휘발유·디젤 엔진 시장을 흔들지 않도록 전기차의 성능을 볼품없게 제한했다. 테슬라는 이런 상식을 뒤집었다. 외관만 자동차의 흉내를 냈을 뿐이다. 그 안에 리튬이온 전지를 아낌없이 듬뿍 깔아 고급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성능을 갖췄다. 센타페시아의 17인치 대형 터치스크린으로 차량의 모든 기능을 통제한다. 자동차를 ‘달리는 IT기계’로 완벽히 변신시킨 것이다.

 현재 자동차 제조원가에서 전장(電裝)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10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일부에선 “지나친 IT화로 자동차의 기술적 결함이 빈발할 것”이라 경고한다. 하지만 앞날이 궁금하다면 고급차를 보면 된다. 1억원 이상의 플래그십 자동차들의 전장화 비중은 이미 50%를 넘었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60%, 전기차는 70%나 된다. 아우디의 루퍼트 슈타들러 회장은 CES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이제 자동차는 이동수단이 아니다. 요즘 자동차의 혁신은 대부분 IT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미국의 전기 안전인증업체인 UL코리아 황순하 대표. 그가 보고 온 CES 독후감은 독특하다. “현대차의 진짜 적수는 도요타나 폭스바겐이 아니라 삼성전자와 LG화학이다.” 과거 휴대전화 업체들이 노키아가 아니라 의외의 복병인 애플의 아이폰에 쑥대밭 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지난 100년간 자동차가 연비·속도를 개선하는 기계공학에 치중했다면, 앞으로 100년은 IT와 케미컬(화학) 경쟁”이라 했다. 삼성과 LG의 센서와 제어기술, 2차 전지가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동차는 주로 도시간(between cities) 이동 수단이었다. 하지만 세계이동통신협회에 따르면 머지않아 도시내부(within city)의 편의 장치로 변모한다고 한다. 그날이 오면 자동차는 더 이상 개인이 소유해 차고에 넣어두는 상품이 아니다.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네트워크를 통해 가장 가까운 소비자를 최적의 경로로 운반해 주는 IT 장치로 바뀌게 된다. 여기에 필요한 운영체계(OS) 등의 무인운행 시스템은 상용화를 코앞에 둔 수준이다.

 문제는 누가 이 생태계를 지배하느냐다. 구글은 무인자동차와 8곳의 택배 로봇 회사까지 인수했다. 아마존이 드론 택배에 뛰어든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새 네트워크를 장악하려는 포석이다. 언제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여기에 IT와 자동차를 납품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할지 모른다. 대기업만 죽을 쑨다고? 아니다. 수백만 명의 택시·버스·트럭 기사와 택배원들은 아예 생계를 잃을지 모른다. 

 CES의 여운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국내 언론들은 휘는 디스플레이에 감탄했지만, 전문가들은 미래의 불길한 징조에 고민하는 눈치다. 이미 IT산업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미친 속도감과 극한의 경쟁에 단련돼 있다. 그런 IT계의 최강자인 구글과 아마존이 새로운 생태계를 앞세워 자동차 시장을 넘보고 있다. 한 외국 잡지는 “애플을 잊어라. 페이스북도 잊어라. 진짜 무서운 놈은 구글과 아마존”이라고 했다.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경고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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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1:23

얼마전 미국 대학의 문제점을 파헤친 책을 써서 이름을 알린 작가를 만났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이 작가는 최근 도서관들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내용의 요지는 책을 기증해달라는 것. 이유인즉 출판사들이 책을 주지 않아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황당하게 여긴 대목은 "책을 달라"는 도서관의 요구, 그 자체였다. 그는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어이없어 했다. 그는 "미국 도서관들은 오히려 책을 비싸게 산다"고 주장했다.

실제 일부 대학의 문헌정보학과 교수들을 통해 확인해 봤더니 그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미국에서는 책을 출간할 때 종이 한 장으로 간단하게 표지를 장정한 페이퍼백과 딱딱한 표지의 양장본을 함께 출간하며, 양장본이 당연히 페이퍼백보다 비싸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해리 포터 시리즈의 경우 페이퍼백 가격은 약 10달러, 양장본은 17달러다.

그런데도 미국 도서관들은 주로 비싼 양장본을 구입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도서관의 경우 여러 사람이 읽기 때문에 책에 손상이 갈 수 있어 보관을 위해 일부러 튼튼한 표지의 양장본을 구입한다. 또다른 이유는 바로 저작권 개념이다. 즉 여러 사람이 함께 읽는 책이니 이에 합당한 대가를 저자에게 지불해야 한다는 통념이 미국의 공공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들 사이에 형성돼 있다. 도서대여점이란 사업이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미국 도서관들이 비싼 값에 책을 사는 진짜 이유가 바로 저작권에 있다.

