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4. 12:03

가난한 노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노부부는 전 재산인 말 한 필을 팔아 좀 더 쓸모 있는 물건과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영감님이 말을 끌고 시장에 갔다. 처음엔 말 한 필을 암소와 바꾸었지만 다시 암소를 양과 바꾸었다. 다시 양을 살찐 거위와 바꾸었고 그 거위를 다시 암탉과 바꾸었다. 마지막으로 암탉을 썩은 사과 한 상자와 바꾸었다. 영감님은 물건을 바꿀 때마다 할머니에게 기쁨 한 가지씩을 주고 싶었다.

돌아오는 길, 영감님은 썩은 사과 자루를 메고 어느 작은 주점에 들렀다. 썩은 사과 자루를 메고 다니는 기이한 풍경에 신기해 하는 두 명의 영국인을 만나게 되었고 자신이 시장 본 얘기를 자랑스럽게 한다. 두 영국인은 박장대소하며 집에 돌아가면 틀림없이 할머니에게 쫓겨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감님은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맞섰고 결국 거만한 부자 영국인과 금화 한 자루를 두고 내기를 한다. 두 영국인과 영감님은 함께 집으로 갔다. 할아버지의 장 본 얘기를 듣는 할머니는 끊임없이 맞장구를 치며 즐거워한다. 말 한 필을 암소로 바꾸고 암소를 다시 양과 바꾸고… 하면서 한 가지 물건을 다른 물건으로 바꾼 얘기를 할 때마다 잠시도 쉬지 않고 감탄하며 기뻐했다. “와! 우유를 마실 수 있겠군요!” “양젖도 맛있지요.” “거위 털이 얼마나 따뜻한데요!” “와! 계란을 먹을 수 있게 됐군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암탉을 썩은 사과와 바꾸었다는 얘기를 했지만 할머니는 더없이 행복해하며 말한다. “그럼 오늘 저녁엔 모처럼 맛있는 사과파이를 먹을 수 있겠네요!”

할머니는 영감님이 말할 때마다 오히려 감탄하며 기뻐한 것이다. 창틈으로 엿듣던 두 영국인은 결국 금화 한 자루를 잃게 되었다. 영감님은 말 한 필로 썩은 사과 한 상자와 금화 한 자루를 얻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엄청난 장사를 한 셈이다.

알려진 대로 이야기는 안데르센의 동화다. 부부간, 나아가 인간사회의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우화.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 일침을 놓는 책이다. 아주 어린 시절,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얘기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어머니에게 보챘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딱 한마디 “크면 알게 된단다”였다. 맞는 말씀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비로소 어머니의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늘 영리한 사람만 이득을 보고 성공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인간들에게 세상이 꼭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는 작가의 메시지를 철들어 알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일 년에 딱 한 번 하는 주례를 통해 나는 제자 부부에게 이 동화를 인용한 극히 짧은 주례사를 던졌다. 요지는 혹시나 앞으로의 결혼 생활 중 수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오늘 내가 예를 든 동화 제목 “썩은 사과” 네 글자를 냉장고에 큼지막하게 써 붙여 놓고 아침저녁 큰 소리로 낭독하며 행복하게 살아 달라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그날, 식이 끝난 후 참석한 몇몇 청춘 하객들이 자신들의 주례를 특별히 내게 부탁해 오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 나는 가끔은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은 복을 받고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똑똑한 사람들이 외려 성공하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청첩장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온다. 그러면서 헤어지는 적잖은 부부들을 우울하게 옆에서 지켜보면서 드디어 한국 사회에도 백년해로라는 “굉장한” 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북미 대륙을 주름잡았던 아라파호 인디언은 11월을 두고 “아직은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도 이제 달랑 한 달, 이제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가고 있다. 바람은 하루가 다르게 싸늘해지고 계절은 점점 목말라 간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겠다며 하루가 다르게 천박해져 가는 세상, 그 속에서도 ‘썩은 사과’를 좋아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올해 겨울은 더욱 따뜻해질 것 같다. 초대하지 않은 겨울이 문밖에 서성이고 있다.


김 동 률 서강대MOT대학원교수 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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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