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9. 21:13

며칠 전 어린 아들을 데리고 동네 병원에 가서 소아마비 예방 접종을 했다. 이번이 네 번째다. 이제 아들은 소아마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소아마비는 예방 접종만 하면 피할 수 있는 질병이고, 한국에서는 1983년 이후 발생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도 소아마비는 사라지는 추세다. 1988년 이후 전 세계 소아마비 감염자 수는 99%나 줄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소아마비 근절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사 창업자 등이 거액을 기부해 퇴치를 적극 지원한 결과다.

그런데 지금도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등 3개 국가에서는 소아마비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왜 유독 이들 국가에서만 소아마비를 퇴치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소아마비 예방 백신 접종에 반대하면서 접종 요원들에 대한 테러까지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심각한 나라는 파키스탄이다. 지난해 12월 9명의 접종 요원이 살해된 것을 시작으로 20여 건의 접종 요원 공격 사건이 일어났다. 16일에도 접종 요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프간과 나이지리아에서는 지난해 12월과 올 2월 소아마비 백신 접종 요원이 살해됐다.

알카에다, 탈레반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미국이 이슬람 여성을 불임으로 만들려고 백신을 접종한다’ ‘소아마비 백신에는 이슬람에서 금지한 성분이 들어 있다’ 등의 낭설을 퍼뜨리며 백신 접종에 대한 거부감을 부추긴다.

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백신 접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사마 빈라덴 사건’ 때문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이는 2011년 3월 미 중앙정보국(CIA)이 빈라덴의 은신처로 의심되는 파키스탄의 한 마을에 가짜로 B형 간염 예방 접종을 해주면서 빈라덴의 소재를 파악하려 했던 사건을 가리킨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사건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은 ‘미국이 이슬람 세력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각종 예방 접종을 해주고 있다’고 믿게 됐다”고 지적했다. 아프간과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접종 요원 공격도 이 사건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미국에 대한 반감을 이유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소아마비 백신 접종을 막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있는 병에 걸려 아이가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갖게 된 부모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미국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9·11테러의 주범인 빈라덴을 추적하는 것이 아무리 중요했더라도 방법은 신중했어야만 했다. 그 피해는 테러와 아무 상관 없는 일반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고, 전 세계에서 소아마비가 근절되는 날은 늦어지고 있다.


장택동 국제부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30619/55959884/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1:10

1786년 영국 북부 직물공업 도시 리즈에서는 방직 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양털을 얼레빗질하는 기계가 이들을 몰아낸 것이 원인이었다. 시위대는 외쳤다. “이제 가족을 어떻게 부양하란 말인가? 자녀에겐 어떤 기술을 물려주라는 것인가?”

기계화는 몇 세대에 걸쳐 영국의 생활수준을 높였지만 산업혁명 초기에 전통적인 노동자들이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 분명치 않다. 명백한 것은 그 당시엔 가치 있었던 기술을 평생 익힌 많은 노동자들이 그 기술이 갑자기 무용지물이 됐을 때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기술의 효과가 노동자에게 위협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은 최근의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생산성 향상의 결과는 소수에게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 기술의 발전이 점점 고학력자에 대한 수요를 높여왔기 때문이다. 결국 해답은 더 많은 교육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문제가 있다. 이는 대졸자와 저학력자 간의 임금 격차는 설명할 수 있지만, 왜 상위 ‘1%’가 일반 고학력자보다 더 많은 수입을 가져가는지 설명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은 예전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고학력자들도 쉽게 평가절하되고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있다. 더 많은 교육이 신기술 발전에 대한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

필자는 2000년 즈음 미국 사회를 둘러싼 불평등의 성격이 변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 전에는 불평등에 대한 담론은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와 불평등에 대한 것뿐이었다. 노동과 자본 간의 소득 분배는 비교적 안정적인 틀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노동자의 몫은 급격히 감소했다.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최신 보고서는 이런 현상이 다수의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세계의 기술 발전 추이는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기술이 노동시장에 가져오는 변화는 더 갑작스러울 수 있다. 매킨지 글로벌연구소는 전통 노동시장과 사회구조에 ‘파괴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10여 개의 중요 신기술에 대한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보고서를 보면 많은 시간과 돈을 배우는 데 투자해 신기술로 무장한 근로자들도 새로운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식산업의 자동화’를 통해 지금까지 대졸자만 할 수 있었던 많은 일을 소프트웨어가 대신할 수 있다. 선진화된 로봇 기술의 도입은 제조업계 취업률을 낮추고 전문 의료진마저 대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신기술을 배우는 것만으로 이에 대응할 수 있을까. 18세기 리즈의 노동자들은 이미 이런 질문을 던졌다. “새 기술을 배울 동안 누가 가족을 먹여 살리나?” 그들은 이런 질문도 했다. “만약 새로 배운 기술마저 더욱 새로운 신기술로 대체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늘날의 노동자들도 당시 방직공들의 처지와 별반 차이가 없다. “빚을 지면서까지 배운 새 기술을 사회가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교육의 확대가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작용했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떨칠 수 없지만, 그것이 정답일 수 없다는 점이 더 분명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기술 발달에 대처하는 대안은 있을까.

필자가 지금까지 말한 내용이 조금이라도 옳다면, 일반 시민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규칙을 지킨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중산계급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의료보험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소득을 담보할 강력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또 새로 창출되는 부(富)가 점점 자본가에게 편중됨에 따라 사회안전망의 많은 부분은 수익과 투자소득에 대한 세금 부과로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을 하고 나면 보수주의자들이 ‘소득 재분배’의 폐해에 대해 어떤 식으로 입을 모아 반박할지 뻔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에게 과연 대안은 있단 말인가.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http://news.donga.com/3/all/20130616/55905311/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1:06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6월 8일자 표지모델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함께한 모습이었다. 6월 7일과 8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 맞춰 게재된 것이었다. 동성애를 그린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패러디한, 한가로운 목장에서 카우보이모자를 쓴 채 밝게 웃는 두 사람의 패러디 사진은 미중 양국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1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난 황병태 전 주중국 대사(78)는 이코노미스트의 표지를 보여주면서 “중국이 경제대국의 지위뿐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으로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최근 열린 미중 정상회담과 27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그가 말하는 ‘중국’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는 대사로 지낼 때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에게 ‘영원한 주중대사’로 불릴 정도로 중국 지도부와 각별했다. 이번에 방한한 탕자쉬안(唐家璇)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도 특별히 따로 만남을 청할 정도로 늘 연락하고 있다. 황 전 대사는 최근에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에 주목한 ‘침몰하는 자본주의’(IBL)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인터뷰는 책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서구자본주의 대안은 중국국가자본주의

―책을 보면 중국식 국가자본주의가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대안이라고 보는 것 같다. 

“세계 경제가 성장이 멈춰 있고 소득 불균형으로 빈부격차가 심하다. 자본주의가 끝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201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앨빈 로스조차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세계 경제니 하는 것에 대해 묻지 말아 달라’고 말했을 정도다. 2008년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가진 모임은 또 어땠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금융위기 쓰나미로 전 세계 경제가 대혼란에 빠졌는데 경제학자들은 왜 말을 하지 않느냐’고 화두를 던졌지만 현장은 침묵이 지배했다. 작금의 경제학은 경제학이 아니라 ‘금융공학’이다. 이익에만 탐닉하다 보면 결국 1% 대 99%의 대립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현재 서구 자본주의는 자본 수익이 전부다. 자본 수익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사유화하는 것, 그것이 최고 가치다. 그런데 실제 처한 모습은 어떤가. 미국 자본주의는 재정은 악화일로에 있고 많은 사람이 건강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의 도전을 받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내부의 도전을 받고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 경제에는 ‘사람’이 빠져 있다. 나는 이런 문제에 빠진 현재 서구 자본주의의 대안이 중국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주목하는가.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 정치체제이지만 경제 제도와 경제 운용은 영구 임대 소유 토지제도와 주택 소유제도만 빼고 나머지 부문은 자본주의적 개인 소유 체제가 돼 있다. 시장경제 위에 공산 정치를 얹어 놓은 것이다.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사회주의 정치와 시장경제 자본주의 경제가 공존하는 특수한 구조물이지만 실제 경제 운용은 자본주의 질서의 틀 안에서 진행된다. 서구 자본주의도 소득 격차의 궁지에 빠져 있는데, 이 격차 해소가 시장의 자율질서 속에서 이뤄지지 못할 때 정부가 개입한다.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는 경제 자본주의와 정치 사회주의의 결합물인 만큼 이것이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온다는 것인가.

“서로 다른 정치 질서를 가진 두 개의 자본주의가 도래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역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구 자본주의와 여러모로 구별되는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 식의 자본주의로 중국 시스템을 발전시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당 지배의 정치와 자유주의 경제를 혼합한 리콴유의 정치·경제 체제는 전 세계적으로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고 싱가포르는 모범적 선진국으로 꼽히지 않는가.”

황 전 대사는 중국의 정치 시스템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면서 국내 정치 시스템과도 비교했다. 

“중국 공산당은 그냥 공산당이 아니라 아주 특이한 공산당이다. 10년 단위로 지도자를 바꾸고, 통치권을 지도자 한 사람에게만 주지 않고 집단지도 체제를 유지한다. 일당 독재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공개적인 권력 구조를 통해 국민적 동의를 끌어내고 있다. 지금 중국 공산당 당원이 무려 8000만 명이다. 이들도 우수한 인재들인데 여기서 뽑고 뽑아 지도부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17, 18세 때 당원이 되어 업적을 쌓아가면서 올라간다. 시진핑도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밑바닥부터 올라온 사람 아닌가. 이러니 중국 국민들은 공산당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중국을 이만한 나라로 만든 게 공산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어떤가. 선거 때만 재래시장 돌아다니면서 서민들과 악수한다. 그런 걸로 국민들이 공감하겠나. 정치가로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국민이 납득하고 동의할 만해야 한다.”

화제를 최근 미중 정상회담으로 돌렸다.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는 무엇인가. 

