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밤이 밝고/핏빛 구름의 여명 속에/동방의 작은 새 목청 높여/명예로운 개선을 노래한다.’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1913년)한 인도 시인 타고르가 벵골어로 쓴 시다. 무엇을 노래한 걸까. 일본이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하는 시다. 인도가 오랜 영국 식민지 치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타고르는 당시 세계적인 강국으로 떠오른, 같은 아시아 국가 일본에 호감을 가졌다. 1916년을 시작으로 무려 5차례나 일본을 방문했다. 다도·꽃꽂이·하이쿠 등 일본 전통문화에 매료됐다며 “시심(詩心)을 자아내게 하는 나라”라고 높이 평가했다. 일본 체류 중 강연을 통해 “일본은 아시아에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이 해 뜨는 나라에 감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大)아시아주의를 외치던 일본 우익의 거물 도야마 미쓰루(頭山滿)와도 친분이 있었다.
이쯤 되면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을 기억하는 많은 한국인은 의아할 것이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동방의 등불’은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 시기에/빛나는 등촉의 하나인 조선’으로 시작해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로 끝난다. 일제 치하 조선을 위해 쓴 시라고 하니 한국인이라면 누가 봐도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라고 격려하는 내용으로 읽힌다. 그런 타고르가 일본 편이었다고?
영문학자 홍은택(대진대) 교수가 계간 시 전문지 ‘시평’ 겨울호에 기고한 ‘타고르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보면 궁금증이 상당부분 풀린다. 홍 교수는 고증을 통해 ‘동방의 등불’ 총 15행 중 처음 4행은 시라기보다 메모 형태로 1929년 조선에 전해진 것이며, 나머지 11행은 누군가가 타고르의 작품 ‘기탄잘리 35’를 덧붙여 짜깁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구나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라는 마지막 구절은 누군가가 ‘기탄잘리’ 원문에도 없는 ‘코리아’를 넣어 각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벨상 수상자의 권위에 기댄 엉뚱한 ‘짝사랑’이 일제 시절,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된 셈이다.
사실 타고르가 일본을 흠모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 대상의 강연에서 “이 나라(일본)는 물질적으로는 진보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퇴보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고, 군국주의화 경향도 우려했다. 그가 “일본이 인도에도 야심을 품고 있는 듯하다. 굶주린 그들은 지금 조선을 잠식하고 중국을 물어뜯고 있다”고 말했다는 증언도 있다. 한 측면만 볼 게 아닌 것이다.
80년 넘게 지속된 타고르에 대한 짝사랑 혹은 오해는 우리의 필요·콤플렉스와 외국발(發) 권위에 대한 맹종이 버무려진 결과다. 엄혹한 일제시대엔 어쩔 수 없었다 치고, 요즘의 대한민국에선 이와 비슷한 촌극(寸劇)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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