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허모씨를 만난 건 서울역 택시 승강장에서였다. 열차가 막 도착해 택시 승강장으로 큰 가방과 짐 꾸러미를 든 사람 30여명이 몰려오자 허씨의 몸놀림도 분주해졌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어서 오세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유니폼을 입은 그는 다른 직원들과 함께 쉴 틈 없이 택시 문을 열고 승객들의 짐을 실어 올렸다. 목줄기 위로 금세 땀이 흘러내렸다. 어린이 손님에게는 웃으며 손 흔들고, 택시 기사에게도 "안전 운전 하세요. 기사님"이라며 살갑게 인사를 했다. 가슴에서 반짝이는 금색 명찰만큼이나, 땀에 젖은 그의 얼굴이 빛났다. 허씨는 서울역 앞 택시 승강장에서 승객의 짐을 들어주거나 길 안내를 하는 '환승 도우미'다. 지금은 서울역이 허씨의 '일터'가 됐지만, 재작년까지만 해도 서울역은 그의 '집'이었다. 20년 넘게 액세서리 노점상과 공사장 막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허씨는 2006년 공사장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치면서 일자리도 잃고, 모아둔 돈도 다 까먹었다. 2008년부터 서울역에서 노숙인으로 살았다.
"희망이 없었어요. 목표 없이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았지요."
서울역에는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몰려든 노숙인들로 한때 북새통을 이뤘다. 승객들의 불만이 끊이질 않자, 코레일은 2011년 8월 허씨와 같은 노숙인들을 서울역에서 강제로 쫓아냈다.
하지만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노숙인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코레일은 작년 4월부터 방향을 틀어 서울시와 함께 노숙인 일자리 사업을 시작했다. 6개월 단위로 자활 의지가 있는 노숙인들에게 역 주변을 청소하는 시간제 일자리를 주고, 주거비 25만원도 지원했다. 작년 9월엔 이들 중 성실한 노숙인 6명을 환승 도우미로 처음 채용했다. 환승 도우미는 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관광개발의 계약직 직원으로, 연봉이 2000만원쯤 된다. 현재 서울역 환승 도우미 21명 가운데 11명이 노숙인 출신이다.
일자리 사업은 서울역 풍경도, 노숙인들의 삶도 바꿨다. 허씨는 이제 삶의 목표가 생겼다고 했다. 매달 50만원씩 저축하면서 내 집 장만하는 꿈을 꾼다. 팔순 어머니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이달 들어 코레일이 13명을 추가 모집하는데 허씨처럼 성공적인 재활을 꿈꾸며 노숙인이 40명 넘게 지원했다.
코레일 노숙인 일자리 사업은 삼박자가 맞아떨어져 성공한 것이다. 코레일은 일자리를, 서울시는 주거비를 제공했다. 서울시가 주거비로 지원한 월 25만원으로 노숙인들은 서울역 인근 고시원에서 살 수 있다. 매일 샤워하고 반찬 셋 나오는 밥을 먹는 생활을 6개월쯤 하고 나면 주거비 지원이 끊겨도 노숙인들이 고시원 삶을 이어가려고 애쓴다고 한다. 주거가 안정되니 노숙인들도 규칙적인 일에 적응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주거비와 일자리만 지원한다고 노숙인들이 다 재활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6개월간의 지원이 끝난 후에도 이들이 재활 의지를 이어가도록 이들을 잘 아는 사회복지사들이 꾸준히 격려한 덕분이다. 일자리를 통해 자활 의지를 북돋워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노숙인 대책인 것이다.
최종석 사회정책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24/20130624036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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