“중국이 변하고 있다. 중국은 10여 년 전만 해도 담을 쌓고 ‘개구멍’으로 바깥세상을 봤다. 자기가 필요한 것만 본 거다. 그만큼 폐쇄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개구멍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오바마와 만난 시진핑은 개구멍을 뚫고 대문을 열고 나온 중국의 상징이다. 시진핑이라는 사람 자체가 개방적 도시인 상하이와 항저우를 중심으로 활동해서 개방적 성향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6월 8일자 이코노미스트 표지.

북한, 하루아침에 허허벌판 내몰려

―차이메리카(차이나+아메리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중국 파워가 막강해졌다.

“지난 세기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팍스 차이메리카나’의 시대가 될 것이다. 중국이 하루아침에 강국이 된 게 아니다. 그간 축적된 경제적 부가 바탕이 된 거다. 경제 대국이 됐고 이제는 세계적인 정치 파워를 가지려 하고 있다. 내가 주중 대사(1993∼95년)로 일할 때 자랑스러우면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한국과 중국이 전자, 통신, 비행기, 원자력 등 4개 분야 산업을 공동으로 연구하고 개발, 생산해서 판매하는 한중산업협력을 하자고 제안해 양국의 경제부처와 장관들을 설득하고 노력한 끝에 마침내 체결이 됐다. 그런데 내가 임기가 끝나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사업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결과를 내지 못해 아쉽다.”

―중국이 ‘담을 허물고 바깥세상으로 나오면서’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미묘해졌다.

“불과 몇 달 새에 북한과 중국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북한은 중국과 함께 개구멍으로 바깥세상을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중국이라는) 지붕이 무너진 격이다. 시진핑 시대를 ‘뉴 차이나’라고 하지 않는가. 새로운 중국이 선포되면서 수십 년 동안 공고했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달라지게 됐다. 북한은 하루아침에 허허벌판에 내몰린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최근 도발에 우리 정부가 꿈쩍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 60년간 선군정치를 기본으로 한반도에서 미군을 핵무기로 몰아내고 남한을 접수하자는 기본 패턴이 무너진 상황이다.”

―중국의 변화가 남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북한은 고립될 위기에 처했다. 상황이 악화되다 보면 이판사판으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의지가 단호한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비핵화 논의는 접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향을 전환해 북한을 ‘제2의 미얀마’로 이끌어야 한다. 새로운 살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개혁·개방을 가속화하고 있는 미얀마처럼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도 북한에 ‘미얀마의 길을 따르라’는 메시지를 거듭 보내고 있지 않나.”

―이번에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남북관계를 풀) 절호의 찬스이다. 북한을 제2의 미얀마로 이끄는 열쇠는 시 주석이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전까지 북한에 대해 우리가 취했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정책은 과거 패러다임의 연장이다. 북한을 견제할 게 아니라 중국과 함께 북한에 출구를 만들어주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김정은 체제의 개혁·개방 움직임을 중국이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대중(對中) 외교의 중심이 돼야 한다.”


현실적인 ‘제2의 미얀마’ 길 제안해야

그는 “시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것도 중요한 요소”라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북한 카드를 버릴 수도 없고, 미국이 북한 때문에 한반도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도 중국 입장에서는 껄끄럽다. 박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북한이 걸을 수 있는 ‘제2 미얀마’의 길을 제안하고 이에 대해 서로 교감하면 북한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큰 프로젝트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크게 호감을 갖고 있다. 중국의 국가 주도 경제개발 전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정책이 모델이 됐다. 그런 만큼 박근혜 대통령과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용이할 것으로 생각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 경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썼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외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해야 한다.”

―최근 중국의 태도 변화와 맞물려 남북 회담에서 의미 있는 논의가 오갈 것으로 기대됐는데 무산됐다. 

“북한은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동생이 형을 따르듯 의존했지만 이제는 거리가 생겨버렸다. 이런 한편으로 북한에게 남한은 ‘공작’의 대상이지, 외교의 대상이 아니다. 남북회담이 무산된 것도 그런 ‘공작’의 연장선으로 본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공작’의 방식이 더이상 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버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기획원 공공차관과장, 경제협력국장, 차관보를 역임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는 데 일조한 대표적 경제 관료다. 13, 15대 국회의원, 주중대사, 한국외국어대 총장, 대구한의대 총장을 역임하면서 정계와 관계 학계 경험도 두루 많은 그는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도 중국어 일본어 영어에 능통하며 오전 6시에 일어나 중국 일본 잡지와 신문 등을 꼼꼼히 읽는다고 한다.


인터뷰 김지영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30617/55906485/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1:02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가야만 하는 길의 좌표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별빛이 그 길을 환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시대의 하늘에 먹장구름이 드리울 때마다 떠오르곤 하는 죄르지 루카치의 한마디다.

“저는 국토해양부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사이비 과학자입니다. 매우 소심하고 마음 약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운을 뗀 그의 양심선언은 과연 시작부터 소심했다. “이 얘기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보안각서 위반이기 때문에 불이익과 법적 조처, 국가연구개발사업 자격이 박탈될 것입니다.” 그런 그가 용기를 냈던 것은 “국토의 대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아들딸 보기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제대로 된 전문가라면 (4대강 정비사업으로 포장된) 운하 건설로 인한 대재앙은 상식적으로 명확하게 예측됩니다.”

그 선언은 어둠 속 별이 되었다. 하지만 루카치의 말처럼 그는 홀로 된 영혼이었고, “(그는) 천상의 별을 형제로 가질 수 있지만, 지상의 동반자를 가질 순 없”었다. 화가 반 고흐가 그랬고, 시인 윤동주가 그랬다. 생레미 요양원에서 그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별마저 고독과 불안에 떨고 있다. 윤동주는 그 높고 크고 거룩한 뜻으로 말미암아 그가 헤던 별처럼 더욱 고독해야 했다.

그는 차단되고 그에게는 협박과 정신적 테러가 이어졌다. 국정원 조사까지 받은 것은 약과였고, 중징계(정직 3개월)는 시작이었다. 인사평가 최하위의 굴욕이나 연구과제에서의 배제 역시 버틸 만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동료들을 팔아 궁지로 몰아넣는 상급자의 저주는 그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들은 심지어 대운하 양심선언이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판단이라는 해명서를 게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영혼을 저잣거리에 버리라는 것이었다. 사퇴 압박이 뒤따랐지만, 파면당할지언정 사직은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의 동료들을 들들 볶는 것은 더 비열했다.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 개최를 막았다고, 심지어 노조 창립 기념식을 천안함 추모 기간에 열었다는 이유까지 들어가며 노동조합 지부장을 파면하고 사무국장을 중징계 처분 하기도 했다. 법원 판결로 무효가 되긴 했지만, 그를 보호하려던 노조 조합원들은 승진·전보 등 인사상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그 결과 92%에 이르렀던 노조 가입률은 불과 2년여 만에 18% 정도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의 곁에 노조가 있고, 누리집엔 김이태 지키기 카페도 등장했지만, 홀로 정권에 맞선 데 대한 책임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그의 아내는 이런 글을 누리집에 올렸다. “일을 시작하고부터… 헛소리에 밥 먹는 것도… 거부. 밤마다 헛소리하는 남편의 잠꼬대 소리로… 가슴이 철렁. 이후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남자.” 일하다가 맨홀 뚜껑에 엄지발가락 윗부분이 절단되어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는데도 산재 처리도 못했던 그 남자는, 어느 겨울날 거리를 헤매는 치매 노인을 집으로 모셔와 한 이불 덮고 잤던 인물이었다. 그 누이가 카페 회원들에게 ‘벌벌 떨리는 손으로 쓴 감사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가족도 겁이 나서 오빠에게 제대로 연락도 못하고 인터넷에 지지 글이나 서명도 못했습니다.”

계몽은 집단적 욕망 앞에서 빛을 잃고, 이성은 권력의 발바닥이나 핥고, 영혼은 누더기가 되어 버려졌던 시절, 온통 먹구름이 하늘을 가렸지만, 그의 양심은 별이 되어 가야 할 길, 갈 수 있는 길을 일러줬다. 그는 수난을 당했지만, 가슴만 끓이던 이들은 그 마음에 별과 양심의 기억을 하나씩 간직할 수 있었다. 엊그제 정권 이행 과정에서야 감사원이 돌연 4대강 사업의 재앙의 가능성을 인정했다. 흘러가는 먹장구름 사이로 문득 별빛 하나 천강을 밝힌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창공의 먹구름이 걷힌 것은 아니다. 차기 정권은 더 크고 짙은 먹구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빛이 가려질 뿐,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빛나는 양심 또한 그렇다. 김 연구원, 안녕하신가. 별은 빛나는가?

곽병찬 논설위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709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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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1:00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50년 1% 이하로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왔다. 잠재성장률이란 한 나라 경제가 물가나 자원 공급 등에서 큰 문제없이 늘릴 수 있는 최대한의 생산증가율을 뜻한다. 정부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이라서 더 그럴듯하다.

성장률 0%대를 사는 우리 세대나 자녀 세대를 상상해본 일이 있는가? 2050년이라면 그리 멀지도 않다. 지금 20세가 57세가 되고, 50세는 87세가 되는 해다. 지난해 한국은 2.2% 성장했다. 성장률 2∼3%대에서도 “힘들다”는 탄식이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은 성장률이 1% 줄면 일자리가 5만∼7만 개가 줄어든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은 늙은 대륙 서유럽의 국가들처럼 활기 없는 사회가 되고, 취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더 어두운 전망도 있다. 미래학자인 예르겐 란데르스 노르웨이 경영대학원 교수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2050년대까지 조금씩 늘다가 결국 멈추게 된다”고 예측했다. 그는 지구 환경과 인류의 미래를 연구하는 국제 비영리기구 ‘로마클럽’의 멤버다. 세계는 앞으로 40년간 낮은 성장률을 보이다 그 후엔 침체가 고착화한다고 봤다. 기존의 생산량과 노동량을 적절히 분배하면서 현상 유지만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성장을 당연하게 여겨온 사람들 눈엔 겁나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류 경제사(史)를 보면 낯선 일이 아니다. 경제사가(史家)들의 계산에 따르면 예수가 탄생한 이후 1000년간 1인당 GDP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 후 800년간의 변화도 미미했다. 한 사람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양이 1800년간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변화의 기폭제는 177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었다. 그 후 200여 년 동안 1인당 소득과 인구수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이 기간의 GDP 증가율이 평균 2%였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과 세계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1980년대 한국의 성장률은 평균 8.6%, 1990년대는 6.4%였다. 세계적으로는 1970년에서 2010년까지 평균 3.5%의 경제 성장을 했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정체한 아프리카 국가들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어쩌면 한국과 선진국들의 지난 50년이 인류 역사에서 이례적인 시기였다고 할 수도 있다. 

