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9. 23:31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청년실업이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젊은이들에게 ‘힐링’을 모티브로 한 강연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나 역시 아주 가끔 그런 강연장에서 젊은이들을 만나곤 하는데, 그들의 절절한 고민을 들으면 나 역시 한동안 그 고민을 어깨에 짊어지게 된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서로 다를 때 어떤 걸 선택해야 하나요?’ ‘친구들은 안정적인 삶을 위해 취직 준비를 하는데,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그런 게 아닌데 어떡하면 좋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건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지만 실패가 두려워요. 용기를 주세요.’ 자주 받는 질문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젊은이 여러분,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이 마흔이 넘은 저도 정답은 모르겠어요!

청춘콘서트의 인기 강사이자 젊은이들의 롤모델들은 ‘남이 가지 않은 길에 과감하게 도전하세요!’라고 말한다. 어린 나이에 용기 있게 창업해 성공한 기업가,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자유인, 관습을 깨고 독창적인 전략으로 일가를 이룬 전문가들은 그들 스스로 그런 삶을 살아왔기에 실패하더라도 야망을 가지라고 말해줄 것 같다. 잘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말할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하지만, 잘하는 게 있다는 걸 고마워하는 것도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뭔가 내가 잘하는 게 있다는 것, 어딘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는 젊었을 땐 잘 모른다. 잘하는 걸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좋아하는 걸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더 쉬울 때도 있다. 우린 종종 좋아하는 것에 꽂혀 잘하는 것을 좋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건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만큼이나 낭만적이지만,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건 생각보다 두렵고 무서운 결정이다. 그 용기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기보다는, 현명한 결정을 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고 싶다.


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낭만과 불안에 대해 생각해 볼 때면,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시대로 시간여행을 가곤 한다. 유럽인들에게 남미에 대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던 1799년 무렵으로 말이다.


그는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스페인 항구에서 용기 있게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나는 배에 올라탔다. 그 덕분에 그는 『신대륙의 적도지역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30권의 여행기를 출간했고, 1600가지 식물을 채집했으며 그 가운데 600종은 새로운 종의 발견이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그는 남아메리카의 지도를 새로 그렸으며, 지구의 자기장이 극지방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 세기가 약해진다는 사실도 처음 발견했다. 기압과 고도가 식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도 처음 시도했다.

이처럼 탐험은 위험하지만 그 열매는 풍성하다. 단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말이다. 남아메리카로 떠난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돌아오지 못했다. 역사는 탐험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그의 성취에 찬사를 보내지만, 바다에서 난파한 수많은 실패자들을 동정하진 않는다.

내가 만약 200년 전 훔볼트의 시대로 돌아가 남아메리카로 떠나는 배 앞에 서 있었다면 나는 과연 그 배에 올라탔을까? 결정의 순간, 내가 답해야 할 질문은 ‘내게 있어 인생은 탐험인가, 마라톤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인생을 산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게다. 목적지를 향해 정해진 삶의 코스를 완주하는 게 목표인 마라토너라면 페이스 조절만 잘 하면 안전한 삶의 궤적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이 주는 아슬아슬한 즐거움과 열매의 풍성함을 만끽하고 싶다면, 위험을 감수하는 탐험가의 기질이 필요하다. 정답은 없다. 내 삶의 철학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질주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다.

탐험가와 마라토너, 산책자들이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서 빨리 우리 사회가 ‘실패에 대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탐험가가 한두 번 실패하더라도 다시 떠날 용기를 잃지 않도록, 마라토너가 옆 사람과의 경쟁에 지더라도 제 페이스를 잃지 않도록, 산책자가 느리게 걷기 안에서 사색의 즐거움에 몰두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은 보장되어야 한다. 인생에는 명확히 답이 없지만, 정부에는 명확히 할 일이 있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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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29

유명 산악인들의 등반 장면을 통해 익숙해진 네팔은 보통 사람에게 경외심을 갖게 만드는 신비의 땅이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해발 8000m가 넘는 고산 8개를 보유한 가장 높은 나라. 수도 카트만두도 해발 1300m 높이에 있다. TV 카메라가 보여주는 네팔은 청정한 자연 풍광과 걱정이라곤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나라다. 

직접 본 카트만두는 달랐다. 차선도 신호등도 없는 좁은 차도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하루 종일 북새통이다. 매연이 심해 대부분의 보행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시내의 강줄기는 온갖 쓰레기로 뒤덮여 악취를 풍긴다. 

네팔의 정치상황은 더 심각하다. 2008년 국왕제를 폐지하고 민주공화국을 선포했지만 극심한 정쟁으로 헌법조차 제정하지 못한 채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당과 노조는 걸핏하면 터무니없는 요구를 내걸고 시위와 파업을 주도해 국가를 파탄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카트만두를 떠나던 날 호텔에서 본 영자신문 1면 기사는 절망적인 네팔의 오늘을 고발하는 것 같았다. 최대 정당인 UCPN의 간부가 16세 소녀를 인도에 인신매매한 혐의로 구속되자 UCPN 당원들이 석방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는 기사였다. 김일두 주네팔 한국대사는 “외국대사들도 누가 지도자가 될지, 어느 정당이 집권당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네팔 정부와 구체적인 정책 협의와 지원 논의를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네팔을 떠나 방글라데시를 거쳐 캄보디아를 찾았다. 세 나라 모두 가난하다. 남한보다 조금 넓은 14만 km²의 국토를 가진 방글라데시에는 무려 1억6000만 명이 복작대며 산다. 캄보디아 상황은 한 해 30만 명을 넘어선 한국 관광객이 잘 알고 있는 대로다.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 주는 나라로 발전한 한국이 세 나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2조411억 원이나 된다. 이 중 무상원조를 담당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캄보디아에 194억 원, 방글라데시에 111억 원을 지원한다. 고단하게 사는 세 나라 국민을 한꺼번에 보고 나니 우리의 무상원조가 제대로 쓰여 그들이 허리를 펴고 사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귀국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 우리가 주는 원조의 상당부분이 세 나라 고위층의 호주머니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12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순위에서 캄보디아는 100점 만점에 22점을 받아 176개국 가운데 157위를 기록했다. 방글라데시는 26점으로 144위, 네팔은 27점으로 139위였다.

마지막으로 앙코르와트를 둘러보고 귀국하는 공항에서 캄보디아 부패의 실상을 경험했다. 여권 검사를 하는 앳된 관리가 서툰 영어로 “팁을 달라”고 떼를 썼다. 거대한 석조 사원인 앙코르와트는 9∼15세기 크메르제국이 동남아 최대의 강국이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캄보디아 조상들이 몰락한 요즘 후손들을 보며 눈물을 흘릴 것만 같다.

우리가 주는 재정적 지원이 개도국의 외형적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절실한 것은 그 나라 국민의 의식 변화다.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부패의 악순환을 깨겠다는 국가의 각성도 있어야 한다. 네팔 방글라데시 캄보디아에 주재하는 우리 외교관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야말로 분투하고 있다. KOICA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조금 더 힘을 내 주재국 국민에게 정신적 자극을 주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 박근혜정부의 원조정책에도 창조경제 개념을 적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방형남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30720/56558432/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29

연일 계속되는 장맛비에도 비 피해가 별로 없을 만큼 우리의 강과 하천은 방재시설을 잘 갖추고 있는 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 가까이에 살던 사람들은 안방에까지 물이 들어차 친척집으로 피난살이를 가야 했다. 김현정 씨(서울시립동부병원 전문의)는 한겨레신문에 1973년 허리춤까지 찬 물을 헤치고 아버지 어깨에 매달려 한강변 집을 빠져나가던 일을 회상하는 글을 썼다. 

한반도의 중북부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북한이 금강산댐 방류계획을 사전에 알렸다. 연평도를 향해 기습적으로 뻥뻥 포를 쏘아대던 북이 사전에 댐 방류를 알린 것은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보나마나 북한에선 엄청난 물난리가 났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신문방송이 “한 세기 만의 물난리”라고 부르는 자연재해가 연례행사처럼 발생한다. 북과 남에 비슷한 수량의 폭우가 쏟아지지만 언제나 피해가 큰 쪽은 북한이다. 남쪽은 장마가 그치고 나면 채소 값이 오르는 정도다. 계단식으로 개간한 논밭이 많은 북한에 큰비가 오면 농작물을 휩쓸고 가버리고 흘러내린 토사가 강바닥을 높인다. 해가 갈수록 홍수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홍수가 났던 해는 식량난이 심각해지고 1990년대 중반의 대기근도 홍수 뒤에 일어났다.

