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9. 22:45

내가 사는 동네는 구획이 단순하다. 북에는 철길, 남에는 한강이라 동서로 2㎞ 정도 쭉 뻗은 큰길이 유일한 통로다. 이 길의 시작과 끝, 즉 동네 출입구에 큰 교회 두 곳이 있다. 중간에도 교회와 성당이 한 곳씩 있다. 네 곳 모두 성전은 크지만 주차장은 좁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니 주일만 되면 우리 동네는 대형교회의 주차장 노릇을 하기 바쁘다. 교인들의 불법주차 탓이다. 큰길은 물론이고, 아파트 골목길에도 교인들 차량이 들어찬다.

우리 동네엔 지하철이 다닌다. 간선버스도 한 대, 지선버스도 두 대 다닌다. 어디에서든 공공교통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신도가 공공교통 대신 자가용을 몰고 교회에 온다. 주일엔 구청 단속요원도 쉬는지, 딱지를 떼이는 모습도 본 일이 없다. 동네 사람들 역시 교회 일이니 정색을 못 한다. 그저 "천국에 가겠다는 사람들이…" 하면서 혀를 찰 뿐이다.

만약 구청이 예외 없이 딱지를 끊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일로 신앙이야 흔들리지 않겠지만, 일부 신도는 집에서 가까운 개척교회로 옮길 것이다. 결국 우리 동네 대형교회는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지금의 교세(敎勢)를 유지하는 것이니, 소소하긴 하지만 부조리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용어로 표현하면, 어떤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비용을 발생시키는 '외부효과'가 주일마다 우리 동네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민폐는 흔히 궁색한 사람이 여유 있는 사람에게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도 비일비재하다.

얼마 전 서울 도심의 한 대기업이 금연 빌딩을 선언했다. 빌딩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적발되면 승진에 불이익을 주는 규정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골초 직원들이 회사 근처 골목에 모여들어 종이컵에 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그득하게 비벼 끄기 시작했다. 그 골목엔 영세한 술집과 식당이 있다. 그동안 대기업이 치우던 직원들의 재떨이를 인근 영세 상인들이 치우는 것이니 이 역시 요즘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부조리한 일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도 생각했으면 한다. 얼마 전 서울시가 29개 전통시장 현대화를 위해 세금 162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어려움에 부닥친 상인을 돕는 일이니 손뼉을 쳐야 마땅하지만, 손뼉 치기 전에 "왜 세금으로 지원하지?"란 질문을 해봄 직하다. 전통시장이 침체한 것은 대형마트와 대형수퍼의 탐욕 탓이라고 얼마 전까지 흥분하지 않았나? 그런데 돈은 왜 내 주머니에서? 대기업의 경제활동이 발생시킨 외부비용을 결국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니 이 역시 부조리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에서 관찰하면 작지만 비슷한 부조리가 많이 눈에 띈다. 조용한 공간에서 큰 소리로 휴대전화를 걸어 여러 사람의 평안을 깨는 모습, 아이들이 노는 한강공원에서 사이클로 질주하는 위험천만한 모습, 택시를 잡고 있는데 바로 앞에 끼어들어 택시를 채 가는 모습, 인도를 점거하고 내 이익을 주장하는 시위대의 모습까지. 아직 우리 사회는 민폐가 많고 또 익숙한 편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정의(正義)란 외부비용을 내부화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남에게 민폐를 안 끼치는 것이다. 그동안 주민에게 전가한 신도의 주차 문제는 대형 교회가 해결하고, 영세 상인에게 전가한 담배 연기와 꽁초 처리는 기업이 해결하는 것.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재원은 원인을 제공한 대기업이 책임지는 것. 정의란 결국 사회 구성원이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선우정 주말뉴스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14/2013061403053.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