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새해에도 우리 앞엔 많은 과제가 던져질 것이다.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올해도 정치는 계속 요동칠 게 분명하다. 경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저성장 늪에서 탈출하기 위한 발버둥을 쳐야 한다. 공기업 개혁처럼 갈등과 저항을 넘어가야 할 일도 한둘이 아니다. 나라 밖으로는 '미국·일본 대(對)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치 구도가 더욱 첨예화하면서 우리가 설 자리를 좁혀 올 일이 걱정이다.
北의 안과 밖이 요동치는 중
그러나 이 아침에 우리는 그 모든 도전에 앞서서 북한 땅을 먼저 바라보게 된다. 지난해 말 우리는 북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代) 왕조의 폭력적·야만적 실체를 목격했다. 21세기의 세상에서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 우리 지척에서 벌어졌다. 40년 2인자라는 북한의 실세가 그 파벌과 함께 공개 처형됐다. 기관총으로 신체를 산산조각 내는 방식으로 형을 집행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 사법 체계란 것은 조직폭력배들의 린치와 다를 것이 없었다. 서른 살 독재자 앞에서 '건성건성 박수 친 죄'가 사형 죄목에 포함되는 것도 보았다. 이 공포정치로 북의 모든 사람이 겉으로는, 또 당분간은 김정은 권력 앞에 떨며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누구든 언제든 기관총구 앞에 한낱 제물로 설 수 있다는 불안감은 북의 권력층 내부에도 무거운 연기처럼 깔려나갈 수밖에 없다.
북에 불어닥친 숙청 피바람은 결국 돈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수산물 이권을 놓고 장성택파와 군부가 총격전을 벌인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다고 한다. 지금 북한의 사정은 얼마 되지도 않는 달러를 놓고 파벌끼리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일 정도로 악화돼있다. 우리가 이번 북의 사태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지금 북한 땅에서 중요한 것은 이념도 아니고 명분도 아니며 오로지 달러라는 사실이다. 돈을 놓고 권력층 내부가 친족끼리도 갈라져 총격전을 벌인다는 것은 그 체제의 건강성이 땅바닥까지 떨어졌다는 증거다. 체제의 지속 가능성이 소진됐다는 뜻이며 앞으로 북의 체제가 어떤 기복을 보이고 얼마를 더 존속하든, 큰 관점에서 지금부터는 종말 단계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북의 체제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지금, 북한을 둘러싼 외부 환경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을 동북아에서 미국의 세력 확장을 막을 수 있는 지정학적 자산(資産)으로 여겨왔다. 그런 중국의 눈에도 이제 북한은 갈수록 정치·외교·경제적 부채(負債)에 불과한 것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중국의 거듭된 만류에도 북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중국의 이런 시각 변화는 우리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해지고 있다. 중국은 북한 내 대표적 친중파(親中派)였던 장성택의 처형에 대해 공개적으로는 '북한 내부의 일'이라고 논평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대경실색했을 것이다.
이제 통일은 언제 닥칠지 모를 현실
최근 중국 국책 연구 기관들이 잇따라 그동안 금기(禁忌)에 가까웠던 북한 급변 사태 문제를 공개 거론하고 있다. 중국이 당장 북한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접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의 4차 핵실험이나 공개 처형과 같은 도발, 반(反)문명적 행태가 계속되면 중국의 실망과 분노는 점차 구체적 정책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 변화들은 어느 순간 중·북 관계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미국 조야(朝野)에선 이제 북한 핵 문제는 '김씨 왕조 교체' 외에는 달리 해법이 없다는 의견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대표적 대북 협상파였던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副)장관은 '북 정권 교체(regime change)'가 아니라 '북 정권의 변화(changed regime)'가 필요하다고 했던 사람이지만 장성택 사태 이후엔 "내 생각이 틀렸다"고 고백했다. 현실적으로 북한 정권 교체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북한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점차 근본적 해법을 찾는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북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이런 미국의 시각이 더 강화될 것이다. 2014년은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놓고 본격적 전략 대화를 시작하는 첫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
25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독일 통일은 유럽의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갑작스레 새로운 바람이 불고 정말 우연히 역사의 문이 열렸다. 그때 서독은 여야(與野) 가리지 않고 모두가 힘을 합쳐 그야말로 동분서주했다. 미국의 강력한 후원 아래 소련(蘇聯)이 결국 통일에 동의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 동북아와 북한의 정세를 당시 유럽과 동독의 상황과 곧바로 비교할 수는 없다고 해도 유사한 점이 분명히 있다. 어느 작은 기미가 언제 해일(海溢)로 바뀌어 밀어닥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독일 통일이 준 커다란 교훈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이런 교훈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 1990년대 초 소련이 무너지고 냉전(冷戰) 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세계는 탈(脫)이념으로 나아갔지만 한국 사회는 반대로 북한관·통일관의 이념 대결 양상이 더 심화됐다. 이제는 정치적으로 편이 나누어지는 선(線)과 북한관·통일관이 갈라지는 선이 일치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야당 지지자면 여당 쪽이 말하는 '북한'과 '통일'은 무조건 반대하는 식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위험하고 불행한 일이다.