북한 지배계층에겐 물난리와 식량 부족은 일반 주민이 겪는 것만큼 큰 고통이 아니다. 지배세력의 숨통을 죄는 것은 달러 부족이다. 북한 외교관들이 1월 항생제 세픽심을 식자재와 음료수로 속여 수입해 현지 제약업체에 팔려다 적발됐다. 적발된 세픽심은 무게가 700kg으로 12만 달러어치나 된다. 1980년대 말부터 소련과 동유럽권이 몰락하면서 북한은 시혜적인 무역이 막혀 심각한 외화부족을 겪기 시작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외교관의 면책특권을 이용한 담배와 술장사, 마약밀매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범죄적 사업은 북한 정부의 이미지만 손상시키고 큰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 남쪽에서 돈이 들어가기 시작한 2000년 초반부터는 북한의 해외 밀거래가 현저히 줄어들었으나 이번에 파키스탄에서 말썽이 난 것을 보면 외화 사정이 다시 절박해진 모양이다.

북한이 개성공단 정상화에 집착하는 것도 기실 북한 근로자의 임금 명목으로 들어가던 연간 9000만 달러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북한으로선 개성공단이 체제에 대한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달러 수입원이다. 개성공단을 통해 들어가는 달러는 김정일과 김정은의 사금고를 채워줬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근로자는 물론이고 군인과 경비원들에게 북한의 공식매체가 남쪽에 대해 보도하는 것이 전부 거짓임을 실물로 보여준다. 북한에서 유일한 시장경제의 전시장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김일성대에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경력이 있는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북한문제 전문가다. 그는 최근 영문 저서 ‘The Real North Korea’(진짜 북한)에서 “김정일이 개성공단을 허용한 것은 최대의 실수”라고 규정했다. 

개성공단 근로자는 5만3000명이고 그 가족까지 합하면 20만 명에 이른다. 이에 비해 하루에 입산료를 100달러씩 내는 금강산 관광은 고도로 훈련받은 제한된 수십 명의 북한 인력과 접촉하는 데 그쳤다. 북한은 남한 관광객과 접촉하는 북한 주민의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금강산지구에 조선족 인력을 보냈을 정도다. 금강산 관광객을 실은 버스는 펜스가 쳐진 도로를 따라서만 움직여야 하고 주민과의 만남은 완벽하게 차단됐다. 

북이 재발방지 약속을 하더라도 그 약속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재발방지 약속보다 중요한 것이 개성공단의 국제화다. 2009년 키리졸브 군사훈련을 비난하며 북한이 통행을 차단했을 때 개성공단에는 중국인 5명과 호주인 1명이 있었다. 오후 3시경 북측에 이를 알리자 그 느려터진 북한체제에서 오후 5시 반경 통행을 허용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개성공단에 세계적 자본과 기술 인력이 들어와 경쟁력을 갖추면 북으로서도 지금의 임금 따먹는 수준을 뛰어넘는 돈벌이가 될 것이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에도 이익이다. 개성공단은 1단계 100만 평에 현재 123개 기업이 들어가 3분의 1만 채워졌다. 개성공단이 국제화해 3단계까지 확장하면 2000만 평이 개발된다. 3통(통신 통행 통관)이 풀리고 남측 인력의 신변안전이 보장되면 개성공단이 중국의 선전이나 베트남의 딴뚜언 특구같이 될 수 있다.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회담이 지지부진하다. 이번 기회에 북에 국제적인 규칙을 가르치고 잘못된 버릇을 고쳐놓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남쪽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전시장의 문이 너무 오랫동안 닫혀 있다가 영영 폐쇄로 갈까 봐 걱정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tp://news.donga.com/3/all/20130718/56514116/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27

2004년 여름 유럽 연수 시절, 가족과 함께 노르웨이에서 자동차 여행을 했다. 시골길을 달려가는데 길가에 체리 과수원에서 체리를 내다 파는 무인(無人) 판매대가 줄지어 나타났다. 한 봉지당 2유로(약 3000원)라는 안내판과 동전함만 있고 사람은 없었다. 한 봉지 사면서 동전함을 힐끗 보니 동전과 지폐가 가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골길을 가다 보면 농민이 참외, 수박 등을 내다 파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되는데, 무인 판매 방식은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도 무인 판매로 운영할 수 있다면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해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있을 텐데….'

2011년 5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2018년 동계올림픽 후보지에 대한 평가회를 취재하느라 스위스 로잔에 갔을 때 겪은 일이다. 예약한 호텔에 체크인하니 종업원이 투숙객한테 제공하는 지하철 승차권이라면서 명함 크기 종이 카드를 꺼내선 유효기간을 볼펜으로 써 주었다. '최고 선진국에서 종이 카드에 수기(手記)라니….' 그런데 지하철을 이용해 보니 개찰구도, 역무원도 없어 카드를 내보일 일이 없었다. '이런 시스템이라면 요금 징수 시스템, 개찰구 같은 시설을 안 갖춰도 되고, 그 돈을 다른 데 투자할 수 있겠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돈만 자본이 되는 게 아니다. 사회·문화 자본도 있다. 사회 구성원 간 신뢰는 사회자본에 속하고, 경제 자본과 달리 아무리 많이 써도 고갈되지 않는다(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의 주장). 미국의 정치사상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의 가치를 특별히 중시해서 "한 국가의 경쟁력은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5020클럽(인구 5000만명,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 진입했다고 자랑하지만 신뢰 자본 면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

신뢰가 없을 때 사회가 어떤 비용을 치르는가는 밀양 송전탑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주민, 한전, 여야가 추천한 전문가들이 '전문가 협의회'를 구성해 40일간 연구 검토했고, 여러 전문가가 '우회 송전'과 '지중화(地中化)'는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제시했지만, 주민들은 보고서 내용을 불신하며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내년 3월쯤 완공될 새 원자력발전소가 송전선이 없어 무용지물이 될 처지에 놓여있다. 40일 동안 공사가 중지된 데 따른 손해만 28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 돈을 신용불량자 구제에 쓰면 2만2000명(국민행복기금 신청자 1인당 부채액 기준)을 빚의 구렁텅이에서 탈출시킬 수 있다. 신뢰 자본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후쿠야마가 '신뢰'에 대해 내린 정의에 답이 있다. "신뢰란 공동체에서 다른 구성원들이 보편적 규범에 기초해 규칙적으로 정직하고 협동적인 행동을 할 것이란 기대이다." 신뢰의 출발점은 구성원들이 법(최소한의 규범)을 지키는 것이다. 상식적 얘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상식이 존중되는 사회가 선진국 아닌가.



김홍수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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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18

아시아나 항공기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사고 후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한 번 터지면 물불 안 가리는 중화민족주의였다. 자국 여고생 3명 사망에 대한 중국인들의 슬픔과 애도가 언제 든 한국인에 대한 분노로 돌변할 가능성이 커서다. 특히 3억 명이 넘는 웨이보(微博·중국 트위터) 군단이 이를 주도할 경우 중국 전역에 ‘반한’(反韓) 광풍은 보나 마나다. 한데 이번엔 사건 발생 10여 일이 지나도 중국인들은 ‘냉정’을 유지하고 있다. 종편 채널A 앵커의 ‘사망자가 중국인이어서 다행’이라는 식의 비이성적 멘트에도 차분하다. 이유가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사과나 애도의 ‘진정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고 다음 날인 7일 오전 주중 한국대사관은 한국어와 중국어 홈페이지에 애도와 위로의 글을 올렸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필요한 조치를 다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이를 본 한 중국인 교수의 멘트가 함축적이다. “외교적 요식 행위인 건 분명하지만 진솔하다는 느낌도 든다. 해외 중국인 사망 사고 후 당사국 외교공관이 애도의 글을 올린 건 처음 본다.”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위로 전문을 보내 중국인들의 아픔을 같이했다. 국가 원수 간 당연한 외교적 행위겠지만 지난달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더 ‘오랜 친구’(老朋友)를 지향했던 터라 애도의 진정성은 더 깊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리젠화(李建華) 중국 닝샤후이(寧夏回)족 자치구 서기는 9일 개막된 한·중 우호주간 행사에서 성 서기급(장관급)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이번 사고가 한·중 관계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아시아나 사과 광고도 일조했다. 12일 인민일보 등 20여 개 중국 매체에 “이번 사고에 대한 슬픔과 위로를 보내고 사후 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갑자기 중국 언론이 ‘아시아나에 한 수 배워야 한다’고 해 버린 거다. 관영중앙TV(CCTV)의 류거(劉戈)라는 해설위원은 “아시아나 광고는 다분히 사건 확대를 막고 최대 항공시장 중국의 잠재적 고객들을 잃지 않으려는 계산이 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국에 과연 아시아나 같은 기업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즉 중국 기업은 사고가 나면 고위 공무원 매수→피해자 회유→책임 전가라는 3단계 해결법을 가보처럼 여긴다고 지적했다. 속 보인 광고일지라도 아시아나처럼 사과하고 슬픔을 같이하며 위기를 타개하는 관리법을 (중국 기업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과와 애도의 진정성이 가져온 덤이라면 덤이다. 동시에 ‘진정성’은 중국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은 자주 잊고 사는 것 아닌가 하는 경계다.

