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엔 인구 5만명의 가난한 시골이었지만 지금은 1500만명 넘게 모여 사는 대도시가 됐습니다. 이제 도심에 아파트를 사려면 한국 돈으로 10억원은 줘야 합니다." 최근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을 방문했다가 현지 여행 가이드로부터 선전 자랑을 들었다. 그는 "10년 뒤엔 선전뿐 아니라 온 중국이 한국처럼 잘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선전은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아버지인 시중쉰이 개혁·개방을 통해 인민을 잘살게 하자며 덩샤오핑에게 특구(特區) 지정을 건의했던 지역이다. 시진핑은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된 뒤 지난해 12월 선전을 방문해 개혁과 경제 발전 지속 의지를 과시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 소설가 모옌도 장편 '개구리'에서 선전을 가난한 중국인이 부자의 꿈을 이루는 도시로 그렸다. 소설에서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석탄을 씹어먹던 산둥성 출신의 천비(陳鼻)는 선전에서 전자시계를 도매로 사다가 팔아서 부자가 된다.
선전의 여행 가이드가 그리는 부강한 중국의 꿈은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매년 8~9%를 기록 중인 중국의 성장 속도로 볼 때 2030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제1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수천년간 세계의 중심 국가였다가 아편전쟁 이후 잠시 움츠러들었던 중화제국(中華帝國)이 적어도 경제 분야에선 부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부강해진 중국이 주변국들에 어떤 이웃이 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원하든 원치 않든 대국의 길에 들어설 것이고 지금까지 미국이 그랬듯 향후 중국이 추구하는 가치를 국제 질서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제시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질서에 대해 세계인의 동의를 얻기가 '잘사는 중국'이란 목표 달성보다 훨씬 어려워 보인다.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지금껏 보여온 중국식 가치들에 세계의 동의를 얻기 힘든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연초 홍콩에서 렁춘잉 신임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겉으로는 렁 장관의 비리를 질타하는 모습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그를 지원한 중국에 대한 홍콩인들의 반감이 깔려 있었다. 지난해에는 중국식 공민교육을 홍콩 초등학생들에게 실시하려다 반발을 사기도 했다.
선전과 홍콩을 오가며 왕자웨이 감독의 1994년 영화 '중경삼림'을 떠올렸다. 영화 속 첫번째 스토리의 주인공은 애인에게 버림받자 유효기간이 얼마 안 남은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모으며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고 한탄한다. 영국과 이별하고 중국이라는 새 애인을 맞게 된 홍콩인들의 당혹감과 불안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렁춘잉 퇴임 요구 시위와 공민교육 반발 사태는 중국이 세계는커녕 1997년 영국에서 반환된 홍콩인의 마음조차 아직 얻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고 평화와 교린을 추구하는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중국이 동아시아 질서를 주도적으로 확립하길 원한다면 대국에 요구되는 면모부터 먼저 갖춰야 한다.
김태훈 국제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05/20130205023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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