그러나 우리 도서관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우리는 양장본과 페이퍼백을 따로 인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시스템의 문제가 더 크다.

우리 대학이나 대형 공공 도서관들은 주로 입찰제로 책을 구입한다. 이런 제도적 문제 때문에 도서관 사서들이 책을 구입할 때 최대 변수는 가격이 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부분이 국내 출판사들을 어렵게 하고 저자들의 출판 의욕을 꺾는다는 점이다.

비단 도서관 뿐만 아니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청은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해 구청 관할 도서관이나 마을문고에 공급할 책을 동네 서점에서 구입하면서 과도하게 할인을 요구해 논란이 됐다. 출판사들이 온라인서점에 20~30% 할인해 납품하니, 정가보다 20% 싸게 납품하라는 요구였다. 동네 서점을 살리겠다고 책을 구입하면서 오히려 가격 후려치기를 한 셈이다.

공무원들 조차 '책은 싸게 사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도서관만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우리 출판시장을 죽이고 동네에서 서점을 내쫓는 문화적 파괴 현상으로 나타나는 점을 한번쯤 돌아봐야 한다.

과거 동네에 최소한 한 두 곳 있던 서점들이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최근 공개한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03년 전국에 3,589개였던 서점이 지난해 말 2,331개로 3분의 1이 줄었다. 경기 의왕, 경북 문경 등 36군데는 서점이 단 1개 뿐이고, 인천 옹진군과 경북 영양ㆍ울릉ㆍ청송군 등 4개 지역은 아예 한 곳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하고 많은 저작물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의 지적 활동에 보탬이 되기를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출판해봐야 팔 곳이 없고, 팔아봐야 남는 게 없으니 누가 열심히 지식 노동을 하려 들겠는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환경을 탓하기 전에 사회적으로 저작물을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 지 우선 돌아볼 일이다. 꼭 출판물 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만화 등 인터넷에 공짜로 차고 넘치는 콘텐츠들을 보면 과연 좋은 세상이라고 환호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각종 저작물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시장에서 좋은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공급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최연진 산업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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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1:12

뼈가 저리다. 생활고를 못 참고 영화배우가 스스로 죽었다. 얼마 전에는 세 모녀가 동반하여 죽었다. 분통이 터지고 가슴이 미어진다. 왜 그 무서운 자살을 선택할까. 사연인 즉슨 그러하나 생활고 때문이 아니다. 가난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신건강 때문이다. 정신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긍정을 배우지 못했다. 자기 확신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 사회가 긍정하지 않았고 우리 학교가 희망을 얘기하지 않았다. 잘못 가르쳤고 잘못 배웠다. 못나도, 못 배워도, 가난해도 상관없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못나면 성형해서 잘나야 하고, 학교는 명문대를 나와야 하며, 부자만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가르쳤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돈이라고 배웠다. 그렇게 엉터리 가치관이 대세이다 보니 작금의 한국사회는 겉하고 달리 속병이 들었다. 못 나고 무능력하고 돈이 없다면 사람 노릇이 불가능하니 존재의 이유도 당연히 없다. 이 얼마나 끔찍한 교조인가. 

나는 연극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 각자가 얼마나 개성 넘치게 만들어졌는지를 늘 실감하면서 산다. 마냥 놀란다. 그리고 어떤 고난이나 질병, 불행, 가난 등에 내 던져졌을 때 그것을 지혜롭게 극복할 능력을 인간이 가졌다고 굳건히 확신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라서다. 행복이야 말로 인간의 존재 이유라서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한데 어떻게 행복해하라는 거냐며 따진다. 행복할 일이 있으면 행복하겠단다. 과연 그런 태도로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그러니 당연히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행복하지 않다면 그 어떤 투쟁을 감수해서라도 행복을 찾아야 한다.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는 가차없이 그 생각을 지워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불행하다는 생각을 무조건 지워야 한다. 그런데 가령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 때, 돈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돈이 있어도 불행할 수 있다는 생각을 끌어내야 한다. 그런 생각의 전환에 길이 곧장 나야 한다. 돈의 유무가 행복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다. 부자도 빈자와 마찬가지로 감옥 가고 사기 치며 도둑질한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많이 배운 도둑들이 훨씬 더 추악하고 교활하다. 예쁜 여자가 성형중독에 빠지고 자신의 얼굴에 만족하지 못한다. 따라서 예쁜 여자가 절대로 행복하다는 결론은 틀렸다. 내가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에 자긍심을 가질 때 절대로 행복해진다. 자본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 비로소 자본 중심 사회에서 지혜롭게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다. 작가사회에서도 잘 쓰는 작가만 살아남는다고 생각해선 답이 없다. 세상에 사랑과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위대한 걸작이 무한정 탄생한다. 

