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삶'에 해당되는 글 1071건

  1. 2013.09.19 [아침을 열며] 소셜 벤처의 시대가 오는가?
  2. 2013.09.19 [정성희 칼럼]섹시 환상에 익사한 권력
  3. 2013.09.19 [횡설수설/박용]곤충의 가치
  4. 2013.09.19 [@뉴스룸/이재명]윤 선생의 마지막 애국심
  5. 2013.09.19 [초대석] ‘2011 노벨경제학상’ 토머스 사전트 교수
  6. 2013.09.19 [동아광장/최연혁]황우석 박사에게 연구 기회를 주자
  7. 2013.09.19 [오늘과 내일/하태원]공공외교, 마음속의 ‘코리안 루트’
  8. 2013.09.19 [아침논단] 북핵과 국제 테러리즘, 그리고 정밀 타격의 가능성
  9. 2013.09.19 [문갑식의 세상읽기] 과학기술원 강릉 분원에서 영그는 '꿈'
  10. 2013.09.19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13] 제돌이의 귀향
  11. 2013.09.19 [윤희영의 News English] 감동적인 깜짝 재회 An emotional surprise reunion
  12. 2013.09.19 [양상훈 칼럼] 머리 좋은 한국인, 어리석은 미국인
  13. 2013.09.19 [선우정의 태평로] 乙의 맛
  14. 2013.09.19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과학을 꿈꾸게 하는 SF 만화
  15. 2013.09.19 [기자 칼럼] 이제 神風(가미카제)은 없다
  16. 2013.09.19 동성애자까지 알아낸 '페북'
  17. 2013.09.19 [세상읽기] 박 대통령의 중국어 연설을 기대한다
  18. 2013.09.19 [초대석]“스티브 잡스 같은 창조인은 ‘톨레랑스의 품’에서 태어난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19. 2013.09.19 [동아광장/김인규]고시제도는 ‘창조경제’를 가로막는 암초다
  20. 2013.09.19 [오늘과 내일/박용]네덜란드 토마토의 무한도전
2013. 9. 19. 13:52

지난 주, 우연한 기회에 소셜 벤처의 컨설팅회사에서 한참 성장 중인 소셜벤처 대표 그리고 그들에게 투자하는 벤처 앤젤들까지 두루 만날 기회가 있었다. 수 백만원씩 하던 보청기를 34만원에 공급하는 한 회사의 사례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난청환자가 200만명 정도 있는데, 정부 보조금이 딱 34만원이다. 거기에 맞춘 제품을 출시한 회사가 대표적인 소셜 벤처다. 누구든 연락만 하면 0원에 자신의 보청기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5년에 한 번씩 새 걸로 교체할 수 있다. 뜻만 가지고 하는 자선사업은 아니다. 보청기 주파수를 표준화하는 등, 가격을 낮추기 위한 기술혁신과 함께 0원에 보청기가 제공되는 이 사업,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부도 못했고, 독지가도 못했던 일을 대학생들이 모여서 5년만에 이룬 일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나무를 키우면 정말로 나무를 심어주는 소셜 벤처,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에 발벗고 나선 소셜 하우징 전문 업체, 5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중이다. 나도 사회적 경제가 한국에서 커져나갈 것이고,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이런 것들이 실질적 대안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그렇지만 소셜 벤처가 이렇게 빠른 기간에 밑바닥을 다지고 사회적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역시! 한국 경제의 역동성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싶다.

벅찬 감동을 잠시 뒤로 하고 눈을 감고 생각해봤다. 6ㆍ25전쟁 이후, 한국의 최고 인재들이 모인 곳은 육군사관학교였다. 막 건국한 나라, 그것도 전쟁의 참사를 겪은 나라에서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나라는 젊은 장교들의 통치로 들어갔다. 육사 나온 사람들이 정말 오랫동안 한국을 통치했다. 경제라고 말할 것도 별 게 없던 나라에서, 세 끼 밥을 줄 수 있고, 줄줄이 딸린 식솔들을 먹여 살릴 고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곳, 그게 군대 아니겠는가? 70년대, 수출입국이 한참일 때, 한국의 인재들은 무역상사라는 곳에 주로 갔던 것 같다. 해외에 아무나 나갈 수 없던 시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이어를 만날 수 있던 무역상사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엔지니어들은 울산이나 포항과 같은 공장으로 갔다. 무역입국, 기술입국을 한국이 외치던 시절, 그렇게 인재들은 기업으로 몰려갔다. 지난 대통령이 그 시절에 세계를 뛰어다니던 대기업 간부였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연한 일은 아니다. 구조적으로, 한 번쯤은 대기업 CEO의 시대를 거칠 수밖에 없던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내가 만난 소셜 벤처 대표들은 경영학과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렇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많은 고등학생들은 이과라면 의사가 되려고 공부했고, 문과라면 경영학과에 가기 위해 공부했다. 그렇게 경영학과에 몰려간 수많은 젊은 재원 중에서, 대기업이나 외국계 회사에 가기보다 스스로 소셜 벤처나 사회적 기업으로 창업하려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혁신적 정신과 엔지니어들의 기술력, 남아도는 한국 금융의 여유자본 같은 것들이 결합되면서 소셜 벤처가 드디어 한국에서도 자생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떨까? 난 한국 경제의 미래는 물론이고, 한국 정치의 미래도 본 것 같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생각해보자. 그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 활동가로, 빈민가의 흑인들 집 고쳐주던 일을 했었다.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한국에 젊은 지도자가 나온다면, 지금 소셜 벤처에서 공익과 경제의 중간에서 활동하는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일 것 아니겠는가? 정부든, 삼성이든, 지금 몇 조씩 경쟁적으로 돈을 푼다고 한다. 그 돈의 아주 일부라도 공익을 고민하는 소셜 벤처로 흘러가면 좋겠다. 우리 모두의 미래와, 우리 모두의 윤리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진보든 보수든, 동의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이 방향으로 가자! 그렇게 토건의 시대를 흘려 보내고, 혁신과 창조의 방향으로 가자.



우석훈 내가꿈꾸는나라 공동대표 ㆍ경제학 박사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5/h2013052003304424370.htm



Posted by 겟업
2013. 9. 19. 13:31

‘깃털 같은 권력 나부랭이 잡았다고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는데? 정치창녀? 창녀보다도 못난 놈.’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으로부터 ‘정치적 창녀’ 소리를 들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가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윤 씨를 지목해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지금에 와서는 ‘창녀 공방’보다도 ‘깃털 같은 권력’이란 대목에 눈길이 간다. 한때 권력의 정점에 서봤던 김 씨가 윤 씨의 말로를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윤 씨는 권부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실명으로 비판하는 칼럼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정치인과 권력자가 그의 펜 끝에서 굴욕을 당했다. 그런 그가 권력 핵심으로 들어가더니 자신이 비판했던 사람들의 잘못은 티끌처럼 보일 정도의 막장드라마를 연출하며 추락했다.

그는 왜 대통령 방미라는 중차대한 시기에 성추행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을까. 평소 호색한이었을까. 이국의 흥취에 젖어 하룻밤 일탈을 꿈꾸었을까.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권력자의 머릿속에는 일종의 ‘성적 특권의식’이 존재한다. 권력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영웅은 호색(好色)이고 임금은 무치(無恥·부끄러움이 없다는 뜻)라 했으니 옛사람들도 권력의 이런 속성을 간파했던 셈이다. 벼락출세한 윤 씨에게도 결국은 권력이 문제였다. 

권력의 특징에는 스타의식도 있다. 나는 선택받고 매력 있는 존재이므로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숭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스타의식이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스타의식에 빠지기 쉽지만 기업 지배구조 평가업체인 GMI레이팅스의 폴 호그슨에 따르면 정치인이나 고위관료, 기업 최고경영자(CEO) 같은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그는 “권력은 최음제”라고 말한다. 권력을 잡게 되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가볍게 한 이야기가 다음 날이면 보고서로 책상에 올라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권력의 맛에 중독되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없고 여자들조차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가 박근혜 대통령의 ‘윤창중 발탁’을 우려했지만 윤 씨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여기자들이 자꾸 전화해 귀찮게 한다”고 ‘불평 아닌 불평’을 하는 등 자신의 힘을 즐기는 눈치였다고 한다. 왜 하필 기자가 아니고 여기자인가. 청와대 대변인인 그에게 기자들이 접근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는 왜 여기자만 의식했을까. 혹여 여기자가 자주 전화했다고 해도 취재 목적일 터인데 그는 자신이 매력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무리 술김이라지만 갓 스물을 넘은 인턴 여대생을 어찌해 보겠다고 한 의식의 기저에는 이런 왜곡된 스타의식이 깔려 있었음 직하다. 

권력은 ‘숨겨진 욕망’의 빗장을 풀게 한다. 권력자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부단한 노력과 자기절제, 철저한 주변관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정점에 서면 그동안 참았던 욕망을 분출하고 그간의 고통을 한꺼번에 보상받고 싶어 한다. 힘겹게 권좌에 올라선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기행으로 추락하는 것은 권력이 욕망의 고삐를 풀어 놓기 때문이다. 전쟁영웅 출신인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의 불륜 스캔들이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호텔 여종업원 강제추행이 대표적이다. 

윤 씨의 행동은 이들과 비교해도 부끄럽다. 상대 여성이 권력관계에서 취약해도 너무 취약한 인턴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다. 권력을 누구보다 앞장서 비판했던 그는 권력에 너무 빨리 취했다. 권력에 무장해제당한 듯한 그에게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갈망의 다른 이름이었는지 모른다.


정성희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30517/55214861/1



Posted by 겟업
2013. 9. 19. 13:29

1990년 베트남에서는 어린이들의 영양실조가 심각했다. 그러나 가난한 가정에서도 유독 튼튼한 아이들이 있었다. 미국 연구팀은 이들이 들과 논에서 뛰놀며 달팽이나 곤충 등을 잡아 조금씩 자주 먹으며 허기를 때운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 아이들의 식사법을 보급해 영양실조 퇴치에 기여했다.

▷곤충은 과거 수렵과 채집을 통해 살아가던 인류의 유용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농경이 대세가 된 지금도 세계 20억 명이 딱정벌레 애벌레 벌 개미 메뚜기 귀뚜라미 등 1900여 종의 곤충을 먹는다. 중국은 두부에 개미나 메뚜기를 넣어 먹고, 동남아에서는 베짜기개미 알을 진미로 친다. 보릿고개를 겪었던 한국의 중장년들이라면 메뚜기 번데기 등으로 허기를 달래던 ‘식용 곤충’의 추억을 갖고 있다.

▷최근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미래의 식량 대안으로 곤충을 주목하고 있다. 2050년 90억 명으로 불어날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고단백 저지방에 마그네슘 철 아연 같은 무기질이 풍부한 곤충만한 대안이 없다는 거다. 곡물과 육류 생산을 위한 농경지와 목초지는 자연을 훼손하지만 곤충은 그런 우려가 없어 일석이조다. 문제는 식용 곤충에 대한 혐오감을 극복하고 안전하고 친환경적 생산법을 개발하는 일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식용 곤충의 연구개발 투자에 나섰다. 마르셀 디커 바헤닝언대 교수는 “2020년경 슈퍼에서 벌레를 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구상 동물 중 가장 많은 게 곤충이다. 알려진 것만 약 100만 종이 있다. 유기물 분해나 꽃가루받이도 곤충이 한다.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4년 내에 멸종한다”는 섬뜩한 경고까지 했다. 최근에는 식용 이외에 해충 방제, 사료, 약재, 환경 정화, 애완용으로 쓰임새가 넓어지고 있다. ‘동의보감’에 약재로 쓰이는 곤충 목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곤충을 여러 용도로 활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정부도 2011년 곤충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해 곤충의 산업적 가치를 주목했다. 이쯤 되면 “벌레만도 못하다”는 말이 곤충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지도 모르겠다. 


