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4. 15:41

[토요판/리뷰&프리뷰] 다음주의 질문
복덕방·노인정은 보수강경파 독무대
진보 생활논객 못 키우면 희망 없어

“자네, 나 좀 보세. 연말 선거 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네. 젊은 사람들은 안철수를 좋아하는데 그게 말이 되는가.”지난해 8월 경북 상주의 한 시골마을인 고향을 찾았을 때였다. 동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김 할아버지(88)가 마을 어귀에서 정치부 기자를 불러세워놓고는 박근혜 대통령론을 역설했다. 자신의 정치 강연에 대해 가타부타 반응 없이 듣기만 하자, 그는 “이 나라가 어떻게 발전했는데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철이 없다”면서 언성을 높였다. 정치권 돌아가는 얘기나 전망 등을 듣고 싶어하던 과거 태도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아저씨, 안철수는 연말 대선에 나오겠죠? 안철수와 민주당 후보가 단일화하면 박근혜를 이길 수 있을 거예요. 엠비가 워낙 인기가 없잖아요.”

지난 7월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만난 친구의 중3 아들(15)이 똘망지게 말했다. 이 녀석도 정치판 돌아가는 소식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녀석은 아빠를 따라 지난 3년간 중부 아프리카에서 지낸 뒤 당시 막 귀국한 참이었다. 친구는 “얘는 아프리카에 있을 때 나꼼수를 매회 내려받아서 다 들었지. 지금은 나보다 정치 뉴스를 더 많이, 또 깊이 안다네”라면서 허허 웃었다.

돌이켜보면 이 두 장면은 2012년 대선을 상징하는 듯하다. 18대 대선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인 세대대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청년층의 야당 후보 쏠림은 10년 전인 2002년 대선 때보다도 더 강해졌다. 20대만 보더라도 투표율은 56.5%(2002년)에서 65.2%(2012년)로 8.7%포인트, 야당 후보 지지율은 59.0%에서 65.8%로 6.8%포인트가 올랐다. 변화에 대한 청년층의 갈망과 정치 각성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년층의 야당 성향화는 나꼼수를 비롯한 각종 팟캐스트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등장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학생도 팬이 될 정도의 쉬운 언어로 재미있게 정치를 설명함으로써 정치를 외면해온 젊은층을 단기간에 정치 주체로 변화시킨 것이다.

반면에 50대 이상 노년층의 여당 성향화 역시 눈부시다. 이들은 이제 과거처럼 ‘깬’ 자녀들의 안내대로 한 표를 던지는 손쉬운 포섭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상당수는 김 할아버지처럼 자기 확신을 지닌 ‘노인 전사’로 탈바꿈했다. 노년층의 이런 변화는 종편 등 24시간 방송 채널의 등장과 연관이 깊다. 서울 지역의 새누리당 한 재선 의원은 “은퇴한 장년층들은 종편 등의 시사 프로그램을 종일 본다. 그래서 완전히 우경화됐다. 이들을 섣불리 설득하려 했다가는 큰코다친다”고 말했다.

청년층의 정치의식 강화로 일상생활의 모습이 바뀐 것은 거의 없지만, 우경화된 장년층의 등장은 생활 터전인 골목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동네 사랑방인 복덕방이나 노인정, 찜질방은 보수 강경파 노인들의 독무대가 됐다. 팔순이 가까운 노모를 통해 가끔 듣는 아파트 경로당의 분위기도 똑같다. 야당이 강한 가난한 동네임에도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북한에 또 퍼주기 한다. 이정희 때문에 박근혜를 찍어야 한다’는 등의 여당 정치선전이 노인정 담론을 주도했다. 여기에 반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대선에 패배한 민주통합당이 9일 비상대책위원장을 선출하기로 하는 등 전열 재정비에 한창이다. 친노가 물러나고 비노 쪽 인사가 맡아서 당을 잘 수습하면 5년 뒤가 보장될까? 안철수 영입이나 진보세력과의 합체 등 야권 재편이 되면 미래 비전이 있을까?

안 하는 것보다야 도움이 되겠지만, 갈수록 기울어지는 ‘골목 정치’ 환경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면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도 별 희망이 없다. 시공간의 경계가 없는 청년들과 달리 골목 안에 사는 노년층과 장년층에게는 에스엔에스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에서는 골목 정치가 필요하다. 동네의 보수 정치꾼들과 얼굴을 맞대고 논쟁을 벌일 생활의 진보 논객들이 있어야 한다. 각종 동네 사랑방에서 ‘왜 북한과의 교류가 퍼주기가 아닌지, 이정희와 문재인이 어떻게 다른지’를 반박하고, 진보가 실생활에 얼마나 큰 이익과 도움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생활정치다. 동네 논객인 풀뿌리 당원을 끊임없이 조직하고 재교육해야 한다. 소멸되고 있는 뿌리를 방치한 채 상부조직과 얼굴만 예쁘게 꾸민다고 될 일이 아니다.

김종철 정치부 기자




Posted by 겟업
2013. 4. 4. 15:35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한방에 모아놓고 가수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를 들려준다면 머릿속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인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중국인은 ‘아내가 있다’, 일본인은 ‘불륜상대가 있다’는 뜻으로 노래제목을 이해할 것이다.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愛人(애인)’이라는 똑같은 한자를 놓고도 이처럼 뜻이 다르다.

미국의 문화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모든 번역은 오역(誤譯)”이라고 말했다. 한 나라 국민의 오랜 역사와 경험, 고유한 정서가 축적된 언어를 다른 나라말로 바꾼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다.

근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문화는 항상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다. 이 순서가 뒤집어진 것은 일본이 메이지(明治)유신을 한 1868년부터다. 메이지유신 직후 일본에서는 철학 과학 문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대대적인 번역 붐이 일어난다. 한자는 중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우리가 지금 쓰는 현대 한자어의 상당 부분은 이 시기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개인, 신혼여행, 철학, 과학, 시간 등과 같은 한자어도 이때 처음으로 등장한 신조어들이다.

‘대번역시대’를 거치면서 급속한 서구화를 이룩한 일본은 이후 러시아를 꺾고 열강(列强) 대열에 합류한다. 그 후 100년 이상 유지된 한중일의 문화헤게모니 서열은 번역력(力)의 차이에서 나온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의 번역력은 일본과 비교하기가 부끄러운 수준이다. 서양문화의 뿌리에 해당하는 그리스-로마 고전조차도 대개 일본어나 영어로 된 것을 재번역했다. 두 번의 ‘오역’을 거치다 보니 뜻이 잘 통하지 않거나 생경한 표현투성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올해 74세의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는 ‘국보급’ 번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그리스-로마 원전 번역가다. 단국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시절인 1990년대 중반부터 번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그가 지금까지 번역해낸 그리스-로마 고전은 60여 종에 이른다.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헤로도토스의 역사,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 고전 중에서도 고전으로 꼽히는 책들이다.

대단한 점은 이 같은 역작의 절반이 그가 2004년 단국대에서 정년퇴임을 한 이후 나왔다는 것이다. 이미 7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도 천 교수는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등산을 하는 것을 빼고 나면, 대부분의 시간을 자택에서 번역작업을 하는 데 보낸다. 그가 하루에 평균적으로 번역해내는 그리스-로마 원전의 분량은 1페이지에서 1페이지 반 정도. 매우 더디면서 인내심과 체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비결을 그에게 물어보니 “쉬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1개월가량 번역작업을 쉰 적이 있는데, 마음도 불안해지고 건강도 오히려 나빠져 이후로는 절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게 됐다”는 것이었다.

한 인문학자는 그를 “정말 번역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순수한 분”이라고 평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화 한 토막을 전했다.

인문학 연구 지원활동을 하는 단체인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가 2년 전 천 교수에게 연구교수 직을 제안했다. 연 3600만 원씩 2년간 7200만 원을 지원받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천 교수는 “인문학 분야에는 어렵게 생활하는 젊은 학자들이 많으니 나 대신 그들을 지원하라”며 고사했다. “그럼, 행사에 잠시 와서 자리를 좀 빛내 달라”는 재단 측의 거듭된 요청에, 천 교수는 너무나 미안하다는 어조로 이렇게 말끝을 흐렸다.

“거기에 다녀올 시간이면 원전을 스무 줄 이상 번역할 수 있는데….”

‘웰에이징’은 멋지게 나이를 먹는다는 뜻이다.


천광암 경제부장



http://news.donga.com/3/all/20130101/51990018/1



Posted by 겟업
2013. 4. 4. 15:35

성탄 휴가 기간 중에 투자 분야에서 근무하는 한 미국인 동료로부터 한국에 대해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의 질문은 간단했다. 어떻게 한국이 국제사회의 환영을 받지 못하던 부패하고 불투명한 시스템에서 상당히 개방되고 투명한 비즈니스 환경의 모범으로 변모하게 됐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많은 미국인처럼 그는 부패로 인한 변덕과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는 규칙 적용에 실망하고, 중국이 언제쯤, 어떻게 이른바 ‘한국 사례’를 따르게 될 것인가를 알고 싶어 했다.

‘한국 사례’는 최근 들어 부쩍 더 자주 들리는 용어다. 국제 원조 전문가들은 어떻게 다른 나라들이 개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바뀐 한국의 길을 따를 것인가를 궁금해한다. 아프리카의 전문가들은 자기 나라가 그렇게 갈망하는 올림픽·월드컵·월드엑스포 같은 글로벌 이벤트를 개최한 한국의 사례에 감탄한다. 중국이 이른바 소프트파워 확산 실패에 난처해하고 있는 동안 한국의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한국 사례’는 여러 요인에 기인하겠지만 그중 두 가지 요소가 가장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1987년의 민주화와 97년의 외환위기가 그것이다. 전자는 한국인이 일상적인 생각에선 이젠 거의 떠올리지 않는 요소다. 후자는 아이로니컬하게도 평균적인 한국인은 거의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인의 경제와 가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으며 이전까지 성장을 견인했던 경제체제의 결함을 보여줬다. 한국인은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고통스러운 개혁방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경제체질을 개선해 미국 등이 5년 전 말려들어간 글로벌 재정 몰락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민주화는 지금과 같은 한국의 탄생에 매우 중요하다. 이는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해서가 아니라 개방성과 준법, 투명성을 한국 사회의 목표로 삼게 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물론 88년 올림픽이나 중산층의 출현 같은 다른 요인도 있지만 민주화와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지금 전 세계가 ‘한국 사례’를 입에 올리는 시대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인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일상 생활에서 민주주의를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상당수 한국인은 아마 이번에 독재자의 딸을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한 자국의 정치 시스템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또다시 새로운 사례를 하나 더 만들었다.

동아시아의 어떤 나라도 여성을 자국의 최고위직으로 선출한 전례가 없다. 아시아 정치에선 스캔들이 하나의 규범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필리핀·한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선 최근 선거에서 당락을 좌우할 만한 부정은 없었다. 미국에서와 같은 투표소의 혼란도 없었다.

한국인은 자신들의 후보를 그렇게 보지 않았겠지만, 전 세계는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출마한 것 같아 보이는 조용한 신사를 주목했다. 이 후보는 전직 대통령에게 충성하며 더욱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그의 정치적 비전을 따르려고 했다. 아울러 세계는 정치라는 추악한 세계에 들어갈 아무런 필요도 없었으나 97년 이 나라가 외환위기에 빠지자 정치 입문을 결심했던 한 여성도 주목했다. 이 여성 후보는 정치적으로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겠다는 공약으로 이 나라의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서게 됐다.

대선 후보의 성격을 이렇게 순진하게 묘사한다면 한국인들이 웃겠지만 인식은 종종 현실을 구현한다. 실제로 전 세계는 두 대선 후보가 정치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 것보다 국민을 위한 공직 봉사에 진실로 관심이 더 많아 보이는 것으로 인식했다.

