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8. 19:16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는 능력,

감정을 계획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이 것에 그렇게 큰 프리미엄이 붙은 때는 이제까지 없었다.

자연스러움이나 순간의 기쁨은 허용되지 않는다.

당신은 향후 지속적으로 발생할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드림 소사이어티 -롤프 옌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내심이야말로 최고의 무기다.




Posted by 겟업
2013. 8. 10. 16:17

“박 기자, 3월 21일에 약속 있습니까?”

2011년 3월 20일. 허구연 MBC SPORTS+ 해설위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네, 인터뷰가 하나 잡혀 있습니다.” 기자가 답했다.
“그래요? 중요한 인터뷰예요?”

수첩을 펼쳤다. 그리 중요한 인터뷰는 아니었다. 인터뷰이도 다음날로 연기를 바라던 차였다.

“아닙니다. 그런데 내일 무슨 일이라도…?” 이번엔 기자가 물었다.
“혹시 내일 시간 되면 나와 경남 양산에 다녀옵시다.” 허 위원은 그렇게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경남 양산이라….’ 기자는 한참 동안 ‘양산’이란 단어를 옹알거렸다. 그도 그럴 게 양산은 야구와는 별 인연이 없는 지역이었다. 프로팀은 고사하고, 아마추어 야구팀도 없는 곳이었다. 특히나 바쁘기로 치자면 야구해설과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을 병행하는 허 위원이 기자보다 몇 배는 바쁜 터였다. 가뜩이나 허 위원은 그즈음 바쁜 스케줄을 쪼개 전국을 돌며 야구 인프라 확충을 위해 지자체장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다음날 KTX에서 허 위원을 만났을 때 그는 기자에게 두툼한 유인물을 건넸다. 유인물의 제목은 ‘경남 양산 원동중학교 야구부 창단’이었다. “이게 뭡니까?”하는 기자의 물음에 허 위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경남 양산에 원동중학교라는 시골 학교가 있어요. 전교생이 30명 남짓한 작은 학교인데, 학생 수가 감소해 2012년이면 전교생이 16명으로 줄거라고 합니다. 전교생이 20명 이하면 경남도 교육청의 방침에 따라 학교가 사라진다(폐교)고 해요. 학교가 없어지면 그나마 남은 아이들도 도시로 떠나고, 지역도 죽고, 지역민들의 추억도 사라질 게 분명해요.”

아쉬운 일이었다.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하지만, 도시 집중화와 출산율 저하로 원동중뿐만 아니라 많은 시골학교가 인근 학교와 통폐합하며 사라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것이 야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허 위원은 목소리 톤을 높여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폐교를 막을 방법이 있어요. 바로 야구부를 창단하는 겁니다. 그리고 학교를 ‘야구 특성화 학교’로 만드는 겁니다. 시골 학교에 야구부가 생기면 ‘누가 그곳까지 찾아올까’ 싶겠지만, 그렇지 않을 거예요. 야구를 하고 싶은 아이들이 부산을 비롯해 전국에서 몰려들 거예요. 가뜩이나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는 ‘야구 특성화 학교’로 지정받는다면 전국의 학부모들도 관심을 두고, 교육청의 지원 역시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타지의 학생들이 입학하면 원동중의 학생 수가 늘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폐교 직전의 학교를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당도가 떨어진 딸기처럼 삶의 활력이 사라졌던 원동면

경남 양산시 원동면 원동중을 찾았을 때 학교는 잔치 분위기였다. 주민들은 생업을 제치고 학교를 찾았고, 일부 주민은 풍물패를 조직해 야구부 창단식의 흥을 돋웠다. 지역 유지들과 시의원, 시 관계자, 교육청 인사들도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원동중을 찾았다. 푸른 토곡산과 배내골을 낀 원동중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현실은 엄혹했다. 먼저 원동중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었다. 주변 상황만 보면 원동중의 생존은 막막했다.

한때 매실을 비롯해 갖가지 토산물로 유명했던 원동면은 양산시가 커지면서 생기를 잃었다. 주민들 사이에선 '시내로 나가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어느 시점부터인가 원동면뿐만 아니라 양산시 전체가 농업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도시화는 농업인구와 경작지 축소로 이어졌다. 여기다 4대강 사업은 결정타였다.

취재 중 학교에서 만난 한 주민은 “4대강 사업으로 고향의 특산물인 ‘원동 딸기’와 ‘원동 수박’이 사라질 판”이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동면은 낙동강변 사질토에 깨끗한 지하수가 흐르고, 일조량이 풍부해 딸기와 수박농사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곳으로 유명했다. 딸기 당도가 15.7브릭스로 높아 부산, 울산을 비롯해 수도권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전국 딸기 최대 재배지인 인근 밀양 삼랑진 딸기보다도 1kg당 1천 원 이상을 더 받았던 것도 맛과 품질이 뛰어난 까닭이었다. 덕분에 원동면 용당리 일대의 90여 농가에서만 연간 70, 80억 원의 소득을 올렸다.

그러나 정부가 4대강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강폭을 넓히면서 원동면 용당리 낙동강변 일대의 딸기밭과 수박밭이 사라졌다. 주민들은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았지만, 더는 그들이 경작할 땅은 없었다. 생계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도시로 떠났고, 원동면은 더 고립된 섬이 됐다.

두 번째 엄혹한 현실은 ‘과연 전국의 학생선수들이 원동중을 찾아오겠느냐’는 불안감이었다. 부족한 학교 예산으로 숙소를 짓거나 구하는 건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월세 50만 원짜리 버스회사 숙소를 어렵게 구해 이를 야구부 숙소로 썼지만, 학교 안에 있는 다른 야구부 숙소와 비교하면 아쉬움이 많았다. 아이를 시골 학교에 맡겨야 하는 학부모들 입장에선 찜찜한 대목이었다.

무엇보다 창단 중학교라, 실력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만약 몇 년이 지나도록 실력이 형편없다면 고교 야구부 진학률이 떨어지고, 이는 야구부 존립에 악영향으로 작용할 게 분명했다. 기사엔 원동중 야구부의 밝은 미래를 쓰긴 했으나, 기자는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부질없는 꿈을 노래한 게 아닌가’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기자의 지인도 “야구는 ‘그깟 공놀이’일때가 가장 의미 있는 것”이라며 “야구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거나 야구가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되리라 상상하는 건 무리한 기대”라고 꼬집었다.


아들 대신 시골 학교 감독을 맡은 아버지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지난해까지 원동중은 최약체였다. 전국대회는 고사하고, 지역 공식경기에서도 창단 첫 승을 거두지 못했다. 신종세 원동중 감독은 “다른 팀과 붙었다 하면 콜드게임으로 지기 바빴다”며 “10점 차 이하로 지면 그나마 양반이었다”고 회상했다.

선수들의 실력향상도 답보 상태였다. 신 감독은 “부산, 울산지역 중학교에서 뛰던 학생선수들이 전학왔다. 지역 리틀야구부에서 뛰던 아이들도 원동중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좋은 선수들은 이미 다른 중학교에서 뛰는 통에 원동중으로 입학하거나 전학 온 학생선수들은 죄다 실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었다”며 “캐치볼을 할 줄 모르는 학생선수들도 태반이었다”고 털어놨다.

신 감독이 원동중 사령탑에 오른 덴 사연이 있었다. 지난해까지 원동중 감독은 신민기 씨였다.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신 씨는 아마추어 야구활성화를 위해 원동중 감독을 자원했다. 그러나 ‘초보감독’ 신 씨가 학부모들과의 이견으로 잠시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갑자기 감독 자리가 비게 됐다. 이때 신 씨와 학부모들 사이를 오가며 이견을 조율한 이가 바로 신 씨의 아버지인 신 감독이었다.

신 감독은 아마추어 야구계에 잔뼈가 굵은 지도자였다. 부산 대동중에서 20년 동안 감독을 맡아 이대호(오릭스)를 발굴했고, ‘야구 불모지’ 제주도로 건너가 리틀야구팀을 창단·지도했다.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부산공고 감독으로 근무했다.

초임 지도자인 아들과 학부모 사이를 중재하던 신 감독을 보며 학부모들은 그에게 “감독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학부모들은 신 감독의 풍부한 아마추어 지도자 경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이유도 숨어 있었다. 시골 학교에서 감독을 하겠다고 지원한 이가 한 명도 없던 까닭이었다.

학부모 왕정인 씨는 “학교에서 신임 감독 공고를 냈지만,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 야구부 운영이 위기에 몰렸다”며 “그때 ‘큰 감독’님께서 흔쾌히 학부모들의 요청을 받아주셔서 어렵사리 신임 감독님으로 모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원동중 학생선수들과 학부모들은 신 감독을 ‘큰 감독’으로 부른다.

‘연전연패’와 감독 문제로 벼랑 끝에 몰린 원동중 야구부는 신 감독이 팀을 맡으며 몰라보게 달라졌다. 오합지졸이었던 야구소년들은 어느덧 야구선수들로 거듭나고 있었다.

오합지졸은 어떻게 단련됐는가

원동중 야구부의 원칙은 학업과 야구를 병행하는 것이다. 학생선수라도 학업이 우선이고, 운동은 그 다음이다. 따라서 정규 수업이 끝나고서 훈련을 해야 한다. 이를 잘 아는 신 감독은 화려한 개인기보단 기본기에 충실하도록 독려했다. 부족한 훈련량은 방학기간에 보충했고, 강도 높은 동계훈련으로 선수들의 체력을 강화시켰다. 학생선수들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별이 뜰 때까지 운동장에 남아 훈련을 진행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2013년의 새해가 밝았다. 공식경기 첫 승에 목말랐던 원동중은 1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경주시장배 중학야구대회에 참가한다. 첫 경기 상대는 대구중. 원동중은 경기 초반까진 대구중을 앞섰으나, 뒷심부족으로 4대 7로 역전패했다. 눈앞의 첫 승을 놓친 학생선수들은 눈물을 삼켰고, 학부모들은 연방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 감독은 실망한 학생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실력이 모자라서 지는 건 괜찮다. 그런데 노력이 부족하고, 의지가 모자라서 지면 그건 1패 아니라 2패다. 경기에서도 지는 거고, 인생에서도 지는 기다.”

그날 12명의 학생선수들은 머리를 밀었다. 그것이 그 또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다음날.

원동중은 서울 영동중과 맞붙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원동중 학생선수들은 질 때 지더라도 인생에서까지 지고 않았다. 그들은 정신없이 그라운드를 뛰었고, 어떻게 경기가 진행되는지도 모른 채 서로를 응시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구심이 경기 종료를 선언했을 때 전광판엔 ‘12’와 ‘3’이 적혀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3’이 원동중의 스코어였을 게 분명했다.

“전해 12월에 눈이 억수로 많이 내렸다. 눈이 학교 운동장을 죄다 덮어서 애들이 훈련을 못할 정도였다. 영동중 경기가 끝나고, 겨울에 아이들이랑 눈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그래서일까. 경기가 끝나고 그렇게 우리 아이들이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잘 교육받은 친구들을 상대로 12대 3 콜드게임으로 이겼으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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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 학교 운동장을 밟으며 아이들은 꿈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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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아이들이 눈을 밟으며 꿈을 키우면, 아버지들은 아이들의 꿈이 냉기에 사라질까 두려워 밤이면 운동장을 찾아 눈을 치우고, 흙을 골랐다

신 감독은 창단 첫 승의 공로를 아이들 덕분으로 돌렸다. 그랬다. 이날 원동중은 공식경기 첫 승을 콜드게임승으로 장식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6연승을 달리며 6승 1패로 경주시장배대회에서 감격의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만 해도 원동중의 기적은 ‘우연’의 다른 이름이었다. 중학야구계에선 “지역대회와 전국대회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원동중의 기적이 전국대회에서까지 이어지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7월 27일. 원동중은 부산 구덕구장에서 열린 제43회 대통령기 전국중학야구대회에 참가한다. 대통령기대회는 시·도별 예선전을 거쳐 상위 1, 2위를 차지한 33개 팀이 참가하는 명실공히 전국 최고의 대회였다. 8개 팀이 참가해 자웅을 겨룬 경주시장배대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대회를 임하는 원동중 학생선수들의 자세엔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평범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마음에 새기고 1회전 상대 포항제철중과 맞섰다.

야구 명문답게 포항제철중은 강했다. 원동중의 파생공세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되레 몇번이고 원동중이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원동중의 견고한 수비에 눌려 포항제철중은 좀체 점수를 내지 못했고, 결국 경기는 3대 2 원동중 승리로 끝났다. 16강전 상대였던 인천 재능중과의 경기에선 7대 0으로 원동중이 쉽게 승리했다. 8강전 부산 대천중과의 경기에서도 원동중은 4대 1로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했다.

창단 3년째의 시골학교가 전국대회 4강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원동중 학생선수들은 “내친 김에 결승에까지 오르자”고 다짐했고, 서울 양천중과의 4강전에서 2대 0 승리를 거두며 다짐을 현실화시켰다. 이제 결승이었다.

신 감독은 학생선수들을 불러놓고 ‘딱’ 한마디만 했다.

“여러분이 흘린 땀이 우리를 결승전으로 인도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땀의 대가를 바라고 뛰었다면 이젠 즐기면서 뛰자. 우승 부담을 덜고, 결승전만은 정말 야구를 즐기면서 뛰어보자.”


지역 회생의 롤모델이 된 원동중 야구부

원동중 야구부가 기적에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경남의 ‘오지’로 불리는 원동면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양산시는 지난해부터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원동면에 ‘국토종주 자전거길 활용 체험프로그램’과 ‘단오제’, ‘매화축제’를 마련했다. 덕분에 양산은 알아도 원동은 잘 모르던 전국의 여행객들이 축제를 통해 원동의 아름다움을 알아가고 있다. 특히나 양산시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원동면 화제리에 임경대 유적지를 복원 작업하고 있는데, ‘양산 8경’의 하나인 낙동강변 ‘임경대’ 유적지가 관광 명소화한다면 지역 알리기와 지역경제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원동면은 16억 원을 들여 딸기, 미나리 재배하우스 건립 등 친환경 농촌시설 현대화사업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매진하고 있다. 그 덕분일까.

‘물 좋고, 인심은 좋으나 인구가 자꾸 줄던’ 원동면에 어느 때보다 사람꽃 향기가 진하게 퍼지고 있다.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었으나, 지난해부터 주춤하기 시작했다”며 “되레 지역경제가 활성화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느는 추세”라고 밝혔다.

한 주민은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 원동중 야구부 창단 때문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 동네 토박이들은 죄다 원동중 출신이다. 원동중에 대한 애잔한 추억이 억수로 많다. 2011년 원동중이 통폐합으로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때 ‘이제 원동도 끝입갑네’하고 절망감을 느낀 사람이 많았다. 가뜩이나 지역경제도 갈수록 바닥을 쳐선지 고향을 떠나겠다는 이가 한 두명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원동중에 야구부가 생기고, 타지 아이들이 하나 둘 전학 오면서 학교가 살아나고, 교정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우리 같은 어른들도 원동중이 살아나는 걸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안 된다’고 포기하기 전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면 돌파구가 생긴다는 걸 아이들을 통해 배웠다고나 할까. 농업에만 의존했던 원동면이 요즘 들어 관광 명승지로 탈바꿈하려 노력하는 것도 야구로 되살아난 원동중이 롤모델이 돼준 덕분이다.”

원동면뿐만 아니라 양산시 발전상황도 인상적이다. 나동연 양산시장 취임 이후 양산시는 활발한 기업유치를 통해 해마다 인구를 늘리고 있다. 현 추세라면 내년 말엔 ‘경제 자족도시’의 기준 인구인 3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 원동중 야구부의 기적만큼이나 지역도 기적을 향해 순항을 펼치고 있는 셈이었다.

원동중 기적은 우연이 아니라 ‘준비된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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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에서 원동중을 응원하는 학부모들과 주민들

8월 4일. 부산 구덕구장. 원동중은 부산 개성중과의 결승전에서 3회까지 3대 1로 앞서 나갔다. 신 감독은 내심 ‘사고를 쳐도 크게 치겠구나’하는 벅찬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4회 초 개성중에 2점을 내주고, 6회 다시 1점을 내주며 전세는 3대 4로 역전됐다. 6회 말 득점에 실패한 원동중은 7회 말, 단 한 번의 공격만을 남겨뒀다.

그즈음 허구연 MBC SPORTS+ 해설위원은 잠실구장에서 삼성-LG전의 해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동중 야구부 창단을 물밑 지원하고, ‘야구 특성화 학교’ 아이디어를 직접 냈던 허 위원은 이미 원동중의 결승진출을 전해 들은 차였다. 결승전 소식이 궁금했던 허 위원은 해설준비를 하면서도 시선은 휴대전화에 뒀다. 하지만, 소식이 없었다. 허 위원은 ‘우승까지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7회 말. 선두타자 장대한이 삼진아웃으로 물러나며 신 감독은 입맛을 다셨다. 1점 차를 극복하려면 어떻게든 출루를 해야 했다. 이때 3번 김세빈이 볼넷으로 출루한다. 김세빈은 1아웃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도루를 기록하며 동점 찬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박웅의 안타가 터지며 원동중은 4대 4 동점을 만든다.

신 감독은 5번 왕재웅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한다. 상황을 2사 2루로 만들어 승부를 걸어볼 참이었다. 그러나 왕재웅의 희생번트가 실패하며 2루로 뛰던 1루 주자가 아쉽게도 죽고 만다. 이제 상황은 2사 1루. 동점까지 만든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지만, 만약 연장전까지 간다면 원동중이 불리했다. 선발 김세빈은 7회까지 31타자를 상대로 115개의 투구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투구수도 많지만, 구위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김세빈의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

신 감독은 6번 이지상이 타석에 들어서자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다. 이윽고 2볼 2스트라이크가 되자 신 감독은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히트 앤드 런’ 사인이었다.

오후 6시 30분부터 진행된 삼성-LG전을 중계하던 허 위원은 클리닝타임에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내용은 이랬다.

‘허 위원님. 기적이 연출됐습니다. 원동중학교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허 위원은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2011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시골학교 원동중을 찾아 물밑 지원을 아끼지 않던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에 감사해 했다. 허 위원은 환하게 웃으며 “9구단, 10구단 창단이 결정됐을 때보다 원동중 우승 소식에 더 감격했다”며 “중계 내내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 감독의 ‘히트 앤드 런’ 작전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지상의 타구가 우익선상으로 빠르게 흐르며 1루 주자가 홈까지 파고든 것이었다. 원동중 학생선수들은 한꺼번에 몰려나와 홈을 밟은 박웅과 결승타 주인공 이지상과 얼싸안았고, 학부모들 역시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학부모들은 “‘시골학교에서 무슨 야구냐’는 핀잔과 ‘시골학교 야구부에서 뛴다고 실력이 늘 것 같으냐’는 그간의 비아냥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며 “우리 아이들이 더없이 자랑스럽고 대견했다”고 말했다.