앞으로가 문제다. 밤새워 일하고 경쟁하고 성장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 저성장 사회를 견딜 수 있을까. 미래학자들이 예상하는 미래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대 수명이 100세를 훌쩍 넘는 고령화 사회, 게이 커플과 입양아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클라우드 컴퓨팅과 모바일 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된 세계, 자원 고갈과 신재생 에너지의 발달 같은 것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20∼30년 뒤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상상해본다. 많은 사람이 하루 3∼4시간씩 75세까지 일한다. 발달된 네트워크로 24시간 세계 누구하고나 대화할 수 있다. 전기료와 교통비가 비싸 출퇴근하기보다는 재택근무를 한다. 쓰레기 처리 비용이 점점 비싸져 패스트패션보단 좋은 제품을 사서 오래 쓰고 고쳐 쓴다. 어떤가. 그리 나빠 보이는가. 경제 사회적 조건을 행복으로 만드느냐, 불행으로 만드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저성장 시대에는 사는 방식과 사회 운용 체계도 변해야 한다. 일과 여가를 적절히 안배하고, 소비로 자신을 표현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돕는 생산적 경험에서 만족을 찾으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사회적으로는 일자리와 자원을 나누고 지구를 살리는 분야에 더 많이 투자하라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여지가 많고 높여야 한다. 그럼에도 개인이든 사회든 저성장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준비는 필요하다. 성장이 멈춘다고 세상도 멈추는 건 아니다.


신연수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30615/55873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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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0:45

“예전에는 내가 다니는 회사가 잘되는 것이 나라의 희망이요 나의 행복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그게 사라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미나시타 기리유·여·1970년생·사회학자)

“비정규직 젊은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시스템을 밑바닥부터 개혁해야 한다.”(우노쓰 네히로·남·1978년생·평론가)

“우리 세대의 가난은 자식 세대에까지 그대로 유전될 것만 같아 불안하다.”(고마자키 히로키·남·1979년생·회사원)

2012년 1월 1일 NHK에서 방송된 ‘젊은이가 해결한다! 일본의 딜레마’란 TV 프로그램에 나온 일본인 2030세대들의 하소연이다. 10명의 출연자는 1970∼1985년에 태어난 사람들로 교수, 연구원, 기업가, 평론가, 회사원 등 직업도 다양했다. 방청객과 프로그램 진행자도 모두 20, 30대만으로 채웠다. 이날 출연한 시부야 도모미 도쿄경제대 교수(여·1972년생)는 “남자들에게 묻고 싶다. 자식을 낳아 키울 만한 경제적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출연자들은 대부분 “지난 10년간 ‘격차’(양극화)가 심해진 것은 기성세대 탓”이라고 몰아붙였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은 절대 손해보지 않기 위해 젊은이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아 구조조정 충격을 완화하려 한다는 주장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기성세대가 정해 놓은 운명에 우리를 맡길 수 없다” “20대가 단결하면 나라가 바뀔 수 있다”며 동조하는 여론이 줄을 이었다. 일본 내 평론가들은 “TV 속에서 ‘세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NHK는 당초 신년 특집으로 1회만 내보낼 예정이었던 이 프로그램을 아예 한 달에 한 번씩 정규방송으로 편성했다. 지금까지 총 9회가 나갔는데 선거, 교육, 경제금융, 연금 시스템 등 사회적 현안들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불안과 답답함, 분노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세대전쟁은 기성세대에서 먼저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다. “긴 불황의 원인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라고 주장한 것이다. 포문을 연 것은 2009년 11월 출간된 ‘혐(嫌)소비 세대에 대한 연구’라는 책. 각종 수치와 근거들을 내세우며 “버블 시대 붕괴를 경험한 젊은 세대들이 소비를 잘 하지 않아 경제 불황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각종 경제 잡지에서도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젊은 세대들이 뭔가 좋은 것이 있으면 ‘사고 보자’는 소비 붐이 있었는데 요즘은 이게 없어졌다”며 “소비하지 않는 젊은이들 때문에 사회에 활력이 없어졌다”고 했다.

실제로 일본 젊은이들은 돈을 안 쓴다. 아니 쓰고 싶어도 쓸 여력이 없다.

가구소득과 소비실태를 보여주는 일본 국세청의 ‘민간급여실태 통계조사’에 따르면, 30∼34세 평균 연봉이 1997년 449만 엔(약 4500만 원)에서 2010년 384만 엔(약 3900만 원)으로 떨어졌으며, 20대도 비슷한 추이를 보인다. 여기에 비정규직 비중은 꾸준히 상승해 현재 일본 내 25∼34세 직장인의 약 4분의 1이 비정규직이다. 아버지 세대가 평생 고용으로 정년을 보장받았다면, 아들 세대는 계약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앞으로 소득이 오를 것이란 희망조차 이들에게는 없다. 

‘소비하지 않는 젊은이들’ 때문에 가장 타격을 받은 곳이 기업이다. 대표적인 곳이 도요타자동차. ‘굳이 차를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 때문에 내수 확보가 안돼 고전하고 있다.

이 회사가 시리즈로 내보내고 있는 TV 광고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인기만화 ‘도라에몽’의 주인공 노비타를 등장시키는데 스토리는 이렇다. 만화 속 소년 노비타는 30세가 됐지만 면허도 없고 차도 없다. 좋아하는 여자와 어렵사리 데이트에 성공하지만 기차를 타고 근교에 나갔다가 숲에서 길을 잃는다. ‘멋진 차’를 타고 우연히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어린 시절부터 천적이었던 쓰네오. 여자친구는 결국 쓰네오의 멋진 차를 타고 노비타를 떠난다. 광고의 마지막 자막은 ‘면허를 따자. 펀 투 드라이브, 어게인(FUN TO DRIVE, AGAIN)’이다. 

실제로 일본자동차공업회가 발표한 2011년도 시장동향조사에 따르면, 운전 빈도가 가장 높은 주 운전자 중 20대 비중이 1999년 16%에서 2011년에는 8%까지 떨어졌다. 같은 시기 60대 비중은 15%에서 35%로 늘었다. 

최근 일본 업계는 젊은이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3대 품목으로 자동차, 해외여행, 맥주를 꼽는다. 그 외에도 TV 등 가전제품, 담배 등의 기호품도 다른 세대에 비해 일본의 20대들이 소비를 줄이는 대표적인 제품이다. 예를 들어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스마트폰 하나면 만족’이라는 인식도 늘어 굳이 다른 가전제품에 눈을 돌리지 않는 식이다. 

일본 젊은이들이 이처럼 소비를 줄이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돈이 없다’는 것 말고도 다른 사회학적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우선 지금 일본의 2030세대는 호황과 불황이 극단적으로 오가는 롤러코스터 경제를 목격한 세대이기 때문에 소비행위 자체에 별 관심이 없다는 분석이다. 어린 시절 풍요로움을 느끼며 자라다 어느 날, 아버지 회사가 도산을 하고, 은행이 파산하는 것을 보면서 ‘빚이라도 내 물건을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각하기 시작한 첫 세대라는 것이다.

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 보니 아예 욕심 자체를 내지 않는 ‘신(新)무소유’ 세대가 등장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삶의 철학은 “(물질적으로 완벽하지 않더라도) 현 상태에 만족하자”는 것이다. 최근 일본 내각부가 조사한 국민생활 여론조사는 이를 잘 반영한다. 20대의 생활만족도가 경기가 좋았던 1971년엔 48%였는데 경기가 불황인 2011년에는 오히려 65%까지 오른 것이다. 이는 생활수준이 높아졌다기보다 ‘없이 살아도 만족하는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들을 지칭해 ‘사토리 세대’라 부른다.

최근 일본에서는 한 누리꾼이 올린 ‘1980년생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를 가르는 기준’이란 글이 화제가 됐다. 우선 1980년생 이전 세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차를 갖고 있으면 멋지지, 그녀와 데이트 할 때는 차로 데리러 가야 해, 남자라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차를 사고, 내 집을 마련해야 해, 2차로 가라오케는 가야 술자리가 마무리, 상사의 말에는 거스르지 않아야지, 잔업은 미덕.’

그렇다면 1980년생 이후 세대는 어떨까.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문제없지. 오히려 유지비가 더 들어 별로, 그녀와의 데이트는 중간 지점 지하철역에서 만나, 집은 빌려도 되지, 차라리 이사다니며 여러 곳에 살아봐서 더 좋아, 2차는 안 해도 돼, 모두가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는 가라오케는 오 NO! 상사도 틀릴 수가 있어, 의견이 다른 건 당연하지, 의미 없는 잔업 따위 할 필요가 없어.’

언뜻 한국에서도 최근 종영한 드라마 ‘직장의 신’이 겹쳐진다. 잔업 노, 회식 노를 외치며 비정규직 인생을 자처하고 나선 주인공의 모습에 한국 젊은이들도 공감했다. ‘직장의 신’의 원작인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이 일본에서 붐을 일으켰던 때가 5년 전인 2007년. 한국 젊은이들의 5년 뒤 모습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한석주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 컨설턴트



http://news.donga.com/3/all/20130524/55373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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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8:04

탈북 청소년들의 북송을 막지 못해 비난을 받고 있는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에는 이건태 대사를 포함해 5명의 외교관이 근무하고 있다. 이 대사는 2010년 1월 부임해 3년 임기를 넘겼다. 대사 밑에 개발 원조와 자원 업무를 담당하는 정무참사관이 있고, 총무와 영사 업무를 맡은 3등서기관(7급)이 있다. 탈북자를 담당하는 1등서기관(4급)은 문화와 홍보 업무를 겸한다. 