최형규 베이징 총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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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9. 19. 23:16

일본인 집에 초대받아 갔더니 슬리퍼를 신으라고 내놓더라. 외국인의 발이 마룻바닥에 직접 닿는 게 꺼림칙해서였나. 우치(內)와 소토(外)를 구분하는 일본문화가 잘 드러나더라….

미국 유명 신문사의 도쿄특파원이 큰 발견이라도 한 듯 들려준 이야기다. 발 시리지 않게 또는 편하라고 권한 슬리퍼를 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그는 도쿄에 오기 전 일본문화에 대한 책을 여럿 읽었다고 한다. 그게 지나쳐 실제 겪고 본 일들을 모두 책에 나온 관념의 틀로 재단하고 말았다. 먹물깨나 먹은 언론인도 한번 편견을 갖기 시작하면 이렇게도 맛이 가나 싶었다.

남의 나라 문화에 대한 편견은 아예 모를 때보다 어쭙잖게 알 때 생긴다. 요즘 어설픈 한국문화 개론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사고 원인을 더듬는 미국 언론들이 그렇다. 일부 미국 언론이 보도한 한국문화론의 내용은 뻔하다. 위아래를 중시하는 권위주의와 순종주의, 상의하달식 불통체질, 여기에 존댓말 탓에 원활한 의사 표현이 어렵다는 언어장애론까지…. 이게 신속한 위기대응을 가로막았을 수 있다는 식이다. 객관적 사고원인에 대한 궁금증은 ‘아, 그거 걔네 나라 풍토병이지’ 하는 한마디에 가려지고 만다.

한번 물어보자. 그럼 훨씬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서열이 센 군용기들은 매일같이 땅에 처박혀야 하나. 권위주의가 없다는 서양 파일럿들은 사고 위험을 아예 붙들어 매놨나. 존댓말에다 겸양어까지 복잡하게 쓰는 일본인들은 또 어떻게 조종간을 잡나. 그들의 한국문화론엔 구멍이 숭숭 보인다.

복잡한 사회현상을 꼬치 꿰듯 한 큐에 설명하려는 유혹이 결국 문화결정론으로 흐르는 것 아닐까. 학계에서도 문화에 과도한 설명력을 부여한 사례가 적잖다. 1960년대 미국의 정치학자 가브리엘 알몬드와 시드니 버바가 내놓은 정치문화론이 대표적이다. 둘은 각국의 정치문화를 참여형·신민형·미분화형으로 나누고 참여형인 서구가 민주주의에 적합하다고 봤다. 좀 거칠게 말해 ‘잘난 놈은 잘났기 때문에 잘났고, 못난 놈은 못났기 때문에 못났다’는 말을 학술적으로 표현한 것뿐이잖나.

한국·홍콩·대만·싱가포르 등 4마리 용으로 불리던 국가들의 성장 비결을 유교문화에서 찾는 시각도 비슷하다. 국가 주도형 경제발전에 유교적 가치관이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장구한 역사의 유교문화가 그동안 뭐 하다 이제야 국가 주도의 성장을 촉진했나. 또 유교문화가 경제발전에 도움을 준다면 왜 서양에 비해 산업화엔 뒤졌나. 유교문화론은 이 의문에 답을 못 준다. 드러난 결과에 대한 사후적 합리화에 그칠 뿐이다.

물론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에서 모든 답을 찾는 건 무리다. 자칫 문화 우열론이나 나아가 인종차별로도 이어질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KTVU라는 방송이 미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확인을 거친 아시아나 파일럿들의 이름이라며 인종차별적 농담을 내보낸 것도 그 연장선 아닌가. 이를 두고 미국의 인터넷에선 되레 ‘그게 농담이지 어떻게 인종차별이냐’며 반발하는 댓글이 많다. 조롱당하는 쪽의 심정을 무시한 채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태도가 인종차별 아니고 뭔가.

그렇다 해도 이를 미국의 뿌리깊은 인종차별 습속으로 일반화해 매도하는 것 역시 오류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두 번이나 선출한 나라 아닌가. 어느 사회에나 너절한 3류가 있는 법이다. 우리나라에도 망발 앵커가 있지 않나.

이처럼 문화로 모든 걸 설명하려는 태도는 어리석고 위험하다. 특히 이번에 불행한 사고가 난 판에 한국문화가 어떻네 하며 조롱하는 미국인들이 있다니 불쾌할 따름이다. 진득진득하게 스며드는 장마철 습기 같은 불쾌감이다. 이럴 땐 영화라도 보며 짜증을 삭여 보자. ‘장고: 분노의 추적자’가 안성맞춤이다. 그래, 바로 그거야, 장고, 인종차별하는 놈들일랑 싹 쓸어버려!

남윤호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078334&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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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14

"한국에서 일부 고용주가 외국인 근로자를 폭행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혀를 찼어요. '원 세상에 못 배워먹은 사람들 같으니라고' 하면서요. 그런데 막상 처음 해외에서 현지 직원을 채용해 일을 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어떤 때에는 진짜로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고 손이 올라가는 저 자신을 보고 저도 놀랐어요."

지난달 맨해튼에서 만난 한국 기업 관리직 A씨가 말했다. 그는 "한창 바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 '샤워 중 귀에 물이 들어가 병원에 가야겠다'며 당일 아침에 돌연 병가(病暇)를 내고, 연말에 결산을 앞두고 전 직원이 연일 밤샘 근무 중인데 갑자기 '계획된 겨울 휴가를 가족과 함께 가야겠다'고 태연히 말하는 직원을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더라"고 했다.

그의 '고백'은 이어졌다.

"그런데 말이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다 보니 제가 이상해지는 거예요. 곰곰 생각해보니 얘네들 말이 맞는 것 같더라 이거죠.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내 몸이고, 일도 결국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듭디다. 결정적으로, 지나놓고 보니 성과에도 큰 차이가 없었어요."

그는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고 절대 서울 본사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렇다면 미국인 근로자는 한국인보다 훨씬 비효율적일까. 작년 가을 앨라배마에서 만난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생산성은 미국 근로자 쪽이 최소 30% 이상 높다"고 말했다.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공장 내 구내식당을 가리켰다. 미국 근로자가 점심 식사를 하는 시간은 15분을 넘지 않더라는 것이다. 한국 근로자들이 부러워하는 '미국식 칼퇴근'의 이면에는 직장에 나와 있는 동안은 식사시간을 아껴가며 최대한 집중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숨겨져 있다고 그는 말했다.

공감이 갔다. 실제로 맨해튼 전 지역을 통틀어 점심 식사 때 2시간씩 붐비는 거리를 코리아타운 말고는 거의 보지 못했다. 대신 푸드트럭에서 산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사무실로 향하는 직장인은 수없이 볼 수 있다.

식사시간뿐이랴. 한 국내 대형 뉴스사이트의 '시간대별 국내 접속자 유입'을 관찰해보면, 한국 근로자의 근무 행태를 머릿속에 쉽게 그릴 수 있다. 이 사이트에서 하루 중 접속자가 급증하는 시간대는 오전 9시와 오후 2시, 오후 5시 무렵이다. 출근 직후, 점심 후, 퇴근 직전에 웹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의 더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의 권리 행사'를 못마땅하게 보는 한국식 집단문화와 권위주의에 있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자기 일을 모두 마쳐도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먼저 집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굳이 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이 업계 최초로 직원 야근과 팀장의 인사고과를 연결하는 등 초강수를 통해 '야근 철폐'에 나섰다고 한다. 분명 반가운 소식이지만, 우리 직장인들이 환호하기에 앞서서 반드시 알아둬야 할 '미국식 칼퇴근의 이면(裏面)'이다.



