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0. 00:53

“히틀러가 집시들을 더 충분히 죽였어야 했는데….”

지난달 말 프랑스 서부 숄레 시의 질 부르둘렉스 시장은 이렇게 중얼거렸다가 신세를 망칠 위기에 몰렸다. 100여 대의 캠핑카를 불법 주차해 놓은 동유럽 출신 집시들과의 언쟁 속에서 무심코 한 말이 현장에서 녹음됐고 지역신문에 실려 일파만파를 낳았다. 그는 나치의 ‘반인륜 범죄 찬양’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유죄가 확정되면 5년 이하 징역형에 벌금 4만5000유로(약 6680만 원)를 물게 된다. 그는 소속 정당에서도 쫓겨났다. 

이번엔 일본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던졌다.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일본의 우익 세력이 민주적인 독일 바이마르 헌법을 누구도 모르게 무력화시켰던 ‘나치식 개헌’ 수법을 배우자는 제안이었다. 나치의 개헌은 곧바로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600만 명 대학살의 참극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유럽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소 부총리는 ‘은밀하고 위대하게’ 개헌을 해보자는 취지였겠지만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속내를 널리 알린 셈이 됐다. 

프랑스에서 요즘에야 한류(韓流) 마니아가 생겼지만 일본 문화에 대한 열정인 ‘자포니슴(Japonisme)’의 역사는 19세기부터 이어질 정도로 뿌리가 깊다. 일본을 문화적 경제적 이유로 좋아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과 달리 과거사에 대해 몰역사, 몰염치로 일관하는 평소 일본의 태도를 잘 지적하지 않는 프랑스인들을 이해할 수 없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이유에 대해 전직 외교관 출신인 프랑스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프랑스 영국 등도 식민 지배를 하며 나쁜 짓을 많이 했지만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패전한 독일만 사과를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같은 제국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아픈 곳은 서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유럽 언론들이 아소 부총리의 ‘나치 발언’에 대해서는 태도가 싹 달라졌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아소 부총리의 망언 시리즈에는 늘 ‘나치즘’이 빠지지 않는다”고 꼬집었고,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마치 나치가 정당한 절차를 통해 개헌한 것처럼 발언했는데 실제 나치는 여러 특별법을 만들어 민주주의를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유럽 언론들의 아소 비판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그동안 일본의 정치인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동아시아 침략에 관한 숱한 망언을 쏟아냈지만 ‘나치 망언’만큼 조명을 받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중국 등의 항의는 무시하면서 유럽의 비판에는 잽싸게 발언을 철회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서구 사대주의’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이번에 아소 부총리의 망언에 가장 무거운 비판을 가한 것은 유대인 인권단체인 사이먼 비젠탈 센터였다. 이 센터를 세운 사이먼 비젠탈(1908∼2005)은 50년간 1100명이 넘는 나치 전범을 찾아내 기소해 ‘최후의 나치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인물이다. 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총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잡아내기도 했다. 이 센터는 최근 독일에서 나치 전범 현상수배 작전을 또다시 시작했다. 

어느덧 우리도 ‘나치 미화’는 정신병자의 짓이라 생각하면서 일본 정치인들의 ‘군국주의 미화’ 망언에는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만일 아시아에도 비젠탈처럼 집요한 ‘일제 전범 사냥꾼’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위안부 강제동원, 731부대의 세균전, 난징대학살 등에 관여했던 전범들이 잡힐 때마다 세계인들이 일본의 사죄를 촉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의 참회다. 비젠탈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가해자의 참회 없이 피해자의 용서가 가능한가.”


전승훈 파리 특파원



http://news.donga.com/3/all/20130805/56839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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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0:52

여행 안내서 '론리 플래닛'은 말뜻처럼 '외로운 행성'을 떠도는 여행객에게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지난 40년간 1억권을 찍었다. 영·불·독어를 포함해 중국·한국어까지 9개 언어로 낸다. 직원이 450명, 필자가 200명이다. 책에 광고를 안 싣고 현장 취재 때 공짜 식사·숙박도 사절이다. "정보의 객관성을 해칠까 걱정한다"고 했다. 필자는 반드시 사전 연구를 하고 "직접 발로 밟고 먹어본 곳만 지도에 표시한다"고 했다.


▶'론리 플래닛'은 70년대 초 태어났다. 북아일랜드 출신 스무 살 처녀가 런던 공원에서 스물네 살 남자와 눈이 맞았다. 둘은 이듬해 결혼하고 신혼여행으로 유럽·아시아·호주를 돌아다녔다. 가진 돈도 다 써버렸고 몸도 지쳤지만 행복했다. 친구들이 책을 내라고 성화였다. 둘이 부엌 식탁에서 여러 날 밤샘 끝에 만든 여행서가 '값싸게 아시아 여행하기'다. 1500부를 찍었다. 둘은 다른 책도 내면서 규모를 키워갔다. 론리 플래닛 창업주 휠러 부부 얘기다.


▶한국에 관한 론리 플래닛의 평가는 좋지 않다. 2009년 자기네 사이트에 '가장 싫은 도시' 9개 중 서울을 셋째로 꼽았다. '서울은 무질서하게 뻗은 도로, 옛 소련 스타일의 콘크리트 아파트, 끔찍한 대기오염에 영혼도 마음도 없는 곳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숨 막히는 단조로움에 알코올 중독자가 돼간다.' 콘크리트 도로를 불평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영혼과 마음이 메말라 주정뱅이가 돼간다는 대목은 어이가 없었다. 서울시가 대응한다 했지만 뒷소식은 없다.


▶조선일보 출판팀이 '론리 플래닛 한국'(2013)을 꼼꼼히 뜯어봤다. 현대사 대목에 '6·25 때 중공군이 개입한 것은 사대주의 때문'이라고 했다. 대외 관계를 쓰면서 '한국은 이웃 국가와 잘 지내지 못하는 나라'라고 했다. '인종 문제' '무질서한 정부' 대목에도 비꼬고 얕잡아 보는 묘사가 가득했다. 서울만 따로 떼어낸 책 '론리 플래닛 서울'(2012)은 '한국은 AD 918년 고려가 통일했다'고 썼다. 통일신라가 없다.


▶서울시가 2010년 1억4000만원을 들여 영국서 찍은 여행서 '스타일 시티 서울'은 더하다. 1978년 지은 세종문화회관을 '기괴한 건물'이라면서 '1980년대까지 한국 건축은 평양 건물을 따라 지은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는 해외에서 찍는 한국 여행서 18종을 지원하고 있다. 몇몇은 '론리 플래닛'과 필자가 겹친다. 서울시는 그런 사실조차 사전에 알아보지 않았으니 제 돈 들여 제 얼굴에 먹칠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04/20130804019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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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0:51

"독일 바이마르 헌법을 아무도 모르게 바꾼 그 수법을 배우면 어떤가"라는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의 망언을 접하고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할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1939년 8월 22일 히틀러는 독일군 사령관들을 모아놓고 "사람들을 주저없이 많이 죽이라"고 했다. 혹시라도 장군들이 망설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덧붙였다. "아르메니아인들의 멸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요새 누가 있소?" 1차대전 중 터키가 아르메니아인 100만명을 학살했다는 비난이 일었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가 거의 없어 단죄 노력이 흐지부지됐던 사실을 거론한 것이다. 이웃 나라, 다른 민족에게 어떤 만행을 저지르든 나중에 오리발을 내밀면 된다는 얘기였다.

아소 부총리가 웬만한 세계사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알지 못하는 바이마르 헌법 개정 과정을 언급한 것을 보면 '일본 정치인의 망언이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은 잘못된 진단이다. 아소에게 부족한 것은 역사 지식이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을 상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라 해야 맞는다.

얼마 전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 "존경받고 있는 위대한 인물이다. 그점을 한·일 양국이 존중해야 한다"고 망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이토가 초대 조선통감을 지냈고 한반도 침략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역사를 몰랐을 리 없다. 아베 총리에게도 문제는 역사 지식 부족이 아니라 그의 뇌에 이토 때문에 반세기 가까이 우리 민족이 겪은 고통을 상상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역사를 똑바로 배우라는 요구만으로 이런 사람들을 개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국제사회가 경고하면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이웃 나라에 상처를 주는 행동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그들에게 남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시를 보다가 인간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이웃집 토토로' 원화들 앞에서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나선 언니, 퇴근하는 아빠를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자매를 화제 삼아 이야기꽃을 피운 뒤였다. 일본 만화영화 주인공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그것은 미야자키 감독의 만화가 국적과 상관없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지향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지난달 '열풍'이란 잡지에 "아베는 생각이 모자라는 인간이다. 위안부는 확실히 사죄하고 제대로 배상해야 한다"는 말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상실한 아베의 역사관을 비판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젊은 날의 상처와 극복'이란 보편적 주제를 내세워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가 올해 발표한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지금 한국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하루키는 등장인물 입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기억을 어딘가에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얼마 전 동아시안컵 축구 한·일전에서 우리 응원단이 내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플래카드 내용과 같은 취지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우리 응원단을 향해 '한국인의 민도가 문제'라고 망언할 게 아니라, 일본 작가와 우리 응원단이 어째서 역사에 대해 같은 말을 했는지 따져봤어야 한다. 아베 총리와 아소 부총리도 마찬가지다.



김태훈 문화부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04/20130804019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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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0:40

[신세계 부산 센텀시티점, 테마파크 '주라지' 오픈… 백화점의 新성장동력 찾기]

-테마파크 개장 효과
옥상 공원에 회전목마, 공룡 모형·분수대 등 설치… 아동 상품·식당 매출 급증
-끝없는 새로운 시도
스파랜드·아이스링크 등 휴식 취할수 있는 명소 만들어… 가족 단위 고객 잡는 전략



지난 8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옥상. 김민수(32·회사원·경남 양산)씨는 아장아장 걷는 22개월 딸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김씨는 "지난주에는 서울 롯데월드도 다녀왔다"며 "백화점에 테마파크가 생겼다기에 와 봤는데 애가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지난 6일 국내 백화점 업계 최초로 신세계가 옥상에 문을 연 테마파크의 이름은 '주라지'로, 동물원(zoo)과 공룡시대인 쥐라기(Jurassic)를 합성한 말이다.

