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0. 01:15

올여름도 세계의 관광지는 중국 여행객 등쌀에 몸살을 앓았다. 큰 소리로 떠들고 새치기하고 함부로 담배 피우는 등의 무질서·민폐 사례가 곳곳에서 목격됐다. 프랑스에선 중국인들이 루브르 박물관 분수대 물에 발을 씻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랐다. 3000년 된 이집트 신전에 '왔다 간다'고 쓴 중국어 낙서가 발견돼 세계를 경악시키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북한에 간 중국인들 소식이었다. 중국 관광객이 북한 어린이들에게 사탕과 음식을 던져주는 등 오만함이 도를 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실태를 전한 홍콩 신문은 "오리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것 같았다"고 비유했다. 아무리 '어글리 차이니스(Ugly Chinese)'라도 잘사는 나라에선 조심하는 척을 한다. 하지만 자기네보다 못사는 북한에 가선 사람들을 거지 취급하며 모욕하고 있었다. 서글프면서도 소름 끼치게 무서운 얘기였다.

중국인의 해외여행 추태는 아마도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우리에게도 과거 '어글리 코리안(추한 한국인)'으로 악명 높던 시절이 있었으니 크게 할 말은 없다. 유커(遊客·중국 관광객) 유치에 목을 건 우리 입장에선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하다. 와서 돈을 써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이것저것 따질 입장이 아니다.

문제는 관광객의 눈살 찌푸리는 행동 같은 지엽적인 것이 아니다. 중국이 아무리 발전해도 어쩔 수 없는 국가 본능이 있다. '중화(中華) 제국주의'라는 DNA다. 중국 공산당의 국가 경영이 당(唐)·청(淸) 제국의 영광을 추구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의 힘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제국주의 본능은 거세질 것이다. 아마 주변국을 신하처럼 부렸던 '조공(朝貢)의 추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제국주의란 군사력·경제력 같은 하드파워로 남을 굴복시키려는 국가 의지다. 초강대국이 되기도 전에 중국은 이미 세계의 만만한 국가를 상대로 '힘의 외교'를 휘두르고 있다. 엊그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 1위 연어 수출국 노르웨이가 겪는 수난을 전했다. 노르웨이산 연어의 대(對)중국 수출이 3년 새 3분의 1로 급감했다는 것이다.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에게 노벨 평화상을 준 데 대한 중국의 보복이었다.

우리 역시 중국의 완력에 휘둘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년 전엔 중국산 마늘을 건드렸다가 무지막지한 무역 보복을 받고 백기 투항한 일이 있었다.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은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옌볜(延邊)의 윤동주 생가에 윤동주를 '중국 조선족 시인'으로 표기해 놓았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요즘 한·중 관계가 좋아지자 일부에선 중국 환상론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착각도 보통이 아니다. 수천년 한·중 관계사(史)에서 중국이 '선의(善意)'면서 '동반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중국이 그나마 우리를 함부로 못 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은 우리가 더 잘살고, 문화 수준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배울 것이 있고 얻을 게 있으니까 패권 본능을 자제하는 것뿐인데, 이런 상황이 반전되는 것도 시간문제 같아 보인다.

우리는 중국 하면 싸구려 이미지를 떠올리고, 영원히 우리보다 못살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수천년 역사 속에서 우리가 중국보다 선진국이었던 것은 지난 30~40년에 불과하다. 나머지 기간 대부분을 우리는 중화 패권주의에 시달리거나 순응하면서 살았다.

1970년대 이후 우리는 근대화의 기적을 이뤄내 처음으로 중국에 앞설 수 있었다. 우리가 노력한 결과지만 운도 따랐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대혁명(1966~76)은 중국에 큰 불행이었지만, 우리로선 예기치 않게 찾아온 행운이었다. 마오가 이념의 광풍을 일으킨 덕에 우리는 중국보다 10여년 먼저 경제개발의 스타트를 끊었다. 만약 중국이 일찍 정신 차렸다면 우리는 지금쯤 중국의 하도급 기지 신세가 됐을 것이다. 중국의 뒤늦은 출발 덕분에 우리는 중국에 큰소리도 치는 짧은 호시절을 맛볼 수 있었다.

이젠 '마오쩌둥의 축복'도 약발이 다해가고 있다. 중국이 한국 턱밑까지 따라왔다는 뉴스가 요 며칠 새에도 쏟아졌다. 3년 전 2.5년이었던 중국과의 산업기술 격차가 이젠 1.9년으로 좁혀졌다(미래창조과학부). 포브스가 선정한 100대 혁신 기업에 한국 기업은 한 곳도 들지 못했다는 발표도 있었다. 중국은 5곳이었다.

거대 중국 옆에서 자존심 구기지 않고 살아갈 방법은 끊임없이 중국보다 앞서 달리는 길뿐이다. 기술 수준, 혁신 능력, 문화 창조력 같은 총체적 국가 경쟁력에서 우위를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 어느 누구도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국가 전략을 말하지 않는다. 중국 관광객들이 북한 주민에게 음식을 던져준다는 얘기에 소름 돋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박정훈 부국장·기획에디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22/2013082204386.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