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한국 문화계에는 일본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선두엔 2명의 무라카미가 우뚝 서 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와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다. 『1Q84』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4주째 베스트셀러 1위다. 만화를 팝아트로 구현한 세계적 작가 다카시. 그의 전시회를 연 미술관엔 평소보다 3배의 관객이 몰렸다. 일본의 공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신병적 환각을 그려 유명해진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전시회도 대성황이다. 이쯤 되면 문화계 한복판에서 ‘일류(日流)’가 소리 없이, 도도하게 흐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러나 희한하게도 일본 자체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일본어능력시험(JLPT)’이라는 게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일본판 토플이다. 한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수험생이 2년 전보다 30%나 줄었다. 중국이 좀 뜬다고 일본은 싹 무시하는 얄팍한 세태 같아 서글프기도 하다. 일본 소설, 일본 미술 한두 번 봤다고 일본을 다 안다고 착각해서일 수도 있다.
이런 일본에 대한 무시·무지 분위기는 오피니언 리더들에게도 퍼져 나가는 듯하다. 요즘 한·일 간 막후 채널이 끊겨 문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중국의 부상으로 동북아 외교 중심이 동해에서 서해로 이동한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고 요즘처럼 한·일 간 먹통은 곤란하다.
적잖은 사학자는 현 상황이 임진왜란 후와 비슷하다고 한다. 전란 후 일본에서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는 조선과의 국교 재개를 원했다. 하나 난리 통에 2만~3만 명의 조선인이 일본에 끌려갔다. 국토는 황폐해지고 수십만 명의 양민이 학살됐다. 조선왕조가 더 못 참을 일은 왜군이 왕릉을 파헤쳤다는 거였다. 그러나 “일본과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던 광해군은 국교 재개의 용단을 내린다. 북쪽에서 발흥하는 여진족을 견제하기 위해선 화해가 필요했던 것이다. ‘대국굴기(大國<5D1B>起)’를 외치며 급속히 중국이 부상하는 현 정세와 여러모로 닮았다.
요즘 한국은 중견국(middle power) 소리를 듣는다. 그럼에도 국력을 자원이나 땅 크기로 재는 옛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여전히 소국이다. 미·중·일·러 4대 강국에 싸여 옴짝달싹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사고의 틀을 달리해 보라. 보이는 게 변한다. 요즘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주목받는 ‘네트워크 이론(network theory)’은 발상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이 이론은 ‘힘이란 다른 행위자들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정보나 교류의 노루목에서 위치만 잘 잡으면 힘깨나 쓸 수 있다는 논리다. 심지어 ‘위치 권력(positional power)’이란 개념도 나온다. 더욱 눈길이 가는 건 비우호적 국가 간에서 중개자(broker) 역할만 톡톡히 해도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대목이다. 작금의 동북아에서 한국이 평화 중개자(peace maker) 노릇을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북·미 그리고 중·일 관계다.
이런 판에 한국이 일본을 왕따시키고 블랙홀 같은 중국의 품 안으로 뛰어드는 건 좋을 게 없다. 한쪽에 기울어 어찌 중견국에 어울리는 중개자가 되겠나.
지난번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과 중국의 지극한 환대로 한·중 관계에는 훈훈한 바람이 불고 있다. 반면 한·일 간에는 더없이 싸늘한 냉기가 돈다. 매년 2~3차례 열리던 한·일 정상회담은 박 대통령 취임 후 5개월이 지났는데도 영 무소식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일본 총리와 7번 만났었다. 물론 양국 관계 악화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우경화 바람에 기인한 바 크다. 21일 참의원 선거 대승 이후 아베 정권은 우경화 페달을 더 힘차게 밟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일본을 싹 무시하는 전략이 좋은가. 아니면 정상회담이나 다른 묵직한 채널을 통해 강력한 반대의 뜻을 전하는 게 효과적인지는 따져 봐야 한다. 친구는 고를 수 있지만 이웃은 택할 수 없는 법이다.
남정호 중앙SUNDAY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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