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의 모호함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특히 정부 부처 수장들의 생각과 이해가 천양지차인 것 같아 그걸 바라보는 국민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서울대 토머스 사전트 교수가 최근 사석에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가리켜 '헛소리'라 일갈했단다. 2012년 할리우드 영화 '프로메테우스'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로봇 데이비드는 "때로는 창조하기 위해 우선 파괴해야 한다"고 말한다. 창조의 '비롯할 창(創)'은 "칼(刀)로 상처를 내다(倉)"란 뜻을 지닌 글자다. 가지런히 정돈된 틀에서는 창조적 해법이 나오기 어렵다. 기존 질서의 휘장을 찢고 걷어내야 비로소 창조의 헛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복잡계 이론에 따르면 기발한 아이디어는 주로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나온다. 정연과 혼돈의 경계, 그것도 혼돈 쪽 언덕에서 창조의 흙먼지가 이는 법이다.
1980년대 초 일본의 한 보안 경비 회사는 종종 현상금 100만원 정도를 걸고 사원들에게 업무 개선 아이디어를 내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가 홀연 상금을 1000배 즉 10억원으로 올리고 미래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그랬더니 그동안 아이디어를 찾는답시고 책상 앞에 앉아 인터넷이나 뒤지던 사원들이 갑자기 대학 시절 지도교수를 찾아뵙고, 퇴근 후에는 집집마다 가족회의가 열리며 전국의 술집은 브레인스토밍 모임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단다. 단돈 10억원의 떡밥에 일본열도 전체가 들썩였다.
나는 창조경제의 모호함과 불안함이 바로 창조의 불씨를 지피리라 생각한다. 정부가 나서서 가지런히 설명해주고 모두가 그 지침에 따라 경제활동을 하면 그건 이미 창조경제가 아니라 관치경제 또는 종복경제(從僕經濟)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모든 걸 예측하고 기획했다면 가히 천재적 발상이다. 장관들이 버벅거리는 덕에 5000만 국민이 덤벼들었다. 정부가 제시한 6개 추진 전략 중 첫째인 '창조경제 생태계'만 확실하게 조성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제발 완장 두르고 진두지휘하지 마시라. 창조 생태계에 확실한 떡밥만 던져주고 저만치 물러서서 5000만 두뇌가 만들어내는 집단 지성의 불꽃놀이를 지켜보시라. 창조경제계의 '나가수'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날 것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17/20130617028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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