신세계백화점이 놀이공원인 에버랜드에 도전장을 냈다. 물건만 파는 전통적인 백화점 업태가 완전성숙기에 들어선 만큼, 백화점을 소비자가 물건을 사는 장소가 아니라 놀이공원처럼 시민이 한번 가면 온종일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바꿔, 자연스럽게 매출을 높이는 발판을 만들겠다는 장기 포석을 시작한 것.

지난 6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옥상에 생긴 테마파크‘주라지’에서 시민들이 가족과 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남강호 기자
 지난 6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옥상에 생긴 테마파크‘주라지’에서 시민들이 가족과 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남강호 기자

센텀시티점은 도전의 시작이다. 우선 규모가 크다. 지하 4층·지상 14층 규모로 영업 면적이 3만8250평이다. 단일 점포로는 세계 최대로 이미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옥상 공원만 1200평이다. 백화점은 원래 잔디밭만 있던 옥상에 거대한 공룡 모형 10여개, 해적선, 아프리카 마을과 동물 모형, 회전목마, 분수대 등을 설치했다. 초등학생 저학년이나 유아가 좋아할 만한 요소만 골라서 만든 공원이다.

비판매시설 비중이 높을수록 매출 성장률이 높아

주라지가 설치되면서, 센텀시티점은 남녀노소 누구든지 와서 쇼핑을 하지 않고도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지역 명소가 됐다. 이미 센텀시티점에는 다른 백화점에는 없는 요소가 많이 있다. 건물 건설 과정에서 온천이 발견되자, 신세계는 3개 층에 찜질방과 온천을 합친 스파랜드를 만들었다. 그 위층에는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스링크가 있다. 갤러리와 문화센터는 물론이고, 10개 상영관이 있는 극장이 있다. 4개 층에 걸쳐 실내 골프연습장과 스포츠클럽도 있다.

일반적인 백화점의 경우 영업 면적에서 판매 시설 아닌 비판매 시설 비중은 10%가 채 안 되지만, 센텀시티점은 35%에 달한다. 신세계 백화점 9개 직영 점포 가운데 가장 높다.

의외의 사실은 고객 편의 시설 같은 비판매 시설의 비중이 높을수록 매출 성장률이 좋다는 것이다. 9개 신세계 점포 가운데 비판매 시설의 비중이 20%를 넘는 곳은 경기점(20%), 의정부점(22%)과 센텀시티점이다. 세 점포의 올 상반기 매출은 작년 상반기에 비해 평균 4~25% 성장했다. 나머지 6개 점포 중 5개는 매출이 줄었고, 한 개는 2% 성장하는 데 그쳤다.

주라지에서는 부산전시컨벤션센터(BEXCO)가 내려다보인다.
 주라지에서는 부산전시컨벤션센터(BEXCO)가 내려다보인다. /남강호 기자

지난 6~8일 주라기를 방문한 고객은 2만명으로 잔디밭만 있을 때의 8배였고, 아동 관련 상품과 식당가 매출은 각각 11%·24% 늘었다. 김봉수 센텀시티 점장은 "테마파크 개장의 효과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비판매 시설의 비중이 높을수록 매출에서 30대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올 상반기에 비판매 시설의 비중이 20%가 넘는 경기·의정부·센텀시티 3개 점포 매출에서 30대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모두 30%를 훌쩍 넘었다. 나머지 점포 중에서는 본점만 30%로 턱걸이를 했을 뿐이다. 아이를 가진 30대 고객의 비중은 백화점에서 장래 성장성의 지표 중 하나로 쓰인다.

성장 힘들어진 백화점

백화점의 변신은 시장이 성숙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전국의 백화점은 100여개로 추정된다. 인구 50만명당 1개 점포가 있는 셈으로, 백화점 업계에서는 이미 포화 상태로 보고 있다.

또 옛날과 달리 인터넷몰·아웃렛·모바일몰 등 경쟁 유통업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또 해외 인터넷쇼핑몰에서 명품을 주문해서 택배로 받고 면세점 쇼핑을 위해 해외여행을 가는 소비자도 많아, 백화점은 해외 업체와도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백화점들은 고객의 삶 자체를 끌어들이는 형태의 점포를 앞다퉈 짓고 있다. 신세계는 이런 형태의 점포를 ‘LSC(Life Style Center)’라 이름 붙였고, 롯데백화점이나 현대백화점도 복합몰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시설을 곳곳에 짓고 있다. 고객 편의 시설이 많으면 단순한 집객 영업과는 차원이 다른 영업을 할 수 있다. 이른바 미끼상품을 사러 백화점에 가던 고객은 미끼상품이 없으면 백화점에 가지 않지만, 공원과 스파에 자주 오는 고객은 지속적으로 백화점에 온다는 뜻이다.

오세조 한국유통물류정책학회 회장(연세대 교수)은 “고객 편의 시설을 늘리는 것은 가족 단위 고객을 붙잡는다는 점에서는 효과적”이라며 “단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가 생길 수는 있다”고 말했다.

장재영 신세계 대표는 “이제 경쟁 상대는 에버랜드나 야구장”이라며 “2016년 문을 여는 동대구 복합환승센터와 하남 유니온스퀘어, 2015년 완성되는 김해 여객터미널 민자사업에 들어가는 신세계 점포는 센텀시티점보다 더 고객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도록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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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0:22

한 달 전 내 아내는 자동차 사고 위기를 모면했다. 오른쪽 앞바퀴 바람이 절반 이상 빠진 상태로 달리다가 신호 정지 중이었다. 이때 길 가던 한 중년 남자가 다가와 차 유리창을 두드리며 “타이어 바람 빠졌어요”라고 알려줬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고 깜짝 놀랐단다. 바퀴 휠이 도로에 거의 닿을 정도였다고.

나도 얼마 전 아파트 상가 지하주차장에서 “저기요, 전조등 켜져 있네요”라고 친절을 베풀었다가 겸연쩍었던 적이 있다. 차주인 아줌마는 “자동으로 꺼져요”라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물론이고 내 주변에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오지랖의 원래 뜻은 겉옷의 앞자락이다. 그런데 ‘오지랖이 넓다’는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살짝 비꼴 때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는 ‘나 몰라라’ 하는, 오지랖이 너무 좁은 세태가 오히려 문제가 아닐까. 오지랖이라는 말에서는 왠지 모르게 정(情)과 배려가 느껴진다.

반면 일본인들은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기 전에는 남의 일에 나서는 것을 금기시한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타인이 자신의 영역에 허가 없이 침범하는 것을 달갑지 않아 한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 취재를 위해 일본에 갔다가 살벌한 광경을 목격했다. 상점에서 쇼핑 중이던 한 일본 아줌마가 어린 딸의 뺨을 후려쳤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칭얼대는 딸에 대한 따끔한 현장교육이었다. 말로만 듣고 글로만 읽었던 일본의 이른바 ‘메이와쿠(迷惑·민폐) 문화(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의 생생한 사례였다.

한국과 일본은 골프장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한국 골프장은 도시의 빌딩 숲을 탈출해 자연의 품에 안긴 골퍼들로 활기가 넘친다. 클럽하우스 식당과 그늘집은 호탕한 웃음소리와 쾌활한 정담으로 왁자지껄하다. 반면 일본 골프장은 ‘조용함’ 그 자체다. 마치 ‘정숙(靜肅)’이라는 경고판이 온 사방에 붙어있기라도 한 듯하다. 

골프장 캐디도 다르다. 한국 캐디는 한마디로 오지랖이 넓다. “OB 났는데 멀리건 한번 주시죠.” 낙망한 골퍼의 수호천사로 나서며 나머지 동반자들을 단숨에 인심 후한 골퍼로 탈바꿈시킨다. 이는 일본 캐디에게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정다운 모습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렸을 때 강조하는 덕목은 나라마다 독특하다. 미국은 ‘정직해라’, 중국은 ‘부자가 되어라’, 일본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 한국은 종합 완결판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여기서 궁금한 것 한 가지. 일본인들의 사회윤리 교육의 핵심인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의 주요 단어 ‘남’ 속에 다른 나라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가. 

국제 스포츠 경기 때 일본 응원단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계속 사용해 태평양전쟁 피해국을 자극하고 있다. ‘독일 나치처럼 비밀리에 개헌하자’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나치 망언’ 등 일본 각료와 정치인들은 그릇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오만한 언행을 수십 년간 쏟아내고 있다. 아소 부총리는 해외 비난이 잇따르자 사흘 만에 ‘나치 망언’을 철회했다. 

상점에서 소란을 피운 어린 꼬마는 엄마로부터 벌로 뺨 한 대를 맞았다. 세계적인 공분을 일으킨 아소 부총리에게는 어떤 벌이 합당할까. 일본 야당은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지만 아소는 거부했다. 자신의 발언을 취소했다는 것은 잘못을 인정한 것이고 그 발언이 국제적인 비난을 샀다면 엄청난 ‘메이와쿠’다. 이를 종합적으로 감안컨대 이후 ‘메이와쿠 문화’를 소개하는 글에는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이 꼭 필요해 보인다. “메이와쿠오 가케루나(迷惑を 掛けるな)=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단, ‘남’에 외국인은 해당되지 않음.”


안영식 스포츠부장



http://news.donga.com/3/all/20130814/57032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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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0:21

어느 고등학교 국어 수업 시간.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고 단답식 10문제를 푼 뒤 짧은 감상을 쓰는 수행평가가 진행됐다. 첫 번째 문제는 ‘이 이야기의 시대 배경은 언제인가?’였다. 그런데 ‘일제 시대’라고 답한 아이들이 여럿 나왔다. 선생님이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사람이니까 일제 시대 아니에요?” 또 다른 아이는 이순신이 실제 인물이냐고 물었다. “광화문에 가면 장군 동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순신 장군 동상이지요. 실제 인물입니다.” 선생님이 진지하게 설명하자 새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심청이는요? 춘향이는요?”

