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청년실업이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젊은이들에게 ‘힐링’을 모티브로 한 강연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나 역시 아주 가끔 그런 강연장에서 젊은이들을 만나곤 하는데, 그들의 절절한 고민을 들으면 나 역시 한동안 그 고민을 어깨에 짊어지게 된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서로 다를 때 어떤 걸 선택해야 하나요?’ ‘친구들은 안정적인 삶을 위해 취직 준비를 하는데,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그런 게 아닌데 어떡하면 좋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건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지만 실패가 두려워요. 용기를 주세요.’ 자주 받는 질문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젊은이 여러분,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이 마흔이 넘은 저도 정답은 모르겠어요!
청춘콘서트의 인기 강사이자 젊은이들의 롤모델들은 ‘남이 가지 않은 길에 과감하게 도전하세요!’라고 말한다. 어린 나이에 용기 있게 창업해 성공한 기업가,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자유인, 관습을 깨고 독창적인 전략으로 일가를 이룬 전문가들은 그들 스스로 그런 삶을 살아왔기에 실패하더라도 야망을 가지라고 말해줄 것 같다. 잘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말할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하지만, 잘하는 게 있다는 걸 고마워하는 것도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뭔가 내가 잘하는 게 있다는 것, 어딘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는 젊었을 땐 잘 모른다. 잘하는 걸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좋아하는 걸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더 쉬울 때도 있다. 우린 종종 좋아하는 것에 꽂혀 잘하는 것을 좋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건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만큼이나 낭만적이지만,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건 생각보다 두렵고 무서운 결정이다. 그 용기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기보다는, 현명한 결정을 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고 싶다.
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낭만과 불안에 대해 생각해 볼 때면,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시대로 시간여행을 가곤 한다. 유럽인들에게 남미에 대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던 1799년 무렵으로 말이다.
그는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스페인 항구에서 용기 있게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나는 배에 올라탔다. 그 덕분에 그는 『신대륙의 적도지역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30권의 여행기를 출간했고, 1600가지 식물을 채집했으며 그 가운데 600종은 새로운 종의 발견이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그는 남아메리카의 지도를 새로 그렸으며, 지구의 자기장이 극지방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 세기가 약해진다는 사실도 처음 발견했다. 기압과 고도가 식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도 처음 시도했다.
이처럼 탐험은 위험하지만 그 열매는 풍성하다. 단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말이다. 남아메리카로 떠난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돌아오지 못했다. 역사는 탐험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그의 성취에 찬사를 보내지만, 바다에서 난파한 수많은 실패자들을 동정하진 않는다.
내가 만약 200년 전 훔볼트의 시대로 돌아가 남아메리카로 떠나는 배 앞에 서 있었다면 나는 과연 그 배에 올라탔을까? 결정의 순간, 내가 답해야 할 질문은 ‘내게 있어 인생은 탐험인가, 마라톤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인생을 산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게다. 목적지를 향해 정해진 삶의 코스를 완주하는 게 목표인 마라토너라면 페이스 조절만 잘 하면 안전한 삶의 궤적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이 주는 아슬아슬한 즐거움과 열매의 풍성함을 만끽하고 싶다면, 위험을 감수하는 탐험가의 기질이 필요하다. 정답은 없다. 내 삶의 철학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질주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다.
탐험가와 마라토너, 산책자들이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서 빨리 우리 사회가 ‘실패에 대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탐험가가 한두 번 실패하더라도 다시 떠날 용기를 잃지 않도록, 마라토너가 옆 사람과의 경쟁에 지더라도 제 페이스를 잃지 않도록, 산책자가 느리게 걷기 안에서 사색의 즐거움에 몰두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은 보장되어야 한다. 인생에는 명확히 답이 없지만, 정부에는 명확히 할 일이 있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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