배우는 멋지고 잘 생겨야 한다가 아니다. 잘 버티고 잘 노는 기술을 배워야 살아남는다. 구김살이 없는 최적의 상태로 즐거움을 유지해야 한다. 만일 그런 쾌적한 상태가 아니라면 당분간은 배우를 휴업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때는 배우 역시 아니다. 막노동을 하는 중이면그때는 막노동자일 뿐이다. 그때도 스스로를 배우라고 최면을 거는 것은 절대 도움이 안 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중이라면 편의점에 몰입해야 한다. 편의점에서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만 고민해야 한다. 내가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져야 비로소 행복해진다. 그러면 정말 놀랍게도 돈이 막 생긴다. 행운이 막 생기고 좋은 일이 몰려온다. 그런데 행복을 추구하지 않으면 행복은 절대로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행복할 수 있겠는가. 가난하다고 확신하는데 어떻게 그가 더 가난해지지 않을 수 있는가. 

가장 못된 짓은 실망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 절망이다. 사태 해결에 도움이 전혀 안 된다. 사람은 행복하려고 태어난다. 자살은 불행을 끝낸 것이 아니라 행복을 끝낸 것이다. 힘들면 더 힘든 사람들 좀 제발 보자. 죽지는 말자. 살자. 

고선웅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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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0:58

몇 년전 복지 사각지대의 결식아동 지원 사업 방식을 놓고 복지 관계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식권 형태의 바우처를 줘 식당에서 밥을 먹도록 하는 방식에 대해 도시락 배달 등을 통해 급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바우처 방식에서 나타난 부작용 때문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바우처를 현금화해 PC방으로 달려갔고, 심지어 일부 부모는 술값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바우처는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를 수 있었지만 아이들의 선택은 정크푸드로 몰려 성장기 건강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우처를 줘도 여전히 굶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도시락 급식은 아동의 집에 찾아가 직접 전달하기 때문에 부적절한 전용(轉用)을 막을 수 있었다. 균형 잡힌 식단으로 건강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도시락 제작ㆍ배달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배달 과정에서의 변질 우려 등 위생문제, 메뉴에 대한 아동들의 선택권이 없는 점 등 단점도 있었다.

편의성과 효과 등에서 두 방식의 장단점은 명확했지만 분명한 점은 바우처라는 물질적 지원만으로 아동의 끼니 해결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결식아동 지원 사업에 참여했던 관계자의 이야기다. "복지 사각지대의 아이들이 굶는 이유는 집에 돈과 쌀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부모가 맞벌이거나 조손 가정이어서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을 챙겨준다는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밥만 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도시락 배달의 또다른 장점은 대면접촉으로 인한 관계 형성이다. 배달원들은 가정 방문을 통해 아이들의 어려움이 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먹지 않은 도시락이 쌓이는 것은 결식 아동 가정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였고, 아동의 위기 상황에 대응이 가능해졌다.

이런 효과에도 불구하고 도시락 배달은 정부와 지자체 입장에선 적잖은 비용과 인력이 소요돼 번거로운 일이다. 대상자를 선정하고 나눠주는 것으로 손을 털 수 있는 바우처 방식이 훨씬 편한 선택이다.

때문에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사회적 기업의 복지 사업 참여다. 장애인, 실직자, 경력단절 여성 등 취약계층을 고용해 친환경 식재료로 도시락을 만들고, 노인들이 배달하도록 하면 적잖은 고용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역의 자원봉사 인력을 배달원으로 활용하면 아동들에 대한 상담도 할 수 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으로 우리 복지 시스템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고,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손질해 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맞는 말이지만 금전적 지원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자신들에게 말을 걸고 고민을 들어줄 이웃, 지역사회의 관심과 도움이 돈 못지 않게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결식 아동들처럼 바우처보다 누군가 챙겨주는 사람이 필요하진 않았을까.

우리 복지 시스템은 비효율투성이다. 사회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9.8%로 여전히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22.1%)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몇 차례 선거를 거치면서 복지 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과중한 업무(물론 그들의 업무가 복지 대상자들을 발굴하는 대신 소득과 재산을 조회해 수급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데 몰려 있는 게 문제다)에 시달리는 게 사회복지 공무원들이다.