웃자고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의 한 전문계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지낸 조혜숙 선생님의 교단일기 ‘울퉁불퉁한 날들’에 나오는 12월 어떤 날의 기록이다. 그렇다고 조 선생님이 대학 입시와 거리가 먼 전문계고의 낮은 학업 수준을 개탄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그의 교단일기는 답답한 현실과 아이들의 고민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 때론 울컥하게 만든다. 일기 말미에 ‘아무것도 안 읽는 것보다는 만화책이라도 읽는 게 낫다’며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유익한 만화책이나 많이 발간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적기도 했다.

‘우등생 만드는 습관의 힘’을 쓴 조일민 씨는 오랫동안 입시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 ‘공부 잘하는 아이’와 ‘공부 못하는 아이’를 구분 짓는 몇 가지 특징을 찾아냈다. 그중 하나가 어휘력. 중간고사를 앞두고 중학교 3학년 국사 과목을 정리하던 중 세종대왕이 변방에 자주 침입하던 여진족을 군사력으로 제압하거나 회유하는 강온 양면정책을 썼다는 대목이 나왔다. “선생님, 변방이 뭐예요?” “강온 양면정책 그건 뭐예요?” “회유하다에서 회유가 뭐예요?” 사건의 시대적 배경이나 인과관계를 알아보기는커녕 어휘 설명만 하다가 시간이 다 흘렀다. 조세, 징수, 감찰, 호구, 풍기 등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주요 단어 어느 것 하나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이러니 고등학생의 70%가 6·25전쟁이 북침인지 남침인지 헷갈리는 이유가 사실 어휘력 부족 때문(상당수가 북한이 남한을 침범한 것이 ‘북침’인 줄 알고 있었다)이라는 게 이해가 된다.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중요한 과목은 평가기준에 넣어야 한다”고 말한 이후 한국사를 대입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최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초중고교, 대학의 교원 1630명을 대상으로 학생들의 한국사 인식 수준이 심각하게 저하된 이유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62.9%가 ‘수능에서 선택과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려 하자 다른 사회과 교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2014학년도 수능 사회탐구 영역은 한국사·동아시아사·세계사(역사계열), 생활과 윤리·윤리와 사상(윤리계열), 한국지리·세계지리(지리계열), 사회문화·법과 정치·경제(일반사회계열)까지 총 10개의 선택과목이 있다. 수능에서는 이 중 2과목을 골라 치르는데 만약 한국사가 필수가 되면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9개 과목이 경쟁하는 꼴이 된다. ‘시험이라도 쳐야 공부한다’는 논리에서 볼 때 선택되지 못한 과목들은 학교에서도 찬밥 신세일 게 뻔하다. 사회과 교사들의 집단 반발을 밥그릇 싸움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여기서 ‘이렇게 중요한 과목’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국어를 잘 못해 어휘력이 달리는 아이들이 역사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 듯, 세계사의 흐름을 모르고서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사람이니까 임진왜란이 일제 시대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중요한 과목’은 한국사일까, 세계사일까, 아니면 국어일까.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http://news.donga.com/3/all/20130718/56514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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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0:18

“엄마, 우리 프랑스어 선생님 되게 부자야.”

프랑스인 선생님 댁으로 프랑스어를 배우러 다니는 초등학생 조카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들갑이었다. 수다를 떨고 있던 우리 어른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이에게 쏠렸다.

“어떻게 해놓고 사시는데?”

부촌으로 알려진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 사는 프랑스 사람은 얼마나 잘해놓고 사는지 궁금했다. 어른들의 뜨거운 반응에 신이 난 아이가 부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선생님 집에는 고양이가 세 마리나 있고, 어항에 금붕어가 다섯 마리나 있어요!”

한국인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에 대한 설문조사를 읽어보니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월급 500만 원 이상, 자동차는 2000cc급 이상, 예금 잔액 1억 원 이상, 해외여행 1년에 한 번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외국어 하나, 스포츠 하나, 악기 하나를 할 수 있고, 남과 다른 요리 레시피 한 가지를 갖고 있으며,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는 것을 꼽았다. 영국과 미국에서도 책상에 비평지 한 권이 놓여 있을 것, 사회적 약자 돕기 등 우리처럼 경제력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일본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는 초등학교 교사였다가 결혼 후에 남편과 잡화상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런데 잡화상이 날로 번창하면서 이웃의 가게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고는 가게 규모를 줄였다. 덕분에 시간의 여유가 생겨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4년 아사히신문 1000만 엔 현상공모 소설에 ‘빙점’이 당선돼 소설가의 삶을 살게 되었다. 

가게가 번창하여 돈을 많이 버는 와중에 이웃의 작은 가게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동했다. 만약 그녀가 돈 버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계속 가게 확장에 매달렸다면 부자는 될지언정 유명한 소설가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진짜 부자에 대한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진정한 부자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지 않고, 만 석 이상으로 재산을 불리지 않으며,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경주 최 부잣집의 전설이다.

물질은 바닷물과 같아서 많이 들이켜면 들이켤수록 더 갈증이 난다고 했다. 미우라 아야코처럼 돈 버는 속도를 조금 늦추면 다른 삶도 꿈꾸어 볼 여유가 생기고, 이웃의 작은 가게도 살아남는다. 평생 아파트 평수와 은행 잔액 늘리는 일에 몰두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참으로 가난한 삶이다. 

가끔 하모니카를 불어주고 자신만의 요리를 해주는 아빠, 아이를 데리고 봉사활동을 함께 가는 엄마를 상상해본다. 그들이 중산층이다. 게다가 고양이도 기르고 금붕어도 있고 화분에 꽃이 만발해 있다면 아이의 말대로 그건 진짜 부자다.

윤세영 수필가



http://news.donga.com/3/all/20130704/56279302/1


Posted by 겟업
2013. 9. 20. 00:15

미국의 100달러짜리 지폐에 얼굴 사진이 실린 '벤자민 프랭클린'의 기록물에 나오는 이야기다. 1744년 버지니아 주정부와 6개 인디언 부족 사이에 체결된 랭카스터 조약에서 버지니아 대표 위원들이 인디언 부족장들에게 호의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만약 6개 부족의 추장들이 그들의 아들을 백인 대학에 보내길 원한다면 정부는 그들이 백인의 학문을 전부 배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인디언 대표가 대답했다. "당신네들의 호의적인 제안은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과거 경험에 비추어볼 때 백인들이 가르치는 대학 교육을 받은 우리 젊은 인디언들은 말타는 법도 미숙하고 숲에서 생활하는 방법도 다 잊어버리고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내는 인내심마저 사라진 나약하기 그지없는 낙오자가 되어 돌아 왔습니다. 통나무로 집짓는 방법도, 사슴을 잡는 방법도, 그리고 적의 습격에 대응하는 용기도 모두 잃어버린 한낮 무기력한 젊은이가 된 것입니다. 만약 당신네 백인들의 자녀를 우리 인디언 마을로 보내준다면 우리는 그들의 교육을 책임질 것이며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쳐 어른으로 키워주겠습니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대할 때면 요즘 학생들은 이전의 학생들에 비해 도전정신과 생활 속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많이 떨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대학 입시에 종속된 학교 교육이 자기주도적 학습은 강조해도 정작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생활 지도엔 한계를 드러낸다. 학교 급식에서 생선 조림이 나오는 날이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생선 가시를 발라내는 성가심 때문에 먹던 밥을 남기고 식탁을 떠난다. 가정에서 생선 가시를 발라주는 어머니의 보살핌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가난 속에서 단련 받은 이전의 학생들과는 달리 요즘 학생들은 교실의 더위와 추위를 좀처럼 참아내질 못한다. 쾌적한 아파트 주거생활이 가져다 준 나약함이 아니겠는가. 

고등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에 신입생 수련회가 있는 날이면 학과 사무실 조교들은 할아버지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게 된다. 대학생 손자 손녀의 행선지와 일정을 챙기는 문의 전화인 것이다. 매학기 수강신청 기간이 되면 수많은 대학생 엄마들이 인터넷을 통한 자녀 수강 신청을 대신해 주는 현상은 이제 일상사가 돼버렸다. 엄마가 대신해준 수강 신청 과목을 자녀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까먹어 출석부에 이름이 올라있는 학생이 2, 3주가 지나도록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버지의 무관심. 이들 3대 조건을 통해 대학문을 통과한 세대들의 모습이다. 

그렇게 학교 생활을 해 가던 젊은이들을 모아 병영 생활과 군사 훈련을 시켜야 하는 군 관계자들은 병사들의 과다 체지방과 약한 근육을 우려하고, 상관의 명령보다는 엄마의 명령에 길들여진 '마마보이'들을 데리고 유사시 적과의 대치를 해야 할 판이다. 

한 때 영국의 과학자 알프레드 윌리스가 참나무산 누애나방이가 고치를 뚫고 나오는 과정을 관찰하게 되었다. 나방이는 누애고치 안에서 작은 구멍 하나를 뚫고 그 틈을 빠져 나오기 위한 고통을 한나절이나 참아내야 했다. 작은 구멍을 빠져 나오는 나방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과학자 일프레드는 예리한 가위로 누애고치의 구멍을 넓혀 주기도 했다. 그런데 스스로의 힘으로 고치를 빠져나온 나방의 경우는 예쁜 색깔로 변해 훨훨 날아가는 것과는 달리, 도움을 받아 편하게 구멍을 빠져나온 그 나방은 몇 번의 날개를 퍼덕이다 날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요즘 점차 나약해져가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산란의 꿈을 안고 세찬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의 힘찬 도전, 위험을 무릎쓴 독수리의 새끼훈련 방식을 떠 올리게 된다. 