장상진 뉴욕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4/20130714016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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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13

밤낮 책만 읽는 허생을 보던 아내는 부아가 끓었다. 꽁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진다. "그깟 책은 읽어 뭐하우. 밥이 나와, 쌀이 나와." 허생은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공부가 아직 부족해." "식구들 쫄쫄 굶기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배가 부른가 보지? 물건을 만들든가, 장사라도 하든지." "기술도 밑천도 없는 걸 어찌 하나." 하는 말마다 염장을 지른다. "밤낮 글 읽더니 못 한다는 말만 배웠소? 차라리 도둑질이라도 배우든지." 견디다 못한 허생이 책을 탁 덮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안타깝다. 내 십년독서가 이제 겨우 7년인데 나머지를 못 채우는구나."

그는 뭐가 애석했을까? 그 10년이란 연한만은 길게 여운이 남는다. 십년독서는 옛 선비들의 꿈이다. 눈앞에 만권의 책을 쌓아놓고 한 10년 책만 읽으면 세상 보는 안목이 훤히 열린다고 믿었다.

송나라 때 심유지(沈攸之)가 만년에 독서에 빠져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가 늘 입에 달고 했다는 말이 있다. "진작에 궁달(窮達)에 정한 운명이 있음을 알아 십년독서를 못한 것이 안타깝다(早知窮達有命, 恨不十年讀書)." 젊어 십년독서를 했더라면 인생을 안타깝게 허비하지는 않았으리란 말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세상풍파 다 건너면서도 늘 길을 몰라 우왕좌왕했었다. 그러다 나이 들어 독서에 몰입하고 나니, 몰라 헤매던 길이 그 속에 다 있더라는 얘기다. 이걸 왜 더 일찍 몰랐을꼬.

십년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정한 시간이기보다, 이불리를 따지지 않은 채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몰두하는 상징적 시간이다. 이걸 배워 어디 써먹고 저걸 익혀 돈 벌 궁리 하지 않는 오직 독서를 위한 독서의 시간이다. 그 무목적의 온축 속에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 터진다.

정범조(丁範祖)는 신석상(申奭相)이 독서에 뜻을 세우면서 '내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그분을 만나보겠는가'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써준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진실로 3년간 독서하면 반드시 천 사람의 위가 될 것이요, 5년간 독서하면 만 사람의 위가 될 것이다. 10년간 독서하면 반드시 더 높은 사람이 없게 되리라. 독서의 이로움이 이와 같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다지 급하지 않은 명성만 다급하게 여긴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09/20130709038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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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12

"어느 블로그 운영자가 '태권 브이는 표절작'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욕설 댓글과 반박·재반박으로 금세 게시판이 엉망이 되더라." 한 네티즌의 말처럼, '태권 브이 표절 문제'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정치적인 사안 못지않게 논쟁이 잘 불붙기로 유명한 주제다. 1970~80년대 유년 시절을 보낸 30~40대들이 많은 추억을 갖고 있는 데다, 한·일 간의 민족 감정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광복절을 맞아 독도에 높이 13m짜리 태권 브이 철제 조형물을 세우겠다'는 한 조각가의 구상이 본지에 단독 보도되면서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본 만화 표절 의혹이 일고 있는 로봇을 왜 독도에 세우려고 하느냐"는 얘기다. 1976년 김청기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 브이' 개봉 당시 다섯 살이었을 그 조각가는 네티즌의 비난이 빗발치자 모금 운동을 중단한 상태다.

태권 브이의 외모가 4년 앞서 나온 일본의 '마징가 제트'를 본떴다는 것은, 사실 그 시절 공책 뒷장에 수도 없이 연필로 두 로봇을 그려 봤을 세대에겐 싱거울 정도로 분명하다. 마징가의 각진 뿔을 곡선으로, 빗살 모양 입을 원형으로 바꾸는 등 약간의 변형을 거친 캐릭터가 태권 브이다. 모두 '로케트 주먹'을 사용하는 데다, '쇠돌이'(가부토 고지)의 할아버지가 마징가를 만들고 죽은 것처럼 '훈이'의 아버지는 태권 브이를 남기고 죽는다.

하지만 '태권 브이는 표절작이므로 이제 그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표절작이란 단정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시대적 정서와 공감이 태권 브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아톰·마징가 같은 일본 로봇들만 판치던 시절, 제대로 된 마케팅과 함께 극장에 걸린 첫 '국산 로봇'이 태권 브이였다. 마징가와는 달리 태권도 3단 실력의 격투기를 구사했고, '메리'처럼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는 점도 일본 만화와는 다른 요소였다.

당시 문화력으로는 일본 만화의 영향을 뛰어넘을 수 없었지만, 4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한국의 대표 로봇 캐릭터로 자리 잡는 데는 나름대로 힘이 있었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로 시작되는, 최창권이 작곡하고 최호섭이 부른 주제가 역시 아직도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한다.

'처음에 잘못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가치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그 뒤의 긴 역사까지 한꺼번에 파묻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제(日帝)가 만든 서울시청사 건물을 허물자'는 주장은 그 건물이 1926년부터 19년 동안 '조선총독부 경성부청'이었다는 것만 볼 뿐, 60년 넘게 '대한민국 서울시청'이었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애국가 작곡가에 대해 친일 논란이 있다 해서, 몇 세대에 걸쳐 국가(國歌)로 애창돼 온 사실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태권 브이의 일부 표절은 인정하면서도 우리 문화 DNA에서 결코 '말끔하게' 그것을 지워버릴 수는 없는 이유다. 이제 그런 정도의 자신감과 여유는 가져도 되지 않을까.


유석재 문화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08/20130708029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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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10

'정치에 대한 관심 없이도 윤리적 행동을 할 수 있는가?'

얼마 전 시행된 프랑스 대학 입학 자격시험 바칼로레아의 철학 과목 논제(論題) 중 하나다. 바칼로레아는 단문형의 포괄적 질문을 던져 수험생의 사고력과 지식을 평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지선다형과 단답식으로 된 우리나라 수학능력시험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식을 파편적으로 암기하고, 예시된 보기 중 정답을 골라내는 '기술'만 익혀서는 풀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선 고등학생이 아닌 대학생에게 이 논제를 던져도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바칼로레아의 명성은 익히 알기에 이 문제를 보고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선했던 건 이 문제를 다루는 프랑스 사회의 모습이었다.

시험이 있던 날 TV 채널을 돌리고 있는데,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푸아투샤랑트 의회 의장인 세골렌 루아얄이 철학과 교수와 함께 이 문제를 토론하고 있었다. 사회당 소속 루아얄 의장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전 동거녀로 2007년 사회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유력 여성 정치인이다. 그는 개인적 경험을 거론하며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했다.

루아얄뿐 아니다. 이날 뱅상 페이용 교육부 장관, 우파인 대중운동연합(UMP)의 장 프랑수아 코페 대표, 극우파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등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치와 윤리의 관계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르펜은 "윤리적이라는 것은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동체의 삶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결국 정치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프랑스 사회의 핵심 이슈 중 하나인 불법 이민자 등 살아있는 사례들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 방송과 글을 보며 적어도 이날 하루만큼은 프랑스 사람들이 '정치와 윤리'라는 주제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을 듯싶다.

만약 우리나라 대입 시험이 바칼로레아 같은 논술식이라면 어땠을까? 사회 과목에 이 문제가 나온 저녁에 프랑스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대신 이런 장면이 상상이 된다. 인터넷에는 몇 가지 '모범 답안' 유형이 돌아다닐 것이다. 그걸 보며 수험생들은 자기가 쓴 글이 얼마나 '정답'과 비슷한지 맞추어 볼 것이다. 서울 강남의 논술 학원에선 강사들이 루소와 칸트 등 정치 철학자들의 정치와 윤리에 대한 핵심 개념을 외우기 좋게 요약 정리해 줄 것 같다. 곧 수험생이 될 고등학교 재학생은 또 그 기출 문제의 정답을 달달 외운다. 만약 비슷한 문제가 다시 출제된다면, 수험생 대부분이 똑같은 답안지를 적어낼 것이다. 논술은 정답 찾기가 아니라 수험생의 논리적 사고력을 알아보는 것인데도, 우리는 이렇게 정답만 찾는다.

먹고살기 어려운데 정치와 윤리의 관계가 도대체 뭐란 말이며, 철학이 밥 먹여 주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가 좀 더 나아지기 위해선 이런 집단적 성찰과 사색도 때로는 필요할 것이다. 이런 게 진정한 의미의 집단 지성 아닐까? 인터넷에서 내 편, 네 편 가르며 물어뜯는 게 아니고 말이다.