박용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30516/55184489/1



Posted by 겟업
2013. 9. 19. 13:28

‘윤 선생 영어교실’이 새삼 화제다. 같은 듯 다른 세 단어가 있다. grip, grasp, grab. 모두 ‘잡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grip은 손잡이가 있는 물건을 견고히 잡을 때 주로 쓴다. grasp는 ‘기회를 잡다’와 같이 간절함이 담겨 있다. grab는 빠르게 잡는다는 의미다. 허락 없이 남의 엉덩이를 잡을 때처럼. 엉덩이를 뜻하는 고상한 단어 buttock도 덤으로 배웠다. 이 단어는 s를 붙여 주로 복수형으로 쓰인다. grab buttocks!

우리에게 이 단어들의 용법을 확실하게 알려준 윤 선생은 다름 아닌 윤창중이다. 국격(國格)과 바꿔 먹은 단어들이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윤 선생의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 미국 방문 동행기자로 한미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그와 함께 백악관 브리핑룸에 갔을 때 그가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봤다. 평소 그답게 말을 아끼고 웃음으로 때웠다.

한미 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다지만 조간신문 기자에겐 큰 괴로움이었다. 정상회담은 한국시간 8일 0시 반에 시작됐다. 8일자 신문에 기사를 실으려면 사전 브리핑이 필요했다. 정상회담이 열리기 4시간 전 윤 선생이 프레스룸에 나타났다. 진짜 괴로움은 그때부터였다. “나눠준 자료대로 바로 쓰면 돼. 내가 기사체로 다 만들어 왔어. 역대 이런 대변인 봤어?” 그의 우쭐거림이 영 거슬렸지만 마감시간에 쫓겨 말을 섞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기자 생활 14년 동안 이런 대변인은 처음이다. 지난달 말경 청와대 기자실에서 기사를 쓰고 있는데 그가 내 자리로 왔다. “너 인터넷 기자야?” 뜬금없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알고 보니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들과 끊임없이 토론한다는 한 특파원의 칼럼을 인용한 부분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백악관 브리핑룸 앞에서 그가 나를 불렀다. 여전히 앙금이 남은 것이다. “백악관 대변인은 다를 것 같아. 천만에! 나랑 똑같아.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 이게 성추행 의혹 사건이 터지기 전날의 일이다.

그는 11일 기자회견에서 성추행이 없었다며 ‘윤창중 이름 석 자’를 걸고 맹세했다. 그다운 맹세다. 누군가는 홍보를 을(乙)의 종합예술이라 했지만 그에게 홍보란 갑(甲)의 자기과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만 알고, 나만 말하고, 나만 옳은.

성추행의 진실 못지않게 그의 진심이 궁금하다. 그는 기자회견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제 양심과 도덕성과 애국심을 갖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겠다.” 하루빨리 미국으로 건너가 자진 조사를 받는 게 그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애국심이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30516/55184590/1



Posted by 겟업
2013. 9. 19. 13:24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멀티미디어동에서 만난 토머스 사전트 교수(70)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복잡한 수식(數式) 메모와 자료들이 겹쳐서 놓여 있었다. ‘역시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여서…’라는 마음이 들 때쯤 의외의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두산 베어스의 야구모자였다.

“야구를 좋아하냐”고 묻자 교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잠실구장에서 종종 야구를 보는데 LG 트윈스와 두산의 경기를 보다가 팬이 됐다는 것. 그는 “미국에서도 야구를 자주 보러 다녔지만 한국 야구장에서는 치어리더들이 아주 잘 짜인 안무로 응원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질서정연하면서도 신나게 즐기는 모습이 정말 좋더라”고 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부 학생들이 꾸린 야구단 연습에도 참여한다. “나이가 있어서 학생들이 안 받아 줄 거라 생각했는데 야구를 같이 하자고 학생들이 먼저 말해줘서 기뻤다. 매주 함께 연습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3월 신학기부터 새롭게 시작한 한국 생활에 푹 빠진 듯했다. 이날 김재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배석해 통역을 도와주었다. 


○ “한국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

사전트 교수는 그동안 미네소타대, 시카고대, 스탠퍼드대, 프린스턴대, 뉴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수많은 제자를 키웠다. 한국 학생들은 그에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그의 말이다. 

“우선 결석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미국 학생들은 결석률이 30∼40%나 된다. 한국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한 학생이 정말 많다.”

그는 한국 학생들의 성실성과 함께 스승에 대해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려 한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다만 “미국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에게는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 강의는 수식을 통해 증명하고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조용히 수업을 듣던 학생 몇 명이 수업이 끝나고 나를 따라왔다. 그러더니 한 학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까 교수님이 설명한 수식과 증명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아뿔싸, 내가 틀린 거였다.”

사전트 교수는 학생에게 “당연히 이해가 안 가겠지! 내가 실수해서 잘못 썼으니까. 내가 틀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이 무안해할까봐 혹은 예의가 아닐까봐 수업 중에 말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실수를 엄청 많이 하는 사람이다. 앞으로는 의심이 나거나 틀렸다고 생각되면 교실 안에서 다 같이 이야기하고 토론해보자.”

그는 인터뷰 중에도 여러 차례 “교수는 완벽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특히 컴퓨터 기술이나 새로운 통계 방식, 새로운 이론에 대해 오히려 학생들에게서 배운다고 했다. 단순히 일방통행식 강의가 아니라 교수도 학생들로부터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진 점이 신선해 보였다. 


○ “고민하는 과정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전트 교수는 과거에도 몇 차례 “한국 경제의 놀라운 성과는 정부가 잘해서라기보다는 한국인의 교육열과 개개인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한 열정을 바탕으로 이뤄졌다”고 강조한 바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열을 칭찬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한국인 사이에는 ‘과연 우리 교육이 본받을 만한 것인가’ 하는 회의적인 시선도 일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어떨까. 

사전트 교수는 “한국의 교육열이 지나치다고 하는데 미국도 마찬가지다. 중산층 이상이 들어가는 유치원에서는 네 살짜리 아이는 물론이고 부모를 함께 불러서 면접을 한다. 미국 부모들도 점수에 무지 신경 쓴다. 따라서 한국의 교육열에는 잘못된 점이 없다. 다만 성적에만 신경 쓰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그건 쥐가 통 속에서 쳇바퀴를 계속 빠르게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 진화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커의 말을 인용해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꼭 배워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 통계학, 생물학, 기초경제학 지식이다. 사람은 주어진 정보를 갖고 잘못 인식하거나 한쪽에만 정신을 집중해 중요한 데이터나 자료를 놓치기 쉽다. 통계학 생물학 기초경제학, 이 세 가지를 열심히 공부하는 건 점수를 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개인이 어떤 선택의 순간에 놓일 때 어리석은 결정이 아니라 본인에게 가장 올바른 선택을 내리도록 이끌어준다”고 말했다. 

이 시점에서, 그에게 “한국 학생들이 행복해 보이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단호한 얼굴로 “그렇다”고 말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진지하고 어두운 얼굴로 고민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넋두리와 고민을 늘어놓는 것을 봤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고민 그 자체가 행복이라고? 기자가 듣기엔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답변이었다. 기자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고민을 왜 하는가? 미래에 더 나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때문 아닌가. 나에게 좀 더 맞는 직업이 무엇일까,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나한테 유리할까 고민한다는 것은 최고의 합리적 선택을 지금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국의 청년실업이 드리운 그늘이 짙어 보였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역시 경제학자다운 답이 돌아왔다. 

“한국의 고용시장은 구조조정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 대학생들이 몇몇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그 회사에서 치르는 적성검사나 채용시험을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직자들이 줄을 길게 서서 문 안에 들어갈 순번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직자들도 이 과정을 거치면서 선택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로스쿨을 예로 들었다.

“지금은 로스쿨 입학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데 계속 변호사가 늘다 보면 수임료나 근무 환경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근무지에 지원하게 된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 로스쿨 진학 자체가 바보 같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돈은 돈대로 들지만 이익을 회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색다른 지적을 했다.

“한국의 고용시장 구조조정 과정에는 다른 나라와 다른 요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부모’이다. 한국은 외국과 달리 오랜 기간 부모와 동거하면서 경제적인 원조를 끊임없이 받는다. 돈 있는 부모가 자식의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수많은 청년 구직자가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원하는 일자리가 나올 때까지 대기한다면 고용 구조조정 기간이 매우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갤럭시노트의 터치 펜이 창조경제” 

정부의 시장 개입에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는 그가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창조경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창조경제’라는 말 자체가 매우 모호한 개념”이라며 갑자기 옆에 놓여 있던 메모지에 X축과 Y축, 수평선을 죽 그었다. 

“1인당 소득이 매우 낮은 상태로 오랫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다가 갑자기 크게 수직으로 올라서는 시점이 오는데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이 그랬다. 미국, 유럽이 뒤를 이었고, 한국은 1960년대 후반이 그랬다.”

그는 수직으로 솟구치는 그 지점에 점을 찍으며 “바로 이때가, 창조가 발현될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국가는 카피(모방)를 하면서 경제를 성장시킨다. 지금은 일본이 인건비가 높은 나라라고 하지만 1960년대 내가 미국에서 듣기로는 일본은 저임금에 노동집약적으로 물건을 만들어 파는 나라였다. 2000년대 중국처럼 말이다. 한국도 처음 자동차를 외국에 수출할 때 모방에서 시작했다. 그러던 한국이 변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휴대전화인 삼성 갤럭시노트2를 꺼내더니 옆에 붙어 있는 펜을 뽑아들었다. “카피로만 끝나면 창조경제가 아니다. 더 많이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이 펜은 아이폰에는 없다. 남이 만들어내지 않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창조경제다. 하지만 정부가 개입하는 것에는 반대다. 정부가 개입해 봤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천혜의 자원을 가진 데다 경제 사정도 좋았던 아르헨티나가 기울기 시작한 것도 정부의 지나친 개입과 규제,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경제정책, 무능 때문이다.” 

그를 만나기 전, 기자는 A4용지에 빼곡하게 쓴 질문지를 준비했었다.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한 그의 혜안을 기대하면서, 또 혹시라도 노벨상 수상자가 ‘너무 무식한 질문을 하는 것 아니냐’고 할까봐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경제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하자 그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현재 냉각된 부동산 시장에 대한 해결책을 묻는 질문에서도 껄껄 웃으며 “나도 잘 모른다. 아마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답을 알고 싶어 하는 질문일 거다”라고 말했다. 

겉으론 “나는 실수도 하고 잘 틀리는 사람이다. 교수가 모든 걸 알 것이라는 편견을 깨라”는 가르침처럼 들렸지만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모습이 캠퍼스의 여느 20대보다 더 열정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요즘 관심은 한국의 통화정책을 연구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의 연구실을 나오면서 기자가 느낀 것은 ‘답’이 아니라 끊임없는 호기심과 도전정신이었다. 하긴, 그것이야말로 이 노교수를 물설고 낯선 땅으로 오게 한 동력이 아니었을까.


:: 토머스 사전트 교수는 ::

거시경제, 화폐경제학, 계량경제학에 정통한 미국 경제학자다. 1964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학사를, 1968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0년대 이후 거시경제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합리적 기대가설’을 발전시킨 경제학자로 2011년 프린스턴대 크리스토퍼 심스 교수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가 쓴 ‘거시경제학이론’은 경제학도의 교과서로 널리 쓰인다. ‘합리적 기대가설’은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이용해 합리적으로 상황을 판단한 후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기 때문에 정부가 어떤 경제정책을 펴더라도 미리 미래를 예상해 행동한다는 가설이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깜짝 정책을 내놓아도 왜 효과가 없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는 올해 3월부터 서울대 경제학부 전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부터 한국은행 국외 고문을 맡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인터뷰=노지현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30527/55429829/1



Posted by 겟업
2013. 9. 19. 13:20

스웨덴에 살면서 매년 10월부터 시작되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발표가 있을 때마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라디오를 켜는 버릇이 생겼다. 벌써 26년째 실낱같은 기대와 커다란 실망의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 2005년 가을은 유난히 우울했다. 대한민국에 노벨 의학상을 안겨줄 것이라 믿었던 황우석 박사의 연구 진위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엄청난 충격과 실망,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인 교수인 내가 이곳에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대한민국의 비약적 경제성장, 제도적 민주화,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한 높은 교육열과 대학진학률을 유럽 학생들에게 자료로 보여줄 때다. 세계 어떤 나라도 이 세 가지를 50년 내에 동시에 이룬 예는 없다.

