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4. 14:07

우리나라에는 경로당이 6만1361개 있다. 규모도 엄청나지만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전국에 실핏줄처럼 엉킨 생활 밀착형 조직 특성에 있다. 현재 경로당의 일상은 동네 노인들이 모여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장기·바둑이나 화투놀이 하다가 가끔씩 약주 끝에 소란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소비적인 특성이 강하다. 만일 경로당이 생산 조직으로 면모를 일신한다면 노인이 생활인으로서 생동적인 노인 문화 창출은 물론, 현실적으로는 노인 일자리 창출과 함께 지역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한국은 노령화 속도도 무섭지만 노인들이 사회로부터 분리되는 속도 또한 엄청나다. 노인 복지 구조의 한계를 절감하는 현실에서, 경로당 조직은 노인 복지 정책의 중요한 기초 단위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곳이다. 경로당을 노인들의 생산형 공동 작업장으로 일신해 노인끼리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생각보다 많다. 간단히 콩나물을 기르거나 수제 두부를 만들 수도 있다. 옛 기술을 발휘해 짚풀 공예품을 만들어 아동 학습 교재나 관광 상품으로 판매할 수도 있고, 동네의 옷 수선을 맡아서 할 수도 있다. 또한 지역 주민들의 심부름 센터나 자원봉사 센터로 거듭날 수도 있다.

2005년 대전 석교동에서는 어느 노인이 기증한 집을 활용해 동네 빨래방을 열었는데, 독거노인들의 빨래를 맡은 젊은 자원봉사자들의 거점이 되어 노인들과 교감하면서 지역사회에 봉사해 오고 있다. 이처럼 경로당에 간단한 빨래방과 주방 시설을 만들어 지역의 젊은 자원봉사자와 사회복지사들과 합심해 지역 내 독거노인들의 세탁물을 수거하고, 반찬거리를 만들어 배달함으로써 국가 복지 서비스의 일부를 떠맡을 수도 있다. 또 인근 농촌에 필요한 일손이나 산업 시설에 기초 노동력을 제공할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섬김의 대상'이었던 노인이 자본주의에 와서는 '분리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 두 가지가 교묘히 결합된 '분리된 섬김'으로 가고 있다. 경로당이 생산적 공간으로 활성화되는 것은 가정의 섬김 구조가 사회적 섬김 구조로 재탄생하고, 노인들이 사회적 역할 구도를 되찾는 계기가 된다. 경로당은 노령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국가적 자산이다. 왜 경로당이 지금처럼 주민과 동떨어져 거리로는 가깝고 마음으로는 먼 곳이어야 하는가? 경로당을 노인 100세 시대를 여는 새로운 생산적 공간으로 바꿔 보자.



김태경 경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19/2012121902092.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