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6·25 정전을 기념하는 '전승절' 열병식이 열렸다. 군인들은 무릎을 굽히지 않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독특한 걸음걸이로 행진했다. '교차 차기'다. 다리를 곧게 편 채 지상 60㎝까지 올렸다가 내려 땅바닥을 힘껏 때리면서 그 반동으로 다른 발을 들어 올리는 방식이다. 무더위 속에 하루 종일 도로 바닥을 차다 보면 내장이 뒤틀려 장파열이 일어나고 기절하는 군인도 생긴다. 북한군 출신 탈북자는 "멀쩡한 사람도 병신 돼 나오는 게 열병식"이라고 했다.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아리랑축전은 북한 청소년의 피눈물로 완성된다. 초·중·고생 2만명이 여섯 달 동안 학교도 안 가고 정교한 카드 섹션을 연습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똑같은 동작을 수천, 수만 번 반복한다. 한 명이라도 틀리면 가혹한 체벌을 당한다. 기계체조를 하는 아이들은 쌓던 인간 탑이 무너져 다치기 일쑤다. 공연 날엔 화장실에 갈 수 없어 하루 전부터 물을 못 마시게 한다. 공연 중에 소변이 마려우면 그 자리에서 봐야 한다. 그래서 카드 섹션장엔 지린내가 진동한다.
▶아리랑 축전에는 평양과 주변 지역 초·중·고생 가운데 돈 없고 '빽' 없는 아이들이 동원된다. 당 간부와 특권층 부모는 질병진단서나 뇌물로 아이를 빼돌린다. 국제인권단체는 아리랑축전을 대표적 아동 학대 사례로 꼽지만 북한은 체제 선전과 외화 벌이 수단으로 삼는다. 2005년에는 우리 방문단 7500명이 1100달러(1박 2일)~1500달러(2박 3일)씩 들여 공연을 관람했다. 2007년엔 노무현 대통령도 지켜봤다.
▶북한 주민들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대규모 행사에 동원된다. 작년 12월만 해도 김정일 사망 1주기와 애도 행사, 김정숙 탄생 95주년 공연,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 기념, 미사일 발사 축하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올 2월 말 핵실험 성공 축하 행사에는 초·중·고생이 동원돼 거리 행진을 벌였다. 대학생들은 양복과 한복을 차려입고 저녁마다 광장 무도회에 나가야 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군중 동원의 뒷모습들이 전승절을 맞아 평양에 들어간 서방 취재진 카메라에 잡혔다. 그제 저녁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전승절 경축 야회(夜會)에 동원된 관람객들이 하품을 하거나 조는 사진이 외신을 타고 바깥세상에 공개됐다. 전승절 열병식에서 실신한 병사가 업혀 나오는 사진도 나왔다. 북한 형법은 '상급으로부터 받은 직무를 태만히 할 경우 2년 이하 노동단련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사진에 찍힌 주민과 군인이 무사할지 걱정스럽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30/20130730037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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