그런데 문학, 기술, 과학, 의학연구에 있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과학기술 수준은 다양하게 평가되겠지만 단적으로 노벨상에 근접해 있는 과학기술에 종사하고 있는 연구인력이 한국은 여타 선도국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노벨상에 가장 근접해 있었던 황 박사의 배아줄기세포연구는 이제 미국에 역전당한 상태고, 일본은 작년에 이미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에서는 매년 고은 시인의 가능성을 가슴 졸이며 기대했지만 현지 언론은 싸늘한 평가를 내놓기 일쑤였다. 고은 시인의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고 했던 2010년에도 현지 언론들은 가능성이 가장 낮은 후보군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이곳 언론 평가는 상당히 정평이 나 있어 어느 정도 유력 후보 윤곽을 잡는 데 매우 유용한 길잡이가 된다. 이런 상황을 잘 모르는 한국 언론들만 야단법석을 떨었던 셈이다.

문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내려면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선정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그리고 무엇보다 스웨덴 국민들이 읽을 수 있도록 스웨덴어로 번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스웨덴 한림원이 스웨덴 독자들의 평가와 인기 순위를 참고한다는 것은 비공식적 상식으로 알려져 있다. 한림원은 세계 대표 언어로의 번역 건수 및 각국 독자들의 평가, 그리고 사회적 변화에 끼치는 영향까지도 꼼꼼하게 챙기기 때문에 번역에만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한국의 문인들이 지구촌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과학 분야의 경우에는 연구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제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칼 폰 린네(식물학명 분류), 셀시우스(온도계), 옹스트롬(나노단위 발견), 베르셀리우스(원소기호 명명체계 완성), 알프레드 노벨 등의 세계적 학자와 발명가들이 스웨덴에서 배출된 것은 한림원의 집중적인 기초연구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은 1월 생명윤리 등의 이유로 금지했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해금을 추진했고, 결국 5개월이 지난 시점인 며칠 전에는 배아줄기세포 복제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해금 조치는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라 엄청난 재정지원을 하고 있는 연구기금 출연자들의 끈질긴 노력과 국가적 이익을 중시하는 사법적 판결 때문이었다. 미국 정치인들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대학연구소, 연구기금 출연기관들은 대법원의 판결이 유리하게 진행되도록 미국 사회를 설득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역시 황 박사의 ‘연구 해금’을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미래의 먹거리뿐 아니라 의료치료용으로 상용화될 때 인류에 어떻게 기여할지에 대한 당위성은 충분히 제시되었다고 본다. 이대로 간다면 한국이 앞섰던 기술은 영영 미국 일본에 내주고 이 분야에서 기술 종속국이 될 것이다. 황 박사의 해금을 통해 우리가 현재 가장 앞서 가고 있던 분야에 대한 재선점을 시도해야 할 때다.

이미 2011년 7월 캐나다 특허청은 황 박사가 2004년 서울대 연구진과 함께 공동으로 성공시킨 ‘환자맞춤형 인간복제 배아줄기세포’(일명 ‘1번 줄기세포’·NT-1)에 대한 물질특허와 방법특허를 인정했다. 물질특허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물질에 대해, 방법특허는 그 물질을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2006년 ‘황우석 사태’ 당시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조작된 것으로 발표한 2005년 줄기세포와 별개로 2004년 줄기세포는 국제적으로 실체가 인정된 것이다. 이번에 미국에서 발표된 배아줄기세포복제 논문도 크게는 이 특허의 범주에 속한다고 하니 창조경제를 바탕으로 국가발전을 도모하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적 기조와도 궤를 같이한다고 본다.

황 박사는 1, 2심에서 연구비 사기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1, 2심에서 유죄를 받은 생명윤리법위반 건이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대법원의 좀더 유연하고 국익을 고려한 전향적 판결을 기대해본다. 이제 환갑이 넘은 한 연구자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보더라도 황 박사의 연구 해금은 지금도 많이 늦었다.


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퇴른대 교수 정치학



http://news.donga.com/3/all/20130525/553966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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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3:12

세계 어디를 가나 아이들의 미소는 해맑다. 생명의 기운을 갈구하는 폐허의 땅,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났던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연필과 공책을 쥐여주면 뛸 듯이 기뻐한다. 이곳에서 알게 된 사실 또 하나. 아이들이 있는 곳은 절대 안전지대라는 점. 시도 때도 없이 로켓탄과 급조폭발물(IED) 공격, 자살테러 등을 감행하는 탈레반이지만 아이들은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다. 아프간 주둔 미군들 입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미군은 늘 쫓기듯 움직였다. 바그람 기지 밖에 있는 비무장의 아프간 주민을 만나러 갈 때도 완전군장에 10kg이 넘는 방탄조끼를 두른 뒤 IED가 터져도 끄떡없는 특수장갑차를 타고서야 겨우 한두 걸음이다. 2001년 10월 개전한 뒤 10년 넘게 압도적 군사력을 갖고도 탈레반을 제압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공공외교의 실패다.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미국 편이라 해도 3000만 아프간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공외교는 이미 주요국 외교정책을 좌우하는 대세(大勢)가 된 지 오래다. 정치와 경제, 군사 중심의 흘러간 외교 방식을 버리고 대상국 국민에게 직접 다가가서 설명하는 적극적 소통(疏通) 방식이 공공외교다. 그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우리 정부도 세계 178개 공관을 통해 활발한 대민 공공외교를 독려하고 있다.

외교부 첫 공모로 선발된 최고 수준의 비보이단(團)과 퓨전국악그룹을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 문화사절단으로 파견한 것도 한류(韓流) 열풍의 ‘끊어진 고리’로 평가받는 서남아시아 지역에 새로운 고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방글라데시와의 수교 40주년, 스리랑카의 독립 65주년을 계기로 삼았다.

공연단은 우리의 멋과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면서도 현지 국립무용단과의 협연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주재국 문화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획한 것이다. 4월 말 발생한 의류공장 붕괴사고로 10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방글라데시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공연 앞부분을 애도와 묵념의 시간으로 할애한 것도 그 때문이다.

두 나라의 반응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지난해 ‘대장금’의 히트로 한국 드라마 열풍이 불기 시작한 스리랑카 공연에는 대통령 부인과 주요 각료가 대거 참석했다. 이틀간 초만원이었고, 주요 방송국을 통해 지금도 재방송이 나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한류 확산도 눈에 띈다. 현지 미디어의 파급력을 공공외교의 최종 병기로 활용하겠다는 최종문 스리랑카 대사의 전략이 주효했다.

방글라데시의 이윤영 대사는 한국 문화를 최상류층이 향유토록 노력하고 있었다. 여론 주도층이나 영향력이 큰 인사들을 상대로 공공외교를 펼쳐 한국의 가치가 일반 대중에까지 확산되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두 번의 공식 공연 외에 방글라데시 상위 5%들의 모임인 ‘굴샨클럽’ 특별공연도 호평을 받았다.

‘착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면 ‘착한 방법’을 써야 한다. 외교부는 현지 관습과 문화적 특성, 외교 관계 등을 고려해 현지 재외공관이 구상한 맞춤형 공공외교를 권장하고 있다. 본국에서는 ‘원칙’만 얻고 방법은 현지 공관이 찾아낸 ‘코리안 루트’를 적극 활용하라는 것이다. 현지에서 한 땀 한 땀 떠놓은 인적 네트워크에 한국의 매력을 실어 주재국 국민들의 가슴속으로 스며들도록 하는 방법이다. 꽃을 팔려고 서두르지 말고 먼저 향기를 맡게 하라는 것이다. 마음이 오면 몸이 오고, 몸이 오면 생각도 따라 오게 마련이다. 

한국은 침략의 원죄(原罪)가 없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원조도 하지 않는다. 기적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드문 나라이기도 하다. 스토리가 있는 나라인 것이다. 스토리는 공공외교 선진국의 좋은 자산이다. 한류 불모지로 여겨지는 서남아에서 공공외교 강국의 꿈이 이제 막 영글어 가고 있다. ―다카(방글라데시)에서


하태원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30514/55129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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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3:07

핵과 미사일로 위협당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놀랄 정도로 덤덤하다. 북한이 바라는 바가 바로 남한 사회의 동요와 불안이기에 이런 태도는 기본적으론 바람직하다. 그러나 가끔은 지나치게 무심한 듯도 하다. 위협에는 의연한 태도를 보이되 현실을 냉정히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제 전략 문제의 권위자인 제러미 수리(Jeremi Suri) 텍사스 대학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북핵 위기의 지속은 동아시아의 안정을 흔들고 핵 확산 중단을 위한 지구촌의 노력을 해치기에 북한이 도발하기 전에 군사시설에 국한된 선제적 정밀(도려내기) 타격을 주문했다. 북한의 위협을 방치하면 한국·일본의 핵무장을 자극할 것이고, 이란과 같은 고립된 국가를 부추길 것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그는 북한에 대해 먼저 정밀 타격을 해도 북한의 보복 공격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았다. 이는 보복이 결국 자살행위라는 것을 북한 정권이 잘 알고 있고, 중국도 이를 용인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참고로 수리는 위스콘신대 사학과 교수였던 2005년, 강정구 교수가 북한의 6·25 남침을 찬양하는 등 물의를 일으켰을 때 조선일보 특별 기고(10월 18일자)를 통해 강정구 교수 논리의 허구성을 낱낱이 지적하며 "핵 기술을 보유한 북한이 고립되고 호전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있는 세계에서 한국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며 "진정한 위협은 북한에서 오고 있음을" 직시하라고 조언했다. 그의 우려는 현실화됐다.

북핵 위기는 단지 한반도나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문제이며 테러리즘과 밀접히 연결돼있다. 실패한 국가(failed state)와 테러 조직은 서로 친밀성을 갖기 쉽다. 빈 라덴의 알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와 협조해 일으킨 테러는 좋은 예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실패한 체제는 핵이라는 요소를 더 갖고 있다. 국제 안보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 하버드대 교수는 이제 국가들의 핵 확산보다도 더 심각한 위협은 테러리스트들이 대도시를 대상으로 벌일 핵 테러 가능성이며, 국제사회는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핵 테러는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있기에 가장 효과적인 테러 수단이 된다. 목표가 뉴욕이 될 수도 서울이 될 수도 있는 등 예측 불가능하기에 더 공포스럽다.