늘어나는 복지 예산과 목숨 바쳐 일하는 공무원. 그런데도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취약계층의 극단적인 선택이 끊이지 않는다면 비정상도 이만저만 비정상이 아니다.

한계에 부딪혔다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국가 관료시스템이 복지를 틀어쥐고 있을 게 아니라 과감하게 민간 부문이 복지서비스 영역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물질적 지원 외에 이웃과 소통하는 사회적 관계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단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는 게 아니라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말이다. 

한준규 사회부 차장대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8&aid=0002476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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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0:55

돌아보면 꽤 오래 기자 생활을 해왔지만 잘 했다고 기억에 남는 일이 별로 없다. 기사로 사회의 반향을 일으킨 것은 고사하고 몇 안 되는 사람 눈물 닦아준 일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 대의명분과는 별개로 '특종'이라도 해서 다른 기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개인적인 성취감을 맛 본 적도 그다지 없었다. 반대로 기억에 남는 건 다른 기자들에게 기사를 뺏기는 '낙종'이나, 함께 취재를 하고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헤아리지 못해 눈뜨고 기사를 놓친 경험이다. 몇 해 전 아주 짧게 외교부를 들락날락하며 외교 정책을 취재할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아랍 민주화의 봄 이후 리비아 상황이 매우 불안정할 때였다.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반군의 공격이 4개월째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외교부 고위 당국자가 기자실에서 현지 상황을 설명했다. 리비아는 지금 어떤 국면인지, 반군과 카다피 정권의 싸움은 누구의 승리로 끝날지, 한국인 안전에 문제는 없는지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당국자는 이미 미국과 서유럽 심지어 일본도 비판하고 나선 독재자 카다피 정권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카다피 정권이 바뀌더라도 기존 정부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라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분쟁과 상관없이 전문 관료들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한국 기업들이 그들과 30년 이상 이어온 관계는 물론 전후 복구사업까지 생각하면 단절이 이로울 게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공습으로 반군을 지원하는 영국이나 프랑스에도 거부감이 있었지만 이미 세계가 독재자로 알고 있는 카다피 정권을 대놓고 비판하지 않는 모습도 갸우뚱했다. 한국 기업에 이익이라니, 그게 국익이라니 뭐 그런가 보다 했다. 다음 날 한 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이 당국자의 설명을 비판했다. 그 신문은 다음 날 사설로 또 문제를 삼았다. 요약하면, 경제적 손익만 따지는 근시안적 외교는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려 오히려 국익을 해친다는 지적이었다. 다른 기자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기사를 보고 속으로 '물먹었네' 했다. 얼마 뒤 자원해서 외교부를 떠났다. 문제 의식과 기사 감각, 취재력에서 탁월한 그런 기자들에게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한 것이었다.

최근 소치 동계올림픽 기사를 쓰면서 그때 일이 생각났다. 소치 올림픽은 러시아 푸틴 정부의 동성애자 차별 등 인권문제를 이유로 각국 정상들이 개막식에 대거 불참한 이례적인 올림픽이었다. 주요 8개국 중에는 일본과 이탈리아를 제외한 정상이 아무도 개막식에 가지 않았다. 리비아의 경우와는 또 달라서 러시아의 인권 차별을 문제 삼는 것은 러시아를 건드려 외교관계에 손해를 보면 봤지 무슨 이득이 있을까 싶지만 서구 지도자들은 그 쪽을 선택했다. 개막식에 시진핑 중국 주석과 아베 일본 총리는 고민 없이 달려갔다. 국익을 매우 중시하는 국내 일부 신문이 그런 외교의 장에 우리 대통령은 왜 안 갔느냐고 따지고 들자 일정이 맞지 않았다고 청와대가 해명한 걸 보면 박근혜 대통령도 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닌 듯하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가. 외교에서 국익을 우선해야 하는 것은 틀리지 않지만 그를 위해 자기 잇속 챙기기나 떼쓰기, 눈치보기나 모르쇠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주요 20개국에 이름을 올리는 나라라면 명분을 앞세워 국익을 창출해야 한다. 영국 외교관이자 작가인 해롤드 니콜슨은 외교 입문서로 널리 읽히는 그의 저서 <외교(Diplomacy)>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 자신의 실질적인 경험과 외교를 통해서 나는 여러 해 동안 연구를 통해 '도덕적 외교'가 궁극적으로 가장 효과적이며 '부도덕한 외교'는 목적을 그르친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할 말은 좀 하고 살자. 