이성훈 파리 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07/20130707020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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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10

고개를 숙인 여인과 소녀들이 나귀 수레와 버스에 몸을 실었다. 능욕당한 이들의 몸에선 지린내와 함께 지독한 악취가 풍겨 나왔다. 일부는 12, 13세에 결혼해 영양 상태가 충분치도 않은 몸으로 임신했다. 이들은 난산으로 내장에 구멍이 생겨 대소변이 새어 나오는 피스툴라라는 몹쓸 병에 걸렸다. 이들 대부분은 남편에게 쫓겨난 뒤 육신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간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아프리카 서쪽 니제르 지역의 신설 병원. 이곳에서 피스툴라 치료를 받는다.

피스툴라로 고통받는 10대 소녀를 보기란 정말 괴로운 일이다. 나는 예전에 니제르 단자 지역에 피스툴라 치료 센터를 세우길 원하는 부부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후 뉴욕타임스 독자들이 피스툴라 치료 펀드(WFF)에 5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이런 계획은 현실이 됐다. 단자 피스툴라 센터는 지난해 문을 열었다.

미국 위스콘신대에 다니는 제자와 함께 ‘세계 빈곤’에 대한 기획 기사를 구상할 겸 단자를 다시 방문했다. 이곳에서 독자들이 이룬 성과를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만난 첫 환자는 장난꾸러기 웃음을 잘 짓는 하디자 술라예였다.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 술라예는 자기 생일도 몰랐다. 그는 가족의 강요로 생리를 시작하기도 전인 11, 12세 때쯤 결혼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삼촌의 둘째 부인이 됐다.

1년이 지나 그는 아이를 가졌다. 어떠한 산전 관리도 받지 못한 술라예는 폐색성 분만을 했다. 이후 3일간 끙끙 앓다가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아기는 죽었다. 이후 그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됐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단지 소변 조절이 마음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울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술라예는 이후 외톨이가 됐다. 남편은 그를 집에서 쫓아냈고 마을 사람 누구도 그가 만든 음식을 먹지 않았다. 물을 길어 오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마을 사람들은 늘 오줌이 묻은 내 옷을 보며 손가락질했다”고 말했다.

몇 달 전 술라예는 단자 피스툴라 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청했다. 미국 미시간 출신 비뇨기과의 스티브 애로스미스 박사는 술라예를 치료한 뒤 완전한 회복을 위해 6개월간 성관계를 맺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뒤 술라예는 기쁜 마음으로 마을로 돌아갔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남편은 그를 침실로 불러들였다. 술라예는 “나는 그의 부인이기에 (동침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성관계로 인해 피스툴라는 도졌고, 다시 소변이 새기 시작했다. 남편은 다시 술라예를 쫓아냈다. 병원으로 돌아온 술라예는 다시는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전 세계 200만 여성이 피스툴라로 고통받고 있다. 피스툴라를 치료하려면 500∼1000달러 정도 비용이 든다. 

피스툴라는 조혼으로 인한 사회 문제다. 니제르 여성의 4분의 3 정도가 18세가 되기 전에 결혼한다. 애로스미스 박사는 “소녀 중 일부는 월경을 시작하자마자 아이를 갖고, 이로 인해 자궁이 망가진다”고 말했다.

단자 센터는 산모의 건강도 돌본다. 병원을 오가는 무료 택시 운영체계도 도입했다. 환자를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애로스미스 박사와 워싱턴대 루이스 월 박사, 그리고 미국 기독교단체가 공동으로 설립한 피스툴라 센터는 소액의 후원금으로 어렵사리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치료받은 여성들의 충만한 기쁨은 피스툴라 센터가 이 도시에 얼마나 큰 선물이 되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참담한 심경으로 입원한 환자들은 자신감을 되찾아 퇴원한다. 복잡한 문제로 얼룩진 세상에서 정말로 축하할 일이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http://news.donga.com/3/all/20130715/564488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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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09

‘귀태’(鬼胎·태어나서는 안 될). 일순 국내 정국을 얼어붙게 했던 이 두 글자만큼 유럽의 단일화폐, 유로의 처지를 잘 표현한 단어도 없다.

긴축정책 반대 시위로 국정이 마비된 포르투갈에선 ‘왜 우리는 유로를 버려야 하는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다. 독일에선 “유로가 유럽을 갈라놓는다”며 석 달 전 경제학자 변호사 같은 지식인들이 창당한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9월 총선을 앞두고 세를 모은다. 심지어 독일의 막스플랑크 인구조사연구소는 “스페인 아일랜드 등 재정위기 국가에서 출산율이 떨어졌다”고 최근 발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가 실패하면 유럽이 실패한다”며 남유럽 구제금융에 독일 국민의 세금을 내놨다. 하지만 1992년 ‘하나의 시장, 하나의 화폐’를 내건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나올 때부터 유로가 재앙을 부를 것이라는 경고가 적지 않았다. 엄마(통화정책)는 유럽연합(EU)에, 아빠(재정정책)는 회원국 정부에서 별거할 경우 아이(유로)가 중병(정부적자 국가채무 급증) 걸릴 위험성이 높다는 거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아 재정위기에 빠진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가 딱 그런 경우다.

치명적 결함을 안고 태어났으니 유로존(유로를 쓰는 유럽 18개 국가) 경제침체가 좀처럼 풀릴 리 없다. 특히나 부동산 거품과 함께 건설경기가 꺼지면서 공사장 크레인이 우렁찬 소리를 내는 곳은 유럽의 절대강자 독일과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의 브뤼셀뿐이라는 썰렁 개그가 나돌 정도다.

실제로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의회 등이 몰려 있는 브뤼셀 한복판의 쉬망 로터리 주변은 EU빌딩 신축공사로 시끌벅적하다. 인구 110만 명의 브뤼셀에서 네 명 중 세 명은 외국 출신이고, 그중에 한 명은 EU 관련 인사라는 통계도 있다. EU에 고용된 회원국 고급 인력만 5만 명에다 EU를 상대로 한 로비회사 로펌 싱크탱크, 그리고 미디어 종사자까지 최소한 25만 명이 쓰는 돈으로 브뤼셀이 먹고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로는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고 내가 믿게 된 이유도 여기 있다. EU 공무원들의 평균 임금이 월 5000유로(약 750만 원), 벨기에 1인당 소득의 2배에 가깝다. 메르켈 총리 월급(1만6000유로)보다 많이 받는 고위직 4000명에게 EU의 안녕은 그들의 존엄이 걸린 문제다. 더구나 국민의 눈치를 보거나 책임질 일도 없어 관료 중에서도 팔자 좋은 유로크라트(eurocrat)라 불린다. 갑 중의 갑으로 살아온 이들 기득권 세력이 유로가 무너지는 꼴을 눈 뜨고 볼 리가 없다. 

유로크라트와 유로엘리트가 브뤼셀에서 퍼뜨리는 소리가 “더 많은 유럽을(More Europe)”이다. 정치연합,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으로 가야 한다는 말도 EU가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뒷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마구 신용카드를 긁어버린 아빠들처럼, 무책임한 정부는 정치논리에 휘둘려 예산 낭비를 일삼았다. 그러니 국민 세금을 어떻게 걷어 제대로 쓰고 있는지 의심스러우면 유능한 유로크라트에 넘기라는 주장이다. 지난주 독일 베르텔스만 슈티프퉁 연구소는 “각국 정부가 브뤼셀로 외교를 넘기면 연 13억 유로, 국방을 넘기면 군인 임금에서만 연 90억 유로를 줄일 수 있다”고 발표해 EU를 편들었다. 

세금 걷어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정부의 고유 역할일진대 이건 주권을 내놓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선거로 뽑히지 않은 유로크라트가 무슨 자격으로 남의 나라 운명을 좌우하느냐는 ‘민주주의 결핍론’이 그래서 나온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애국가 4절 가사는 참 잘도 지었다 싶다. EU 대 주권국가, 엘리트 대 대중, 세계화 대 민족주의의 갈등이 어떻게 귀결될지, 남의 나라 일이어서 애태우지 않고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지금은 귀태 취급을 받고 있지만 유로는 통일을 위해 독일이 마르크화를 포기한 값비싼 대가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도 전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이 부강해져 또 전쟁 야욕을 품지 못하도록 독일 최강 무기인 마르크화를 박탈하기로 했고, 독일은 두 나라가 통일을 용인한다는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호되게 통일 비용을 치른 독일은 2002년 마르크화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유로가 확산되면서 역전홈런 같은 기적을 창조해냈다. 2003년 시작한 구조개혁과의 시너지로 국가경쟁력이 폭발한 건 물론이다. 유로 덕에 싼 이자로 쏟아져 들어오는 돈을 정부는 부패로, 국민은 복지로 마구 삼켜 버린 남유럽 사람들이 이제 와서 유로를 탓하는 형국이다.