핵무기·핵물질이 국제 테러 집단에 넘어갈 가능성은 크게 보아 네 가지다. 구(舊)소련이 해체되면서 흘러나왔을 가능성, 그리고 파키스탄·이란·북한에서 흘러나올 가능성이다. 구소련의 핵무기는 비교적 순조롭게 러시아로 이관됐으며, 파키스탄도 면밀히 감시되고 있다. 이란의 살상용 핵 기술은 아직 초보적 수준이고 만일 상용화 단계에 이른다면 이스라엘이 그것을 확실히 무력화할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다. 독자적으로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없는 이 체제는 비싼 값에 핵무기·핵물질을 팔 의향이 있으며 테러 집단은 이것을 구입할 용의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앨리슨 교수를 비롯한 안보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이 미사일·핵무기 관련 기술을 아무 데나 파는 '편의점'이 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런 구조 때문에 북핵은 세계가 우려하는 초미의 관심사다. 만약 이 사태가 더 진전된다면 정밀 타격 가능성은 높아진다. 다행히 이런 사태 전개를 막을 요인도 존재한다. 바로 중국의 변화다. 북의 전통적 혈맹인 중국은 5세대로 지도부 세대교체를 끝냈다. 새 지도부는 문화대혁명의 혼란을 청소년 시절 경험했고 문혁 종료 즈음에 대학에 입학한 세대로서 선배 세대가 갖는 북한에 대한 근본적 애정이 적다. 중국 정치협상회의 자칭궈 상무위원은 며칠 전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경우, 한국은 북한에 보복할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까지 발언했다. 예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언이다. 김정은도 할아버지·아버지가 중국과 가졌던 끈끈한 유대감이 없고, 오히려 이복형인 김정남이 중국과 관계가 더 깊다. 또한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또래인 박근혜 대통령 등 남한 인사들과 인적·정서적 유대가 있는 편이다.

북핵 문제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함의를 갖고 있다. 북한 정권이 오판을 계속할 경우 정밀 타격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고, 그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을 것이다. 북한은 바뀐 국제 환경을 이해하고 국제사회와 소통하는 데 눈을 돌려야 한다. 도발을 무턱대고 옹호할 나라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김정은 체제가 이제라도 마음을 바꿔 무모한 위협과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를 원한다면 대한민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넓은 가슴으로 북한을 품으며 공생과 공영을 추구할 것이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현대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12/20130512006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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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3:06

#몽골 초원을 헤맨 한국인이 있었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소속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을 찾은 곳은 사막(沙漠)이다. 여기서만 자라는 천연 야생초에서 '드라코 세팔룸포에티디움'이란 성분을 뽑은 것이다.거기에 시나몬, 유칼립투스, 레몬, 제라늄, 고삼 추출물, 오일을 섞어 탄생한 것이 '아톨로저DF 항균(抗菌) 비누'다. 한 번 씻으면 9시간 동안 피부가 촉촉하게 유지되는 것은 물론 온갖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아준다. 비누는 100g당 1만4000원이다. 꽤 비싼데 효능을 맨 먼저 인정한 것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세이부백화점이었다. 이 비누는 세이부의 입점(入店) 테스트를 한 번에 통과한 뒤 시부야·이케부쿠로 등 5곳에 깔렸다.

#비슷한 시기 태백산맥을 동서로 가르는 대관령(大關嶺)을 헤집고 다닌 연구원도 있었다. 수백 종의 산나물을 분석한 끝에 그가 주목한 것이 '이고들빼기'란 식물이다. 거기서 뽑아낸 게 '퀴논 리덕타아제'란 효소다. 지금껏 강원도 산(山)사람 중 일부가 이 나물을 김치로 담가 먹을 뿐이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니 술을 많이 마시거나 오랜 기간 약물을 복용해 간(肝)이 상한 이들에게 이것이 기막힌 치료제였던 것이다. 그뿐인가. 대관령에서 내려다보이는 동해안의 돌기해삼(海蔘)을 여태껏 사람들은 초고추장에 찍어 먹을 줄만 알았다. 알고 보니 그것은 기막힌 화장품 소재였다. 과학으로 무장한 지성에 자연은 보고(寶庫)인 것이다.

지난 금요일 강릉과학단지 안에 있는 KIST 강릉 분원(分院)에 갔다. 나들이엔 오건택 KIST경영지원본부장과 임환 문화홍보실장이 동행했다. 비가 영서(嶺西)를 적시던 날씨가 대관령을 넘자 거짓말처럼 화창하게 변했다.때마침 하루 전이 분원이 생긴 지 10년 되는 날이다. 오 본부장은 KIST가 보유한 2개 분원의 건설을 도맡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강릉과학단지 50만평 중 강릉분원의 입지(立地)는 기막히다. 진산(鎭山)을 등에 지고 좌청룡·우백호 정남향에 경포호가 차로 5분 거리다.
 
"처음엔 맨 높은 쪽이 배정됐어요. 경치는 그럴듯했지만 바람이 셌어요. 어느 눈 온 다음 날이었습니다. 강릉으로 달려가니 여기만 눈이 녹아 있어요. 제일 양지바른 곳이죠. 알고 보니 강릉시청이 탐내던 자리였대요." 용(龍) 머리에 오 본부장은 연구센터를 지었다. 지방 과학의 첨병(尖兵)이 되란 뜻이었다. 거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 KIST가 주목한 것은 농업이었다. 누구나 낡았다고 생각한 농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은 역발상이다. 이렇게 탄생한 것은 이른바 '케이 팜(K-Farm) 프로젝트'다. 40년 전 포항제철과 삼성전자와 현대중공업 같은 중후장대(重厚長大)형 기업의 청사진을 그려 근대화의 씨앗을 뿌린 KIST가 농업에 고개를 돌린 이유가 있다.


미래의 이슈는 수명 연장, 그게 바로 국민 행복지수와 연결되는 산업이라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KIST의 과학자들이 옛 심마니처럼 심산유곡을 헤매야 한다는 뜻인가? 천연산업이라지만 원료는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여기서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KIST의 ICT가 동원됐다. 식물의 크기, 색, 형태, 향기, 맛을 이미지-영상 기술과 로봇 자동화 기술과 센서 기반 모니터링 기술과 성분 분석 기술로 분석하니 땅 없는 농업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해서 10년간 일궈낸 성과가 SCI급 논문 304편을 포함한 논문 394편과 특수출원 114건이다. KIST의 기술을 이전받은 회사는 돈방석에 앉게 됐고 KIST는 번 돈으로 연구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처음엔 '구라' 같던 오 본부장의 입담이 들으면 들을수록 '기적'처럼 들리는 것은 취재 후 동해 파도 소리를 들으며 소주잔을 기울인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김영현 연구지원부장이 뭔가를 꺼내는 것이었다. 인삼(人蔘)에 포함된 사포닌 성분을 400배로 높여 만든 '진삼(眞蔘)'이라는 술이었다. 부르기는 술이라 하지만 그는 이것을 "하루에 딱 두 잔만 마시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워낙 효능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 꽤 취기(醉氣)가 돌아 내심 "무슨 효과가 있으랴" 싶었지만 순간 경이(驚異)가 일어났다. 갑자기 눈앞이 맑아지는 것이 아닌가. 오랜 취재 생활에서 이런 경험은 언젠가 명의에게 침(鍼)을 맞았을 때뿐이다. 눈만 맑아진 게 아니었다. 새 대통령 등장 후 많은 석학(碩學)에게 '창조경제'에 관한 설명을 들었을 때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바로 KIST는 창조경제를 실천하고 있고 그게 지방 과학을 선도했던 것이다.

참으로 상쾌한 출장이었지만 그 느낌이 귀경길 소양강 근처에서 깨지고 말았다. 윤창중 청와대 전(前) 대변인의 성추문 의혹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는 전언을 받은 것이다. 속세로 돌아오고 있다는, 그래서 몸도 마음도 때묻어간다는 느낌이 그때만큼 강하게 든 적이 없다.



문갑식 선임기자





Posted by 겟업
2013. 9. 19. 12:59

지난 5월 11일 제돌이가 드디어 제주 바다로 돌아갔다. 무려 4년여의 억류 생활에서 벗어나 고향 품에 안긴 것이다. 아침 7시경 서울대공원을 출발한 제돌이는 무진동 특수 차량과 특별 전세기를 이용해 오후 2시 50분경 제주 성산항에 마련된 해상 가두리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접하는 야생 환경에 잘 적응할까 우려하던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제돌이는 입수하자마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방큰돌고래 두 마리의 꽁무니를 쫓기 시작했다. 제돌이는 수컷이고 '춘삼이'와 'D-38'은 이름이 좀 그렇지만 암컷이다.

제돌이 야생 방류는 매우 큰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주로 부정적인 경우에 쓰인 표현이라 조금 저어하게 되지만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초'인 이번 일로 나는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적극적으로 자연을 보호하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이란 단순히 경제력과 군사력으로만 가늠하는 게 아니다. 자국민의 생활고나 해결하느라 여념이 없는 수준을 넘어 이 지구를 공유하고 사는 다른 생물의 권리까지 챙길 마음의 여유를 갖춘 국가가 진정한 선진국이다.

이번 일은 돌고래쇼 중단과 야생 방류를 촉구해온 핫핑크돌핀스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2년 3월 12일 전격적으로 방류를 결정하며 시작되었다. 서울시의회의 배려로 적지 않은 예산이 배정되었지만 이송 과정에서 제돌이가 겪을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자 시민위원회는 선박이 아니라 항공 이송을 결정했고, 결국 시민단체 카라와 동물자유연대, 그리고 금년에 새로 설립된 생명다양성재단이 성금을 모았다. 그런가 하면 아시아나항공의 '아름다운 사람들'은 두 차례나 전세기를 내어주었고 현대그린푸드는 갑자기 불어난 돌고래 식구의 급식을 책임져주었다. 요즘 '갑을 관계'가 화두라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앞서가는 선진 기업도 있다.

5월 11일은 125년 전 실질적으로 미국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신이시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를 작곡한 어빙 벌린(Irving Berlin)이 태어난 날이다. 이제 한 달쯤이면 제돌이와 친구들은 또다시 자유의 몸이 되어 제주 바다를 질주하게 될 것이다. "신이시여 돌고래를 축복하소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13/20130513025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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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2:54
지난 7일 호주 SBS 방송국 스튜디오. 자그마한 체구(a diminutive figure)의 한 여성이 백발이 성성한 남자에게 달려가 안겼다(throw herself into a gray-haired man's arms). 기뻐 어찌할 줄 몰라(be beside herself with joy) 발을 동동 굴렀다(stamp her feet repeatedly). 힘껏 끌어안고(hug him ferociously) 떨어질 줄 몰랐다(stick to him like glue). 남자는 그런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give her a pat on the back) 마냥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성의 이름은 이현서(33). 탈북자(a North Korean defector)다. 현서씨가 호주인인 딕 스톨프씨를 만난 것은 2009년, 그가 인생 최악의 상황에서 그녀를 구해줬다(bail her out of the lowest points in life). 생명의 은인(the savior of her life)이었다.

현서씨는 17세 때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10년간 숨어 살았다(live in hiding). 몰래 북한의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돈을 들여보냈다. 그런데 그게 적발돼 가족이 투옥됐다. 현서씨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족을 탈출시키기로 했다(go to great lengths to help her family escape).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북한에서 빼내는 데(go through hell and high water to get them out) 성공했다.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한국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라오스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렸다(come up against unforeseen circumstances). 한국 대사관으로 가던 중 가족들이 불법 월경(越境) 혐의로 붙잡혀 구금된(be placed in detention for illegal border crossing) 것이다. 벌금을 내지 못하면 강제 북송당할 처지였다. 하지만 현서씨 수중엔 남은 돈이 한 푼도 없었다(be strapped for money).


막다른 지경에 빠진(come to a dead end) 현서씨는 땅바닥에 주저앉아(plop down on the ground)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burst into tears).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막막했다(have no idea where to turn).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그때 한 외국인이 다가와 물었다. 라오스를 배낭여행하고 있던 스톨프씨였다. 딱한 사정을 들은 그는 당장 근처 현금 자동 입출금기에서 1000달러를 찾아왔다(immediately withdraw $1000 from a nearby automated teller machine). 어서 가족에게 가보라고 했다.

현서씨는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 당시엔 너무나 혼란스러웠던 탓에(in the chaotic aftermath) 연락처도 물어보지 못했다. 그 후 4년 내내 그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해왔다(ask around everywhere to find out his whereabouts). 그 소식을 들은 호주 SBS 방송이 두 사람의 감동적인 깜짝 재회를 성사시킨 것이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give free vent to her tears) 고맙다는 말만 되뇌었다. 스톨프씨는 그러나 손사래를 쳤다. "당신의 운명이 바뀌던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나에겐 축복이었어요."