원동중 우승은 야구가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기적이었다. 야구는 폐교 직전의 학교를 살렸고, 생기가 사라진 지역의 희망이 됐다. 무엇보다 야구와 헤어지기 일보 직전이던 야구소년들의 꿈을 되살려냈고, 지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했다.

허 위원은 “원동중의 기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준비된 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원동중의 기적은 ‘민(民)·관(官)·학(學)’의 튼튼한 연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먼저 ‘민’을 대표하는 지역주민과 동창회의 노력이 대단했다. 주민들은 야구부 창단 때부터 마치 자기 집 잔치를 벌이듯 발 벗고 나섰고, 야구부에 부족한 게 뭐가 있나 세심히 살폈다. 동창회에선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 야구부에 전달했고, 끊임없는 관심으로 야구부을 지원했다.

‘관’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양산시장은 부족한 시예산을 쪼개 원동중 야구부 지원에 나섰고, 경남도 교육청에서도 원동중 야구부에 많은 신경을 썼다. 교육부 역시 농어촌교육 활성화 자금으로 경남도 교육청에 3억 원을 지원해 이 돈 가운데 상당액이 원동중을 비롯한 지역 학원야구부에 쓰이도록 배려했다. 만약 양산시와 도교육청, 교육부의 애정과 관심이 없었다면 원동중 야구부가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우승하긴 힘들었을 거다.

마지막으론 ‘학’이다. 야구부 창단을 이끈 김주만 전 교장에 이어 현 이규용 교장까지 원동중 선생님들은 학업과 야구를 병행한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학생선수들이 마음껏 학교 운동장에서 뛸 수 있도록 여러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운동부가 있으면 일반 아이들의 면학분위기가 깨진다’고 우려하지만, 원동중에선 그런 소리가 일절 나오지 않은 것만 봐도 선생님들의 노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덧붙여 허 위원은 “원동중의 준비된 기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고 말했다. 바로 “시골학교 원동중이 기적을 일궜으면 다른 학교에서도 기적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허 위원은 자신의 공로는 “쓸 필요가 없다”며 사양했다. 하지만, 그의 공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원동중 학생선수들이었다. 아이들은 우승이 확정되고서 허 위원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허 위원은 쏟아지는 문자메시지에 “정신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연방 ‘허구연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아이들의 문자를 보고 또 보며 미소를 웃음꽃을 터트렸다.

원동중의 기적이 ‘한여름밤의 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신 감독은 “중 3 졸업반 6명이 부산지역 고교 야구부로 진학하기로 결정됐다”며 “전국 각지에서 ‘아이를 원동중으로 보내고 싶다’는 문의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있다”고 밝혔다.

원동중의 기적이 진정한 결실을 거두려면 양산지역 내 고교 야구부가 창단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계속 고향에 남아 야구의 꿈을 키울 수 있다. 양산시야구협회는 “올 11월 창단을 목표로 양산 내 한 고교와 야구부 창단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깟 공놀이’에 불과한 야구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 원동중 야구부 창단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허구연 해설위원은 “프로야구가 대도시에서만 경기가 펼쳐진다고 아마추어 야구까지 대도시에만 활성화돼선 안 된다”며 “울릉도에서도 아마추어 팀이 생겨야 야구가 진정한 국민스포츠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즌 중에도 야구 인프라 확충과 아마추어 야구팀 창단을 전국을 뛰어다닐 예정이다.

원동중 야구부 창단을 직접적으로 지원한 박말태 양산시의원(새누리, 물금·원동)은 ‘친환경 농산물’을 통한 지역주민 소득 증대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박 의원과 함께 원동중 야구부 창단을 위해 고군분투한 최영호(새누리, 상·하북) 시의원도 지역 초교 학습환경 개선과 농수로 개선사업 등 ‘민생’에 올인하고 있다.

원동중 야구부 창단을 이끈 김주만 전 교장은 양산교육지원청 과장으로 승진했고, 이갑수 원동면 면장은 현재 양산시 농정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양산시 야구발전에 누구보다 헌신적이던 박치병 양산시야구협회장은 협회장에서 물러나 백의종군하고 있다. 

한때 아버지에게 지휘봉을 맡겼던 신민기 씨는 다시 원동중 감독으로 돌아왔다. 이번 대회에선 코치로 활약했다. 선수들은 신종세 감독을 '큰 감독'으로, 신민기 감독을 '작은 감독'으로 부른다.

2011년 3월 전교생이 25명으로 폐교 직전까지 몰렸던 원동중은 현재 51명으로 학생수가 늘었다.

2010년 3월 원동중 체육교사로 부임해 체육시간마다 아이들에게 야구규칙을 가르치고, 야구를 직접 경험하도록 배려했던 최윤현 교사는 여전히 원동중에서 교사로 근무 중이다.

지금도 원동중 아이들은 매화보다 하얀 야구공을 던지며 꿈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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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8. 9. 14:00

대한민국의 역사는 해방 직후 65년입니다. 신생 조국 대한민국 이라는 것이죠. 새로 태어난 나라입니다. 우리는 65년 동안 수많은 국제적인 행사를 치렀습니다. 그 많은 행사 중 세계적인 규모를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88 올림픽, 둘째 2002 월드컵, 셋째 G20 정상회의입니다. 

현재 국민소득이 2만 달러이지만 88 올림픽 당시 우리의 국민소득은 5천 달러였습니다. 당시 5천 달러밖에 되지 않던 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한다고 했을 때, 많은 나라들이 실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황리에 올림픽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단 한차례의 실수 없이 완벽하게 경기를 치러냈습니다. 둘째, 약물테스트를 할 때 국제적인 기술을 통해 금메달리스트 후보를 떨어트렸습니다. 셋째, 단 한 번의 교통사고도 유발되지 않았습니다. 넷째, 개최국의 이점을 통해 우리 선수들은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저는 우리의 성공을 실감 못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대하소설 <아리랑>을 쓰기 위해서 1990년, 중국으로 취재를 갔는데요. 당시만 해도 중국과 우리나라가 정식수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입제한이 있었습니다. 상인들만 입국이 가능했고 작가, 기자는 금지가 됐었지요. 저는 상인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중국을 갔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을 굉장히 좋은 나라로 알고 있더라고요. 바로 88 올림픽 중계를 봤기 때문이지요. 만주에 우리 동포 2백만 명이 삽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 99%가 남한, 북한을 자신의 나라라고 생각 합니다. 길림, 연변은 함경도 사람들이 터를 잡았죠. 그 후 경상도 사람들이 강제이주를 하면서 만주 두만강 근처까지 올라가서 살게 됐습니다. 이분들은 해방 이후 줄곧 북한의 정치공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텔레비전 중계를 보니까, 북한에서 말하던 남한의 모습이 아닌 거에요. 발전한 도시, 우수한 시민들의 질서의식을 본 것 입니다. 88 올림픽의 힘이 대단하죠. 1988년은 한국의 기업들이 세계적인 브랜드를 갖지 못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올림픽 개최를 통해 기업들은 엄청난 프리미엄을 갖게 되었죠. 88 올림픽은 세계에 우리의 저력을 보여준 대회였습니다. 

2002 월드컵을 볼까요. 일본과 공동주최를 했는데요. 당시 많은 국가들이 실패할 것이라며 악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월드컵 4강까지 올라가면서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응원은 어떻습니까. 붉은악마가 70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요. 그들이 응원을 하고 떠난 자리, 어땠습니까.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갔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선진화를 보여준 모습입니다. 브라질에서 삼바축제 할 때, 몇 백 명의 사람이 다치고 거리는 쓰레기통이 된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얼마나 멋집니까. 훌륭한 시민의식을 보여줬습니다. 국민들의 응집력은 나라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응집력을 통해 일체감을 갖게 되는 것이죠. 응집력은 국가적인 행사를 할 때마다 실력을 발휘합니다.

G20 정상회의는 엄청난 국제행사입니다. 경제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우리는 이미 두 번의 행사를 잘 해냈기 때문에, 이 역시 잘 치룰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정상회의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이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올림픽, 월드컵 때 보다 더 잘해서 나라의 품격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의 강의 주제, ‘인간적인 삶과 경제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소설가입니다. 대개 소설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 합니다. 물론 소설은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재미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민족 공동체, 동시대 사람들이 겪은 중요한 사건들,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공동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소설이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소설이 재미있는 연애담이라고 생각 한다면 큰일 납니다. 

대한민국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연애소설은 <춘향전>입니다. 일곱 번쯤 영화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보고 또 봅니다. 춘향전은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닙니다. 양반과 상놈의 계급문제를 이야기 하면서 사회변혁을 꾀했습니다.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뿐만 아니라 인간존중, 인간평등 사상을 봐야 소설을 제대로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문학평론가가 필요합니다. 소설은 우리 공동체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문화사가’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역사, 철학, 종교, 문화, 풍습, 전통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소설을 ‘산소’라고 합니다. 우리는 산소가 없으면 2분을 넘기지 못합니다. 소설이 인간의 삶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죠. 인간은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갈등과 모순이 있기 마련입니다. 비인간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작가의 사회적 임무라는 것입니다. 세계 위대한 소설 100편을 뽑았는데요. 90%가 산소의 역할을 한 작품이었습니다. 산소 역할을 제대로 한 사람은 인류의 스승으로 존경 받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필연, 숙명, 운명에 대해 끝없이 생각 합니다. 우리 근 현대사 100년을 보면요. 세계 200여 개가 넘는 나라 가운데 가장 비참하게 살아온 민족이 우리입니다. 그 질곡의 역사를 어떻게 소설로 쓰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태백산>, <아리랑>, <한강>을 써서 여러분의 주머니를 축내게 했습니다. 10년 전 교보문고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한 할아버지께서 <아리랑>을 읽고 작가의 나이가 80세 즈음 된 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젊은 나이에 이런 소설을 썼냐고 하셨는데요. 그러면서 앞으로는 소설을 좀 짧게 써달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후 <한강> 10권을 썼습니다. 

소설은 민족 언어의 자산입니다.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동시대의 사람들의 슬픔과 애환을 문학으로 쓰는 것이 작가의 책임입니다. 

서울에서는 하늘의 은하수가 안보여요. 조명이 너무 밟아요. 오염이 심합니다. 은하수의 별은 대충 1,000억 개라고 합니다. 우주에 은하수는 하나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런 은하수가 또 1,000억 개가 있습니다. 많은 별 중 왜 하필이면 지구에 태어났을까요. 왜 하필이면 대한민국에 태어났을까요.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까요. 여러분과 저는 수 만년의 인연에 의해 만난 것입니다. 소설은 소소한 이야기라는 뜻이에요. 백성들이 사는 이야기, 저잣거리에서 사는 이야기를 엮어 내는 것이 소설의 기원입니다. 그래서 소설가들은 잡다한 것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 자살률이 1위입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국민소득 2만 달러인 나라가 이래서 될까요. 삶의 만족도가 10위권 안에는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 원인은 두 개 권력에 있습니다.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이죠. 그 두 개의 권력에 비해서 소설은 권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작가가 시대를 바라보는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공통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제성장을 추진했습니다. 70년대 초, 중반 정부가 축적의 시대를 부르짖었습니다. 민족 자본을 만들어서 세계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에는 국민여러분 참고 기다리시면 언젠가 분배해 드릴 것입니다라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세계 강국의 하청업자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정권이 몇 차례 바뀌었지만 분배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여전히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죠. 우리 경제는 배신을 하면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의 눈으로, 작가의 양심으로 경제의 모순을 써왔습니다. <한강>을 통해 남북한 정권들이 분단을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이야기 했습니다. 경제 발전 40년 과정이 어떠했으며, 그 주역은 누구인가를 이야기 했습니다. 그 주역은 국민입니다. 그들의 삶을 기록해 놓은 것이 <한강>입니다. 그러면서 기업의 측면을 생각하게 됐고 <허수아비춤>을 집필하게 됐습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잇습니다.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는 이처럼 끝없이 축적을 시킵니다. 

우리는 왜 삽니까?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삽니다. 우리 인생은 무엇 입니까. 인생이란 연습도 재공연도 할 수 없는 단 1회의 연극입니다. 연극을 연출하는 사람,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 주인공은 다 여러분입니다. 여러분 하나하나가 모아져서 민주국가를 이루는 겁니다.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라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선거를 통해 확인하죠. 백성의 하늘은 땅입니다. 임금의 하늘은 백성입니다. 백성을 굶주리게 하는 임금은 반드시 몰락합니다. 한반도의 오천년 역사를 보면 수없이 많은 왕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백성을 굶주리게 한 왕은 몰락했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의 왕이 그러했습니다. 

최근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국민의 85%가 나는 서민이라고 답했습니다. 서민이라는 말 속에는 ‘나는 가난해’,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런 회한이 들어 있습니다. 반면에 1980년대 ‘나는 중산층이야‘ 하는 사람이 75%였습니다. 지금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국민소득을 가지고 말이죠. 그렇지만 그때 우리는 잘 살 거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즉 지금의 우리사회는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요즘 제 소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대기업의 비리가 폭로되고 있습니다. 탈세, 불법상속을 통해 축척된 엄청난 비자금을 보며 국민들은 얼마나 절망했을까요. 이제는 기업도 투명경영을 하고 세금을 제대로 내야 합니다. 정부에서는 그 세금을 통해 복지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혜택 받지 못하는 7, 80대 어르신들에게 연금을 줘야 합니다. 지하철 무료로 타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국민은 사회를 이룩하는데 공헌했습니다. 사회가 톱니바퀴처럼 얽혀있듯 아무리 하찮은 직업도 경제발전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도둑질 하고 사기 치지 않고 국민으로서의 역할을 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절망했습니다. OECD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세금을 거둬서 운영하는 조직체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세금거부 운동입니다. 기업들은 상품불매운동 제일 무서워합니다. 국가는 기업이 잘 되도록 북돋아 주고 그들이 이윤을 창출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세금을 받는 겁니다. 그런데 왜 기업들은 세금을 다 내면 사업을 못한다고 생각할까요. 다른 나라들이 200년에 걸쳐 만든 민주주의를 우리는 단 50년 만에 이룩했습니다. 경제발전도 마찬가지죠. 압축 성장을 했습니다. 그 사이 거대 기업들은 엄청난 부자가 됐습니다. 제가 <허수아비춤>이라고 제목을 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업이 잘 되어야 잘 산다는 맹신 내지는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범죄에 대해 너무 관대했습니다. 대기업들이 저지르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허수아비 춤이 되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선진국을 볼까요. 그들이 우리나라처럼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되었을 때, 기업이 불법상속이나 탈세를 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4만 달러 시대로 갈 수 있었던 겁니다. 기업들의 행태를 제대로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4만 달러로 갈 수 없습니다.

저는 기업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 책을 쓴 것이 아닙니다. 국민 80% 이상이 대기업들이 불법으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 합니다. 저는 기업들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고 신뢰받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1차적인 감정으로 저를 미워하겠지만요. 기업인들은 결단력이 빠릅니다. 이 때문에 이성을 회복해서 저를 바라보면 저에게 감사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가을을 맞아 회사 전 사원들에게 이 책을 사 줄 것을 기대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지금 함께 있는 이 필연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사람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운명, 숙명이라고 말 합니다. 사람은 유한한 인생을 살다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믿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은 어떤 사실을 제시만 하지 해결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공무원 권력, 법조계 권력 전부다 국민들이 감시해야 합니다. 이것을 막는 것은 법이 아니라 시민입니다. 시민의 힘이 국가를 만듭니다. 독일, 프랑스의 시민단체가 오만 개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민주화 투쟁 이후 시민단체가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국민이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시민단체에 후원하는 돈은 크지 않아도 됩니다. 십시일반이라고 했습니다. 남성동포 여러분, 한 달에 다섯 번 마시는 술, 두 번 줄이고 시민단체에 보내면 됩니다. 여성 동포 여러분, 하루에 다섯 번씩 바르는 립스틱 두 번씩만 바르시면 됩니다. 립스틱은 화학약품입니다. 몸에 좋지 않아요. 그 돈 아껴서 시민단체에 기부하세요. 시민단체 활동비가 한 달에 40-50만원입니다. 그들은 이 돈으로 좋은 사회를 위해 헌신합니다. 직접 시민단체 활동 할 수 없다면 그들이 잘 하도록 토대를 만들어 주면 됩니다. 자녀교육 따로 필요 없습니다. 아이 손잡고 시민단체 시위에 나가서 함께 소리 질러 보세요. 이것이 산 공부입니다.

멀리 보세요. 책도 읽으시고 읽으신 만큼 생각 하세요. 그러면 우리 사회는 빛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대통령은 이제는 삶의 질을 높여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저는 <허수아비춤>을 통해 여러분에게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을 말했습니다. 

Posted by 겟업
2013. 8. 9. 13:58

요즘 G20이 대한민국의 키워드가 아닌가 싶은데요. 쉽게 이야기해서 G20은 글로벌20을 뜻합니다. 지구상에는 240여개의 국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상위 20개국이 모인다고 이해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이 상위 20개 국가의 의장국으로서 회의를 주최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G20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선진국에 들어설 것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의 의미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나라가 아직 선진국이 아니라는 점, 하나는 G20을 한다고 해서 바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일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화두입니다. 먼저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를 어떻게 볼까요? 대체적으로 선진국이라 보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OECD 가입국이고요. 영국 FSB에서는 우리나라를 선진국 시장으로 편입 시켰습니다. IMF에서는 우리나라를 구체적으로 선진국에 분류 했습니다.

