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4. 11:22

여남은 해 전 미국 MIT에서 유명한 언어학자 촘스키 교수를 찾아뵈었다. 조선일보와 대우재단이 주최하는 한국학술협의회 석학연속강좌에 모시려고 찾아뵌 것이었다. 촘스키 교수는 우리 학계의 거듭된 초청에 늘 인권후진국에는 가지 않겠다며 거절해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쌓여 있는 책들 사이에서 점심이 늦었다며 샌드위치를 드시는 선생님께 조심스레 초청 의사를 밝혔는데 뜻밖에도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뿐, "그래 자네는 어떤 연구를 하는가"라고 묻는 말에 "까치의 언어를 연구합니다"라고 답하는 순간 애써 쌓은 공든 탑이 그만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인간만이 언어를 가진 동물이라는 대가의 사뭇 완강한 주장과 심지어는 꿀벌도 언어를 사용한다고 부득부득 우겨대는 소장 학자의 눈치 없는 도전이 반 시간 넘도록 이어졌다. 언어를 만일 '시공간을 초월한 정보를 상징적인 부호를 사용하여 전달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꿀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와 방향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꿀벌의 춤은 언어로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몇 시간 전, 수백m 떨어진 곳에서 수집한 정보를 춤이라는 상징 매체를 통해 남에게 전달하는 행위는 고양이가 지금 당장 배가 고프니 밥을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감아돌며 야옹거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소통행위이다.

꿀벌의 아침은 스무 마리 남짓의 정찰벌들이 새로운 꿀을 찾아 나서는 일로 시작한다. 제가끔 좋은 꿀의 출처를 알아낸 정찰벌들은 벌통으로 돌아와 이른바 꼬리춤(waggle dance)이란 걸 춘다. 꼬리춤의 방향과 중력의 방향 간의 각도는 태양과 꿀이 있는 곳 사이의 각도를 의미하고 꼬리춤의 속도는 꿀에 이르는 거리를 표현한다. 이 정보는 얼마나 객관적인지 우리 인간도 조금만 숙련하면 꼬리춤만 보고도 정확하게 꿀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다.

오늘은 꿀벌의 춤언어를 해독하여 197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카를 폰 프리슈(Karl von Frisch·1886~1982)가 태어난 날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폰 프리슈보다 더 예리한 관찰력을 지닌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수천 마리의 벌들이 잉잉거리는 벌통을 들여다보며 그들 중 누군가가 춤을 추며 동료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찾아냈으니 말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19/2012111902370.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