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9. 23:13

밤낮 책만 읽는 허생을 보던 아내는 부아가 끓었다. 꽁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진다. "그깟 책은 읽어 뭐하우. 밥이 나와, 쌀이 나와." 허생은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공부가 아직 부족해." "식구들 쫄쫄 굶기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배가 부른가 보지? 물건을 만들든가, 장사라도 하든지." "기술도 밑천도 없는 걸 어찌 하나." 하는 말마다 염장을 지른다. "밤낮 글 읽더니 못 한다는 말만 배웠소? 차라리 도둑질이라도 배우든지." 견디다 못한 허생이 책을 탁 덮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안타깝다. 내 십년독서가 이제 겨우 7년인데 나머지를 못 채우는구나."

그는 뭐가 애석했을까? 그 10년이란 연한만은 길게 여운이 남는다. 십년독서는 옛 선비들의 꿈이다. 눈앞에 만권의 책을 쌓아놓고 한 10년 책만 읽으면 세상 보는 안목이 훤히 열린다고 믿었다.

송나라 때 심유지(沈攸之)가 만년에 독서에 빠져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가 늘 입에 달고 했다는 말이 있다. "진작에 궁달(窮達)에 정한 운명이 있음을 알아 십년독서를 못한 것이 안타깝다(早知窮達有命, 恨不十年讀書)." 젊어 십년독서를 했더라면 인생을 안타깝게 허비하지는 않았으리란 말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세상풍파 다 건너면서도 늘 길을 몰라 우왕좌왕했었다. 그러다 나이 들어 독서에 몰입하고 나니, 몰라 헤매던 길이 그 속에 다 있더라는 얘기다. 이걸 왜 더 일찍 몰랐을꼬.

십년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정한 시간이기보다, 이불리를 따지지 않은 채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몰두하는 상징적 시간이다. 이걸 배워 어디 써먹고 저걸 익혀 돈 벌 궁리 하지 않는 오직 독서를 위한 독서의 시간이다. 그 무목적의 온축 속에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 터진다.

정범조(丁範祖)는 신석상(申奭相)이 독서에 뜻을 세우면서 '내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그분을 만나보겠는가'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써준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진실로 3년간 독서하면 반드시 천 사람의 위가 될 것이요, 5년간 독서하면 만 사람의 위가 될 것이다. 10년간 독서하면 반드시 더 높은 사람이 없게 되리라. 독서의 이로움이 이와 같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다지 급하지 않은 명성만 다급하게 여긴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09/2013070903845.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