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별명은 ‘보안관 아저씨’다. 밤이나 낮이나 동네 이곳저곳을 순찰하면서 10대들을 선도한다. 보일러 시공이 본업이지만,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간다. 광주광역시 남구 월산4동에 사는 이시중(62)씨가 그 주인공이다. 빵집 가게 앞 전봇대에 온갖 쓰레기가 쌓이는 것을 보다 못해 흙을 퍼나르고 기와로 장식해 작은 정원을 만든 박청호(54)씨도 이 마을 신참 주민이다. 보안관 아저씨는 이 정원에 예쁜 석류나무와 동백을 내줬고, 교사로 정년퇴임한 할머니는 30년산 철쭉을 선뜻 희사했다.
하지만 김종민(59) 주민자치위원장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뭉쳤다. 자동차공업사를 운영하는 그는 “호적이 있는 동네를 만들어보자”며 마을지 편집위원회를 꾸렸지만,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주민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카센터, 1970년대 △△교회 앞에 있었던 ‘뽕뽕다리’, ○○교회 부근에 있었던 젖소농장 등 마을의 기억…. 주민들이 주민들의 이야기를 발굴했다. 주민들이 모여 마을 지도를 직접 그려 잡지에 실었다. 원고의 95%는 그대로 살렸다. 앞으로 동네 잡지를 1년에 한차례는 꼭 내볼 참이다. 동네 잡지 한권이 삭막한 대도시의 7000가구, 1만2430명이 사는 동네를 훈훈하게 바꾸는 출발점이 된 셈이다.
동네 미디어는 또 있다. 서구 화정동 주민들이 참여하는 광주문화유랑단은 <화정동에 꽃이 피다>라는 신문을 낸다. 마을 주민들은 동네 신문에 음식물을 먹어치울 지렁이를 분양하는 일정, 동네 장터 개장일 같은 소식을 담아 5호까지 냈다. 동사무소 2층 165㎡(50평) 공간을 마을극장으로 바꾸려고 아이디어도 모으고 있다. 마을극장 개장 소식은 아마도 동네 신문이 특종 보도할 것 같다.
광주시 남구 주민들이 모여 꾸린 송화인문공동체도 2011년 5월부터 <함꾸네 신문>을 내고 있다. 타블로이드판 8면짜리 신문엔 마을 도서관·지역아동센터·강연회 소식이나 마을 미담 등이 실린다. 민판기(61) 편집위원장은 “주요 신문에 동네 이야기는 없더라. 이웃간의 관계를 트고 소통하는 데 동네 신문이 제격”이라고 했다. 알림판과 광고 수입 등으로 자체 제작해 6000부를 배포한다. 남구 양림동에서도 <양림소식>이라는 4쪽짜리 신문을 낸다.
동네 미디어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소통의 매개체다. 마을과 연관된 이야기가 실린 잡지는 어쩌면 도시에서 더 필요하다. 무심코 지나쳤던 내 주변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가 활자화되면 오히려 더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는 공감을 낳고, 이 공감이 관심과 참여를 이끈다. 어쩌면 수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짓는 공공기관보다, 동네 미디어가 도시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는 데 더 큰 효과를 몰고 올지 모른다. 앞으로 주민들이 제작 경비까지 마련해 동네 미디어가 활성화되면 지역 살리기 해법의 단초를 발견하지 않을까? 동네 미디어가 마을 공동체를 대변하고 소통하는 큰 울림통이 되길 기대한다. 동네와 동네 미디어가 희망이다.
'교양있는삶 > 사설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파원 칼럼] 뉴욕, 2013년 겨울 (0) | 2013.04.06 |
---|---|
[세계의 창] 역사 맛보기 (0) | 2013.04.06 |
[김호의 궁지] ‘영어’만큼 ‘연극’이 중요한 이유 (0) | 2013.04.06 |
[세계의 창] 시장경제, ‘손오공 머리띠’ 되지 말아야 (0) | 2013.04.06 |
[조한혜정 칼럼] 무상 보육과 보편적 복지 (0) | 2013.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