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가운데 2012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심각한 경제난과 취업난, 총선과 대선으로 어느 해보다 어수선했고 그만큼 생활이 팍팍했다. 정치개혁이나 경제민주화 같은 거대담론들이 국민의 정신을 쏙 빼놓았고, 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대선 결과와 최악의 세대 간 분열을 섬뜩한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다. 승자와 패자 모두 같은 심정이었고, 같이 상처를 입었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혼돈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희망의 씨앗은 있는 법이다. 한국문화가 그중 하나다.
한국문화는 올해 지독한 경기불황과 혼란 속에서 오히려 최고의 부흥기를 맞았다. 특히 대중문화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K-팝(Pop) 열풍이 지구촌 곳곳으로 확산됐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조회수 10억뷰를 넘고 빌보드 차트에서 7주 연속 2위를 기록했다. 김기덕 감독은 ‘피에타’로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베네치아(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더 주목되는 점은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욕구다. 국민들은 영화관으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영화의 경우 올해 입장객 2억명, 극장 매출 1조50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사상 최고 기록이다. 뮤지컬 입장객도 25% 정도 늘어났고, 관련 매출도 사상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이 있는 공연의 경우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올해 경제성장률 2%대에 비추어 아주 이례적이다.
살아가기도 어려운데 국민들이 영화관과 공연장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측면의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한국 대중문화의 수준이 향상되고 콘텐츠가 다양화돼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문화의 질적 발전이라는 문화적 해석이다. 둘째는 살기가 팍팍해지자 문화에서 위안을 찾으려 했다는 측면을 들 수 있다. 문화의 효용성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다.
이 두 가지, 즉 문화적 요인과 사회ㆍ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문화의 르네상스가 이뤄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욕구와 라이프 스타일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끼니를 걱정해야 하고 일자리에 목을 매야 하는 절박함이 많지만, 이제 문화적 욕구가 본격화하는 단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민소득이 1만5000~2만달러를 넘어서면 행복의 척도가 물질적 측면에서 문화적ㆍ정신적 욕구의 충족으로 변화하게 되는데, 지금의 한국사회가 그 단계에 접근했다는 얘기다. 그것이 불경기 속에서도 문화의 부흥을 가능하게 했다.
내년에 출범하는 새 정부는 국민 행복을 모토로 삼고 있다. 국민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것인가. 물질적 욕망은 끝이 없다. 현 정부처럼 경제성장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빈곤층 해소, 소외계층 및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는 정책과 함께 국민들의 고통과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문화를 육성하고 함께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국민의 욕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즐거움과 기쁨, 희망을 주는 문화 콘텐츠는 지금처럼 어려울 때 더욱 필요한 법이다.
이해준 문화부장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21227000275&md=20121230004138_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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