 

선진국은 ‘SELF’입니다. 즉 선진국은 스스로 정의 하는 것입니다. 추석 때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한국은 선진국입니까’였는데요. 30%만이 그렇다고 답을 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그렇지 않다는 70%에 대해서 ’한국은 OECD 가입국이고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었는데 그래도 선진국이 아닙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단 7%만이 그렇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한국 국민 대다수가 우리는 선진국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정치가 부패했다, 사회보장제도가 불안정하다, 고용체계가 불안하다, 승자독식사회이다, 교육체계가 어지럽다... 등등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정도로 다양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자기비하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학생에게는 0교시가 있고, 환자에게는 빚더미가 있고, 노동자중에는 비정규직이 많습니다. 농촌이 못사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공교육이 무너져서 학교에서 졸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기러기아빠’라는 용어를 가진 선진국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떻게 선진국을 지향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아직 멀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OECD 국가들의 행복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102위입니다. 삶의 만족도 역시 중간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선진국이 되면 더 좋은 것이죠. 그러나 선진국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선진국을 꿈꾸는 것일까요? 한국 사람들은 미국을 좋아하죠. 미국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국과 괴리감이 있습니다. 인구가 3억인데 노숙자가 1% 입니다. 상위 1%가 미국 재산의 33%를 가지고 있고, 상위 10%가 전체 재산의 10%를 가지고 있습니다. 빈부 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입니다. 이라크 전쟁의 경우를 볼까요. 미국에서 이라크 전쟁 선포했을 때 유엔에서는 결의안을 내서 이라크 전쟁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부시는 전쟁을 감행했습니다. 왜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했을까요? 기름이죠. 이라크에 기름이 없었다면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구온난화는 탄소를 많이 배출해서 일어납니다. 탄소 배출은 경제 성장에서 나오는 것이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산소를 배출한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교토의정서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교토의정서는 탄소배출을 줄이자고 약속하는 국제법입니다. 미국이 가입하지 않은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바로 미국 기업들의 이윤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선진국은 이런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스웨덴을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모델로 제시 합니다. 물론 유럽북부의 나라들은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선진국으로 갈 길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비정규직, 부정부패, 교육, 통일 등 문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세’를 거두자고 해서 논란이 있었는데요. 통일의 문제는 재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과 북이 오랜 세월 떨어져 있는 동안 따로 이루어진 국가운영시스템, 이것을 어떻게 화합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자본주의를 없앨 순 없습니다. 자본주의를 이해한 후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자본주의를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말은 처음에 사회주의자가 쓰기 시작하여 점차 보급된 용어인데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사족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본은 무엇이냐를 이해해야겠지요. 보통 자본은 어떤 사업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이나 자산을 생각하죠. 실제로 자본은 우회생산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손으로 물고기를 잡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물로 물고기를 잡을 것을 권유 합니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으니까 훨씬 많은 양이 잡히게 되죠. 여기서 그물은 자본입니다. 생산재를 만들기 위해서 생산 하는 것이 자본입니다. 그 이유는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본주의, 굉장히 좋은 것이죠. 그런데 왜 자본주의를 비난할까요. 문제는 분배에 있습니다. 그물을 이용해서 생산을 했는데 이렇게 증가한 생산성이 노동자에게 다시 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의 가치는 점점 줄어들고 자본의 가치는 점점 증가합니다. 자본의 힘이 더 커지면서 자본이 주인이 되는 상황으로 갑니다. 시장주의, 공리주의, 사회주의, 이런 개념들과 자본주의가 묶여서 이상한 시스템이 만들어 졌습니다.

 

‘시장주의’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효율적인 자본비율을 말합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생산을 획득하는 거죠. 끝없이 생산비용을 낮추는 경쟁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도태가 되면 생존이 위협당하죠.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죠. 껌 값도 못한 밥 값. 밥 한 공기에 천 원 인데 밥 먹고 마시는 커피가 삼천 원입니다. 그런데 천 원짜리 밥이 농민한테 가는 돈은 백 원이 안 됩니다. 커피 농가에게 가는 돈은 삼십 원입니다. 시장이 결정하는 값이 공정한가...,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고등학교 다니실 때 ‘공리주의’ 라는 것을 배우셨을 겁니다. 보통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표현되죠. 편익과 손실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요. 가장 편리한 방법은 돈이죠. 편익을 돈으로 환산하고 손실을 돈으로 환산해서 손실보다 편익이 크면 공리주의가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정리해고는 회사 경기가 나빠졌을 때 가장 손쉽게 하는 구조조정의 일환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에게는 힘이 없기 때문이죠. 공리주의 입장에서 보면 합당하죠. 그런데 정리해고 당하는 사람의 10%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합니다. 이것을 돈으로 따질 수 있을까요. 한미 FTA도 같은 맥락 입니다. FTA는 농업과 자동차를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업이 당하는 희생보다 자동차 수익이 더 크기 때문에 FTA가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농업의 피해는 국가가 복지정책으로 보상을 해주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합당한가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팔아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시가총액이 미국에서 1위라고 합니다. 물론 스티브 잡스가 경영을 잘해서 번 돈입니다. 그러나 그 이익이 스티브 잡스만의 몫일까요.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한테 정당하게 보상을 했을까요? 이러한 것을 잘 따져 봐야 합니다.

 

법치주의는 참 답답한 이야기입니다. 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건데요.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면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있습니다. 자본을 위한 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클라렌스라는 미국의 대법관이 있습니다. 이분은 다국적 기업의 자본변호사였습니다. 딕 체니는 부시 밑에 있던 부통령인데, 역사상 가장 힘이 센 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라크전쟁의 주역입니다. 핼리 버튼이라는 군수회사의 회장을 역임했던 사람이죠. 마지막으로 헨리 폴슨은 미국의 재무장관입니다. 골드만삭스의 CEO를 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어떤 정책을 어떤 제도를 어떤 법을 만들고 추진을 했을까 하는 것은 따져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지요.

 

정글은 자본이 주인인 사회입니다. 정글은 승자독식사회, 부익부빈익빈, 고용 없는 성장을 필연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세계화라는 것이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미국이 이민법으로 입국을 막습니다. 자본은 가장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서 돌아다닐 수 있지만, 노동력은 가장 좋은 자본을 찾아서 다닐 수 없습니다. 인터넷의 발전 역시 자본에게는 큰 수혜입니다. 여러분이 트위터에 ‘나 회사 그만 뒀어.’라고 올리면 당장 은행에서 대출이 막힙니다. 사채업자들로부터 수없이 문자가 옵니다.

 

자본주의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인구가 60억 명인데 그 중 10억 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잘사는 10억 명은 비만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는 소비의 20%에 해당하는 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길까요, 구매력이 없기 때문이죠. 빈곤성이라는 것은 1달러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애그플레이션 당시 우리는 자장면 값이 50% 올라 고통을 받았지만 10억 명은 생명을 위협받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고통 받습니다.

 

GMO를 볼까요. GMO는 멀쩡한 식물을 유전조작 해서 대량으로 키웁니다. GMO의 80%를 몬산토라는 회사가 맡고 있습니다. 고엽제를 만드는 회사 입니다. 이 고엽제를 더 잘 팔기 위해서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만들어 냈습니다. 광우병도 마찬가지죠. 소를 우리가 먹는 소고기로 만들면 내장 같은 여러 부산물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버리는데 굉장히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산물을 갈아 사료로 만든 뒤 다시 소한테 줬습니다. 광우병은 풀만 먹던 소가 동물 단백질을 먹으면서 생긴 병입니다. 왜 그랬을 까요. 경쟁 때문이죠.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가급적이면 버릴 것이 없어야 하고 밀집생산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그늘은 훨씬 더 깊습니다. 그 이유는 짧은 기간에 산업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였습니다. 그런데 현재 국민소득은 19,262달러입니다. 물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성장을 하게 되면 성장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화율을 볼까요. 우리는 일본, 미국 보다 도시화율이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온갖 문제가 생기죠. 교통, 환경, 상하수도, 범죄, 쓰레기 등 너무나 많은 문제가 발생 했습니다. 성장에 가린 그늘은 굉장히 많습니다. 빈부격차, 교육문제, 비정규직 문제, 자살 등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가계소득은 2003년에서 2007년까지 참여정부 시대에 급격하게 벌어졌습니다. 진보정당과 반대되는 현 정부에서는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대학졸업장만 있으면 취업을 했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취업이 쉽지 않습니다. 몇 곳의 인턴을 거쳐야 합니다. 그 인턴도 월급이 80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소위 말하는 88만 원 세대죠.

 

도시, 농촌간의 소득격차를 볼까요. 농촌의 소득은 정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농산물의 판매가격과 구매가격의 차이를 교역지수 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교역지수는 1995년 이후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1995년은 WTO가 출범한 해입니다. WTO는 농산물개방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죠. 미국과 유럽이 농산물 전쟁을 벌이다가 우리끼리 전쟁을 하지 말고 시장을 더 넓히자. 이렇게 시작한 것이 WTO의 시초인데요. 농업에 직격탄을 줬습니다.

 

교육을 볼까요. 사교육 참여율이 높을수록 소득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현 정부는 2010년에 사교육비가 줄었다고 자화자찬을 했습니다. 그것은 월 소득 100만 원 이하 가정의 교육비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월 소득 600만 원 이상 가구는 지속적으로 교육비가 상승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자살대국입니다. 특히 초, 중, 고 학생들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가정의 빈곤으로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자본주의는 국가의 핵심적인 경제체제입니다. 동물의 법칙이 작동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법칙이 작동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정의라고 하는 것을 무엇일까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읽어서 화제가 된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10주 연속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이 책은 정의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 않고,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만 계속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의란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리고 싶습니다.

 

논어에서는 정의를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고 봤습니다. 수오지심은 부끄러워하고 분노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집단적인 부정부패, 집단적인 인사문제, 이런 것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의를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요. 최근 의미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노벨 경제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이분의 업적은 <공유의 비극을 넘어> 라는 책입니다. 공기, 환경, 저수지 등 주인이 없는 재산, 공유지를 시장에 맡겨두면 약탈되고 사용되어서 재산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에도 맡겨보고 정부에도 맡겨봤지만 잘 안됐습니다. 오스트롬은 공유지를 공동체적 대안으로 지켜야 한다는 해법을 냈습니다.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다섯 명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국부론’을 만든 아담 스미스입니다. 경제학의 아버지죠. 자본주의가 태동했던 시기에 <국부론>이란 책을 써서 시장경제학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이 문제의 해결을 제시한 사람이 칼 막스입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모순에 의해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구원투수가 케인즈였습니다. 그는 정부가 개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다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밀턴 프리드먼이 자유주의로 돌아가자, 시장에 맡기자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후 2008년에 서브프라임을 막고 나서 새로운 경제 대안을 모색하게 되는데, 이때 나타난 사람이 엘리너 오스트롬입니다.

 

기업이라고 하는 것은 주인이 주주죠. 생산을 어떻게 할 것이냐, 수익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주주가 결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이윤을 극대화 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면서 이윤을 통한 편익을 극대화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농협, 한살림 등이 있지요. 썬키스트 오렌지도 협동조합에서 만드는 것이고, FC 바로셀로나도 협동조합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농협은 작년에 1조 넘는 돈을 여러 형태로 환원했습니다. 주로 하는 일은 지역경제 활성화, 농업인의 실익 지원 등을 하고 있습니다. 한살림은 배추 한 포기가 12,000원 할 때 1,770원에 팔았습니다. 한살림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죠.

 

사회적 기업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기업이란 빵을 팔기 위해 고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을 말합니다. 자본주의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자본주의 내에서 어떻게 하면, 함께 경쟁해서 영리를 추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주주의 이익만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으로는 아름다운가게, 히말라야의 산, 탄소기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현재 353개의 사회적 기업이 있습니다. 미국에는 사회적 기업이 150만 개가 있답니다. 영국에는 130만 개가 있습니다. 우리는 경우 2007년에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만들어져서 지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스템적 개편도 좋지만 시스템을 만드는 정치가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을 극복한 사람이죠. 대통령은 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 헌법을 복지국가로 수정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헌법을 개정하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만약 루즈벨트의 수정헌법이 완성됐으면 미국은 훨씬 좋은 나라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에 룰라대통령은 2002년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현재 룰라 대통령은 두 번 연임을 끝내는 시점에 있죠. 여전히 국민들의 80%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룰라 대통령은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두 대통령은 진보대통령입니다. 성장과 분배를 같이 추진했는데 한 분은 실패하고 한 분은 성공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으로 남게 될까요. 처음에는 친기업 정부를 만든다고 했다가 최근에는 중도실용, 친서민 정권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변절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정치적인 제스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과 상관없이 이명박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한 신문사에서 ‘10년 후에 당신의 신분이 상승할 것 같습니까?’ 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75%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희망의 상실을 이야기 합니다. 희망을 잃은 사람은 노력하지 않을 것이고 그 결말은 뻔합니다. 이 악순환의 메시지를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요. 결국은 국민이 중요합니다. 국민이 정치를, 정부를 만드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세무공무원을 마피아의 모습으로 풍자한 사진이 있습니다. 러시아가 개혁개방을 하면서 국민한테 세금을 거두었는데요. 그동안 한 번도 세금을 내지 않았던 국민들은 정부보다 마피아한테 기부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에 있어 혜택이 크다고 생각했답니다. 이것은 뭘 뜻할까요. 정부와 마피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국민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하는 정부는 마피아와 다를 게 없습니다. 정부는 국민의 권한을 잘 읽어야 합니다. 정부는 국가가 아닙니다. 정부는 국민의 일을 해주기 위해서, 봉사를 목적으로 권한을 부여한 곳일 뿐입니다. 요즘 NGO 비정부 기구가 성행하고 있는데, 정부가 일을 못한다는 것이죠.

부시가 이라크전쟁을 하자고 국회에 승인요청을 했을 때 국회는 찬성을 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카터 대통령이 반대를 했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은 고민을 합니다.

국가의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이죠. 결국 국민이 정부의 역할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한 단체가 우리 국민의 핵심 사업으로 군수사업을 육성하겠다고 합니다. 정말 충격적입니다. 무기를 팔아서 경제를 키우겠다는 발상.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저는 세상은 상상과 긍정의 힘으로 움직인다고 생각 합니다. 좋은 선진국, 행복한 선진국을 상상하고 노력한다면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농촌이 잘 사는 나라를 희망합니다. 

Posted by 겟업
2013. 8. 9. 13:56

어떻게 하면 나비축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축제는 하루아침에 성공하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 간부회의에서 제안 했던 것이 청와대를 나비로 점령하자였는데요. 4월 25일 지구의 날, 청와대 녹지원에 나비 날리기를 계획했습니다. 처음에는 반대도 많았지만, 결국 청와대 녹지원에서 나비를 날렸습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 故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도 나비를 날렸고, 현충일에도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나비를 날렸습니다. 당시 5,000여 마리를 날렸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나비가 높이 날아서 묘역 주위를 날아가는데 영령들의 혼이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 저의 주제는 기업이 아닌 공무원들이 어떻게 해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성공할 수 있었을까 입니다. 제 이야기가 대한민국 선진화에, 공무원들의 도전정신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함평은 왜 나비로 돈을 벌 생각을 했을까요? 함평은 노인인구가 30%가 넘는 초고령 사회 입니다. 귀향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유명인물도 없고, 심지어 특산물도 없습니다. 신이 공평하다면 우리에게도 어떤 선물을 줘야 하는데 우리 지역에는 하나도 주지 않았다는 서운함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함평만이 가진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지 못하면 대한민국 지자체에서 결코 1등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함평에 맞는 컨셉은 뭘까? 1998년 7월에 첫 취임을 한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21세기는 문화, 환경, 여러 키워드가 있습니다. 저는 KBS 피디 시절에 ‘나비’ 다큐멘터리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문득 나비가 떠오른 겁니다. 나비를 통해 친환경 이미지를 제고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생태 체험 학습의 장을 만들면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곧 새로운 관광 상품이 만들어 지지 않을까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현 공무원들이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나비 전도사가 되어 고군분투 했습니다. 공직자, 의원, 군민들을 만나서 나비축제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하여 1999년 5월 5일 세계 최초의 나비축제가 만들어졌습니다.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차들이 다 못 들어와서 줄을 서 있을 정도였습니다. 잔잔한 호수에 큰 돌이 떨어 진 것입니다. 우리 함평도 뭔가 되려나 보다하고 희망이 생겼습니다. 저희는 너무 황홀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 후로 공무원들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군민들은 자원해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축제 공화국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남의 축제를 따라하죠. 존재하지 않고 있던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저희 역시 한 자리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축제가 10회째를 맞이했을 때 다시 사고를 쳤습니다. 세계 최초의 나비 곤충 엑스포를 정부에 제안했습니다. 정부의 반대는 컸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엑스포가 많이 개최되는 곳이 프랑스입니다. 그곳은 브래지어 하나로도 축제를 합니다. 일본은 작은 시골 마을이 연극 엑스포를 치러서 부를 창출 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본다면 우리 대한민국이 선진화로 가는 길도 234개의 지방자치가 창조 마인드로, 창조 도시로 만들어서 경쟁력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비 엑스포는 합리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 합니다.”

함평에는 아직도 큰 호텔이 하나 없습니다. 이런 지역에서 엑스포를 하려다 보니, 참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엑스포가 열리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관광객과 국내외 곤충학자들이 참여를 했고,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렀습니다. 

저는 12년 동안 블루오션, 창조 경영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황금박쥐가 세계에 2-30만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함평 지역에 황금박쥐 60여 마리가 발견 된 겁니다. 저는 주민들에게 황금박쥐를 보물로 만들기 위해 사유지를 보호구역으로 양보해 줄 것을 부탁 했습니다. 모든 주민들이 동의를 해 주었고 생태보호구역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보호구역이 자칫 잘못하면 주민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됩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군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순금으로 된 황금박쥐 조형물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시 금이 1돈 당 4만 원 정도였는데요. 이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또 중앙정부는 반대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이디어로 성공하겠다며 30억 원을 부탁드렸고, 10억 원을 받게 됐습니다. 그리고 의회에 부탁해 20억 원을 확보해 조형물을 만들었습니다. 황금박쥐 조형물은 함평군민들의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함평에는 한때 레슬링으로 유명했던 농업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골프가 떠올랐습니다. 농업학교다 보니까 잔디가 많았고 관리도 잘하고 있었습니다. 농업학교에서 변신을 해서 본격적으로 골프를 육성하기 시작했고 이 학교에서 신지애 선수, 장수연 선수가 배출 됐습니다. 

함평군은 임시정부에서 재무장을 지낸 김철 선생이 태어난 곳입니다. 저는 우리의 인물이 계시기 때문에 기념청사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김철 선생의 생가 터에 기념관을 건립하고, 바로 옆에 김철 선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임시정부청사를 재현했습니다. 

저는 돈 없다고 하지 말고, 권한 없다고 하지 말고, 제도가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돌파 하자고 이야기 합니다. 이곳 해치마당 바로 위에 계신 이순신 장군 역시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리더십으로 일본을 이겼습니다.

함평을 찾은 관광객은 98년 12만 명에서 현재 45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농업이 영어로 agriculture입니다. 즉 농업은 땅의 문화인 것이죠. 그래서 농업을 생각할 때는 디자인을 접목하고, 기능성을 더하고 문화를 함께 떠올려야 합니다. 가장 함평스러운 것, 가장 농촌스러운 것으로 농업 외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시보다 잘 살 수 있는 농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신안 앞바다에서 괴물이 나왔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저는 밋밋한 생태 체험장에 괴물을 설치하면 다양해 지지 않을까 생각 했습니다. 뱀을 전시하기 시작했는데, 파충류에 그렇게 관심이 많을 줄 몰랐습니다. 한 줄은 나비를 보러가고, 한 줄은 괴물을 보러가더라구요. 블루오션이자 창조오션입니다. 
이것을 산업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세 가지 전략을 세웠습니다. 
첫째, 세계최대의 뱀 생태관입니다. 아마존강 주변 같은 인공생태관을 만들어서 볼거리와 학습의 장은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 뱀을 통한 신약 개발입니다. 태국만 가도 뱀의 독을 이용한 약이 있습니다. 화학, 중금속치료 등 신약을 개발 하는 것입니다. 셋째, 뱀을 키우는 것입니다. 

