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으니 이래저래 마음이 분주해진다. 새해에 심혈을 기울여 세웠던 계획 몇 가지는 아직 시작도 못했고, 미처 끝을 내지 못한 일도 이것저것 있다. 그래도 오늘은 한 걸음 물러나 올해 내가 일터에서 가장 자주 쓴 말을 생각해 보고 있다.
“예를 들면…”이란 말이었나? 만약 그랬다면 나는 올 한 해 상대방을 더 이해시키려고 설명에 설명을 더하는 상황이 많았나 보다. “보고서는 좀 미리미리 작업해서 주시지…”란 말도 자주 했던 것 같다. 기운이 부족한 퇴근시간 무렵, 숨을 내쉬면서 쓰던 말이다. ‘앞으로는 계획성 있게 시간 관리합시다’란 충고로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 사람도 속으론 ‘이런, 나도 미리미리 주고 싶어요’라면서 업무량을 가늠해 본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우리의 일터는 마냥 미소 지으며 흘러가진 않았나 보다. 그래도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이란 기관명처럼 국내외 아동을 돕는 일에 치열하게, 진정성을 갖고 계획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정신적으로 지원해 주는 가족과 물심양면으로 함께해 주는 많은 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또 한 분, 가장 힘을 준 분은 에글런타인 젭, 세이브더칠드런 창립자다. 이 글을 쓰는 12월 17일은 그분이 52세를 일기로 제네바에서 돌아가신 날이다. 사회혁신가이며 사상가로 살다 간 그분을 지면상 다 돌아볼 수는 없지만 그분의 삶의 흔적과 어록은 언제나 일침과 마음의 구심점이 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무엇인가 시작을
1876년에 태어난 그녀는 43세의 나이에 세상의 아이들을 구호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착한 일과 좋은 일을 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라 옳은 일을 하려고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을 단지 보호할 대상이 아닌 주체적인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고 밝힌 아동권리선언문 초안은 1924년 아동 권리에 관한 제네바선언으로 채택되었으며, 오늘날 모든 아동의 인권 사상과 실천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분이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한 시간은 약 10년이다. 9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120여 개 국가와 지역에서 활동하는 세이브더칠드런으로 성장했지만, 정신과 철학은 변함이 없다. 여기 몇 가지 어록과 생각을 소개해본다.
“나는 종종 세이브더칠드런의 목표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곤 한다. 고통받는 아이들은 언제나 있었으며, 앞으로도 있기 마련이며, 이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얘길 듣는다. 이 비참함에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돈과 지식, 그리고 선한 의지다. 사람들은 돈은 있지만 다른 곳에 쓰고, 지식이 있지만 적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의 아이들과 인류의 미래를 구하기 위해 돈과 지식을 단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선한 의지를 키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젭 여사의 질문에 대해, 선한 의지들이 모여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행복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란 말도 남겼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우리는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한다. 생각을 바꾸었다면, 태도도 행동도 바뀌어야 한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 그것이 행복해지기의 시작이 아닐까.
“유일한 세계 공용어는 아이의 울음소리다”라는 문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이기도 하다. 이 울음소리는 모두가 알아들을 수밖에 없는 공용어다. 정치와 종교, 인종과 국적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도 없으며, 이리저리 달리 대응하는 방식도 옳지 않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인종과 종교, 국적을 초월해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은 비정하지 않다. 다만 상상력이 부족하고 매우 바쁠 뿐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이 말을 남긴 1920년대의 사람들도 다른 세계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기에 일상이 버거웠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거의 100년이 다 된 지금, 2012년 12월 우리는 더욱 바빠졌다. 수많은 신문과 방송, 인터넷과 e메일이 세계의 소식들을 날라다 주고 있지만 타인을 이해하기에는 상상력이 잘 발휘되지 않을 때가 있다. 오히려 끝없는 세계의 분쟁과 기아, 기후변화와 경제 위기로 인해 피로감과 무력감이 증대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옳은 것이 있다. 세상은 비정하지만은 않다. 사람들은 체온과 인류애를 지니며, 한 해를 돌아볼 때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작은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대문을 나서며 인터넷을 열기도 한다.
우는 아이들 외면하지 않았으면…
2018년 세이브더칠드런이 100년이 되는 해에는, 울고 있는 아이들을 하나도 외면하지 않는 날이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꿈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새해 2013년에도 우리는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위해, 가능한 일부터 차근차근 실천하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새해 여러분의 일터와 가정에는 돈과 지식과 선한 의지가 넘치길!
최혜정 세이브더칠드런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부장
http://news.donga.com/3/all/20121218/516776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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