왜 통일인가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엔 통일 논의를 금기시하는 흐름도 생겨났다. 역대 정권은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공개적 통일 논의를 꺼렸다. 생업에 바쁜 국민에게는 통일은 멀고도 비현실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그러나 북과 북의 주변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들은 '통일은 도둑처럼 찾아올 것'이란 말을 더 이상 흘려들을 수만은 없게 하고 있다. 정치적 선호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 상황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일보 신년 여론조사를 보면 '통일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답변은 20년 새 절반으로 줄고 '분단 상태가 낫다'는 응답이 두 배로 늘었다. 통일 시대의 주역이어야 할 20~30대 젊은 층은 거의 절대다수가 통일에 부정적이다. 국민이 몹시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통일 비용이다. 통일 비용은 적게는 수십조 원, 많게는 수천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통일 비용은 기준과 기간에 따라 천양지차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통일로 얻는 큰 이익은 통일에 드는 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호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북한을 상대하면서 치러야 하는 유무형의 분단 비용은 산정(算定)할 수도 없을 만큼 막대하다. 그 고통과 질곡에서 벗어나는 것 하나를 위해서라도 어떤 비용이든 치를 가치가 있다. 통일 비용은 일시적이지만 통일로 인한 이익은 영원하다. 얼마가 되든 통일 비용은 결국 우리 민족과 우리 땅을 위해 쓸 돈일 뿐이다. 그 비용을 치르고 우리가 얻는 것은 폭정으로부터 '해방'되는 2300만 동포와 온전한 '국토', 수천 년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얻는 세계 주요국으로서의 '번영'과 '기회', 그리고 우리 후손에게 영원히 물려줄 '평화'와 '희망'이다.
해방 100년을 분단된 채 맞을 수 없다
독일 통일 직전 유럽 경제계의 화두 중 하나는 '경제 기적 후 활력을 잃은 독일'이었다. 그러나 20여년 후인 지난해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또 하나의 패권국으로 등장한 막강한 독일'에 관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독일은 통일 후 20년 가까이 통일 비용을 치렀다. 한때 '통일을 후회한다'는 얘기가 들린 적도 있다. 그러나 결국 유럽과 세계를 이끄는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지금 독일인에게 '통일을 되돌릴 수 있으면 되돌리겠느냐'고 물어본다고 할 때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것이 통일과 통일 비용에 관한 진실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100여년 전 열강(列强)의 사냥감 신세였던 그 처참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에겐 충분하지는 않다 해도 만만치 않은 역량이 있다. 우리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 능력을 과소평가해 다가온 기회를 향해 손을 내밀지도 못하는 천추의 한(恨)을 남겨서도 안 된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동북아의 복잡한 정세는 얼마든지 통일의 순풍으로 바뀔 수 있다. 미국의 통일 후원과 중국의 동의는 절대로 꿈속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손이 북한 주민에게 내미는 구원의 손길로 바뀌면 북한 전체 주민이 남(南)에 있는 희망의 빛을 보게 되는 날도 반드시 온다. 결국 모든 것은 우리의 결단과 지혜, 준비에 달렸다.
통일은 바란다고만 이루어질 수도 없고, 바라지 않는다고 막을 수도 없다. 우리가 이 길을 걸어가다 역사의 어느 모퉁이를 돌았을 때 예기치 않게 통일과 마주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먹구름 사이로 해가 비치듯 잠시 왔다가 사라져버릴 그 기회를 잡아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세대 모두의 역사적 의무다. 바로 지금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한다.
앞으로 31년 뒤면 일제(日帝)로부터 해방된 지 100년이 된다. 독일에 열렸던 역사의 문이 우리에게 언제 열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해방 100년을 분단된 채로 맞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비원(悲願)이다. 우리는 지금이 역사적 전환기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우리의 사고(思考)부터 한반도의 반쪽을 벗어나 한반도 전체를 시야(視野)에 두는 것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올해 우리 모두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서 더 멀리 더 크게 보고 움직이겠다는 각오를 다졌으면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31/20131231036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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