주라오스 대사관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외교관들에게 힘든 근무처는 아니다. 선진국에서 일했던 외교관들이 순환 근무를 할 때 비교적 선호하는 곳이다. 외교관들이 좋은 근무처와 나쁜 근무처를 구분할 때 사용하는 ‘온탕’과 ‘냉탕’ 가운데 ‘냉탕’에 가깝지만 분쟁 지역이나 아프리카보다는 나은 곳에 속했다. 하지만 중국을 거쳐 이곳으로 탈북자들이 밀려오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라오스를 거쳐 한국에 온 북한 주민은 수백 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라오스 대사관에서 탈북자를 담당하는 우리 외교관은 1명에서 더 늘어나지 않고 있다. 통일부 직원은 1명도 없다.

이번 사태에 대해 일차적으로는 현지 공관이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대사관에 인원과 지원은 부족한데 일이 몰리게 되면 실수도 발생할 수 있다. ‘폭탄 돌리기’ 게임을 하다가 걸린 사람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라오스가 중요하다면 대사관에 근무하는 인원과 관련 예산을 대폭 늘려 주어야 한다. 외교관 인력만으로는 힘들다면 소명의식과 전문성이 있는 민간 전문가들에게 탈북자 관리직을 개방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외교부와 국회는 라오스 사건을 면밀히 검토해서 현지 공관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비단 라오스뿐만이 아니다. 중국 러시아 몽골 미얀마 베트남 등 탈북자들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통로의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 사건이 일어나면 그때만 요란할 뿐 나중에 같은 잘못이 반복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라오스에서 탈북자가 불법 입국자로 적발되면 300달러(약 33만 원)의 몸값을 내야 한다. 30여만 원이 없어 다시 북송된 사례도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은 그 돈을 대신 내주지 못하고 다시 북한에 보낸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북한인권법을 조속히 제정해 적절한 지원 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 탈북자를 보호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 주고 그래도 잘못하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http://news.donga.com/3/all/20130604/55641276/1



Posted by 겟업
2013. 9. 19. 18:03

‘너무 울어서/텅 비어 버렸는가/이 매미 허물.’ 

일본 하이쿠(俳句) 시인 바쇼(芭蕉·1644∼1694)의 작품이다. 하이쿠는 5-7-5 음절의 운율을 지닌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다.

19세기 말 서구에 소개된 하이쿠는 서구 문학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인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1885∼1972)는 하이쿠에서 이미지즘(imagism·이미지로 표현의 명확성을 시도한 문학 사조)의 원형을 발견했다고 한다. 

하이쿠는 세월을 넘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하이쿠가 “일본 전통문화 중 가장 국제성을 띤 문화”라고 평가한다. 바쇼나 잇사(一茶·1763∼1827)와 같은 하이쿠 명인의 작품은 미국 초·중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잇사의 ‘사람도 하나/파리도 한 마리네/넓은 응접실’은 ‘One man/and one fly/waiting in huge room’으로 영역돼 있다. 미국 초·중등학생들은 연습문제로 하이쿠를 직접 지어 보면서 시(詩) 세계에 입문한다.

하지만 일본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 대다수는 하이쿠를 잘 모른다. 일본에 대한 문화 쇄국(鎖國)주의 때문이다.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하이쿠를 전혀 다루지 않았으니 일본 문화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하이쿠를 모를 수밖에.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 말살정책을 생각하면 일본 문화에 대한 쇄국주의는 당연한 조치였다. 그러나 그 기간이 너무 길었다. 쇄국주의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B급 및 저질 대중문화는 우리 곁을 슬금슬금 파고들었다. 반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하이쿠와 같은 고급문화는 들어오지 못했다.

우리가 B급 및 저질 대중문화만으로 일본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와 일본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최근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물론 그 직접적인 원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 관련 망언과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의 위안부 관련 망언에 있다.

하지만 양국 관계가 급속히 나빠진 데는 일본 문화에 대한 우리의 무지도 일조를 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확정 편향(confirmation bias)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존재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일본을 B급 및 저질 대중문화의 나라라고 일단 확정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들의 좋은 면은 외면하려 들게 된다. 베스트셀러 ‘스마트한 생각들’의 저자 롤프 도벨리는 끼리끼리 어울리는 인터넷 공간이 이런 부정적 확정 편향을 확대 재생산한다고 설명한다.

작년 초만 해도 드라마 ‘한류(韓流)’와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열풍 덕분에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작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日王) 사과 요구’ 발언 이후 분위기가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와 하시모토 대표의 선동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보름 전 영국 BBC방송이 발표한 국제사회 평판 조사를 보면 한국에 긍정적이라 답한 일본인의 비율이 작년의 34%에서 올해 19%로 하락했다.

우리나라는 개방형 경제를 택해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문화 역시 개방형을 지향할 때 큰 발전을 이룬다. 케이팝의 성공이 좋은 예다. 개방형은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개방형 문화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케이팝이 세계적 성공을 이뤘다 하나 여전히 수익의 절반 이상은 일본시장에서 나온다. 우리의 일본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깊어지지 않으면 일본에서의 케이팝 성공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케이팝과 같은 한류를 통한 그간의 한일 간 선린(善隣) 도모는 경제적 정치적 교류를 위한 든든한 기반이 됐다. 지금 그 기반이 양국 정치인들의 선동 때문에 위태로워졌다. 게다가 이를 말려야 할 오피니언 리더마저 선동에 가세했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5월 20일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가 ‘신의 징벌’이었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지한파(知韓派)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5월 30일자 동아일보 기명 칼럼에서 김 위원 칼럼에 대한 원폭 피폭자와 많은 일본인의 분노를 염려스럽게 전했다. 

한일 관계 악화를 걱정하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피폭자와 지한파 일본인에게 이 자리를 빌려 대신 사과한다. 한일 간 선린 회복을 위한 방법의 하나로 양국 국어 교과서에 각각 하이쿠와 시조를 소개할 것을 제안한다. 일본이 자랑하는 하이쿠 시인 시키(子規·1867∼1902)의 ‘여름 소나기/잉어 머리 때리는/빗방울이여’를 우리 교과서에서 봤으면 좋겠다.

이에 화답해 일본 교과서가 자규(子規·두견새)를 노래한 이조년(李兆年·1269∼1343)의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를 싣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http://news.donga.com/3/all/20130613/558223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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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7:53

“CJ가 저렇게 당하는 건 보호막이 되어줄 우군이 없어서다.”

CJ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뒤, 세상 돌아가는 속사정을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그들의 해설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CJ는 메이저 언론과 불편한 관계다. 케이블 TV 업계의 공룡인 CJ는 종합편성 채널을 갖고 있는 메이저 신문은 물론이고 지상파 방송사들과도 이해관계가 대립한다. 검찰로선 새 정부 첫 대규모 사정(司正)의 사냥감으로 CJ만큼 적당한 상대가 없었을 것이다.”

동아일보 사회부원들로서는 수긍키 어려운 해석이다. 필자를 포함해 부원 누구도 CJ와 그 어떤 이해관계나 호오의 감정이 있을 게 없다. 동아일보 종편채널인 채널A와 CJ 간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 필자에게 귀띔조차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동아일보 법조팀이 CJ 비리 의혹을 취재해 온 것은 종편 출범 훨씬 이전부터였다.

검찰이 이런저런 여건을 감안해 CJ를 타깃으로 정했다는 해석도 사실과 다르다. CJ 수사는 새 정부 들어 기획으로 준비했다기보다는, 칼집의 봉인이 이제야 풀렸다고 보는 게 맞다.

CJ 수사는 2007년 5월 CJ 전 재무팀장의 청부폭력 사건으로 거슬러 간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USB를 확보했고, 검찰이 2008년 복원한 USB 파일 속에는 이재현 회장의 차명 재산과 재산 도피 의혹을 뒷받침하는 편지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본격 수사가 시작되기까지는 근 5년이 걸렸다. 지난해에도 대검 중수부가 수사를 준비했지만 흐지부지됐다.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의 동문 검찰 고위 간부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었다. 현재 검찰이 풀어내는 보따리 속 내용물의 상당수가 이미 과거 내사 때 확보된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검찰은 준비돼 있는 상태였다.

이번 CJ 사건은 한국 재벌비리사의 낡은 페이지를 마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총수가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에 피해를 입히거나, 파렴치한 경제범죄를 저질러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을 경우 대주주로서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등의 제도적 입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잠시 감옥에 갔다 나오면 다시 ‘나라님’(임금·CJ 전 재무팀장이 이 회장을 호칭한 표현)처럼 거대 그룹을 호령하는 관행은 끝내야 한다.

과거에 기업에 대해 사정의 칼날이 몰아치면 재계와 정치권 등에서 기업 활동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곤 했지만 이번엔 그런 역풍이 거의 불지 않는다. CJ가 힘센 집단에 우군이 없어서일까? 채널A 기자의 가슴 찡한 특종기에서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 듯싶다.

사회부 최석호 기자는 검찰 압수수색 직후 장충동 이 회장의 집을 찾아갔다. 이 회장 집 옆 빌라의 70대 초반 경비원 A 씨에게 아침 상황 CCTV를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A 씨는 거절했지만 세 번이나 찾아와서 공손하게 부탁하는 최 기자에게 결국 CCTV 화면을 보여줬다. 화면 속에는 압수수색 수시간 전에 CJ경영연구소 직원들이 증거 인멸을 위해 자료를 빼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최 기자는 이 장면을 휴대전화에 담았고 채널A 뉴스에 특종 보도됐다.

며칠 후 A 씨가 사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최 기자는 가슴이 찢기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A 씨를 찾아갔다.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최 기자에게 A 씨는 “동네 빵집까지 다 뺏어간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화면을 보여줬다. 내가 도의상 사직한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최 기자를 껴안아주며 “나는 괜찮다. 너는 돈 먹지 말고 기자생활해라”며 등을 두드려줬다.

