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9. 22:51

1㎞ 구간의 상점 대부분이 한글 간판을 달아 '한국의 거리'로 불리는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 웬징루(遠景路). 이란과 한국의 월드컵 예선 최종전이 열린 18일 저녁, 이곳에 늘어선 한식당 앞 보도(步道)는 야외 응원전을 펼치려는 한국 교민들로 가득 찼다.

한국인과 중국인 일색인 이 거리에 이날 따라 중동 젊은이들이 눈에 띄었다. 광저우에 사는 이란 청년들이었다. 미국의 경제 제재 영향으로 송금마저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데다 중국에서 이란 화폐 가치마저 폭락해 하루하루 고단하게 사는 이들이 이곳까지 왜 찾아왔을까. 이들은 "이란이 싫다고 모욕한 한국 대표팀 감독을 TV로 직접 보러 왔다"며 "4년 전과는 분명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6월 이란 정부가 부정선거 논란 끝에 재집권한 직후 벌어진 한국과의 월드컵 예선 최종전에서 비겨 본선 진출이 좌절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최근 이란 정권이 국민 기대대로 바뀐 것처럼 한국을 꺾고 월드컵 본선의 꿈도 이룰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이들은 "왜 한국 대표팀 감독과 일부 선수가 '이란에서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다' '이란이 싫다' '피눈물을 흘리게 해주겠다'는 말을 해 이란 국민을 자극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란 현지에선 이 발언들이 이란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것으로 여겨져 한류 열풍으로 꾸준히 이어져온 한국에 대한 호감마저 갑자기 식었다고 한다. 한국인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던 하메드 타비시씨는 "문화 차이에 따른 오해에서 비롯된 갈등이었지만, 만약 이란이 이번 경기에서 져 월드컵 본선에 못 나갔더라면 한국에 대한 비호감은 꽤 지속됐을 것"이라며 "신이 두 나라를 사랑해 이란인들의 상한 마음도 풀고 한국도 본선에 나가는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늘날 외국의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 외교'에서 스포츠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나 코칭 스태프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다른 나라 국민에겐 상대 국가를 바라보는 창(窓)이 된다. 이번에 이란 축구 대표팀 감독이 한국에서 보인 추태(醜態)가 논란이 된 것도 대표팀 감독의 행동은 개인보다는 그가 대표하는 국가의 무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는 국가 이미지와 평판을 실시간 대규모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스포츠에서도 '외교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진 셈이다. 하지만 승리를 최우선 가치로 꼽는 관행 탓에 상대 국가와 문화에 대한 배려를 잊는 이들이 종종 있다. 구겨진 국가 이미지가 회복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가는 이들의 관심 밖이다.

이달 초 외교부가 발표한 '국민 모두가 공공 외교관' 프로젝트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과제 중 하나인 '국민 참여형 공공 외교'에서 비롯됐다. 교포 대학생이나 의료봉사단 등이 캐나다·네팔·아프리카 등지에서 현지인들을 도와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린다는 내용들이 담겨있다. 이렇게 우리 국민이 세계 곳곳에서 쌓을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스포츠 분야에서의 공공 외교 중요성을 강조해야 할 때가 아닐까.



곽수근 광저우 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23/2013062302249.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