부패한 나라에선 제 나라 정부보다 EU와 그 뒤의 독일을 더 신뢰한다는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가 있다. 태어나선 안 될 괴물이 과연 있을까. 우리는 자신의 맹점을 엉뚱한 데 투사하며 자위하고 싶은 게 아닐까.―브뤼셀에서

김순덕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30715/56448873/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08

전통시장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국민들의 응원, 전통시장 지원책, 제도적 배려 등 각계각층의 노력으로 전통시장을 위한 더없이 좋은 기반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정책과 물질적 지원에만 매달리는 상인리더 및 상인회의 소극적 대처로는 새로운 도약을 이뤄낼 수 없다. 전통시장 활성화의 실마리는 리더의 발전적 안목과 구성원 전체의 단합에서 풀어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관광명소로 거듭난 일본 히코네시장 사례를 보면 전통시장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상인리더의 혜안과 그를 믿고 협력하는 상인조직의 단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일본 히코네시장 상인들은 1986년 ‘올드 뉴타운(Old New Town)’이라는 장기적인 활성화 목표를 잡고 대대적 개혁에 착수했다. 6m에 불과한 시장 골목의 폭을 18m로 넓히는 동시에 17세기 에도시대의 풍경을 살려냈다. 현대와 전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영리한 개발이었다. 확장공사에 사유지를 내놓은 주민에게는 지자체의 지원이 이어졌고 상인과 주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한 공동체를 설립해 리더와 구성원들의 적극적 노력으로 서로 간의 유연한 관계가 성립됐다. 시장 외관이 완성된 후에는 히코네시장 상인회 전체가 에도시대 전통의상을 맞춰 입고 고객몰이에 나섰고, 지역과 시장의 특성을 활용한 상품개발에 힘쓰는 등 독자적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자발적 노력이 이어졌다. 

히코네시장의 성공은 상인, 주민, 지자체 모두의 양보와 상생협력으로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 최근 국내에서도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상인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초 삼성경제연구소가 실시한 전통시장 관련 조사에 따르면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 이유로 상품의 품질, 시장 내 청결, 불친절 등 ‘상인 고유의 문제’라는 응답이 65%를 차지했다. 

구태의연한 전통시장 상인들의 모습에 실망하고 떠나간 소비자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상인들의 자발적 노력과 단합이 우선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전체 상인들의 열정을 현명하게 통솔하기 위한 상인리더의 역할이 발전의 촉진제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상인리더는 시장의 현황과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여, 전통시장 발전을 위한 비전과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봉사정신과 모범적 삶의 태도로 시장 구성원들을 아우르는 카리스마가 요구된다. 여러 이권과 권력에 매달려 가시적 성과와 잇속을 채우기에 급급한 상인리더가 많이 있는데, 이러한 상인리더가 있는 한 전통시장의 발전은 요원하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가장 효과적이고도 지속가능한 발전은 리더 혼자만의 힘이 아닌, 여럿의 의지와 노력을 합쳐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고객이 감동하는 행복한 전통시장은 이제 목표가 아닌 당연한 결과가 될 것이다.

정석연 시장경영진흥원장



http://news.donga.com/3/all/20130710/56373653/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07

삼성전자의 연간 스마트폰 생산량 4억개 중 국내 생산량은 10% 미만인 3800만개에 불과하다. 현대·기아자동차도 전체 생산량 710만대 중 50%가 넘는 360만대를 해외에서 생산 중이며 그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 생산 기지를 중국과 동남아 등지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전통적인 방법을 통한 고용 확대는 한계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취약한 서비스업종에서 고용 창출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분야가 국립공원을 활용한 관광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70%가 산이고 그 산이 품고 있는 계곡을 따라 일년 내내 풍부한 물이 흐르는 데다 국토의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정말로 물이 흔한 곳이다. 이 풍부한 산과 물을 자원의 창고나 에너지 생산수단으로만 볼 것인가? 삼림이 우거진 아름다운 산과 그 사이를 굽이치는 물이 만들어내는 우리나라의 풍광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조금만 시각을 바꾸면, 국가 관광자원 개발의 청사진이 새롭게 그려질 수 있다.

알프스 몽블랑 산자락의 프랑스 마을 샤모니나 캐나디안 로키의 밴프 같은 도시들은 연간 180만명에서 500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여서 각각 1만명, 8000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럽과 캐나다처럼 4000m가 넘는 웅장한 산은 없지만 계절에 따라 확연히 다른 모습을 연출하는 산들과 그림 같이 아름다운 해안, 그 앞에 점점이 박힌 보석 같은 섬들이 있다.

특히 전국에 걸쳐 조밀하게 조성된 도로망을 활용하면 짧은 기간에 산과 강, 바다를 아우르는 '종합 관광'이 가능한 곳이다. 여기에 계절별로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자연경관을 조합하면 무수한 관광상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잘 보존된 삼림의 대부분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국가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점 또한 산과 강의 종합적 활용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전국을 아우르는 자연관광 종합 청사진을 그리고, 지역 경제와 연결되는 활용 계획을 세운다면 국립공원의 활용 가치 또한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경제는 1960~80년대 부족한 부존자원 속에서도 고도성장을 일구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큰 동력이 됐던 것이 자연을 단순한 자연으로 보지 않고 자원의 창고이자 에너지 창출의 도구로 이해하는 접근방식이었다. 이제 또 한 번 자연을 창조경제의 도구로 활용할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승창 前 대우전자 대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05/2013070503128.html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07

최근 관광산업이 창조경제의 주요 해법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고부가·고품격 관광산업을 집중 육성해 2017년까지 외래 관광객을 1600만 명으로 늘리기로 하는 등 중장기 목표까지 설정했다. 업계에서는 기존의 관광 본연의 분야뿐 아니라 의료, 교육, 연구개발(R&D) 등 유사 또는 이종 서비스들과 연계한 새로운 형태의 관광산업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주변 환경도 고무적이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에 진입한 데 이어, 올해에는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은 개별 관광뿐 아니라 단체 관광을 통해 우리 관광산업에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숙박 인프라가 태부족이다. 서울시는 서울시내 하루 평균 숙박시설 부족량이 올해 2만여 실에서 2017년 3만여 실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 1∼4월 중국인 관광객 수는 지난해보다 40% 이상 증가했지만, 서울에서 1∼2시간 떨어진 수도권으로 향하거나 관광을 아예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각종 규제들을 과감히 풀어줘야 한다. 호텔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고 일자리 창출에 크게 공헌하는 만큼 정부가 의지를 갖고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활발한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들도 인허가와 심의 기준 등을 완화해 호텔 개발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고유한 문화와 결합한 전통 숙박시설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는 ‘료칸’이라고 불리는 고급 전통 여관들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고, 몽골에도 전통 가옥을 본뜬 ‘게르’ 형태의 호텔도 운영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전통 호텔이 지방에만 소수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전통 숙박시설은 숙박시설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중요한 문화상품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하기 때문에 정부는 호텔의 형태를 다양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민간의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여기에 외국처럼 중저가 객실, 템플스테이, 게스트하우스, 홈스테이 등 우리나라 특색에 맞는 다양한 숙박 인프라를 구축해야 관광객 2000만 명 시대를 열 수 있다.


홍기정 모두투어 사장



http://news.donga.com/3/all/20130702/5623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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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06

연구란 무엇인가? 연구란 특정한 현상이 시간 및 공간에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가를 관찰하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에 더해 그 현상을 만들어낸 원인은 무엇이고 또 그 현상이 가져올 결과는 무엇일지를 따져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학자'라 부른다. 학자의 관찰 대상은 물론 자연현상일 수도 사회현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경우에 따라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동일할 수도 혹은 다를 수도 있다. 또한 현상은 달리 보여도, 결국에는 본질이 같은 경우도 있다. 역으로, 본질이 달라도 현상이 같게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는 남극이나 북극과 같은 극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연현상을 관찰할 방법이 없다. 그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그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으로 가서 연구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연구의 결과로부터 추출된 자연과학적 지식은 우리나라의 자연현상에도 얼마든지 적용이 가능하다. 우리나라가 극지에 과학기지를 운영하는 까닭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만약 계절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에 관심이 있는 학자라면 우리나라는 연구를 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진 셈이다. 사시사철 춥거나 덥기만 한 나라의 학자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여 자신의 나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연과학적 지식을 축적할 수 있다.