필자는 그 경비원이 우리 사회의 평범한 시민인 동시에 ‘작은 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은 아무리 장사에 능한 기업이라도 세상의 인심을 잃으면 장기적인 번성과 발전은 기약하기 힘듦을 경종처럼 알려준다. CJ가 저렇게 난타당하는 건 언론이나 검찰에 우군이 없어서가 아니라, 골목민심이라는 천심을 잃어서가 아닐까.


이기홍 사회부장



http://news.donga.com/3/all/20130606/556686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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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7:46

서울의 한 유명 음식점.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여자가 휴대전화를 꺼내 접시에 바짝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구도를 바꿔가며 여러 번을 찍고 지운다. 맞은편 남자는 젓가락을 든 채 여자 친구의 ‘신성한 작업’이 어서 끝나기를 기다린다.

다른 테이블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처럼 ‘선찍후식’(먼저 찍은 후에 맛보기)은 여성들 고유의 문화가 된 지 오래다.

한 인터넷 조사회사가 여성들에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67%가 ‘음식’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미혼의 경우 그 비중이 유독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음식을 자주 만들지는 않지만 먹는 것은 매우 좋아한다”고 답했다. 밖에서 사먹는 음식이 맛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남자들에게 음식이란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혹은 ‘어디서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장시간 고민하는 남자는 드물다.

여자들은 다르다. 메뉴 결정이 쉽지 않으며 한참을 기다리더라도 ‘인정받은 맛있는 집’에서 대표 메뉴를 앞에 놓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음식이 나와도 곧바로 먹지 않는다. 인증 사진부터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이제 맛집은 우리 시대 최고의 즐거움이자 이야깃거리가 됐다. 20∼40대 여성들에게 맛집은 블로그 혹은 SNS와 ‘연관어’로 여겨질 만큼 한 몸체로 붙어 있다. 여성들이 블로그나 SNS를 통해 강조하려는 메시지는 이렇다. ‘나, 이거 먹고 있다!’ 자신의 행복한 경험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음식은 개인을 넘어 관계로 확장된다. 여성에게 ‘맛’이란 ‘분위기’를 포함한 단어다. 그들의 호불호 판단에는 ‘어떤 분위기에서 누구와 함께 식사를 했느냐’가 종합적으로 작용한다. 맛있는 음식을, 통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다면 여성들에게는 그 순간이 행복의 절정이다. 그들은 경험의 공유에서 최고의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생동감 있는 사진과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블로그를 꾸며 사람들의 호기심과 공감을 끌어낸다. 남자들에게는 ‘잘 먹으면 끝’인 식사가 여자들에게는 공유할 수 있는 스토리로 재탄생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경험을 나누려는 여성들의 성향을 미래 기업 활동의 주요 모티브로 꼽는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는 “스타벅스나 할리데이비슨 같은 회사야말로 경험을 팔아 성공한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다”며 “앞으로는 기업의 부가가치가 경험의 질(Quality of Experience)에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상복 작가



http://news.donga.com/3/all/20130601/55558862/1



Posted by 겟업
2013. 9. 19. 17:45

지금 서강대 로욜라 도서관 전시실에서는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전시회 하나가 열리고 있다. 21일까지 계속될 이 전시회의 이름은 ‘자랑스러운 한국의 딸 조창수’.

생소했던 이름의 이 여성에 관한 전시회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홀로 전시회의 이름을 ‘문화전사 조창수’라고 바꿔 되뇌어 봤다. 말하자면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로부터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반환받은 박병선 선생이나, 약탈당한 조선왕조실록의 반환을 위해 분투해온 도쿄 고려박물관의 이소령 여사와 같은 계열의 인물인 셈이다. 전 생애를 바치다시피 하여 우리 문화재 반환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삶의 족적이 몇 장의 흑백사진과 일기, 그리고 소박한 유품들 속에 묻어 있었다.

1925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녀는 말하자면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원 없이 공부한 신여성이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보장될 수 있었지만 그 삶의 족적은 결코 녹록지 않았는데, 어찌 보면 이것은 순전히 그녀가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일본 여자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그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민속학으로 석사를 마치면서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데 이 기간에 그녀는 미국으로 불법 반입된 고종과 순종의 옥새 등 100점에 가까운 국보급 문화재를 찾아내 모국의 국립박물관에 반환시키는 등 우리 문화재 발굴과 반환에 생애를 불태우다시피 했다. 박물관에 재직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민속 등을 알리는 스무 권 넘는 책을 썼고, 2007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한국관 개관을 위해서는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병선 선생 역시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분관 폐지창고에 버려지다시피 했던 의궤를 비롯해 귀중한 우리 문화재를 반환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마침내 이 문서들이 145년여 세월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한 후 눈을 감았다.

조창수 여사 또한 대한제국 때 제작된 고종과 순종의 황제 어보(御寶)와 명성황후 옥보 및 그 외의 왕실 보인과 국보급 문화재들의 발굴과 반환을 위해 진력하다가 평생의 소원이었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한국관 개관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한 후 서울에 돌아와 외아들인 에릭 스완슨(서울 힐튼호텔 총지배인)의 품에서 84세로 영면하게 된다. 아들은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그녀의 소중한 문헌자료 357권을 전시회와 함께 서강대에 기증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을 때 황제어보를 제작해 국가의 독립과 자존을 알리고 싶었던 고종과 순종의 마음, 그리고 비명에 간 명성황후의 구천에 떠돌았을 원혼을 위로하여 고국으로 돌아오게 했던 그녀 또한 가진 모든 것을 바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한 줌 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시회의 벽면 한쪽에는 그녀의 남동생인 조창호 중위에 대한 일대기가 역시 희미한 흑백사진 속에 기록으로 남겨져 있어 이채로웠다. 조창호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6·25전쟁 때 북한에 끌려갔다가 40여 년 만인 1994년에 탈출한 국군포로로 기억된다. 그는 같은 해 11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중위로 전역식을 갖고 43년 3개월이라는 최장기 군 생활을 마감했다. 꽃다운 나이에 헤어져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과 북한에 헤어져 살던 오누이는 서울에서의 짧은 해후 끝에 각각 유명을 달리하게 되는 기구한 운명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벽면 또 다른 한쪽에 붙어 있는 시 ‘우리도 당당하게 살기 위하여’도 유난히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 시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한국관 개관을 위해 미국 교민들이 힘을 모을 때 그곳의 한 시인이 썼다고 한다.

‘(…)눈바람 씻기운 광개토왕비/반짝이는 신라의 정교한 금관/은은한 고려청자/소박한 이조 백자에서/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찾습니다/이 세상의 누군가 우리들만큼 한국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몇 년을 여기 더 살아도 우리들은 모두 한국인입니다/우리들 아들딸들이 태어나 여기 살아도 그들은 모두 한국인입니다/“당신은 어디서 왔나요?”라고 물으면/코리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그들은 모두 한국인입니다/만국민 모여 사는 이 북미 대륙에 우리도 당당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반만년 한국예술을 지켜야 합니다/우리는 한국예술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누구나 ‘(밖에) 나가 살다보면’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이역만리에서 문화재를 만났을 때 그것은 바로 나와 내 조상을 만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들을 고이 지켜 고국에 돌려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말로 전선에 나가 총 들고 싸우는 전사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6월이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시기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http://news.donga.com/3/all/20130615/558732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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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7:17

“할리우드에서 한국 영화의 성공전략요? 간단합니다. 강점은 더욱 부각시키고 약점은 개선하는 거지요.”

미국 메이저 영화사 파라마운트픽처스의 지니 한 수석부사장은 한국 영화만의 강점으로 기발한 아이디어와 독창적인 스토리를 꼽았다.

◇‘올드보이’ ‘태풍’ 등 아시아 영화의 미국 마케팅·배급을 주도한 지니 한 파라마운트픽처스 수석부사장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으로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융합형 콘텐츠산업 콘퍼런스’ 기조강연을 위해 방한한 그는 “2005년 미국 개봉한 ‘올드보이’는 아직도 현지 영화아카데미의 교재로 사용될 만큼 미국인에게 신선함을 넘어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면서 “한국영화의 제작비는 할리우드 작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기 때문에 액션 대작보다는 스릴러와 같은 장르 영화에 치중하되 ‘와호장룡’처럼 아시아적 문화와 감성을 녹여내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 수석부사장은 파라마운트 영화의 전 세계 마케팅·배급을 담당하고 있는 동시에 미래전략 기획·총괄을 책임지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아홉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그는 전공을 살려 수년 전 파라마운트에 합병된 드림웍스에 마케팅 컨설팅을 한 게 인연이 돼 드림웍스 부사장(2002∼05)에 이어 2006년부터 파라마운트 수석부사장 직을 맡고 있다. 한국의 정서와 미국의 합리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을 듣는 그는 ‘올드보이’ ‘태풍’ 등 아시아 영화들의 미국 마케팅·배급을 주도한 파라마운트의 영향력 있는 ‘아시아통’이기도 하다.


한 수석부사장은 파라마운트 영화의 전 세계 마케팅·배급을 담당하고 있는 동시에 미래전략 기획·총괄을 책임지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아홉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그는 전공을 살려 수년 전 파라마운트에 합병된 드림웍스에 마케팅 컨설팅을 한 게 인연이 돼 드림웍스 부사장(2002∼05)에 이어 2006년부터 파라마운트 수석부사장 직을 맡고 있다. 한국의 정서와 미국의 합리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을 듣는 그는 ‘올드보이’ ‘태풍’ 등 아시아 영화들의 미국 마케팅·배급을 주도한 파라마운트의 영향력 있는 ‘아시아통’이기도 하다.


