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서 성별(性別)로 의사와 간호사를 구분하면 안 된다. 응급환자를 진찰하고 처치하는 의사는 여자, 혈압을 재고 약물을 투여하는 간호사는 남자인 경우가 많다. '의사=남자, 간호사=여자' 공식은 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의과대학생 절반 정도가 여학생이고, 서울 소재 간호대학 입학생의 20% 남짓은 남학생이다.
의대 강의실에는 수업에 성실한 여학생들이 앞쪽 자리를 메우고 있다. 강의실 분위기만 보면 여대 같다. 한편 간호대학들은 남자 화장실 늘리기에 한창이다. 병원 수술실의 간호사 공간에도 남성 탈의실을 새로 짓고 있다. 여의사가 늘면서 의사 공간에 여자 화장실과 당직실을 늘렸던 현상이 성별이 바뀌어 간호사 공간으로 옮겨온 것이다. 격한 진료현장인 응급실이나 수술실에서는 남자 간호사를 구하려고 난리다. 이들은 병원을 골라서 취업할 정도로 인기다.
남자 간호사는 지금까지 5100여명이 배출됐다. 전체 간호사 면허 29만여명에 비하면 아직 소수지만 최근 5~6년 동안 남자 간호사가 급격히 늘었다. 올해는 1000명의 남자 간호사가 배출됐고, 간호대 남자 입학생은 3700명이다. 이제 '백의(白衣)의 천사' '나이팅게일'이라고 해서 여자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얼마 전에 남자간호사회 발기인 대회도 열렸다. 이 자리에서 50년 전 우리나라 최초로 남자 간호사가 됐던 조상문(78)씨가 축사를 했다. 그는 "간호사를 천직(天職)으로 삼으면 결코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라며 "조만간 간호협회에서 남자 회장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질병 구조가 변하면 의료 서비스의 비중도 바뀐다. 과거에는 급성질환이 많았다. 맹장염(충수염)이나 구멍 난 위궤양 등 수술로 해결해야 할 상황이 잦았다. 따라서 질병 관리 대부분을 의사의 전문성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령시대를 맞아 만성질환이 다수다. 꾸준히 관리받아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치료보다 치유가 대세다. 이 때문에 미래 의료는 간호사 시대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간호사에 대한 활용은 시대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현재 2년 석사과정을 거쳐 가정 방문 간호, 응급 분야, 감염 관리, 마취, 중환자, 종양 전문 등 13개 분야를 별도로 더 공부한 전문 간호사가 대거 양성되고 있다. 의사들이 기피하는 외과·흉부외과 수술에 보조의(補助醫)로 참여하는 간호사도 1000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건강보험 의료수가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니 병원이 전문간호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려 하지 않는다. 의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전문성을 띤 간호사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함에도 말이다. 직장 생활과 보육을 병행하기 어려운 열악한 근무 환경 탓에 의료 현장을 떠난 간호사도 9만명에 이른다.
고령 장수 사회로 갈수록 간호사의 역할은 커진다. 병원뿐 아니라 다양한 공간에서 환자를 돌보고 건강관리가 이뤄지는 의료 서비스가 중요해졌다. 간호사 인력 구성과 수요는 빠르게 바뀌어가는데 의료 환경과 제도는 한참 뒤처져 있어 안타깝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18/20121118011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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