김범수 국제부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8&aid=0002474068

Posted by 겟업
2014. 7. 12. 23:44

또 대참사가 일어나 버렸다.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보내던 1995년 6월, 도쿄의 어머니가 갑자기 "괜찮냐? 위험하지 않느냐"고 전화를 걸어오셨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본에서도 크게 보도되었던 것이다. 그 사건 기억이 난다. 20년 지나서 이젠 한국도 그런 대규모 사고는 없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흘러넘치는 한국 언론 보도를 도쿄에서 정리하고 있다. 수사기관은 선장이나 선원이 승객보다 먼저 탈출했다고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 같다. 일본 언론도 선장이 얼마나 무책임한 사람인가를 강조하고 있다. 그 행동에는 분노와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굳이 묻고 싶다. 한국 사회는 또 이번에도 선장 혼자에게 욕설을 퍼부어서 빨리 잊고 싶을까.


기억이 난 사고가 하나 더 있다. 내가 일본 오사카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던 2005년 4월 25일 오전 9시 18분, 만원의 통근 전철이 오사카로 가는 길에 커브를 틀지 못하고 아파트에 충돌해, 107명이 숨지고 56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다. 대학 입학식을 마친 지 얼마 안 된 여대생들, 아이 4명의 아버지... 그날도 여느 때처럼 학교나 회사로 떠났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부서진 차량 안에서 피해자를 구출하는데 며칠이 걸렸다. 세월호 사고처럼 초조해하면서 구출 소식을 기다리는 가족을 찾아다닌 날들이 떠오른다.


전철은 23세의 남성 운전기사가 운전했고, 직접 원인은 과속이었다. 운전기사는 과거에도 실수를 잇따라 저질러 재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실수를 연발해 도착 시간 지연을 만회하려고 서둘렀던 것 같았다. 더 이상 실수가 드러나면 운전기사에서 강등될까 봐 두려워했던 것 아닌가 싶다. 운전기사도 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진실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당시 정부 사고조사위원회는 그러한 배경을 캤다.


그러나 "미숙한 운전사 한 명 탓이다" 식의 비난은 언론도 일본 사회도 퍼붓지 않았다. 그렇게 힐책하는 유족들이나 생존자, 철도회사 사원은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큰 소리가 아니었다. 초점은 "왜 운전기사는 그런 상황에 몰렸을까?"로 압축됐다.


그것은 아마, 적지 않은 유가족과 부상자들이 "다시는 우리와 같은 아픔을 누군가가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사고의 교훈을 재발 방지에 살리길 바란다. 아니면 희생이 쓸모 없게 돼 버린다"고 원했고 사회도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운전기사에게 책임을 돌려 결국 국철에서 분할 민영화된 철도회사나 행정 당국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했던 것이다.


유족들은 단합해서 사고를 일으킨 철도회사와 재발 방지책, 피해자 보상 등을 끈질기게 교섭했다. 철도회사는 승무원의 안전 교육에 힘을 쓰게 됐고 재교육 제도가 징벌적 성격이 너무 강해서 운전기사에게 압박을 준다고 비판 받자 더욱 실천적인 커리큘럼으로 바꿨다. 도착 시간을 중시하는 철도 운행 시간표가 운전기사에게 압박이 된다고 지적 받자 도착 시간도 늦췄다. 정부는 사고 현장을 비롯해 전국의 급커브에 속도를 자동으로 낮추는 안전 장치를 설치했고, 원래 국토교통성 기관이었던 사고조사위원회도 보다 독립성이 높은 '운수안전위원회'로 강화됐다.


이번 사고의 선원들은 어떨까. 승객 목숨보다 자기 목숨이 더 중요하다고 도망쳤다면 선원들은 직업에 자부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상 안전을 맡겨야 하는 상황은 구조적으로 건전한가? 그런 사람들에게 승객 안전 훈련이나 책임감 교육을 하는 것을 작은 해운 회사만 책임져야 할까? 선장은 1년 단위의 비정규 직원이었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승객 안전에 책임질 만한 대접인가. 도대체 선장은 자랑스러운 직업으로서 사회에서 인정 받고 있을까?


엉터리 건물을 지어 붕괴시킨 백화점 회장, 지하철에 불을 지른 미친 남자... 사회가 악인을 만들기는 쉽다. 특히 수사기관은 유족의 한을 풀기 위해 악인을 찾아내고, 때로는 억지로 만들어내고 나름대로의 '정의'로 철저히 문책한다. 물론 책임 있는 자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악인을 규탄하는 재판에서 업계의 구조적 착취 구조나, 승무원의 안전 교육을 게을리하는 업계 구조, 행정기관의 책임 등 배경 요인 규명을 기대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책임 추궁과는 일단 상관없기 때문이다. 사법 절차와는 별도로 원인을 조사할 수 있는 독립성 높은 사고 조사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쁜 놈을 교도소로 보내고 사건은 잊힌다. 사회는 사고의 교훈을 일시적으로 공유할 뿐 또 사고가 되풀이된다. 1993년 서해 훼리호 사고를 대부분 사람들이 잊어버렸듯이.