여기에 더해 다음달 대통령에 취임할 박근혜 당선인은 한국의 이전 대통령들과 달리 이미 청와대에 거주한 적이 있다. 정치에서는 권력에 굶주린 사람이 더 권력을 갈망한다. 이를 위해 다른 가치를 포기하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주는 권력에 취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대통령을 가지는 것은 신선한 일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이미 북한을 방문해 그 나라의 지도자를 만나본 사람 가운데 최초의 청와대 주인이 될 것이다. 이는 전임 대통령들처럼 평양에 꼭 가야겠다는 외곬의 생각에 매달려 고통스러워할 가능성이 별로 없을 것을 의미한다. 물론 박 당선인이 한국을 최근의 경제 불황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필요한 경제 관련 경험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설혹 대통령 당선인이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해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대화가 마지막에 이르자 내 친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한 한국의 경험은 중국이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먼지를 잘 보여준다. 일부 한국인은 대통령 선거 결과에 실망해 있겠지만 한국은 다시 한번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서 하나의 새로운 사례가 되고 있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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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4. 4. 15:33

'"저는 테리 존스 목사라고 합니다. 9·11에 대해 여러분에게 가르쳐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한낮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평화가 깨졌다. 백발 스포츠 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이 유명 극우 백인 목사는 광장 한가운데를 차지하고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9·11 테러를 '급진 이슬람의 공격'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우리는 '미국인'으로서 이슬람 공동체에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연설이 계속되면서 '급진 이슬람'이라던 그의 타깃은 어느새 슬쩍 이슬람 전체로 바뀌고 있었다. "이슬람은 억압의 종교, 거짓과 속임수의 종교, 폭력을 조장하는 종교입니다."

한 백인 여성이 듣다못해 "노(No)!"라고 소리쳤지만, 목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폭언을 이어갔다. 다양한 종교와 인종이 어울리는 광장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히잡을 쓴 한 무슬림 여성은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고 도망치듯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바로 그때, 찌푸린 표정으로 연설을 듣고 있던 한 백인 남성이 갑자기 노래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목사의 연설과 남성의 노래가 허공에서 뒤섞였다. 노래는 비틀스의 '당신에게 필요한 건 오직 사랑'(All you need is love)이었다. 노래가 후렴구에 다다르자 남성이 소리쳤다.

"여긴 자유의 나라예요, 여러분. 다 함께 노래를 불러요!"

노래하는 목소리가 하나 둘 늘어나는 듯싶더니, 이내 합창을 이뤘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났고, 광장을 짓눌렀던 '충돌'의 공포는 사라졌다. 저주(詛呪)의 연설은 노래에 묻혀 이제 들리지 않았다. 연설을 제지한 이들이 목사와 같은 전형적인 백인 미국인이었기에 그 울림은 더욱 컸다.

한 다큐멘터리 작가가 촬영했다가 얼마 전 뉴욕타임스의 독자 코너에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진 이 영상을 보면서 최근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목소리를 높였던 수많은 '테리 존스'들이 떠올랐다. 한쪽에 투표하면 '반(反)대한민국 세력이고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는 세력'이라고 말한 어느 '언론인', 다른 쪽에 투표하면 '독재자에게 열광하는 이웃'이라고 주장한 어느 '소설가'가 그들이다. 불행히도 그때 우리는 각자 자기 진영을 향해 "노"라고 외치지 않았다. 긍정의 노래로 저주를 덮으려는 노력도 없었다. 대신 우리는 침묵하거나, 심지어는 SNS로 이러한 주장을 퍼 나르며 적개심과 분열을 키웠다. 용기가 없었거나 상대방을 찌르는 독설이 주는 쾌감을 즐긴 것이다.

그래 놓고 "너만 옳으냐" "말이 안 통한다"고 서로를 꾸짖었다. 헛된 소리다. 내가 옳으면 상대가 반대한민국·공산화 세력이 되고, 상대가 옳다면 내가 독재자에 열광하는 이웃·'꼰대'가 되는 상황에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진정 '대통합'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침묵을 깨고 먼저 '우리 편'을 향해 용기 있게 외쳐야 한다. "노"라고. 필요한 건 '저주'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장상진 뉴욕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31/2012123102106.html



Posted by 겟업
2013. 4. 4. 15:31

2013년의 새해가 밝았다. 매년 밝아오는 새해 아침이지만 오늘 계사년(癸巳年) 아침에 맞는 붉은 태양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올해는 대한민국이 다시 도약하느냐, 아니면 변방의 이류국가로 주저앉느냐를 가르는 첫 관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쳐 올해 건국 65주년을 맞는 대한민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업화를 토대로 민주화를 이루어낸 국가라는 자부심은 온데간데 없이 나라가 이념과 세대, 지역과 계층으로 갈려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이 와중에 저출산과 고령화로 성장동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양극화는 점점 더 첨예해지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결과는 우리나라가 처한 엄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올해부터 새로운 각오로 산적한 현안을 풀어나가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는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있다.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세계를 주도해온 미국·유럽 위주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은 아직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은 당분간 세계의 중심무대로 복귀할 가망이 없어 보인다. 이제 세계가 기대하고 있는 곳은 아시아뿐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아시아에선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 3국이 강건하게 버티고 있는 가운데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의 신흥국들이 성장의 용틀임을 시작했다. 바야흐로 위대한 아시아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시대의 본격적인 대두는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자칫 잘못하면 중국의 위세에 눌리거나 후발개도국들에 치일 위험이 큰 반면, 잘 활용하면 대내적인 갈등을 해소하면서 안정적인 번영을 뒷받침하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아시아 시대의 도래라는 기회를 잡아 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설 것인지, 아니면 우물쭈물하다 기회를 놓쳐 주저앉고 말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순간을 맞았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온다. 아시아 시대라는 절호의 기회를 잡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우선 정치적·사회적인 대통합을 이루는 것이 시급하다. 국민이 반으로 갈려 사사건건 대립한다면 기회는 대한민국을 스쳐 지나갈 것이다. 주변의 아시아 각국이 아무리 융성해도 우리가 내부분열을 추스르지 못한다면 그림의 떡일 뿐이다. 통합의 첫걸음은 인사의 탕평(蕩平)이다. 지연과 학연으로 맺어진 저급한 패거리 인사를 탈피하지 못하면 분열의 골은 깊어지고, 대립의 각은 날카로워진다. 인위적인 자리 배분을 통해서라도 누적된 인사의 악습을 깨트려야 한다.

통합을 위한 또 하나의 길은 공감과 소통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 반대편에 선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자면 가진 자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 재산을 가진 사람, 명예를 가진 사람부터 솔선해서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의 마음이 국익을 향해 한 방향으로 모일 때 비로소 재도약의 기회가 열린다.

아시아 시대라는 기회는 거저 오지 않는다. 그 기회를 살릴 능력이 있어야 꽃을 피운다. 기회를 살리는 능력은 창의적인 발상에서 나온다. 아시아를 그저 싸구려 제품의 수출시장으로만 보는 구태의연한 사고로는 새로운 아시아 시대를 선도할 수 없다. 또 영세한 국내시장만 바라보는 천수답식 관행으로는 저성장의 질곡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새롭게 떠오르는 아시아 중산층을 겨냥해 아시아 전역을 우리의 내수시장으로 삼겠다는 창의적 발상과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아시아인들을 열광케 한 한류와 K팝, 우수한 정보통신기술(ICT)은 그 가능성이 무한함을 보여준다. 그러자면 청년들이 수출주도 대기업과 내수중심 영세자영업이라는 고착된 고용구조에서 벗어나 기발한 아이디어와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창업에 나서도록 하는 새로운 기업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새로운 일자리가 있고 미래의 성장동력이 있다.

 그러자면 우선 국내의 각종 규제를 과감히 푸는 한편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체결하고, 한국을 아시아인들이 몰려드는 매력적인 허브로 만들어 청년 창업의 마당을 획기적으로 넓혀야 한다.

 아시아 시대라고 하지만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치 환경은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국제정치 환경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시아 시대의 꿈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한 미국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의 ‘파워 하우스(power house)’로 떠오른 한·중·일 3국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곧 2기(期) 행정부를 출범시킬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비롯해 새 진용을 갖추게 된 한·중·일의 리더십이 어떤 구상과 의도를 갖고 상호작용 하느냐에 따라 아시아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영토와 과거사 문제에 매몰돼 3국 간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버려둔다면 이는 굴러온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을 둘러싸고 위험천만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우발적 사고는 언제든지 무력충돌로 비화할 수 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지금 두 나라는 경쟁적으로 군비 강화에 나섬으로써 동아시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이 일본과 손잡고 역내(域內) 대(對)중국 포위망을 강화하고, 이에 반발한 중국이 핵과 미사일을 갖춘 북한의 도발을 방치하는 사태는 우리로선 최악의 외교·안보 상황이 될 것이다. 누구도 주권은 포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현상유지’를 토대로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서 영토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미·중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한국이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상황을 피하려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발전시키면서도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남북관계 개선도 필요하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비판과 제재를 가하면서도 대화의 문은 열어둬야 한다. 북한이 먼저 변하지 않는 한 대화와 교류는 없다는 식의 경직된 자세는 우리 자신의 입지를 좁히는 어리석은 선택이다. 남북 간의 신뢰는 말만으로 구축될 수 없다. 접촉이 필요하고 행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성큼 다가온 아시아 시대를 도약의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신뢰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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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310051&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4. 4. 15:24

12년간 외국을 떠돌다 조국 터키로 돌아온 망명시인 '카'는 동쪽 끝 국경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슬림 소녀들의 잇단 자살 사건을 취재해 달라는 신문사의 요청을 받고 국경도시 카르스로 떠난다. 카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방문 소식을 다룬 한 지방신문 기사를 읽는다. 3일에 한 번씩 발행하는 이 신문은 "카가 극장에서 미발표작 시 '눈(雪)'을 낭송했다"고 그의 동정을 예측보도했다. 극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기사에 나온 시를 쓴 적도 없는 카는 어이없어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며칠 뒤 그는 신문이 예고한 대로 극장에서 '눈'을 낭독한다. 신문 발행인은 그것이 이 도시에 들어온 카에게 예정된 운명이라고 말한다.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무크의 장편 '눈'에 나오는 얘기다.

카가 겪은 이상한 경험은 동·서양 문명이 만나는 지역에서 혼란과 갈등을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터키인들의 숙명을 상징한다. 터키에서 태어난 이상 그곳의 소녀들은 히잡을 벗으라는 서구식 학교의 교칙과 전통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이슬람 교리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갈등하게 된다.

아시아 동쪽 끝 한반도에 사는 우리의 사정도 다를 게 없다. 우리에게도 대륙세력과 해양 세력이 충돌하는 한반도에서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이 맞는 운명이 있다. 우리 문학도 그런 점을 주목했다. 이문열의 '변경', 최인훈의 '광장' 등이 이념의 충돌지대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초상을 그렸다. '변경'은 아버지의 월북 이후 남한에 남겨진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비극적 과정을 그렸고, '광장'은 남과 북의 체제 어느 한쪽에 속할 것을 강요당한 젊은이의 고통을 다뤘다. 터키의 소녀들이 히잡을 벗을지 말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고민했다면, 최인훈과 이문열의 소설에서 한국인은 남과 북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갈등했다. 6·25 전쟁 이후 지난 60년의 우리 역사는 한·미 동맹의 울타리 안에서 생존을 보장받고 발전하는 길을 선택한 우리가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중국이 G2로 부상하면서 한국은 미·중 가운데 선택이 아니라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새로운 운명을 맞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하자 중국은 축전을 보내면서 "중국과 관계를 더 밀접하게 하는 것이 박 당선인의 유일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한·미 동맹의 틀을 깨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한·미 동맹 못지않게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요구다. 미국도 향후 한·미 동맹의 위상 변화를 예견하고 있다. 미 국가정보위원회가 지난 10일 발표한 '글로벌 트렌드 2030'은 한국이 통일되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중국에 다가가는 '전략적 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머리에 북한을 이고 살아가는 우리로선 생존과 평화를 보장받고 장차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미 동맹을 지키면서도 통일 후 한국이 중국의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쪽으로 외교의 지평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김태훈 국제부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30/2012123001253.html



Posted by 겟업
2013. 4. 4. 15:23

지금 인류에게 진실로 필요한 건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좋은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작년 6월7일 일본 여성들 수십명이 총리 관저를 찾았다. 한동안 전면 정지 상태에 있던 원전의 재가동을 정부가 허가할 움직임을 보이자 항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는 후쿠시마 원전 부근에 삶터가 있는 어머니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자신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눈물과 분노로써 묘사하고, 이 참극에도 원자력을 단념하지 않는 정부의 자세를 격렬히 규탄했다. 한 어머니는 “우리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의 역사가 말할 수 없이 어리석은 역사였음을 알게 되었다”고 비통하게 말했다.

생각하면, 인간의 어리석음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지만, 그중에서 원자력 기술의 개발과 응용보다도 더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근대적 기술에는 근원적인 폭력성 혹은 파괴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 말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이든, 실제로 거의 모든 근대적 기술이 인간생활에 혜택을 주는 만큼 반드시 부작용을 수반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흔히 혜택은 단기적이고, 피해는 장기간 지속되게 마련이다.

