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장군들과 저녁 식사를 한 일이 있었다. 별이 여럿인 한 장군에게 물었다. “북한과 전쟁을 하면 제압할 수 있습니까?” 그 장군은 대뜸 “연합 전력 말입니까? 독자 전력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더니 “미군과의 연합 전력으로는 제압할 수 있지만, 한국 독자 전력으로는 아직 어렵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다른 장군에게 물었다. “한국이 매년 북한보다 훨씬 많은 군사비를 쓰면서도 북한을 제압하지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긴 대화 끝에 그 장군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해온 나라입니다. 전쟁을 해서라도 국가의 주권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부족합니다. 국민도,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에 이어 다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전환)를 미루려는 모양이다. 환수 시기가 2년 반이나 남았고, 3차례 점검 계획이 있는데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월 환수 시기를 연기하기 위한 논의를 비밀리에 미국에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각 반대 목소리도 나왔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은 “예정대로 2015년에 전작권을 전환해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노무현 정부가 전작권 환수를 추진했을 때 미군이 제안한 전환 시기는 2009년이었다. 준비가 필요하다는 한국의 의견에 따라 2012년으로 결정됐다. 이것을 이명박 정부가 2015년으로 연기했고, 박근혜 정부가 또 연기하려는 것이다. 국가 간의 약속을 두번이나 깨면서까지 군사 주권을 찾아오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국방비나 군사력은 이미 북한을 훨씬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의 ‘군사 지출’ 자료를 보면, 2012년 한국의 국방 예산은 35조6650억원(318억달러, 1달러=1121원)으로 988억원(9억7340만달러, 1달러=101.5원)인 북한의 33배나 된다. <2012 세계 방산시장 연감>을 보면, 2007~2011년 한국의 무기 수입은 세계 2위다. 또 월드파이어파워 사이트를 보면,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8위인데, 북한은 29위다.
정부와 군은 남북 간의 ‘비대칭 전력’인 북한의 핵무기를 전작권 환수 재논의의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올해 2월12일 3차 핵실험은 경량·다종·다량화 등 새로운 핵 능력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미국의 핵우산 안에 있는 한국을 핵무기로 먼저 공격할 가능성이 없다. 미국이 핵 보복을 한다면 북한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절대 무기’이지만, ‘절대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이기도 하다.
전작권을 가져오지 않으려는 실제 이유는 자신감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 말 이후 한국은 스스로 전쟁을 수행한 경험이 없다. 전투 한번 치르지 못하고 일본에 나라를 넘겼고, 미군과 소련군이 해방시켜줬으며,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도 미군의 지휘를 받았다. 미군 없이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 결정을 주도했을 김관진 국방부 장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등 외교안보 정책의 수뇌부 3명은 모두 ‘육군 대장’ 출신이다. 국가 안보와 관련해 문민 관료들이 나약한 생각에 빠져도, 군인들은 강건한 기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시민들의 상식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육군 대장 출신들이 군사 주권을 돌려받지 않으려고 총대를 멘다.
1차 세계대전 때 강경한 대독일 정책으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끈 조르주 클레망소 총리는 “전쟁은 너무 중요해서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을 보면, 장군들에겐 전쟁뿐 아니라 외교안보 정책도 맡길 수가 없다.
김규원 통일외교팀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965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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