지금 우리네 가정에서의 자녀 교육 방식이나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 내용이 도전하는 연어 보다는 어항속 금붕어를 기르고, 용맹한 독수리 대신 병아리를 키워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오성삼 인천 송도고 교장 ㆍ전 건국대 교육대학원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7/h201307182100302437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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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0:06

난 6월 7일 조선일보의 한 귀퉁이에 실린 기사다. 58세의 어머니와 스물두 살 딸 둘이 살았다. 남편이자 아버지와는 오래전 사별했다. 서울 한곳의 상가 2층 구석 골방이 모녀의 집. 어머니는 파출부 일을 하고, 딸은 취직해 돈을 보태는데도 살아가기가 버거웠다. 어머니는 신용불량자가 됐고, 딸은 카드 돌려막기를 시작했다. 카드는 13개로 늘었다. 빚은 3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골방 월세도 여덟 달을 못 냈다.

어느 날 자정 무렵 어머니는 일에 지쳐 잠에 떨어진 딸을 바라보았다. '내 이 비참한 삶을 네가 반복하게 할 수는 없다.' 이것이 어머니의 결심이었다. 어머니는 딸의 목에 스카프를 감았다. 딸이 숨진 후 어머니도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밖으로 뛰어나가 죽으려는데 딸이 "엄마, 죽지 마"라고 외치는 듯한 환청이 들려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어머니가 방으로 뛰어들어와 딸을 안고 흔들었지만 이미 딸은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경찰에서 "죽여달라"고만 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아무리 적은 수입이라고 해도 두 사람이 버는데 이렇게 궁지에 몰릴 수 있는 것인지 답답했다. 이 모녀에게 다른 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먹고살기가 너무나 힘들었던 것만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알려지지 않은 일도 무수히 많다. 이런 비극은 다른 사람들 가슴에도 상처를 남긴다.

2년 전 서울 한강의 어느 다리에서 18세 소녀가 몸을 던진 사건도 왠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시골에서 혼자 상경해 밤낮 없는 아르바이트로 매달 80만원을 벌던 아이였다. 소녀의 휴대폰에는 혼자 먹고살면서 그 80만원이 어떻게 사라지는지가 간단히 적혀 있었다. 휴대폰에 남은 마지막 문자는 '힘드네요.' 살기가 힘든 사람들의 절망과 고통을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알까. "살다 보면 길이 있다"는 상투적인 위로가 그들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을까.

모녀와 18세 소녀의 비극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중에 어느 다른 죽음의 소식을 듣게 됐다. 지난 24일 휴가 중에 불의의 심장마비로 숨진 광동제약 최수부(78) 회장의 얘기다. 최 회장을 전혀 모르지만 우연히 그가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사람이란 얘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겨 그가 남긴 자서전을 구해 읽어보았다.

최수부는 열두 살 때 여덟 식구의 생계를 책임진 소년 가장이 되었다. 아버지는 병으로 쓰러지고 제대로 먹지 못한 다섯 살 막내가 감기 끝에 죽은 뒤였다. 초등학교 4년 중퇴.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고, 강가에서 참외를 길러 팔았다. 지쳐 잠에 떨어진 최수부가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방바닥에서 얼굴이 떨어지지 않았다. 힘을 주어 떼려고 하니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실눈을 뜨고 보니 뭔가 시커먼 것을 사이에 두고 방바닥과 오른 뺨 전체가 붙어 있었다. 밤새 흘린 코피가 굳은 것이었다. 어머니가 물로 20~30분을 닦고서야 최수부의 얼굴은 바닥에서 떨어졌다. 얼마나 많은 코피를 흘렸는지 세숫대야의 물이 검붉었다. 그러고서도 아침에 시장에 나가야 했다. 이때 그의 나이 열세 살이었다.

최 회장은 성공했다. 세상 돈을 다 다룬다는 얘기만 듣고 재무부 이재국장 방으로 약을 팔러갔다가 쫓겨나고, 국회 상임위원회가 잠시 정회한 틈을 타 의원들에게 약 광고지를 돌렸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내 의원 생활 십수 년에 국회 회의실에 뭘 팔러 온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고 했다. 성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일에 지치고 피로에 찌들어 잠에 골아 떨어져 있다. 한 어머니는 거기서 절망을 보고 삶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다른 아이는 굳은 코피를 뜯어내고 살기 위해 또 시장으로 나갔다.

흔한 성공 스토리를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수부는 자서전에서 상투적인 인생 교훈을 하나도 적지 않았다. 그의 책은 이렇게 시작했다. '성공은 살아남은 자의 것이다.' 최수부는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인생의 기회는 버티고 견디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이것이 내가 70년 이상 배운 삶의 가장 큰 깨달음이다"고 했다. 아마도 그는 '살아남는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이다'고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최수부는 "나는 모든 것을 그냥 내 운명이려니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에게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굴복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운명에 보란 듯이 맞서 싸웠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인생의 전장(戰場)엔 화려한 햇살이 비치는 날이 너무 적은 것만 같다. 그러나 운명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지언정 결코 무릎을 꿇지는 않는다. 최 회장은 이렇게 호소했다. "나 역시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이상 세상을 등지고 싶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내 얘기를 듣고 많은 사람이 이를 악물고 세상을 버티며 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양상훈 논설위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30/2013073003723.html



Posted by 겟업
2013. 9. 20. 00:03

지난 주말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6·25 정전을 기념하는 '전승절' 열병식이 열렸다. 군인들은 무릎을 굽히지 않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독특한 걸음걸이로 행진했다. '교차 차기'다. 다리를 곧게 편 채 지상 60㎝까지 올렸다가 내려 땅바닥을 힘껏 때리면서 그 반동으로 다른 발을 들어 올리는 방식이다. 무더위 속에 하루 종일 도로 바닥을 차다 보면 내장이 뒤틀려 장파열이 일어나고 기절하는 군인도 생긴다. 북한군 출신 탈북자는 "멀쩡한 사람도 병신 돼 나오는 게 열병식"이라고 했다.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아리랑축전은 북한 청소년의 피눈물로 완성된다. 초·중·고생 2만명이 여섯 달 동안 학교도 안 가고 정교한 카드 섹션을 연습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똑같은 동작을 수천, 수만 번 반복한다. 한 명이라도 틀리면 가혹한 체벌을 당한다. 기계체조를 하는 아이들은 쌓던 인간 탑이 무너져 다치기 일쑤다. 공연 날엔 화장실에 갈 수 없어 하루 전부터 물을 못 마시게 한다. 공연 중에 소변이 마려우면 그 자리에서 봐야 한다. 그래서 카드 섹션장엔 지린내가 진동한다.


▶아리랑 축전에는 평양과 주변 지역 초·중·고생 가운데 돈 없고 '빽' 없는 아이들이 동원된다. 당 간부와 특권층 부모는 질병진단서나 뇌물로 아이를 빼돌린다. 국제인권단체는 아리랑축전을 대표적 아동 학대 사례로 꼽지만 북한은 체제 선전과 외화 벌이 수단으로 삼는다. 2005년에는 우리 방문단 7500명이 1100달러(1박 2일)~1500달러(2박 3일)씩 들여 공연을 관람했다. 2007년엔 노무현 대통령도 지켜봤다.


▶북한 주민들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대규모 행사에 동원된다. 작년 12월만 해도 김정일 사망 1주기와 애도 행사, 김정숙 탄생 95주년 공연,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 기념, 미사일 발사 축하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올 2월 말 핵실험 성공 축하 행사에는 초·중·고생이 동원돼 거리 행진을 벌였다. 대학생들은 양복과 한복을 차려입고 저녁마다 광장 무도회에 나가야 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군중 동원의 뒷모습들이 전승절을 맞아 평양에 들어간 서방 취재진 카메라에 잡혔다. 그제 저녁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전승절 경축 야회(夜會)에 동원된 관람객들이 하품을 하거나 조는 사진이 외신을 타고 바깥세상에 공개됐다. 전승절 열병식에서 실신한 병사가 업혀 나오는 사진도 나왔다. 북한 형법은 '상급으로부터 받은 직무를 태만히 할 경우 2년 이하 노동단련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사진에 찍힌 주민과 군인이 무사할지 걱정스럽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30/2013073003716.html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53

법, 예산, 인사.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3가지 요소란다.

대구대 홍인기 교수의 표현이다. 즉 ‘법을 만들고, 돈을 주고, 사람을 뽑아서 일을 시킬 수 있어야’ 뭔가를 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떤 법을 만들고, 누구를 뽑아서 어디에 돈을 쓸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공약이니 정책이니 하는 것이 다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요새 가장 뜨는 용어는 뭐니 뭐니 해도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다. 유행은 패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책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패스트패션’까지는 아니지만 ‘패스트정책’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그리고 유행하는 정책과 단어에 있어서만큼은 이효리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트렌드세터’들이 바로 공무원들이다.

지난 정부 때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걸었던 기관들은 이제 ‘창조경제’의 화신이 되어 가고 있다. 기존 정책의 목표도 제대로 실현된 게 없는데, 정책 목표는 정부나 윗사람이 바뀔 때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거듭한다. 그러니 5년마다 변신을 거듭해야 하는 공무원들의 특기가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나 용어를 기존 정책에 집어넣어 문서를 바꾸는 일종의 ‘판갈이’인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것도 일종의 경쟁이라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문화융성 시대…’ 등의 문구를 토론회 주제에 넣는 기관은 애교 수준이다. 부서 이름을 창조교통융합으로 개편한 기관도 있으니, 그야말로 적응력 하나만큼은 창조경제의 첨병이라 할 만하다.