☞ http://www.huffingtonpost.com/2013/05/08/north-korean-defector-reunited-with-rescuer_n_3233588.html

 http://www.sbs.com.au/news/article/1763840/North-Korean-defector-reunited-with-Aussie-who-sav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21/20130521030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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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2:45

왜 미국 사람들은 기출문제를 구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일까
슬쩍 남몰래 구해 공부하면 좋은 대학 가는 데 유리한데
왜 저렇게 어리석을까… 그런데 정말 어리석은 걸까


한국 학원들이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문제를 유출해 한국 시험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그게 왜 '유출'인지 언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과거 시험문제를 구해다 공부시켰다는 것인데, 그게 무슨 잘못인지 잘 납득되지 않는다. 이른바 기출(旣出) 문제집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선 어느 시험에나 다 있지 않은가. SAT는 문제를 보관하고 있다가 해마다 그중 일부를 출제하는 문제은행 방식이다. 과거 문제를 계속 모으면 사실상 시험문제를 미리 아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한다. 그렇게 허술하게 시험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잘못이고, 과거 시험문제 공부를 안 하는 학생들이 바보인 것이지, 왜 공부한 학생들이 잘못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한국식 사고방식일 것이다. 미국에 있는 SAT 주관 기관은 그 오랜 역사 동안 이런 '한국식 사고방식'과는 부딪쳐 본 적이 없었다. 미국 대부분의 학생·학부모는 몰래라도 SAT 과거 문제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문제은행 방식이 유지돼 왔을 것이다. 사실 미국 시험 기관은 누군가 과거의 문제들을 모아서 집중 훈련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 미국 사람들은 지나간 SAT 문제를 모을 생각조차 않을까. 미국에서도 좋은 대학 나오면 인생 사는 데 유리한 것은 우리와 다를 게 없다. 큰 사기를 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전에 나왔던 시험문제를 구해 공부하는 것인데, 슬쩍 남몰래 그렇게 하면 훨씬 유리한데 왜 그걸 안 하는지 정말 이상하다.

수많은 미국 학생이 이렇게 오래 시험을 치러왔는데도 문제가 없었다면 법 규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혹시 그들은 지나간 문제를 모으는 것을 정당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미국 사회 전반에 '남보다 유리한 조건, 공정하지 않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우리보다 넓고 깊게 퍼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서구(西歐) 사회 대부분이 그렇다. 캐나다 학력평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로 규정돼 있는 것 중 하나가 '시험 출제 경향을 미리 연습시키는 것'이다. 남보다 먼저 출발하지 말라는 거다.

서구엔 우리가 보기에 어리숙한 것 같은 사람이 많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지름길'을 찾아낸다. 그 지름길은 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약간 약삭빠른 정도인 길이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훤히 보이는 그 지름길이 서구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는가 보다. 그래서 우리는 영리한 것 같고, 그들은 좀 어리석은 것 같다.

어느 한국 부모가 아이를 뉴질랜드 중학교에 보냈다. 방학 때 귀국한 아이에게 엄마가 말했다. "너 다음 학기 체육에 수영이 있던데 너 수영 못하잖아. 수영 학원에 가자." 아이가 펄쩍 뛰었다. "안 돼요, 그거 치팅(cheating)이에요!"

치팅은 부정행위, 다시 말해 남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이다. 그 아이는 자기 혼자 먼저 학원에서 수영을 배우는 것을 치팅으로 느꼈다. 초등학교를 한국에서 나온 완전한 한국 아이다. 그 아이가 서구 사회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누구도 문제 삼지 않을 '지름길'을 치팅이라며 거부했다. 서로 남을 앞지르기 위해 지름길을 찾고 또 찾다가 마침내 초등학생에게 고교 수학 선행학습까지 시키게 된 나라에서 보면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고 할 일이다.

미국 유학 생활에 관한 책에서 읽었다. 한 미국 고교가 시험 중이었다. 우리와는 달리 반마다 다른 과목 시험을 쳤다. 한국 유학생이 시험이 끝나고 다른 반 한국 친구를 복도에서 만났다. 두 학생은 별 생각 없이 각자 친 과목 시험 얘기를 나눴다. 누가 그걸 듣고 학교에 알렸다. 두 학생은 퇴학당했다. 죄명은 치팅.

반면 우리는 이제 치팅에 거의 무감각해진 상태다. 우리 대학생들은 커닝을 낭만으로 여긴다. 로스쿨생도 돈 주고 대리시험을 의뢰한다. 많은 사람이 "학자만 아니면 논문 표절 좀 하면 어떠냐"고 한다. 출판사는 책 사재기로 베스트셀러를 제조한다. 다 열거할 수도 없다. 한국에선 무슨 수로든 지름길로 가 남을 앞지르는 게 하나의 풍토가 됐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영어시험을 주관하는 회사는 매년 전 세계에 있는 위탁회사 관계자들을 모아 회의를 연다. 그 회의에선 그 한 해에 세계에서 새로 등장한 시험 부정행위를 공개하고 주의시키는데, 그 거의 전부가 한국 사례라고 한다. 얼마 전 서울에서 적발된 시험 커닝 조직은 초소형 카메라, 초소형 이어폰, 스마트 시계를 동원했다. 정말 머리 좋고 영리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가 한국에 와 한 말이다. "내 경험으로 가장 머리 좋고 영리한 학생들은 나이지리아 출신들이었다." 좀 바보 같은 영국 학생들이 세계 최고의 나라를 만들고, 저 영리한 나이지리아 학생들은 세계 최악의 나라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였다.



양상훈 논술위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09/20130509009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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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2:41

조선일보 정치부의 조백건 기자는 사내에서 '특종 100건'이라고 불린다. 평소 줄기차게 특종 기사를 쓰기 때문이다. 그가 작년 4월 사보(社報)에 몇 가지 비결을 공개한 적이 있다. 그중 한 대목이다.

"정부에 있다가 전직(轉職)한 취재원이 있었다. 계속 피하는데 어느 날 그가 등산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주말 낮에 전화했다. 북한산에 있다기에 얼른 가서 산 아래 막걸릿집에 마주 앉아 특종을 건졌다."

특종 기자로 이름을 날린 한 선배는 경제 기자 시절 밤마다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집을 찾아가 만나줄 때까지 아파트 복도에서 기다렸다. 퇴짜를 맞고 자정이 넘어 발길을 돌린 것이 여러 차례다. 그때 장관 비서를 했던 한 관료는 "퇴짜가 누적될수록 장관이 떠안은 마음의 빚도 늘었다"며 "그 시간에 어울려서 술을 마시던 몇몇 기자들은 그가 특종을 하면 '정부가 특정 언론사와 결탁했다'며 화를 냈다"고 말했다.

예전에 겪은 일이다. 권력 비리 사건의 정보를 쥐고 있던 청와대 수석 집을 여름날 휴일에 찾아갔는데 인터폰을 통해 "안 계시다"는 답을 들었다. 현관 앞 놀이터 그늘에서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저물 때까지 기다렸지만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다음 날 수석에게 전화가 왔다. 사건 이야기는 전혀 안 하고, "책 읽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집에 있으면서 창밖으로 본 모양이다. 사건 관련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훗날 다른 도움을 받았다.

기자는 '갑(甲)'처럼 보이지만 사실 '을(乙)'이다. 정보를 가진 쪽이 취재원이기 때문이다. 영업사원이 물건을 팔기 위해 간 쓸개 다 빼놓듯이, 기자도 정보를 얻기 위해 비슷한 노력을 기울인다. 아무리 일류 대학을 나오고 집안이 좋아도, 치열한 노력 없이 특종이 오가는 인맥을 만들 수는 없다. 물론 유리한 기사를 실어주고 불리한 기사를 빼주면서 갑 행세를 하는 기자도 더러 있다. 하지만 '갑 기자'는 생명이 짧다. 언론은 언제나 '을 기자'가 주름잡는 세계다.

다른 신문사의 한 선배 기자는 "특종은 마치 마약 같다"고 말했다. "특종기사를 쓴 날 아침, 출입처 기자실을 갔을 때 느껴지는 싸~한 분위기." 문전박대를 당한 '을의 수모'가 몽땅 희열로 바뀌면서 몸이 나른해지고 웃음이 나오는 생리 반응을 느낀다는 것이다. 한 정신과 의사는 "신경 화학물질의 분비로 희열을 느끼는 것이 실제로 마약 복용의 메커니즘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홀대와 박대가 심해도 특종을 좇을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을의 맛'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란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갑은 을 시대의 분투기를 간직하고 있다. 포스코의 한 간부가 스스로 "45년 갑"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불과 10여 년 전 산업자원부 나무 의자에 부동자세로 앉아 젊은 담당 사무관을 기다리던 포스코 간부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고(故) 박태준 회장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들의 45년은 갑보다 '을의 역사'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유를 한 통 더 팔겠다고 30년 전까지 우량아 선발대회를 열어 전국의 엄마들을 불러모은 곳도 남양유업이었다.

'을의 맛'을 잊는다는 것은 현상에 안주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업무로 미국에 출장 가는 간부가 라면 타령이나 하고, 발로 뛰어야 할 영업사원이 육두문자로 대리점에 물량을 떠넘길 정도라면 조직 전체가 지루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구성원이 갑 행세하는 회사가 잘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을의 맛'을 잊어가는 배부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선우정 주말 뉴스 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08/20130508031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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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2:40
할리우드 영화 '아이언맨 3'가 국내 개봉 12일 만에 관객 600만명을 돌파했다. 1·2편의 인기를 능가하는 속도다. 영화와 비슷한 입는 로봇은 2004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가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군인용 로봇 다리 '블릭스(bleex)'를 들 수 있다. 로봇 다리를 입은 사람은 로봇 다리 자체 무게 50㎏에 배낭에 실은 32㎏의 짐까지 모두 82㎏을 짊어졌지만 실제로 느끼는 중량은 2㎏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입는 로봇이 상용화됐다.

만화는 그보다 빨랐다. 아이언맨은 미국 마블 코믹스사가 1963년 발간한 공상과학(SF) 만화에 처음 등장했다. 아이언맨을 가장 많이 본 관객도 어릴 때 로봇 만화를 읽고 자란 30대 남성이라고 한다. 그들이 영화에 환호한 것은 허무맹랑한 공상이 아니라 어릴 때 꿈꿨던 미래를 조금 빨리 보여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도 미래를 먼저 보여준 만화가가 있다. '심술통'이란 캐릭터로 유명한 이정문(72) 작가는 1965년 한 학생 잡지에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란 제목의 한 장짜리 만화를 발표했다. 작가는 '앞으로 35년 후 우리들의 생활은 얼마나 달라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태양열을 이용한 집과 움직이는 도로, 전파 신문·전기 자동차·소형 TV 전화기 등을 그렸다. 이미 만화의 상상력은 태양광이나 태양열 발전, 무빙워크, 인터넷, 전기 자동차, 휴대전화 등으로 상당 부분 실현됐다.

이우일 서울대 공대 학장은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 이정문 작가의 만화를 보여준다.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만화가적 상상력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학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을 만들자고 했을 때 전문가들은 모두 반대했다"며 "우리 교육이 생각을 틀에 넣고 보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만화가 과학기술의 발전 양상을 예측한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로봇 만화이다. 일본에서 1963년 처음 방영된 '철인 28호'는 리모컨으로 조종했다. 1972년의 '마징가 Z'에는 사람이 탄 비행기가 로봇의 머리에 결합해 조종한다.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모형 비행기에서 조종사가 탄 항공기로 발전한 셈이다.