현재 함평군은 뱀 생태관이 들어서고 신약도 개발 중이며 뱀도 육성하고 있습니다. 하면 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애정을 갖고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뜻은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마인드로 가면 블루오션은 이루어집니다. 20세기는 아담스미스가 말한 국부론의 시대였습니다. 이제는 지방의 시대,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대입니다. 민주주의가 잘 뿌리를 내려서 작은 정부들이 제각기 색깔을 갖고 정체성을 가진다면 이것이야 말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 합니다. 중앙정부에서는 교육자치, 지방자치를 밀어 주면서 지방만이 갖고 있는 장점에 집중하고 세계화할 수 있는 지원을 해주어야 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모든 지자체가 각자의 색깔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불씨>입니다. 일본의 에도 막부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17살 주인공이 한 마을에 양자로 들어오면서, 서구화 시대가 열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개혁으로 성공해서 잘살게 된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불 꺼진 불씨를 살려서 큰 불을 만들어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3’이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첫째 3은 3대가 공을 들여야 합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본인까지 말이죠. 
둘째 3은 공가, 처가, 애가, 나라와 처가, 가족에게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 3은 친구, 선후배, 조직 간에 서로 잘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군수시절 같은 차를 11년 동안 탔습니다. 리더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솔선수범, 언행일치 하는 곳만이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초심으로 돌아가 나라를 발전시키고, 지역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질 때 대한민국은 선진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겁니다. 

Posted by 겟업
2013. 8. 9. 13:53

잘 사는 나라, 일류국가, 선진국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공통점은 분명한 목표와 전략에 있습니다. 전략을 가지고 국민의 힘을 모았기 때문에 선진국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경로를 거쳐 일류국가가 되었을까요. 나라별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은 세계 강대국입니다. 세계 1등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링컨’ 때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까지 포함한 44명의 대통령 중 넘버원은 링컨입니다. 노예해방을 이루어서가 아닙니다. 노예해방은 링컨의 목표달성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입니다. 링컨의 목표는 미국 통일이었습니다. 미국 남쪽은 버지니아계로 영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고요. 북쪽은 네덜란드로 갔던 청교도들이 동경을 가지고 정착 한 곳입니다. 미국은 건국 때부터 마찰의 소지를 가지고 있었던 거지요. 남북전쟁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전쟁 이었습니다. 링컨 이전의 대통령은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막아보기 위해 다독이고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전쟁이 필요하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예제도를 통해서 통일을 할 수 있다면 노예제도를 유지하겠지만, 반대로 노예제도를 없애야 통일을 할 수 있다면 없애겠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통일이 필요했던 거죠. 미국은 전쟁을 통해 국가의 토대를 만들었고, 지금의 강대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링컨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지금 미국은 남아프리카 대륙처럼 수많은 50개 국가로 갈라질 수도 있었겠죠. 50개 주가 하나 된 미국은 강대국입니다. 현재 미국이 가지고 있는 군사력은 전체 유럽, 아시아를 다 합친 것과 대등합니다. 앞으로 100년까지 미국은 강력한 국가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늙어가는 제국이라고 하지만 영국 역시 세계를 제패한 경험이 있지요. 아직도 영국 국기를 쓰고 있는 나라가 40~50곳 됩니다. 대영제국은 해질 날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단한 나라였습니다. 여기에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있었습니다. 여왕은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강력한 해군을 만들었고, 영국 함대는 세계최강이라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해상권을 장악합니다. 해군강국이 국가 전략이었던 거죠.

유럽에서 요즘 제일 잘나가는 나라, 독일입니다. 독일은 18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유럽의 3류 국가였습니다. 독일의 주식이 감자인데요. 감자가 구황식품입니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감자를 먹는 거죠. 통일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의 멸시를 받던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독일은 부강한 나라가 되었을까요. 바로 비스마르크라는 재상 때문입니다. 그는 독일의 통일을 강하게 밀어 붙였죠.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등 많은 사람들이 통일된 제국을 원했습니다. 권력이 좋아서였을까요. 통치자가 되고 싶어서였을까요. 독일 통일을 보면 단순히 권력에 대한 욕심만으로 통일을 추진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은 정치보다 경제 네트워크 때문에 필요합니다. 비스마르크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로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통일 이후 독일은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해서 승승장구를 합니다.

 

금융위기를 맞은 나라를 가리켜 ‘PIGS’ 라고 하죠. 여기서 P는 포르투갈, I는 이탈리아, G는 그리스, S는 스페인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씨에스타를 실시하는 낮잠 자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중 이탈리아는 G7에 속하고 굉장한 파워를 과시하는 나라입니다. 그 힘은 가리발디 장군에 의한 이탈리아 통일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통일 후 지금도 이탈리아의 지역색은 강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탈리아 국민이라고 믿을 때는 월드컵밖에 없다고 합니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물어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나라와 함께 꼭 출생 도시명을 말합니다. 이탈리아 통일 당시 초대 수상이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이탈리아를 만들었다. 이제는 이탈리아인을 만들고자 한다.” 그만큼 통일된 이탈리아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는 거죠.

 

이제 러시아로 가 볼까요. 강대국 하면 러시아 보다는 소련이 떠오르죠. 소련이 전 세계 3분의 1을 좌지우지 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잘 살자는 이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잘 사는 이상 국가를 만들겠다는 꿈은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였습니다. 빵장수가 아침부터 부지런히 빵을 만드는 것은 자부심이 아니라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욕심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죠. 이것을 소련은 간과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곡식이 쌓여서 넘치는데 기차가 고장 나서 허허벌판 시베리아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분배가 안되고, 이런 비효율 때문에 소련은 몰락하고 러시아가 됩니다.

 

이제 아시아로 넘어와서 일본과 중국, 한국을 보죠.

일본은 1853년 미국인들이 끌고 온 배에 의해 허겁지겁 나라 문을 엽니다.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외부에서 들여와야 합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다른 문화를 잘 받아들입니다. 앞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여기에 자신들에게 잘 맞추어서 변형시키는 능력도 있습니다. 이 당시 영국이 세계패권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군대가 작았습니다. 그래서 동인도회사, 서인도회사를 만들어 일반 민간인들에게 군사권을 줍니다. 영국 상인들은 인도에 가서 인도의 용병을 고용하고, 인도를 지배했는데요. 영국인들은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본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옆에 있던 큰 시장이 중국이었습니다. 중국에게 모직, 담배, 차를 팔려고 했지만 잘 안됐죠. 그러자 영국 사람들은 비겁한 방법으로 아편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편전쟁의 계기가 됐고, 중국은 영국에 패배하고 말죠. 이 전쟁을 계기로 중국, 일본은 개혁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두 나라가 개혁을 하는 모습은 달랐습니다. 일본은 국가 목표를 ‘서양 따라잡기’로 정했습니다. 1868년 국가의 전략을 ‘탈아입구(脫亞入歐)’로 세웠습니다. 아시아를 버리고 유럽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일본은 모든 제도를 서양식으로 바꿉니다. 또 하나의 국가 전략이 ‘화혼양재(和魂洋才)’입니다. 일본의 정신을 유지한 채, 서양의 학문을 받아들여서 더 우수하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불과 20년 만에 강국이 되어서 우리나라를 침략했고요.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러일전쟁에도 승리합니다. 세계열강에 진입한거죠.

 

그럼 이번엔 중국을 살펴볼까요. 이제 중국이 일본을 넘어섰습니다. 앞으로 중국이 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하죠. 중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중국은 단 한 번도 중화사상을 버린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자신들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서양의 학문만 받아들였습니다.

 

일본인들은 세계 진출을 해도 Japan Town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에 동화를 하지요. 그러나 중국 사람은 어디를 가나 China Town을 만들어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듭니다. 중국의 목표는 중화사상을 통한 세계으뜸국가 건설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대만, 티벳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지요. 두 개, 세 개의 중국은 피바람이 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 한 티벳 독립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국의 발전과 움직임이란, 세계제패가 아니라 세계으뜸나라로 올라서는 겁니다.

 

그럼 그렇게 잘나가던 일본이 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까요. 저는 국가전략의 부재라고 생각 합니다. 지금까지는 서양을 따라 잡자는 것이 국가 전략 이었습니다. 즉 ‘탈아입구(脫亞入歐)’를 했는데,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거죠. 뒤집어 이야기 하면 자기 거부 내지는 자기 부정입니다. 황인종이 황인종이지 어떻게 백인이 됩니까. 자기 정체성 부정입니다. 일본에서는 동양인이 쓴 책은 잘 안 팔립니다. 서양인이 쓴 책만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아시아에 대한 폄하가 있는거죠. 이제 아시아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역부족입니다. 이미 일본에는 서구적인 사고방식이 뿌리내려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만든 세계적인 발명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워크맨’과 ‘가라오케’라고 하죠. ‘워크맨’은 단지 서양에서 만든 녹음기를 작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가라오케’ 역시 서양에 있던 것을 반주기 형태로 바꾼 것뿐입니다. 정체성 부재가 일본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이 국가전략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잘 살아 보세’입니다. 이 슬로건만큼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 없습니다. 외국에서는 대한민국을 인정해 주는데 우리만 모릅니다. 동구권 몰락이 대한민국 때문에 시작됐다는 것 아세요? 코리아에서 올림픽을 한다고 했을 때 동구권에서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코리아를 거지들이 넘쳐나는 폐허의 나라로 알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올림픽 때 보니 서울 거리에는 자동차가 넘쳐나고 사람들이 옷도 잘 입고, 굉장히 발전해 있는 겁니다. 동구권이 넘어지기 시작한 시기가 올림픽이 끝난 1989년부터입니다.

 

저는 <먼 나라 이웃 나라>를 쓰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길 꿈꾸었습니다. 그 꿈이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 실현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계변방국가에서 세계중심국가가 되는 것을 꿈꾸었고, 이제 이루었습니다. 오케스트라로 치면 저 끝에서 탬버린만 치다가 지휘자가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의 중심이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입니다. 196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에서 현재 2만 달러로 올라섰습니다. 세계 10대 무역국에 들어갑니다. 세계 220여개 나라 가운데 남의 나라의 도움을 받다가 도움을 준 유일한 나라입니다. 이번 G20정상회담이 큰 성과를 낼 것으로 믿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의 G7은 백인과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G20에는 신흥국이 참석하기 때문에 모두의 의견을 아울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반열에 섰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진국으로 가야 할까요. 미국처럼 힘만 세고 미움 받는 나라, 일본처럼 잘 살아도 업신여김을 받는 나라, 이런 나라들은 우리가 원하는 선진국이 아닙니다. 한국은 한류가 있는 나라입니다. 일류, 중류는 없습니다. 즉 콘텐츠가 풍부한 나라라는 거죠. 독일을 가면 피아노 있는 가정이 100군데 가정 중 1곳이 있을까 말까인데요. 우리나라는 아무리 못살아도 집집마다 피아노가 있어요. 엄마들의 욕심이 아이들을 르네상스적인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콘텐츠가 다양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저력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한글’ 역시 정말 대단한 글자입니다. 자기 언어에 맞는 문자를 직접 만들어 쓴 민족이 한민족 밖에 없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소수 민족이 한국어를 배운다고 하지요.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수많은 민족이 사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입니다. 다양함 속의 통일인거죠. 우리가 문화적 자존심을 내세우면 안 됩니다. 한글을 쓰는 것으로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그들의 문화적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 합니다.

 

독일 친구들이 와서 제일 놀라는 것이 깨끗한 서울 거리입니다. 담배꽁초 하나 없다는 거에요. 프랑크푸르트 같은데 가보면 길거리에 마약이 깔려 있고, 파리 거리는 더럽기로 유명하죠. 그에 반해 대한민국 참 깨끗합니다. 선진국은 무엇보다 사랑받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받는 나라, 존경받는 나라 대한민국이 되어야 합니다. 왜 미국과 일본이 미움 받을까요. 물건을 팔기만 했지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존을 국가적 목표로 만든다면 누가 우리를 미워할까요.

 

세계에서 사랑받는 나라 중 한 곳이 캐나다입니다. 사랑을 장담하지는 못하겠지만 미움은 안 받습니다. 캐나다는 남에게 폐를 끼친 적이 없습니다. 자연을 보호하고 난민을 보호하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가는 나라가 캐나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로 꼽지요. 캐나다는 우리나라의 100배나 되는 땅에 인구는 우리나라의 3분의 1 밖에 안됩니다. 인구는 적은데 자원은 풍부해서 돈도 많습니다. 게다가 베풀 줄 알고 끌어안을 줄 아는 나라이기 때문에 캐나다를 미워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남북통일을 하면 우리는 8천만 인구가 되고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됩니다. 이제는 사랑받는 국가를 선진국 목표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된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이번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어떤 선진국이 될 것이냐에 대해 다함께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겟업
2013. 7. 20. 15:32

대장금이 세계 60개 국에 팔리고 약 3조 원의 경제효과를 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같은 나라는 방송에서 대장금 관련 퀴즈를 냈다가 국민의 3분의 1인 480만 명이 응모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인기가 대단하다. 대장금은 이웃 일본에 아직도 인터넷 VOD서비스로 팔릴 정도로 인기가 여전하다.

드라마와 같은 문화상품의 인기는 단순히 드라마콘텐츠의 판매에 그치지 않고, 한국에 대한 인식과, 한국 문화, 한국 상품 등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해서, 궁극적으로 국가에 엄청난 경제외적 공헌을 한다. 문화가 곧 국방이고, 문화가 외교인 셈이다. 이웃 일본의 네티즌들은 한국에서는 욘사마 같은 훌륭한 배우를 일본에 보내는데, 일본에서는 AV 여배우의 벗은 몸을 한국에 보내는 수준이라고 탄식할 정도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자부심을 가질 만한 훌륭한 문화상품이 해외 방송물 판매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나치게 엄격한 방송물의 간접광고 제한과 방송 후방 산업의 취약한 구조 때문이다.

유명한 영국스파이 영화 007은 영화가 한번 뜰 때마다 BMW 등 외국 고급차들의 인기를 함께 끌고 다닌다. 주인공이 멋진 고급차를 타고 나오며, 그 차에는 자동차회사 로고가 선명히 박혀 있다. 그러나, 대장금을 비롯, 겨울연가, 사랑이 뭐길래 등 수많은 한류 인기 작품들은 우리나라 상품과 우리나라 관광자원을 제대로 소개할 수가 없다. 이미 만들 때부터 간접광고 규제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와 같은 간접광고 규제 때문에 결국 제작사들도 세계시장을 목표로 하는 마케팅보다는 제작비에 맞춘 제작자체에만 신경을 쓰게 되고, 인터넷과 케이블TV 등은 콘텐츠의 다양한 메타정보의 활성화를 통한 2차 부가가치창출 보다는 단순 유통에 머무르게 되었다.

만일, 겨울연가의 욘사마가 드라마에서 늘 즐겨타던 멋진 자동차가 있었고, 이를 인터넷에서 장면별로 다양하게 해설해 놓은 정보가 있었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졌을까? 뒤늦게 현대자동차가 배용준을 모델로 일본 시장 진출을 시도했지만, 드라마와 직접 연관이 없는 광고는 그만큼 힘든 마케팅 노력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모호한 규제는 TV가 남녀노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적 성격의 보편적 매체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지상파 방송은 케이블을 통해 전달되어 이미 지상파가 아닌 상황이 된 지 오래다. 아니면 방송 자체는 규제의 틀을 유지하더라도, 방송이후의 유통과 재생 등 후방시장에서라도 상품화를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드라마가 끝나자 마자 주인공의 패션과 액세서리 등을 묻는 문답이 게시판에 쏟아진다. 해외에서도 그런 궁금증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런 상품에 대한 소개와 구매를 제대로 알려주는 통로는 없다. 촬영장소, 배경음악, 각종 소품과 가구 등에 대한 DB도 쌓이지 못하고 있다. 

과감한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임문영 iMBC 미디어센터장

Posted by 겟업
2013. 7. 20. 14:41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 구글은 10의 백승을 뜻하는 구골(Googol)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이크로는 100만분의 1을 의미한다. 둘 다 인간의 지각으로 쉽게 인지하기 어려운 극한 개념들이다. 무한히 크거나 무한히 작은 개념을 회사명으로 정한 두 기업이 세계 인터넷을 이끌어 가는 주역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IT 기술은 우리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 매우 크거나, 매우 작은 것들이 과학발전과 함께 우리 눈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나노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광년의 우주를 내다 본다. 만물의 척도는 인간이라고 했지만, 그 인간의 인지능력은 극대로 향상되어, 이제 스스로의 척도를 계속 바꿔나가고 있다. 인간이 확대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급기야 앉아서 전 지구를 돌려 보기도 하고, 순식간에 전세계의 포인트와 커뮤니케이션 한다. 과거의 이소룡이 TV에 나와 광고를 하며 현재의 배우들과 경쟁하고 있다.

이미 IT 기술은 첨단 기술집약 분야인, 군사부문, 의료부문을 포함, 정치, 경제, 문화 영역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침투해 들어가고 있다. 우리 손으로 가장 빠른 기차를 만들고, 우리 손으로 우주선을 쏘아 보낼 수 있는 역량이 갖춰지고 있다. 우리가 IT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볼 줄 알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될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의료기술을 통해 엄청난 부와 수익을 만들 수도 있다.

IT는 기존의 어떤 산업과도 다른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능이기 때문이다. 지능이 결합되면 똑똑한 무기, 똑똑한 의료기술, 똑똑한 농업이 된다. 한마디로 모든 보이는 구경제가 보이지 않는 신경제 지식의 힘으로 똑똑해지는 것이다. 지식은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집약될 수록 더욱 더 빠른 속도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 가속도도 높아진다. 지식과 정보가 미래의 핵심인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다. 결국 IT산업은 단순히 포털 같은 회사나 UCC같은 눈에 보이는 콘텐츠, 하드웨어 산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식산업이며 동시에 정보산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식과 정보는 꾸준히 업그레이드 되고 집약되면서 스스로의 자기 진화를 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인류가 박테리아로부터 진화해오듯이 스스로 자기복제를 해나가면서, 수많은 잡종과 변종의 실험을 통해서 선택되어지고, 살아남는 것과 유사하다. 산소와 물이 생명을 키웠듯이 지식의 세계에서 그것은 자유롭고 공개된 토론과 창의적인 도전과 실험이 자양분이다. 명령으로 창의성이 만들어지거나, 기계로 지식을 업그레이드 할 수는 없다.