3대 국정과제에 ‘문화융성’이 포함되고, ‘문화재정 2%’가 목표치로 제시되는 한편 대통령 소속의 문화융성위원회도 꾸려졌다고 한다. 문화계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인데도 슬며시 걱정부터 되는 건 왜일까. 지난 정부 시절 ‘엘 시스테마’(마약과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베네수엘라의 오케스트라 교육 시스템)의 성공 사례가 회자되면서 한국에서 벌어진 한 편의 코미디 같은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엘 시스테마’를 다룬 영화가 개봉되고 각종 프로그램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자 청와대,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문화관광체육부, 지방정부 등 온갖 곳에서 ‘한국형 엘 시스테마’를 외쳐 댔다. 그놈의 ‘엘 시스테마’가 뭐길래 이 난리인지 곱슬머리가 매력적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마저 미워질 지경이었다. 당시 전국의 ‘문화’자 붙은 기관들은 오케스트라 사업 계획을 시행하거나 검토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 덕에 지난 5년간 전국에 생긴 오케스트라만 200개가 넘는단다. 지금 그 오케스트라 중에 몇 개나 남아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사실 이런 정책은 한두 개가 아니다.

‘쪽지 예산’과 ‘프로젝트성 예산’으로 집행되는 정책일수록 유행에 민감하다. 일단 유행한다 싶은 아이템은 끼워 넣고 보는 식이다. 공공미술, 커뮤니티 아트, 재래시장 살리기, 간판 바꾸기, 사회적기업, 경영평가, BTL(Build-Transfer-Lease·민간이 공공시설을 짓고 정부가 이를 임대해서 쓰는 민간투자사업 방식) 등 분야도 가리지 않는다. 해외나 서울에서 뭔가 하나 떴다 하면 그와 유사한 정책과 사업들이 전국에서 우후죽순처럼 쏟아진다. 가장 먼저 그 정책이나 사업을 입안하거나 제안한 사람은 그 사업을 지속하기 힘들다. 왜? 전국을 돌아다니며 컨설팅하고 강연하느라 바쁘니까. 그렇게 하나의 아이템이 몇 년 바람을 타서 예산을 독식하는 현상이 지속되다가 시들해질 때쯤이면 또 새로운 ‘핫 아이템’이 등장한다. 그렇다 보니 예술단체 중에는 전문예술법인으로 지정된 후 사회적기업을 신청했다가,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곳도 있다. 쌀이 없어 배가 고픈데 쌀 대신 나오는 사탕은 손에 쥘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는 형국이다.

“콘텐츠는 그대로인데 그때그때 ‘촉을 발동해서’ 지원서를 바꿔 내는 기술만 늘고 있다”는 한 예술가의 말은 농담이라기보다 정확한 현실에 가깝다. 연극평론가 김소연의 표현을 빌려 보자면 “쏟아지는 정책들을 따라가느라 현장은 숨이 차다. 정책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제도를 시행한다. 말 그대로 ‘정책의 질주’다. 하지만 막상 현장의 예술가들은 정산을 위해 회계컨설팅을 받으러 다닌다”는 것이다. 또 각종 기금을 타기 위한 지원서류 더미에 신음하는 중이다. 지나친 의지는 정책 과잉으로 이어지고, 정책의 과잉은 현장을 혼란시킬뿐더러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하게 된다. 현장 없는 정책은 존재할 수 없고 ‘정책이 실현되는 곳은 결국 현장’이므로, 현장에서 소화되지 못하는 정책은 결국 실패다.

물론 정책이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행을 선도하고, 시류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건 정부보다 민간의 몫에 가깝다. 정부의 역할은 민간의 창의력과 유연함을 지원하는 것이지, 그 유행을 정책으로 만들었다가 유행이 지나면 정책을 바꾸거나 없애 버리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책이야말로 유행에 뒤떨어질 필요가 있다. ‘투입 예산 대비 수혜 인원’으로 실적을 따지기만 한다면 ‘투자 대비 효과’를 최우선시하는 기업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정지은 사회평론가



http://news.donga.com/3/all/20130727/56691746/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46

미국 대선후보들이 빠지지 않고 찍는 두 개의 사진이 있다. 하나는 엽총을 들고 사냥하는 사진이다. 미국에 널려 있는 총기가 2억7000만 정이다. 전미총기협회(NRA) 회원은 500만 명을 넘었다. 비극적인 총기 참사에도 불구하고 총기 소유 열풍은 한층 거세졌다. 외면하기 힘든 표밭이다. 또 하나는 개와 뛰노는 사진이다. 미국 가구의 40%가 개를 키운다. 개를 끌어안아야 “아, 저 후보는 온화하고, 믿을 수 있구나”는 이미지를 심는다. 개 알레르기가 있는 후보조차 항히스타민제를 맞아가면서 강아지와 뒹굴며 사진을 찍는다.

최근 청와대 기사들 중 박근혜 대통령의 진돗개, 새롬이와 희망이를 다룬게 유난히 눈에 띈다. ‘실세(實勢) 인증견’이란 것이다. 관저에 자주 드나드는 인사에겐 꼬리를 흔들고, 낯선 손님에겐 사납게 군다고 한다. 일부는 사석에서 “그놈들, 참 많이 컸더라”며 은근히 폼을 잡는 모양이다. 이후 청와대와 관가에는 이색 바람이 분다고 한다. 집에서 남 몰래 진돗개를 키운다. 관저에 갈 때 진돗개가 달려드는 민망한 장면을 피하려는 자구책이다. 진돗개는 진돗개 냄새가 풍겨나는 사람에겐 꼬리를 흔든다는, 민간 속설에 따른 삶의 지혜다.

청와대 소식통에 따르면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결과는 신통치 않다고 한다. 암컷을 기르면 암컷인 새롬이가 여전히 왕왕거리고, 수컷을 키우면 희망이가 계속 사납게 짖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좁은 아파트에 진돗개 두 마리를 키우기는 난감한 형편이다. 이 소식통은 “새롬이와 희망이가 모두 함께 싹싹하게 맞는 인물들은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관저를 자주 찾는 허태열 비서실장, 이정현 홍보수석,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장수 안보실장이라고 귀띔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에 대해 물어보니, “글쎄, 잘 모르겠다”며 말을 아낀다. 박 대통령의 대북 노선이 왜 원칙적으로 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지난 12일 원부자재를 반출하려 개성공단에 간 기업인들은 참 안쓰러웠다고 했다. 반출을 도와주러 나온 근로자들의 초라한 행색부터 짠했다. 석 달간 얼굴은 새까맣게 탔다. 통근버스에 기름 공급이 중단되면서 땡볕에 한 시간 넘게 걸어서 오간 탓이다. 옷차림도 남루해졌다. 개성공단에는 남쪽에서 가져간 세탁기가 많다. 북한 근로자들은 작업복은 물론 집안 빨랫감까지 가져와 세탁하곤 했다. 그런 세탁기가 멈춰선 것이다. A기업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말은 없어도 그들 표정에서 얼마나 간절히 재가동을 원하는지 묻어났다. 이틀간의 반출 일당이라도 줬어야 하는데….”

사실 개성공단의 경제적 의미는 거의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경제규모는 33조5000억원으로 남한의 38분의 1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지난 석 달간 휴대폰 매출에도 못 미친다. 여기에다 원자재를 반출하면서 개성공단 기업들은 급한 불은 껐다. 상당수는 공단이 재가동돼도 더 이상의 기대는 접는 분위기다. 청와대가 “개성공단 중대 결심”의 카드까지 자신 있게 꺼내 드는 배경이다.

특사로 파견된 최용해 북한 총정치국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이렇게 다짐했다고 한다. “조선은 정말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생을 개선하고 싶다.” 그런 마음의 1%라도 남한을 향한다면 남북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청와대는 개성공단의 ‘국제화’ ‘발전적 정상화’를 고수 중이다. 이는 한 번이라도 북한이 고개를 숙여 달라는 표현이나 다름없다.

연평도 포격 이후 우리 사회의 대북 정서는 아주 나빠졌다. 야당의 ‘안보장사’라는 비난은 먹히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원칙적 대북 정책으로 고공행진 중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북한이 보다 과감하게 변했으면 싶다. 요즘 통일부 직원들은 류 장관이 청와대로 향하면 “묵언수행(默言修行) 가신다”며 안타까워한다. 외톨이 신세다. 남북관계가 어쩌면 청와대 진돗개의 꼬리에 달렸는지 모른다. 새롬이와 희망이가 류 장관에게도 꼬리를 흔들어야 북한의 숨통이 트인다.


이철호 논설위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193648&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45

SNS는 허섭쓰레기도 쏟아내지만 진솔한 삶의 지혜도 자주 전한다. 얼마 전 한 친구로부터 이런 글이 날아 들었다.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 연구하던 한 인류학자가 부족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제의했다. 멀리 떨어진 나무아래 싱싱하고 달콤한, 아프리카에서는 보기 힘든 딸기가 가득한 바구니를 놓아두고 누구든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에게 모두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말이 통역되어 아이들에게 전해지자마자,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나란히 함께 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바구니에 이르자 모두 함께 둘러앉아 입안 가득 딸기를 물고 키득거리며 나누어 먹었다. 인류학자는 아이들에게 왜 손을 잡고 함께 달렸냐고 물었다. 아이들의 입에서는 일제히 '우분투(Ubuntu)'라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한 아이가 덧붙였다.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슬픈데 나 혼자 어떻게 기쁠 수 있나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우분투는 남아공과 짐바브웨 현지어로 '사람(Ntu)'에 추상명사를 만드는 접두어 'Ubu'가 붙은 말이다. 따라서 추상명사인 '인간성'이나 '인간의 가치'에 가깝다. 반면 위의 이야기에서 아이들이 외친 우분투는 그런 낱말이 아니라 사람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유적(類的) 존재라는 아프리카 전통의 가르침에 가깝다. 남아공 민주화와 역사 화해 과정을 주도한 넬손 만델라 전 대통령과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를 통해 지구촌에 널리 알려진 우분투 사상은 '우리가 함께 있어서 비로소 내가 있다'로 요약되며, 타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다.