그는 1일 기조강연 주제인 ‘영화산업과 콘텐츠의 융합’을 “거스를 수 없는 유일한 생존전략”이라는 말로 갈음했다. 한 부사장은 “자신이 원하는 때 원하는 콘텐츠를 보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DVD, 주문형 비디오, IPTV, 웹사이트의 다운로드 서비스 등 새로운 배급채널이 등장하고 있어 영화산업 역시 제작과 배급, 마케팅에서도 이 같은 흐름에 맞춰 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를 먼저 개봉한 뒤 게임이나 캐릭터상품 등으로 변환하는 식의 플랫폼 차원이 아니라 ‘아바타’처럼 콘텐츠 개발 단계에서부터 극장, 비디오, 게임시장 등을 겨냥한 적극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는 한국영화가 해외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전략도 미국 영화계의 콘텐츠 융합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를 개봉할 때 그 작품이 향후 10년 동안 어떠한 플랫폼을 통해 얼마만큼의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할리우드처럼, 한국 영화계도 국내 개봉 성적 이외에 해외시장, 부가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극장 성적이 영화의 수익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은 대작 영화를 찍거나 저예산 영화만 나올 수밖에 없는 시스템적인 한계가 있다”면서 “투자금 배분의 투명성과 함께 거시적인 단계별·지역별 수익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http://www2.segye.com/Articles/News/Article.asp?aid=20091201003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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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7:09

한국 증시에 위기의 그림자가 짙다. 지난 1년 주가(코스피지수)는 약 3.5% 떨어졌다. 이 와중에도 주가가 150% 이상 오른 종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한미약품이 주인공. 시장 전문가들은 ‘중국 요인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베이징의 서우두(首都)공항 근처에 자리 잡은 베이징한미약품을 찾은 이유다.

회의실에 들어서니 벽에 걸린 큰 중국 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지도 곳곳에 붉은 점이 빼곡히 찍혀 있다. ‘영업 활동 지역을 표시한 것’이라는 게 임해룡 법인장의 설명이다. 중국 전역에 약 900명의 영업맨이 뛰고 있단다. 그는 “어린이 설사 변비약 ‘마미아이’와 기침 감기약 ‘이탄징’은 아동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며 “이제는 성인용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실적과 미래 전망이 주가를 끌어올린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중국 소비자의 힘이다.

중국 소비자가 주가를 끌어올린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빙그레는 바나나맛 우유가 중국에서 ‘대박’이 나면서 지난해 주가가 약 100% 올랐다. 카지노 업체인 파라다이스 주가는 밀려드는 중국 관광객에 힘입어 지난 1년 사이 역시 두 배 올랐다. 화장품·패션 등 중국 소비자에게 노출된 기업 주가 역시 중국 판매 상황에 따라 등락을 거듭한다. 그렇게 우리는 ‘중국 소비자들이 우리나라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중국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 대응했기에 가능했던 얘기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 비즈니스는 ‘얼마나 싸게 만드느냐’가 핵심이었다. 가급적 낮은 원가에 제품을 만들어 미국·유럽 등에 수출하는 게 관건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성장 동력을 투자·수출이 아닌 소비에서 찾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은 바뀌고 있다. ‘제조 시대’에서 ‘소비 시대’로 트렌드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 시대에는 가급적 비싸게 파는 기업이 이긴다. 그러기에 브랜드가 중요하고, 품질 관리가 필요하고, 또 마케팅이 요구된다. 중국에서도 이제는 이 같은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이 제조업에 치중했던 시기, 우리 기업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해 큰 이익을 얻었다. 이는 1997년, 2008년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기도 했다. 미국이 돈을 거둬들이면서 또다시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중국에서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면, 이번에는 소비시장이 답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베이징한미약품의 R&D센터에 있는 50여 마리의 원숭이가 힌트다. 이들은 중국 당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실험용 동물이다. 사람 키우는 것보다 돈이 더 많이 든단다. 그럼에도 이들을 기르는 것은 현지 실정에 맞는 최적의 약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그 옹골진 현지화 노력이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연구실 원숭이는 소비 시대 중국에 어떻게 적응할지를 시사하고 있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1881767&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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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6:59

외출하고 들어온 전두환 대통령. 황급히 경제수석을 찾는다. “임자, 중앙은행이 독립한다고 하는데 뭔 소리야?” 대통령의 다급한 질문에 가슴을 쓸어내린 박영철(현 고려대 석좌교수) 수석. 이내 안정을 찾으며 차분히 설명한다. “중앙은행은 원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고….” 묵묵히 듣던 전 대통령,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청와대 차관회의에서 재무부 차관이 지목됐다. “네, 재무차관 ○○○입니다.” 이어지는 전 대통령의 질문. “금리, 내리는 게 좋은가, 올리는 게 좋은가?” 느닷없는 물음에 머뭇거리자 누군가 도와준답시고 손을 아래로 향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예, 내리는 게 좋습니다.” 그러자 전 대통령이 씩 웃으며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시장에 맡기는 게 좋아.” 

전 대통령 시절은 경기가 좋았던 때였다.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로 유례없는 호황을 톡톡히 누렸다. 경제에 관한 한 역대 정부에서 그만큼 운이 좋았던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꼭 운만이었을까. 그는 경제 무식자를 자처하면서 유능한 관료들을 대거 발탁했고, 그들의 조언을 잘 듣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른 지난달. 미국 순방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뉴욕에 들렀다. 성대한 교민 행사도 치렀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이 했던 일이 빠졌다. 그것은 뉴욕증권거래소 타종 행사와 월가 거물들과의 회동이었다.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참, 안타깝다. 이 행사는 꼭 했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아마 이 사안의 중요성을 조언해줄 사람이 없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현 정부에서 그나마 국제금융통이랄 수 있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대통령 수행단 멤버가 아니었다. 
지난 4월엔 호칭(何晶)이란 이름의 싱가포르 여성이 극비리에 한국을 찾았다. 그는 세계적인 투자기관 싱가포르 테마섹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 이 정도라면 ‘아, 그런 사람이 온 거구나’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여성,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며느리이자 리셴룽(李顯龍) 현 총리의 부인이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리콴유가 누구인가. 독립 싱가포르 총리로 26년간 재직했고, 작은 도시국가를 세계 수준의 나라로 탈바꿈시킨 최고 실력자 아닌가.

그런 호칭 회장은 박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했다. 하지만 불발됐다. 당시엔 북핵 위기가 고조될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그를 접견하지 못한 것을 두고 아쉬워하는 금융인이 적지 않다. 특히 호칭 회장은 테마섹 고위 간부들을 몽땅 데리고 방한했다. 원래는 전 세계 글로벌 센터장 500여 명을 모두 한국으로 불러들일 생각이었다. 그만큼 한국 투자에 엄청난 관심을 가졌다. 실제 그는 국내 주요 투자기관 사람들과 접촉했다. “아무리 중대 위기 상황이긴 했어도 대통령은 호칭 회장을 꼭 만나야 했습니다.” 경제 고위 관료를 지낸 한 인사의 얘기다.

경제가 몸이라면 금융은 심장이다. 심장은 우리 몸의 피를 잘 돌게 한다. 경제에서 피는 곧 돈이다. 돈이 잘 돌아야 우리 경제가 잘 굴러간다. 심장은 커도 안 되고 작아도 안 되지만, 작동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혈액순환이 어려우면 몸이 마비되듯, 돈 흐름이 막히면 경제가 멈춘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금융사고는 터지면 대형이었다. 이처럼 국가 운명까지 좌지우지하는 게 금융이라 대통령이 금융에 무관심하면 나라가 흔들릴 수 있다. 오죽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금융을 톱 프라이어리티(최고 우선순위) 정책으로 삼을까. 

그렇다고 대통령이 금융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유능한 사람을 두루 만나 귀담아들으면 된다. 그전 정부 인사라고 배제할 까닭이 없다. 5공 정부 재무부 장관을 지낸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도 활약했고, 이명박정부에서는 서울 G20 정상회의 유치의 일등공신이었다. 금융에서는 오히려 젊은 피보다 노련미 넘치는 사람이 좋다. 환자들이 대형병원을 찾는 이유는 수술 경험이 많은 의사들이 포진해서다. 패기가 경륜을 이길 수는 없다.

정선구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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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9. 19. 16:58

“스님, 지원했던 대학에서 다 떨어졌어요. 지금 저 자신이 너무 초라하네요. 다시 공부를 해야 되는데 마음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임용고시 준비를 3년 했어요. 그런데 같이 준비하던 친구들은 다들 붙었는데 저만 또 떨어졌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시험을 다시 준비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할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시작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손님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식구들 볼 면목도 없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져서 의기소침해 있습니다. 스님께서 기운을 좀 북돋아 주세요.”

내 인생에 찾아온 첫 번째 실패는 너무도 아픕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지요. 실패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때 ‘설마’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경쟁률이 높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설마 합격하겠지, 요즘 경기가 안 좋다지만 열심히 하면 내 가게만큼은 설마 성공하겠지 하고 막연한 상상을 합니다. 시험에 떨어지고 난 후, 가게가 망하고 난 후 어떻게 할지를 구체적으로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열심히 산 사람, 목표만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온 사람의 경우에는 그 꿈이 좌절됐을 때 다른 대안은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앞이 더 캄캄합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일수록, 큰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자신의 인생 앞에 찾아온 첫 번째 실패 앞에서 더 크게 좌절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지금 같은 실패가 내 인생에서 수십 번은 더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요. 앞으로도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무수히 많을 거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이런 좌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겪어내야 한다는 사실을요. 즉 지금 실패는 아주 정상적인 경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패를 경험했다고 해서 내가, 내 인생 전체가 ‘실패자’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내게 결함이 있어서도, 내가 남들보다 못나서도 아닙니다. 단지 실패는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이 잘못 되었구나’를 가르쳐주는 귀중한 계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냉정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지금의 실패가 나에게 준 가르침이 무엇이지?’라고 말입니다. 실패의 원인에 대한 답이 정확하게 나와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빠지면 똑같은 실패를 또 한 번 반복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승려가 취직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면 좀 우습지만, 저도 미국에 있는 대학 교수 임용 과정에서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가장 마음에 두었던 대학에서 불합격 소식을 듣고 난 후 저는 큰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아직 다른 학교 인터뷰가 여러 군데 남아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능력에 대한 총체적인 의문도 들고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새벽에 깨서 내가 왜 그 학교에 떨어졌을까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모습을 그냥 잘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던 것입니다. 학교가 원했던 것은 노력하는 내 최선의 모습이 아니고, 그 학교가 지금 필요로 하는 능력을 이미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저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데 너무 안일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을 도모할 때 그 일이 잘되려면, 그 일의 시작이 내가 되면 안 되고 상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실패를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지금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힘드신가요? 그렇다면 그냥 좀 더 열심히 공부하면 되겠지 막연히 생각하지 말고, 어떤 잘못된 습관 때문에 성적이 오르지 않는지 구체적으로 답을 찾아보세요. 지금 고시에 떨어져서 방황하시나요? 이번 딱 한 번만 더 시험에 도전해보고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가족들 앞에서 맹세하세요. 마지막이라고 다짐을 하면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게 될 것이고, 설사 훗날 다른 길을 가게 되더라도 ‘그때 조금만 더 해볼걸’ 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습니다. 가게가 망해서 좌절하셨나요? 그렇다면 왜 망했는지 누구 탓할 생각하지 말고 냉철하게 스스로에게 그 원인을 물으세요. 혹시라도 재도전하게 된다면 준비 기간을 처음보다 세 배 이상의 시간을 가지고 철저하게 분석하고 준비하세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실패, 그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나만의 인생 노하우가 쌓이게 된다는 점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재기를 응원합니다.