선장, 선원, 해운사만이 아니라 법규와 정부기관의 책임을 검증하려는 보도가 점점 나오기 시작한다. 늙은 현장 책임자 한 명을 악마로 만든 사이, 정말 나쁜 악마는 숨어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선장의 행위를 "살인 같은 행태"라 비판했다는데 선장을 화풀이 틀로만 소비하지 말고 정말 악마와 오래 시간을 걸쳐 싸워야 할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 가족의 생환을 바라는 사람들, 기적적으로 생환한 사람들, 혹은 텔레비전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모든 한국인도 지금은 그런 정신적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잃어버린 수많은 젊은 목숨을 위해 재발 방지에 힘써주길 바란다.


후쿠치야마선 사고가 발생한 지 4월 25일로 9년이 된다. 올해도 위령식이 열리고 현장을 찾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도 매년처럼 사고 현장을 찾아갈 계획이다.


로 허핑턴포스트 일본판 뉴스에디터

http://www.huffingtonpost.kr/taichiro-yoshino-kr-/story_b_5189479.html


Posted by 겟업
2014. 4. 8. 05:21

2014년 새해에도 우리 앞엔 많은 과제가 던져질 것이다.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올해도 정치는 계속 요동칠 게 분명하다. 경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저성장 늪에서 탈출하기 위한 발버둥을 쳐야 한다. 공기업 개혁처럼 갈등과 저항을 넘어가야 할 일도 한둘이 아니다. 나라 밖으로는 '미국·일본 대(對)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치 구도가 더욱 첨예화하면서 우리가 설 자리를 좁혀 올 일이 걱정이다.


北의 안과 밖이 요동치는 중

그러나 이 아침에 우리는 그 모든 도전에 앞서서 북한 땅을 먼저 바라보게 된다. 지난해 말 우리는 북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代) 왕조의 폭력적·야만적 실체를 목격했다. 21세기의 세상에서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 우리 지척에서 벌어졌다. 40년 2인자라는 북한의 실세가 그 파벌과 함께 공개 처형됐다. 기관총으로 신체를 산산조각 내는 방식으로 형을 집행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 사법 체계란 것은 조직폭력배들의 린치와 다를 것이 없었다. 서른 살 독재자 앞에서 '건성건성 박수 친 죄'가 사형 죄목에 포함되는 것도 보았다. 이 공포정치로 북의 모든 사람이 겉으로는, 또 당분간은 김정은 권력 앞에 떨며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누구든 언제든 기관총구 앞에 한낱 제물로 설 수 있다는 불안감은 북의 권력층 내부에도 무거운 연기처럼 깔려나갈 수밖에 없다.

북에 불어닥친 숙청 피바람은 결국 돈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수산물 이권을 놓고 장성택파와 군부가 총격전을 벌인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다고 한다. 지금 북한의 사정은 얼마 되지도 않는 달러를 놓고 파벌끼리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일 정도로 악화돼있다. 우리가 이번 북의 사태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지금 북한 땅에서 중요한 것은 이념도 아니고 명분도 아니며 오로지 달러라는 사실이다. 돈을 놓고 권력층 내부가 친족끼리도 갈라져 총격전을 벌인다는 것은 그 체제의 건강성이 땅바닥까지 떨어졌다는 증거다. 체제의 지속 가능성이 소진됐다는 뜻이며 앞으로 북의 체제가 어떤 기복을 보이고 얼마를 더 존속하든, 큰 관점에서 지금부터는 종말 단계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북의 체제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지금, 북한을 둘러싼 외부 환경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을 동북아에서 미국의 세력 확장을 막을 수 있는 지정학적 자산(資産)으로 여겨왔다. 그런 중국의 눈에도 이제 북한은 갈수록 정치·외교·경제적 부채(負債)에 불과한 것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중국의 거듭된 만류에도 북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중국의 이런 시각 변화는 우리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해지고 있다. 중국은 북한 내 대표적 친중파(親中派)였던 장성택의 처형에 대해 공개적으로는 '북한 내부의 일'이라고 논평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대경실색했을 것이다.