근대적 기술의 이 근본적 한계는 어디서 기인하는가. 간단히 답하면, 그 기술을 뒷받침하는 서구 근대의 ‘과학적 이성’이라는 것이 “모든 자연은 계산을 통해서 정복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자폐적이고 근시안적인 자연관 위에 구축돼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계는 부분적·단기적으로는 합리적이되 전체적·장기적으로는 비합리적인 사고와 논리에 의해 압도적으로 지배되어왔다.

그러한 사고의 극단적인 산물이 원자력 기술이다. 원자력 기술은 방대한 전력생산 기술로서는 유효할지 모르지만, 핵폐기물 처리를 비롯한 사회적·정치적·경제적·생태적 비용은 인류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그 핵심적 비용에는 물론 생물체에 대한 치명적인 손상이라는 문제가 있다. 지구 탄생 이후 최초의 원시 생명이 출현하기까지 10억~20억년이 경과해야 했던 것은 방사능이 제거되기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방사능은 지구 생물체와 절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물학자 허먼 조지프 멀러는 일찍이 ‘방사선과 유전’(1964)이라는 논문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빈번한 핵실험에 의한 대기 중 방사능 증가로 인류의 장기적 생존 가능성이 축소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멀러의 이 경고가 나온 지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핵실험 이외에 420기가 넘는 상업용 원자로, 그리고 스리마일·체르노빌·후쿠시마에서의 핵사고로 세계는 돌이킬 수 없이 심각히 오염되었다. 게다가 작년 5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가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세계의 원전에서 중대사고가 터질 확률은 10~20년 만에 한번이다. 만약 이 연구가 옳고, 원자력 시스템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앞으로 100년 안에 북반구 전역은 인간의 거주가 불가능한, 광대한 방사능 오염지대로 변할 것이 분명하다.

원자력이란, 군사용이든 민생용이든, 이 지상에서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될 기술이다. 세계적 반핵활동가 헬렌 칼디콧의 말이 아니더라도, 원자력의 근간에 있는 것은 ‘광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수많은 정치가·관료·경제인·과학자·언론인은 한사코 원자력을 장려·옹호해왔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원자력이 값싸고 풍부한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널리 유포된 거짓말을 그들이 믿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원전의 건설과 유지, 폐기를 모두 고려한다면 원자력의 경제성이란 완전히 허구임이 이미 명확해졌다. 그런데도 원전에 집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원전 비즈니스를 둘러싼 강고한 기득권 체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체제에서 절박한 것은 단기적인 이윤추구이지 생명과 자연의 보호가 아니다. 따라서 자본의 이해관계와 긴밀히 결합돼 있는 산업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도, 생명의 논리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번 대선 후보들의 세 차례에 걸친 텔레비전 토론에서 원전을 포함한 환경문제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근대국가는 자본주의를 토대로 전개돼온 정치체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성장·확대에 불가결한 기술혁신을 위한 테크놀로지는 자본과 국가 모두에게 요긴한 존재이다. 설령 그 기술의 궁극적 결과가 세계의 파괴일지라도 단기적인 이익에 골몰한 눈에는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핵폐기물 처리와 같은 것은 자신들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게 원전을 옹호·지지하는 자들의 근본적인 정신구조다. 사실상 오늘날 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정치와 경제, 법질서 전체가 ‘조직화된 무책임의 체계’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지금까지 일본이 지향해온 것은 서구 근대문명을 단시간에 모방하여, 자신도 세계 열강의 일원이 되기 위한 대국주의(결국은 제국주의) 노선이었다. 그 길을 따라 정신없이 달린 끝에 전쟁 참패라는 좌절을 겪었으나 다시 전후의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한 듯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태는 대국이 되고자 하는 꿈의 허망함을 명확히 드러냈다. 후쿠시마 이후 널리 공개된 사실이지만, 지진의 나라 일본에 54기의 원전 건설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 전개된 데에는 단순한 전력 확보 이외에 숨겨진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언제든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잠재능력을 보유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발언력을 높이려는”(기시 노부스케) 것이었다.

군국주의를 통한 제국 건설의 꿈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산산조각이 난 것처럼, 경제대국 일본은 후쿠시마 사태로 종언을 고했다. 애당초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토대를 둔 경제발전과 대국 지향 노선 자체가 지속 불가능한 것이었다. 후쿠시마 사태는 재생 불가능한 자원과 원자력이라는 광기의 기술에 의존하는 정치·경제 체제의 필연적인 붕괴를 상징하는 파국적 재앙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산업혁명 이후의 모든 근대국가, 서구 근대문명을 무반성적으로 모방해온 모든 신흥 산업국가의 공통한 운명이다. 이것을 뚜렷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후쿠시마 핵사고는 스리마일이나 체르노빌 핵사고와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다. 그 차이의 배경은 후쿠시마 핵사고가 경제성장 시대의 종말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시점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후쿠시마 이후에도 맹목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경제성장을 위해서 원자력을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작태임이 확실하다.

지금 인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진실로 ‘좋은 삶’ 혹은 ‘좋은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좋은 사회’란 무엇보다 안심하고 자식을 키울 수 있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사회여야 한다. 그러한 사회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도 존재한다. 그중 빠뜨릴 수 없는 나라는 물론 독일이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독일이 원전의 단계적 폐기를 거국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이뤄진 탈핵운동의 성과였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간소한 생활양식을 추구하고, 활발한 대안에너지 개발 등 진지하게 미래에 대비해온 국민적·국가적 차원의 지혜와 합리성이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상황은 아직 절망적이다. 원전 강국이라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재앙을 직접 겪은 일본 정부도 별로 나을 게 없다. 후쿠시마의 어머니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쓴 탄원서를 접수한 바로 다음날 노다(野田) 당시 총리는 오이(大飯) 원전의 재개를 결정했다. 시급한 것은 동아시아 주민들의 정치적 각성과 궐기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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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5:22

우리나라 사람 6명 중 1명은 연간 소득이 998만원도 안 되는 빈곤층이다. 특히 선진국보다 3배나 많은 자영업에서 과잉 경쟁을 벌이는 50대 이상은 빈곤층 비율이 가장 높은 계층이다. 50대 자영업자 176만명 중 74%는 영세한 '나 홀로 자영업자'다. 베이비부머들이 퇴직 후 재취업이 어렵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집을 담보로 빌린 대출금과 퇴직금을 까먹으며 빈곤의 한계선상에 놓인 게 현실이다. 한발만 삐끗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인데도 그들을 받쳐줄 사회안전망은 취약하기 그지없다.

보수는 경쟁과 성장의 가치를 중시한다. 그래서 대개 가진 자와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편다. 반면 분배와 평등을 중시하는 진보는 노동자, 농민 등 경제적 약자에 기울기 마련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사회적 약자인 서민층이 진보를, 가진 자들은 보수를 지지하는 게 옳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거꾸로다. 한국갤럽이 대선 투표 당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면, 농업ㆍ임업ㆍ어업 종사자는 55 대 29, 자영업자는 52대 42의 압도적인 비율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4월 총선에선 월 소득 100만원 이하 계층의 76.2%가 보수 여당을 찍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20대 80 사회'에서 80에 속하는 사람들이 20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니 진보가 보수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이런 계급배반 투표는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미국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인 캔자스나 웨스트버지니아주가 보수 공화당의 아성으로 꼽힌다. 가난한 사람들(50대 이상 비율이 가장 높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뭘까. 역사학자 토머스 프랭크는 미국의 보수 세력이 1960년대부터 자산가와 보수 기독교,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와 연합전선을 구축해 보수적 가치를 전파해왔다고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의 원인인 경제 문제에 집중하기보다는 낙태와 동성애 등 보수적 가치관에 물들어 공화당을 노동자, 농민을 위한 정당으로 믿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다를 게 없다. 보수는 거대 언론과 대학, 연구기관을 장악하고 있다(김재철 MBC 사장의 퇴진을 막기 위한 보수의 눈물겨운 노력을 생각해보라). 교육기관은 경쟁 만능의 시장경제를 절대선으로 가르치고, 거대 언론은 이념 안보 종북 등 보수의 담론과 의제를 반복해서 전파한다. 교회는 빈곤을 경제구조가 아닌, 신앙을 통해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가르친다. 애국심과 권력에의 복종을 부추겨 보수화를 이끄는데도 선수다.

보수의 언어는 감성적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행복, 민생, 화합 등이 보수진영의 핵심 키워드였다. 진보의 언어는 이성적이다. 보편적 복지나 증세 등은 가슴보다는 머리로 인식해야 하는 단어다. 그런데 인간은 이익에 따른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보다 프레임에 따른 감정적 선택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 자신의 가치관에 따른 프레임으로 판단하는 것이지, 주머니 사정이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견해도 비슷하다. 사람이 무엇을 판단할 때 이성보다는 본능적 직감에 의존하며, 이성은 직감이 먼저 판단한 것을 논리적으로 변명할 때만 이용된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이성적 언어로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진보는 보수도 진실을 알면 돌아설 것이라 굳게 믿고 이성적 언어로 계속 설득하려 든다. 하지만 보수(보수화된 서민)에겐 이런 접근이 통하지 않는다. 진보가 집권하면 국가안보가 위태롭게 될 것이며, 복지 포퓰리즘 탓에 나라 곳간이 금세 절단 날 것이라는 보수적 프레임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진보는 논리적인 설득이 통하지 않는 보수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야유하고 조롱하고 힐난하며, 분노와 증오의 언어로 공격해대기도 한다. 이러니 가난한 보수에게 진보는 잘난 체하는 지식인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진보는 선악의 이분법 구조나 흑백논리에서 속히 벗어나야 한다. 안티 5060운동에 나설게 아니라, 그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수십 년 간 국민 대중을 지배해온 보수의 감성적 언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5년 후도 기약하기 어렵다.



고재학 경제부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2/h2012123019593211870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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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5:21

풀을 뜯어 먹다 죽은 어린 소녀의 시신, 길가에 널브러진 시체를 뜯어먹는 개, 쌀 한 줌에 몸을 팔아야 하는 여인의 울부짖음…. 중국 펑사오강(馮小剛) 감독의 영화 ‘一九四二(1942)’의 장면들이다. 1942년 발생한 허난(河南)성 대기근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2012년의 끝자락, 중국 지식인들은 1942년이라는 과거 굴레에 빠져 고민하고 있다.

영화 상영 한 달, 중국 신문과 방송은 대기근의 진실을 쏟아내고 있다. 당시 허난성은 1년 이상 지속된 극심한 가뭄으로 전체 인구 3000만 명 중 300만 명이 굶어 죽었고, 1000만 명은 유랑을 떠나야 했다. 가뭄으로 인한 천재(天災)였다지만, 사건을 키운 것은 인재였다. 국민당 관리들의 사건 축소 및 은폐, 금융권의 정부 지원금 갈취, 언론 탄압, 인민의 피를 빨던 친일파의 행각 등이 연일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기근 논쟁은 이제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공산당 집권기인 1958년부터 시작돼 62까지 이어진 ‘1962년 대기근’이 그것이다. 1942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참사였다. 1600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게 정부 공식 발표지만, 전문가들은 전국적으로 3000만 명을 훨씬 초과할 것으로 분석한다. ‘인육을 거래했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로 전해질 정도다.

1942년과는 달리 1962년 대기근은 인재의 요소가 컸다. 일본군의 침략도 없었고 가뭄도 심각하지 않았다. 정부 창고에는 곡식이 쌓여 있었고, 식량을 수출하기까지 했다. 인민일보 등 기관지는 ‘올해도 풍년’이라며 마오쩌둥(毛澤東)이 추진하던 대약진운동의 성과를 늘어놓았다. 그 사이 30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어야 했던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50년 전 내 할아버지·할머니가 굶어 죽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냐’고 공산당에 묻고 있다. 그러나 당은 말이 없다. 진실을 폭로한 서적은 여전히 출판 금지 목록에 올라 있고, 그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백서 한 권 없다. 지식인들은 기근의 이유를 안다. 무리한 공업화 추진, 관리들의 농업 생산량 허위보고, 농지를 떠나지 못하도록 한 후커우(戶口)제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당의 솔직한 반성인 것이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취임 이후 높아지고 있는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와 맥을 같이 한다. 많은 지식인은 ‘2013년을 정치민주화의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장첸판(張千帆) 베이징대 교수 등 지식인 71명이 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서한을 공개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시 총서기 취임 이후 세 번째 공개 서한이다. 내년 시작될 시진핑 시기의 중국 정치가 평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영화 ‘1942’는 이 흐름을 보여주는 문화 코드였던 셈이다. 2013년의 문턱에 선 중국 지식인들은 지금 치열하게 ‘아듀! 1942’를 외치고 있다. 새 정치에 대한 갈구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301165&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4. 4. 15:20

12월 22일 수교 20주년을 맞은 한국과 베트남 양국 관계의 발전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수교 교섭에서 우리는 대국들 옆에 위치한 두 나라가 ‘소나무가 무성해지면 잣나무가 즐거워한다’는 고사성어를 협력의 키워드로 삼자고 제의하고 “악연(惡緣)이라도 유연(有緣)이 무연(無緣)보다 낫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베트남 측은 “우리는 현명한 민족이다. 과거에 집착해서 미래를 포기할 수 없다”고 화답했다. 

