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강하게 압박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북한의 강한 자존심, 중국에 대한 불신(不信), 그리고 북의 반발을 든다. 북·중 관계에는 분명 이런 측면이 있다. 특히 북한 지도부의 중국 불신은 뿌리가 깊다. 1950년대 김일성은 마오쩌둥의 군사 지원을 받으면서도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정권 내 친중(親中) 인맥을 제거했다. 항일운동가 출신으로 펑더화이 중공군 총사령관의 친구인 무정(武亭) 제2군단장을 비롯해 방호산·박일우 등 연안파 수백 명을 이때 숙청했다.
김정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몇 년 전 한국 기업인을 만났을 때 "중국을 안 믿는다"고 했다. 그는 중국 방문담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중국은 우리와 상의도 없이 이튿날 아침 만리장성 구경 일정을 잡았더군요. 나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안 가고 아랫사람들만 보냈지요. 왜 안 갔는지 아십니까? 만리장성을 보라는 의도가 뭐겠습니까. '조선은 만리장성 밖의 작은 나라이니 알아서 처신하라'는 뜻 아니겠어요?" 그는 1992년 중국이 한국과 수교하자 배신당했다며 중국 고위층과 7년이나 교류를 중단했다. 그의 아들 김정은은 이번 설날 세계 30개국 정상에게 연하장을 보내면서 중국 지도자들은 쏙 빼놓았다.
중국은 북한의 한 해 식량 부족분의 절반(30만~40만t)과 원유 소비량의 절반(50만t)을 공짜로 대준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원유와 식량 수출을 차단해 북한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이 카드를 잘 꺼내지 않는다. 자존심 강한 북한이 호락호락 중국에 굴복할 것 같지 않은 데다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경제 압박 카드를 썼다가 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쓸 카드가 없어진다. 그 때문에 양국 관계가 파탄 나면 미·일(美日) 군사동맹에 대응하는 '전략적 자산' 하나를 잃게 된다. 중국이 그동안 북한 비핵화보다 북한 정권의 안정을 우선하면서 대북 압박을 자제한 데는 이런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북한이 명실상부한 핵 보유국으로 등장할 경우 이런 셈법은 통하기 어렵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통해 소형화된 핵탄두의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면 일본과 한국에 핵무장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미·일 MD(미사일 방어) 체제가 확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 북한이 핵 비확산 카드를 놓고 국제사회에 대가를 요구하고 미국 등이 이를 거부할 경우 전쟁의 먹구름이 동북아를 뒤덮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북한이 식량과 에너지 때문에 중국 말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핵 강국이 되면 중국이 지키려는 기존 질서는 의미를 잃게 된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최선은 국제사회가 한 단계 강화된 '채찍과 당근'으로 북한 스스로 핵실험을 중단하도록 압박하는 방법밖에 없다. '강화된 압박 카드'는 북에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전방위 압박으로 정권이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북이 핵을 포기하면 정권 안정과 경제 회복의 길이 열린다는 확신도 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역할이다. 만약 북이 이 고비를 넘기고 핵무장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중국이 가진 대북 지렛대의 쓸모가 크게 떨어진다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지렛대의 '유통기한'이 다하기 전에 한·미(韓美)와 함께 북한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채찍과 당근' 목록을 논의해야 한다.
지해범 논설위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11/20130211012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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