연구 대상의 상대적 가치에 대한 평가는 비단 자연과학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사회과학에서는 그러한 차이가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예컨대 근대화, 다시 말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러한 현상이 벌어진 서유럽, 북미, 일본을 연구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미처 충분히 진행되지 않아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대화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선진국 중심의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지식이 축적되어 왔다.

연구 대상의 가치라는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근대화 현상 즉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는 매우 높은 중요성을 차지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그리고 가장 빨리 또 최근에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를 입체적으로 완성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복지제도의 전면적 도입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사회과학에서 우리가 비교우위를 누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연구의 대상은 바로 한국 현대사가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학자들은 한국의 사례가 가지는 연구대상으로서의 중요성을 애써 외면한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성공을 우리나라 학자들은 관찰하고 분석하고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유럽의 200년에 걸친 산업화와 민주주의에만 주목한다. 30여 년 만에 전면적인 복지를 시행하고 있는 한국은 폄하하고, 100년에 걸쳐 발전한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 복지에만 눈을 돌린다.

나아가서 한국의 사회과학을 지배한 연구의 대상은 대부분 한국 현대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80년대 중반부터 유행하던 '종속 심화·독점 강화' 테제가 대표적이다. 만약 당시의 한국이 대외적으로 종속이 심화되고 대내적으로는 독점이 강화되는 사회였다면, 90년대 혹은 2000년대 한국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한 사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로서 드러난 사실은 대외적인 종속이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동시에 대내적으로는 독점을 규제하는 경제 민주화가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학자들은 이런 한국의 현실을 외면한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나라를 매우 귀중한 연구 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물론이고, 새마을 운동을 공부하러 오는 개발도상국의 학자와 공무원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마치 우리가 자연과학의 발전을 위해 남극에 과학기지를 운영하듯이, 한국을 연구하여 자신들의 발전에 도움을 얻고자 우리나라로 몰려오고 있다.

그런데 막상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성공을 스스로 만들어 낸 대한민국의 학자들은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작업이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작업을 통해서는 절대 대한민국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연구 대상으로서 한국 현대사가 가지는 가치를 우리나라 학자들만 외면하는 역설이야말로 또 다른 연구가 필요한 연구의 대상이다.


류석춘 연세대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30/20130630023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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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02

뜨거운 8월 햇살 아래, 사람들은 청동상 하나하나를 만져가며 사진을 찍거나 요괴 캐릭터부터 참치라면까지 다양한 가게에 발길을 멈추었다. 일본 돗토리현의 사카이미나토역에서 800m에 이르는 ‘미즈키 시게루 로드’. 만화 <게게게노 기타로>(한국명 <요괴인간 타요마>)로 유명한 작가 이름을 딴 거리에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기타로와 고양이소녀를 비롯해 일본 전국의 요괴 청동상 150여점이 늘어서 있다. 최근 주춤해졌다곤 하나 연간 방문객은 1993년 2만명에서 2010년 시 인구의 100배가 넘는 370만명까지 불었다.

20년 전 이 거리는 빈 가게만 즐비했다. 삼면이 바다에 에워싸여 어업이 번성했던 사카이미나토지만 “대형슈퍼가 생기고 자가용족이 늘며 70년대부터 상점가가 쇠락했다”고 한 가게 주인은 말했다. 시는 문화계의 제안을 받아 이곳 출신 미즈키 작품의 캐릭터 청동상을 꾸민다. 애초 지역민을 붙잡겠다는 소박한 기획은 청동상이 훼손되거나 사라졌다는 얘기가 보도되며 전국적 유명세를 탔다. 국제공항이 있는 요나고에서 사카이미나토까지 ‘요괴 열차’가 오가고 각종 요괴 이벤트가 열리며 미즈키의 만화세계와 요괴연구 자료를 모은 기념관도 10년 전 생겨 지역 살리기에 가속도를 붙였다.

방문객 ‘숫자’보다 인상적인 건 거리 정착 과정에서 보인 민간의 자발성과 이를 극대화시킨 방식이다. 고향의 쇠락을 안타까워한 미즈키는 청동상의 저작권료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몇 해 전엔 거액을 기부했다. 23점으로 출발한 청동상은 일반인들 모금에 힘입어 153점까지 늘었다. 상급 지자체인 돗토리현은 이 붐을 이어받아 2년 전 아예 ‘만화왕국 돗토리’를 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호쿠에이초 출신 작가 아오야마 고쇼(<명탐정 코난>) 기념관, 구라요시 출신 다니구치 지로의 <열네살> 무대인 시라카베도조군도 주요 관광지로 변신했다. 꽤 떨어진 지역인데다 대단한 규모도 아니지만, 만화라는 테마에 꽂힌 사람들은 이번 여름 나처럼 열차를 타고 돗토리현을 누빈다.

지역 문화사업의 안착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산업폐기물 섬에서 대자본이 투입되며 문화예술 섬으로 변모한 가가와현 나오시마는 한국에서도 모범사례로 소개되는데 “그 나오시마도 요즘 적자”라고 한 미술계 인사는 전했다. 지역 문화사업을 ‘수익사업’처럼 여겨선 안 되지만 ‘지속가능한 규모’라는 개념 또한 필요한 법이다. 그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콘텐츠,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이 즐기고 유지할 토대 없인 ‘모래성’이 되기 십상이다.

한국에서도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문화사업에 나서고 있다. 환영할 일이지만 문제는 ‘일단 폼나게 시작하고 보자’는 발상이다. 요즘 열리는 평창비엔날레는 도와 정부 예산이 15억, 10억원씩 들어갔는데 막상 뚜껑을 열자 200만명 관객 목표가 10분의 1로 축소됐다. 지역에 신진작가 소개, 의미 있다. 그렇더라도 피서객을 믿고 두달여 준비로 일회성 행사도 아닌 ‘비엔날레’를 하겠다는 건 과유불급 아닐까. 정부 한 관계자는 “광특회계(광역지역발전특별회계)가 있어 지자체가 달라면 꼼짝없이 줘야 한다. 이런 행사가 정부 예산 없이 유지되겠나”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예산을 주고도 전문성 있는 관리감독을 못하는 정부, 정부만 바라보다 예산이 줄면 아우성치다 사라지는 지역 문화사업의 악순환을 우리는 숱하게 봐왔다.

지난주 찾은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선 다른 ‘싹수’가 보였다.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들이 자녀 손을 잡고 온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초기부터 시와 만화가들이 머리를 모으고 지역민들이 아이들과 편히 뒹굴며 만화를 즐기는 도서관을 마련한 게 우여곡절 속에서도 16년을 지속해온 바탕일 게다. 그게 문화의 출발점이다.


김영희 문화부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003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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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2:59

<악의 투명성>이라는 책에서 장 보드리야르는 우리 시대 문화의 특징으로 ‘긍정성’(positivity·포지티브)을 든다. 우리가 흔히 ‘긍정적’이라고 풀이하는 영어 단어 ‘포지티브’는 원래 ‘결여되지 않은, 존재하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의학에서 ‘포지티브’는 ‘양성반응을 보이는’, 즉 ‘예상하고 있던 특징이 실제로 존재하는’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긍정적’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뭔가로 꽉 차 있는 이미지를 가진다.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인 사람’이 언제나 뭔가를 부지런히 기획하고, 시도하고, 도전하는 인간을 지칭하는 것처럼 말이다.

긍정성에는 결핍이 없으며, 충만함만 있다. 긍정성의 문화는 내가 가진 모든 결핍과 결여를 보충하고, 제거하고, 그래서 결국은 ‘결여 없는 존재’로 나아가려는 욕망으로 추동되는 문화다.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긍정성의 문화를 표상하는 이미지로 ‘그림자 없는 인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림자 없는 인간’은 존재 자체를 표백시켜 버린 인간을 의미한다. 단점을 없앨 수 있고, 결여는 채울 수 있다는 믿음, 즉 노력만 한다면 나의 어두운 ‘그림자’를 없애버릴 수 있다는 믿음이 ‘그림자 없는 인간’을 만들어낸다.

