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다.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기는커녕 숨이 턱턱 막힌다.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앞선 세대는 괜히 밉지만, 저항해야 할 마땅한 명분도 없고 싸울 힘도 없다. 요즘 청년들 마음이 그렇다. 스무살 먹은 대학생이나, 40대를 넘나드는 늙은 청년이나 비슷한 처지다.
먹고살기 어려워서 그렇다고?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렵던 과거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1980년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금의 5분의 1에도 못 미쳤다. 그런데 그때 이 나라 대학생들은 시대를 호령했다. 언론이 통제되던 시절, 그 젊은이들이 쓴 대자보와 유인물은 조간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보다 훨씬 크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숨죽여 시대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던 직장인들마저 결정적인 순간 넥타이부대로 변신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민주화를 외쳤다.
그들이 386세대다.
조금 더 시계를 되돌려 보자. 1970년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금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국제사회에서 이 나라는 전쟁으로 피폐해진데다 군인이 지배하는 후진국으로 여겨졌다. 그때 이 나라의 젊은 공무원과 기업가들은 미래 경제를 기획했다. 중화학공업을 키우고 수출강국을 만들겠다고 외쳤다. 무리해 보이는 투자를 감행해 고속도로와 철도를 깔고 제철소와 자동차공장을 세웠다. 기업가와 노동자들은 피땀 흘려 세계를 뛰어다니고 뜨거운 공장에서 청춘을 바쳤다. 산업화의 역군을 자처했다.
그들이 베이비붐 세대다.
1980년대에 민주화란 비현실적 판타지였다. 산업화 역시 1970년대 당시에는 몽상이었다. 그야말로 사회적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그 상상력은 결국 현실의 벽을 깨뜨리고 세상을 바꿨다. 이런 경험은 그 두 세대의 자부심으로 진화했다.
그런데 그 이후, 이 나라에는 사회적 상상력이 사라졌다. 현실 자체도 답답하지만, 이걸 넘어선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큰 그림이 없다는 사실에 더 숨이 막힌다.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은 상상이 사라진 자리에 무성해진다. 새로운 세대의 불안과 답답함의 이유가 여기 있다.
애써 상상력을 가져보려 해도 사회 시스템이 이를 가로막기 일쑤다. 한국 사회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헌신을 자산으로 쌓은 성이 됐다. 새로운 세대는 희생 없이 풍요와 민주주의를 즐기는 ‘무임승차자’라는 무형의 부채에 시달린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마추어적이라고 놀림받는다. 세상은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같이 느껴진다. 당연히 자신감도 자부심도 갖기 어렵다.
그래서 일부는 ‘함께 꾸는 꿈’보다는 ‘혼자 꾸는 꿈’에 골몰한다. ‘스펙 쌓기’ 현상이 그래서 일어난다. 일부는 세상을 조롱하며 비뚤어진다. ‘일베’ 현상이 이를 상징한다.
네덜란드 사회학자 프레트 폴락이 기념비적 저서 <미래의 이미지>에서 설파했던 것처럼, 사회 변화는 미래와 과거가 밀고 당기는 가운데 일어난다. 이상적인 미래의 이미지가 앞에서 끌어당기고, 현실화된 과거가 뒤에서 밀어야 사회는 진보한다. 사회적 상상력이 사라지면 진보의 시계는 멈춘다.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해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벽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세대가 앞장서서,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새로운 미래 이미지를 상상하기 시작할 때다. 그 상상력이 불안을 해소하는 첫걸음이다. 베이비붐 세대와 386세대는 길을 열어주고 도와야 한다. 민주화의 판타지, 산업화의 몽상에 젖어 있던 시절, 그들은 모두 청년이었다. 함께 묻고 상상하고 대답해야 한다. 당신이 꿈꾸는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이원재 경제평론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893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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