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짝 오지혜를 삼십여년 만에 만났다. 어릴 적 친구이기도 하지만, 지혜는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배우이다. 스크린이나 무대에서 지혜는 ‘나 연기 잘해’라고 외치듯 ‘오버’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어릴 때부터 어법이나 표현이 정확했고, 조지 클루니나 앤절리나 졸리와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사회문제에도 진지한 관심을 보인다.(우리나라에서는 배우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마치 ‘별종’처럼 보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부여해준 관심에 따른 당연한 책임이라 본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로서 연극과 비즈니스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혜로부터 연극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의견을 들었다. 연극이야말로 초등학교 기초과목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연극이란 학예회 정도로 생각했던 내게 다소 의외였다. 왜 그럴까?
첫째, 연극 한 편을 올리려면 반드시 협동이 필요하다. 인터넷으로 인해 지금의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하다’. 개인의 경쟁력은 우수하지만 사람 사이(人間)의 협력이라는 점에서 보면 절망적이다. 왕따 현상은 한 사례일 뿐이다. 2010년, 50년 넘는 전통을 가진 미국 시카고의 세컨드시티 코미디 극단에서 즉흥극 교육을 받으며 이들이 혼자 진행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다루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최소 두 명 이상이 모여 극을 만들어가는 것이 기본이며,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왜 대화를 독점하면 안 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둘째, 우리는 스티브 잡스의 영향으로 단순히 기술에만 밝아서는 의미 있는 혁신을 할 수 없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연극 공연 한 편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대본을 여러 차례 읽게 되며, 이 과정에서 인문학적 상상력과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연극을 교육에 접목하고 있는 사다리연극놀이아카데미에서 만난 한 중학교 국어 선생님은 연극놀이를 수업에 도입하면서 아이들의 풍부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셋째, 연극은 아이들의 다양한 취향을 자극하고, 자신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잘하는지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배우 외에도 미술이나 디자인에 관심이 있으면 무대 디자인을, 패션 쪽에 관심이 있으면 의상을, 기획에 관심이 있으면 연출이나 마케팅을, 음악에 관심이 있으면 음향을,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대본을 맡으면 된다. 오랜 기간 알아온 한 글로벌 컨설팅 기업의 임원은 아이가 심한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 연극 수업으로 그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연극이 아이의 자기성찰 및 자세, 자기표현 등 사람에 대한 다양한 것을 가르쳐주었고, 이를 통해 사춘기의 고비를 넘기고 올해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는 많은 시간과 관심, 엄청난 돈을 영어교육에 쏟아붓는다. 영어는 중요한 도구다. 하지만 한국말 잘한다고 소통 능력이 반드시 높지 않듯 영어를 잘한다고 글로벌 시대에 소통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인재는 영어로 발표를 잘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글로벌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공감하며, 협조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능력 개발은 영어 교육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연극은 훌륭한 교육 수단이 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영어교육에 쏟아붓는 관심과 자원의 10분의 1 미만을 투자해도 비용 대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연극은 ‘영어만큼’ 중요하고 ‘영어보다’ 효과적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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