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재생이 세간의 화제다. 지난 6월에는 도시재생특별법까지 공포되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얼마 전만 해도 달동네는 철거와 재개발의 대상지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도시 재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예전 달동네는 도시의 생채기로 여겨졌으며, 떠나고 싶은 곳이었다. 나는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서울의 변두리가 그렇듯이 그곳에도 달동네가 있었다. 관악산 줄기였던 호암산 산비탈을 따라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같은 반 친구에게 “너 어디에 사니”라고 물어보았을 때 주뼛거린다면 달동네에 살 가능성이 높았다. 또래 친구들과 호암산에서 놀다 보면 약수터 근처에서 물지게를 진 달동네 주민을 만났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팍팍한 삶의 무게만큼 판자촌에 산다는 사실이 그들을 늘 불안하고 창피하게 만들었다.
이런 기억 탓이었을까. 장성한 나는 달동네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부산에서는 산동네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산동네가 거대한 벨트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모임에서 부산시 서구 아미동 산동네에 일본 귀신이 출현한다는 도시 민담을 듣게 되었다. 기모노에 게다를 착용한 일본 귀신이 마을을 어슬렁거린다는 기담이었다. 등골이 오싹하기보다는 왜 하필 일본인 귀신인지가 궁금했다. 이국에서 떠돌고 있는 일본 귀신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아미동 산19번지로 갔다.
일본 귀신은 찾지 못했지만 기담의 배경은 알 수 있었다. 묘지의 비석과 석물이 축대, 담벼락, 건물 등에 박혀 있었다. 비석을 재생시켜 건축 재료로 사용했다니 다들 놀랄 지경이었다. 누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비석마을이네’라고 했다. 그랬다. 과거 아미동 산19번지는 일본인의 비석과 석물로 가득 찬 공동묘지였다. 개항 이후 부산에는 일본인 전관거류지가 형성되었으니 거기에서 살다가 죽는 일본인도 많았다. 1907년 일본인 공동묘지가 아미동으로 이전됨에 따라 그곳은 장례의 공간이 되었다.
죽음의 공간이 다시 삶의 공간으로 재생된 때는 1950년대였다. 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한꺼번에 몰려온 부산시내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그들은 살기 위해 도심 주변의 산을 일구고 판잣집을 짓기 시작했다. 목포에서 화물선을 타고 아미동에 왔다는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우리가 오니까 피란민 천막이 많았어. 집을 지으려고 땅을 파니까 단지가 수두룩하게 나오더라고.” 단지라는 것은 화장한 후에 인골을 담는 용구였다. 일본인 묘지 위에 그대로 판잣집을 지었다는 뜻이다. 당시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재생했다. 미군부대 주변에서 습득한 박스, 집을 허물 때 나온 판자와 목재, 산 위에 널려 있던 묘지 석물 등. 아미동에 들어온 실향민들은 죽음의 위기에서 삶의 희망을 세우기 위해 버려진 물품을 재생시켰던 것이다. 비록 가난과 결핍이 어쩔 수 없는 재생을 낳았지만 그래도 그 의미는 소중했다.
도시학에서의 도시 재생은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자는 뜻이다. ‘지속가능한 도시’는 낡고 쇠퇴한 지역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고쳐서 살리자는 취지다. 이 개념에는 도시를 보는 패러다임의 중요한 변화가 있다. 도시를 산업의 전초기지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생활과 문화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다. 경제개발 시기 도시 척도는 산업 발전에 맞춰졌고, 주민의 삶과 문화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철거와 추방이 반복되었을 뿐이며, 산동네 주민의 삶을 보존하는 도시 재생은 언감생심이었다.
이제라도 인간적 도시를 지향하는 도시 재생을 하겠다니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도시 재생을 말하기 전에 그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봐야 할 일이다. 산동네의 도시 재생을 관광지 개발로 여기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도시 재생은 바로 사람다운 삶의 재생이고, 인간적 도시의 구현이다. 묵묵히 험난한 세월을 견뎌온 아미동 비석은 말한다. 죽음의 공간에서조차 삶을 재생시킨 아미동 사람들의 고단했던 과거를. 오늘의 도시 재생에 대해서도 말한다. 도시 재생은 주민의 삶을 먼저 생각하면서 지속가능한 도시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라고.
유승훈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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