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과 미사일로 위협당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놀랄 정도로 덤덤하다. 북한이 바라는 바가 바로 남한 사회의 동요와 불안이기에 이런 태도는 기본적으론 바람직하다. 그러나 가끔은 지나치게 무심한 듯도 하다. 위협에는 의연한 태도를 보이되 현실을 냉정히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제 전략 문제의 권위자인 제러미 수리(Jeremi Suri) 텍사스 대학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북핵 위기의 지속은 동아시아의 안정을 흔들고 핵 확산 중단을 위한 지구촌의 노력을 해치기에 북한이 도발하기 전에 군사시설에 국한된 선제적 정밀(도려내기) 타격을 주문했다. 북한의 위협을 방치하면 한국·일본의 핵무장을 자극할 것이고, 이란과 같은 고립된 국가를 부추길 것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그는 북한에 대해 먼저 정밀 타격을 해도 북한의 보복 공격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았다. 이는 보복이 결국 자살행위라는 것을 북한 정권이 잘 알고 있고, 중국도 이를 용인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참고로 수리는 위스콘신대 사학과 교수였던 2005년, 강정구 교수가 북한의 6·25 남침을 찬양하는 등 물의를 일으켰을 때 조선일보 특별 기고(10월 18일자)를 통해 강정구 교수 논리의 허구성을 낱낱이 지적하며 "핵 기술을 보유한 북한이 고립되고 호전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있는 세계에서 한국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며 "진정한 위협은 북한에서 오고 있음을" 직시하라고 조언했다. 그의 우려는 현실화됐다.
북핵 위기는 단지 한반도나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문제이며 테러리즘과 밀접히 연결돼있다. 실패한 국가(failed state)와 테러 조직은 서로 친밀성을 갖기 쉽다. 빈 라덴의 알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와 협조해 일으킨 테러는 좋은 예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실패한 체제는 핵이라는 요소를 더 갖고 있다. 국제 안보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 하버드대 교수는 이제 국가들의 핵 확산보다도 더 심각한 위협은 테러리스트들이 대도시를 대상으로 벌일 핵 테러 가능성이며, 국제사회는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핵 테러는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있기에 가장 효과적인 테러 수단이 된다. 목표가 뉴욕이 될 수도 서울이 될 수도 있는 등 예측 불가능하기에 더 공포스럽다.
핵무기·핵물질이 국제 테러 집단에 넘어갈 가능성은 크게 보아 네 가지다. 구(舊)소련이 해체되면서 흘러나왔을 가능성, 그리고 파키스탄·이란·북한에서 흘러나올 가능성이다. 구소련의 핵무기는 비교적 순조롭게 러시아로 이관됐으며, 파키스탄도 면밀히 감시되고 있다. 이란의 살상용 핵 기술은 아직 초보적 수준이고 만일 상용화 단계에 이른다면 이스라엘이 그것을 확실히 무력화할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다. 독자적으로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없는 이 체제는 비싼 값에 핵무기·핵물질을 팔 의향이 있으며 테러 집단은 이것을 구입할 용의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앨리슨 교수를 비롯한 안보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이 미사일·핵무기 관련 기술을 아무 데나 파는 '편의점'이 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런 구조 때문에 북핵은 세계가 우려하는 초미의 관심사다. 만약 이 사태가 더 진전된다면 정밀 타격 가능성은 높아진다. 다행히 이런 사태 전개를 막을 요인도 존재한다. 바로 중국의 변화다. 북의 전통적 혈맹인 중국은 5세대로 지도부 세대교체를 끝냈다. 새 지도부는 문화대혁명의 혼란을 청소년 시절 경험했고 문혁 종료 즈음에 대학에 입학한 세대로서 선배 세대가 갖는 북한에 대한 근본적 애정이 적다. 중국 정치협상회의 자칭궈 상무위원은 며칠 전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경우, 한국은 북한에 보복할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까지 발언했다. 예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언이다. 김정은도 할아버지·아버지가 중국과 가졌던 끈끈한 유대감이 없고, 오히려 이복형인 김정남이 중국과 관계가 더 깊다. 또한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또래인 박근혜 대통령 등 남한 인사들과 인적·정서적 유대가 있는 편이다.
북핵 문제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함의를 갖고 있다. 북한 정권이 오판을 계속할 경우 정밀 타격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고, 그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을 것이다. 북한은 바뀐 국제 환경을 이해하고 국제사회와 소통하는 데 눈을 돌려야 한다. 도발을 무턱대고 옹호할 나라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김정은 체제가 이제라도 마음을 바꿔 무모한 위협과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를 원한다면 대한민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넓은 가슴으로 북한을 품으며 공생과 공영을 추구할 것이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현대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12/20130512006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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