이제 통일은 언제 닥칠지 모를 현실

최근 중국 국책 연구 기관들이 잇따라 그동안 금기(禁忌)에 가까웠던 북한 급변 사태 문제를 공개 거론하고 있다. 중국이 당장 북한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접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의 4차 핵실험이나 공개 처형과 같은 도발, 반(反)문명적 행태가 계속되면 중국의 실망과 분노는 점차 구체적 정책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 변화들은 어느 순간 중·북 관계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미국 조야(朝野)에선 이제 북한 핵 문제는 '김씨 왕조 교체' 외에는 달리 해법이 없다는 의견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대표적 대북 협상파였던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副)장관은 '북 정권 교체(regime change)'가 아니라 '북 정권의 변화(changed regime)'가 필요하다고 했던 사람이지만 장성택 사태 이후엔 "내 생각이 틀렸다"고 고백했다. 현실적으로 북한 정권 교체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북한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점차 근본적 해법을 찾는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북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이런 미국의 시각이 더 강화될 것이다. 2014년은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놓고 본격적 전략 대화를 시작하는 첫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

25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독일 통일은 유럽의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갑작스레 새로운 바람이 불고 정말 우연히 역사의 문이 열렸다. 그때 서독은 여야(與野) 가리지 않고 모두가 힘을 합쳐 그야말로 동분서주했다. 미국의 강력한 후원 아래 소련(蘇聯)이 결국 통일에 동의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 동북아와 북한의 정세를 당시 유럽과 동독의 상황과 곧바로 비교할 수는 없다고 해도 유사한 점이 분명히 있다. 어느 작은 기미가 언제 해일(海溢)로 바뀌어 밀어닥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독일 통일이 준 커다란 교훈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이런 교훈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 1990년대 초 소련이 무너지고 냉전(冷戰) 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세계는 탈(脫)이념으로 나아갔지만 한국 사회는 반대로 북한관·통일관의 이념 대결 양상이 더 심화됐다. 이제는 정치적으로 편이 나누어지는 선(線)과 북한관·통일관이 갈라지는 선이 일치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야당 지지자면 여당 쪽이 말하는 '북한'과 '통일'은 무조건 반대하는 식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위험하고 불행한 일이다.


왜 통일인가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엔 통일 논의를 금기시하는 흐름도 생겨났다. 역대 정권은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공개적 통일 논의를 꺼렸다. 생업에 바쁜 국민에게는 통일은 멀고도 비현실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그러나 북과 북의 주변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들은 '통일은 도둑처럼 찾아올 것'이란 말을 더 이상 흘려들을 수만은 없게 하고 있다. 정치적 선호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 상황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일보 신년 여론조사를 보면 '통일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답변은 20년 새 절반으로 줄고 '분단 상태가 낫다'는 응답이 두 배로 늘었다. 통일 시대의 주역이어야 할 20~30대 젊은 층은 거의 절대다수가 통일에 부정적이다. 국민이 몹시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통일 비용이다. 통일 비용은 적게는 수십조 원, 많게는 수천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통일 비용은 기준과 기간에 따라 천양지차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통일로 얻는 큰 이익은 통일에 드는 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호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북한을 상대하면서 치러야 하는 유무형의 분단 비용은 산정(算定)할 수도 없을 만큼 막대하다. 그 고통과 질곡에서 벗어나는 것 하나를 위해서라도 어떤 비용이든 치를 가치가 있다. 통일 비용은 일시적이지만 통일로 인한 이익은 영원하다. 얼마가 되든 통일 비용은 결국 우리 민족과 우리 땅을 위해 쓸 돈일 뿐이다. 그 비용을 치르고 우리가 얻는 것은 폭정으로부터 '해방'되는 2300만 동포와 온전한 '국토', 수천 년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얻는 세계 주요국으로서의 '번영'과 '기회', 그리고 우리 후손에게 영원히 물려줄 '평화'와 '희망'이다.


해방 100년을 분단된 채 맞을 수 없다

독일 통일 직전 유럽 경제계의 화두 중 하나는 '경제 기적 후 활력을 잃은 독일'이었다. 그러나 20여년 후인 지난해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또 하나의 패권국으로 등장한 막강한 독일'에 관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독일은 통일 후 20년 가까이 통일 비용을 치렀다. 한때 '통일을 후회한다'는 얘기가 들린 적도 있다. 그러나 결국 유럽과 세계를 이끄는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지금 독일인에게 '통일을 되돌릴 수 있으면 되돌리겠느냐'고 물어본다고 할 때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것이 통일과 통일 비용에 관한 진실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100여년 전 열강(列强)의 사냥감 신세였던 그 처참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에겐 충분하지는 않다 해도 만만치 않은 역량이 있다. 우리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 능력을 과소평가해 다가온 기회를 향해 손을 내밀지도 못하는 천추의 한(恨)을 남겨서도 안 된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동북아의 복잡한 정세는 얼마든지 통일의 순풍으로 바뀔 수 있다. 미국의 통일 후원과 중국의 동의는 절대로 꿈속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손이 북한 주민에게 내미는 구원의 손길로 바뀌면 북한 전체 주민이 남(南)에 있는 희망의 빛을 보게 되는 날도 반드시 온다. 결국 모든 것은 우리의 결단과 지혜, 준비에 달렸다.

