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8. 03:41

잊을 만하면 매스컴에 등장하는 게 매 맞는 구급대원 이야기다. 응급 환자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구급대원이 출동했는데 환자 본인이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한테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매 맞는 의사나 희롱당하는 간호사나 욕 듣는 콜센터 상담원 이야기도 있다. 상식적으로는 왜 자기를 도와주려는 사람을 때리고 욕하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며 피해자도 있다.

우리 모두는 예비 민원인이다. 언제든지 누구라도 구급차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으며 콜센터에 전화해 문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서는 우리 모두가 당사자다. 생각해 보면 매를 맞거나 욕을 듣는 사례의 공통점은 모두 사람이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면 갈등이 생기기 쉽다. 아무런 갈등이 생기지 않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갈등이 생기고 가장 친한 친구끼리도 갈등이 생기는데 하물며 생면부지 구급대원과는 '일러 무엇하리오'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서비스 경제 사회로 진입하면서 이런 갈등 구조를 해결하지 못하면 서비스 경제의 선진화는 요원해진다. 어쩌다 일어나는 작은 문제라고 방치하면 서비스 경제 전체에 연쇄적으로 나쁜 효과를 줄 수도 있다. 서비스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과학이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서비스는 주관적이며 감성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과 감성을 모두 만족하면서 수준 높은 서비스를 하려면 그 방법은 서비스의 가시화에서 찾아야 한다. 데이터의 과정과 결과에 관한 객관적 데이터를 가시화하고 이를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감성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서비스 과정을 가시화하려면 활동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거나 대화를 녹음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구급차 내외의 상황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거나 콜센터 상담원과 나눈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폭력 행위가 발생한 경우에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동영상이나 녹음 파일이 있는지 여부다. 이를 보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한다.

그러나 서비스 과정의 가시화만으로는 소극적 대처에 머문다. 동영상을 보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행위가 서비스 품질을 올리는 것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서비스 과정을 가시화하는 것이 구급대원에게 방어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민원인이 원하는 서비스 품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서비스 과정만 가시화한다고 해서 구급대원과 민원인 사이의 갈등이나 폭력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서비스의 갈등 구조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고 품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결과의 가시화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 구급대원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면 환자는 그 후에 어떤 과정을 겪고 어떻게 됐는지 결과를 가시화한다. 서비스 과정에서 일어났던 장애 요인도 함께 공개한다. 만약 태워 가는 과정에서 도로가 막히고 일반 차가 길을 양보하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거나 환자를 데려갈 적절한 병원이 없어 온 도시를 빙글빙글 돌았다면 이 역시 데이터를 가시화한다. 서비스 과정과 결과를 함께 가시화한 것을 보면서 갈등 구조의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객관적이며 가시화한 데이터를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감성적으로 느끼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 민원인도 참여하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자연스럽게 신뢰를 얻게 된다. 신뢰받는 기관에서 품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민원인은 안심하고 서비스를 요청한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가 그리는 서비스 경제 사회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서비스는 자연스러워야 한다.



윤태성 KAIST 기술경영학과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2/2013122202433.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