이후 등장한 로봇은 미래형이다. 1979년 나온 '기동전사 건담'은 '모바일 슈트', 즉 '움직이는 전투복'이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아이언맨과 같은 입는 로봇이다. 우리나라에서 1976년 개봉된 국산 애니메이션 '로버트 태권브이'는 이보다 더 진일보했다. 아직 건담이 등장하기도 전에 마징가Z에 건담식 모바일 슈트를 결합시켰다. 철이가 탄 제비호가 로봇의 머리에 결합해 조종한다는 점에서는 마징가Z와 같지만, 철이의 태권 동작이 로봇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모습은 건담의 모바일 슈트를 연상케 한다.

가장 극적인 형태의 로봇 만화는 1995년 나온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다. 이제 사람은 로봇과 일종의 정신감응을 한다. 생각으로 로봇을 조종하는 것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이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지난해 미국 브라운대 연구진은 뇌졸중 환자가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뇌 운동중추에 작은 센서를 심어 팔을 움직이려고 할 때 나오는 신호를 포착한다. 컴퓨터는 이를 로봇을 움직이는 명령으로 바꾼 것이다. 생각을 기계에 연결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 Computer Interface)'다.

최근 이우일 학장은 이정문 작가에게 '2041년의 미래'를 그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그린 미래엔 좁쌀만 한 수술 로봇이 나오고 휴대전화가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 원하는 꿈을 꾸게 하는 안경과 과속 방지 도로도 있다. 처녀귀신과 UFO의 정체가 밝혀진다는 엉뚱한 상상도 나온다. 이 학장은 "황당해 보이지만 누가 아느냐"고 말했다. 1965년 만화를 본 어른들은 허무맹랑한 공상이라고 무시했지만, 아이들은 자라서 그 꿈을 실현했다.

사실 일본이 로봇 강국이 된 것도 만화 덕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 만화의 신으로 불리는 데쓰카 오사무는 1951년 월간 '소년'지 4월호부터 1년간 '아톰대사'를 연재했다. 1963년부터는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TV 만화영화 '철완 아톰'이 방영됐다. 2차대전에서의 패전 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일본인들은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어린이의 친구 아톰을 보고 희망을 얻고 로봇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다. 결과적으로 일본인들은 다시 일어섰고 어느 나라보다 먼저 로봇을 받아들여 산업화했다.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자'는 한 대기업의 캠페인 광고는 예전 아이들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보다 과학자를 먼저 꿈꿨다고 했다. 그때 아이들은 SF 만화를 보고 꿈을 꿨고, 자라나 반도체, 자동차, 컨테이너선을 만들어냈다. 아이들에게 SF 만화를 돌려주자.


이영환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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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2:32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에서 외국인 연구원 신분으로 2008년 1년간 머물렀던 적이 있다. 어느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 일본 언론인을 만났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서울 특파원과 홍콩 특파원을 지낸 지한(知韓)·지중(知中) 인사였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그는 "한·중·일 삼국인 중 자기 속에 있는 이야기를 곧바로 말하는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다. 오늘은 (일본인인) 내가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겠다"며 말을 꺼냈다.

이야기는 이랬다. 일본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한국이 중국과 연대하는 경우다. 중국 위안화는 조만간 아시아 지역 기축통화가 된다. 이때 한국이 중국과 손을 잡으면 일본은 큰 위기를 맞는다. 과거 대륙을 지배했던 몽골은 고려(高麗)와 함께 일본을 공격했다. 몽골은 당시 배 만드는 기술이 없었다. 배를 만든 건 고려였다. 대륙의 힘과 한반도의 기술이 만나는 상황이 가장 두렵다. 이렇게 말했던 그는 2년 후 한국이 중국과 연대해 일본을 상대로 '안보·경제 전쟁'을 벌이는 경우를 상정한 소설책을 냈다.

여몽(麗蒙) 연합군이라는 740년 전 옛일을 사례로 든 건 좀 억지다 싶었는데 나중에 이해가 됐다. 외세 침입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일본은 당시 일을 엄청난 공포로 기억하고 있었다. 일본 역사 교과서는 몽골·고려군 내습(來襲)을 일본사 10대 사건 중 하나로 적고 있다. 일본어에도 공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우는 아이 울음을 그치게 할 때 예전엔 "무쿠리고쿠리(むくりこくり) 귀신이 온다"고 했다 한다. '무쿠리'는 몽골을, '고쿠리'는 고려를 뜻한다. 일본인들은 규슈(九州) 앞바다에 새까맣게 밀려든 몽골·고려군 전함을 보면서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강렬한 기억이 뇌리에 새겨진 것이다.

일본 언론인이 우려하던 한·중 연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국수주의 민얼굴을 드러낸 이후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에 이어 조만간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는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지난달 한·일 회담을 취소하고 중국을 찾아 리커창(李克强) 총리,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만났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다. 한국 정부가 일본과 소원한 관계에 빠지는 걸 원한 까닭이 아니다. 이는 아베 내각이 자초한 일이다. 일본이 진정 한·중 연대와 일본 고립을 두려워한다면 사전에 이를 막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일본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다. 아베 총리는 그러나 "한·중에 신경쓰지 않는다"며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하고 있다.

여몽 연합군이 일본 열도에 이르렀을 때 마침 '신풍(神風)'이 불어 일본을 구했다 한다. 일본은 70년 전에도 '신풍'을 기대했으나 '가미카제(神風)' 자살 공격은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다시 '신풍'을 기다린다면 그건 우연에 나라를 내맡기는 무책임한 일이다. '가미카제'는 더 이상 인류의 양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아베 총리가 결자해지(結者解之) 않는다면 일본의 미래는 밝지 않다.


이한수 국제부 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07/20130507029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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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2:30

개인정보 유출 이어 사생활 감시 가능성도 우려

수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빅 데이터 프로세싱'(Big Data Processing, 이하 빅데이터)이 최근 각광받고 있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빅데이터가 사람들의 생활패턴 등을 계량화하는 것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옥션, 네이트, 소니 등 다양한 기업에서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인터넷 상에는 수많은 주민등록번호와 개인정보가 떠다닌다.

지난 8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산하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가 발표한 '2012년도 개인정보분쟁조정사례집'을 보면 지난해 접수된 분쟁사건은 총 143건으로 전년의 126건보다 13.5% 늘었다. 조정 신청이 가장 많은 유형은 '목적 외 이용 및 제3자 제공'으로 전체의 53%(76건)를 차지했다. 이는 개인 전화번호나 이메일을 주인 동의 없이 홍보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보험사와 같은 제휴업체에 제공한 것인데 전년에는 19건에 그쳤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전체적으로 분쟁사건의 접수가 늘어난 것은 지난 2011년 9월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고 난 후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아진 결과로 분석했다.

빅데이터가 가져올 아름다운 미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 부모보다 먼저 임신사실 알게 된 할인매장

지난해 미국 할인매장업계 2위인 '타겟'(Target)의 빅데이터 활용 마케팅 사례는 충격적이었다. 타겟은 지난 2012년 고객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타겟이 고등학생인 딸에게 유아용품 할인쿠폰을 보냈기 때문이다. 당시 타겟의 매니저는 "예비엄마에게 보내야 할 쿠폰을 잘못 보냈다"며 사과했다.

타겟이 고등학생에게 유아용품 할인쿠폰을 보낸 것은 빅데이터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여성이 임신하면 초기에는 영양제, 중기에는 로션, 말기에는 유아용품을 주로 구매한다는 통계분석 결과가 바탕이 됐다. 여고생이 영양제를 구입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로션을 구매하자 타겟 측은 출산시점이 머지않았다는 판단 아래 유아용품 할인쿠폰을 보낸 것이다.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았던 이 일화는 한달 뒤 반전됐다. 알고 보니 이 여고생이 진짜로 임신 중이었던 것이다. 부모조차 몰랐던 딸의 임신사실을 유통업체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구매행태분석 기반의 예측시스템을 통해 '먼저' 알았던 것이다.

◆ '성향'마저도 찾아서 보여주는 페이스북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의 경우 내밀한 성향까지도 빅데이터에 의해 분석되고 있음을 알게 했다. 페이스북 화면 오른편에 뜨는 '알 수도 있는 사람'이 바로 페이스북이 빅데이터를 이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숨기고 싶은 성향조차도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신이 '게이'임을 숨기며 살고 있는 맷의 사례는 인터넷 기사에 댓글 하나 쓰는 것조차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로 다가온다. 지난 3월 맷은 아주 친한 친구에게 '커밍아웃'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페이스북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자신의 페이스북에 '커밍아웃? 도움이 필요하세요?'라는 '스폰서 스토리'가 떴다.

페이스북은 전화나 휴대폰 메시지가 아니라 '댓글'을 분석해 맷이 동성애자임을 분석해냈다. 많은 웹사이트들이 댓글 활성화를 위해 댓글을 페이스북과 연동되도록 해놨는데 이 댓글 분석을 통해 성향을 알아낸 것이다.

맷의 경우 '롭 포트만 오하이오 상원의원이 동성결혼 지지를 발표했다'는 '버즈피드'(이슈영상과 사진, 뉴스기사 등을 올리는 커뮤니티)의 기사에 댓글 2개를 단 것으로 알려졌다.

◆ 내 개인정보, 문제는 없을까

빅데이터를 활용할 때 가장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이 바로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 노출 문제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분석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기존에 알 수 없었던 사용자 개개인에 대한 성향이 분석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마케팅 대상이 세분화되므로 개개인에 특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이전에 자주 유출의 대상이 됐던 주민등록번호나 휴대전화번호, 인터넷 아이디 등에서 더 나아가 카드 이용내역, 병원 이용현황, 어디서 어디로 이동했는가와 같은 활동내역 등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정보가 오남용될 경우 지금까지와는 달리 매우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의 음성적 거래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자칫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처럼 정부나 기업이 국민을 감시할 수 있는 사회로 전향되거나 이에 따른 국민의 기본권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빅데이터 활용의 어두운 면이다.

물론 이에 대해 범 정부차원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빅데이터 마스터플랜'에서 빅데이터 법안 개정 및 개인정보 보호대책 마련에 대한 연구사업을 언급했다. 그리고 안전행정부는 지난 3월부터 비공개로 민간전문가와 함께 '개인정보 개선 TF팀'을 만들어 법안 검토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아직까지는 이러한 법안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짚어내기가 쉽지 않다.

과거에 흘려보내던 정보를 집대성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내는 '빅데이터'의 특성상 어디서 어떻게 사생활 침해가 일어날지 미리 예상하기 어려워서다.

정영수 한국정보화진흥원 선임연구원은 "폭넓은 활용을 토대로 문제 진단 및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빅데이터 처리 속성상 분석목적을 한정하고 동의를 획득하는 것이 곤란하다"며 "또한 사전에 분석결과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에 대한 예측도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어 "데이터를 분석하기 쉬운 형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함으로써 사생활 침해 우려가 커졌다"며 "다양한 매체 및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정보 제공자가 의도하지 않은 사생활 침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별 생각 없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린 자료들을 통합해 혼자 살고 집이 비는 시간 등을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범죄에 악용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정 선임연구원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기업의 정보유출 방지의무가 없어 불특정 다수가 무단으로 이용하는 걸 방지하려는 노력이 소홀할 수 있다"며 "사생활 기록을 장기간 보관하는 데 따른 사생활 감시 가능성도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http://www.moneyweek.co.kr/news/mwView.php?type=1&no=2013050910338060817&outlink=1

Posted by 겟업
2013. 9. 19. 12:29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지난 8일 밤 늦게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의회 영어 연설을 보면서다. 박 대통령이 영어를 잘한다고 익히 듣긴 했지만 행여 발음이 꼬이지 않을까, 갑자기 말문이 막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은근히 가슴을 태웠다.


