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4. 11:39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아직은 여린 눈망울에 꾀 많은 네가 여염집 아궁이에서 죽다니. 네 배 속을 보니 쥐도 잘 잡아먹었건만 어쩌다 내출혈을 일으키고 숨이 막혔단 말이냐. 10월 31일 방사했으니 고작 6일 만이었다. 서울대공원에서 4월에 태어나 7개월 짧은 생을 마쳤구나. 야생으로 돌아갈 적응훈련이 부족했다거나 무작정 방사하려고 추운 날을 고려치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터라 더 애달프다.

너는 8월부터 두 달여 강원도 소백산 자락 5000m²에서 훈련해 왔지.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담 직원이 어렵게 잡아온 산 들쥐를 먹이로 주면 날렵하게 쫓아가 앞발로 꽉 움켜쥐고 3분 만에 깔끔하게 먹어치운 너 아니더냐. 사람이 위험한 존재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마음과는 정반대로 공단 직원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다니기도 했지. 눈치 빨라 사람 발소리만 나도 재빨리 굴에 숨거나 덤불에 몸을 가려 모두를 기쁘게 했다. 이렇게 훈련 잘 받아 놓고 어찌 수컷과 신접살림도 차려 보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났단 말이냐.

네가 떠나면서 너처럼 이 땅에서 사라진 토종 동물을 복원하는 사업이 휘청거릴까 염려되는구나. 사향노루 스라소니 호랑이 수달 바다사자 같은 포유류 12종과 임실납자루 미호종개 풍사리 얼룩새코미꾸리 꼬치동자개 감돌고기처럼 이름 예쁜 물고기 12종이 잘 복원될지 걱정이다. 이뿐 아니라 양서·파충류 7종도 복원 대상인데 비바리뱀 수원청개구리 남생이 역시 예쁜 이름 아니더냐. 두드럭조개 나팔고둥 상제나비는 또 어떠냐. 광릉요강꽃 나도풍란 끈끈이귀개 매화마름 섬시호 등 식물 36종도 복원을 기다리는 중이구나.



한데 네가 자연으로 돌아가자마자 죽으니 이 사업을 ‘무모한 도전’으로 보는 이가 많아졌다. 사실 나도 네가 소백산으로 뛰어가던 날 마뜩잖았다. 환경이 파괴돼 못 살게 된 것인데 사람 손으로 너희들을 풀어만 주는 걸 얼른 이해하기 어려웠다. 돌이켜보면 일제는 강점 기간에 호랑이 곰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았고 그 와중에 몸을 피해 숨죽이던 너희는 6·25전쟁을 겪으면서 씨가 말랐다. 그러니 이제 산림이 울창해져도 찾을 길 없는 너희를 자연으로 돌려보내 생태계 균형을 맞추고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로 삼는 게 어찌 의미 없다 하겠느냐. 캐나다에서도 토종인 ‘스위트 폭스’라는 여우 복원에 성공했다더구나. 너처럼 사람 손에서 자란 녀석들을 숲에 풀어 줘 지금은 멸종 위기를 벗어났단다. 그러기에 한국에서도 희망을 갖고 추진했던 일 아니냐.

너를 보내고 이런저런 궁금증을 되짚어 보면서 걱정이 생겼단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물어보니 토종 동식물을 복원하는 데 올해 고작 28억 원이 배정됐다더구나. 현장에서 너희와 부대끼던 직원 사이에선 “다리 하나만 우리 주지…”라는 말을 한다더라. 너희 줄 먹이 사고 키우는 데 돈이 모자라다 보니 작은 교량 지을 돈 정도라도 이 사업에 들였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너는 애석하게 떠났다만 너무 아쉬워 마라. 2004년부터 방사한 반달가슴곰은 지금까지 34마리에 이른다. 11마리가 폐사하고 4마리는 부적응 판정을 받아 다시 사육장으로 돌아왔으니 성공률이 56%구나. 그러니 이제 네가 처음이던 여우 복원을 좀 더 기다려 봐도 괜찮다 싶구나. 부디 편히 쉬며 네 자손이 숲에서 무리지어 뛰노는 그날을 기원해 다오. 오호애재(嗚呼哀哉)라 여우여∼.

 


이동영 사회부 차장

 

 

http://news.donga.com/3/all/20121122/51019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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