옛날 쎙 떽쥐뻬리는 ‘어린왕자’에서 한가지 현명한 답을 말해주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하고, 일탈에 가까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낼 줄 아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사회가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임문영 iMBC 미디어센터장

Posted by 겟업
2013. 7. 20. 14:06

한류전략연구소 소장이 본 한반도 미래비전 “新문예부흥국”


신승일 박사

한류전략연구소장, (사)한류산업협의회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와 미국 버지니아텍 시스템 공학과를 졸업했다. (사)한류산업협의회를 조직해 한류의 세계화, 산업화, 쌍방향적 문화교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은 7월7일 국회대강당에서 개최된 “신한류 문화산업 정책토론회”에 발표된 내용이다.
 
한류의 거센 바람이 휘몰아쳐 지나간 자리에 제2기 한류가 움트고 있다. 대중문화가 닦아놓은 한류의 길 위로 한국의 다양한 문화가 전파되어 쌍방향적 문화교류와 융합을 이루면서 문화 르네상스를 일구어 낼 기회가 온 것 같다. 그 동안의 한류는 한국인의 삶의 본질과 역사, 사상,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드라마, 가요, 영화 등 대중문화의 전달 위주였고,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문화 획일주의와 한탕주의로 놓쳐버리는 듯하였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 등 한류국가에서는 대중문화로 촉발된 한류로 인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마니아층이 형성되고 있고, 우리가 하기에 따라 한국 문화가 크게 전 방향적으로 펼쳐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7년 4월 일본의 중견 여배우 ‘구로다 후꾸미’는 “한류는 대중문화로 인해 촉발되었지만, 일본의 한류팬들 가운데서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알고자 하는 수요가 많이 생겼다. 그런데 정보가 없어서 아쉽다”라고 했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녀는 “한국인의 예쁜 마음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하다. 아마 유교 때문이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중국에서는 2006년 10월 베이징 사범대학의 위단 교수가 cctv에 논어 강의를 하면서 공자 붐을 불러 일으켰다. 위단 교수의 <논어심득>은 450만부 이상이 팔렸다. 2000년 이상 동아시아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왔지만, 문화혁명 시기에 부관참시를 당하다시피 했던 공자가 지금 중국에서는 완전히 되살아났고 전통문화 붐이 불고 있다. 세계 곳곳에 ‘공자학당’이 세워지고 있으며, 공자 탄생 기념식은 국가 행사로 승격되었다. 전통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여기저기 감지되고 있는 가운데, 성인식과 전통혼례를 찾는 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질문명의 폐해와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이 ‘전통’으로 회귀하고 있다. 우리 전통 속의 생명 평화 사상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보편적인 정서이다. 이러한 맥을 제대로 짚어낸다면, 우리 문화와 전통에 살아있는 ‘보편성’은 세계인과 호흡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문화 콘텐츠는 세계를 향한 문화발신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 특히 한스타일 전통문화에는 참살이 (웰빙), 과학, 품격, 건강의 요소가 깃들여 있어 여하히 개발하고 마케팅 하는지에 따라 세계인에게 환영받을 여지가 크다. 특히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의 폐해, 경쟁으로 찌든 현대인들이 목말라하는 쿨한 제품, 문화상품, 서비스, 음식, 관광 상품 등이 한국의 전통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많이 개발될 수 있다.

한류의 맥은 상고시대부터 시작되지만, 5세기경의 백제 왕인박사, 통일신라 시대의 장보고, 고려시대 몽골의 ‘고려양(高麗樣)’ 등으로 이어져 오던 문화수출이 전 세계를 향한 문화발신국으로 변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비록 대중문화가 주가 되었지만 한류는 현재 70여 개 국에 퍼지고 있으며 탄탄한 한류고속도로를 구축하고 있다. 이 고속도로는 신한류 콘텐츠가 달려 나갈 인프라이다. 신한류는 대중문화를 위시한 다양한 형태의 한국 문화로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를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5천년을 이어온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 폴 케네디는 “오래된 정신문화 유산과 유서 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는 국가들은 흥망의 깊은 수렁에 빠지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부활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고 했다. 신한류 시대에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고급문화 예술 등이 다양하게 전파될 것이다. 한국이 맞이한 중요한 기회인 한류가 홍콩 느와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풍부한 콘텐츠가 생산 공급되어야 하는데, 우리 전통문화와 예술에는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콘텐츠가 무한히 들어있는 것 같다. 신한류 시대를 맞아, 이러한 콘텐츠를 세계화해 나가는 것은 한국을 문화강국으로 우뚝 세우는 작은 목표로부터, 3세기마다 한반도에 찾아오는 문예부흥을 일으키고, 전 인류를 향한 신르네상스를 창조해 나가는 큰 목표까지도 내포한다. 이러한 일들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내가 신한류의 주인공’이라는 인식을 국민 모두가 가지는 ‘국민 한류’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의지와, 신한류 국가문화전략이 필요하다. 

이 발표문에서는 신한류의 개념을 정립하고, 국가브랜드와 신한류의 관계를 설명하며, 신한류(특히 전통문화 콘텐츠)가 국가브랜드를 제고하는데 필요한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21세기 한반도 문예 부흥
 
한반도에는 대략 3세기마다 문예 부흥의 주기가 있었다. 12세기 고려시대에는 금속활자, 상감청자, 팔만대장경 등 중국과 차별화된 찬란한 문화를 일구었으며, 15세기 세종 조에는 훈민정음 창제, 과학기술 분야의 많은 발명, 음률정비 등으로 조선 초 문예부흥을 이루었다. 18세기 영정조 때에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진경산수화, 판소리, 탈춤, 문학 등이 찬란하게 문예부흥의 꽃을 피웠다. 다시 3세기 후, 우리는 21세기의 초입에 서있다.

한편 문명의 변천사는 메소포타미아, 황하, 인더스, 이집트 4곳에서 발상하여 그리스 로마문명의 지중해를 거쳐 15-18세기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대서양으로,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동하였고 역사학자들은 이제 태평양을 건너 극동에서 신문명이 탄생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생명문화사상이 주목받고 있다. 노련한 세계의 상인들은 ‘아메리카를 팔아서 아시아를 사라’라는 얘기를 한다.  

폴 케네디는 일본 동경대 강연에서 “21세기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중심은 누구냐?”는 질문에 미국은 청교도정신, 개척자정신, 정신적 지도력을 잃었다고 했으며 “never japan, never china, maybe korea”라고 했다. 

녹색운동의 창시자이며 신비주의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류문명의 대전환기에는 인간의 새로운 삶의 양식을  결정할 원형(原型 archetype)을 제시하는 성배(聖杯)의 민족이 반드시 나타난다. 이 민족은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깊은 영성을 지니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을 갖고 있지만 거듭되는 외침(外侵)과  폭정(暴政)에 억압되고 훼손되어 그 이상을 쓰라린 내상(內傷)으로만  간직한 민족이다. 지중해 문명의 전환기에 나타난 그 민족은 이스라엘이지만 오늘날은… 한국이다”라고 했다. 지구온난화와 서구 물질문명의 폐해로 인류 문명의 대전환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문명학자들의 얘기다.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한 나라가 세계무대에서 한 시대의 주역으로 성장할 때에는 경제력, 군사력의 성장과 함께 반드시 문화의 융성이 이루어 졌다”라고 <강대국의 흥망>에서 갈파했다. 루이 14세 때의 프랑스, 메이지 유신 때의 일본 등이 비근한 예라 할 수 있다.

백범 김구는 ‘아름다운 조국’을 원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문화 강국’을 말한다. 50년이란 짧은 기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한국의 다음 과업은 문화강국 입국이다. 정치 경제 문화가 균형을 이루어 골고루 발전할 때에야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한들, 문화국가가 되지 못하면 선진문화국으로 대접받지 못할 것이다. 시대의 주역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문화의 융성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경복궁 근정전에 삼족정이 설치되어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위의 내용을 볼 때, 시공간적 문명의 솟구침이 21세기 한반도에서 교차하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에 한류의 물결이 더해져 상승추세의 골든크로스를 형성하며 한국 주도의 신르네상스 문예부흥의 시대를 예감케 한다. 한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를 향한 문화발신국이 되고 있다. 신한류를 육성하고 세계화하는 것은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일등국가로서의 품격을 갖추는 주춧돌이 된다. 21세기 초입에 나타난 한류현상은 깊은 땅속의 우물물을 퍼 올리기 위해 붓는 한 종지 ‘마중물’인데, 깊고 다양한 우리 문화를 세계에 선보이기 위해 퍼 올리는 작업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문화도 좋지만 세계인의 기호에 맞도록 보정하고 현지화하고 쌍방향교류를 통해 이종교배하면서 새롭게 거듭난 콘텐츠로 소개되기도 해야 한다. 유무선 통신수단의 미증유적인 발달로 인해 이러한 콘텐츠는 국경을 넘어 한류고속도로 위를 거침없이 달려 나갈 준비가 되었다.
 
신한류(新韓流)란 무엇인가?
 
대중문화로 시작한 한류는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고 있으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향하고 있다. 붐이 식었다지만 ‘연애는 끝났고 결혼만 남았다’는 지적처럼 일본 중국 등에서의 한류에 대한 사랑은 굳어지고 있다. 드라마, 대중가요, 영화의 삼두마차로 시작한 한류는 한국 전통문화와 예술, 고급문화, 난타 점프 비보이 퓨전국악 등과 같은 퓨전문화, 시민운동 새마을운동 응원문화 화장실문화 전자정부와 같은 제도나 운동, 템플스테이 고택스테이 슬로시티와 같은 녹색관광, 의료관광, e-스포츠, 바둑, 골프 야구 피겨스케이팅의 스포츠, 뿌까 뽀로로 아기공룡 둘리 등 만애캐(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한국어 학습, 디지털한류 등 제반 문화 분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처음 한류가 시작된 중화권과 일본은 물론 몽골,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까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이집트 이란 등 중동, 멕시코 등 중남미를 비롯하여 동유럽에도 상륙하여 전파되고 있다. 

이러한 차제에 최근 신한류의 기류가 넓게 형성되고 있다. ‘한국 1등=세계 1등’이 공식화된 브레이크댄스는 세계 젊은이들의 문화코드가 되었다. 세계 최초로 프로게임단을 탄생시킨 한국은 e-스포츠 강국이다. 프로게이머들의 국위 선양은 월드컵 국가 대표선수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못지않다. 비언어극(넌버벌 퍼포먼스)인 난타와 점프, 비보이 관람은 외국인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 잡았으며 퓨전 국악의 다양한 장르들이 탄생되어 젊은이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한류와 it가 결합한 ‘디지털 한류’는 ‘데카르트’(tech+art: 기술과 예술의 결합)의 새로운 프런티어를 열어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스타일의 육성과 세계화는 한식, 한복, 한지, 한글, 한옥, 한국음악 등 전통문화 콘텐츠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신한류 코드의 핵심재료라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 위주의 한류가 1기 한류였다면, 위에 열거한 전통문화, 고급문화 예술, 퓨전문화, 제도와 운동, 만애캐, 녹색관광, 의료관광, e-스포츠, 디지털한류 등 제반 문화를 포괄하는 것을 제2기 한류, 포스트 한류, 또는 신한류 라고 일컫는다.
 
신한류는 ‘전통’을 먹고 자란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찾기 힘들었다. 개막식에서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보여 주는 영상 이미지는 눈을 씻고 봐도 나오지 않았는데 대회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낮아서이다. 경제규모는 세계 13위이지만 국가브랜드 순위는 33위이다. 아시안게임 2회 개최국이며, 아시아 2위의 체육 강국이면서도, 도하에서 한국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국력보다는 소프트파워 문화의 힘에서 다른 나라에 밀렸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 중국, 인도, 중동국가 등은 화려한 전통의상과 무용으로 고유한 전통문화를 맘껏 뽐냈다. 

역사와 전통은 계승하는 자의 것이다.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소홀히 하면 대가는 후손이 치른다. 예를 들면 1100만 만주족은 청나라를 세워 300년간 대륙을 지배했다. 그 이전 어떤 왕조보다 넓은 지역을 개척하고 다스렸건만, 청 왕조는 자국어인 만주어를 황실에서만 쓰고 나머지 국민은 중국어를 쓰게 했다. 그 결과 만주어는 사어(死語)가 됐고 그들의 문화와 민족마저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전 세계 6800여 언어 중 가장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언어가 바로 만주어로 지금 80세 이상의 노인 18명이 겨우 맥을 잇고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우리 선조가 사용했던 온돌은 과학적인 축열 난방과 두한족열(頭寒足熱) 방식의 자연친화적인 구조이다. ‘불을 깔고 자고 덮고 자는’ 우리 민족의 온돌은 대영백과사전에 ‘ondol’로 등재돼 우리의 문화유산임이 분명하지만, 최근 중국학자들은 온돌이 중국 북방에서 발생해 한반도에서 명맥을 유지했으며 상하이(上海) 등에서는 중국 문화로 되살아나는 중이라고 주장한다. 온돌을 접한 중국 상류층과 일부 미국인은 침대를 걷어내고 온돌을 사용한다. 온돌에다가 인체에 이로운 기를 뿜어내는 황토벽과 채광을 살린 전통 한옥을 현대화하면 세계인이 선호하는 주거 형태가 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정보기술(it) 강국의 홈 네트워크를 장착한다면 세계인이 열광할 ‘한(한류) 스타일’의 주택이 될 것이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우리가 계승하지 않으면 중국의 ‘온돌 공정’에 밀리게 될 것이다.

싱가포르항공을 타 본 사람은 승무원의 유니폼이 싱가포르 고유의 스타일과 무늬를 전승한 복장임을 알게 된다. 태국, 필리핀과 몽골항공의 승무원 유니폼도 고유의 전통의상이다. 그러나 한국 항공사 승무원의 복장에서는 한국의 정체성을 찾아내기 힘들다. 일본 전통의상인 유카타는 원래 목욕 후에 입는 옷이었지만 현대적으로 개량해 요즘은 젊은이들도 애용한다. 베트남에서는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소녀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의 한복은 어떤가? 명절에나 꺼내 입는 불편한 의복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주몽 등 역사 드라마에 나오는 고구려인이나 부여인의 복식을 보면 활동하기 편한 디자인에 기능성을 갖추고 있다. 무용총 벽화에 나오는 고구려 무희의 복식은 화려하지만 다이내믹한 활동성을 보장한다. 전통의상을 간편하고 맵시 있게 현대화하면 우리 젊은이들도 즐겨 입을 것이다. 
진정한 전통이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옛것에 바탕을 두되 근본을 잃지 않는 범위 안에서 현대와의 퓨전을 이루어 내야 한다. 옛 것을 있는 그대로 고집하는 것은 ‘전승’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전승도 필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통은, 시대성을 함유하고 타 문화와의 교류 접목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진정한 전통은 옛날의 기술로 현대의 욕구에 맞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냄을 의미한다.

한국이 세계 경제 속의 위상만큼이나 세계에 알려지기 위해서는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국가 브랜드를 강화해야 한다. 국가 브랜드는 외교력이나 경제력보다 문화의 전파를 통해 강력하게 형성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대중문화 위주의 한류를 통해 아시아인이 한국을 알기 시작했다. 진정한 문화의 힘은 전통을 바탕으로 재창조돼야 한다. 전통문화 콘텐츠가 한류문화의 주역이 될 때 한국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에는 세계인이 원하는 생명 평화적 요소가 깃들어 있고, 환경에 찌들고 경쟁에 지친 현대인의 웰빙, 건강, 친환경적 요구에 부응하는 요소가 충만히 잠재되어 있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아끼고 사랑할 때, 이러한 가치 있는 전통문화는 세계인의 요청에 부응하여 세계화 될 수 있다. 고 박동진 명창의 말마따나,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 전통문화인 것이다. 온돌, 한옥, 김치, 된장, 옹기, 채화칠기, 한지, 한복, 한글, 할머니의 자장가...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더군다나 이러한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보편적 문법으로 세계화한다면 세계인이 원하는 콘텐츠가 된다. 이것이 바로 한류의 세계화이며, 문화강국 입국의 길이요, 기업이나 예술인에게는 블루오션을 발견하게 되는 첩경이다.

프랑스의 문화비평가인 기 소르망은 “자신들의 가치 체계에 대한 대안을 심각하게 모색하고 있는 서구인들에게 한국이 서구를 열심히 모방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뜻밖이다”라고 했다. 깨어있는 서구인들은 극동, 특히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것에서 대박을 터트리자.
 
전통문화 콘텐츠 신한류 전략
 
전통문화 콘텐츠를 있는 그대로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위험성도 따른다. 필자는 미국 유학 시절 지도교수를 한국 음식점에 초청하여 고추장을 맛보게 한 적이 있었는데 매운 맛에 혼이 나면서도 빨려들듯이 좋아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한편 한국 된장이나 김치를 있는 그대로 외국인에게 맛보게 한다면 거부감을 일으킬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세계인은 다양하다. 지역적 특성에 맞는 로컬리제이션(localization)도 필요하고, 한국적 소재를 보편적 텍스트로 세계를 향해 전개하는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rion)도 필요한 반면,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世邦化)하기도 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한국의 문화전략을 위해 외국의 보편성을 수입하되, 그것을 소화해서 ‘한국적 보편성’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현대는 상품 하나, 캐릭터 하나에도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나이키는 성공신화를 신발에다 담아 수십만 원에 팔고 있고, 스타벅스는 커피와 함께 문화를 파는데 젊은이들은 점심 값 만큼이나 지불하면서도 한 잔의 커피와 함께 문화를 즐긴다. 

일명 ‘럭비공 와인’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복분자주가 2007년 세계와인 경쟁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 800여 개 이상의 와인이 참가한 이 대회의 주관자인 american wiine society의 mary ann coskery씨는 “한국의 복분자주는 맛, 향, 색이 살아있는 판타스틱한 동양와인이다”라고 했다. 서양의 와인과 비교해서 맛, 향기, 색깔 면에서 전혀 떨어지지 않는데다 병의 디자인이 럭비공을 닮아 디자인적 매력을 갖췄다. 그런데 복분자주에는 와인이 갖지 못하는 스토리가 있다. 그것은 ‘마시면 다음날 아침 오줌 눌 때 오강을 뒤집는다’는 스토리인데 이것을 이용하여 남성의 정력증진에 좋은 술로 마케팅 한다면 세계시장에서 와인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술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한다. 한 가지 덧붙여 여성의 미용에도 좋다는 과학적 근거까지 붙여 조그만 설명서를 각 국 언어로 번역하여 넣으면 대박을 터뜨릴 것이다. 