물론 공동체적 인간 존재에 대한 자각이 '아프리카 인도주의'로도 불리는 우분투 사상 고유의 것일 수는 없다. 공동체적 인간에 대한 인식은 고대 그리스 이래, 더욱 뚜렷하게는 근대 계몽사상에서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서양사상의 굵은 갈래를 이루었다. 동양적 전통과의 친밀성은 물론이다. 가령 마틴 부버의 <나와 너>는 너나 그것 등 타자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인식될 수도 의미를 띨 수도 없는, 관계 의존적 인간 인식을 설파했다. 고 김춘수 시인의 명시 <꽃>의 절구인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도 그런 인간존재에 대한 지향으로 읽힌다. 정현종 시인이 <섬>에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희망한 대상도 같다. 

따라서 아프리카 아이들 이야기가 던진 감명은 그런 인식 자체라기보다는 그런 인식이 아이들이 행동에 옮길 정도로 개개인에 깊이 뿌리를 내린 점이다. 그런 인식과 실천에 미쳤을 영향에 비추어 가정과 학교, 사회의 가르침이 그만큼 충실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에 너무나 초라한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소양 교육의 현실도 떠오른다. 

물론 그 아프리카 아이들이 나눠먹기에 충분한 딸기가 아니라 서로 나누기 어려운 가치나 목표에도 늘 손을 잡고 함께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입학 때 미리 가리든 졸업 때 마지막으로 가리든 언젠가는 우열을 다툴 고등교육 과정, 사회적 희소 재원, 특히 애초에 공유할 수 없는 배우자 선택 등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의 속편이 전편처럼 아름답기는 어렵다. 다만 적어도 일생에 한번이라도 그런 가르침에 젖은 경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경쟁에서 이기거나 졌을 때 패자나 승자에 대한 태도에서 크게 다르고, 나아가 사회 전체의 화해 능력도 다를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최근 정부의 세제개편 구상이 사실상 무너지는 과정에서 느껴야 했던 아쉬움도 우분투의 결여를 있는 대로 드러낸 한국사회의 실상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부, 여야의 태도가 안은 문제점을 거듭 들추기에 앞서 공공의 혜택은 최대한 누리려고 애쓰면서도 눈곱만큼의 기여에도 인색한 국민의 모습이 떠올랐다. 공생의 기본 조건과 동떨어진 국민에게 공생사회의 밝은 미래는 신기루일 뿐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실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8/h20130814210319120520.htm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42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수학과 물리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책을 통해 패러데이나 드브로이 같은 과학자의 이론을 이해하고, 맥스웰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유명한 과학자와 사귀는 걸 좋아했다. 당시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어 관심을 끌자, 발레리는 아인슈타인을 만난 자리에서 불쑥 물었다.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면 공책에 적어 둡니까?”

아인슈타인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퉁명스럽게 답했다. 

“아뇨.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답니다.”

발레리는 영감을 얻어 독창적인 사유에 이르는 경위를 ‘번갯불의 섬광’이라고 표현했다. 천재는 번갯불의 섬광처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재빠르게 포착하는, 비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고실험(思考實驗)은 실험에 필요한 장치와 조건을 가정한 뒤 일어날 현상을 예측하는 머릿속의 실험이다. 사고실험을 통해 갈릴레이는 관성의 개념을 발견했고, 톰슨은 원자 모형을 제시했다. 아인슈타인은 ‘번갯불의 섬광’처럼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고실험을 통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국정기조의 핵심 단어로 내세우면서 미래창조과학부와 관련 기관의 조직 명칭에 새로운 접두사들이 추가됐다. 창조경제, 창의산업, 창의문화, 미래창의, 창의인재, 융합인재, 융합기획 등등 비슷비슷한 접두사로 이름만 바꾼 조직이 여기저기서 탄생했다. ‘창조경제’나 ‘무한상상’ 같은 접두사를 앞세운 행사나 사업이나 모임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갑자기 ‘창조의 제국’이 된 듯하다. 그런데 창조, 창의, 상상 같은 단어를 앞세워 아이디어를 개구리 알처럼 마구마구 낳아도 되는 걸까? 

‘빛나는 아이디어들의 실패율은 개구리 알의 폐사율만큼이나 높다.’ 세계적인 석학인 피터 드러커는 ‘빛나는 아이디어 가운데 열에 아홉은 분명 말잔치에 지나지 않고, 남은 것들도 대다수는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연못마다 개구리 알이 넘쳐나듯이 아이디어도 부족한 법이 없다.’ 

개구리 알처럼 많은 아이디어를 낳아서 번갯불의 섬광처럼 포착하는 능력이 필요한 걸까? 명저 ‘단절의 시대’에서 드러커는 잘라 말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것과 달리 창의력이 아니다. 혁신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그것은 고도로 조직되어 있고, 규율이 잡혀 있으며, 체계적인 프로세스다.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창조는 4단계로 진행된다. ①Data+System=Information; 데이터를 가공하여 가치 있는 정보(Information)를 만든다. ②Information+Experience=Knowledge; 정보에 경험을 더해 지식(Knowledge)을 쌓는다. ③Knowledge+Intuition=Wisdom; 지식에 직관(융합)을 담아 지혜(Wisdom)를 터득한다. ④Wisdom+Imagination=Creation; 지혜에 상상의 나래를 달아 창조(Creation)를 일으킨다. 묘하게도 이 순서는 역대 정부의 국정기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창조경제의 공식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스템과 경험과 직관과 상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냥 상상만 부풀린다고 창조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ttp://news.donga.com/3/all/20130725/56648966/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40

“인간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삶에 대한 자기성찰이 깔려 있지 않으면 어떤 발명도, 제도도 괴물이 된다.” 종교 지도자나 철학자가 한 말이 아니다. 지난 10일 대통령과 주요 언론사 논설실장·해설위원실장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언급이다. 박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고 챙겨가려고 한다”고 했다. ‘괴물’이라는 도발적인 보통명사 하나로 여기에 맞서는 인문학의 현재적 가치를 쉽게 정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이다. 고교시절 문과 학생이었고, 문예반과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수필집과 자서전 등 7권의 저서를 냈고, 문인협회 회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이력만으로는 인문학에 대한 그의 남다른 관심을 설명하기 어렵다. 감당하기 어려웠던 비극에 맞서는 과정에서 갖게 된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찰이 숨은 코드였을 것이다. 무연한 고통이 가져다준 역설적 축복이라고나 할까.

1979년 10·26 이후 정치를 시작한 1997년까지 박근혜의 잃어버린 18년은 힘겨웠다. 부모를 차례로 흉탄에 잃고 청춘의 절정인 스물여덟에 청와대를 나온 뒤 거듭된 배신을 겪었다. ‘숨쉬는 것조차 힘들었던’ 절망의 심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 어머니가 다니던 절에도 가고 『법구경』과 『금강경』을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읽었다. 성심여중고와 서강대 시절에 익숙하게 접했던 가톨릭 교리도 다시 공부했다. 『정관정요』 『명심보감』 등 우리 고전과 동양철학을 섭렵했다. 중국 지식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를 읽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의 독서 이력이 남다른 것은 되새기고 내면화해 마침내 스스로의 세계관을 축조했다는 점이다. 공개된 19년간의 일기와 수필집, 자서전에는 삶과 인간, 역사에 대한 성찰적 사유,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의 운명에 대처하려는 결연한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1981년 10월 14일의 일기에서는 “인간에게는 행복만큼의 불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정신적 영어(囹圄)의 시기를 독서와 사색, 글쓰기로 버텨냈다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자기 세계관이 지나치게 확고한 사람들이 갖는 기질적 문제점을 거론한다. 타자와의 소통에 장애가 발생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런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는 장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 등 예기치 않았던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대처하는 초연함은 지도자에게 내면의 깊이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살인적 경쟁과 탐욕의 지배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생각하면 “사람답게 살지 않으면 괴물이 된다”는 메시지는 세태를 거스르는 박근혜식 결단으로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괴물’이 아닌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문학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건이다. 서울대 김기현(철학) 교수의 권고대로 1997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직속기구로 두었던 ‘예술 및 인문학 위원회’의 보고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는 “예술과 인문학의 창조적인 힘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한다”면서 “예술과 인문학은 명백히 ‘공공재’로 인식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공재가 무엇인가. 시장을 통하지 않고도 빈부귀천을 떠나 모두가 소비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다. 사람과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떠올리면 된다. 몇몇 사람의 교양취미가 아니라 전 국민이 삶의 중심 가치로 향유할 수 있는 인문학의 인프라를 정부가 책임지고 깔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홀대받고 있는 인문학에 대한 지원을 긴급한 국가 프로젝트로 설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인문정신의 확산은 박 대통령의 핵심 의제인 창조경제에도 든든한 동력이 될 것이다. 지금 세계의 트렌드는 기술력 중심의 지식기반 경제에서 인문학적 창의성이 혁신의 열정을 격발하는 창조경제로 이행했다. 인간의 감성을 중시하는 상상력이 기업과 제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생전의 스티브 잡스가 “소크라테스와 식사할 기회를 준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과 바꾸겠다”고 했을까. 박 대통령도 “창조경제시대의 창조는 인간 행동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에서 나온다”고 화답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억압해온 낡은 틀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기회를 맞았다. 경쟁과 성과 일변도의 피로사회를 인간적인 배려와 관심이 우선하는 건강한 사회로 만드는 역사적인 체질개선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괴물’에게 선전포고한 그가 어떤 승부수를 던질지 궁금하다.