혜민 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1809126&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9. 19. 16:51

요즘 현대차는 외부 손님이 오면 주로 남양기술연구소로 데려간다. 그곳엔 공대를 졸업한 연구원들이 밤낮없이 신차종 개발에 땀을 흘린다. 현대차가 과거에 자랑하던 생산라인은 공개를 꺼린다. 제조비밀 때문이 아니다. “도요타 등 다른 공장들을 둘러본 자동차 전문가는 한눈에 현장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챈다. 작업 분위기가 느긋하고 느슨하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미래가 어둡지 않으냐는 반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오히려 남양연구소를 둘러보면 손님들의 표정이 좋아진다”고 했다.

현대차의 국내 생산 비중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생산효율성 지표인 HPV(자동차 1대 만드는 데 투입된 근로시간)는 해외 공장들이 울산 공장의 절반 수준이다. 현대차 노조의 투쟁 대상이 사용자라는 건 착각이다.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는 해외 공장의 값싸고 질 좋은 근로자다. 그런 사실을 간파한 현대차 노조는 단체협상 때마다 꼼수를 부린다. 해외 공장을 세울 때 노조 동의를 받으라고 우긴다. 나아가 글로벌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고집한다. 스스로 경쟁력이 떨어지니 해외 공장과 해외 판매법인이 올린 이익에 숟가락을 얹겠다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10년 넘게 좋은 시절을 누렸다. 강력한 투쟁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진짜 비밀은 따로 있다. 1999년 정몽구 회장 취임 이후 현대·기아차의 생산량은 연산 202만 대에서 올해 750만 대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우선 시장 수요를 맞추는 게 중요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현대·기아차의 판매량이 해마다 40만~50만 대씩 늘어나는 신화를 언제까지 이어갈지 의문이다. 판매량이 주춤거리는 순간 어느 공장부터 감산할지 눈감고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이미 일본이 밟아온 길이다. 도요타의 국내 생산비중은 40%, 혼다는 27%, 닛산은 20% 아래로 떨어졌다.

더 이상 삼성전자를 국내에 붙들어 두기도 무리다. 현재 구미 공장의 스마트폰 생산은 연간 3700만 대. 그 10배인 3억7000만 대를 베트남과 중국 공장에서 만든다. 까다로운 신제품인 갤럭시S4는 처음으로 구미·베트남·중국에서 동시에 생산한다. 품질은 똑같고 생산수율도 엇비슷한 수준이다. 이에 비해 고졸 초임의 월 급여(기본급·상여금·법정보험 포함)는 구미가 3284달러, 베트남이 250달러다. 잔업과 휴일근무까지 포함해도 베트남의 평균 인건비는 구미의 10% 수준이다. 게임이 안 된다.

첨단 공장은 국내에 남으리란 기대는 순진한 환상이다. 삼성은 최첨단인 20나노급 반도체와 8세대 LCD공장을 중국에 지었다. 회사 측은 “컴퓨터와 휴대폰의 세계 최대 생산거점이 중국이다. 반도체·LCD 수요가 가장 많은 곳에 부품 공장을 짓는 건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삼성이 당초보다 한 세대 앞선 첨단 공장을 내보낸 데는 중국의 집요한 작전이 숨어 있다. 중국은 LCD 같은 핵심부품의 관세를 3%에서 5%로 끌어올려 현지 진출을 압박했다. 기술 유출은 삼성도 겁내는 대목이다. 하지만 미국·대만 경쟁기업들의 중국 공장이 승승장구하는 건 더 끔찍한 장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중 때 시안의 삼성 반도체 공장을 둘러볼 모양이다. 시진핑의 정치적 고향을 방문하는 포석도 깔려 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베이징현대차 공장 방문에는 난색을 표한다고 한다. “굳이 재벌 공장을 둘씩이나 둘러보면 국내 정서가 악화될 수 있다”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지나친 정치적 판단이다. 박 대통령이 내친김에 두 공장을 함께 둘러봤으면 한다. 만약 그곳에서 “뻗어나는 우리 국력을 느꼈다”고 하면 반쪽만 본 것이다. 시안의 반도체 공장은 무려 8조원을 쏟아부은, 단일 투자로는 역대 최대다. 앞으로도 첨단 공장마저 계속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란 신호를 읽을 수 있다. 아마 베이징현대차 공장에는 울산에서 가져간 헌 장비들이 곳곳에서 눈에 띌 것이다. 그럼에도 HPV는 19.5시간으로, 울산 공장의 30.7시간보다 생산성이 훨씬 높다.

이 두 공장은 우리 경제의 냉엄한 현주소를 짚어볼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박 대통령이 이런 쓰라린 역설의 현장을 두루 둘러보았으면 한다. 어쩌면 박 대통령이 중국에서 마주칠, 북한 핵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옛날부터 신(神)은 선물을 항상 고통의 보자기에 싸서 보낸다는 말이 있다. 귀족노조와 정면 승부 없이 한국 경제가 되살아날 우회로가 있을까. 서비스업 기득계층과 맞서 과감한 규제완화 없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오래 문제의 본질을 애써 외면해 왔다. 더 이상 기업들의 막연한 애국심만 믿을 때가 아니다.


이철호 논설위원



http://pdf.joins.com/article/pdf_article_prv.asp?id=DY0120130612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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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6:47

섭씨 46도를 오르내린 날씨만큼이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서니랜즈 1박2일 회동’은 기록적이었다.

480분간의 마라톤 만남은 벌써 기록으로 남았다.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새로운 접근법, 냉전시대의 미국·소련 관계와는 다른 미·중 관계의 설정 등도 먼 훗날 역사책에 등장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부상하는 강대국’ 중국과 ‘기성 강대국’ 미국의 두 정상이 만난 1박2일은 거대한 국익의 충돌장이기도 했다.

8일 오후 2시20분(현지시간). 오바마와 시진핑이 만난 서니랜즈로부터 5㎞ 남짓 떨어진 웨스턴 미션힐스 호텔의 앰배서더 룸에는 10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렸다. 회동 결과와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급히 마련된 자리였다.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벤 로즈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함께 나타났다. 도닐런 보좌관은 이번 회동을 사전에 기획하고 연출한 주인공이다.

“아주 특별하고 중요했던 오바마 대통령과 시 주석의 회동 결과에 대해 설명하겠다”는 말과 함께 시작된 도닐런 보좌관의 모두발언 뒤 문답 시간이 이어졌다.

AP통신과 CNN 등 미국 기자들의 질문은 대부분 한 가지에 집중됐다. 미국 기업과 정부를 괴롭히는 중국의 사이버 해킹에 대해 어떤 얘기가 오갔느냐였다. 미국 기자들에게 둘의 만남은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훔치는 중국의 행위로부터 미국의 국익을 얼마나 방어할 수 있었느냐가 관심이었다.

미국 기자들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된 뒤 일본 기자들이 나섰다. 그들의 관심사는 또 달랐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이 제대로 거론됐는지였다. 그 틈바구니에서 한국 기자들도 예외일 수 없었다. 북한 핵 문제, 탈북자 북송 문제 등이 어떻게 논의됐는지를 물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브리핑은 한국·미국·일본 등 3국 기자들이 서로 다른 관심사를 묻는 경연처럼 진행됐다.

마지막 답변을 마친 도닐런 보좌관이 단상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기자석 한편에서 갑자기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에 중국이 문제 제기를 했느냐”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대만 기자였다. 도닐런이 그냥 퇴장하려 하자 그 기자는 다시 소리를 쳤다. 멈칫하는가 했던 도닐런은 백악관 직원에게 e메일로 답변해 주라고만 한 뒤 떠났다.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세계 각국 기자들이 모이는 공동 기자회견장에 가면 늘 체감하는 게 있다. 그 나라의 국력만큼 언론도 발언권을 갖는다는 점이다. 중국이 커질수록 작아질 수밖에 없는 대만 기자의 상기된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혔다.


랜초미라지(캘리포니아)
박승희 워싱턴 특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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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9. 19. 16:40

‘중국’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그의 말이 거칠어졌다. 흥분한 듯했다. ‘한마디로 남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돈 버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 현지 경제 사정이야 어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자기들 사정이 바뀌었으니 계약을 변경해야 한다고 생트집을 잡는다”는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지난달 초 미얀마 양곤에서 만난 흘라잉 스마트그룹 회장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중국인에 대한 성토로 끝났다.