최근 배상면주가에서 나온 ‘오매락’이란 술은 토기 속에 술병이 들어있는데 마시기 위해서는 동봉되어 있는 나무망치로 토기를 깨트려야 한다. 이러한 퍼포먼스 자체를 즐기는 외국인이 많은데 여기에 스토리를 담아 왜 토기에 담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술맛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든지, 원적외선을 발산하여 숙성시킨다든지 하는 과학적이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스토리를 담으면 성공할 수 있다. 

비빔밥이 세계인의 찬사를 받는 것도 비비는 퍼포먼스와 함께 나물에 담긴 스토리, 20여 가지의 재료가 섞이면서 새로운 음식으로 거듭나는 데 따른 신기로움 등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비빔밥 애기가 나온 김에, 비빔밥의 세계화에 도움이 될 얘기를 할까 한다. 갖가지 나물 재료 중 선택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 개인에 따라 취향과 식성이 다른 사람이 많은데, 예컨대 고사리나물은 골라내고 숙주나물은 표준량보다 두 배로 넣고 하는 식으로 취사선택할 수 있게 자동화하거나 주문을 받는다면 인기 있는 스토리 음식이 될 것이다. 
상차림에 있어서도 한국식으로 통째로 내오기보다 일본의 예처럼 조그만 용기에 조금씩 담아 낭비도 줄이고 부가가치도 높이는 방식을 응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필자는 지난 5월 초에 미국 la의 베벌리힐즈에 있는 일본 스시 음식점에 갔었다. 초밥 하나하나에 설명을 붙여 가격을 따로 받고 있었는데 감질나게 주문하다보니 나중에는 300불에 가까운 음식가격을 지불했다. 음식물 쓰레기는 없이 깨끗이 소비하게 하고 가격은 가격대로 받고 있었다.
한식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음식의 유래나 양념, 조리법 등을 함께 이야기하며 먹는 음식은 몸뿐만 아니라 가슴과 머리에도 저장된다. 생각을 하지 않고 먹는 음식은 단순히 ‘사료’일 뿐이다. 한식으로 세계인의 가슴과 머리를 채우자.

서양에서 고기를 굽는 강도가 세 가지 정도인데 반해, 우리는 숯불의 강도와 잿불의 엷고 두터움, 화기의 쪼임 거리, 석쇠의 열전도율 등에 따라 방·의·오·회·삼·식·홍·단·염·설·암·날 등 15 가지의 구이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 뿐 만이 아니다. 쇠고기 하나로 다양한 맛을 내는데 있어 영국 프랑스 미국인들은 35가지 정도인데 반해 우리는 무려 120여 가지나 가지고 있으며, 김치 종류도 140여 가지나 된다. 이처럼 우리 음식문화는 다양하면서도 약식동원(藥食同原), 음식궁합(飮食宮合), 맛과 영양 뿐 아니라 철학이 담긴 음식, 웰빙 건강식, 오색과 오미, 오장육부의 조화를 중시하는 음식이라는 것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마케팅 한다면 세계인의 찬사를 받을 훌륭한 음식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영애가 오사카에서 인터뷰할 때의 일이다. 피로할 때 무엇을 먹느냐는 질문에 오미자차를 마신다고 했다. 이튿날부터 오사카 시내는 물론 인근지방까지 오미자차는 동이 났고 꾸준히 한국의 오미자차가 수출되고 있다. 음식에 깃든 스토리와 양념, 조리법, 효능 등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소개하는 것은 한식의 세계화에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한복의 특징 중 하나는 넉넉함인데 이는 건강에 좋다. 양복의 재단이 입체재단임에 비해 한복재단은 평면재단으로 하여 관절모양에 옷을 맞추기 때문에 활동하기에 편하다. 이 넉넉한 한복의 특징은 옷과 몸 사이에 충분한 공기층을 만들어 단열효과가 생기기 때문에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다. 한복 바지의 대님은 몸의 기운이 밑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땅의 음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며 일종의 부목 역할도 하여 발목을 보호한다. 고구려시대의 무사들은 통이 넓은 바지 ‘대구고 (大口袴)’와 소매 폭이 넓은 ‘대수삼(大袖衫)’을 입고도 말 위에서 180도 몸을 돌려 활을 쏘곤 했다. 

이러한 넉넉함과 건강지향성이 현 세대의 추세임을 안다면, 우리 한복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세계인이 원하는 의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옥의 대청마루는 시원하다. 이것이 최근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칼럼에 실린적이 있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 우리 선조는 자연의 법칙을 이용해 ‘천연 에어컨’을 만들어 썼다. 안마당에 나무를 심지 않아 한 여름 햇볕에 데워진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 뒤란의 서늘한 대밭에서 몰아치는 짧고 세찬 바람이 풀무질하듯 분다. 인공적으로 차게 한 공기보다 대류현상을 이용한 자연 바람의 청량한 기운을 받으면서 살았던 우리 조상의 지혜가 돋보인다. 신석기 시대부터 이러한 친환경적, 웰빙적, 친자연적 가옥구조 속에서 생명과 평화의 사상이 움텄고 그 사상은 우리 문화 전반을 아우르고 있지 않나 한다.

판소리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우리의 고유한 음악 양식이다. 서양 특히 유럽의 음악 대가들은 한국의 판소리를 접하고는, 지금까지의 음악범주에 넣을 수 없어, 새로운 음악장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설 한 권을 외워서 음악으로 구현해낸 판소리는 음악과 문학, 연극적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창과 아니리, 너름새, 발림을 고수의 북채에 맞추어 진행하는 판소리는 ‘추임새’로 관중과의 호흡도 중시한다. 일방적인 주입식 음악보다 쌍방향적인 소통의 음악으로 우리의 판소리가 세계 음악무대의 새로운 규범을 제시할 것을 기대해 본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지, 한복, 한글, 옹기, 채화칠기, 온돌, 침뜸 등에 깃든 수많은 전설과 설화, 내력, 이야기를 상품과 함께 소개하는 것이 신한류 콘텐츠의 첫 번째 성공 전략이다.
둘째, 퓨전이다. 전통문화를 세계화하는 과정에서 옛것에 바탕을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법고창신’의 정신을 새겨야 한다. 최근 일본이 추구하는 네오재패니스크(신일본양식)는 정교한 기술에 전통문화를 접목한 것이다. 세계적 판매망을 갖춘 최고급 수제 완구 인형인 테디베어에 드라마 ‘궁’의 주인공 의상을 입혀 판매하는 것은 우리가 구축하지 못한 분야와의 협력이며, 퓨전의 일환이다.

태권도를 응용한 넌버벌 퍼포먼스 ‘점프’나 사물놀이를 바탕으로 한 ‘난타,’ 퓨전국악, 비보이와 발레, 비보이와 국악 등의 이종교배를 통한 새로운 장르의 퓨전문화를 만들어 내는 나라가 바로 한국인 것이다. 최근 인천공항에서 발견한 김치 쵸콜렛, 고추 코콜렛, 김 쵸콜렛, 감귤 쵸콜렛 등은 퓨전상품의 좋은 예이다.

의료관광 역시 퓨전을 응용하여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 고택스테이, 템플스테이 등도 지역 관광과 지방문화와 결합하여 새로운 관광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판소리와 관광과의 만남은 매력적인 소프트투어리즘 문화상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고창의 동리 신재효 생가 부근에 있는 국내 유일의 판소리 박물관도 주변의 동리 국악당, 판소리 전수관, 만정 김소희 생가 등과 함께 판소리 투어코스로 만들어 관광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고창은 특히 연계할 수 있는 관광 상품이 많은데 가을에는 고창읍성의 모양성제와 함께 선운사의 꽃무릇(수선화과의 여러 해 살이 식물)과 메밀꽃 구경, 봄에는 선운사 동백꽃과 함께 인근의 도솔암, 마애불 관광코스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혹할 수 있다. 게다가 복분자도 고창산이 유명하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유산 자연경관과 음식 등을 어울러서 복합적인 소프트투어리즘 관광 상품으로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판소리의 고장에 와서 다양한 한국문화를 체험하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강남역 뒷골목을 돌아보면, 한집 건너 한집이 일본식 오뎅집, 초밥집, 로바다야끼, 선술집, 라면집이다. 일본의 음식에 매료된 한국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이 음식들은 한국화된 퓨전 음식이 주종이다. 골목마다 있는 중국집은 차치하더라도 동네마다 들어선 베트남 쌀국수집 역시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메뉴가 주종이다. 한식을 비롯한 우리의 전통문화가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퓨전, 하이브리드, 컨버전스, 통섭의 개념을 차용하여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두 번째 성공의 관건이 달렸다.

페라가모, 구찌, 루이뷔통, 에르메스 등 세계적 명품은 브랜드화에 성공했기에 오늘의 명성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높은 품질, 멋진 디자인과 장인정신이 결합한 제품은 크나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브랜드를 만들어 낸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브랜드를 여럿 만들어 내어야 한다. 특히 상품, 음식, 관광의 세 가지 분야에서 한국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인이 수긍하고 인정하는 브랜드로 키워야 한다. 한류로 인해 한국 제품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국가이미지가 나아지는 이때 전략적으로 ‘한류브랜드’를 설정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이미 동남아, 중앙아시아, 중동 등지에서는 한류브랜드라면 웃돈을 지불하고서라고 구매하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브랜드를 설정하고 상품, 음식, 관광의 3가지 분야에서 대표상품과 서비스를 인증하는 과정을 거쳐 세계인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육성하는 정책을 제안한다. 
 
문화강국, 어떻게 할 것인가?
 
부국강병의 하드파워시대에서 소프트파워 문화의 시대로 이행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문화전쟁의 시대에 정치 경제 논리에 버금가는 문화 논리를 펴야 한다. <문명충돌론>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은 “공산권의 몰락으로 냉전체제가 무너진 뒤 세계 정치의 핵심적 갈등요소는 이데올로기도, 경제도 아닌 문화”라고 갈파했다.

21세기 한반도에 찾아올 신르네상스 문예 부흥기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소모적 이념대립과 정쟁을 초월하여, 국가브랜드의 비약적 개선,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국가경쟁력 향상, it강국의 ‘디지털한류’ 전략, 동아시아 생명평화사상과 한류의 접목, 한류의 상수원인 전통문화 콘텐츠의 육성과 세계화 등 총체적인 ‘신한류 국가 문화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방법론으로는 이러한 전통문화 콘텐츠를 옛 것에 바탕을 두되 현대에 맞게 변화시키는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재창조하고, 한국적 독창성과 세계적 보편성을 퓨전화해 새로운 문화융합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한국문화의 세계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문화에 깃든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발굴하여 상품과 서비스에 접목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정교하게 구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브랜딩’을 통해 한류 상품의 가치를 높이고 외국인이 선호하는 ‘한 브랜드’ 상품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대중문화로 촉발된 한류는 이제 전통문화, 고급문화, 고급예술로 전이되고 있고 새로운 퓨전문화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신한류 콘텐츠는 대중문화가 만들어 놓은 고속도로 위로 달려 나가야 한다. 시공간적 문명의 솟구침이 21세기 한반도에 일어날 조짐이 보이는데, 한류가 그 촉발점이 되고 마중물이 되어 전 지구적 르네상스의 시발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신한류의 핵심은 전통문화 콘텐츠이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민족적인 것과 탈민족적인 것,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접목,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통섭(統攝)을 통해 신한류를 만들어 내고, 한류가 닦은 길 위로 이러한 신한류가 달려 나가야 한다. 이러한 논의가 촉발되고, 건전한 담론이 형성되어 한반도발 문예부흥의 불길이 번져나가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통문화 산업화-세계화
 
일본은 최근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나라로 통하며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 이유는 ‘잃어버린 10년’ 동안 수출액은 70% 증가한 반면 문화상품 수출은 3배 이상 늘어나면서 미국 다음의 문화강국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 만화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애니메이션ㆍ게임ㆍ소설ㆍ패션과 건축에 열광하는 세계인들을 양산했다. 문화 발신국으로서의 국가브랜드를 확실히 구축한 결과, 지구촌의 보통 시민들은 스시ㆍ기모노ㆍ게이샤ㆍ스모가 무언지 알고 있고 ‘일본문화=고급문화’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전 세계에 산재한 일본 음식점은 ‘젓가락 문화’를 팔면서 일본 음식을 고급ㆍ고가 음식으로 인식시켰다. 땀이 아니라 브랜드와 문화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상품에 프리미엄을 붙인 것이다. 일본이 문화강국으로 변신하게 된 데에는 국가의 전략도 있었고 민간의 노력도 따랐다. 

산업화 민주화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성한 한국의 다음과제가 문화강국 입국일진대, 이 역시 국민의 동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의 국가브랜드가 2012년까지 세계 15위가 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무려 1조 달러 이상의 부가가치를 생성하는 것과 맞먹는 일이 된다. 수출 제품의 마진 상승, 관광 증가, 외국인 투자 증가, 국가이미지 상승 등 다양한 방면에서 국익을 거둬들일 국가브랜드의 제고는 일부 부처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전 국민이 힘을 합쳐야 될 수 있는 일이다. 소위 국격이 높아지는 것인데, 전 국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필자가 이 논문에서 제시한 ‘문화강국 만들기’는 우리문화를 영위하는 국민들이 우리문화에 자긍심을 갖게 함으로 제2기 한류, 신한류, 국민한류 시대를 열어감으로써 세계인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 관광 상품과 퓨전문화 등을 창의적으로 개발하는데 동참시키는데 있다. 

이를 위해서 신한류 콘텐츠 전략이 국가브랜드 전략 차원에서 설정되고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범정부차원에서 지원되어야 한다. 세계화 사례에서 서로 지혜를 공유하고 향후 전통문화 자원을 결집하여 산업화하고 세계화하는데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살아가고 생활하며 사업하고 산업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오늘부터 국가브랜드의 개념을 염두에 두고 일에 착수하기를 희망한다.

Posted by 겟업
2013. 7. 19. 13:25



세계문화전쟁

저자
강준만 지음
출판사
인물과사상사 | 2010-09-0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질문과 답으로 살펴보는 세계 문화전쟁의 10년!세계적으로 벌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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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문화전쟁’이 없는 세상은 가능한가? 

[1장] 왜 미국 대중문화는 세계를 휩쓰나?: 미국 대중문화 패권의 6대 요인 
마크 트웨인과 미국의 패권 | 폴 케네디의 ‘미국 쇠망론’ | 나이·토플러·브레진스키의 반론 | 할리우드 제국주의의 기원 | 세계를 강타한 ‘아바타 신드롬’ | 세계 제1의 ‘규모의 경제’ | ‘규모의 경제’에 대한 반론 | 강력한 국가적 지원 | 각 부문 간 시너지 효과 | 프런티어·이민문화의 장점 | 철두철미한 상업화 | “영어가 미국의 몰락을 막는다” 

[2장] 왜 ‘MTV’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인가?: 전 세계적인 ‘MTV 세대’의 등장 
‘포스트모던 TV’ | ‘연예오락과 광고의 경계 소멸’ | MTV의 판촉전략 | MTV가 맹활약한 1992년 미국 대선 |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재닛 잭슨 | 세계의 ‘MTV 세대’ | “좌파는 MTV를 배우라!” 

[3장] 왜 ‘미드 열풍’이 부는가?: ‘뉴욕 라이프스타일 배우기’ 강좌가 개설되는 나라 
‘미드에 푹 빠진 사회’ | 미드가 패션·식사에 미친 영향 | ‘칙릿 열풍’ | 된장녀 신드롬 | ‘소비주의 시대 여성 노동자를 위한 판타지’ | ‘뉴욕 라이프스타일 배우기’와 ‘와인 열풍’ | 국내 드라마의 표준이 된 ‘미드’ | <섹스 앤드 더 시티> 신드롬 | ‘미드 열풍’의 이면 

[4장] 왜 스티브 잡스는 ‘교주’가 됐나?: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종교적 성격 
‘잡스 교도’와 ‘아이폰빠’ | ‘감정 자본주의’와 ‘치료 내러티브’ | 잡스의 농후한 종교성 | 잡스는 ‘얼음 교주’ | ‘스티브! 스티브! 스티브!’ | 잡스의 포교방식 | 성공과 치료 | 안테나게이트 

[5장] ‘구글리제이션’은 축복인가?: 구글이 선도하는 인터넷 정보제국 
“나는 검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인기 검색어’가 여론?” | 프라이버시의 실종 | “검색했다고 용의자냐” | 전 세계 검색 시장의 약 60~70퍼센트 점유 | ‘애드센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 | 구글은 “거대한 광고대리점” | 지메일, 무엇이 문제인가? | 지메일의 한국 상륙 | “구글, 인터넷 정보제국 ‘전 지구 확장’” | “‘사악한 손’과 손잡은 구글” | “구글은 신문의 피 빨아먹는 흡혈귀” 

[6장] 위키피디아의 명암은 무엇인가?: 위키피디아의 ‘미국중심주의’와 ‘대중지성’ 논쟁 
브리태니커의 비극 | 위키노믹스의 등장 | ‘크라우드소싱의 한계’인가? | 위키피디아의 ‘미국중심주의’ | 대중지성 논쟁 | ‘대중의 지혜’ 논쟁 | 대중의 지혜가 지도자보다 안전하다 | 포지티브 캠페인도 필요하다 

[7장] 왜 SNS 경쟁이 치열한가?: 인맥사회의 사회자본 축적 열풍 
‘SNS를 이용한 비즈니스 혁신의 가능성’ | “5000명을 목표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 왜 싸이월드는 퇴조했는가? | ‘디지털 시크’와 ‘디지털 부머’ | “공중 매체의 전파력은 한계에 달했다” | 한국의 입소문 파워는 세계 최고 | “세계 어디에도 이런 집중성은 없다” | 구글을 제친 페이스북 | 스마트폰과 트위터 | ‘소셜 미디어’의 출현 | 기존 언론의 딜레마 | SNS의 부작용·역기능 | ‘TGiF 시대’를 어찌 거부하랴! 