통일은 바란다고만 이루어질 수도 없고, 바라지 않는다고 막을 수도 없다. 우리가 이 길을 걸어가다 역사의 어느 모퉁이를 돌았을 때 예기치 않게 통일과 마주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먹구름 사이로 해가 비치듯 잠시 왔다가 사라져버릴 그 기회를 잡아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세대 모두의 역사적 의무다. 바로 지금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한다.

앞으로 31년 뒤면 일제(日帝)로부터 해방된 지 100년이 된다. 독일에 열렸던 역사의 문이 우리에게 언제 열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해방 100년을 분단된 채로 맞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비원(悲願)이다. 우리는 지금이 역사적 전환기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우리의 사고(思考)부터 한반도의 반쪽을 벗어나 한반도 전체를 시야(視野)에 두는 것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올해 우리 모두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서 더 멀리 더 크게 보고 움직이겠다는 각오를 다졌으면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31/2013123103675.html



Posted by 겟업
2014. 4. 8. 03:41

잊을 만하면 매스컴에 등장하는 게 매 맞는 구급대원 이야기다. 응급 환자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구급대원이 출동했는데 환자 본인이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한테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매 맞는 의사나 희롱당하는 간호사나 욕 듣는 콜센터 상담원 이야기도 있다. 상식적으로는 왜 자기를 도와주려는 사람을 때리고 욕하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며 피해자도 있다.

우리 모두는 예비 민원인이다. 언제든지 누구라도 구급차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으며 콜센터에 전화해 문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서는 우리 모두가 당사자다. 생각해 보면 매를 맞거나 욕을 듣는 사례의 공통점은 모두 사람이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면 갈등이 생기기 쉽다. 아무런 갈등이 생기지 않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갈등이 생기고 가장 친한 친구끼리도 갈등이 생기는데 하물며 생면부지 구급대원과는 '일러 무엇하리오'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서비스 경제 사회로 진입하면서 이런 갈등 구조를 해결하지 못하면 서비스 경제의 선진화는 요원해진다. 어쩌다 일어나는 작은 문제라고 방치하면 서비스 경제 전체에 연쇄적으로 나쁜 효과를 줄 수도 있다. 서비스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과학이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서비스는 주관적이며 감성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과 감성을 모두 만족하면서 수준 높은 서비스를 하려면 그 방법은 서비스의 가시화에서 찾아야 한다. 데이터의 과정과 결과에 관한 객관적 데이터를 가시화하고 이를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감성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서비스 과정을 가시화하려면 활동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거나 대화를 녹음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구급차 내외의 상황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거나 콜센터 상담원과 나눈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폭력 행위가 발생한 경우에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동영상이나 녹음 파일이 있는지 여부다. 이를 보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한다.

그러나 서비스 과정의 가시화만으로는 소극적 대처에 머문다. 동영상을 보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행위가 서비스 품질을 올리는 것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서비스 과정을 가시화하는 것이 구급대원에게 방어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민원인이 원하는 서비스 품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서비스 과정만 가시화한다고 해서 구급대원과 민원인 사이의 갈등이나 폭력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서비스의 갈등 구조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고 품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결과의 가시화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 구급대원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면 환자는 그 후에 어떤 과정을 겪고 어떻게 됐는지 결과를 가시화한다. 서비스 과정에서 일어났던 장애 요인도 함께 공개한다. 만약 태워 가는 과정에서 도로가 막히고 일반 차가 길을 양보하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거나 환자를 데려갈 적절한 병원이 없어 온 도시를 빙글빙글 돌았다면 이 역시 데이터를 가시화한다. 서비스 과정과 결과를 함께 가시화한 것을 보면서 갈등 구조의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객관적이며 가시화한 데이터를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감성적으로 느끼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 민원인도 참여하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자연스럽게 신뢰를 얻게 된다. 신뢰받는 기관에서 품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민원인은 안심하고 서비스를 요청한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가 그리는 서비스 경제 사회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서비스는 자연스러워야 한다.



윤태성 KAIST 기술경영학과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2/20131222024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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