이하경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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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9. 19. 23:38

싱가포르 A★STAR를 다녀왔다. 흔히 싱가포르 하면 무역이나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싱가포르도 한때 석유화학, 전자 등의 자본집약적 산업에 치중하다가 21세기 들어 발 빠르게 지식산업으로 국가전략을 선회한 나라다. 2003년에 생명공학 첨단단지 바이오폴리스를 구축하고, 이제는 융합기술의 거점 퓨전폴리스를 만들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술개발 투자를 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인구가 518만 명밖에 안되고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크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은 5만 달러가 넘는다. 세계 금융위기로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2010년에 경제성장률 14.5%를 달성했고, 2011년 5%에 이어 매년 비슷한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지식산업으로 급선회한 국가전략과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한 정부 정책 덕분이다. 작은 나라여서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싱가포르 국가전략의 우수성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11년 아시아의 기술혁신을 평가하면서 상위 12개 품목을 선정했다. 놀랍게도 그중 5개가 싱가포르의 기술이었다. 중국이 2개, 일본이 2개, 홍콩이 2개, 대만이 1개인 데 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다. 한국은 노메달이었다. 이런 이유로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세계 기술혁신 평가에서 싱가포르를 1위로 선정했고, 월드이코노믹포럼(WEF)은 9위, 인시아드(INSEAD)는 7위로 평가했다. 모두 한국보다 앞선다.

무엇이 싱가포르를 이처럼 짧은 기간에 지식산업의 선두에 우뚝 서게 만들었을까. 핵심은 싱가포르가 가진 국제화 마인드와 정부의 효과적인 정책역량에 있다. 전체 인구 중 순수한 싱가포르 국민은 3분의 2인 320만 명 정도다. 나머지는 외국인 영주권자와 단기체류자들이다. 싱가포르는 전 세계에서 뛰어난 인재들을 엄청난 연봉을 주고 초빙한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에도 한국인 교수가 30명이 넘는다. 얼마 전 세계적으로 연구업적을 인정받는 젊은 한국교수가 한국대학 연봉의 세 배 가까이 받고 싱가포르 국립대학으로 옮긴 경우가 있다. A★STAR에도 분야별 프로젝트 디렉터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싱가포르 정부이지만 국가전략에 필요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도록 정책집행의 유연성을 보인다고 한다. 바이오메디컬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려고 심지어 도로체계마저 바꾼다. 이처럼 모든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기 때문에 외국기업이 투자하기 제일 편한 나라가 되었다. 

2002년 설립된 A★STAR(Agency for Science, Technology and Research)는 싱가포르의 생명과학 사이언스 파크, 바이오폴리스의 전략본부에 해당한다. A★STAR는 새로운 기술을 생산하기 위한 연구개발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기능은 기술의 상업화에 있다. A★STAR는 싱가포르 정부 기술개발 예산의 4분의 1정도인 1조3000억 원의 예산을 매년 집행한다. 정부기관이지만 마치 컨설팅회사와 기술투자회사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 덕분에 1990년 싱가포르 전체 경제에서 1.8%에 불과했던 바이오산업 비중이 2010년에는 8.6%로 성장했다. 지난 10년 사이에 바이오메디컬 기술개발 인력과 제조업 종사인력도 각각 2.5배 정도 늘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A★STAR의 기술 중개 능력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상업화는 쉽지 않다. 산학연 협력이 잘 되지 않는 이유도 기술의 상업화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을 상업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있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는 에인절펀드가 이 죽음의 계곡에 다리를 놓아준다. 하지만 우리나라나 싱가포르는 기술투자의 생태계가 빈약하다. 그래서 싱가포르가 택한 전략이 정부가 기술을 평가하고 전략적 투자를 해서 상업화의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A★STAR가 바로 이 전략의 브레인 역할을 했고, 이제 10년 만에 뿌린 것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과학기술 연구개발 투자에 17조 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 붓는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액이 이스라엘 다음으로 세계 2위가 됐고, 총액도 영국을 제치고 세계 6위에 올라섰다. 그런데 기술의 상업화는 얼마나 이루어졌나. 정부출연연구소, 대학들이 엄청난 양의 논문을 쏟아냈지만 기술혁신이나 상업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기술이 ‘죽음의 계곡’을 넘어 상업화로 가기 위한 다리가 없기 때문이다. A★STAR가 오히려 한국의 좋은 기술을 사가기 위해 기웃거리고 있는 현실이다.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산된 기술을 어떻게 상업화하느냐가 창조경제의 핵심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다른 사람이 벌어 가면 안 된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기술개발 투자 못지않게 기술 상업화의 생태계 구축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A★STAR는 저쪽 하늘에서 먼저 빛나고 있다.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http://news.donga.com/3/all/20130723/56603084/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37

낯선 외국인이 중국인에게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뭐냐고 물어보면 "탁구"라고 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재차 물어보면 "실은 축구"라며 말꼬리를 흐리곤 한다. "축구를 정말 좋아하지만, 중국 대표팀의 성적을 떠올리면 창피해서 (중국이 제일 잘하는) 탁구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자신을 '치우미'(球迷·열성적 축구팬)라고 말한다. 지난달 초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는 2002년 중국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던 밀루티노비치 전 감독이 1986년 월드컵 때 멕시코 대표팀을 지휘했던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시 주석의 슬로건인 '중국의 꿈(中國夢)'에는 월드컵 우승의 꿈이 포함돼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중국 축구는 '시진핑호' 출범 직후 참담한 패배를 맛봤다. 지난달 15일 만만하게 봤던 태국에 1대5로 무릎을 꿇었다. 당시 태국은 23세 이하 대표팀이었다. 이후 스페인 출신인 카마초(58) 중국팀 감독이 전격 경질된 것은 중국 최고지도부의 '격노'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카마초는 2002년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 사령탑으로 한국과 맞붙었던 노련한 감독이지만 중국 축구의 체질을 바꾸지는 못했다.

중국인은 스스로 축구를 못하는 이유를 다양하게 분석한다. 자신들 입으로 "도박을 좋아해서 승부조작이 빈번한데 실력이 늘겠느냐", "중국인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팀워크가 중요한 축구는 궁합이 안 맞는다", "고액의 몸값을 받는 대표 선수들이 더는 노력을 안 한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스는 2010년 "중국 공산당이 '풀뿌리 운동'인 축구의 저변 확대를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지역의 축구 클럽이 활성화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이는 공산당의 중앙집권적 통제에 부담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중국에선 20~30명만 모여도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된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 대표팀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와 취재진의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강조했던 말이 있다. "창조적(creative) 플레이"였다. 제발 옛날 감독이나 선배들이 주입식으로 가르쳤던 플레이의 틀을 깨고, 선수 자신이 경기장에서 생각해낸 플레이를 맘껏 펼치라는 얘기였다. 히딩크 감독이 유럽으로 떠나면서 박지성과 이영표를 데려간 것도 이들의 '창조적 플레이'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요즘 '창조'란 단어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화두로 떠올랐다. 중국 새 지도부는 성장률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경제 구조 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다. 이 과정에서 '창조'와 '혁신'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값싼 노동력으로 선진 제품을 베껴서 수출하는 성장 방식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중국의 정치·경제·사회·축구 전반이 여전히 공산당 통제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창조와 혁신이 꽃을 피울 공간이 좁을 수밖에 없다. 중국 경제나 축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려면 중앙의 통제 고삐가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는 건 중국 지도부도 안다. 그러나 '혼란'에 대한 역사적 트라우마 때문에 그 고삐를 쉽게 늦추지 못하는 게 중국의 딜레마다.



안용현 베이징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28/20130728020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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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36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29일부터 8월 2일까지 휴가를 간다. 4박 5일이다. 그 뉴스가 전해지던 날 후배 PD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 기간 청와대에 남아 있는 직원들이 혹시 냉방기 틀까요? 대통령 몰래…."

청와대 에어컨은 올 들어 한 번도 가동되지 않았다. 서울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돌 때도 그랬다. 그 '찜통 청와대' 맛을 본 대열에 외빈(外賓)들도 있다.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탕자쉬안 중국 전 국무위원이다.

박 대통령만 유독 더위에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보면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박정희 전(前) 대통령의 '근검(勤儉) 교육'이다. 부채로 더위를 식혔다는 아버지와 관련해선 일화가 적지 않다. 어느 여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고 부하가 몰래 에어컨을 가동했다가 혼난 이야기며, 외국 군수업자가 대통령의 부채질을 보고 에어컨비(費)를 건네자 "그 돈만큼 무기를 달라"고 답했다는 얘기다.

위아래 할 것 없이 직원들이 줄줄이 구치소로 끌려간 한수원 사태 탓도 있을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불신에 부품 위조까지 겹쳐 대정전(大停電·블랙아웃)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솔선수범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몇 달은 더위를 숙명처럼 안고 가야 할 대통령과 부하들에게 강원도에서 본 사례를 알려주고 싶다. 홍천군 내촌면에 살둔마을이란 곳이 있다. '살둔'은 높은 산과 깊은 내에 둘러싸인 외진 곳이지만 '사람이 살 만한 둔덕'이란 뜻이다. 폭염(暴炎) 작열하던 날 그곳을 찾았는데 하필 기온이 섭씨 38도로 전국 최고였다.

이대철(李大徹·68)이 지은 '제로에너지하우스'는 9700평 대지에 50평 남짓한 집과 100평가량의 목공실로 구성돼 있다. 놀라운 것은 안으로 들어섰을 때 느껴진 냉기(冷氣)였다. 25도 정도로 밖과 13도나 차이가 났다.

비결은 단열(斷熱)이었다. 여름엔 열기가 안으로 스며들지 않게 하고, 겨울에는 한기를 막으며 내부의 열이 새는 것을 막는다. 그는 자기 집 단열률이 90%로 여름·겨울철 전기료가 한 달에 5만원 정도밖에 안 든다고 했다.

이대철은 대우에 입사해 인도네시아에서 삼림 조사 일을 했다. 정글에 살며 베어낼 목재의 양과 질을 파악하는 고달픈 직업이다. 온갖 독충과 맹수에 외로움까지 견뎌야 하는 일이기에 연봉은 높지만 중도 포기자도 많았다.

10여년 회사 생활을 마치고 기계 수입업을 하던 그는 경기도 용인에 전원주택을 지었다. 좋아하던 목공을 계속할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널찍한 터에 멋진 통나무집 짓고 거기다 통창을 달아놓으니 자연이 제 것 같았다.