연설은 무난히 끝났고, 감동적이란 평가도 따랐다. 어떤 이는 영어 실력만큼은 싸이가 한 수 위라는 엉뚱한 트집을 잡기도 했지만 나는 ‘우리 대통령이 참 고생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편한 우리말 두고 왜 굳이 영어 연설을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의 마음을 사기 위한 애잔한 노력이 아니고 뭔가. 그 나라 말로 소통하려는 건 그 나라와 국민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표시다. 영어 발음에 ‘빠다(butter)’ 맛이 얼마나 나느냐는 중요치 않다. 정작 감동을 주는 건 또박또박 전하려는 성의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서울에 온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외대에서의 특강을 “같이 갑시다”라는 우리말로 마무리한 게 진한 여운을 남기지 않던가.

여성인 박 대통령의 연설은 1943년 아시아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미 의회에서 영어 연설을 한 쑹메이링(宋美齡) 여사를 떠올리게 했다. 장제스(蔣介石)의 부인인 그는 “여러분의 말로, 여러분과 같은 마음으로 말한다”며 미국의 도움을 호소해 기립 박수를 받았다.

영어를 사용하고 싶은 열정만큼은 장제스의 라이벌 마오쩌둥(毛澤東)도 뒤지지 않았다. 회화 수준엔 이르지 못했지만 영어 단어는 많이 외웠다는 게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전언이다.

마오는 자신의 영어 공부에 세 가지 이유를 댔다. 첫째는 재미있어서, 둘째는 두뇌 전환을 위해, 셋째는 영어로 된 정치와 철학 서적을 원문으로 읽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마오의 비서 린커(林克)는 가방 속에 늘 마오의 영어 교재를 넣고 다녔다. 마오 자신의 중국어 저작물을 영어로 번역한 것 등이 그의 주요 학습 교재였다.

박 대통령은 다음 달 마오의 나라인 중국 방문이 예정돼 있다. 북핵 해결은 물론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은 미국 못지않게 우리에게 중요한 나라다. 그 중국의 마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

박 대통령이 다시 한 번 고생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국의 심장부 베이징에서 중국어 연설을 하는 것이다. 베이징대학이나 칭화(淸華)대학 등 중국 최고의 명문 캠퍼스를 무대로 한·중 공동 발전의 꿈에 대해 중국어로 연설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외국 정상 중에서 이제까지 중국어 연설을 한 사람은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뒤 베이징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으며 루커원(陸克文)이란 중국어 이름까지 갖고 있는 중국 전문가다.

이에 비해 박 대통령은 중국 비전공자다. 그리고 그의 중국어는 EBS 교재를 통해 5년간 독학한 결과다. 박 대통령의 중국어 연설이 몇 배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다.

지난 5년간 MB정부와 편치 않은 관계를 보냈던 중국이 박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겸손하고 편향적이지 않으며 중국어와 중국문화에도 정통해 중국과 보다 소통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 언론도 이제까지 박 대통령에 대한 호의적 보도 일색이다. 어려운 시기에 처했을 때 풍우란(馮友蘭)의 『중국철학사』를 읽고 마음을 다스렸으며, 『삼국지』의 한 영웅인 조자룡(趙子龍)을 좋아한다는 점 등을 미담으로 소개한다.

그런 중국을 상대로 중국어 연설만큼 효과적인 배려는 없어 보인다.

반면교사도 있다. MB정권 때 상하이 총영사로 발령받은 인사가 있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난 그는 부임 후 중국인들과의 한 모임에서 영어 연설을 했다. 이게 자존심 강한 상하이인들의 비위를 건드렸다.

중국어를 못하면 그냥 통역을 두고 한국말로 연설하면 될 것을, 중국 땅에서 웬 영어 연설이냐는 것이었다. 이에 우리 총영사가 한동안 냉대를 받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현재 강조하는 게 중국꿈(中國夢)이다. 그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이 중국꿈이라 말한다. 배경엔 19세기 중엽 이래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아 치욕스러운 100년(百年恥辱)을 보낸 걸 잊지 말자는 외침이 깔려 있다.

그만큼 중국은 외부의 존중에 목말라 한다. 그런 중국을 상대로 한 외국 정상의 중국어 연설은 중국에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박 대통령이 오랫동안 중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면 중국어 원고를 준비해 또박또박 읽거나 아니면 연설의 핵심 부분만을 중국어로 연설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중요한 건 정성이지 발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중국어 연설은 한국 사회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계기가 된다. 해방 후 이제까지 우리 사회는 영어 중심의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는 언제나 입시의 주요 과목이었고 미국에 유학해야 출세하기 쉬운 세상이었다.

박 대통령의 중국어 연설은 이런 시대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21세기를 주도하기 위해선, 또 그런 대한민국의 리더가 되기 위해선 영어권과 중국어권 모두를 아우르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산 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중국어 연설을 편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상철 중국전문기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1583056&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9. 19. 12:27
그는 여전히 ‘청춘’이었다. 24세 젊은 나이 ‘우상의 파괴’로 등단한 이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한국인’ 등 숱한 저서를 남기며 ‘시대의 지성’으로 불린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79·이화여대 학술원 명예석좌교수). 

그가 최근 ‘80초 생각나누기’(전 3권)란 책을 출간했다. 삶의 철학과 지혜를 짧은 에피소드로 풀어낸 이 에세이집은 두 달여 동안 5만여 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여든을 바라보는 그가 마치 아이들 동화책 같은 책을 펴낸 이유는 뭘까. 

그는 “창조경제, 창조경영 등 ‘창조’란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는 창조력의 빈곤과 갈증을 겪고 있다”며 “자라나는 세대에게 사고의 폭과 시각을 넓혀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주무부처 장관조차 제대로 답을 못하는 ‘창조’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또 ‘힐링(healing)’이 화두인 요즘 사회에 대해 어떤 진단과 처방을 내릴까. 3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의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선생께서 생각하시는 창조란 무엇인가”라고 첫 질문을 꺼내자 그는 ‘창조인’이라는 개념을 앞세웠다.

“창조는 전 국민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창조인’을 알아보는 교육과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야지. 백락이 천리마를 알아보는 것처럼. 아인슈타인은 사교성도 없고 취직도 못했던 사람이지만 그 재능을 알아본 주변에서 도와줘 클 수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 물리학회 같은 데에서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가 아인슈타인처럼 성장할 수 있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한다고 쫓겨났겠지. 스티브 잡스도 훌륭하지만 더 훌륭한 것은 잡스의 재능을 알아본 회사 임원들이다. 우리에게는 ‘창조인’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창조인을 알아볼 안목을 가진 사람과 사회분위기가 없었던 것이다.”


고통 인내하는 삶의 본질 가르쳐야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톨레랑스(관용)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어딘가 이상하고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하다. 당시 세상과 맞지 않으니까 창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동시대에서 다 인정한다면 그것을 창조적이라고 말할 리가 없다. 이런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아는 톨레랑스가 필요하다. 창조는 관용적인 사회가 아니면 나오지 않는다.”

최근 논란이 됐던 고위층 인사의 경우에도 관용을 적용해야 하는지 묻자 그는 ‘각오의 결정’이란 단어를 썼다.

“엄격한 잣대로 평가를 하되 어느 정도 선에서 끊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계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기계가 있을 때 이 테스트 기계가 정확한지 알기 위해 검증을 해야 하지만 이걸 끝도 없이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말 낙마해야 할 사람도 있겠지만 너무 높은 잣대를 적용하기보다 조금 관대한 사회가 될 필요가 있다.”

―또 신간을 내셨는데. ‘80초 생각나누기’에 담긴 뜻은 뭔가. 

“트위터 등 단문에 익숙한 젊은이들을 위해 80초 동안에 생각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책 제목을 왜 ‘80초’라고 했는지 묻는 사람이 많다. 8자를 눕혀 보라. 무한대(∞)의 기호가 되지 않는가. 짧은 순간에 무한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지속 가능한 우리의 미래가 누워 있는 것(무한대라는 뜻)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지성에게 젊은이들을 위한 조언이 궁금해졌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아픈 것 같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참는 존재다. 아픈 것을 참는 게 인생이다. 근데 요즘은 이 참는 교육이 없어졌다. 다들 아프다고만 해서 아픔을 덜어주려고 하지만 그것을 참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냥 참아야 한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참고 인내하는 가운데에서 더 낫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삶은 고통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근데 지금은 전부 아픔을 덜어주려는 행동만 한다. 참을성 없이 아픔을 덜어주려면 끝없이 베풀어줘야 하는데 한도 끝도 없다. 인간이란 게, 삶이란 게 본래 어떤 것인지를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아픔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도 있다.

“기성세대 역시 아파하는 젊음을 겪고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젊음에는 아픔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픔을 참고 극복하는 고진감래(苦盡甘來) 정신이 있었다. 그 힘이 있었기에 그래도 이만큼의 풍요한 사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고통을 견디는 교육이다. ‘힐링’이란 말이 유행하는데 한 사회의 창조력은 행복과 유토피아에 대한 꿈이 아니라, 모진 고통과 그것을 참고 견디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흔한 말이지만 ‘진주는 병든 조개의 아픔 속에서 태어난다’ 하지 않던가.” 

―인내 외에도 어떤 교육이 더 필요한가.

“사람을 만드는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은 가르칠 수 있지만 도덕은 본래 인간에게 잠재된 것을 꺼내는 것이다. 선천적인 것을 꺼내줘야 하는데 우리 교육은 잠재적인 내면은 놔두고 지식적인 가치만을 애들에게 주입한다. 그래서 세상이 안 바뀐다.”


진짜 복지는 돈 아닌 ‘측은지심’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예를 들어 지금 복지가 화두다. 그런데 복지를 경제학으로, 자본주의 사회주의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 안 된다. 이웃에 대해, 사람에 대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는 사회만이 진정한 의미의 복지사회를 이룰 수 있다. 이웃이 밥을 못 먹으면 밥이 안 넘어가는 마음이 있어야 진짜 복지가 이뤄진다. 그렇지 않으면 세금으로 남의 돈 걷어 나눠주는 것밖에는 안 된다. 기부나 자선이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측은지심에서 나오는 사회, 그것이 진짜 복지사회고 교육이 할 일이다. 오죽하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사랑 경제학’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나.”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책장에 비치된 해외 석학들의 관련 서적을 일일이 보여주며 ‘사랑 경제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 동네에서 홍수가 나도 극복이 되는 데가 있고 아닌 데가 있다. 그 바탕에 애정이 있느냐 없느냐 차이다. 경제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생명체라면 모두 잠재적으로 갖고 있는 마음이다. 서로간의 애정이 없으면 경제학이 존재할 수 없다. 케인스는 ‘경제는 법칙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통계 경제학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인간의 심리가 경제의 기본이 된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동안 시스템, 과학적인 것만 강조하다 보니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 전멸했다.”

그의 조언이 젊은이들에게 향했다. 

“우리가 왜 돈을 벌고 취직을 하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먹고살려고 하는 것 아닌가. 근데 좋은 집, 차, 출세 같은 것은 다 수단이다. 목적이 아닌데 목적이 되어 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미치도록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가 탈고한 뒤 타이프를 바다에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기 마음의 100%를 다한 글을 썼다면서 말이다. 그런 순간을 한 번이라도 느낀 사람과 아닌 사람은 다르다. 이상주의가 아니다. 삶의 순간순간이 물고기를 잡았을 때처럼 파닥 파닥거리는 그런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돈이 많고 출세를 해도 생의 주변에서 산 사람과 중심에 들어간 사람은 다른 것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아픔을 견디고 그 위에서 열정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정작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고 갈등과 분란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에코 체임버(echo chamber·에코 효과를 만들어 내는 방) 효과라는 것이 있다. 공명실이나 목욕탕에서 노래를 부르면 훨씬 크고 잘 부르는 것 같잖은가. 같은 사람끼리만 모여 인터넷, 트위터 등을 하면 이것이 증폭돼서 진리,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고 남의 소리가 안 들린다. 지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것이 대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주로 모이지 않는가. 다른 생각이 낄 틈이 없거나, 끼면 엄청난 공격을 받는다. 기술의 발달로 폐쇄된 공간에서 남의 말을 안 듣는 자기들만의 집단이 자꾸 생기고 커지니 갈등과 분란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기술과 접촉은 많아졌지만 오히려 ‘끼리끼리’문화가 팽배해 있다.

