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9. 23:37

낯선 외국인이 중국인에게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뭐냐고 물어보면 "탁구"라고 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재차 물어보면 "실은 축구"라며 말꼬리를 흐리곤 한다. "축구를 정말 좋아하지만, 중국 대표팀의 성적을 떠올리면 창피해서 (중국이 제일 잘하는) 탁구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자신을 '치우미'(球迷·열성적 축구팬)라고 말한다. 지난달 초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는 2002년 중국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던 밀루티노비치 전 감독이 1986년 월드컵 때 멕시코 대표팀을 지휘했던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시 주석의 슬로건인 '중국의 꿈(中國夢)'에는 월드컵 우승의 꿈이 포함돼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중국 축구는 '시진핑호' 출범 직후 참담한 패배를 맛봤다. 지난달 15일 만만하게 봤던 태국에 1대5로 무릎을 꿇었다. 당시 태국은 23세 이하 대표팀이었다. 이후 스페인 출신인 카마초(58) 중국팀 감독이 전격 경질된 것은 중국 최고지도부의 '격노'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카마초는 2002년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 사령탑으로 한국과 맞붙었던 노련한 감독이지만 중국 축구의 체질을 바꾸지는 못했다.

중국인은 스스로 축구를 못하는 이유를 다양하게 분석한다. 자신들 입으로 "도박을 좋아해서 승부조작이 빈번한데 실력이 늘겠느냐", "중국인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팀워크가 중요한 축구는 궁합이 안 맞는다", "고액의 몸값을 받는 대표 선수들이 더는 노력을 안 한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스는 2010년 "중국 공산당이 '풀뿌리 운동'인 축구의 저변 확대를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지역의 축구 클럽이 활성화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이는 공산당의 중앙집권적 통제에 부담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중국에선 20~30명만 모여도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된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 대표팀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와 취재진의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강조했던 말이 있다. "창조적(creative) 플레이"였다. 제발 옛날 감독이나 선배들이 주입식으로 가르쳤던 플레이의 틀을 깨고, 선수 자신이 경기장에서 생각해낸 플레이를 맘껏 펼치라는 얘기였다. 히딩크 감독이 유럽으로 떠나면서 박지성과 이영표를 데려간 것도 이들의 '창조적 플레이'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요즘 '창조'란 단어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화두로 떠올랐다. 중국 새 지도부는 성장률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경제 구조 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다. 이 과정에서 '창조'와 '혁신'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값싼 노동력으로 선진 제품을 베껴서 수출하는 성장 방식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중국의 정치·경제·사회·축구 전반이 여전히 공산당 통제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창조와 혁신이 꽃을 피울 공간이 좁을 수밖에 없다. 중국 경제나 축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려면 중앙의 통제 고삐가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는 건 중국 지도부도 안다. 그러나 '혼란'에 대한 역사적 트라우마 때문에 그 고삐를 쉽게 늦추지 못하는 게 중국의 딜레마다.



안용현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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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