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그의 말이 거칠어졌다. 흥분한 듯했다. ‘한마디로 남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돈 버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 현지 경제 사정이야 어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자기들 사정이 바뀌었으니 계약을 변경해야 한다고 생트집을 잡는다”는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지난달 초 미얀마 양곤에서 만난 흘라잉 스마트그룹 회장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중국인에 대한 성토로 끝났다.
미얀마는 중국이 지난 20여 년 동안 공들여 오던 곳이다.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협력 프로젝트를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시각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미얀마뿐이 아니다. 기자가 최근 2~3년 취재 차 방문했던 울란바토르(몽골),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 하노이(베트남) 등에서 만난 기업인·관리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필리핀이나 일본 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하나의 나라(一國)’라고 말하는 대만·홍콩 사람들에게도 중국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이웃에 거대한 국가가 출현하면 주변 나라들은 본능적으로 위협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힘의 균형이 깨질 때 전쟁은 그 균열의 틈을 비집고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역시 그런 역사를 여러 번 겪어야 했기에 대국 중국을 보는 주변의 시각은 불안하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경계감도 높아지는 꼴이다.
어찌하면 ‘존경받는 대국’의 이미지를 심을 수 있을까? 팜 시 판 하노이대 교수는 “중국이 후왕박래(厚往薄來)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공자가 제시한 ‘대국이 되기 위한 아홉 가지 요건(大國九經)’ 중 마지막 사항. ‘(주변 제후에게) 갈 때는 후하게 주고, 올 때는 적게 받으라’는 뜻이다. 팜 교수는 “주고받는 물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주변국의 마음을 사라는 게 이 글귀의 참뜻”이라며 “이웃 국가로부터 존경받지 못한다면 중국은 절대 대국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중국 외교의 화두는 ‘대국(大國)’이다. 미국과는 ‘신형(新型) 대국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고, 지도부의 잇따른 해외 방문을 두고는 ‘대국외교’의 면모를 보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주변국의 불안을 어떻게 해소시킬지에 대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형 대국관계를 두고 ‘원교근공(遠交近功)’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된다. 아시아의 패권 장악을 위해 먼 곳에 있는 강대국을 상대로 정지작업에 나섰다는 의혹이다.
흘라잉 스마트그룹 회장은 ‘미얀마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중국은 이제 미국과 경쟁해야 할 처지’라고 말한다. 미얀마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란다. 덕택에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한 미국은 성큼성큼 발을 들여놓고 있다. 어디 미얀마뿐이겠는가. 동아시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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