1964년 한국의 베트남 참전은 주한미군 2개 사단 철수를 피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베트남전쟁이 끝날 무렵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잃을 것은 분계선이고 얻을 것은 남북통일’이라고 지원을 요청한 사실이 베트남 파병의 전략적 의미를 웅변해 주었다. 

베트남 파병의 역사적 결단을 내리기 전날 밤 청와대 응접실에서 육영수 여사가 줄담배를 피우며 고뇌하던 박정희 대통령을 따라다니면서 10번이나 재떨이를 옮겼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1996년 베트남을 공식 방문한 김수한 당시 국회의장이 도므어이 당서기장에게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서슴없이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하길래 그 일화를 언급했다고 한다.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은 우리 경제사에도 전환점이 되었다.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끈 현대, 한진 등 주요 기업이 베트남 현장에서 도약을 시작했다. 국민들의 의식도 ‘하면 된다(Can do spirit)’는 적극적 정신으로 바뀌었다. 우물 안 개구리 한국인들이 넓은 세계를 알게 되었다. 

통일 후 베트남은 국가 발전을 향한 집념을 불태웠다. 베트남은 문맹률이 낮고, 젊은 노동력을 가진 8000만 인구의 근면한 나라다. 1986년부터 도이머이 신경제정책으로 개혁·개방의 길을 택했다. 경공업은 물론이고 중공업과 첨단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이 나라는 한국의 개발 경험과 경제협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 이에 한국 정부와 기업은 자신의 성취를 나누기 위해 적극 협력해 왔다. 

한국의 베트남 누적투자가 총 240억 달러이며 한국의 진출 기업에 취업하는 베트남인이 60만 명에 달한다. 베트남은 한국 정부의 최우선 개발원조대상국이다. 양국 간 무역액이 1992년 5억 달러에서 2011년 186억 달러로 37배 증가하였다. 베트남 체류 한국인이 13만 명이고, 한국 체류 베트남인이 11만 명에 달한다. 그중 시집온 베트남 여성이 4만7000명이다. 한국의 신생아 100명 중 2명이 베트남계다. 

중국을 둘러싼 15개국 중 한국과 베트남은 문화적 유사성이 강하다. 열사의 중동은 물론이고 극한의 시베리아에서도 일할 수 있는 민족은 지구상에 한국인과 베트남인뿐이라고까지 한다. 양 국민은 수천 년간 독립을 유지해온 데 대해 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13세기 쿠빌라이 칸이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 당시 3차례에 걸친 몽골군의 대규모 침공을 격퇴한 데 대해 높은 긍지를 지니고 있다. 베트남과 인연을 맺었던 한국인들은 베트남에 대해 형제애와 같은 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2009년부터 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선언하고 미래를 향한 협력을 강화해 가고 있다. 양국은 ‘소나무와 잣나무의 상생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개발협력의 성공적 모델을 만들 것이다. 장차 동아시아에 패권적 구조를 대체하는 지역협력체제가 이루어질 때, 두 나라는 역동성 있는 중견 오피니언 리더로서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 (한-베트남 수교 당시 아주국장)



http://news.donga.com/3/all/20121229/51914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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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5:20

얼마 전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을 만났을 때 그가 물었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 아세요?" 나는 현충사를 떠올리며 "충남 아산 아니냐"고 했다. 그는 "그게 아니라 서울, 그것도 도심인 중구 인현동"이라고 했다. 을지로와 충무로 사이다. 그 뒤 나도 여러 사람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 아산이라고 답했고, 더러는 충무(통영), 아니면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이라고 맞힌 이는 거의 없었다.

충무공은 1545년 3월 8일(음력) 한성 건천동에서 출생했다. 지금의 인현동1가 31-2 자리다. 그는 10대 중반에 아산 외가로 갔다가 22세에 돌아왔고, 이후 전시(戰時)를 제외한 생의 대부분을 한성에서 보냈다. 두 차례 백의종군을 결심한 곳도 한성이었다.

'서울 이순신'에 대한 흔적은 1985년 명보극장 앞에 설치된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忠武公 李舜臣 生家址)'라고 쓴 표석이 사실상 전부다. 중구청이 7년 전부터 탄생일에 여기서 다례를 연다. 아산과 통영을 비롯해 그가 흔적을 남긴 전국 곳곳에서 다양하고 규모 큰 행사들이 치러지는 데 비하면 조촐하다. 서울은 600년 고도(古都)답게 숱한 인물이 태어났다. 청계천에서 남산 사이만 해도 허균·임경업·박팽년·윤선도·류성룡·한명회 등의 생가 위치가 확인된 상태다. 하지만 대부분 '죽은 기록'이다.

올해 한국에 온 외국인이 10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5년 동안 평균 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정부는 다음 목표를 2020년 2000만명으로 잡았다. 일본인의 꾸준한 증가, 경제성장에 힘입은 중국인의 급증, 한류(韓流) 인기를 감안하면 어려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관광의 질(質)이다. 한국관광공사 조사를 보면 작년에 관광객의 80% 이상이 서울을 다녀갔다. 주요 방문지 1~3위는 명동(67%), 동대문시장(56%), 남대문시장(46%)이다. 주목적이 쇼핑과 식도락인 것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반면 우리가 외국에 가는 주목적은 자연경관과 명소 탐방이다. 셰익스피어, 에펠, 로미오와 줄리엣, 워싱턴과 링컨, 서태후 등 명소마다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 와서 사람 얘기를 듣고 감동하고 기억하는 외국인은 드물다. 내세울 인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발굴과 스토리텔링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한국 관광에서 쇼핑과 식도락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한류도 시들해지면 어떻게 될까.

관광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수익은 물론 국가 브랜드와 민족 자긍심 향상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를 실현하려면 호텔 객실 증설만큼이나 새로운 관광자원 발굴이 시급하다. 특히 서울 도심에 숨은 역사문화 자원부터 개발할 필요가 있다. 중구를 예로 들면 충무공기념공원, 주자소박물관, 서소문성지 역사문화공원, 혜민서 기념광장 등 15가지 사업을 선정해 관광 명소화(化)를 추진하고 있지만 재원이 부족해 속도를 내기 힘겹다. 새 정부는 할 일이 아주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에도 눈길을 주었으면 한다.



이충일 도시문제 전문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28/20121228022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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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5:18

역대 정권의 첫 청와대 경제수석 경제학자→관료 교체가 반복돼
'모양새'가 '민원 처리력'에 밀려 새 경제 진용은 '실행력'이 중요
은행가·기업인도 잘 살펴봐야 국제금융에 정통한 보좌관 필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한 지 넉 달도 안 돼 청와대 비서진을 개편했다. 쇠고기 광우병 괴담이 촛불 시위로 한창 번질 때였다. 당시 경제수석비서관이던 김중수 현 한국은행 총재도 물러났다. KDI(한국개발연구원) 출신인 김 수석이 왜 쇠고기 파동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비서실장이던 류우익 현 통일부 장관과 함께 정치적 희생물이 됐다. 후임은 경제 관료 출신인 박병원 현 은행연합회 회장이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늘 이런 방식으로 바뀌었다. 김대중 정권 때는 경제학자 출신인 김태동 경제수석이 돌연 물러나고 경제 관료 출신인 강봉균씨(전 민주당 의원)가 들어섰다. 취임한 지 석 달이 채 되기 전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첫 경제수석에 경제학자인 박승 중앙대 교수를 영입했지만 10개월 만에 문희갑 경제기획원 차관(전 대구시장)으로 교체됐다. 김영삼 대통령도 초대 경제수석에는 박재윤 서울대 교수를 임명했다. 그러나 박 수석이 겉돌고 있다는 말이 나돌더니 경제 관료 출신인 한이헌 공정거래위원장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역대 대통령의 첫 번째 청와대 경제수석은 모두 경제학 교수나 연구원 출신이었다. 번듯한 경제학 박사 학위를 갖춘 인물들이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의 부족한 경제 지식을 감싸줄 '학문적 병풍'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첫 경제수석은 언제나 단명(短命)했다. 박재윤 수석의 재임 20개월이 역대 정권의 초대 경제수석 중 최장수 기록이다. 그리고 그들의 후임은 관료 출신이 맡는 인사 패턴이 매번 반복됐다. 관료 집단에 거부감이 강했던 노무현 대통령마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를 신설해 진보학자인 이정우 경북대 교수를 임명했다가 10개월 만에 관료 출신인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교체했다.

관료 출신 경제수석들은 대체로 권력자와 상대하는 처신술에 능숙하다. 자신이 권력자를 대신해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민첩하게 파악한다. 어떤 통로로 경제 부처나 재계에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해야 할지도 잘 안다. 경제학자 출신이 "그건 앞뒤 논리가 맞지 않습니다"며 3단 논법으로 설명하려고 덤빌 때 공무원 출신은 "그건 경제 논리에 맞지는 않지만 한번 챙겨보겠습니다"며 골칫거리를 깔끔하게 해치운다. 경제 현안에 정치적 해법을 작동시키는 솜씨도 뛰어나다. 경제수석을 지낸 어느 인사는 '대통령 앞에서 할 말, 안 할 말을 잘 가리고 결정이 내려지면 물불 안 가리고 처리하는 능력'을 경제 관료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반면 경제학자 출신은 '눈치 9단'의 순발력을 가졌다고 해도 추진력 결핍증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은 최고 권력자나 실세(實勢)에 밉보인 기업을 적당히 세무조사로 주무르며 골탕을 먹일 줄 모른다. 대통령이 애정을 표시하는 단체에 예산을 늘려주며 체면을 살려주는 기본기도 갖추지 못했다. 그들은 대개 눈치 없이 논리를 따지며 일 처리를 미적거리다 몇 달 만에 경제수석 자리에서 퇴출되고 만다.

역대 정권의 경제수석 인사를 통해 얻어진 진실은 간단하다. 대통령이 첫 경제수석으로 경제학자 출신을 선택하면 경제를 불황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보려고 작심했다는 뜻은 아니다. 대통령의 장식품으로서 모양새를 갖추려고 그런 인물을 선택했다고 보면 된다. 취임 후 몇 달 지나 권력층 내부에서 경제수석에 대한 불평이 커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인사(人事)를 비롯한 실세들의 갖은 민원과 청탁을 경제수석이 순탄하게 처리하지 못한 죄가 훨씬 크게 작용한다.

인수위 명단이 공개되면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을 맡거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인물 후보군(群)이 떠오를 것이다. 그중 누구는 장관이 되고, 누구는 경제수석으로 기용될 것이다. 이들을 보면 한국 경제의 5년을 얼추 짐작할 만하다.

대통령은 계약기간 5년짜리 시한부 권력자다. 최고 권력자의 경제정책을 이끌어갈 진용은 모양새보다는 실행력을 기준으로 짜되 이론가는 주변에 배치하면 된다. 다만 행동력을 갖춘 집단은 경제 관료만 있는 게 아니라 은행가나 기업인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혹독한 외환 위기를 겪고서도 1년이 더 지난 2009년 12월이 돼서야 국제경제보좌관을 임명했다. 한국이 수출로 그토록 많은 흑자를 내더라도 외환 파동을 거치고 나면 한꺼번에 털어먹는다는 21세기 경제의 기본 이치를 알지 못했다. 외환 위기로 두 번 급소를 얻어맞은 나라는 다음번 금융 위기 때 가장 노리기 쉬운 사냥감이 된다. 국제금융에 정통한 전문가야말로 한국 대통령에게는 항상 곁에 둬야 할 필수품이 됐다.