“‘우리’란 말이 재미있는 게 말하는 사람들만의 ‘우리’가 있고, 듣는 사람까지 포함한 ‘우리’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남인가’ 할 때는 남을 배제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죄인입니다’ 하고 쓸 때는 모두를 포함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갈등이 많은 것도 남을 배제한 ‘우리끼리’만 넘치기 때문이다. 기호가 맞는 사람들만 모이는 인터넷에서 나와 자신과 다른 생각이 넘치는 거리로 나올 필요가 있다. 길에서는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려도 어떻게 할 수 없잖아? 그런 소리가 있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디지털 시대에 일종의 아날로그적 사고와 행동이 결합돼야 한다고나 할까.” 

인터뷰가 시작된 지 2시간이 넘었는데도 그는 물 한잔 마시지 않고 열변을 토해냈다. 입가에 침조차 고이지 않았다. 

―우리 사회 지도층은 자기 자신에게만 관대한 것 같다.

“생각이든 행동방식이든 남과 공유할 수 없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성과를 낼 수 있지만 결국 망한다. 과거 비디오테이프 시장에서 소니의 베타맥스는 여러 기술적 강점이 많았지만 호환성이 강한 VHS에 밀려 망했다. 개인도, 정당도 마찬가지다. 서로 의견이나 생각을 공유할 수 없다면 실패는 뻔한 것이다. 자기에게만 관대하다는 것은 여론이나 남의 말을 안 듣는다는 것과 같다. 남과 호환이 안 되니 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국사회, ‘우리끼리’만 넘쳐 불통

―평소 문화, 인문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민주화든 산업화든, 경제·정치적 성공이든 문화가 바탕이 되고 충족되지 못하면 서로 상충돼 충돌요소가 될 수 있다. 문화는 모든 것을 수용해 아우르는 용광로이자 이를 통해 인간의 공감을 부르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군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마찰을 빚지만 이것은 머리띠를 두른다고, 또 외교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일제의 만행을 그린 작품이 있다면 다르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 ‘쉰들러 리스트’처럼 말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나치 만행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지 않나. 이런 작품 하나로 더이상의 왈가왈부가 필요 없지 않은가. 일본이 아직도 딴소리를 하는 데는 중국이나 우리가 이런 작품을 못 만들어냈기 때문도 있는 것 같다.” 

세 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이라고 물었더니 이번에는 ‘돼지계산법’이란 용어가 튀어나왔다.

“돼지 형제 10마리가 강을 건넌 뒤 세어 보니 계속 9마리뿐인 거야. 그래서 한 마리가 죽은 줄 알고 우는데 행인이 세어 보니 10마리가 맞았지. 모두 자기를 빼고 센 것이다. 우리가 지금 그렇다. 누구를 욕하거나 비난하는데 항상 자기는 빼고 이야기한다. 행복도 ‘돼지계산법’만 안 하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다. 자기는 빼고 남의 눈에 든 들보만 보니 못마땅하고 싸움이 나지.”


이진구 기자




Posted by 겟업
2013. 9. 19. 11:15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인문학 공부 열풍이 불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홀대받던 인문학이 다시 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문학 공부가 ‘사치재(luxuries)’이기 때문이다. 명품 가방처럼 소득수준이 상승할 때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재화를 경제학에서는 사치재라 부른다.

인문학은 사치재에 머물러야지 ‘필수재(necessities)’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필수재란 생필품처럼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반드시 구입해야 하는 재화를 말한다. 차차 설명하겠지만, 인문학이 필수재가 되면 사회적으로 큰 비용이 발생한다. 

19세기 이전의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인문학이 공부의 모든 것이었다. 인문학이 필수재인 동시에 사치재였다. 두 나라 모두 과거(科擧)제도를 통해 최고의 인문학자들을 정부 관리로 선발했다. 역사학자들은 과거제가 유능한 인재를 두루 등용하도록 만든 훌륭한 제도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미국 조지메이슨대의 경제학자 고든 툴럭 교수는 과거제가 우리나라와 중국의 근대화를 가로막았다고 평가한다. 인문학은 정부 운용이나 생산 활동과는 거리가 먼 학문이다. 더 큰 문제는 수많은 인재가 로또에 당첨될 확률만큼이나 낮은 과거급제를 위해 비생산적 인문학 공부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생산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19세기가 되기까지 서구에서는 소수 귀족만이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관직의 꿈을 접어야 했던 대부분의 인재는 상공업과 같은 생산 활동에 종사했다. 그들은 산업혁명을 위한 고급 인력의 기반이 됐다. 이에 비해 수많은 인재를 ‘공자왈 맹자왈’의 인문학 공부로 몰아넣었던 과거제는 우리나라와 중국 사회의 정체(停滯)를 불러왔다고 툴럭 교수는 설명한다.

관존민비(官尊民卑·관료는 높이고 국민은 낮게 보기) 의식에다 현대판 과거시험이라는 인식 때문에 광복 후에도 우수한 인재들이 고시(考試)에 많이 몰렸다. 하지만 고시공부는 과거공부처럼 정책 입안을 위한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낭비적 공부’였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처럼 고시에 목을 매는 인적 자원의 낭비가 발생하지 않았던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한 산업화와 개방화 덕분이었다. 이공계와 경상계 교육을 받고 산업 현장이나 무역 현장으로 나가는 것이 고시 못잖게 인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학생들에게 ‘철(鐵)밥통’ 공무원과 법조인이 다시 매력적인 직업으로 다가왔다. 지금 ‘고시 폐인’이라 불리는 각종 고시 준비생이 20여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고시가 다시 조선시대의 과거처럼 엄청난 인적 자원의 낭비를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과 더불어 이런 고시의 폐해는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를 가로막는 커다란 암초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는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경제 운용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과 시장,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과 그가 감명 받았다는 ‘창업국가(Start-Up Nation)’라는 책의 내용으로 미뤄볼 때 창조경제는 현재 잘나가고 있는 이스라엘을 벤치마킹하자는 것으로 짐작된다.

왜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공무원, 법조인, 의사보다 벤처 창업을 더 선호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창업을 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창업국가’를 추구하고 싶다면 우리 젊은이들의 창업 인센티브부터 제고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음 두 가지의 제도 개혁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첫째, 고시제도를 없애고 선진국처럼 민간 부문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인재들을 공무원으로 선발해야 한다. 그리고 법조인의 공급을 대폭 늘려 그들의 기대수입을 크게 낮춰야 한다. 그래야 ‘고시 폐인’으로 인한 인적 자원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 고시의 매력이 사라져야 유능한 인재들이 이공계로 관심을 돌린다. 그런 면에서 박 대통령이 장차관의 4분의 3 가까이를 고시 출신들로 채운 것은 창조경제에 역행하는 일이었다. 창조경제 패러다임 아래에서조차 이공계나 민간 전문가가 대접을 못 받는다는 시그널을 보냈기 때문이다.

둘째, 대학에서 벤처 창업을 위한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정부의 예산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기초과학 연구는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재지만 응용과학과는 달리 특허의 혜택이나 기업의 지원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대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 의사의 기대수입을 크게 낮춰야 한다.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통해 이스라엘과 같은 ‘창업국가’의 초석을 다져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튼튼한 경제를 바탕으로 사치재로서의 인문학에서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http://news.donga.com/3/all/20130409/54295606/1



Posted by 겟업
2013. 9. 19. 11:13

독일인들은 과거 네덜란드산 토마토를 ‘물폭탄’이라고 놀렸다. 거칠고 맛이 없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가 남미에서 가져온 토마토는 남유럽과 궁합이 잘 맞았으나 춥고 흐린 날이 많은 북쪽의 네덜란드에서는 상품성이 떨어졌다. 경제논리로 보면 네덜란드는 토마토를 사다 먹고 다른 품목을 수출하는 게 나았다. 


네덜란드는 뻔한 생각을 뒤엎었다. 1990년대 해외시장으로 치고 들어가 유럽 토마토 시장을 뒤집었다. 인구 1600만 명의 네덜란드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남유럽 국가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토마토를 해외에 내다파는 세계 최대 수출국이 됐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햇볕이 조금이라도 있는 게 아예 없는 것보다 낫다’는 네덜란드 농부의 창조적 도전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지중해산 토마토가 신의 선물이라면 네덜란드산 토마토는 인간의 작품이다. 농민들은 온도 습도 등을 컴퓨터로 자동 조절하는 첨단 유리온실 수경재배 농법을 개발해 불리한 자연환경을 이겨냈다.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맨땅에 농사를 짓는 그리스 농가의 10배다. 대량주문을 받아 신선한 토마토를 바로 따서 납품하는 똑똑한 유통시스템도 만들었다. 이러니 날씨와 땅만 믿고 안주한 남유럽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소개한 ‘95%가 과학기술이고 5%만이 노동’인 네덜란드 창조농업의 힘이다.

우리 농가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네덜란드보다 남유럽과 더 닮아 있다. 정부가 토마토를 14대 수출전략 농식품으로 지정했지만 수출 비중은 1%에도 못 미친다. 보호막이 있는 안방 시장에서 더 높은 값을 받는데 기술과 돈을 투자해 해외시장을 개척할 필요도 별로 없다. 수출업체 열 중 여덟은 “국내 가격이 오르면 수출 계약을 깨고 내수로 물량을 돌리는 영세농가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자본과 기술이 들어올 길도 막막하다.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팜한농은 최근 경기 화옹간척지에 네덜란드 농법을 배워 초대형 유리온실을 짓고 수출용 토마토를 재배하려다가 “대기업이 밥그릇을 뺏어간다”는 농민들의 반대에 부닥쳤다. 이 회사는 “일반 농가의 주력 상품이 아닌 유럽계 붉은빛 토마토를 재배해 수출하겠다” “농민단체 등이 사외이사나 지분을 참여해도 좋다”고 제안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380억 원 넘게 투자한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대기업이 발을 빼면 시장은 당분간 농가 차지겠지만 미래가 밝진 않다. 토마토 재배면적은 감소 추세다. 한국산 토마토는 1990년대 일본이 수입하는 토마토의 80%를 넘게 차지했지만 깐깐한 검역과 미국과 뉴질랜드의 추격에 걸려 2010년 30%대로 추락했다. 논란이 된 붉은빛 토마토 생산성은 네덜란드의 15%에 그친다.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빗장까지 열리면 토마토 시장의 안방 사수도 버거워 보인다. 생산성을 높이고 수출길을 넓혀야 승산이 있다.

정부가 창조경제를 말하고 세금을 퍼부어도 네덜란드처럼 자본과 기술, 가슴이 펄떡펄떡 뛰는 농민들의 무한도전이 없으면 헛일이다. 좁은 내수시장에 돋보기를 들이대면 밥그릇 싸움만 남는다. 망원경으로 세계시장을 멀리 내다보면 대기업도 좋은 파트너가 된다. 대기업이 기술과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농가는 노하우를 얻어 파이를 키우는 창조농업의 길은 없었을까. 토마토 전쟁의 뒤끝이 영 찜찜하다. 

신시아 몽고메리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당신은 전략가입니까’라는 책에서 전략가에게 주는 교훈으로 ‘평정을 구하는 기도’ 한 대목을 소개했다. 

“하느님, 제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평정의 마음과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이를 분간할 지혜를 주소서.” 

우리는 창조농업을 위해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바꿔야 할까. 정부와 농가는 이를 분간할 지혜가 있는가.


박용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30409/54295589/1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