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대는 보통 30년이다. 사람이 태어나 서른 살이 되면 사회에서 제 몫을 할 나이가 시작된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고 한 시대의 새 사람이 옛사람을 바꾼다(長江後浪推前浪 一代新人換舊人)’는 말처럼 이전 세대는 새 세대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하지만 앞선 세대는 그들이 남긴 족적에 따라 후세대에게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되찾고 싶은 영광의 시대일 수도, 지워버리고 싶은 치욕의 시대일 수도 있다.
역사를 보면 한 세대의 대응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결정됨을 알 수 있다. 독일은 19세기 중반까지 수십 개의 군소 국가로 분열돼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프로이센 재상에 오른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추진력에 힘입어 강대국인 오스트리아·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연이어 승리하고 마침내 1871년 통일을 이룬다. 이후 독일은 국가 주도의 공업 육성 정책을 통해 산업화에도 성공한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재임기간은 1862년부터 1890년까지 약 30년이다. 한 세대 만에 독일을 세계 열강의 하나로 끌어올린 것이다.
일본은 1854년 페리 제독의 위협에 굴복해 강제 개항을 한다. 잠시 혼란이 있었으나 메이지 유신(1867년)을 통해 극복한다. 이후 일본은 발 빠르게 근대국가, 산업국가로 변신해 나간다. 1895년 청일전쟁의 승리는 일본이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등극했음을 세계에 과시한 사건이다. 메이지 유신부터 청일전쟁까지는 겨우 30년, 한 세대가 걸렸을 뿐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구한말 30년은 뼈아픈 역사로 기록된다. 강화도조약(1876년)에 의한 개국은 메이지 유신 10년 후였다. 일본은 구미의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해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을 보냈는데 조선 역시 그 10년 후 조사시찰단을 파견했다. 당시의 10년 차이는 충분히 극복 가능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조선은 시대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결국 국권상실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부끄러운 선배 세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개발을 시작한 1962년부터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까지 30년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룩한 시대다. 아프리카 최빈국보다 가난했던 나라가 그 30년 사이에 선진국의 문턱까지 올라섰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비아냥을 받던 나라가 이 기간에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불과 한 세대 만에 이뤄낸 비약이다.
범위를 기업으로 국한해도 한 세대의 힘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는 83년 반도체 사업에 과감히 도전해 30년 후 세계 최고의 전자·정보통신 기업으로 올라섰다. 현대자동차는 76년 에콰도르에 포니 다섯 대를 처음 수출한 이래 30년 만인 2006년 세계 6위의 자동차 회사로 발돋움했다. 모두 한 세대 동안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기업의 구성원이 열정을 쏟아부은 결과다.
한 세대 30년은 이처럼 국가와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시대의 전환기에는 그 의미가 더욱 커진다. 그만큼 당시 주역을 맡고 있는 세대의 깨어 있는 정신과 단결된 힘, 이를 이끄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구나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기술이 급변하는 오늘날임에랴.
대선기간 동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제기됐다. 올 한 해 최대 화두였던 경제민주화를 비롯해 복지·노동 등의 문제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건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다. 이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자면 중심에 기업이 활기차게 뛰게 하는 정책을 둬야 한다. 중국이 개혁·개방 노선을 걷기 시작하고 30여 년 만에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했듯 국리민복은 결국 시장을 중시하는 경제체제가 가져오는 것이다.
이제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박근혜 당선인은 기쁨에 앞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리라 생각된다. 특히 향후 5년은 우리나라가 도약이냐 정체냐의 갈림길에 들어서는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새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는 다음 한 세대가 미래에 영광과 번영의 시기로 기억되길 소망한다. 그 첫출발은 어느 시대나 그렇듯 현실을 직시하는 경제정책에서 비롯될 것이다.
이 동 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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