[8장] 왜 CNN이 세계뉴스전쟁을 일으키나?: 글로벌 ‘이미지전쟁’의 정치학 
“당신이 바로 제3의 물결” | 중남미의 ‘텔레수르’ | 프랑스판 CNN ‘프랑스 24’ | 이란·아프리카·중국의 뉴스전쟁 | ‘알자지라’ 대 ‘알아라비아’의 뉴스전쟁 | 중국의 ‘안티 CNN’ 운동 | 미국 ‘알후라’의 실패 | 중국·프랑스·일본의 ‘뉴스전쟁’ | 알자지라와 텔레수르의 활약 | 한국의 해외 방송 | “글로벌미디어전쟁, 총알 없이 전쟁에 나서며” | ‘아랍세계에서 한국 방송 보기’ | ‘아리랑TV 통폐합이냐, 존속이냐’ | 아리랑TV ‘188개국 5750만 가구가 시청’ 

[9장] 인터넷은 신민족주의의 주범인가?: 인터넷 ‘집단극화’의 정치학 
‘집단극화’ 이론 | ‘지구촌 혹은 사이버 발칸?’ | 한·중·일 신민족주의 갈등 | ‘민족주의 코드’는 정치적 자산 | 베네딕트 앤더슨의 ‘돌연변이 민족주의’론 | “한국놈은 일본놈보다 더 나쁘다”? | 동아시아의 ‘넷셔널리즘’ | ‘인터넷이 세계를 분열시킨다’ | 한·중·일 인터넷 세대의 생각 | ‘사이버전쟁 위협, 1950년대 핵 공포 수준’ 

[10장] 왜 ‘국가 브랜드’ 경쟁이 치열한가?: 국가 홍보 전략으로서의 문화전쟁 
‘국가 경쟁력’ 개념에 실체가 있는가? | “10억 원에 10년 감옥도 가겠다”는 중고생들 | 코리아를 괴롭힌 ‘코리아 디스카운트’ | ‘코리아 디스카운트’ 논쟁 | “주가 올라도 국민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 ‘다이내믹 코리아’ | ‘문제는 문화야, 이 바보야’ | ‘코리아 브랜드’ 가치 세계 32위 | “한국 하면 생각나는 것은? 분단국, 김치, 삼성 순” |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출범 | “안에서 새는 쪽박은 밖에서도 샌다” 

[11장] 문화다양성은 가능한가?: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의 정치학 
유네스코 다양성 갈등의 역사 | 2000년대의 문화다양성 보호 시도 | 한국은 ‘문화다양성협약’이 싫다? | 비준을 거부한 한국 정부 | 세계화의 ‘다양성 죽이기’ | “생각은 세계적으로, 행동은 국지적으로” 

[12장] 한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류 14년의 전개 과정 일지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한류 | ‘한류 뒤집어 보기’ | 조한혜정의 선구적 연구 | 일본의 ‘욘사마 신드롬’ | ‘현실 감각’과 ‘판타지’의 조화 | 백원담의 세계체제론적 분석 | ‘일본은 한국에 미쳤다’ | “한국적 정, 일본인에 크게 어필” | ‘한·일 아줌마의 취향’ 차이 | ‘욘사마 경영학’ | 김지하의 한류 예찬론 | ‘근대화 중간 단계’의 힘인가? | “한류, 이대로 가면 5년 안에 끝난다” | “한국 사람들이 좀 다르잖아요” | 한미자유무역협정과 한류의 실속 | ‘이영애가 이란에 못 가는 이유’ | ‘외국문화 원형에 빨대 꽂고 버틸 수 있나’ | 한류(韓流)가 한류(寒流)로? | ‘한류에서 신(新)한류로’ | “한류는 미국문화의 대항담론 될 수 있다” | <대장금>이 ‘최악의 드라마’ 1위? | 왜 중국 여자는 장동건, 일본 여자는 배용준에 죽나? | ‘원 소스 멀티 유스’ 전략 | ‘스타의, 스타에 의한, 스타를 위한’ 한류 | 기획사·여행사의 ‘악덕 상혼’? | ‘일류’에 사로잡힌 한국의 젊은이 | ‘21세기 동아시아의 대중문화 형성’ | ‘핵심 문화 콘텐츠 집중육성’ 논쟁 | “한류는 2.0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 한류의 다변화와 성숙인가? | 한국은 ‘오락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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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7. 17:35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저자
한국문화인류학회 지음
출판사
일조각 | 2006-08-2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문화인류학 여행 다양한 문화의 현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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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저자
한국문화인류학회 지음
출판사
일조각 | 2007-02-28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2010년대를 바라보는 문화인류학 입문서로서 '정격 교과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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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7. 15. 15:17


초임 연봉 차가 우정마저 갈랐다 

대-중기 신입 연봉격차 1205만원으로 더 벌어져

대기업 평균 3459만원·중소기업은 2254만원 
공기업도 800만원↓…2009년이후 줄곧 확대
“정부서 중소기업 복지 등 특단 조처 취해야”


#1. 경기도 안산의 기계부품업체 김아무개(40) 사장은 신입사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사장이 생각하기에는 연봉이 낮은 편도 아니다. 4년제 대졸 신입사원에게 연봉 2500만원을 주고 있다. 그는 “다른 업체에 비해 연봉이 높은 편인데도 지원자가 없다”며 “어려운 형편에도 연봉을 올릴까 고민중이지만, 대기업과 연봉 차가 커 지원자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2. 서울 봉천동에 있는 중소기업의 입사 3년차인 서아무개(28)씨는 최근 대학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그는 서울 소재 사립대학을 나왔다. 2010년 대학 졸업 뒤에도 만나던 사이지만, 만날수록 자신이 초라해져 요즘은 만나지 않는다. 서씨는 “처음에는 1000만원 정도 나던 연봉 차이가 최근에는 더 커졌다”며 “첫출발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과 만나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올해 4년제 대학을 나온 대기업 신입사원의 평균연봉은 3459만원으로 조사됐다. 반면, 중소기업은 2254만원으로 1205만원의 격차를 보였다. 취업포탈 잡코리아는 대기업 180개와 중소기업 406개를 대상으로 4년제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을 조사해보니 이런 결과를 보였다고 9일 밝혔다.

대·중소기업간 연봉 차이가 계속 커지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2009년 1120만원이던 차이가 2012년에는 1205만원으로 커졌다. 이에 대해 잡코리아 관계자는 “치열한 취업 경쟁 속에서 대기업은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려고 연봉·인센티브 등을 매년 향상시키는 반면, 중소기업은 아직 인재 확보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사실 대·중소기업의 격차는 2008년이 최고조였다. 당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소기업은 임금 삭감을, 대기업은 임금 동결 또는 소폭 인상을 하면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중소기업 평균연봉은 전년(1973만원)보다 10% 이상 줄어든 1733만원인 반면, 대기업은 전년(2985만원)에서 조금 오른 3093만원으로 1360만원의 격차를 보였다. 이후 중소기업이 연봉 수준을 환원하거나 높여 2010년 평균연봉 2000만원대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2000만원대 초반 수준이다. 반면, 대기업 신입 평균연봉은 2008년 3000만원을 넘어선 뒤 올해는 3000만원 중반대에 이르는 등 높은 오름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연구원 관계자는 “정부에서 중소기업의 채용 장려금으로 첫해에 500만~600만원을 지원하지만, 임금 상승이나 복지를 늘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단가나 물량을 제대로 확보해주지 않는 상황에서는 대·중소기업간 임금 격차가 해마다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중소기업을 위해 교육훈련 등 자기계발 기회나 복지를 제공하는 등 특단의 조처가 있지 않고서는 격차를 줄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아울러 대기업과 공기업, 외국계 기업과의 격차도 해마다 커지는 양상이다. 사실 공기업은 이명박 정부 이전까지 큰 차이가 없었다. 2006년의 경우, 공기업 신입 평균연봉이 2812만원으로 대기업(2815만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2008년 정부가 ‘일자리 나누기’의 일환으로 공공기관·공기업 신입사원 초봉을 삭감하면서 격차가 벌어졌다. 이에 따라 격차가 2009년 542만원으로 커진 데 이어 올해는 800만원까지 벌어졌다. 외국계 기업 역시 매년 격차가 커져, 올해는 평균연봉이 2940만원으로 대기업보다 평균 519만원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대기업 중에서도 업종과 기업에 따라 연봉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신입사원 초임이 약 5000만원에 이르는 반면, 2000만원 후반대의 연봉을 주는 대기업도 있다. 주로 에스케이건설, 현대삼호중공업, 엘아이지손해보험, 현대해상화재보험 등 건설·금융업종의 연봉이 높았고, 롯데알미늄, 한진, 아워홈 등 유통·물류 쪽 업종의 연봉이 낮았다.

이정훈 기자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32128.html



Posted by 겟업
2013. 4. 10. 11:24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41%로 떨어졌다. 가뜩이나 하향 추세선(趨勢線)을 돌려 세울 호재가 없는데 17초 대독사과 파문이 덮쳤다. 어제 도하 각 언론은 일제히 청와대의 어설픈 사과를 질타했다. 인사실패하고 그에 대한 대국민 사과까지 실패했다. 이렇게 되면 40% 저지선도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겪어보지 못한 국정동력 상실의 위기에 처해 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이맘때 국정 지지도가 90%까지 치솟았다. 30여 년에 걸친 군사정권 종식 후 첫 문민대통령에 대한 기대도 컸지만 YS 특유의 결단력에 의한 과감한 개혁조치들에 국민들이 열광한 결과였다. 청와대 근처 안가(安家) 철거도 YS 취임 초 박수를 받은 개혁조치 가운데 하나였다. 최고권력자의 음습한 밀실정치나 향락에 이용되는 것으로 알려진 안가를 허물어 공원으로 만들었으니 국민들이 박수를 치는 것은 당연했다.

임기 초반 그렇게 잘 나가던 YS가 나라를 6ㆍ25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IMF외환위기 사태에 빠뜨린 최악의 대통령으로 전락한 것은 본인이나 국민 모두에게 비극이었다. YS의 대추락을 초래한 요인은 여럿이지만 안가 철거도 주요 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국민들의 큰 박수를 받았던 안가 철거가 YS 실패의 주 요인이라니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전혀 틀린 얘기가 아니다.

과거 청와대가 운영했던 안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후의 만찬이 된 ‘궁정동 사건’ 탓에 일반국민에겐 안 좋은 이미지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통령이 저녁시간에 편하게 측근이나 지인들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민심을 듣는 장소이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들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인사들은 청와대 집무실이나 관저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직언을 하기가 좀처럼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 속성이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청와대 저녁행사는 대부분 오후 9시 전후에 끝난다. 청와대 관저의 밤은 얼마 전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표현대로 ‘귀곡산장(鬼谷山莊)’급의 적막강산이다. YS는 청와대 저녁행사 이후나 저녁행사가 없는 날은 차남 김현철씨 가족을 관저로 불러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주요 국정현안에 대해 현철씨 의견을 듣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그에게 국정운영을 의존하게 됐고, 급기야 현철씨의 국정농단을 불러 몰락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YS가 안가를 철거하지 않고 과거 정치동지나 지인들과 만나 술도 한 잔 하면서 격의 없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민심을 듣는 장소로 활용했다면? 차남에게 국정운영을 의존하는 일이 줄었을 테고 문민정부의 말로가 그토록 참담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취임 초 바닥 없는 국정지지도 추락 사태에 직면한 박 대통령에게 안가가 필요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하는 안가는 그에게 또 하나의 트라우마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박 대통령에겐 안가의 순기능이었던 격의 없는 소통의 자리가 꼭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취임식 날만 빼고 지금까지 거의 모든 저녁식사를 혼자 해왔다고 한다. 적막강산의 청와대 관저의 외로움, 비명에 가신 아버지 어머니를 더욱 생각나게 하는 관저의 저녁은 박 대통령에게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길을 굴하지 않고 가게 하는 자세를 한층 다잡는 시간이기 쉽다. 그런 저녁시간이 계속되면 인사실패 등 박근혜 정부 출범 전후 모든 사달의 근원인 소통부재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박 대통령에겐 지금 자신의 뜻과 다른 목소리를 원천 차단하는 ‘레이저 시선’을 끄고 편하게 소통하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불통의 상징이 되어버린 과거의‘수첩’을 내려놓고 시중의 생생한 목소리와 민심을 듣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함께 가는 넓은 길을 놔두고 혼자 외롭게 가는 길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4/h20130401210723113110.htm



Posted by 겟업
2013. 4. 10. 11:22

2월 말 키프로스에 다녀왔다. 요즘 전 세계를 긴장케 하는 은행 연쇄파산과 국가부도 위기가 표면으로 드러나기 직전이다. 중국인의 키프로스 부동산 투자를 취재하기 위한 출장이었다(중앙SUNDAY 3월 3일자).

그때 본 키프로스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지상낙원이었다. 거리에는 야자수와 레몬 나무가 즐비했고, 해안도로변의 코발트 빛 지중해는 그림 같았다.

지난해 기준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보다 5000달러가량 많은 2만8000달러(약 3100만원). 농사와 관광 말고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곳인데 생활 수준은 꽤 높았다. 제주도 면적 다섯 배 크기의 섬에 제주도 인구 두 배 정도가 살고 있으니 북적거림도 없었다. 주민들은 친절하고 여유가 있었다. 왜 유럽의 은퇴자들이 몰려드는지 단박에 이해가 됐다.

풍요의 비결은 외국 돈이었다. 해안의 고급 빌라들은 대개 외국인 소유였다. 러시아·영국 부자의 별장이 많았다. “한국의 변호사 미스터 킴이 몇 년 전에 산 빌라”라며 부동산 업자가 외관을 구경시켜 준 곳도 있었다. 최근의 사태로 널리 알려졌듯 키프로스 은행 예금의 절반 이상은 외국계 자본이다. 대부분 러시아 사업가들이 거래 편의나 재산 보호를 위해 예치한 돈이거나 유럽 은퇴자들이 들고 온 노후자금이다. 유럽연합(EU) 소속에 유로화를 쓰는 나라면서 세율은 낮다는, 외국 돈이 몰려들기에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프랑스 이민자는 “프랑스에서는 연금의 40%가 세금으로 날아가지만 여기서는 5% 정도만 세금으로 내면 된다”고 말했다.

부러웠다. “한국에도 외국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 금세 국민소득 3만~4만 달러의 나라가 될 텐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침 한국에 중국계 자본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발상의 위험성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주 뒤 키프로스 경제는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외국 돈으로 비대해진 금융·부동산 산업이 그리스발 위기에 전염되면서 구제금융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가 됐다.

노무현 정부 말기 한국을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인수위에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영국 금융인을 위원장에 앉히기도 했다. 곧바로 불어닥친 미국발 금융위기로 금융 허브의 꿈이 좌절된 것을 한국의 행운으로 보는 경제인들도 있다. 2년만 늦게 금융위기가 발발했다면 ‘제2의 IMF 사태’를 겪었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외국 돈이 몰려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외부의 위기에 취약해진다. 키프로스에 앞서 아이슬란드·아일랜드·스페인이 약한 산업적 기반 위에 비대한 금융업을 올려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생생히 보여줬다. 역시 일해서 번 돈이 제일 값지고 든든하다.


이상언 런던 특파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1105990&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4. 10. 11:03

2006년 가을 미국 NBC 방송 프로그램 '약탈자 붙잡기' 팀과 성범죄 감시 단체가 공동으로 작전을 짰다. 인터넷에서 미성년자를 꾀는 어른들을 잡아내려면 기습 작전이 필요했다. 방송팀은 텍사스주 머피에 있는 부자 동네에 집을 빌린 뒤 몰래 카메라를 숨겼다. 얼굴이 앳된 여배우 몇 명은 미성년자로 가장했다. 유혹에 걸려든 사내가 집 안까지 따라오자 배우는 욕실에 간다며 사라졌다. 그 자리에 방송 사회자가 나타나 사내를 다그쳤다. 

▶집 밖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은 이 리얼리티 쇼를 통해 24명을 체포했다. 은퇴한 의사, 출장 온 기업인, 학교 교사, 제대 군인 같은 멀쩡한 남자들이 걸려들었다. 20년 넘게 일해온 지방 검사도 끼어 있었다. 검사는 집까지 따라오진 않았지만 채팅방에서 열세 살 소년이라고 믿었던 상대와 음란 대화를 나누다 들켰다. 경찰과 카메라맨이 검사 집으로 들이닥쳤다. 현관에 서 있던 검사는 "나는 누구도 해칠 생각이 없다"면서 머리에 총을 쏴 목숨을 끊었다. 

▶'유도(誘導) 수사'는 범죄를 저지를 뜻을 가진 사람에게 '행동의 방아쇠'를 당기게 해 현장에서 붙잡는 수사 기법이다. 범의(犯意)가 없는 사람까지 끌어들여 죄를 묻는 함정 수사와는 다르다. 최근 유도 수사는 쓰임새가 넓어졌다. 차 도둑을 잡을 때는 잠금장치를 헐렁하게 만든 뒤 차에 위치 추적기를 달아놓는다. 이 차는 '꿀 바른 덫'이다. '꿀 묻힌 컴퓨터'로 불법 해커도 잡고, '꿀 바른 사제 폭탄'으로 테러 용의자를 뒤쫓는다. 


▶여성가족부가 아동·청소년 성매매를 단속하는 유도 수사를 법으로 허용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대통령 업무 보고 자리에서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을 고치겠다고 했다. 경찰이 자신을 청소년으로 꾸미고 인터넷 채팅을 하다가 섹스를 사겠다고 꾀는 어른을 붙잡겠다는 것이다. 위장 경찰이 먼저 성 거래를 제안하면 법에 어긋난 함정 수사다. 유도 수사는 법원 판례로 일부 인정됐지만 지금껏 법 규정이 없었다. 

▶아이를 성매매 대상으로 삼는 못된 어른을 잡으려면 유도 수사보다 더한 조치가 필요할지 모른다. 영국은 유도 수사를 허용하지만 스웨덴·네덜란드에서는 불법이다. '약탈자 붙잡기' 프로도 '행동의 방아쇠를 당길 기회가 없었다면 죄를 짓지 않았을 사람'까지 옭아맸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아담과 이브가 먹지 말라던 과일을 따 먹을 때부터 인간은 유혹에 약한 존재다. 범죄인 몇 명 더 잡으려고 무고한 시민들까지 덫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31/2013033101422.html



Posted by 겟업
2013. 4. 10. 10:54

세계 초강대국 미국은 범죄에서도 대국이다. 미국의 엄청난 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데는 범죄 요인이 상당히 크다. 역설적인 것은 범죄의 상당 부분이 미국을 상징하는 다양성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백인의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고착화한 지 오래여서 이제는 더 나빠지지 않게 하면 다행일 정도가 됐다. 전세계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나라가 미국일 것이다. 

미국의 치안이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미국 사람은 밤 9시 이후에는 웬만하면 밖에 나가지 않는다. 도심 밤거리를 혼자 걸어 다니는 사람은 잠재적 범죄자이거나 이런 사실을 모르는 이방인일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한국동포에 대한 약탈로 기억되는 1992년 로드니 킹 흑인폭동은 미국 경찰에게는 범죄 수사를 수십 년 퇴보시킨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도망치던 흑인 킹을 붙잡아 경찰봉 등으로 무차별 폭행한 백인 경찰들은 과잉진압 혐의로 기소됐지만 사건 발생 1년여 만에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무죄 결정을 내린 12명의 배심원 중에 백인은 10명, 히스패닉과 아시아계가 각 1명이었고, 흑인은 한 명도 없었다. 