미얀마는 중국이 지난 20여 년 동안 공들여 오던 곳이다.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협력 프로젝트를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시각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미얀마뿐이 아니다. 기자가 최근 2~3년 취재 차 방문했던 울란바토르(몽골),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 하노이(베트남) 등에서 만난 기업인·관리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필리핀이나 일본 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하나의 나라(一國)’라고 말하는 대만·홍콩 사람들에게도 중국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이웃에 거대한 국가가 출현하면 주변 나라들은 본능적으로 위협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힘의 균형이 깨질 때 전쟁은 그 균열의 틈을 비집고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역시 그런 역사를 여러 번 겪어야 했기에 대국 중국을 보는 주변의 시각은 불안하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경계감도 높아지는 꼴이다.

어찌하면 ‘존경받는 대국’의 이미지를 심을 수 있을까? 팜 시 판 하노이대 교수는 “중국이 후왕박래(厚往薄來)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공자가 제시한 ‘대국이 되기 위한 아홉 가지 요건(大國九經)’ 중 마지막 사항. ‘(주변 제후에게) 갈 때는 후하게 주고, 올 때는 적게 받으라’는 뜻이다. 팜 교수는 “주고받는 물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주변국의 마음을 사라는 게 이 글귀의 참뜻”이라며 “이웃 국가로부터 존경받지 못한다면 중국은 절대 대국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중국 외교의 화두는 ‘대국(大國)’이다. 미국과는 ‘신형(新型) 대국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고, 지도부의 잇따른 해외 방문을 두고는 ‘대국외교’의 면모를 보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주변국의 불안을 어떻게 해소시킬지에 대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형 대국관계를 두고 ‘원교근공(遠交近功)’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된다. 아시아의 패권 장악을 위해 먼 곳에 있는 강대국을 상대로 정지작업에 나섰다는 의혹이다.

흘라잉 스마트그룹 회장은 ‘미얀마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중국은 이제 미국과 경쟁해야 할 처지’라고 말한다. 미얀마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란다. 덕택에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한 미국은 성큼성큼 발을 들여놓고 있다. 어디 미얀마뿐이겠는가. 동아시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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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6:37

이제 사방의 자연은 신록의 봄을 지나 녹음이 우거진 완연한 여름으로 들어선 것 같다. 장마가 한바탕 지나야 본격적인 여름이 되겠지만 그래도 벌써 무더위의 기세가 느껴진다. 이맘 때 쯤 이면 슬슬 방학이다 휴가다 하여 집 떠날 채비나 궁리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마음에 여유가 없거나 형편이 여의치 않은 사람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여름 한철만이라도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오랜만에 자연을 찾아 떠나서 건강하게 에너지와 영감을 얻고 휴식과 치유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광이나 여행을 통해 편하게 쉬고 놀고 오자면 아무래도 잘 알려지고 검증된 관광지나 명승지가 제격이고, 먹고 자는 문제도 리조트나 전문 관광시설이 편리하겠지만 또 나름의 창의적인 여름휴가를 시도해 보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농촌은 하나의 대안으로 좋은 관광지가 될 수 있다. 경탄을 자아내는 대자연이나 깜짝 놀랄만한 스펙터클한 이벤트가 있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농촌은 나름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청정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농촌으로의 관광에는 단순히 먹고 마시고 노는 것 이상의 가치 있는 체험이 중요하며 그 핵심에는 역시 문화가 있다. 이는 문화재나 문화행사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총체적인 장소성과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성을 체험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지역의 입장에서는 마을도 알리고 소득도 창출하니 농촌관광의 증가는 환영할 만한 일이며 직접 관광업 종사자에게는 이 여름이 성수기로 특히 큰 힘이 될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마을마다 생태마을이니 테마마을이니 하여 이름도 짓고 방문자센터도 만들고,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에 여름축제까지 열심히 준비를 한다. 관광관련 교육도 받고 적극적으로 가이드나 해설사로 나서기도 한다. 각종 미디어들도 농촌으로의 휴가나 여행을 권하는 안내가 심심치 않게 나와서 여느 유명 예능프로처럼 대박은 아니더라도 홍보의 덕을 보는 경우도 있다. 

출발하면서 대형마트부터 들러 그득그득 트렁크를 채워 올 거면 뭐 하러 농촌으로 오는가. 가벼운 마음과 텅 빈 가방으로 와서 현지에서 쇼핑하는 것이 재미도 있고 추억도 된다. 오일장이나 재래시장은 물론 읍면마다 있는 지역마트도 무척 훌륭하다. 북적거리는 관광지 식당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이 동네 사람들 잘 가는 맛집을 추천받아 가면 뜻밖의 보석 같은 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바닷가 휴양지의 번잡스러움과 요금에 시달리느니 조금 떨어진 어촌 마을은 훨씬 정겹다. 익숙하지도 않은 해산물을 억척스레 깎느라 프로들과의 흥정에 피곤해 하지 말고 마을 주민들 먹으려고 가져온 해산물을 나누어 달라고 청하는 게 낫다. 

그러나 농촌은 또한 큰 기대를 하고 찾거나 의례히 집안 식구 맞듯이 했다가 서로 불편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경험을 하기도 쉽다. 애초부터 농촌이 관광을 목적으로 생긴 곳은 아니니 손님을 맞이하기에는 마을마다 편차도 있고, 체험 프로그램은 전문성이나 숙련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각종 시설은 전문적인 관리가 안 되면 아무래도 다소 엉성할 수도 있고 주민들 모두 능수능란한 관광요원으로 변신하기 어려운 것이다. 가끔은 외지인들을 향한 까닭모를 적대감이나 퉁명스러움에 당혹스러울 때도 있고, 방문자의 무례함에 피해의식으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있다. 

그래서 농촌을 잘 즐기려면 주민이나 관광객이나 조금은 더 세심한 준비와 서로 배려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농촌으로의 여행은 일반 대중관광과는 달리 마을과 주민으로부터의 총체적 체험에서 오는 심리적, 감성적 요인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로 간 학습도 되고 자극도 될 수 있다. 농촌에서의 관광은 규모나 시스템보다는 호의와 환대에 만족도가 크게 좌우하니 주민들도 자연스런 일상에 잠시 각별한 정성을 더한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억지로 손님을 맞고 억지로 즐거운 척하는 것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열고 주민은 손님을 마을의 친구로 만들어 보내겠다는 마음으로, 방문객은 고향 가는 마음으로 찾으면 될 일이다.



이선철 용인대 교수ㆍ감자꽃스튜디오 대표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6/h20130614210231121770.htm




Posted by 겟업
2013. 9. 19. 16:35

요즘 갱스터 영화에서나 들었음직한 외래어 하나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원자력 마피아'. 한국 원전의 가장 커다란 문제가 학맥으로 촘촘히 얽혀 있는 매우 좁은 '전문가 집단'에 의해 폐쇄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원전 정책과 산업의 핵심을 이루는 '미래창조과학부',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그리고 원전의 안전점검을 담당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전문가들이 모두 서울대, 카이스트 등의 특정 학맥으로 얽혀 있다고 한다. 원자력과 같은 거대 위험기술이 폐쇄적 집단에 의해 계획 개발되고, 운영된다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전문가 집단을 그 악명 높은 이탈리아 갱 조직인 마피아에 비유할 수 있단 말인가.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도 공무원이고,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몰리는 집단도 관료조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관료 '마피아'라는 낱말은 단순한 과장처럼 들린다. 우리 국민 모두가 선망하는 최고의 엘리트들이 마피아라니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우리가 탐욕스러운 관료집단을 마피아라고 비난하면서도 이런 의문이 깊어지는 까닭은 우리사회가 여전히 가방끈을 너무나 중시하는 학벌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피아는 전문가 집단의 폐쇄성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단순한 외래어가 아니다. 마피아는 온갖 사회적 불의의 온상이 되고 있는 우리 학벌사회의 현주소이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이제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어떻게 최고의 학벌을 가진 지식인 전문가집단이 국민의 생명을 놓고 장난치는 범죄자 집단으로 변한 것인가? 원자력을 기획 개발하거나 점검하는 전문가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놓고 보면,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그들의 상식과 양심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식과 능력에 있어서는 그럴 것이다. 모두 좋은 대학에서 많이 배운 사람들이다. 소위 말하는 식자(識者)층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엘리트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기에 최소한의 양심도 져버리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것일까? 그들은 사회에 나가 써먹을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배웠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성과 양심은 배우지 않은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도 쉽게 내릴 수 없다면, 가능한 답은 한 가지다. 전문가들 개개인은 능력도 탁월하고 도덕성도 괜찮을 수 있지만 하나의 폐쇄적 집단을 이루면 이상한 사람들로 변하는 것은 집단논리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봐주는 폐쇄적 집단이 바로 '마피아'이다. 마치 하나의 가족처럼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갖고 있는 이탈리아의 마피아가 지연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현대 한국사회의 관료마피아는 학연을 통해 형성된다. 그들은 특정 분야의 지식을 토대로 정책 개발에서 집행, 평가와 통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독점하여 '끼리끼리 뒤 봐주기' 문화를 형성한다. 폭력이 아니라 지식을 수단으로 삼고, 지연과 혈연이 아닌 학연을 끈으로 삼기 때문에 이들의 폐쇄성은 더욱 교묘하고, 범죄성은 더욱 교활하다. 이처럼 지식을 토대로 사회에 중요한 모든 것을 독점하여 사적 이익을 취하는 21세기 한국사회는 '식자독식'(識者獨食) 사회이다. 

식자독식 사회는 그야말로 배운 사람들이 다 해먹는 사회다. 이 사회가 무서운 까닭은 배운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마치 국민 전체의 이익인 것처럼 위장하는 천부적인 재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전문가 집단이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외래어 마피아의 어원을 생각해 본다. 마피아(mafia)라는 낱말은 본래 은신처를 제공하는 동굴이라는 뜻의 시칠리아 방언 마피에(mafie)에서 왔다고 한다. 

동굴 속에 갇힌 인간은 대개 자신들이 본 그림자만을 진리라고 여기면서 오류를 저지른다. 식자독식 사회를 구성하는 전문가 집단은 이런 동굴의 우상을 숭배하는 학벌 집단이다. 이들을 동굴로부터 끌고나와 특정분야의 '지식'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성'이 아니라는 점을 따끔하게 가르쳐줄 수는 없을까?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6/h2013061321010112176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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