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를 방문했다. EU 이사회 사무총장 등은 2011년 출범한 한·중·일 협력사무국(TCS)에 관심을 보이며 "동북아 지역공동체 구축 노력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EU의 경험을 들려주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귀국길엔 파리 근교의 장 모네 생가(生家)도 찾았다. 유럽통합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 모네는 1·2차 세계대전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 물자인 석탄과 철강을 유럽 국가들이 공동 관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랜 적대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 베네룩스 국가들이 이에 공감하여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출범시켰다. EU의 출발점이었다. 그 후 유럽은 놀랄 만한 통합을 이루었고, 27개 회원국 5억여명의 '유럽합중국'은 전쟁 위협이 사라진 평화의 대륙이 됐다.
'동북아의 EU'는 불가능할까? 동북아에도 협력과 통합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중·일 3국은 2008년부터 연례 정상회의를 시작했고, 환경 등 18개 분야에서 장관급회의도 정례화했다. 3국 투자보장협정이 체결됐고 FTA 협상도 시작됐다. 2년 전 출범한 3국 협력사무국은 안중근 의사가 100여 년 전 '동양평화론'에서 주장했던 한·중·일 간 상설기구다. 시작은 늦었지만 발 빠른 움직임이다.
동북아는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밀집된 지역이다. 반세기 전 유럽의 '석탄철강공동체'가 '경제공동체(EEC)'를 거쳐 EU로 발전했듯이, 한·중·일도 '동북아원자력안전공동체(NNSC)'로 시작해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도 포함돼야 한다. 최근 베이징에서 만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한·중·일 3국 협력은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6월 말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시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에 관해서도 중국과 협의가 있을 것이다.
평화와 번영은 지역 협력과 통합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 EU가 주는 교훈이다. 이 과정에서 유럽이 '역사 화해'의 절차를 거쳤듯이, 동북아도 과거사를 털어내야 한다. 미래를 위해 과거 반성과 사죄가 선결 조건이란 점을 일본도 자각해야 한다. 유럽의 전쟁터였던 브뤼셀이 통합 유럽의 수도로 재탄생했듯이, 한 세기 전 강대국의 각축장이었던 서울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허브로 우뚝 서길 기대한다. 그 역할을 한국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때이다.
신봉길 한·중·일협력사무국(TCS) 사무총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12/20130612037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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