불공정한 재판의 대가는 혹독했다. 흑인들의 유혈폭동으로 로스앤젤레스는 불길에 휩싸인 무법천지로 변했다. 54명이 사망하고 수 천명이 다쳤다. 재산피해는 10억 달러에 달했다. 오죽했으면 LA 경찰에 사람을 해치지 않으면 단순 약탈자는 건드리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을까. 어찌 보면 미국 경찰의 업보일 수도 있다. 필요 이상의 과잉 대응으로 흑인 용의자를 사살하고, 검거율을 높이기 위해 죄 없는 흑인을 범죄자로 모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으니 말이다. 괴물을 잡으려다 스스로 괴물이 된다는 말은 미국 경찰들 사이에서 푸념조로 유행하는 말이다. 

흑인폭동 사건 이후로 과거 같았으면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인정됐을 것들이 법원에서 기각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인종적 편견이 수사과정에 개입됐을지 모를 가능성 때문이다. 소수 인종들의 험악한 사회적 분위기도 작용했을 것이다. 민권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수사와 재판이 킹 사건 이후 확연히 달라졌다고 해서 'BK(Before King)'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지만 그에 맞춰 미국의 거리가 범죄에 더 취약하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로드니 킹 사건이 극적으로 미국의 범죄수사에 영향을 미친 것은 2년 뒤 발생한 O J 심슨 사건이었다.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린 미국 흑인 미식축구의 영웅 심슨은 94년 백인 부인과 부인의 백인 남자친구를 무참히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심슨의 집에서 부인의 피가 묻은 장갑이 나오고, 심슨과 부인의 혈흔이 발견되는 등 결정적 증거가 제시됐지만 심슨은 웃으며 법정을 나왔다. 이유는 하나, 심슨은 흑인이고 그를 체포한 경찰은 백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변호인단은 LA 백인 경찰 마크 퍼먼이 심슨을 체포하면서 'nigger(검둥이)'라고 한 것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백인 경찰의 신뢰를 깎아 내리려는 이 전략은 대성공을 거둬 여러 증거물들은 경찰이 심슨을 옭아매려고 사전에 심어둔 것으로 치부됐다. 배심원단은 로드니 킹 사건 때와 정반대로 흑인이 무려 9명, 백인은 3명 뿐이었다. 로드니 킹 사건이 없었다면 심슨은 풀려났을까. 또 지금처럼 범죄자가 피부색을 앞세워 법을 비웃으며 거리를 활보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미국 얘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한국도 범죄의 양태가 '고도화'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의 살인범죄 발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9번째로 높았고, 성폭력 등은 OECD 평균보다 최대 200% 높았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 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한국인 대다수가 사회ㆍ경제적 지위에 따라 법집행이 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범죄를 줄이는 길은 공권력의 신뢰에서 나온다는 것을 미국의 사례에서 배웠으면 한다.



황유석 국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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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0. 10:36

'피자가 중국에서 통할까?'최근 7년 만에 상하이를 다시 찾았다. '기름 뺀' 한국식 피자 브랜드 '미스터 피자'의 상하이 1호점 개설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산해진미가 넘치고, 기름기 음식에 익숙한 중국 소비자들에게 담백한 한국식 피자가 어필할 지 궁금했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최대 번화가인 푸저우(福州路)로에 오픈한 미스터 피자 상하이 1호점은 첫날부터 젊은 고객들로 붐볐다. 미스터 피자 정우현 회장은 "소비시장이 커지고 고급화하면서 담백한 한국식 피자가 먹히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와 주변 도시, 신도시에 점포를 계속 개설해 5년 안에 1,000개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상하이에서 조우한 김기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도 같은 말을 했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2000년대 초반부터베이징대에서 중국을 연구해 온 그는 한중발전촉진협회(양국 전직 고위 관료 모임) 회장직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중국 정부가 향후 10년 경제성장의 새 엔진으로 추진 중인 '도시화'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이후 7년만에 다시 방문한 상하이에서 중국이 지난 30년간 10% 내외의 고속성장을 이끈 제조업 및 수출 드라이브 패러다임을 바꿔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 시진핑ㆍ리커창 투톱 체제가 이끄는 새 정부는 도시화를 내수 확대와 지속적인 성장의 견인차로 삼고 있다. 2020년까지 연 평균 7.5%의 성장을 지속하면서 수출 중심에서 내수 위주로 경제체제를 바꾼다는 계획이다. 그 한가운데 도시화 정책이 있다. 사회 불안 요인인 도시ㆍ농촌간 소득 격차 해소를 위해 현재 52%대인 도시화율을 매년 1%씩 높여 60%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30년간 중국 경제발전의 공신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농민공이었다. 1960~70년대 우리의 저임금 산업역군에 해당한다고 할까. 하지만 농민공은 계획경제 시절 마련된 호구제도로 인해 도시에 살면서도호적은 농촌으로 돼 있어 도시민 대우를 받지 못해 각종 복지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 또 높은 부동산 가격에 치여 변변한 주거조차 없이 지내고 있다. 이들이 무려 2억 6,000만 명에 달한다. 

도시화의 주요 포인트는 호구제도를 개선해 이들을 정상적인 도시민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들이 도시민이 되면 교육 의료 주거 등 공공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 만큼 소득이 높아지면 소비 증가로 이어져 내수 확대에 기여하게 된다. 농업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종사자의 비율이 높아지면 생산성도 올라간다.

중국 정부는 농민공들에게 도시 호적을 주고, 추가로 1억4,000만 명의 농촌 인구를 도시로 유입시켜 2020년까지 4억명의 농촌 인구를 도시로 이주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중서부 낙후지역을 중심으로 수 천개의 신도시 건설이 추진되는 데 구체적인 계획이 상반기 중 나올 예정이다. 이 것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2020년 중국 도시 인구는 8억5,000만 명에 달해 미국ㆍ 유럽의 도시 인구를 더한 것보다 많아질 전망이다. 

도시화 정책은 중국이 지속적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묘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 중요한 건 우리에게도 획기적인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에 자본재와 반제품 등을 수출해 큰 혜택을 누려온 우리는 이제 중국의 새로운 도시화 발전 패러다임에 맞춰 중국의 거대 소비시장 공략에 나서야 한다. 한국식 피자만이 아니다. 내수 시장 포화로 골목 상권과 충돌하는 각종 서비스업은 물론 건설, IT, 환경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대중국 진출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창조경제 구현 못지 않게 정부와 민간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현안일지 모르겠다.



박진용 산업부 차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3/h20130325203305244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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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0. 10:30

수년 전부터 제주도의 공무원이나 기자를 만날 때마다 질문한 게 있다.

"강정마을 주민 1500여명의 절반 정도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한다는데, 이제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느냐"고. 대답은 거의 언제나 "변동 없다"였다.

이해되지 않았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법적·행정적·정치적 절차가 장애물을 하나씩 넘어가며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더디게나마 흘러가고 있었고, 국민이나 제주도민 여론도 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쪽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상에 불만 가진 사람도 거의 없다고 했다. 기지가 건설되면 강정마을이 누리는 경제 효과도 상당히 큰 것으로 추산됐다. 제주도에 흔한 종류의 바위와 붉은발말똥게 같은 자연을 지켜야 한다거나, 해군기지가 미군 기지화해 중국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외부 세력의 설득력 약한 주장에 주민이 동의하고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지 반대 주민이 지금까지 줄지 않는 이유는 뭘까.

수년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이 의문은 얼마 전 한 제주 토박이의 설명을 듣고 좀 풀렸다. 문제는 찬성·반대 주민 사이에 생긴 깊은 '감정의 골'이라 했다. 외부 세력이 개입해 허위 사실로 선동한 뒤부터 폭언과 폭력이 주민 사이에 횡행했고, 누가 찬성파이고 반대파인지 보이지 않는 꼬리표가 달려 두 패로 좍 갈렸다는 것이다. 뜻이 다른 이웃·친척·가족이 말을 섞지 않았고, 낫을 휘두르는 경우도 생겨났다. 어느 것이 옳고 유리한지에 대한 판단은 의미가 없어졌고, 생각을 바꾸는 것은 배신으로 몰리게 됐다. 그 어떤 상황 변화가 와도 입장을 바꾸지 못하는 덫에 모두 빠진 것이다. 이런 상황이면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마을이 멋지게 발전한다 한들 절반은 '어디 잘되나 보자'며 돌아앉아 있을 것이고, 그것을 의식하는 나머지 절반의 삶도 피곤할 수밖에 없다.

매년 시위와 소송, 국회의 예산 삭감 등 탓에 롤러코스터 신세였던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올해부터 순항하기 시작했다. 외부 세력의 시위는 미약해졌고, 국회의 요구 사항을 모두 반영하는 방향으로 정부 부처와 제주도가 얼마 전 합의함으로써 예산도 순조롭게 지원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새로이 힘을 쏟아야 할 일은 강정마을의 극단적 갈등을 치유하고 교훈을 찾는 일이다.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가 나서야 한다. 심리 상담가들은 주민의 거칠어진 마음을 다독여주고, 심리학·사회학·인류학자들도 마을에 들어가 해결 방안을 연구해봐야 할 것이다.

제주도민 사회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국민 통합을 기치로 내건 새 정부가 주요 과제로 삼고 나서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강정마을은 갈등이 거칠게 충돌하는 우리 사회의 극단적 단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전국에서 크고 작은 지역 단위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강정마을 사태의 전 과정을 백서로 만들고, 이를 통해 주체적 비폭력적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방법을 함께 연구하고 익혀보자. 미래를 위해 이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박중현 사회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25/20130325021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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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0. 10:07

'정통 양념 치킨 맛보겠다'며 한국에 오는 뉴요커 친구… 
베트남 대표 음식 쌀국수는 프랑스, 일본 덴푸라는 포르투갈서 유래 
퓨전 요리 거부감 사라진다면 '韓食 세계화' 첨병 될 수 있어


한국 음식이 외국에서 인기긴 인기인 모양이다. 뉴욕에 사는 미국인 친구 캐리가 얼마 전 "본고장에서 정통 한식을 제대로 맛보고 싶다"며 서울에 오겠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에 캐리의 이메일에 답하면서 "뭘 먹어보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캐리가 꼽은 음식 중 양념 치킨이 있었다. 한국에서 꼭 맛보고 싶은 한식이 '고작' 양념 치킨이라니. 전혀 예상 못 한 음식이었다. 뉴욕에 있는 캐리에게 인터넷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양념 치킨? 그게 먹고 싶어?"

"당연하지! 양념 치킨이 뉴욕에서 얼마나 난리인데! 한국 음식 중에서도 제일 인기일 걸?"

내가 놀란 건 양념 치킨을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 대부분 양념 치킨을 한식으로 여기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데 캐리를 포함한 외국 사람들에게 양념 치킨은 한식, 그것도 가장 맛보고 싶은 한국을 대표하는 맛으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치킨이란 영어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양념 치킨은 그 기원을 미국에 두고 있는 음식이다. 기름에 튀긴 닭은 1950년대 이후 미군을 통해 알려진 것으로 짐작된다. 본래 한식에는 튀김이란 전통이 없다. 당시만 해도 기름에 튀긴 닭 요리는 엄청나게 낯설고 이국적인, 그래서 닭이 아니라 치킨이라고 불러야 어색하지 않았으리라.

1960년대 전기구이 통닭과 쇼트닝에 튀긴 이른바 '시장 통닭'이 등장한다. 1970년대 프랜차이즈 업체가 등장하면서 프라이드 치킨은 '프라이드'를 떼고 그냥 '치킨'으로 통할 정도로 대중화된다. 양념 치킨은 1980년대 초 등장했다. 매콤달콤한 맛을 좋아하고 익숙한 한국인 입에 꼭 맞는 양념 치킨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치킨이 '국민 야식'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한다.

1980년대 등장해 1990년대부터 대중화됐으니, 양념 치킨의 역사는 길어야 30년 정도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세계적으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음식 중 외국에서 들어왔거나 역사가 짧은 것이 의외로 많다.

쌀국수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아서 웬만한 나라에서는 쉽게 맛볼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07년 쌀국수를 뜻하는 베트남어 퍼(pho)를 영어 단어로 포함했다. 그런데 옥스퍼드사전은 퍼의 어원을 "아마도 프랑스 포토푀(pot-au-feu)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음식 포토푀에서 '푀'만 떨어져 나와 '퍼'로 변했다는 것이다.

대중적인 음식이 대개 그렇듯, 쌀국수는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가 아리송하다. 20세기 초 베트남 북부 하노이 주변에서 처음 먹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 전부다. 지난 2007년 하노이에서 쌀국수의 탄생을 밝혀보기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여기 참가한 음식 전문가들은 쌀국수가 포토푀에서 왔거나 최소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데 동의했다.

포토푀는 소·닭 등의 뼈와 고기를 여러 채소와 함께 푹 끓인 프랑스의 서민적인 음식이다. 부드럽게 삶은 고기를 일품요리로 먹기도 하고, 국물만 떠서 수프로 먹거나 육수로 사용한다. 포토푀에 들어가는 양파 등 채소를 불에 그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잡내를 없애고 풍미를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다. 쌀국수 국물도 포토푀와 만드는 방식이 같다. 소의 뼈와 고기를 각종 채소와 함께 끓인다. 양파, 파 등은 그슬려 사용하는데, 역시 포토푀와 같다. 향신료가 더 많이 들어간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덴푸라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본 음식이다. 하지만 덴푸라는 17세기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전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외국인 거주가 유일하게 허용된 나가사키에 살던 포르투갈 사람이 튀김 요리를 하자, 이를 본 일본인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단다. 포르투갈 사람은 "템페랄(temperal)"이라고 답했다. 포르투갈어로 '조리하다' 또는 '(약을) 조제하다'란 뜻이다. 일본 사람은 이 말을 요리 이름으로 잘못 알아들었고, 그때까지 일본에 없었던 이 튀김 요리를 덴푸라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 라멘 역시 우리는 일식이라고 여기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면 요리다. 한국의 짜장면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들어와 일본의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식 세계화를 선도해온 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은 "한국 사람들은 퓨전 음식이라고 하면 대단히 노이로제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외국 식재료와 요리법을 얼마나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배척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외국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한식을 해외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양념 치킨을 한식으로 떳떳하게 소개해도 괜찮을지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캐리가 서울에 오면 어느 치킨집을 데려가 양념 치킨을 맛보일지가 고민이다.



김성윤 대중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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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6. 05:18

한국의 특파원들이 외국에 나가서 직접 취재하기보다는 외국 신문을 옮겨 쓰는 게 업무의 대부분이던 80년대 특파원 기사를 보면 모든 문장이 이렇게 시작하는 기사가 꽤 많았다. '뉴욕타임즈는…/ NYT는… /미국의 권위지는…' 알고 보면 뉴욕타임즈도 NYT도 미국의 권위지도 다 같은 신문이다. 뉴욕타임즈 내용을 그대로 옮기되 같은 단어를 반복하면 나쁜 문장이라는 기사쓰기의 규범 때문에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주어를 창조해서 불렀다.

같은 단어를 반복하기 싫어 달리 부르는 단어를 열심히 찾던 신문도 당시에 어쩔 수 없이 반복하던 주어가 있었는데 바로 'O대통령'이라는 주어였다. 대통령이 장관들과 나눈 국무회의나 각 부서 업무보고가 끝나면 나오는 기사가 온통 대통령 훈시로 채워지던 시절 일이다. '전두환대통령은…/전 대통령은…'정도로 변화를 주는 게 고작이었다. 이것은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은…'으로 이어졌다.


이런 습관은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 이르러 바뀌기 시작하다가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이르면 확연히 달라진다. 국무회의가 대통령의 훈시를 듣는 자리가 아니라 국무위원들이 업무를 토론하는 자리로 운용된 덕분인지 결과로 나오는 기사는 '정부는…' 혹은 'OO부는' 식으로 주어가 대통령에서 정부 전체 내지 특정 부서로 바뀌어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해보니까' 주의로 국무회의나 각 부서 업무 보고에서 지시사항이 적지 않았지만 각 부서 업무보고 기사가 '이명박 대통령은'으로만 나가지는 않았다. 그만큼 각 부처가 창안하여 대통령에게 올리는 내용이 보도의 주 내용이지 대통령이 업무 보고를 받으면서 먼저 떠드는 훈시 내용이 보도의 주 내용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러 다시 '박대통령은' 시대가 돌아왔다. 박 대통령은 최근 계속되는 각 부처 업무 보고에서 업무를 보고 받는 것이 아니라 지시에 주력하고 그 내용이 기사의 주류가 됐다. 전두환 노태우 시절의 자랑스런 전통을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박 대통령은' 으로 주어가 시작된다. 27일 통일부 외교부 업무 보고에서는 박 대통령이 북한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주요 뉴스가 됐고 28일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업무 보고에서는 공공기관부터 지방대 취업 할당제를 실시하라고 한 것이 주요 뉴스가 됐다. 28일 경제정책 점검회의도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만 장황하게 소개가 됐다. 기자들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주요 회의에 들어가볼 수 없기 때문에 청와대가 보도자료를 대통령 발언 중심으로 주면 기사는 그렇게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도자료만 그런 게 아니라 촬영화면조차 대통령 혼자 떠들고 장관들이 열심히 받아 적는 장면이 국무회의 때마다 등장한다. 참 한심한 무리들이다. 한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다 한들 여러 사람의 두뇌를 당할 수가 없다. 각 부처 장관을 따로 두는 것은 각 부마다 달리 담당하는 영역의 이해관계를 잘 대변하고 이를 서로 조율하는 의미가 있다. 대통령 혼자서 다 알아서 지시하고 그 내용이 잘 전달만 되는 것으로 국정이 운영된다면 뭐하러 장관을 따로 두겠는가. 장관 한 명 연봉만 해도 1억2,000만원이나 되는데 그 돈 아껴서 격무에 시달리는 사회복지 공무원이나 더 많이 채용하는 게 낫지 말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유능했으면 당선되고 두 달, 부임한 지 한 달이 넘도록 내각조차 다 구성을 못했을까. 장관으로 임명한 이들도 탈법 불법이 없는 이가 없고 이보다 더 심한 잘못을 한 11명이 날라갔다. 날라간 이들조차 워낙 몰염치해서 한가지 부정으로는 즉각 자진사퇴도 않으니 사퇴를 요구하느라 온 나라 정치력이 한달 넘게 내각 구성을 맴돌고 있다. 이런 국가적 낭비가 없다. 그만큼 장관들이 신통찮아서 대통령이 일일이 지시를 하는 것인지 몰라도 과외는 대통령도 남이 안보는 데서 받듯 장관들도 안보는 데에서 공부를 시키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라면 적어도 국민들 앞에는 민주적으로 움직이는 시늉만이라도 하기 바란다. 그게 안되면 해산을 하라.



서화숙 선임기자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opinion/201303/h2013032821272667800.htm&ver=v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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