송희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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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5:17

취임 직후 전국이 시위에 휩싸인다면 신임 대통령은 어떻게 할까? 힘으로 진압한다면 일은 간단하겠지만 독선적이란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요구를 대충 들어주고 달래서 해산시키려 든다면 욕은 덜 듣겠지만 남은 임기 내내 반대파에 끌려다닐 수 있다. 거의 5년 전 한국을 휩쓸었던 광우병 촛불시위 때 우리는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선택을 목격했다.

그런데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리더십을 보여준 지도자가 있다.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2006~2010 재임)이자 라틴 아메리카에서 남편 후광 없이 집권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61)가 주인공이다. 2006년 3월 11일 취임한 바첼레트는 그해 4월 공교육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시위로 골머리를 앓았다. 5월이 되자 79만 명이 동시에 수업을 거부하고 대형 시위를 벌였다. 취임 초 65%를 넘나들던 대통령 지지율은 40% 중반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런데도 바첼레트 대통령은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시위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강제진압 명령을 내리지도, 적당히 타협하는 미봉책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시위는 내가 미처 몰랐던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할 일을 새롭게 찾을 수 있는 기회”라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조했다. 그는 전국의 모든 정파·종교·인종·지역을 망라한 전문가·교사·학부모에 학생 대표까지 참여하는 교육개혁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해법 마련을 일임했다. 그러자 시위가 그쳤고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갔다. 그해 12월 자문위 최종 보고서가 나왔고 이는 교육개혁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바첼레트는 칠레에서 30년 만에 처음 벌어진 대규모 시위사태를 충돌의 장이 아닌 각계각층의 목소리와 의견을 모으는 대통합·대타협의 장으로 바꿔놓은 정치력을 인정받았다. 바첼레트의 리더십을 연구해온 울산대 이순주(중남미 정치학) 교수는 “‘국민은 투표할 권리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할 권리도 원한다’는 취임사 내용을 고스란히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한쪽 편만 들지 않고 생각이 다른 국민 사이의 갈등 해결을 대통령의 임무로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 바첼레트 리더십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바첼레트는 2002~2004년 중남미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 때도 이런 대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봉급이 적은 군인들에게 연금을 보장해주고 원하는 장비와 해외평화유지군 파병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자 군부 수장인 육군참모총장이 스스로 “다시는 군이 민주주의를 뒤엎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군인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고 국가 과제인 정치 중립을 얻어낸 것이다.

하지만 바첼레트는 필요할 때는 한껏 단호했다. 교육개혁자문위가 한창 활동 중이던 2006년 8월 2000여 명의 학생이 시위 도중 경찰에 돌을 던지자 최루탄과 물대포 등으로 강경 진압했다. 쿠데타로 집권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이 그해 12월 숨지자 독재자에게 국장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군사장을 명령했고, 군 기지 외에는 조기 게양도 거부했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고 대신 여성 국방장관을 정부 대표로 보냈다.

학생시위 때처럼 국민대타협을 내세울 때와 피노체트의 장례식처럼 원칙을 앞세울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융통성 있는 리더십은 바첼레트를 대통합의 지도자로 만든 힘이 됐다. 그는 2010년 84%의 지지율 속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퇴임했다. 선거 때 자신을 찍지 않았던 유권자의 과반수가 퇴임 때는 지지로 돌아섰다는 이야기다. 이 정도는 돼야 대통합의 리더십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조만간 첫 여성 대통령을 맞는 한국에서도 대타협·대통합이란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고루 존중하면서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야만 이룰 수 있는 목표다. 선거에서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았던 국민의 지지까지 얻어내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대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이를 대통령이 할 일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멀리 칠레에 좋은 참고사례도 있지 않은가.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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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28

유난히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가운데 2012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심각한 경제난과 취업난, 총선과 대선으로 어느 해보다 어수선했고 그만큼 생활이 팍팍했다. 정치개혁이나 경제민주화 같은 거대담론들이 국민의 정신을 쏙 빼놓았고, 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대선 결과와 최악의 세대 간 분열을 섬뜩한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다. 승자와 패자 모두 같은 심정이었고, 같이 상처를 입었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혼돈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희망의 씨앗은 있는 법이다. 한국문화가 그중 하나다.

한국문화는 올해 지독한 경기불황과 혼란 속에서 오히려 최고의 부흥기를 맞았다. 특히 대중문화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K-팝(Pop) 열풍이 지구촌 곳곳으로 확산됐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조회수 10억뷰를 넘고 빌보드 차트에서 7주 연속 2위를 기록했다. 김기덕 감독은 ‘피에타’로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베네치아(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주목되는 점은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욕구다. 국민들은 영화관으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영화의 경우 올해 입장객 2억명, 극장 매출 1조50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사상 최고 기록이다. 뮤지컬 입장객도 25% 정도 늘어났고, 관련 매출도 사상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이 있는 공연의 경우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올해 경제성장률 2%대에 비추어 아주 이례적이다.

살아가기도 어려운데 국민들이 영화관과 공연장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측면의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한국 대중문화의 수준이 향상되고 콘텐츠가 다양화돼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문화의 질적 발전이라는 문화적 해석이다. 둘째는 살기가 팍팍해지자 문화에서 위안을 찾으려 했다는 측면을 들 수 있다. 문화의 효용성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다.

이 두 가지, 즉 문화적 요인과 사회ㆍ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문화의 르네상스가 이뤄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욕구와 라이프 스타일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끼니를 걱정해야 하고 일자리에 목을 매야 하는 절박함이 많지만, 이제 문화적 욕구가 본격화하는 단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민소득이 1만5000~2만달러를 넘어서면 행복의 척도가 물질적 측면에서 문화적ㆍ정신적 욕구의 충족으로 변화하게 되는데, 지금의 한국사회가 그 단계에 접근했다는 얘기다. 그것이 불경기 속에서도 문화의 부흥을 가능하게 했다. 

내년에 출범하는 새 정부는 국민 행복을 모토로 삼고 있다. 국민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것인가. 물질적 욕망은 끝이 없다. 현 정부처럼 경제성장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빈곤층 해소, 소외계층 및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는 정책과 함께 국민들의 고통과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문화를 육성하고 함께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국민의 욕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즐거움과 기쁨, 희망을 주는 문화 콘텐츠는 지금처럼 어려울 때 더욱 필요한 법이다. 



이해준 문화부장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21227000275&md=20121230004138_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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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27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중·고교의 과잉 학력 경쟁과 사교육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학 입시제도를 다시 단순화하겠다고 한다.

안식년 기간에 필자의 아이는 미국 보스턴 교외의 공립 고등학교에 다니며 사교육 없이 일 년을 지냈다. 고등학생들이 마치 대학생처럼 자기가 선택한 과목에 따라 반을 옮겨가며 공부하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렇기 때문에 등·하교 시간도 일정치 않고, 수업과 수업 사이에 때로 빈 시간도 생긴다. 그렇지만 실력이 낮으면 쉬운 과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경우는 대학교 1학년 과목까지 미리 배울 수 있다. 그래서 너무 쉽거나 어려운 과목을 억지로 들으며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일은 별로 없다.

미국 고교는 무엇보다도 체육과 예술활동에 열성이다. 학교에는 표준 육상트랙도 있고, 미식축구 경기장, 아이스링크까지 있다. 미식축구팀도 두 팀이나 운영하고 있는데, 축구팀 학생들이라고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학년 전체가 참가하는 음악회를 일 년에 네 번 개최하는데 꽤 비싼 입장료를 받지만 빈자리가 없다. 이 학교 학생들은 매년 명문대학도 많이 진학하는데, 입시 전형에서 체육과 예술활동이 중요 평가항목으로 고려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경우 과거 수십 년간 대학 입시제도가 계속 바뀌어 왔지만, 신기하게도 중·고등학교 교육이 변한 것은 별로 없다. 수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같은 반 학생들은 종일 거의 같은 과목을 배운다. 외국의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일본·중국·대만·인도·그리스는 우리와 같이 아직 반별 교육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해 핀란드·영국·프랑스 등의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는 학생이 과목을 선택해서 매 시간마다 반을 이동하고 있다.

우리 학생과 학부모들의 학교 만족도가 낮은 이유는 당연하다. 반별 획일 교육이 다양하고 수준에 맞는 내용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학력 과열경쟁에 몸살을 앓는 것도 오직 가두어 놓고 공부만 시키는 닭장식 교육의 필연적 결과다.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과 인도도 현재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왕따 등이 큰 문제가 되는데, 학생들이 음악과 체육 등 협력의 중요함을 배울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입학사정관제가 겉도는 것도 학생을 평가할 요소가 학교 점수 말고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등교육은 이미 그 폐해가 엄청나다. 대학을 졸업해도 자립심은 부족하고, 고시와 공무원시험 줄에 합류해야만 정신적 안도감을 얻는 세대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획일적 수업이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값싸고 쉬운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선택과목을 늘리거나 일 년에 음악회를 몇 번이나 열어야 한다면 당연히 교사 부담이 커진다. 미국은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이지만 저소득 가정을 빼고는 학생 급식이 무료가 아니다. 한정된 예산의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기부금을 수시로 간청한다. 단 기부금 모금은 개별 학교가 아닌 교육구청에서 주관해서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음악회와 체육경기 등에서는 학부모들이 티켓의 판매와 행사준비를 주도한다.

사람은 붕어빵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획일 교육은 경쟁력이 없다. 저예산 획일적 공교육에 체념하고 공짜점심에 박수 치며 사교육을 우리 아이의 생존전략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먼저 학교에 노력과 돈을 기부하고, 교사가 분발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늘려가며 학생들의 다양한 성공에 투자하도록 할 것인가. 오직 학교의 무상급식과 입시제도 개편에만 초점을 맞추는 교육대책은 안이하고 퇴행적이다.


성 원 용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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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26

깊은 수렁에 빠지는 한국 경제, 내우외환 위기를 극복하려면 
최고의 인재 적재적소 배치를… 수십 년 감투 쓴 사람들 대신 
사회적 책임 의식 품은 인재가 삶에 혜택 주는 가치 만들어야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부터 갖가지 주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나같이 풀기 힘든 문제이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달라고 하고, 주부들은 물가 안정을, 노령층은 노후 생활 안정을 부탁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횡포로 빚어진 시장의 불공정과 불균형을 시정해달라고 요구하고, 대기업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며 규제를 없애달라고 말한다. 박 당선인은 저출산·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면서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세상의 어떤 뛰어난 지도자도 점점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 경제를 단숨에 살릴 묘약(妙藥)을 찾아낼 수는 없다. 지금 우리 경제는 바닥을 향해 침몰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서 재벌 계열사를 제외하고 중견 건설사들은 거의 다 망했다.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 부채의 부담이 늘면서 금융회사의 연쇄 파산 가능성이라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기업의 수출 환경은 더 나빠지고 있다. 원화 강세가 장기화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 위기는 몇 년 안에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경쟁국인 일본은 엔화를 마구 찍어서라도 엔화 약세를 만들어 수출 경쟁력을 되찾겠다고 벼르고 있다.

박 당선인이 내우외환(內憂外患)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최고의 인재를 적재 적소에 배치하는 것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세종대왕 리더십의 핵심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하나는 세종대왕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한시도 잊지 않는 겸손함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둘째는 곳곳에 인재가 있으므로 그런 인재를 등용하고 의견을 듣는 것이 리더의 임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집현전이라는 창의적인 두뇌를 가진 엘리트 집단과 목표를 공유하고, 같이 토론하면서 최적의 대안을 찾아갔다. 이렇게 나온 결정을 황희 정승 같은 훌륭한 경영진이 뛰어난 경륜을 바탕으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박 당선인이 어떤 인재를 어느 자리에 쓸지 결정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생사를 좌우할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 사회에는 훌륭한 실력을 가진 인재가 의외로 많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K팝스타 시즌 2'를 보면 우리나라에 이렇게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작곡 능력이 뛰어난 어린 인재가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한국 경제의 운명은 전두환·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 때 장관 자리를 돌려가면서 수십년간 감투를 쓴 분들이 아니라 정말 새로운 인재들이 맡았으면 한다. 그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이제는 제발 은퇴하셔서 후배들이 제 뜻을 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셨으면 한다.

박근혜 당선인의 철학을 이해하는 측근 참모들이 새 정부에 들어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측근으로만 중요한 자리를 채운다면 5년 뒤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과 똑같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박 당선인이 중용해야 할 인재는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창조적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사회적인 책임 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다. 국민의 삶에 혜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에, 급변하는 트렌드를 앞서 읽는 통찰력과 비전을 겸비한 인물이다. 조선시대로 비유하자면 세종대왕을 모시고 한글을 만들겠다고 덤벼든 집현전 학사 같은 기개 있는 인재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로 발돋움하느냐, 1만달러에 주저앉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대공황을 이겨낸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영국병을 고친 마거릿 대처 총리 같은 새로운 리더십을 박근혜 당선인에게 기대해본다.