문제는 거기부터 생겼다. 여름엔 더워 견딜 수 없고 겨울은 추워 살 수 없었다. 전기로 냉난방하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전원주택 생활의 본령(本領)을 맛본 거지요. 원인을 찾기 시작했는데 범인이 창문이었어요."

시원한 창은 방문객만 부러워할 뿐 거주자를 괴롭힌다. 단열법을 독학하다 내친김에 에너지 관련 서적을 탐독하던 그는 '2025년 석유 위기설'을 접한다. 우린 음모론 정도로 여기지만 외국에선 심도 있게 연구되는 분야다.


그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마침내 홍천으로 옮겨 제로에너지하우스를 지었다. 원하는 이들에게 세미나로 경험을 전하고 시공도 하는데 그의 주장은 한 가지다. "원전이나 신재생에너지를 논하기 전에 아끼자"는 것이다.

한국처럼 '여름에 긴 팔 입고 겨울에 반소매 입는 식'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나라는 없다. 디자인을 앞세워 건물 외관을 온통 유리로 장식해 단열과 동떨어진 건물이 줄을 잇는다. 모든 것이 에너지와 연결되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휘발유 1L 가격이 2000원만 넘어서도 못 살겠다고 난리 친다. 전력 대란으로 전전긍긍하다가 계절 바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망각하는 것도 우리다. 에너지 소비 대국이면서 중요성은 이해하지 못하는 나라다.

이대철이 말했다. "기업이 CEEO(에너지 최고 관리자)를 신설해야 해요. 연봉 1억 줘도 10배 효과는 낼 겁니다. 삼성 같은 곳은 그 이상도 가능해요. 그런데도 무시하는 건 최고경영자가 에너지 문제에 둔감하다는 뜻입니다."

그와 만난 뒤 에너지경제연구소 창립 기념 세미나에 패널로 참가한 적이 있다. 주제 논문이 하나같이 억(億) 또는 조(兆) 단위에 최소 10년 이상이 걸리는 원전 건설과 태양광, 조력(潮力) 및 풍력발전에 관한 것이었다.

거기서 제로에너지하우스의 사례를 들었더니 연구소 관계자가 세미나가 끝난 후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 절약이 중요한 건 알아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원전, 태양광을 말하면 스폰서가 붙는데 절약엔 안 붙거든요."

혹시 우리 대통령과 정책 당국자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절약' 운운하는 게 구닥다리 같고 창조경제와 역행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 건 아닌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끼는 것은 빠르면서도 효율적인 반면 돈 쓰고 짓는 것은 느리면서도 비효율적이란 사실이다.



문갑식 선임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22/20130722029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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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34

열두 살에 아버지에게 등을 떠밀려 중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났던 최치원(857 ~?)은 스물여덟 살이 되어 신라로 금의환향했다. 동아시아를 호령했던 당(唐)이 그 영향권 아래 있던 나라들에서 모여든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빈공과(賓貢科)에 수석 합격한 뒤 당나라의 지방과 중앙 관리를 역임하며 문명(文名)을 떨쳤던 그가 이 무렵 지녔던 의식을 알려면 귀국하면서 지은 '범해(泛海·바다에 배를 띄우다)'라는 시를 보면 된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 국가주석이 '괘석부창해 장풍만리통(掛席浮滄海 長風萬里通·돛 달아 푸른 바다에 배 띄우니 긴 바람이 만리를 통하네)'이라는 앞부분을 인용해 유명해진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다음에 나오는 '승사사한사 채약억진동(乘槎思漢使 採藥憶秦童·뗏목 탔던 한나라 사신이 생각나고 불사약 찾던 진나라 아이도 생각나네)'이라는 구절이다.

16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왜 최치원은 고국이 아니라 중국의 고사(故事)를 떠올렸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당시 그의 신분에 들어있다. 그는 신라에 파견되는 당나라 황제의 사신이었다. 또 어려서부터 중국에서 자란 그는 신라보다 당의 문화가 더 친숙했다. 학자들은 그의 귀국이 당초 일시적이었는데 후견인인 당나라 희종이 죽는 바람에 신라에 주저앉은 것으로 본다. 그는 귀국 이후 상당 기간 당의 관직명을 사용했고, 신라를 당 제국의 일부로 간주하는 '대당신라국(大唐新羅國)' '유당신라국(有唐新羅國)'이란 표현을 즐겨 문장에 썼다.

최치원은 동아시아가 19세기 말 서양 문명의 영향 아래 들어가기 전까지 유일한 표준이었던 중국 문명을 한국에 이식한 선구자였다. 그가 중국 문명의 상징인 공자를 모시는 우리의 문묘(文廟)에 한국 유학자로는 가장 먼저 들어갔다는 것은 후세 유학자들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치원은 또 관리로 일했던 중국의 지방에서 그를 기리는 행사가 열릴 정도로 중국인에게 사랑받는 한국인이다.

역사에 밝은 중국 지도부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최치원을 언급한 것이 '한·중의 오랜 유대'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동아시아의 문명 표준이 다시 중국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도 직시하고 훌륭한 조상에게서 배우라는 권유로 들린다.

'21세기의 최치원'을 부르는 중국의 손짓에 대한 호응은 이미 한국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좌파는 중국이 만들고 있는 '새로운 중화(中華) 질서'에 편입되자고 주장한다. 중국의 커지는 경제적 위력을 실감하는 우파는 '친중(親中)' '지중(知中)'을 역설하며 중국어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한반도의 통일은 중국의 동의 없이 어렵고 미국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줄어든다며 통일 한국은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학자도 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을 어떻게 상대할지가 가장 큰 대외적 고민이었다. 겨우 한 세기 남짓 잊고 지냈던 중국 문제가 다시 우리 민족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음을 실감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하지만 최치원이 살았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진 국제 정세는 우리의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중국은 지금 과연 당나라 때처럼 동아시아의 문명 표준으로 떠오르고 있는가? 실리적 측면뿐 아니라 긴 역사적 관점에서도 대중(對中) 관계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선민 선임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9/20130719030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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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33

올여름 한국 문화계에는 일본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선두엔 2명의 무라카미가 우뚝 서 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와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다. 『1Q84』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4주째 베스트셀러 1위다. 만화를 팝아트로 구현한 세계적 작가 다카시. 그의 전시회를 연 미술관엔 평소보다 3배의 관객이 몰렸다. 일본의 공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신병적 환각을 그려 유명해진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전시회도 대성황이다. 이쯤 되면 문화계 한복판에서 ‘일류(日流)’가 소리 없이, 도도하게 흐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러나 희한하게도 일본 자체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일본어능력시험(JLPT)’이라는 게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일본판 토플이다. 한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수험생이 2년 전보다 30%나 줄었다. 중국이 좀 뜬다고 일본은 싹 무시하는 얄팍한 세태 같아 서글프기도 하다. 일본 소설, 일본 미술 한두 번 봤다고 일본을 다 안다고 착각해서일 수도 있다.

이런 일본에 대한 무시·무지 분위기는 오피니언 리더들에게도 퍼져 나가는 듯하다. 요즘 한·일 간 막후 채널이 끊겨 문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중국의 부상으로 동북아 외교 중심이 동해에서 서해로 이동한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고 요즘처럼 한·일 간 먹통은 곤란하다.

적잖은 사학자는 현 상황이 임진왜란 후와 비슷하다고 한다. 전란 후 일본에서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는 조선과의 국교 재개를 원했다. 하나 난리 통에 2만~3만 명의 조선인이 일본에 끌려갔다. 국토는 황폐해지고 수십만 명의 양민이 학살됐다. 조선왕조가 더 못 참을 일은 왜군이 왕릉을 파헤쳤다는 거였다. 그러나 “일본과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던 광해군은 국교 재개의 용단을 내린다. 북쪽에서 발흥하는 여진족을 견제하기 위해선 화해가 필요했던 것이다. ‘대국굴기(大國<5D1B>起)’를 외치며 급속히 중국이 부상하는 현 정세와 여러모로 닮았다.

요즘 한국은 중견국(middle power) 소리를 듣는다. 그럼에도 국력을 자원이나 땅 크기로 재는 옛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여전히 소국이다. 미·중·일·러 4대 강국에 싸여 옴짝달싹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사고의 틀을 달리해 보라. 보이는 게 변한다. 요즘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주목받는 ‘네트워크 이론(network theory)’은 발상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이 이론은 ‘힘이란 다른 행위자들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정보나 교류의 노루목에서 위치만 잘 잡으면 힘깨나 쓸 수 있다는 논리다. 심지어 ‘위치 권력(positional power)’이란 개념도 나온다. 더욱 눈길이 가는 건 비우호적 국가 간에서 중개자(broker) 역할만 톡톡히 해도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대목이다. 작금의 동북아에서 한국이 평화 중개자(peace maker) 노릇을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북·미 그리고 중·일 관계다.

이런 판에 한국이 일본을 왕따시키고 블랙홀 같은 중국의 품 안으로 뛰어드는 건 좋을 게 없다. 한쪽에 기울어 어찌 중견국에 어울리는 중개자가 되겠나.

지난번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과 중국의 지극한 환대로 한·중 관계에는 훈훈한 바람이 불고 있다. 반면 한·일 간에는 더없이 싸늘한 냉기가 돈다. 매년 2~3차례 열리던 한·일 정상회담은 박 대통령 취임 후 5개월이 지났는데도 영 무소식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일본 총리와 7번 만났었다. 물론 양국 관계 악화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우경화 바람에 기인한 바 크다. 21일 참의원 선거 대승 이후 아베 정권은 우경화 페달을 더 힘차게 밟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일본을 싹 무시하는 전략이 좋은가. 아니면 정상회담이나 다른 묵직한 채널을 통해 강력한 반대의 뜻을 전하는 게 효과적인지는 따져 봐야 한다. 친구는 고를 수 있지만 이웃은 택할 수 없는 법이다.


남정호 중앙SUNDAY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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