긍정성의 문화가 지배적인 곳에서는 여지없이 ‘그림자 없는 인간’이 양산된다. 미용 성형수술의 유행은 대표적인 사례다. 2011년 기준 성형시술 건수 세계 1위인 한국에서 성형수술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 신체를 ‘주조’함으로써 내 결여를 채울 수 있다는 믿음의 이름이다. 케이블티브이 프로그램 <렛 미인>의 출연자들은 모두 자기 삶의 현재적 문제가 미의 결여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썩은 가슴’과 ‘주걱턱’을 없앨 때 비로소 남편의 사랑과 가수에의 꿈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출연자들은 자신의 온갖 치부를 드러낸 채 의사들의 선택을 요청하며 고개를 숙인다. 이러한 장면들은 거의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피폐한 삶과 인생에 지친 이들이 의사들 앞에 서서 자신의 고통을 고백하면, 의사는 이들 중 하나를 선택해 그의 삶을 새로이 바꿔낸다. 고통, 믿음, 시험, 통과의례, 그리고 기적과 구원이라는 종교적 서사가 이 프로그램의 포맷을 이룬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는 형편이 어려운 가족의 사연을 통해 그들의 허름한 집을 고쳐주는 프로그램이 유행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집중 트레이닝을 통해 성적을 올려주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그리고 2010년대가 지나면서 신체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집도, 학교도, 이제는 신체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영향력이 떨어진 것이다. 이는 제조와 정보를 넘어 몸 자체, 삶 자체를 가공함으로써 이를 ‘시장’으로 삼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신체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이 ‘경쟁력’이라면, 우리는 마땅히 그곳에 ‘투자’하고 그곳을 ‘경영’해서 ‘이익’을 내야 한다. 신체의 그림자를 없애는 시장의 확대는 정신의 그림자를 없애는 시장(자기계발, 힐링)과 결합함으로써 삶 전체의 그림자를 없애는, 즉 완벽한 ‘긍정성’의 문화를 향해 가고 있다.

이 완벽한 긍정성의 문화는 역설적으로 완벽한 부정성의 문화이기도 하다. ‘그림자 없는 인간’은 실체 없는 인간, 곧 시체, 귀신, 혹은 유령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성형한 아름다움이 넘치는 곳, 자기계발의 성실함이 넘치는 우리 사회에서 ‘죽음’의 소식 역시 넘쳐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정성마저도 긍정할 수 있는 긍정성이 아닌, 더 큰 긍정성을 위해 작은 부정성마저도 제거해버리는 문화는 역으로 감당할 수 없이 거대한 부정성의 역풍을 예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그림자를 없애버린 이 시대는 어쩔 수 없이 파국의 그림자를 불러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015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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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2:58

올해 초 장군들과 저녁 식사를 한 일이 있었다. 별이 여럿인 한 장군에게 물었다. “북한과 전쟁을 하면 제압할 수 있습니까?” 그 장군은 대뜸 “연합 전력 말입니까? 독자 전력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더니 “미군과의 연합 전력으로는 제압할 수 있지만, 한국 독자 전력으로는 아직 어렵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다른 장군에게 물었다. “한국이 매년 북한보다 훨씬 많은 군사비를 쓰면서도 북한을 제압하지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긴 대화 끝에 그 장군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해온 나라입니다. 전쟁을 해서라도 국가의 주권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부족합니다. 국민도,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에 이어 다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전환)를 미루려는 모양이다. 환수 시기가 2년 반이나 남았고, 3차례 점검 계획이 있는데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월 환수 시기를 연기하기 위한 논의를 비밀리에 미국에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각 반대 목소리도 나왔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은 “예정대로 2015년에 전작권을 전환해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노무현 정부가 전작권 환수를 추진했을 때 미군이 제안한 전환 시기는 2009년이었다. 준비가 필요하다는 한국의 의견에 따라 2012년으로 결정됐다. 이것을 이명박 정부가 2015년으로 연기했고, 박근혜 정부가 또 연기하려는 것이다. 국가 간의 약속을 두번이나 깨면서까지 군사 주권을 찾아오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국방비나 군사력은 이미 북한을 훨씬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의 ‘군사 지출’ 자료를 보면, 2012년 한국의 국방 예산은 35조6650억원(318억달러, 1달러=1121원)으로 988억원(9억7340만달러, 1달러=101.5원)인 북한의 33배나 된다. <2012 세계 방산시장 연감>을 보면, 2007~2011년 한국의 무기 수입은 세계 2위다. 또 월드파이어파워 사이트를 보면,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8위인데, 북한은 29위다.

정부와 군은 남북 간의 ‘비대칭 전력’인 북한의 핵무기를 전작권 환수 재논의의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올해 2월12일 3차 핵실험은 경량·다종·다량화 등 새로운 핵 능력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미국의 핵우산 안에 있는 한국을 핵무기로 먼저 공격할 가능성이 없다. 미국이 핵 보복을 한다면 북한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절대 무기’이지만, ‘절대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이기도 하다.

전작권을 가져오지 않으려는 실제 이유는 자신감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 말 이후 한국은 스스로 전쟁을 수행한 경험이 없다. 전투 한번 치르지 못하고 일본에 나라를 넘겼고, 미군과 소련군이 해방시켜줬으며,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도 미군의 지휘를 받았다. 미군 없이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 결정을 주도했을 김관진 국방부 장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등 외교안보 정책의 수뇌부 3명은 모두 ‘육군 대장’ 출신이다. 국가 안보와 관련해 문민 관료들이 나약한 생각에 빠져도, 군인들은 강건한 기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시민들의 상식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육군 대장 출신들이 군사 주권을 돌려받지 않으려고 총대를 멘다.

1차 세계대전 때 강경한 대독일 정책으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끈 조르주 클레망소 총리는 “전쟁은 너무 중요해서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을 보면, 장군들에겐 전쟁뿐 아니라 외교안보 정책도 맡길 수가 없다.


김규원 통일외교팀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96514.html



Posted by 겟업
2013. 9. 19. 22:56

내 코가 석자라서 남의 외국어 실력에는 관심 없다. 나의 관심은 외국어 실력이 아니라 외국어를 사용하는 태도에 있다. 가끔,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나와 소통할 수 있는데도 굳이 두 사람 모두에게 외국어인 영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프랑스인을 만날 때 영어로 말하기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된다. 언어는 단지 소통수단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 외국어 사용은 일상에서 자아도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외국어는 과시의 도구로도 적절히 활용되고 지적 허영을 드러내기에도 좋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정확한 개념 전달을 위해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어도 ‘외국어를 좀 섞어주는’ 버릇이 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상황에 따라 권력이 되고 정치적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과거 미국 대선 후보였던 민주당의 존 케리와 공화당의 밋 롬니는 프랑스어에 능통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에 현재 프랑스 총리인 장마르크 에로가 총리 후보로 거론될 때 그의 장점으로 꼽힌 것은 그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독일과 함께 유럽의 경제 위기를 해결할 짐을 떠맡은 사회당 정부는 독일에 호감을 줄 수 있는 인물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언어는 이렇게 그 자체로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외국어에 애정을 가진 인물이다. 영어·중국어·프랑스어·스페인어를 구사한다고 ‘알려진’ 박 대통령은 방문하는 국가마다 그 국가의 언어로 말하기를 참 좋아한다. 대통령이 미국에서 영어 연설을 하고, 중국에서 중국어 연설을 해서 외교에 도움이 된다면 그의 독특한 외국어 사랑을 말릴 이유는 없다. 그런데 방문 국가의 언어로 국가수반이 연설을 해서 효과적인 외교를 펼칠 수 있다면 왜 다른 나라의 정상들은 외국어 실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의 외국어 사랑은 ‘외교용’이라기보다 ‘외국어 잘하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국내용’에 가깝다.

얼마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 자리에서 “피로 지킨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진위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박정희·전두환 두 전 대통령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그 ‘피’를 흘리게 만든 가장 대표적인 가해자다. 새누리당이 그 계보를 잇는 정당임을 생각하면 박 대통령의 발언이야말로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다. 작년에는 (인혁당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라는 발언도 했다. 어느 정도 역사와 법치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다면 나오기 힘든 발언이다. 또한 ‘국정원 선거개입’은 덮어두고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 사건’으로 본질을 흐려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에 동참, 혹은 앞장서고 있다. ‘인권’에 대한 개념은 없지만 인권이라는 언어를 국민을 속이는 도구로 활용할 줄은 안다.

자국어로 자국민과 정확한 소통은커녕 이렇게 왜곡과 기만, 견강부회로 무장한 대통령이 외국에서 외국어로 말하기에 집착한다. 대선 후보 시절 지하경제 ‘양성화’라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지하경제 ‘활성화’라고 하거나,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대통령직을 사퇴한다고 했던 황당한 말실수는 단순한 실수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부실한 역사인식과 국민을 기만하는 태도가 가득 담긴 발언은 실수가 아니라 그의 사상이다. 외국어 실력은 대통령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조건이 아니지만 자국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국민과 소통하는 능력은 필수 조건이다. 외국어 이전에 한국어로 국민과 말이 되는 소통을 하길 원한다.

이라영 집필노동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951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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