김영수 조선경제i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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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26

맨해튼과 브루클린, 브롱크스는 뉴욕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 익숙한 이름이다. 이 같은 유명세 덕분에 뉴욕은 한 해 4000만명의 내국인과 1000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로도 이름 높다. 하지만 뉴욕은 로마나 파리처럼 역사적 유적으로 유명한 도시도 아니고, 스위스처럼 빼어난 자연환경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곳도 아니다. 전통적 관광자원의 관점에서 볼 때 빈약한 뉴욕이지만 해마다 관광산업으로 31만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고 315억달러의 수입을 거두고 있다.

올해 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10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해서 관광산업의 질적 성장에 관해 다양한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뉴욕이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문화적 자산을 관광에 접목시킨 것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상사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스펙트럼처럼 켜켜이 쌓인 뉴욕의 문화적 자산들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먼저 '유브 갓 메일'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킹콩' 같이 뉴욕을 배경으로 한 세계적 흥행 영화들이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의 클래식 공연뿐 아니라 브로드웨이 뮤지컬처럼 대중성 높은 공연들이 다양하게 발달돼 있다. 또 루브르 미술관, 브리티시 뮤지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만여 소장품으로 유명한 뉴욕 현대미술관, 현대 추상미술을 이끄는 구겐하임 미술관 등이 있다.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관광객들 사이에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꼽힌다. 이러한 문화관광은 재방문율, 체류 기간, 1인당 소비금액을 크게 늘려주기 때문에 관광산업의 질적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다.

우리나라도 시설 면에서는 뉴욕의 공연 시설이나 미술관에 비해 크게 뒤질 것 없다. 예술의전당, 국립현대미술관, 블루스퀘어(뮤지컬 공연장) 등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시설을 운영하고 문화관광 상품화하는 소프트웨어가 아직 한 단계 도약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지휘자인 정명훈이 있음에도 서울시립교향악단을 관광 상품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현재 GDP의 5.2%에 불과한 관광 산업 비중을 세계 평균인 9.1% 수준으로 증가시키려면 저가·단순 관광에서 고가·문화 관광으로 질적인 성장을 이끄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승창 전 대우일렉트로닉스 대표이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25/20121225013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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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25

핀란드 북쪽 끝 라플란드주의 수도인 로바니에미(Rovaniemi)에는 연중 많은 인파가 몰려들지만 크리스마스철이면 더욱 붐빈다. 헬싱키에서 열차로 10시간이나 걸리는 먼 여정에도 사람들이 이 도시를 찾는 이유는 살아 있는 산타클로스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산타가 이곳을 자신의 거처라고 선언한 스토리텔링에 따라 도심에서 8㎞쯤 떨어진 한적한 숲 속에 '산타클로스 빌리지'가 조성되었다.

이 마을의 중심에 있는 크리스마스 하우스는 이국적으로 디자인되어 방문객들이 정말 산타의 고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의 특성 등을 고려하여 지붕을 뾰족하게 만든 3층 규모의 하우스에는 산타 집무실, 산타 우체국, 크리스마스 전시장은 물론 식당·기념품점 등 부대 시설들을 입주시켜 방문객들이 의미 있는 경험을 하도록 디자인되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매일 집무실에 출근하여 방문객들을 맞아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다. 1950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산타 우체국에서는 산타가 한 해에 받는 700만통의 우편물 중 약 2%를 골라 답장을 보내는데, 특별히 디자인된 소인을 사용하여 인기가 높다.

 '로바니에미 산타클로스 마을' - 눈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첨탑형으로 디자인한 크리스마스 하우스. 위 사진은 타파니 타랄리가 1950년 디자인한 산타 우체국의 소인.
해마다 2월에는 로바니에미 지역개발청과 라플란드대학교가 북극의 생활을 주제로 '디자인 위크'를 개최하여 디자인 세미나, 워크숍, 전시회 등을 갖는다. 북극권 지역이라 한겨울이면 영하 38도의 한파가 몰아치지만 밤이면 신비로운 오로라가 나타나는 산타 빌리지는 '경험 디자인'의 명소(名所)가 되고 있다. 경험 디자인이란 장소나 시설을 통해 사람들이 새로운 체험을 하게 하는 디자인이다. 지난해 33만명이 방문했는데, 그중 85%가 외국 관광객이었다. 인구 6만여명의 이 작은 도시에서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비중이 40%나 된다.

정경원 카이스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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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24

"중화민족은 위대한 민족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 지난달 15일 중국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 중국의 미래 10년을 이끌 5세대 지도부로 선출된 시진핑 중국 공산당 신임 총서기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느껴지는 취임 연설내용이다. 시진핑은 당 중앙군사위 주석직도 승계함으로써, 당과 군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최고 지도자로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지한파'나 '태자당' 출신이 아닌 '지대파'(知臺派) 시진핑 시대라는 점이다. 

시진핑은 1985년부터 2002년까지 17년간 푸젠성에서 공직생활을 하며 샤먼시 부시장부터 푸젠성 부성장까지 역임했다. 푸젠성은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과 마주보며 최단거리 2km로 대만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경제 특구개설 등으로 대만상인들의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진 '심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양안(兩岸)교류의 요충지이다. 특히 시진핑은 임기 중 대만자본 투자유치를 진두지휘 했을 뿐만 아니라, 양안간의 직접교역을 시범적으로 실행한 소3통을 성공시켜 오늘날 양안 교류의 물꼬를 튼 장본인이다. 이미 대만에선 부인의 친척들이 대만에 거주하고 있는 배경까지 소개하며, 친대만 중국 지도자라며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우리가 이런 '대만통'시진핑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대만이 우리와 대중국 수출 상위 20개 품목 중 14개가 겹치고, 글로벌무대에서도 가장 큰 경쟁국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삼성의 최대고객사인 애플이 최근 삼성과의 특허 소송과 견제 전략으로 선택한 기업도 대만의 반도체 회사 TSMC이다. 이미 대만은 2010년 중국과 FTA에 해당하는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등 지금까지 총 18개의 협의를 체결하며 '차이완'(차이나+타이완)이라는 밀월 관계를 형성하며 중국경제발전의 최대 수혜국으로 부상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방해로 주춤했던 외교의 보폭도 차근차근 넓히며 일본과 무역투자진흥협약을 체결했고, 최근엔 쇠고기 수입 이슈로 중단됐던 미국과의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협상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적극적인 행보는 지난 정부가 정치 이데올로기에 국력을 낭비하는 동안, 최대 경쟁국인 한국이 G20 개최와 한미 FTA 체결 등의 실적에 자극과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래 10년을 책임질 중국의 새 지도자가 친대만파라면 양안경제 협력의 시너지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며, 이는 분명 한국경제에 영향을 줄 것이다. 벌써부터 세계 1위인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에 2위인 대만이 최근 중국과의 연합으로 패권을 넘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만은 92년 혈맹국이라 믿었던 한국에게 일방적으로 단교를 당한 후, 줄곧 '타도 한국'을 외쳐왔다. 특히 최근 국제무대에서 양국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지며 한국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높아져왔다. 우리경제가 지난 10여 년간 수차례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눈부신 발전을 한 데는 양안관계의 긴장으로 인한 반사이익도 있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이제는 양안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기지개를 펴며 '황금 10년'을 준비하는 대만의 행보와 중화민족의 부흥을 강조하며 이를 적극 지원사격 할 '지대파' 시진핑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던가. 제 아무리 친한 친구(한국)여도 가족(대만)이 우선일 것이다. 지한파라며 들뜬 기대보단, 대만의 경쟁력 제고가 우리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중일 FTA협상과 대만과의 관계 개선 등 다양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 한중 수교 20주년에 묻혀버진 한-대만 단교 20주년을 맞이해 5대 교역국인 옛 친구에게 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손정우 대만국립정치대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2/h201212242102012406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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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14



1985년 여름 미국 국무부 핵감시국장이 전문가 6명을 이끌고 한필순 한국에너지연구소(한국원자력연구원 전신) 소장(79)을 찾아왔다. 이들은 범죄 수사를 하듯 연구시설을 샅샅이 뒤졌다. 핵연료 기술을 미국이 아니라 독일에서 도입하기로 결정한 데 대한 항의성 방문이었다. 이들은 떠나면서 “미국 일류 대학 출신이 왜 이렇게 많으냐”라고 따졌다. 한 소장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욕구는 먹고사는 문제다. 밥을 지어 먹으려면 불이 있어야 된다. 한국은 석유 한 방울 안 나온다. 석탄은 저질탄밖에 없다. 에너지 문제는 생존권과 관련된 것이다.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맞받아쳤다. 

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인 2009년 12월, 한국은 원자력 분야에서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아랍에미리트(UAE)가 추진하는 원전 건설 사업에 프랑스 미국 일본이라는 막강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수출 경험이 전혀 없는 한국전력 컨소시엄이 선정된 것이다. 

이 사업은 2020년까지 총 4기의 원전을 건설하는 200억 달러(부가사업을 포함하면 40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다. 한국형 ‘원자력 연탄(핵연료)’과 ‘원자력 아궁이(원자력발전소)’를 통째로 수출하는 것이다. 지금은 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인 한 박사는 우리나라 원전 시스템 대부분을 총괄한 주인공이다. 한국 원자력은 모두 그의 구상과 지휘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월 이명박 대통령이 아부다비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왕세자와 함께 착공 기념식에 참석한 직후 기자는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아부다비를 방문한 한 고문 일행과 현장을 찾았다. UAE 서쪽 끝 바라카 지역의 페르시아 만을 낀 광활한 사막에 자리 잡은 원전건설 현장은 우리나라 신월성 원전 터의 4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였다. 기자는 서울로 돌아오기 직전인 5일 한 고문과 마주앉았다. 

―현장을 둘러본 소감은….

“어마어마하다. 거대한 공룡을 보는 것 같다.”

한 고문은 건물 20층 높이로 들어설 원자로 격납용기를 보고 거대한 공룡을 떠올렸다고 한다. 현재 공정 25%인 격납시설에 들어갈 철제 원형 격납용기는 지름 60m에 무게만 해도 1600t. 초대형 크레인으로 이 ‘공룡’을 번쩍 들어 격납시설에 옮기고 그 속에 원자로를 넣은 뒤 격납시설을 완공하게 된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원전 기술을 절묘하게 배합한 ‘한국형 원전’이다. 한 고문은 “한국형 원전이 머나먼 중동의 사막에서 차례차례 조립되는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하다”라고 했다. 

―석유가 펑펑 나는 나라가 왜 원전을 만드나.

“누가 봐도 UAE는 지금 당장 원전을 건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원유 매장량이 세계 4위, 가스 매장량이 세계 3위이니 말이다. 불과 50∼60년 전만 하더라도 사막에서 대추야자를 재배하거나 바닷가에서 진주조개를 캐던 극빈층 국민이 어느 날 갑자기 석유를 발견하면서 세계 최고 부호로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석유가 주는 호사(豪奢)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래의 에너지로 원자력을 선택한 것이다.”

―태양도 뜨겁고 바람도 많은데 이걸 이용하면 안 되나.

“왜 검토하지 않았겠나? 그쪽 투자도 어마어마한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태양과 바람만으로는 실용적인 에너지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현재의 석유와 미래 재생에너지 사이의 간격을 메워 줄 에너지로 원자력을 택한 것이다.”

한 고문은 “이 나라는 2030년까지 에너지 수요를 석유·가스 3분의 1, 원자력 3분의 1, 재생에너지 3분의 1로 분담하는 에너지믹스(Energy Mix) 계획이 있다”라고 소개했다. 

“UAE의 셰이크 자이드 국왕은 석유만으로 미래의 발전을 더는 도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부다비를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킨다는 ‘아부다비 플랜 2030’을 발표했다.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의 분원을 아부다비에 유치하여 석유가 고갈되는 먼 미래에 아부다비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먹고살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이다.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석유는 아껴서 비싸게 수출하고, 필요한 에너지는 원자력과 재생 에너지로 분담하는 에너지믹스 전략을 세운 거다.”

―다른 중동 국가들은 어떤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요르단 같은 나라도 원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 석유가 풍부한 주변 국가들을 보라. 석유가 많다고 다 잘사는 건 아니다. UAE나 카타르처럼 빠르게 발전하는 나라가 있고, 시리아 리비아 이라크처럼 뒤처지는 나라도 있다.”

―요르단이 건설하겠다는 원자로는 발전용이 아니라 연구용이지 않은가.

“요르단은 중동에서 석유가 나지 않는 유일한 나라다.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관광 수입과 외국의 원조에 의존한다. 자원도 없고 가난하다. 요르단은 에너지를 거의 대부분 수입하는데, 자립하기로 하고 압둘라 2세 국왕의 주도 아래 2040년까지 원자력으로 30%를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국도 UAE를 통해 해외 실적을 갖춘 만큼 요르단의 원전 계획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본다. 이와 함께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대우건설과 함께 2014년 가동을 목표로 요르단과학기술대학교(JUST)에 연구용 원자로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로 현지 경험을 쌓고 있다.”

―UAE는 왜 한국을 파트너로 결정했나. 

“기술 자립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에 원전 기술 자립 경험이 있는 한국에 후한 점수를 준 것 같다. 첨단 기술의 집합체인 원전은 인공위성에 버금갈 정도로 기술 집약도가 굉장히 높은 사업이다. UAE는 칼리파대를 통해 한국 전문가들을 받아 원전 운영에 필요한 기술을 교육하고 훈련할 만큼 기술 자립 의지가 대단히 강하다.”

―처음에는 프랑스 아레바 내정설이 퍼졌었다. 

“사실이다. 그 소식을 듣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전화를 걸어 포괄적인 협력을 제안한 뒤 왕세자 초청으로 아부다비를 방문하고 그랜드 모스크까지 참배했다. 기독교 장로인 이 대통령이 이슬람 사원까지 참배한 것은 쉽지 않은 용단이었으리라 본다. 와서 보니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참 좋다. UAE와 한국이 마치 형제국처럼 가까워진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뒤 세계적으로 원전 계획을 축소하는 분위기다.

“여기서는 후쿠시마 같은 원전 사고에 대한 우려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평화롭고 차근차근 진행되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원전에서 대형 사고가 나면 반핵 분위기로 돌아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조금만 길게, 또 크게 보면 일본의 사고는 한국에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한 고문은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로 우리나라가 덕을 본 게 적지 않다”라고 털어놓았다. 체르노빌 사고로 세계 각국이 반핵 분위기로 돌아서자 웨스팅하우스를 비롯한 선진국의 원전 업체들이 기술을 헐값에 넘겨줬기 때문에 한국형 핵연료와 원자력발전소 개발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이제 후쿠시마 덕을 볼 차례다. 일본이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면 안전설계에 대한 기술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체르노빌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 기술을 계속 향상시킨 경험이 바라카 원전을 수주할 수 있게 했듯이,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안전 기술을 새로운 차원에서 확보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원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은 원전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쓰나미가 위험한 게 아니라 안전불감증이 위험한 거다. 또 원전이 위험한 게 아니라 문화가 위험한 거다. 정전 은폐, 입찰 비리, 납품 비리, 마약 복용, 시험 성적서 위조…. 이 쓰레기 같은 비리를 조금이라도 묵인하고 용인하는 문화 말이다. 엄정하게, 정말 엄정하게 다뤄야 원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원자력을 과연 미래의 에너지로 제시할 수 있나.

“석유가 펑펑 나는 이 나라가 고민하는 주제는 ‘후손을 위해 아껴 둬야 할 자원을 마구 태워 물이나 전기로 만들 필요가 있나’ 하는 것이다. 정유해서 석유화학제품이나 의약품을 만들면 훨씬 더 가치가 높은데 말이다. 자원은 ‘고귀한 용도(Noble Use)’로 사용할 수도 있고, ‘비천한 용도(Humble Use)’로 사용할 수도 있다. 원자력도 마찬가지다. 발전(發電)을 비롯해서 치료용 가공용 연구용으로 고귀하게 사용할 수도 있지만, 핵폐기물이나 대량 살상무기로 후손에게 엄청난 부담과 재앙을 주는 살벌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자원이 다 그렇듯 원자력도 ‘고귀한 용도’로 사용해야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 한필순 고문은… 한국형 원자로-핵연료 개발주도 ‘원자력의 대부’

1933 년 평남 강서 출신으로 공군장교(공사 5기)로 시작하여 서울대(물리학)를 졸업한 뒤 미국 일리노이대와 캘리포니아대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에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한국형 수류탄, 낙하산, 방탄 헬멧, 벌컨포, 각종 레이저 무기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국산화됐다고 할 정도로 황무지나 다름없는 한국의 국방 기술을 자립시켰다.

1984년부터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을 맡아 최장수 재임 기록을 세운 7년 동안 한국형 원자로와 한국형 핵연료를 개발하여 ‘원자력의 대부’로 꼽힌다. 1992년 우리나라 과학자로는 유일하게 프랑스의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1997년 환갑이 넘은 나이에 환경정화기계 회사인 ㈜가이아를 설립하여 중국의 기술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대덕연구단지의 중견 과학자 모임인 대덕클럽을 만들어 회장을 지냈으며, 2011년부터 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ttp://news.donga.com/3/all/20121224/51799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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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13

대한민국이 지난 64년간 이룩한 성취는 가히 20세기 세계사적 혁명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중동, 중앙아시아, 인도양을 거쳐 중국, 한반도,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제3세계 국가의 지도를 살펴보자. 

특히 1945년 이후 독립한 140개 가까운, 이른바 후진국 세계에서 정치민주화, 시민자유, 언론자유, 근대경제성장(1인당 소득, 산업구조 고도화), 교육과 과학기술의 선진화, 사회적 다원성이라는 근대화와 문명성을 완벽하게 성취한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몇 나라 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나라이다. 

투표와 후보등록의 자유, 표현과 미디어 발생의 자유, 주거 선택과 이동의 자유, 여권 발급과 해외여행의 자유, 제약이 없는 교육기회 상승, 그리고 1인당 소득 2만 달러를 넘는 나라…제3세계에는 아무도 없다. 제3세계 국가 중 1만 달러 이상인 나라가 유엔 가입 기준으로 6개쯤 있지만 민주주의, 근대경제성장, 사회문화적 다원성이라는 기준을 충족한 나라는 없다.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의 공화정혁명, 러시아의 공산주의혁명, 미국의 대중사회혁명이 있듯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한민국의 근대화 성취는 ‘대한민국 근대화혁명’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탄생 전후의 역사는 제3세계 그 어느 나라의 근대화 과정보다 가혹했다. 맨땅에 맨주먹이었다. 1950년대 1인당 소득은 고작 60∼70달러로 이보다 더 가난한 나라를 찾기 힘들었다. 18∼20세기 전반 제국주의 식민시대, 한두 차례 국제전쟁에 휘말리고 건국 과정에 내전이 전개된 나라들이 있었지만 한국같이 4개 국제전쟁(청일전쟁, 러일전쟁, 2차 대전, 6·25전쟁)의 직접적 피해 당사국으로서 때로는 인구의 20%가 희생되는, 그렇게까지 큰 비극을 치른 나라는 없다. 


26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문열어

더욱이 역사적 갈등 관계였던 비(非)서양, 비백인, 일본 군국제국주의의 식민지로서 말, 글, 이름을 빼앗긴 특수한 고통까지 겪고 광복은 독립의 기쁨이 아닌 분단의 상처로 왔다. 개화, 근대화, 서세동점(西勢東漸) 앞에 ‘최후의 은둔국’이었던 한반도는 대한민국의 개국에서 비로소 ‘대한민국 근대화혁명’의 길을 열었다. 4·19, 5·16, 5·18 등 현대사의 질곡을 거치며 절차에서의 민주화와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26일 문을 여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옛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은 19세기 말 개항기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국내 최초의 국립 근현대 박물관이다. 1945년 이후 세계 문명사에서 독특하며 유일한 위치를 차지하는 대한민국 근대화혁명을 담은 종합현대사 박물관이다. 20일 언론에 공개된 박물관은 그야말로 20세기 한국사의 자취가 집대성됐다. 

우선 단군 이래 우리 역사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근대, 현대의 세계사적 관점에서도 위대한 기록이고 독창적 성취이고, 어찌 보면 기적 같은 대한민국 근대화혁명의 궤적을 통합성 지속성에서 전시하려 노력했다.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과학기술 체육…각 당사자의 자랑 욕구에서가 아니라 이들이 결합하고 선후 연관된 종합·통합적 발전으로 해석하려 했다. 각 주체의 영웅주의적 사관에서 탈피해 국민, 시민 전체의 노력과 성취이며 내생적 외생적 요인의 통합이라는 관점에 서려 했다. 따라서 산업화 민주화를 분절적으로 나누지 않고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한 묶음으로 통합하였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사실 기록과 최첨단의 영상기술을 통해 시민들은 ‘우리, 오늘에 이른 근대화혁명’을 시계열로 관찰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비교의 안목에서 이해하게 될 것이다. 1층 로비에는 47인치 발광다이오드(LED) 모니터 72대로 장식된 ‘무빙 월(moving wall)’이 끈기나 열정 같은 한국인의 문화유전자, 한국의 사계(四季) 등을 주제로 한 3∼5분짜리 영상을 보여주고 오른쪽 방에는 천장에 붙은 센서 밑에서 관람자가 손으로 허공을 가르면 전면 벽에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소개하는 동영상 설명문이 보인다.

이 같은 첨단 전시기술은 소모적 이념, 체제, 역사논쟁을 완화 및 제거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특히 제3세계 국민들에게는 그들이 가야 할 길의 거울이요 봉화가 될 것이다. 


20세기 한국사의 자취 집대성

한 가지 간절한 바람이 있다. 

앞으로 용산으로 가는 주한 미국대사관 자리까지 합치게 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통일의 날을 바라보며 광화문에서 종각에 이르는 광화문 동쪽을 ‘역사, 통일’ 기념관으로 연장하고 서쪽은 어차피 헐어야 할 종합청사에서 세종문화회관과 종각 맞은편에 이르는 거리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정비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울은 600년의 역사와 문화와 산과 큰 강이 둘러싸고 더불어 사는 세계 ‘유일한’ 수도, 대도시로서의 부상을 보게 될 것이다. 

파리 런던 베를린 모스크바 카이로 뉴델리 베이징 도쿄 워싱턴… 그 어디에도 없는 대한민국의 서울. 그 중심 광화문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세계의 ‘근대화혁명 박물관’으로 더욱 현현될 것이다.


김진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개관위원장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http://news.donga.com/3/all/20121222/517748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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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12

대한민국은 지금 풀어야 할 사회적 난제와 민생 현안들로 넘쳐나고 있다. 일자리, 성장, 복지, 교육, 고령화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갖가지 구호와 논쟁이 난무했던 대선 직후여서 그런지, 이들 사회 현안이 더 큰 숙제로 느껴진다. 새 정부는 쉽게 풀리지 않는 사회 현안들을 가득 짊어진 채 출발하게 될 것이다. 이런 난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전문가·당국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왔지만 워낙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이어서 아직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방법, 더 나은 방법의 모색이 정말 절실한 시점이다.

국가경쟁력 1위를 자랑하는 핀란드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새로운 해결방법을 엿볼 수 있다. 『핀란드 경쟁력 100』이라는 책에는 아주 작은 창의적인 생각들이 모여 어떻게 난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소소한 생활 속 아이디어부터 국가 행정 시스템까지 오늘날 핀란드를 있게 한 다양한 사회 혁신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소개돼 있다. 창의적·개방형 아이디어의 대표적인 예가 21세의 청년 리누스 토르발스가 개발한 정보기기 운영체계인 ‘리눅스’다.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배포되고 프로그램 소스 코드도 공개돼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다. 이 밖에 자살예방국가 프로젝트, 평생교육, 부정부패척결 프로젝트 등도 핀란드가 직면한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한 사례다.

사회 혁신은 기존 방식으로 해결하기 어렵거나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를 ‘창의적 방식(new ideas)’으로 푸는 것을 말한다. 국민이 적극 참여해 낸 창의적 아이디어로 크고 작은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이 바로 사회 혁신의 핵심이다. 최근 각종 글로벌 위기가 터져나오면서 세계 각국은 골치 아픈 문제를 헤쳐나가는 방법으로 사회 혁신을 도입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소위 ‘제4의 물결’이라는 스마트혁명의 중심에 서 있다. 이 혁명을 이끌어가는 핵심 원동력이 인간중심 가치를 향한 스마트기술이다. 그동안 이 똑똑한 기술은 우리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변혁을 이끌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스마트기술을 활용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만 관심을 두었다. 최근 들어 스마트기술은 인간 중심을 지향하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스마트기술을 기반으로 개방·협력의 장이 형성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모여 결과적으로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일례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범죄예측지도(crime map) 프로젝트는 다양한 사람이 참여해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각종 범죄를 사전에 방지하고 해결한 사례다. 경찰청이 과거 8년간의 범죄발생 지역과 유형을 세밀하게 분석해 향후 발생 가능한 범죄를 예측하고, 그 결과를 지역 내 지리정보에 반영해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범죄예측지도는 범죄율 감소에 기여했고, 지역 거주민들은 생활 속 범죄정보를 사전에 인지해 스스로 예방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다. 자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빅데이터 분석 기반의 예방정책을 마련한다거나, 지능형 CCTV를 설치해 방범 능력을 크게 향상시키는 등 다양한 스마트기술 기반의 사회 현안 해법이 모색되고 있다. 앞으로 스마트기술을 잘 이용하면 분야를 뛰어넘는 융합적 혁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우리가 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난제도 조그마한 아이디어를 모아 실천하면 커다란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더 새롭고, 더 나은 방식인 ‘스마트 기반의 사회 혁신’이다.

국가 차원의 혁신전략에 국민의 창조력과 창의력이 더해진다면 우리는 ‘스마트 기반의 사회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특히 IT 강국으로서 우리의 강점을 잘 활용한다면 경제문제 해결과 일자리 창출, 범죄·재난 예방 등을 아주 적은 비용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불확실·고위험의 위기 시대를 맞아 이를 기회로 바꾸는 스마트 리더십이 필요하다.


김 성 태 한국정보화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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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11

한 세대는 보통 30년이다. 사람이 태어나 서른 살이 되면 사회에서 제 몫을 할 나이가 시작된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고 한 시대의 새 사람이 옛사람을 바꾼다(長江後浪推前浪 一代新人換舊人)’는 말처럼 이전 세대는 새 세대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하지만 앞선 세대는 그들이 남긴 족적에 따라 후세대에게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되찾고 싶은 영광의 시대일 수도, 지워버리고 싶은 치욕의 시대일 수도 있다.

역사를 보면 한 세대의 대응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결정됨을 알 수 있다. 독일은 19세기 중반까지 수십 개의 군소 국가로 분열돼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프로이센 재상에 오른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추진력에 힘입어 강대국인 오스트리아·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연이어 승리하고 마침내 1871년 통일을 이룬다. 이후 독일은 국가 주도의 공업 육성 정책을 통해 산업화에도 성공한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재임기간은 1862년부터 1890년까지 약 30년이다. 한 세대 만에 독일을 세계 열강의 하나로 끌어올린 것이다.

일본은 1854년 페리 제독의 위협에 굴복해 강제 개항을 한다. 잠시 혼란이 있었으나 메이지 유신(1867년)을 통해 극복한다. 이후 일본은 발 빠르게 근대국가, 산업국가로 변신해 나간다. 1895년 청일전쟁의 승리는 일본이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등극했음을 세계에 과시한 사건이다. 메이지 유신부터 청일전쟁까지는 겨우 30년, 한 세대가 걸렸을 뿐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구한말 30년은 뼈아픈 역사로 기록된다. 강화도조약(1876년)에 의한 개국은 메이지 유신 10년 후였다. 일본은 구미의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해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을 보냈는데 조선 역시 그 10년 후 조사시찰단을 파견했다. 당시의 10년 차이는 충분히 극복 가능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조선은 시대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결국 국권상실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부끄러운 선배 세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개발을 시작한 1962년부터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까지 30년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룩한 시대다. 아프리카 최빈국보다 가난했던 나라가 그 30년 사이에 선진국의 문턱까지 올라섰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비아냥을 받던 나라가 이 기간에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불과 한 세대 만에 이뤄낸 비약이다.

범위를 기업으로 국한해도 한 세대의 힘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는 83년 반도체 사업에 과감히 도전해 30년 후 세계 최고의 전자·정보통신 기업으로 올라섰다. 현대자동차는 76년 에콰도르에 포니 다섯 대를 처음 수출한 이래 30년 만인 2006년 세계 6위의 자동차 회사로 발돋움했다. 모두 한 세대 동안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기업의 구성원이 열정을 쏟아부은 결과다.

한 세대 30년은 이처럼 국가와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시대의 전환기에는 그 의미가 더욱 커진다. 그만큼 당시 주역을 맡고 있는 세대의 깨어 있는 정신과 단결된 힘, 이를 이끄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구나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기술이 급변하는 오늘날임에랴.

대선기간 동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제기됐다. 올 한 해 최대 화두였던 경제민주화를 비롯해 복지·노동 등의 문제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건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다. 이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자면 중심에 기업이 활기차게 뛰게 하는 정책을 둬야 한다. 중국이 개혁·개방 노선을 걷기 시작하고 30여 년 만에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했듯 국리민복은 결국 시장을 중시하는 경제체제가 가져오는 것이다.

이제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박근혜 당선인은 기쁨에 앞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리라 생각된다. 특히 향후 5년은 우리나라가 도약이냐 정체냐의 갈림길에 들어서는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새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는 다음 한 세대가 미래에 영광과 번영의 시기로 기억되길 소망한다. 그 첫출발은 어느 시대나 그렇듯 현실을 직시하는 경제정책에서 비롯될 것이다.


이 동 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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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10

내일(22일)은 한국과 베트남이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20년 전 우리는 북방외교를 통해 공산권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려던 때였고, 베트남은 미국·중국 등의 제재로 경제가 극도로 피폐해지면서 과거의 적대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추진했던 시기였다. 수교는 두 나라로서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베트남은 경제발전 모델로 한국을, 한국은 역사적·문화적·지정학적 배경이 유사한 베트남을 각각 새로운 파트너로 얻었다.

그동안 두 나라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정상급 교류 20 회, 각료급 교류 200여 회 등 정치외교 면에서 명실상부한 우방이 됐다. 양국 간 무역 규모는 연 200억 달러에 달하고, 한국은 베트남 내 2위 투자국이자 3위의 원조국이 됐다. 60만 명 이상의 양국 국민이 오가고, 양국에는 각각 13만 명이 상호 거주한다. 우리는 3만7000여 명의 베트남 며느리를 맞이한 ‘사돈의 나라’이기도 하다.

프랑스·미국·중국과 전쟁을 치르면서 개발의 기회를 놓친 베트남은 2001년 사실상 시장경제를 선언한 이후 개인의 창의와 경쟁을 존중하면서 매년 평균 7% 이상의 고도성장을 달성해 왔다. 2008, 2009년 경제위기를 겪는 등 시장경제의 경험이 짧아 아직 내부적으로 취약점도 많지만 베트남의 발전 잠재력은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깊고 정치·사회가 안정돼 있으며 국민들은 근면하다. 쌀 수출 2위, 커피 생산 2위 등 자원이 풍부해 차세대 신흥시장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새롭게 떠오르는 국가그룹으로 ‘CIVETS(콜롬비아·인도네시아·베트남·이집트·터키·남아공)’를 언급하면서 베트남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프랑스의 정치경제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그의 저서 『미래의 물결』(2007년)에서 베트남이 정치·금융·교육을 개혁하면서 인프라를 구축하고 부패를 척결한다면 2025년에 아시아 3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동남아 진출 미국 기업들도 생산시설 이전 대상지로 베트남을 가장 선호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앞으로 양국 관계를 바람직하게 지속해 나가려면 몇 가지 전략적 고려를 해야 한다. 첫째는 우리는 베트남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2020년 공업화·현대화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의 발전 경험과 지식을 베트남과 공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베트남을 돕는 것은 우리를 돕는 일이기도 하다. 베트남에는 2500여 개의 우리 기업이 진출해 있을 정도로 두 나라 경제는 이미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로 발전했다. 이런 점에서 지난 8월 협상 개시를 선언한 한·베트남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조기에 체결되기를 기대한다.

둘째는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3만7000명의 베트남 다문화 여성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 이들에게 불행한 일이 있을 때마다 베트남 국민과 지도자들은 많은 걱정을 한다. 딸 시집보낸 부모의 마음이다. 우리를 신뢰하고 좋아하는 베트남 국민들에게 한국민이 자국 여성을 소중히 배려한다는 소식이 자주 전해진다면 두 나라는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아울러 다음 총선에서 베트남 여성이 국회에 진출했다는 낭보도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풍습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한다. 요즘 베트남에서는 한류가 왕성하게 확산되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언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베트남 알기 노력은 아직 미흡하다. 한 일본인이 베트남 중부의 콘툼 지역 소수민족을 17년간 연구한다는 기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우리도 이제 정부와 민간기업이 베트남 연구에 좀 더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해주기를 바란다.


임 홍 재 전 주베트남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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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09

그 동안 여러 번의 선거를 치렀지만 이번만큼 세대간 인식 차가 큰 선거는 보지 못했다. 어쩌면 나라 밖에서 매체를 통해 접하는 선거였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선거 전날까지 젊은 유권자들은 문재인 후보의 상승세에 고무되어 압승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반면, 고령층 회원들이 많은 인터넷 카페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당연시하고 선거일 이전부터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갖는 의미에 관해 토론이 오가고 있었다.

그런 마음속의 분단은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영남이나 호남에 거주하는 분들의 트윗이나 페이스북을 보면 승부는 선거도 하기 전에 결정되어 있는 듯 했다. 야성이 강한 지역의 네티즌들은 주변에 특정 후보를 찍겠다는 이가 거의 안 보인다며, 대중매체의 여론조사에 의구심을 보이기도 했다.

인식의 분단은 후보자에 대한 평가와 이슈 해석의 분단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발언 내용은 여당에 의해 끊임없이 정치화되면서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끌려들어갔다. 그들에게는 야당 후보의 안보의식에 대한 불안감 조성이 유일한 목표였다. 박근혜 후보가 지하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실수를 하자, 많은 네티즌들은 그녀의 깊은 속내가 얼떨결에 표현된 것으로 단정지었다.

같은 것을 보고도 왜 사람들의 인식은 이렇게 갈리는 것일까? 우선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을 주로 보고 기억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선별적 노출과 기억'이라 불리는 이러한 습성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상이한 정보들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논조가 담긴 미디어에 푹 빠져들고, 결국엔 그 미디어에 의해 점령되어 버리고 만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시대에는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24시간 엮여있기 때문에 한쪽의 일방적인 관점에만 노출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특히 정치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관해서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심리적인 불안과 불편함이 훨씬 덜해지기에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끼리 구미에 맞는 정보를 나누면서 안락함을 느끼고, 그런 안락함에 점점 더 빠져든다.

이렇게 분단된 인식 속에서 승자와 패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기 마련이다. 2008년, 나는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존 매케인의 '개표결과 승복연설'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지지자들을 깊이 위로하면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오바마 상원의원을 "나의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그를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했다. 월남전 때 포로가 되었지만 마지막까지 특별 석방을 거부한 우국지사로서 그의 당당하고도 너그러운 면모는 투표권도 없는 이 외국인까지 눈물짓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승자의 자세다. 민주주의에서 투표는 거의 유일한 직접 의사표현의 장치로서 소중한 것이지만,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투표와 같은 다수결 제도는 패자에게 심리적으로 깊은 상처를 준다고 한다. 따라서 승자가 패자의 마음을 다독거리고 위안하며, 그들의 의사를 정중히 경청하지 않을 경우에는 조직 내에 불화와 앙금이 생기고 진정한 화합과 화해는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대통령제가 있는 나라라면 어디에서나 선거전은 죽기살기로 치열하다. 하지만, 치열한 전투가 끝난 뒤에 승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조직의 화합과 성취에는 큰 차이가 난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올해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는 '승리확인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롬니를 지지했든 오바마를 지지했든, 우리는 당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고 당신은 (정치를) 변화시켰습니다…. 저는 방금 롬니 주지사와 대화를 나누었고, 그와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가 이 힘들었던 싸움을 (성공적으로) 마친 데 대해 축하드렸습니다…. 몇 주 후에 저는 롬니 주지사와 다시 만나 이 나라를 다시 전진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논의하기를 고대합니다."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을 축하하며, 패한 후보와 그 지지자들까지 감싸 안는 대통령이 되어주시길 멀리서 간곡히 부탁 드린다.



김장현 미국 하와이대 커뮤니케이션학과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2/h20121219210133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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